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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국책연구기관 오염수 대응책 살펴보니...할 수 있는 일 많다

[오염수 방류 숨은 쟁점 ⑪] 비공개 국책연구기관 협동총서에 담긴 오염수 대응전략과 윤석열 정부

열람제한 딱지 붙은 오염수 대응전략 보고서 ⓒ민중의소리
윤석열 정부가 국책연구기관 협동 연구에서 제시된 ‘일본 후쿠시마 사고원전 오염수 대응 전략’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비공개 처리된 한 국책연구기관 보고서가 주목을 받고 있다. ‘원전 오염수 대응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 협동연구총서로,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한국환경연구원·한국법제연구원·한국원자력연구원 등과 협력하여 작성했다. 연구를 주관한 해양수산개발원은 지난해 9월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이 보고서를 제출했다. 저자로 참여한 전문가만 22명에 이르며, 분량은 주요 해외 문건 번역본까지 합하여 800쪽이 훌쩍 넘는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 “열람제한”이라는 빨간딱지가 붙었다. 국가세금과 여러 전문가가 투입된 연구총서가 볼 수 없는 비공개 문서가 된 것이다.

지난 15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담당자는 “보고서가 공개됐을 때 정책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비공개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 외에 자세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답하기 꺼려했다. 이에 민중의소리는 더불어민주당 강훈식·양이원영 의원실 등을 통해 해당 보고서를 열람했다. 그 결과, 해당 보고서에서 권고하는 대응 전략이 현 정부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전문가들이 꼽은 우선해야 할 정책방향
“국제중재재판소 제소 등 사법적 대응 방안 마련”

 

해당 보고서에서 전문가들은 방사성폐기물 처리 등에 관한 주요국 법정책과 국제협약을 비교·분석하며 ‘국제 협력 및 사법적 대응’을 강조하고 있었다.

‘국제 협력 및 사법적 대응’은 단순히 연구에 참여한 일부 전문가들만의 의견이 아니었다.

연구를 주최한 해양수산개발원은 지난 2022년 7월 10일부터 31일까지 약 20일 동안 연구기관(33.3%), 정부 및 산하기관(26.7%), 학교(20.0%), 기업(13.3%) 시민단체(6.7%)에서 일하는 원자력 및 해양수산 분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원전 오염수 해양배출에 관한 전문가 인식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이 전문가 인식조사에서도 ‘국제 협력 및 사법적 대응’이 가장 우선해야 할 정책방향이라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는 점을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해양수산개발원이 2022년 7월 10일부터 31일까지 60여명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원전 오염수 해양배출에 관한 전문가 인식조사'를 진행한 결과다. 해당 그림은 보고서 443p의 그림을 그대로 베끼어 옮겼다. ⓒ보고서 '원전 오염수 대응전략 수립을 위한 기초연구'


전문가 인식조사는 4개의 포괄적 정책방향과 14개의 세부 정책방향 중 우리 정부가 선택해야 할 방향을 묻고 추가 질문을 이어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4개의 포괄적 정책방향 중 “국제협력 및 사법적 대응”을 가장 중요하다고 본 전문가가 38%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서 “정책기반 고도화”(27%), “국민경제 영향 최소”(21%), “과학적 대응능력 강화”(13%) 등의 순이었다.

또 14개 세부 정책방향에 관한 질문에서는 가장 많은 전문가가 “국제중재재판소 제소 등 사법적 대응 방안 마련”(14.8%)을 가장 우선해야 할 정책방향이라고 봤다. 이어 “해운산업 영향 분석 및 대책 마련”(10.4%), “동아시아 해양환경 보호를 위한 지역협정 채택 추진”(9.4%), “민관산학 협의체 구성·운영”(9.2%), “태평양 도서국 및 주변국과 양자적·다자적 협력체계 강화”(8.4%)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이 제시한 사법적 대응 방안


보고서는 실제 ‘국제사법적 해결방안’으로 런던협약·런던의정서 당사국회의에서의 의제화, 유엔해양법협약·생물다양성협약 등을 활용한 분쟁해결절차 등을 제시했다.

 

 

 

IMO 자료사진 ⓒIMO

특히, 보고서는 런던의정서 마련 배경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소개했다. 해양투기로부터 해양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1972년 마련된 런던협약은 일본의 요구로 1996년 한층 강화된 런던의정서가 됐다는 점이다. 1993년 러시아 정부는 ‘야블로쿠프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구소련과 러시아가 1961년부터 핵폐기물을 바다에 버리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자 일본이 가장 크게 반발했다. 일본은 러시아의 핵폐기물 해양투기를 금지시키기 위한 국제공조를 이끌어 냈다. 일본의 행동 덕분에 1993년 11월 런던협약 당사국회의에서 방사성폐기물의 해양투기를 전면 금지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이후 1996년에 해당 내용을 반영하여 기존 런던협약보다 한층 강화된 런던의정서가 마련된 것이다. 현재 막대한 양의 방사성액체폐기물을 태평양에 방류하는 일본이 당시에는 ‘모든 방사성폐기물 해양투기 전면 금지’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당사국이었던 것이다. (▶ IMO, 폐기물 투기에 의한 해양오염 방지에 관한 협약)

보고서는 일본의 오염수 해양방류가 런던의정서 제2조와 제3조 등에 위배되므로 “런던협약 및 런던의정서 체계 안에서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 일본이 러시아의 방사성 해양투기를 금지시키기 위해 노력한 점, 공동조사를 우리나라와 함께 러시아에 요청했던 사례 등을 짚으며 “중국과의 공조”를 통해 오염수 해양방류 계획에 따른 영향 조사를 일본에 요청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보고서는 일본이 ‘유엔해양법협약상 의무를 충분히 이행했는지 여부’를 두고 다퉈보는 방안도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은 오염수 해양방류에 관한 자국의 환경영향평가법에 근거한 환경영향평가조차 실시하지 않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기준에 따른 방사선영향평가만 수행했을 뿐이다. 또 일본의 이 같은 방사선영향평가는 유엔해양법협약 제206조에 따른 환경영향평가가 아니었고, 이해관계자 의견수렴도 자국 대중을 대상으로만 실시했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일본의 방사선영향평가가 유엔해양법협약상 의무를 충분히 이행했는지’에 대해 “분쟁해결절차를 통해 다툴 수 있다”며 “유엔해양법협약 당사국총회에서의 이슈화 등을 통해 방사능 오염물질의 월경성 해양환경영향평가에 대한 기준과 방법, 절차를 정립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생물다양성협약 관련 자료사진 ⓒCBD 사무국

일본이 생물다양성협약(CBD) 규정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보고서에 나온다. 우리나라를 포함한 158개국이 서명해 발효된 생물다양성협약 조문에 따르면, 일본은 괄한 지역에서의 활동으로 다른 국가의 환경 피해가 발생하지 아니하도록 할 책임이 있다. 또 생물다양성에 부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는 사업에 대해서는 환경영향평가를 수행해야 하며, 관련 정보를 대상국에 통지하고 협의해야 한다.

이에, 보고서는 “일본은 원전 오염수 해양배출에 앞서 생물다양성을 고려한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생물다양성 정보공유체계를 통해 당사국과 전 세계에 공유해야 한다”며 “피해를 입을 수 있는 국가와의 협의 없는 오염수 해양방류는 생물다양성협약 위반임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미 오염수 방류 시작했는데
이제야 검토해보겠다는 환경부 장관
곧 런던의정서 당사국회의 열리는데
의견 제출 없는 윤석열 정부


윤석열 정부는 보고서 내용을 제대로 이행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023년 9월 1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 ⓒ국회 의사중계시스템 영상화면 갈무리

생물다양성협약은 환경부가 담당하는 영역인데, 환경부는 검토조차 하고 있지 않았다. 이달 13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한화진 환경부 장관에게 “생물다양성협약에 따라서 일본이 환경영향평가를 하고 우리에게 보고하게 돼 있는데, 일본이 그것을 했느냐?”라고 물었다. 한 장관이 엉뚱하게 ‘IAEA 보고서’를 언급하자, 우 의원은 재차 “IAEA 말고, (일본이 생물다양성협약에 따라) 환경영향평가를 했느냐는 것”이라며 “IAEA는 일본이 의뢰한 것만 조사해서 생태계 영향평가가 안 돼 있다. 왜 안 됐느냐고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에게 물었더니, 일본이 그런 거 의뢰하지 않았다고 했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이에 한 장관은 “생물다양성협약과 관련된 부분, 일본이 했는지 안 했는지 부분은 좀 더 확인해 보겠다”고 답했다. 보고서가 제시하고 있는 생물다양성협약을 담당 부처에서 검토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또 일본 오염수 문제가 다뤄질 런던협약·런던의정서 당사국총회가 오는 10월 2일부터 6일까지 런던에서 열릴 예정인데, 윤석열 정부는 어떤 입장이나 서류도 국제해사기구(IMO)에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이달 15일부터 19일까지 영국 런던과 스위스 제네바를 찾아 IMO 사무총장과 유엔인권이사회 독성물질과 인권 특별보고관 등을 만난 민주당 후쿠시마원전오염수해양투기저지총괄위원회에 따르면, 체결당사국은 총회에 서류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때까지 아무런 의견도 제출되지 않았다고 한다. 제출 기간은 이미 마감된 상태였다. 게다가 오렐라나 특별보고관이 우리 정부가 국제해양법재판소에 제소할 수 있음에도 국제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는 게 민주당 측의 설명이다. “심각한 직무유기”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국회·언론에 일본 주장 그대로 반복...일본 대변 자처하나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일본 입장을 적극 설파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이 언론과 국회에서 밝힌 입장을 보면, 일본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한 예로, 이달 4일 박성훈 해수부 차관은 국무조정실 일일브리핑에서 ‘오염수 방류는 런던협약 위반이란 민주당 입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취지의 질문에 “IMO 법률국은 부대의견으로 ‘투기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발표한 적 있다”라고 밝혔다.

 

 

 

IMO 법률검토 문건을 보면, "파이프라인을 통한 육상 폐기는 투기의 정의에 해당하지 않으며 런던의정서 범위에 있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면서도 "런던의정서를 넓게 해석할 경우 이러한 처분이 조약의 범위에 속하는 것으로 간주될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고 결론 내고 있다. ⓒIMO 법률검토 문건

하지만 2022년 7월 22일 작성된 IMO 법률국 자문 자료를 보면, 그렇지 않다. 이 자료에서 IMO 법률국은 ‘투기가 아니다’라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런던의정서를 넓게 해석할 경우 이러한 처분이 조약의 범위에 속할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라고 결론 내고 있다. 즉, IMO 법률국은 투기인지 아닌지 당사국 총회 논의의 영역으로 남겨놓은 셈이다.

또 이달 15일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이전 정부의 입장을 유지해 윤석열 정부도 올해 런던협약·런던의정서 총회에서 오염수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냐’라는 질문에,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은 “해양 투기가 아니다, (우리 정부는) 한 번도 투기라고 한 적 없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육상배출은 제외라는 것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라고 주장하며, 일본이 내세우는 논리만 강조하듯 답했다.

보고서에서 소개하는 런던의정서 제1조에 따르면 ‘투기’라 함은 “선박, 항공기, 해양시설, 기타 인공구조물로부터 해양에 폐기물 및 그 밖의 물질을 고의적으로 투기하는 것”을 일컫는다. 또 런던의정서 제2조에 따르면, 체약 당사국은 모든 형태의 오염원으로부터 해양환경을 보호하고 보전하며 폐기물 및 그 밖의 물질 투기에 의해 발생되는 오염을 방지하고 감소시키고 차단하기 위해 그 당사국의 과학적·기술적·경제적 능력에 상응하여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런데 일본은 선박 등을 통해 방사성폐기물을 바다에 방류하는 것이 아니고 파이프관을 통해 1km 앞 바다에 방류하는 것이기에 ‘투기’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편, 보고서는 국제기구 활용 방안도 제시하고 있다. IAEA는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을 지지하고 있어서 활용하기 어렵지만,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와 같은 국제기구 활용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뿐만 아니라, 보건 측면에서는 세계보건기구, 수산 측면에서는 지역수산기구, 해양환경오염 차원에서는 선박평형수, 해양폐기물 투기와 관련하여 국제해사기구 등을 활용해볼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이들 기구를 활용하여 오염수 해양방류에 적극 대응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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