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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새벽배송 도중 쓰러진 택배노동자의 ‘예견된 죽음’

쿠팡 “주 평균 55시간 근무”...택배노조 “야간 근무 감안하면 과로사 추정”

택배 기사들의 휴식 보장을 위해 지정된 8월 14일 ‘택배 없는 날’ 서울 시내 한 쿠팡 배송 캠프에서 택배기사들이 배송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2023.08.14 ⓒ민중의소리
쿠팡의 물류배송을 담당하던 60대 택배기사가 13일 새벽 배송 업무 도중 숨졌다. 그는 쿠팡의 자회사인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와 용역위탁 계약을 체결한 대리점에 소속된 ‘쿠팡 퀵플렉스’였다. 그간 쿠팡의 새벽 배송 업무를 담당하던 이들의 업무 행태를 볼 때 과로사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과 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의원실이 경찰 등을 통해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이날 오전 4시 44분경 경기도 군포시에 위치한 빌라 4층 공용 복도에서 택배기사 박모(60) 씨가 쓰러져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한 주민이 “호흡하지 않는 사람이 대문 앞에 쓰러져 있다”며 신고해 출동한 구급대원들에 의해 박 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다.

박 씨는 발견 당시 몸이 이미 경직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머리 위에는 쿠팡 종이박스(가로 60~70cm, 높이 25~30cm)와 쿠팡 프레시백(가로 60cm, 높이 20cm 정도) 등 쿠팡 택배상자 3개가 놓여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박 씨에 대한 부검을 의뢰해 정확한 사인을 파악할 방침이다.

아직 정확한 사인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과로사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진성준 의원은 “새벽 배송은 주간 업무보다 30% 이상 더 힘들고, 특히 휴게시간 확보가 어려운 택배업은 더 큰 과로를 부른다”고 지적했다. 택배노조 역시 “그간 있었던 택배노동자 과로사 사건들에서 나타난 여러 정황들로 미뤄볼 때 이것이 과로사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씨와 같은 쿠팡 퀵플렉스는 개인사업자로 분류돼 기본적인 근로기준법의 보장도 받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이미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박 씨는 그 중에서도 노동 강도가 높은 야간 배송을 담당하고 있었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주간조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야간조는 오후 9시부터 오전 7시까지 10시간 근무한다. 전형적인 주·야간 맞교대 시스템인 것이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이날 오후 국회 앞에서 열린 긴급 기자회견에서 쿠팡 퀵플렉스의 야간조에 대해 “주 6일에 주 평균 60시간 일하고, 산업안전보건법에 규정된 야간 할증 30%를 추가하면 78시간을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새벽에 단 10분도 쉬지 못하고 종종 걸음으로 뛰어다녀야 하는 비참한 상황에 택배기사들이 놓여 있다”고 전했다.

쿠팡은 이날 입장문을 통해 박 씨의 실제 노동 시간은 주 평균 55시간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근로기준법에 따라 제한된 노동 시간인 ‘주 52시간’을 넘는 수준이다. 여기에 야간 할증까지 감안하면, 고인의 노동시간은 주 평균 71.5시간이 된다고 택배노조는 지적했다. 과로사 인정 기준은 사망 직전 1주 동안 64시간 이상 노동을 한 경우다. 이렇다 보니 박 씨의 죽음을 두고 “예견된 참사”라는 말이 나온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진경호 위원장이 13일 오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쿠팡 택배노동자 과로사 추정 사망 사건’과 관련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하지만 쿠팡CLS는 상당수 택배기사들을 직접고용하지 않고 위탁계약을 통해 특수고용직으로 전락시켜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하고 있다. 쿠팡이 이날 “고인은 쿠팡 근로자가 아닌 군포시 소재 전문 배송업체 A물산과 계약한 개인사업자”라며 선을 긋는 입장문을 낸 이유다.

진 위원장은 “정규직인 ‘쿠팡친구’(쿠팡이 직고용한 택배기사)는 노동 시간을 주 52시간 넘기게 되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사용자가 처벌을 받지만, 특수고용직인 ‘쿠팡 퀵플렉스’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루 종일 일을 해도 아무런 법적 제재를 받지 않게 된다”며 “이게 오늘 새벽 발생한 쿠팡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의 핵심적인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택배노조는 원청이라고 할 수 있는 쿠팡CLS의 책임을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쿠팡CLS가 ‘클렌징’(구역 회수)이라는 제도를 통해 택배기사들에게 고강도 장시간 노동을 강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택배노조는 “쿠팡이 자랑하는 ‘로켓배송’과 ‘새벽배송’은 상시 해고제도 클렌징을 통해 쿠팡 택배노동자들을 갈아넣어야 운영가능한 시스템”이라며 “지금 쿠팡 택배노동자들은 ‘클렌징’으로 인해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극심한 고용불안이 시달리고 있으며, ‘클렌징’이 무서워 부당한 처사에도 항의할 수 없는 무권리 상태에 처해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 결과 많은 이들이 2~3회전 배송으로 주당 60시간을 넘게 일해야 하고, 사회적 합의에서 안 하기로 한 분류작업도 공짜로 해야 하며, 7~800원 하는 반품집화보다 강도가 센 프레시백 회수작업을 단돈 100원에 해야 한다”며 “주말이 아닌 평일 휴무와 명절 정상근무를 강요받고 있으며, 모든 택배노동자들이 다 쉬는 ‘택배없는 날’에도 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정현 택배노조 쿠팡택배 일산지회장은 “만약 정해진 시간 내에 배송이 되지 않으면 그 상품은 자연 취소가 된다. 그리고 바로 (물류)센터에서 다시 출고가 된다. 캠프에서 쿠팡CLS 직원이 직접 위탁배송 택배기사들을 점검한다”며 “정해진 시간에 배송을 하지 못하면 저희들은 수익률 저하로 언제든지 해고를 당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압박이 엄청 심하다보니 죽으라고 뛰어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성토했다.

택배노조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국회 국정감사에서 쿠팡 대표를 증인으로 출석시켜 이 문제를 따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 택배노조는 현재 국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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