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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초’ 회사 승진 차별 맞선 여성노동자, 변화 끌어냈다

“아무도 안하면 변화 없어 용기내”

육아휴직 뒤 잇단 불이익 구제신청
재심 끝 중노위서 ‘차별’ 인정받아
새 승진기준·재심사까지 이끌어내

기자오세진
  • 수정 2024-03-08 07:08
  • 등록 2024-03-08 05:00
지난해 3월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행진 중에 차별의 벽을 부수는 행위 연출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3월8일 오후, 서울 종로구 보신각 인근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행진 중에 차별의 벽을 부수는 행위 연출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변화도 없기에, 다시 한번 용기를 냈습니다.”

농기계 제조 및 판매 회사에서 18년째 일하고 있는 조아무개씨는 요 몇년 사이 가슴앓이를 해왔다. 전체 임직원 10명 중 9명이 남성인 ‘남초’ 회사에서, 2017년 ‘출산전후휴가’(90일)를 사용한 게 ‘화근’이 됐다. 회사는 평소에도 출산휴가·육아휴직을 신청하는 여성 직원에게 ‘네가 자리를 비우면 대체 인력이 없다. 차라리 그만두라’고 압박하는 분위기였고, 사내 노동조합도 여성 직원들의 고충을 외면했다.

따가운 눈총을 무릅쓰고 휴가를 썼지만, 무늬만 출산휴가였다. 조씨는 아이를 낳은 지 나흘 만에 산후조리원에서 노트북을 펴고 일을 해야 했다. 산후조리원을 나온 뒤에도 내내 재택근무를 했다. “(회사에서) 요구하니 일을 하긴 했지만, 그땐 정말 ‘이게 맞는 걸까’ 싶었어요.” 석달 뒤 복직한 조씨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근무’를 신청하자 ‘다른 지역으로 발령내겠다’는 압박이 들어왔다. 조씨는 굽히지 않았다.

“누군가는 (빼앗긴 권리를 되찾기 위한) 시작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어요.”

‘세계 여성의 날’을 하루 앞둔 7일 조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 ‘대가’는 생각보다 컸다. 조씨가 복직한 직후인 2018년 회사는 여성 직원 전원을 진급에서 누락시켰다. 신규 여성 직원은 모두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후배 (여성) 직원들도 (저를) 이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저를) 원망하더라고요. 저한테 ‘너무하다’고…. 그래서 실은, 이번 성차별 시정 신고도 시작하기가 두려웠어요.”

회사는 지난해 3월 승진심사에서 여성 직원들이 충족할 수 없는 기준을 적용했다. 대리점(딜러점)에서 직접적인 영업 활동을 하지 않는 ‘영업지원직’(전원 여성)은 충족할 수 없는 매출점유율·채권점유율 등을 승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승진 대상 중 영업관리직 남성 4명 중 3명은 승진했지만, 조씨를 비롯한 여성 2명은 모두 탈락했다.

두 사람은 ‘회사가 여성 직원을 승진에서 차별했다’며 지난해 5월 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에 구제신청을 했다. 하지만 지노위는 “인사에서 상당한 재량을 인정해야 한다”며 성차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판정이 나기도 전, 한 공익위원으로부터 “이건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계속 일하고 싶으면 이 정도에서 멈추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조씨는 “‘아, 이게 현실이구나’, ‘현실이 이래서 다들 참는구나’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여성노동자회와 전북여성노동자회의 도움으로 지난해 10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재심을 신청했다. 중노위는 지난해 12월 “(회사가) 여성 직원들이 충족할 수 없는 기준을 적용하여 간접 차별이 발생했다”고 판정했다.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20년 가까이 일하면서도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제 일의 가치를 인정받은 느낌이었어요.”

회사는 중노위 판정에 불복하는 소송을 따로 제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승진심사 기준을 새로 마련해, 지난달부터 조씨 등 두 사람에 대한 승진심사를 다시 진행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그 결과가 나오는 날이 8일이다.

“여성이 조금 더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기업들은 관행처럼 행한 성차별을 해결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이렇게 하나둘 용기를 내다보면 우리 다음 세대, 그다음 세대에는 진정한 성평등 사회가 될 수 있다고 믿어요.” 조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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