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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뭐길래…노소영 ‘비자금 자백’ 이어 최태원도 ‘편법증여’ 시인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24/06/18 08:54
  • 수정일
    2024/06/18 08:5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 입장 발표 ⓒ뉴시스


최태원 SK그룹 회장 측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 이혼소송 항소심 판결 오류를 지적하면서 내놓은 논리가 사실상 ‘편법 증여’ 자백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17일 최태원 회장 측 변호·회계사는 기자회견을 열고 “최 회장은 자수성가형 총수가 아니라, 승계상속형 총수”라고 주장했다. 

최 회장이 자수성가형이라면 현재 4조원에 육박하는 그의 재산이 부인 노소영 관장과 함께 모은 공동재산으로 간주되고 공동재산 절반은 노 관장에게 분할해야 한다. 반대로, 승계상속형(선대 회장의 재산을 증여·상속받아 형성된 재산)이라면 그만큼은 공동 재산에서 빼고, 나머지 재산만 분할하면 된다.

최 회장 측이 ‘나는 자수성가형이 아니라 승계상속형 총수’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내가 뛰어난 경영자라 그룹이 성장했고 그 성과로 재산이 늘어났다’고 자화자찬하면 재산을 빼앗기고, ‘선대 회장으로부터 받은 상속 재산이 내 재산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면 재산은 빼앗기지 않는 대신 자신의 경영 성과를 부정하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이날 최 회장 측은 재판부의 재산 형성 비중 계산 식의 오류를 지적했다. 최 회장은 그간 자신의 재산 형성 근간이 선대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2억8천만원이고, 그 돈으로 1994년 11월 매입한 대한텔레콤 지분 70%였다고 주장해 왔다. 그 70%가 지금의 4조원에 육박하는 재산의 상당 부분이니, ‘자수성가형이 아니라 승계상속형’이라는 주장이다.

항소심 재판부가 이 과정에서 계산을 실수했다. 증여가 있었던 1994년, 1998년 선대 회장 별세, 2009년 해당 주식 상장 등 세 시기로 나눠 각각의 기여율을 계산했는데, 재판부 계산대로라면 특정 기간, 선대 회장 기여율은 12배, 최 회장 355배가 된다. 최 회장 기여율이 압도적으로 높았으니 재산분할 대상이 된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잘못된 계산을 바로잡으면 선대 회장 125배, 최 회장 35배로 결과가 뒤집힌다. 최 회장 측은 이를 근거로 항소심 판단에 이의를 제기했고, SK 지적이 나오자 재판부는 잘못된 수식을 바로잡으며 실수를 인정했다.

딜레마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선대 회장 역할이 컸다’고 주장하면 할수록 ‘편법 증여’를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1994년 허울뿐이던 대한텔레콤은 최 회장과 그 일가가 주식을 매입하면서 급성장한다. SK그룹은 대한텔레콤이 제시한 금액대로 소프트웨어 개발과 장비구매 용역 계약을 체결했다. 용역 비용은 부풀려졌고, 대한텔레콤은 부풀려진 용역비를 착복한 뒤, 절반 금액에 재하청을 줬다. 당시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적자에 허덕이던 대한텔레콤은 이 시기 당기순이익률이 4.34%를 기록했다. 동종업계 이익률 0.3%의 11배에 달하는 폭리를 취했다. 덩치를 키운 대한텔레콤은 SK컴퓨터와 합병하면서 SK C&C가 됐고, SK C&C는 이후 그룹 지주사로 성장한다. 결국, 최 회장 측은 재판부 오류를 바로잡자고 그룹 성장의 치부를 강조한 셈이 된 것이다.

이창민 경제개혁연대 부소장은 “코미디 같은 일이다. 사익편취·일감몰아주기 규제가 없던 시기 발생했던 SK그룹 편법증여·승계 과정을 스스로 자백하면서 자기 재산을 지키겠다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노소영 관장은 재산분할 필요성을 주장하기 위해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조성 및 사용을 스스로 폭로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노 관장 측 주장을 받아들여 노 전 대통령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당시 선경)의 증권사 인수에 사용됐을 가능성을 사실상 인정했다. 당시 재판부는 비자금 300억원의 용처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태평양증권 인수 당시 자금 출처가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최태원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SK 성장이 불법적인 비자금을 통해 이뤄졌다’, SK 역사가 전부 부정당하고 ‘6공화국 후광으로 사업을 키웠다’는 판결 내용이 존재하고 있다”며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한편, 재판부는 계산 실수를 인정하면서도 재산 분할 금액 등은 바꾸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최 회장이 선대 회장으로부터 증여 받았다는 2억 8천만원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항소심 재판부는 선대 회장이 해당 금액을 최 회장에게 증여했다는 사실은 인정했으나, 증여 금액이 정확히 대한텔레콤 주식 매입에 사용됐다고는 보지 않았다. 때문에, 단순 계산 실수는 있었지만 재산 형성 과정에 선대 회장이 아닌 최 회장의 경영이 가장 큰 역할을 했고, 이 시기 부부 관계를 유지했던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변함 없다는 점을 재확인한 것으로 풀이된다. 
 

“ 홍민철 기자 ” 응원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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