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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심야노동, 건강에 치명적 위험...정부의 공적 규제 필요”

쿠팡 심야노동 규제 방안 토론회 “새벽배송 위한 사회적 합의 필요”

김백겸 기자 kbg@vop.co.kr

2일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쿠팡 심야노동의 위험성과 공정규제방안 마련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쿠팡 로켓배송을 하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쓰러져 사망한 가운데 쿠팡의 강도 높은 새벽배송이 노동자의 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 연속적인 심야 노동을 금지하는 등 공적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쿠팡 심야노동의 위험성과 공정규제방안 마련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쿠팡 로켓배송으로 택배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심야시간 장시간·고강도 노동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했다.

발제를 맡은 임상혁 녹색병원 원장은 "(쿠팡 택배노동자들이 겪는) 연속되고 고정된 야간노동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은 찾을 수 없었다"면서 "이게 건강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이건 너무나 해서는 안 되는 노동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도 시행되지 않는 노동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임 원장은 최근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에서 새벽 로켓배송일을 하다 자택에서 쓰러져 사망한 택배노동자 고(故) 정슬기 씨의 사례에 대해 연속적인 야간 장시간 노동과 사망의 관련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앞서 정 씨는 쿠팡CLS 남양주2캠프에서 새벽 로켓배송을 하다 지난 5월 28일 자택에서 쓰러져 사망했다. 사망원인은 '심실세동'과 '심근경색의증' 등 뇌심혈관계 질환으로, 과로사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택배노조에 따르면 정 씨는 평소 오후 8시 30분에 남양주2캠프에 출근해 최대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주 6일을 근무했다. 주 평균 노동시간은 63시간으로, 산업재해 판정기준에 따라 야간노동시간(오후 10시~오전 6시) 30% 할증을 적용하면, 주 평균 노동시간은 77시간 24분이다. 반면 쿠팡CLS 측은 정 씨의 주당 근무시간을 55시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배송지에서 캠프를 3번이나 왕복하는 3회전 배송을 했고, 모든 배송을 오전 7시에 마쳐야 하는 등 노동의 강도도 높았다.

임 원장은 쿠팡 측 주장대로 주당 55시간을 일했다고 하더라도 과로사 문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봤다. 그는 "1주간 평균 60시간을 초과하면 과로사로 인정한다. (근로기준법에 정한) 주당 52시간에서 초과한 시간이 길수록 관련성이 증가한다는 것"이라며 "정 씨는 주당 60시간을 이상 일했고, 쿠팡 측에서 55시간 일했다고 해도 당연히 장시간 노동을 한 다음날에 바로 연속으로 업무를 하는 경우는 (과로사에 대한 가중 요인이 생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고정된 야간노동만 했고, 보통은 월 8일인 휴일이 정 씨는 월 4일인데 휴일이 부족한 업무였다"면서 "또 육체적 강도가 크고, 정신적 긴장이 큰 업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 원장은 "정 씨의 사망 원인은 급성 심근경색증이다. 정 씨가 41세인데, 40세에서 44세까지 남성 중에서 10만명당 5명 정도밖에 발생하지 않는 아주 희귀하고 드문 질환"이라며 "정 씨는 자기 질환은 없었지만 장시간 노동, 고정되는 야간 노동, 휴일이 부족한 업무, 정신적 균형이 큰 업무 육체적인 강도가 높은 업무 등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는 장 씨가 겪었던 고정된 야간노동의 위험성에 대해 "야간 노동은 2급 발암물질"이라며 "밤에는 멜라토닌이라는 게 많이 나오는데, 빛 아래 있으면 멜라토닌 생성이 감소된다"면서 "멜라토닌의 감소로 항암 효과가 감소되고, 항상 긴장하는 자세로 몸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체온 감소, 각성 효과 감소, 반응속도 감소, 수면장애, 위장장애, 등 증상이 심야노동을 통해 나타날 수 있다고 임 원장은 설명했다.

임 원장은 "이 같은 조건 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계속 있다면 계속되는 죽음의 행렬을 우리는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 원장은 쿠팡 택배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최소한 야간노동을 고정적으로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야간노동은 워낙 위험한 노동이지만, 최소한 야간근무와 주간근무를 교대하도록 하고, 8시간 이상 근무를 안 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온전히 24시간을 쉴 수 있는 휴일을 제공하기 위해 주 5일제를 도입하는 등 충분한 휴일과 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씨의 경우 주 1일을 쉴 수 있었지만 아침에 퇴근한 뒤 그 다음날 저녁에 출근하는 휴일이었다. 온전히 하루를 쉬었다고 보기 힘든 휴일이다. 임 원장은 "주 5일제를 해야지만 하루를 온전히 쉴 수 있다"면서 "가능하다면 캠프에 갔을 때 물도 마시고 잠깐 눈도 붙일 수 있게 최소한 30분 정도의 휴식시간 같은 걸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임 원장은 이런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적정한 업무량이 얼마인지에 대한 조사·연구 등을 통해 사회적인 공감대를 만들어야 된다"면서 "소비자단체들도 노동자들을 보호하려는 기본적인 생각이 있기 때문에 새벽배송을 줄어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쿠팡 심야노동의 위험성과 공정규제방안 마련 토론회'에서 고 정슬기 씨의 아버지인 정금석 씨가 발언하고 있다. ⓒ전국택배노동조합

"지난 사회적 합의로 부족...새벽배송 포함한 새로운 사회적 합의 필요"

이어진 토론에서는 쿠팡의 심야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개입해 제도적인 공적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활동 중인 류현철 일환경건강센터 이사장은 근로기준법 밖에 있는 특수고용노동자까지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쿠팡CLS의 택배노동자들은 형식적으로 개인 사업주다. 사장님이다. 그런데 세상에 어떤 사장님이 매일 밤새도록 개처럼 뛰어다니면서 일하겠느냐"라며 "이런 비상식적이고, 살인적인 야간 노동이 사회적 규제 없이 만연한 상황은 바뀌어야 된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노동자들을 포괄할 수 있는, 위장된 자영업자들까지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는지 논의하는 장이 먼저 생겨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쿠팡과로사대책위원회의 전주의 서교인문사회실 연구원은 불안정한 고용 환경이 어쩔 수 없이 심야노동을 선택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물류산업 등 새로운 산업에서 고정 야간노동이 증가하고, 취약한 노동조합 조직률, 청년·여성 일자리의 취약성 등이 중첩되면서, 노동자가 야간노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강제적 선택에 놓인다"면서 "서비스직을 중심으로 한 고정 야간노동을 노사자율에 맡기는 것은 취약한 노동자 집단의 생명권의 과도한 수탈를 정부가 묵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 연구원은 정부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야간노동은 2급 발암물질이기 때문에 생명을 위협하는 긴박한 위험으로 간주해서 정부가 작업중지 명령 권한을 확대 적용하는 것도 검토해야 된다"면서 "적어도 과로사가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 작업중지 명령을 게시하는 것과 같은 절차를 도입해서 노동 감독 실태를 개선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정부, 택배사, 노동자 등이 합의했던 사회적 합의가 새벽배송이 등장하기 전에 도출된 것인만큼 새벽배송을 공적규제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선범 택배노조 정책국장은 "지난 2021년 7월에 나온 사회적 합의는 주간 배송에 관한 이야기로, 오후 9시 이후 배송이 금지돼 있다"면서 "새벽 배송이 본격화되지 않았던 시기에 맺어졌던 합의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 새벽배송이 본격화됐고, 과로사가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가 이 규율하고 있지 못하는 새벽 배송 문제에 대해서 다시 논의를 해야 된다"면서 "쿠팡 외에 다른 택배사들은 쿠팡이 사회적 합의에 불참하면서 발생하는 역차별 문제도 제기하고 있는 상황인만큼 다 같이 모여서 새벽 배송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최근 쿠팡CLS의 택배기사 사망 사고를 계기로 국토부에서는 쿠팡CLS 종사자의 처우 개선하도록 권고조치를 한 바 있다"면서 "쿠팡CLS에서는 종사자 근로 여건 개선을 위한 대책을 발표한 바 있는 것으로 파악을 하고 있고, (국토부는) 그 대책을 이행토록 철저히 관리 감독할 예정"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에도 야간 근로에 대해서는 주간 노동에 비해 조금 더 규제를 지금 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을 통해 이 문제를 일률적으로 규제를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특별히 야간 배송이 필요한 분야에 한정해서 (규제를) 하는 게 맞는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저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전반적으로 야간 노동에 대해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해야 할지 논의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심야노동을 하다 과로로 숨진 노동자의 유족들이 참석해 쿠팡 심야노동에 대한 공적 규제를 호소했다. 고 정슬기 씨의 아버지인 정금석 씨는 "제 아들은 14개월동안 심야에 개처럼 일하다 쓰러졌다"면서 "국회의원과 정부, 시민사회에 호소한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기계처럼 일하다 쓰러진 쿠팡 노동자들이 사람답게 일하는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지난 2020년 쿠팡 물류센터에서 일하다 과로사로 숨진 고(故) 장덕준 씨의 어머니 박미숙 씨도 "지금도 덕준이와 같은 노동자들이 배송 현장에서, 물류센터에서 쓰려지는 죽음의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면서 "이런 일이 멈추지 않고 반복된다면 4년 뒤 23대 국회에서는 3명의 유족이 똑같이 야간노동을 규제해 달라고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제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달라. 쿠팡의 비인간적 처우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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