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르포] “참말로 깨깟한 사람이 돼야제” 영광군수 재선거, 세가지 관전 포인트

민주·조국혁신 후보 자격 논란 거세…진보당 약진으로 3강 구도 형성, 이재명 vs 조국 대리전에 복잡한 속내

 

인구 5만의 작은 지역. 전남 영광군수 재선거가 전국적 관심을 받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의 격돌로 뜨거워진 선거판세는 진보당의 급부상으로 3강 구도가 형성됐다. 세 당 후보 모두 오차 범위 내 30% 지지율,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접전이다. 지난 2일 격전지 영광을 찾았다.
 

영광군 읍내에 위치한 영광군수 세 후보자 선거사무소 벽보. ⓒ민중의소리

“영광 군수는 퇴임하면 징역살이”

영광군에서 가장 번화한 영광읍 버스터미널 사거리에서 골목으로 2분쯤 걸어가면 영진파크맨션 아파트가 나온다. 1997년 준공했다. 14층짜리 건물 한 동에 30평(75㎡), 40평(107㎡) 두 평형에 116세대가 나눠 입주해 있다. 40평대 매매가는 1억 5천만원선, 소도시의 전형적인 서민아파트다.

직장인 한민성(가명·53)씨는 이곳에서 30년 가까이 살고 있다. 그는 “영광 군수는 끝나믄 징역을 살어. 명예로운 퇴진이란걸 본 적이 없당께”라고 했다.

직전 강종만 군수는 2006년과 2022년 두 번 당선됐으나, 두 번 모두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최근엔 지역 기자에게 “잘 봐달라”고 100만원을 준 혐의가 확정돼 직위를 상실했고 2008년엔 건설업자에게 뇌물 1억원을 받은 혐의가 인정돼 2년 만에 물러났다.

전임 김준성 군수는 사실상 자신이 소유한 석산을 토석채취업자에게 개발하도록 허가하고 편의를 봐준 대가로 6억원의 뇌물을 받아 구속기소 됐다. 한민성씨는 “허구헌날 돈 많고 권력 쥔 놈들끼리 해처먹는거 징글징글 해불어”라고 혀를 찼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군수 선택의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도덕성/청렴성’이라고 답한 군민이 가장 많은(35.3%) 이유가 있었다. 청렴한 군수에 대한 군민의 열망은 ‘후보 능력이나 경험을 보겠다’(25.2%)는 답변보다 많았고, 소속 정당(9%)이나 당선 가능성(6.3%)을 보겠다는 답변을 압도했다.

법성포에서 4대째 굴비 덕장을 운영하는 구철수(73)씨는 “요번째야말로 참말로 깨깟한 사람이 돼야제”라고 했다.


 

폭력, 사기·국고 횡령 전과자 공천한 민주당

민주당은 경선을 통해 장세일 후보를 확정했다. 그가 청렴한 군수를 열망하는 군민의 뜻에 부합하는지 의문이다. 선관위에 신고한 장세일 후보 전과 기록에 ‘사기·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9백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된 점이 눈에 띈다.

재선 도의원 출신인 장세일 후보가 공직에 진출하기 전, 중앙정부·영광군으로부터 각각 도비와 군비를 지원받아 자신이 운영하던 주유소 옆 공간에 특산물인 굴비 저장 창고를 건설했다가 의무 운영 기간을 채우지 않고 매각한 사건이다.

약속된 운영 기간을 지키지 않은 사기 혐의, 보조금으로 건설한 시설을 매각해 개인 자금으로 회수했으니 보조금 횡령 혐의다. 특산물 굴비 판로 확대를 위한 사업이었지만, 지원된 보조금이 결국 장 후보 주머니로 들어간 셈이다.

장 후보는 “보조금 지원 사업 처리 절차를 잘 몰라서 발생했던 일이다. 고의적인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올해 60세인 장 후보는 20대 청년 시절, 폭행 사건을 일으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형을 받은 폭력 전과도 있다. 장 후보는 최근 토론회에서 “물리적인 것은 없었고, 언성만 좀 높였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군민들 시선은 곱지 않다. 읍내에서 통신업에 종사하는 정모 대표(48)는 “얼마나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가 나오냐. 폭행이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 패고 정부 상대로 사기 친 사람이 민주당 군수 후보라는 게 부끄럽다”고 했다.

민주당은 공천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영광에 내려와 한 달째 선거를 지휘하고 있는 한준호 최고위원은 캠프 사무실에서 민중의소리와 만나 “중앙당 최고위 차원에서 범죄 이력을 구체적으로 검토해 내린 결정이다. 횡령 금액이 수천만원 수준으로 매우 적고, 폭행 행위도 경미했다. 공정한 경선을 거쳐 선발된 후보”라고 강조했다.

장세일 후보는 재선 도의원 출신으로 풍부한 도정 경험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운다. 영광에서 나고 자라 30여년간 지역 정치에 몸담아 군정을 이끌 적임자라는 것이다. 

 

조국혁신당 후보는 ‘철새’ 꼬리표 

영광읍 옥당로 대로변 5층짜리 건물 2층에 조국혁신당 장현 후보 선거사무소가 있다. 건물 외벽엔 대문짝만한 글씨로 ‘조국혁신당, 군수다운 군수 장현’이라고 적혀 있지만, 얼마 전까지 이곳 선거사무실엔 이재명 대표와 장현 민주당 군수 예비후보가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걸려 있던 곳이다.


 
한 달 사이 뒤바뀐 장현 조국혁신당 후보 선거사무실 현수막. 위쪽은 더불어민주당 예비후보시절, 아래쪽은 조국혁신당 후보 확정 이후 모습. ⓒ민중의소리
장현 후보는 불과 한 달 전까지, 민주당 예비후보였다. 장세일 후보와 본선 진출을 두고 경선을 벌였다. 당시 장현 예비후보는 장세일 예비후보 범죄 경력을 문제 삼으며 중앙당에 공천 배제를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장현 후보는 경선 마지막 날 탈당했고, 며칠 뒤 조국혁신당에 입당, 경선을 거쳐 후보로 선정됐다. 지역 정가에선 ‘아버지까지 바꾼 철새 정치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조국혁신당은 반박한다. 윤재관 선대본부장은 “군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후보를 걸러내는 것이 지역 정치, 정당의 역할”이라며 “폭력·사기 전과자, 파렴치범을 거르기 위해 스스로 만든 규정도 지키지 않은 민주당 부정 공천에 항의한 탈당”이라고 강조했다.

이번뿐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장현 후보는 2000년대 초부터 영광 국회의원, 군수 선거에 여러 차례 출마했다 낙방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입당과 탈당, 무소속 출마를 반복한 전력이 있다.

허위 경력 논란도 따라붙는다. 과거 여러 선거에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이라고 주장했지만, 실제는 고려대학교 학도호국단 총학생장 출신이었다. 총학생회장은 당시 민주화를 이끌던 학생운동의 중심이었지만, 학도호국단 총학생장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학생운동 무력화를 위해 조직한 관변 학생단체 수장 성격이 짙었다. 과거 여러 선거에서 총학생회장이라는 타이틀을 썼으나, 선관위 고발 등을 거치며 최근에는 총학생장으로 표기하고 있다. 

한준호 민주당 최고위원은 “장현 후보는 본인에게 유리한 것만 취사선택하는 ‘습관성 탈당 철새 정치인’”이라고 꼬집었다.

적어도 영광에선, 조국혁신당이 내세우는 명분이 퇴색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영광군 D 면의 A 이장은 “경쟁을 통한 야권 강화, 정권교체, 지역 정치 혁신을 내세운 것이 조국혁신당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장현 후보가 거기에 적합한 후보라고 보이진 않는다”고 말했다.

장현 후보 측은 사회복지 전문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미시시피주립대, 플로리다주립대에서 각각 인문학·정치학 석사와 박사를 따고, 호남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교수, 호남대 평생교육원장을 역임해 영광군의 고질적인 인구 감소·고령화 문제 해결에 적임자라는 것이다. 


 

진보당의 약진, “땀에 투표해 주세요”

군청에서 직선거리로 18km 떨어진 곳에 한빛원자력발전소가 있다. 영광군 최북단에 위치한 홍농읍, 그중에서도 계마리다. 원자력발전소 사택 이외에 나머지 지역엔 거주 인구가 거의 없는 한적한 곳이다.

발전소 인근 주민 목소리를 듣기 위해 2일 아침, 군청에서 차로 30분을 달렸다. 공공근로 조끼를 입고 계마미 해수욕장 쓰레기를 줍는 주민들이 있었고, 그 사이에 진보당 선거운동원이 보였다. 읍내에서 가장 멀고 후미진 곳에도 진보당은 있었다.


 
진보당 당원이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에서 주민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진보당 당원이라는 그는 “벌써 석 달째”라고 말했다. “마음을 얻기 위해 땀을 흘렸다”고 했다. 매일 100여명, 주말이면 400여명 당원이 전국에서 모였다. 뜨거웠던 지난여름, 이들은 마을을 청소하고, 농약을 치고, 고추를 함께 땄다.

땀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이석하 후보 지지율이 30.1%로 나왔다. 민주당 장세일 후보가 32.5%, 조국혁신당 장현 후보가 30.9%다. 세 후보 지지율 모두 오차 범위 안에 있다. 누가 당선될지 아무도 모른다.

영광은 덮어놓고 민주당이 아니었다. 여덟 차례 군수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세 번 당선됐다. 전남도의회 영광 지역구 의원 두 명 중 한 명이 진보당 소속이다. 변화를 원하는 유권자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영남의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 국민의힘 계열이라면, 호남의 그것은 민주당 계열이라는 것이 그간 영광 군수 흑역사가 말해주는 교훈이다.

영광읍에 위치한 진보당 이석하 후보 사무실 외벽에는 ‘영광군수, 바르게 세우고 싶죠?’라는 글귀가 가로로 누워있다. 군내 곳곳에는 ‘영광 정치, 바르게 세우고 싶죠?’라고 적힌 현수막이 삐뚜룸 하게 걸려있다. 진보당이 진정한 지역 정치 개혁을 이루겠다는 의미를 담았다.

진보당 이석하 후보는 영광에서 나고 자랐다. 전남대학교를 다니다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지으며 농민운동, 노동·환경·시민 운동에 앞장섰다. 이석하 후보는 “지난 30년 기득권 정치를 완전히 종식하겠다. 부패·비리와 탈당 철새를 단호히 심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석하 후보가 지금은 상승세를 타고 있으나, 영광은 인구 5만명의 작은 지역이다. 투표율이 낮은 재보궐 선거 특성상 조직력에서 승부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진보당 신창현 사무총장은 “정당 지지율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광군 진보당 지지율은 24.9%가 나왔다. 같은 조사 기관에서 발표된 진보당 전국 지지율 1.9%의 20배 수준이다. 신 사무총장은 “정당 지지율은 당 조직력을 대표하는 수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여러 재보선을 치렀지만, 이만큼 높게 나온 적 없었다”며 “후보와 당원들의 헌신이 만든 든든한 지원군이다. 선거 막판 민주당 조직에 쉽게 흔들리거나 밀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재명 vs 조국 vs 진보당, 복잡한 속내

이번 재선거는 5만 영광 군민의 삶을 돌보는 군정 책임자를 뽑는 선거다. 단순히 군정을 잘 돌볼 적임자를 고르면 되지만, 현실에선 그보다 많은 의미가 담긴다. 이재명 대표와 조국 대표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정권 심판 시기 ‘야권 대표주자’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호남 대안 정치세력으로 자리 잡던 진보 정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각 당 지도부 속내가 복잡하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3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 진보당 김재연 대표 모두 지지를 호소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3일 장세일 영광군수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제공 : 뉴시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3일 장현 영광군수 후보와 함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제공 : 뉴스1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가 3일 이석하 영광군수 후보와 함께 유세를 하고 있다. ⓒ제공 : 뉴시스
민주당은 이재명 2기 지도부 출범 후 처음으로 치러지는 선거라는 점에서 부담이 만만치 않다. 장세일 후보의 손을 치켜세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총선이 1차 정권 심판이었다면, 이번 보궐선거는 2차 정권 심판이어야 한다”며 “최전선에서 무도한 정권과 큰 전쟁 벌이고 있는데 조금 마음에 안 든다고 때리면 전선이 무너진다. 앞을 향해 낼 창을 옆으로 찌르면 전쟁이 되겠나”라고 했다.

지역구 의원이 없는 정당인 조국혁신당은 지역 정치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각오다. 조국 대표는 장현 후보 지지 유세에 나서 “지금은 대선이 아니고 호남 지역에서 어느 당, 어느 후보가 그 지역의 발전을 위해 제대로 된 정책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경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 경쟁이 바로 여기 영광과 호남의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야권 분열에 대한 비판을 의식한 듯 “호남에서 공정하게 경쟁하고, 그 뒤에 정권교체를 위해서 민주당과 철저하게 협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보당 김재연 대표는 “개혁과 정치교체는 비슷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자리바꿈을 한다고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을 향해선 “함량 미달 후보를 내세우고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될 거라는 생각은 호남 민심은 말할 것도 없고 정권교체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고, 조국혁신당을 향해선 “호남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영광 재선거에 올인하는 조국 대표의 모습이 총선 민의에 맞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진보당이 영광군수 재선거 돌풍으로 호남 정치의 개혁, 정치교체를 본격 시작하겠다”고 덧붙였다.

공식 선거운동은 앞으로 13일간 치러진다. 영광 군수 후보는 무소속 오기원 후보까지 총 4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오는 11·12일에는 사전투표가, 본 투표는 오는 16일 오전 6시부터 오후 8시까지 진행된다.  

“ 영광 - 홍민철 기자 ” 응원하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