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실에서 열린 대국민 담화 및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4.11.07. ⓒ뉴스1
'고개 숙인 윤석열 대통령'으로 시작한 7일 대국민담화는 결국 '사과 없는' 기자회견으로 막을 내렸다. 윤 대통령은 "불편", "불찰" 등 단어를 써가며 "죄송하다"고 했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지 끝까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을 가졌다. 단상에 마련된 의자에 앉아 15분간 미리 준비한 담화문을 읽고, 125분간 출입 기자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경직된 표정으로 등장한 윤 대통령은 고요한 분위기에서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대통령실 출입 기자들은 통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기자회견 직전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로 입장하는 대통령을 맞이했으나, 이날은 기자회견 시작과 말미 모두 박수를 치지 않았다.
기자회견 첫머리, 윤 대통령은 자세를 낮춘 듯했다.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제 부덕의 소치"라며 본격적인 담화문 낭독에 앞서 단상 옆에 서 "국민 여러분께 먼저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이 같은 태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다양한 질문이 쏟아지자 윤 대통령의 목소리는 점차 커졌다. 한 기자가 "김 여사 대외 활동 자제"에 관해 질의를 시작하자 윤 대통령은 "자제가 아니"라며 질문을 끊고, "사실상 중단"이라고 표현으로 바로잡았다. "질문을 좀 명확하게" 해야 한다는 요구도 했다. 중간중간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를 둘러싼 각종 비위 의혹을 사실로 인정하지 않았다. "저희 집사람도 침소봉대는 기본이고, 없는 것까지 만들어서 그야말로 저를 타깃으로 해서 제 처를 많이 '악마화'시킨 것은 있다"며 마지못해 사과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윤 대통령은 자신의 사과에 "국민에게 감사와 존경의 입장"이라는 모호한 의미 부여를 했다.
'김 여사 대외 활동 중단' 요구에 윤 대통령은 "대통령 부인이 대통령을 도와서 선거도 잘 치르고, 국정도 남들한테 욕 안 얻어먹고, 원만하게 잘하기를 바라는 일들을 국정농단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국어사전을 다시 정의해야겠다"고 되받아쳤다.
대통령실 '김건희 라인' 등 지적과 인적 쇄신 요구는 "적절한 시기에"라며 즉시 이행을 거절했다. 윤 대통령은 "'김건희 라인'이라는 말은 굉장히 부정적인 소리로 들린다"고 날을 세웠고, 김 여사 처신에 관한 물음에 "앞으로 부부 싸움을 좀 많이 해야 할 것 같다"며 "어떤 면에서 보면 순진한 면도 있다"고 두둔했다. '김건희 특검' 또한 "기본적으로 특검을 하니 마니를 국회가 결정해서, 또 국회가 특검을 임명하고 방대한 수사팀을 꾸리는 나라는 없다"며 세 번째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예고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국민의힘에 입당한 날 휴대전화 번호가 노출됐는데, 당일 쏟아진 3천여 건의 문자 메시지에 김 여사가 새벽까지 답장을 보낸 일화를 소개하거나, 이번 기자회견 예고 뒤 김 여사가 "사과를 좀 많이 하라"고 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그러면서 "이것도 국정 관여고 뭐 농단은 아니겠죠"라고 비꼬았다.
명태균에 날 세우지 못한 윤 대통령..."부적절한 일 없어"
명태균 씨와 관련한 논란 역시 소명하지 못했다. 윤 대통령에게 명 씨는 "지역 사람" 정도였다. 최근 윤 대통령 부부를 겨눈 폭로를 일삼아온 명 씨에 대해 윤 대통령은 비난 한마디 없었다. 그저 "명 씨와 관련해서 부적절한 일을 한 것도 없고, 감출 것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윤 대통령은 명 씨와의 통화에서 "길게 이야기할 수 없어서 기본적인 말만 한 것 같다"며 공천 개입 논란을 부인했다.
윤 대통령은 "명 씨한테 여론조사 해달라고 얘기한 적 없다"고 강변했고, "공천 개입이라고 하는 것의 정의도 따져봐야 한다"며 자신은 "왈가왈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김영선 전 국회의원과 관련한 보궐선거 공천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며 윤 대통령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진행되는 것을 꾸준히 보고 받아야 하고, 저 나름대로 고등학교 3학년 입시생 이상으로 바빴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질문 매체 편중' 문제 반복한 대통령실
윤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대통령실 출입 매체 중, 26개 언론사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질문자는 사회를 본 정혜전 대변인이 지목했다. 정치 분야에서 12개, 외교·안보 분야에서 5개, 경제 분야에서 2개의 질문을 받고, 분야 제한 없는 7개의 추가 질문을 받았다. 참석한 대다수의 기자들이 번번이 적극적으로 손을 들어 질의 의사를 표출했지만, 진보성향으로 분류되는 매체에 질문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윤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고질적으로 지적된 '질문 매체 편중' 문제는 이번에도 반복됐다.
대통령실이 공지한 대로 '끝장 기자회견'도 아니었다. 윤 대통령은 담화 및 기자회견이 시작한 지 2시간이 넘어가자, 정 대변인에게 "이제 (질문) 하나 정도만 하자. 목이 아프다"며 정리를 요청했다.
질문 세례에도 결국 김 여사 문제에 대한 명확한 사과는 나오지 않았다. 기자회견 말미, '그래서 윤 대통령은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 거냐'는 추가 질문이 나왔지만 윤 대통령은 "사실은 잘못 알려진 것도 굉장히 많다", "구체적으로 말하기 좀 어렵다", "더불어민주당이 (통화 녹음을) 공개했는데 짜깁기 됐느니, 소리를 집어넣었느니 대통령이 그걸 가지고 맞네 아니네 다퉈야 하겠나"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어찌 됐든 사과를 드리는 건 처신이 올바르지 못한 것"이라며 "예를 들어서 무슨 창원 공단 어쩌고 하는 것을, 사실도 아닌 걸 가지고 '거기에 개입해서 명 씨에게 알려줘서 죄송합니다' 그런 사과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사실과 다른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인정할 수도 없다. 그것은 모략이다. 그런 것은 사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해 장내 분위기를 더욱 냉랭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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