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영식(ys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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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2월 2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17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육·해·공 3군 의장대와 군악대의 사열을 받으며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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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을 섬겨 나라를 편안하게 하겠습니다. (중략)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실의 제약을 여유롭게 바라보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향해 함께 전진하고자 합니다."
지난 2008년 2월 25일 이명박 대통령은 이런 내용이 담긴 취임사를 읽으며 '17대 대한민국 대통령'에 공식 취임했다. 이 대통령의 취임은 한국 보수진영에서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이름 붙인 '민주파 정권 10년'이 끝나고 새로운 '보수파 정권'이 시작됐음을 뜻한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자신이 공언한 것처럼 국민을 섬기지도 못했고, '과거의 굴레'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랬으니 '미래의 가능성' 속으로도 들어가지 못했다.
정권 보위기구 만들고 검찰 공안부서 확대
이명박 대통령이 퇴행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촛불'이었다. 취임한 지 3개월 만인 지난 2008년 5월부터 타오른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 촛불집회'는 4개월을 지속하며 정권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그것은 이 대통령이 청와대 뒷동산에 올라가 눈물을 흘렸다고 고백했을 정도로 강력했다.
"캄캄한 산중턱에 홀로 앉아 시가지를 가득 메운 촛불의 행렬을 보면서, 국민들을 편안하게 모시지 못한 제 자신을 자책했다."(2008년 6월 19일 기자회견)
이 대통령에게 촛불은 '트라우마'가 되었다. 그런데 촛불에 놀라 취한 조치들은 그의 진심이 '안민(安民)'보다는 '정권안보'에 기울어져 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 내내 정권안보를 위한 '공안적 기구들'을 지속적으로 부활시키거나 신설·확대했기 때문이다. 이는 권위주의 정부에서 흔히 취해온 방식이었다. 이처럼 촛불은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방식을 '유사 공안통치'로 바꾸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08년 7월 국무총리실 산하에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신설했다. 노무현 정부 때 '관가의 저승사자'로 불렸던 조사심의관실을 스스로 폐지한 지 5개월 만에 부활시킨 것이다. 7개팀(점검팀) 40여 명이 활동했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김종익씨 등 민간인들과 여당 내 소장파 의원들까지 사찰했다. '공직기강 확립'을 내세웠지만 청와대와 긴밀하게 협력하며 '정권 보위기구'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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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국민무시 이명박 정권 심판 100만 촛불대행진이 2008년 6월 10일 저녁 서울 세종로네거리에서 열리는 가운데, 경찰이 청와대 진입을 막기 위해 세종로네거리에 설치한 컨테이너 바리케이트에 시민들이 '서울의 랜드마크 <명박산성>'이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
ⓒ 권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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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파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검찰 공안부서는 크게 축소돼왔다. 이는 민주주의가 성장한 성과였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촛불을 계기로 검찰의 공안부서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대검은 지난 2008년 9월 '공안3과'의 부활을 추진했다. 대검 공안과는 지난 1994년까지 1·2·3·4과 체제로 운영되다가 1994년 4과가 없어진 데 이어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5년 3과까지 폐지됐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폐지된 지 4년 만인 지난 2009년 3월 결국 대검 공안3과를 부활시켰고, 지난 2012년 9월에는 서울중앙지검에 '공공형사부'라는 이름으로 공안3부를 신설했다. 앞서 지난 2008년 6월 전국 공안·형사부장 회의에 이어 같은 해 11월에는 전국 지검 공안담당 간부와 검사 등 7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공안검사 워크숍'을 열었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지난 2011년 8월 취임하면서 "종북 좌익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공안역량 강화"를 주장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검찰 안에서 '공안부서'는 잘나가는 부서가 됐고, '공안검사들'의 주가도 크게 올라갔다.
경찰청 보안국에서도 지난 2009년 6월 보안경과제를 사실상 부활시켰다. '보안전문경찰에 주특기를 부여하는 제도'인 보안경과제는 지난 1999년 시행한 이후 10년간 시행되지 않았던 제도였다. 특히 경찰은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 지난해 12월 16일 오후 11시 '댓글 흔적은 없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면죄부성 한밤중 수사결과 발표'는 대선결과를 가르는 분수령이 됐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국정원과 군에서 인터넷 심리전 크게 강화
촛불은 '인터넷' 때문에 이명박 정부를 위기로 몰아갈 정도로 커질 수 있었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인터넷(사이버) 대응책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과 군에서 인터넷 심리전을 크게 강화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인터넷의 힘에 힘입어 당선됐다면 이명박 대통령은 '인터넷 여론조작'에 가까운 인터넷전을 벌이며 정권을 유지했다. 이는 보수파 정권의 연장으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2009년 2월 국정원장에 취임한 원세훈 원장은 같은 3월 국 소속 부서였던 심리전단을 국정원 3차장 산하의 독립부서로 편제하고 사이버팀을 2개팀으로 확대했다. 이후 이명박 정부가 후반기로 접어든 지난 2010년 10월과 총선·대선을 앞둔 지난 2012년 2월 심리전단(심리정보국)의 사이버팀을 각각 3개팀과 4개팀으로 확대개편했다. 4개의 사이버팀에서는 70여 명의 요원들이 활동했고, 2009년부터 2012년까지 4년간 총 600억여 원의 예산을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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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정원 직원, 가림막 뒤 증인선서 8월 19일 오전 국정원 댓글 의혹 사건 등을 다루는 국정원 국조특위 청문회에 출석한 국정원 박원동 전 국익정보국장과 김하영씨가 다른 증인들과는 달리 가림막 뒤에서 증인선서를 하고 있다.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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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도 지난 2010년 1월 국군사이버사령부를 창설했다. 특히 '530단'으로 불리는 사이버심리단에서는 200명의 요원들이 활동했다. '530단장-국군사이버사령관-국방부장관-청와대 국가안보실'의 보고체제를 갖추고 있었다. 지난 2011년 30억 원이었던 예산은 총선과 대선이 치러진 2012년에는 42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또한 지난 2011년 8월부터 10월까지 총 세 차례에 걸쳐 국정원의 '심리전 교육과정'에 요원들을 파견했다. 대선을 앞둔 지난 2012년 10월에는 세 차례 국정원을 방문했다. 국정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가 긴밀하게 협조해온 것이다.
앞서 군은 지난 2009년 9월 '국방 사이버기강 통합관리 훈령'을 시행하고, 대통령령인 군인복무규율을 개정해 '상관'에 대통령이 포함된다는 것을 명시했다. 이렇게 현역 군인들이 인터넷에서 현역 대통령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조치했다.
국정원 심리전단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목적은 '대북심리전' 혹은 '대북사이버전'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포털사이트와 블로그, 트위터,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선거 등 정치와 관련한 글을 인터넷에 올리고, 댓글을 달고, 리트윗(트위터에서 글을 재전송하는 행위)했다. 이명박 정부과 여당을 옹호하고, 야당을 비판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종북 좌익세력 척결'을 내세우며 '대남심리전'을 벌인 셈이다. 검찰에 따르면, 국정원 심리전단은 총 5179건, 국군사이버사령부는 총 4155건의 글을 인터넷에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러한 활동은 애초의 목적과도 거리가 멀고, 특히 정치적 중립 의무를 명백하게 위반한 것이다.
지난 2011년 10월에 치러진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박원순 후보가 당선되고, 이런 결과에 트위터 등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오자 이명박 정부도 SNS 대응에 나섰다. 국정원 심리전단은 지난 2012년 2월 트위터 등 SNS를 전담하는 '5팀'을 신설했고, 군은 2012년 초 '군 장병 SNS 활용 가이드라인'을 배포하고, 지난 2012년 8월 SNS 행동강령 제정 등이 포함된 '사이버 군기강 확립대책'을 발표했다.
국정원 심리전단 5팀은 지난 대선 당시 총 402개의 계정을 관리했다. 이 가운데 292개가 국정원 직원 22명의 명의로 개설됐다. 5팀은 402개 계정을 통해 특정후보를 지지·비방하는 글 5만5689건을 작성하거나 퍼날랐다. 국군사이버사령부의 한 요원은 7만여 명의 트위터 팔로어(구독자)를 확보하고 있었다. 특히 군검찰은 지난 2012년 3월과 4월, 9월 트위터 등에 이명박 대통령을 비방한 글을 올린 혐의('상관모욕죄')로 현역 대위와 특수전사령부 중사를 기소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국가보훈처의 지원단체인 재향군인회도 대선을 앞둔 지난 2012년 6월 청년국을 신설해 SNS팀을 운영했다는 점이다. 이들은 대선이 치러진 지난해 12월 문재인·이정희 등 야당 대선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트위터 등에 올렸다.
호국보훈자료 동영상 상영하며 '이념공세'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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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책 논의하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이 10월 28일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국가보훈처가 안보교육의 명목으로 제작한 편향적인 DVD의 협찬처를 밝히라는 야당 의원들의 추궁을 받은 뒤 관계자들과 복도에 나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다.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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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이렇게 주요 국가기관의 조직을 신설하거나 확대개편하는 방식으로 촛불에 대응하면서 안보교육 등을 통해 '이념공세'도 강화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10년 12월 행정안전부(현 안전행정부), 국가보훈처 등 정부 부처의 안보교육을 강화하라고 직접 지시했다. 이후 총리실 일반행정정책관실이 이 안보교육을 총괄했고, 행정안전부, 국방부,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 국가보훈처, 소방방재청, 경찰청 등이 안보교육을 실시했다. 여기에는 박정희 정권을 미화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된 안보교육은 정권 연장을 위해 치밀하게 계획되고 실행되었다"라고 말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2011년 말 '호국보훈교육자료 동영상'을 제작해 각 시도 교육청 등 전국 공공기관에 1000개 배포했다. 여기에는 수억 원의 예산이 들어갔다. 민주당과 진보세력 등을 '종북 좌파'로 규정한 이 동영상은 지난 2012년 예비군훈련의 교육자료로도 활용됐고, 이를 시청한 예비군만 17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통일부에서 운영을 지원하는 전국 통일관 가운데 13곳에서도 이것을 일반인들에게 상영했다. 이것도 '선거개입'이라는 것이 야당의 판단이다.
김기식 민주당 의원은 "지난 대선은 국정원이 컨트롤 타워가 돼 국군사이버사령부의 SNS 활동, 보훈처의 안보교육을 빙자한 불법 대선개입에 이어 정치활동이 금지된 재향군인회와 같은 정부지원단체까지 전반적으로 연루된 조직적인 관권선거였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정부는 취임 1년차부터 국무총리실, 국정원, 군, 검찰, 국가보훈처 등 정부기관을 이용해 인터넷 여론조작과 이념공세 등을 벌이며 정권을 유지해왔다. 이것이 지난 대선결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보수파 정권 재창출'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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