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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진당 해산 청구, 박근혜 정권의 '물타기?'

[전문가 분석] "정당법 기본 가치 무시…지방선거 변수 안될 것"

곽재훈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3-11-05 오후 4:05:14

 

 

박근혜 정부가 5일 국무회의에서 통합진보당에 대한 정당해산심판 청구를 의결했다. 정치권은 들끓고 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와 관련, <프레시안>은 정치 전문가 3인을 긴급 전화 인터뷰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밀어붙인 정당해산심판 청구의 부조리함을 지적하면서도, 박근혜 정부의 의도를 잘 읽고 차분하고 전략적인 대응을 할 것을 당사자인 통합진보당을 포함한 야권과 시민사회에 당부했다.

이들이 짚어낸 정권의 의도는 "방어벽 의제"(김윤철 경희대 교수), "갈등의 치환전략"(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등 표현은 달랐지만 결국 이명박 정부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사태와 공약 후퇴 논란을 덮을 '물타기'라는 쪽으로 수렴했다.

이른바 'NLL 대화록' 논란과 '사초 폐기' 논란에서 최근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문재인 의원 검찰 소환까지가 모두 일련의 흐름 위에 있다는 분석이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편집자>


■ 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정치학 박사)

이 정부의 정국 운영 방법은 '갈등의 치환' 전략 같다. 지난 대선에서 여야 모두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말했는데, 현재로서는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이럴 때 야당이나 여론의 반대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것을 정치학에서는 '갈등의 치환',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라고 한다. 이 전략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두려움을 동원하는 것이다. 한국이 과거 전쟁을 했으니 친북, 종북 같은 요소를 정국의 초점으로 잡아 그런 갈등으로 몰아 가는 것이다.

국내 정치는 이렇게 이념 논란, 종북 논란, 선거 불복 논란으로 끌고 가고, 박근혜 대통령 본인은 국내정치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초연하게 대외관계나 외교 중심으로 하려는 것이 이 정부의 기조인 것 같다. 그러니 권위주의 정권 때에도 없던 전교조 법외노조화 같은 일이 생긴다. 문재인 의원 등 NLL 문제도, 이번의 통합진보당 사태도 일부러 다른 갈등을 불러들이는 사례다.

우리가 통합진보당에 대해 비판을 하지만 그 당도 자율적 결사체이다. 우리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 당 활동을 하는 건 헌법적 권리다. 그 당이 잘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지지 안 해 주고, 투표 안 해 주고, 혹시 불법행위를 한다면 그것만 처벌하면 된다. 정당해산심판 청구는 헌법이나 정당법의 기본 가치를 무시하는 행위다. 그 정도 강령을 문제 삼는 건 언어도단이다.

(하지만) 정부의 정당해산심판 청구가 윤리적으로 옳다, 그르다를 떠나 이 자체가 그들이 만들어 낸 정치전략이다. 그들이 말하기 싫어하는 것에 대해 말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끌려다니게 된다. 박 대통령 집권 이후 지난 8개월은 이른바 민주·진보 쪽이 집권파들의 '갈등 치환 전략'에 끌려다닌 시기다. 지난 대선에서 얘기했던 기조들은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무슨 'NLL 포기 발언이 있냐 없냐' 이런 사소한 문제로 치환돼 버리는 것에 대해 야당이 무전략으로 대응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여당이 전략적으로 내민 수단에 말린 것이다.

통합진보당도 이 문제만 가지고 죽어라 싸울 일은 아니다. 그냥 법적으로 풀면 된다. 여기에 목숨 다 걸 게 아니라, (집권세력이) 정치를 제대로 하라고 공격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우리가 과연 좌경이냐 아니냐' 이런 것으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끌려 가면 안 된다. 이른바 야권이 지난 몇 년 간 흥분해서 여당 쪽의 전략에 말리는 바람에 다 당했다. 그들은 상대를 '자극'하려 하는 것인데, 슬기롭게 대응하지 못하고 화만 냈다. 전략적 의도를 잘 이해하고 싸워야 한다.

■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우선 박 대통령과 현 정권 핵심들은 '종북'에 대한 신념이 확실히 있다. 그런 면이 있고, 다른 하나는 국정원 대선 개입 문제에 대해 '수사 결과 보자. 재발 방지하겠다'고 약속하고 마무리하려는 상태, 경제민주화 등 정책에 대한 공방이 예상되는 상태에서 방어벽을 칠 수 있는 의제들이 필요한 면이 있다.

NLL 문제, 사초 문제 등 이같은 몇몇 의제들이 다 일련의 흐름 안에 있다.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입장을 밝히기도 했지만, 거기서 읽히는 것은 '밀리면 안 된다'는 것이고 정국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야당이 약체라도 그들이 야당을 키워줄 이유가 없는 것이고, 그러니 주도권을 행사하면서 이념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런 '방어 의제'들을 계속 운용하고 있는 것은, 그게 의도적이든 아니든 이 정부의 특징이다.

이번 사태 같은 경우, 야당 입장에서는 곤란한 측면이 있다. 민주주의의 원리에 따라 정당 해산 추진에 대해 반발을 하긴 해야 하는데 이념 문제가 걸리기 때문이다. 조금만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다 보면 다시 이념갈등의 요소가 강화되면서 '정쟁'이 이어질 것 같으니 어려운 상황이다.

5일 오전 민주당 논평을 보면 그런 딜레마를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빨리 방침을 정해 당 내를 정리해야 한다. 민주당 내부적으로도 어려울 것이고, 지방선거를 앞둔 야권연대도 이런 상황에서는 어려워진다.

시민사회의 관점에서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에 따라 엄정한 절차와 과정 밟고 법원의 공정한 판단 속에 이뤄지도록 하는 제안들을 해야 할 것이다. '사법부의 판결이 얼마나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는지 주시하겠다' 정도의 입장을 취해야 할 것 같다.

대부분 국민들의 경우에, 이렇게 막 정부가 정당을 해산하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동의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단순한 반공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인 종북주의 때문에 이 사태에 있어서는 방관적으로 지켜보는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 면에서 야당이 '위기다'라고 하면서 시민사회를 동원하고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가져가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

■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소셜미디어 컨설턴트)

최근 1년 간의 정국은 국가 정보기관이 정치 정국을 주도해 왔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굉장히 불행한 일이다. 이 가운데 보수 강경파들은 총공세를 펴고 있다. 이는 새누리당에도 좋은 일이 아니다. 합리적 소장파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과거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목소리도 들리지 않고 강경 일변도로 밀어붙이는 느낌이다.

그들이 밀어붙이기를 하는 목적을 알 수는 없겠지만, 전체적인 보수진영의 세력 공고화와 관련이 있어 보인다. 멀리 보면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정치 구도에서, 이념이 과잉된 제어되지 않는 강경보수들이 최소한으로 합의된 민주주의 원칙마저 무시하는 분위기다.

야권의 대응도 미숙하다. 5일 오전 민주당 논평을 들었는데, 너무 복잡하다. 무슨 난수표를 듣는 것 같다. 저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문제라고 본다. 통합진보당의 낡은 이념을 반대하는 것과,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정당의 다양성을 부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어떤 이념적 목표를 위해 민주적 기본원칙을 훼손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 민주당은 너무 계산을 복잡하게 하고 있는 것 같다. 단순하게 볼 필요가 있다. 일단 헌법재판소로 넘어갔지만, 향후라도 같은 정당의 입장에서 좀 단순한 메시지가 나와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석기 의원 사건도 아직 법원 판단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고, 그나마 이 의원에게 적용이 검토됐던 것으로 알려진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 등도 막상 기소장에서는 빠진 상태다. 그런 부분들에 대한 생각도 없이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한 것은 민주주의 원칙의 후퇴라고 본다.

이번 사태가 내년 지방선거의 변수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지방선거는 기본적으로 이념이 먹히지 않는 선거이고, 주민 삶의 향상을 기본에 두고 전선이 형성될 것으로 본다. 만약 이념적 프레임으로 선거에 '올인' 하려 하는 정당이 있다면 오히려 불이익을 당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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