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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예산처 장관에 이혜훈 지명?…재정 개혁 후퇴 우려

박철 시민기자

pakchol@empas.com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예수살기 대표.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전 상임의장. 탈핵부산시민연대 전 상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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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 입력 2025.12.28 22:25

  • 수정 2025.12.29 06:20

  • 댓글 3

재정 건전성, 긴축, 부채 관리 강조해 온 인물

그간 보인 정치행보 개혁 에너지 찾기 어려워

'통합' '실용' 인사 포장됐지만 지향점 엇갈려

재정 민주주의 강화란 부처 신설 목표와 상충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이 28일 장차관급 인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왼쪽 사진은 이혜훈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 2025.12.28. MBC뉴스 갈무리

이재명 대통령은 28일 내달 2일 출범을 앞둔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 후보자로 보수당 출신 이혜훈 전 국회의원을 지명했다. 이 결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통합 인사'와 '실용 정치'라는 긍정적 언어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국가 재정이라는 핵심 중추를 책임질 인사를 둘러싼 이번 선택은, 냉정하게 들여다볼수록 여러 층위의 문제와 우려를 안고 있다. 통합이라는 명분 아래 정부의 재정 철학과 정책 방향이 흐려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새로 신설되는 기획예산처가 출범과 동시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은 아닌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기획예산처 신설 취지와 어긋나

기획예산처는 이재명 정부가 기획재정부의 비대화된 권한을 분산하고 재정 운용을 보다 민주적이고 정책 중심적으로 재편하겠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탄생한 조직이다. 이는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라 한국 재정 행정의 구조를 바꾸겠다는 정치적 선언에 가깝다. 그렇다면 초대 장관은 이 개혁의 철학과 방향을 분명히 공유하는 인물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혜훈 후보자의 정치적·정책적 이력은 이러한 취지와 상당한 거리감을 보여준다. 그는 국회 활동 내내 재정 건전성, 긴축 기조, 국가 부채 관리에 방점을 찍어온 인물이다. 이는 그 자체로 비난의 대상은 아니지만 이재명 정부가 직면한 현실―불평등 완화, 사회안전망 확충, 지역 격차 해소, 기후 위기 대응―은 적극적이고 전략적인 재정 운용 없이는 달성하기 어렵다.

문제는 이혜훈 후보자가 이러한 시대적 과제에 대해 얼마나 공감하고, 그것을 재정 설계의 중심에 둘 의지가 있느냐다. 재정은 중립적인 숫자가 아니라 가치의 선택이다. 초대 장관이 구조적 개혁보다는 '지출 억제'와 '관리'에 치우친 접근을 취한다면 기획예산처는 개혁 기관이 아니라 또 하나의 재정 브레이크 장치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

'통합 인사'의 착시 효과

정부와 여당은 이번 인사를 두고 진영을 넘는 통합의 상징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통합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없다. 통합은 분명한 방향과 목표가 있을 때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 않으면 통합은 책임 회피의 다른 이름이 되거나, 정치적 비판을 무마하기 위한 장식적 제스처로 전락한다.

보수당 출신 인사를 핵심 재정 요직에 앉히는 것이 과연 사회적 통합을 강화하는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오히려 이는 지지 기반에게 혼란과 실망을 안길 수 있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지지해 온 시민 다수는 불평등 해소와 공공성 강화를 기대해 왔다. 그런 기대 속에서 재정의 방향타를 과거 긴축과 관리 중심의 사고를 대표해 온 인물에게 맡기는 것은 정책적 자기 부정으로 비칠 소지가 크다.

통합이란 서로 다른 입장을 조율하는 과정이지, 핵심 가치와 도구를 양보하는 것이 아니다. 재정은 정부 정책의 실질적 구현 수단이다. 이 수단의 책임자를 통합의 상징으로만 선택했다면, 이는 통합의 과잉 해석이자 정책 판단의 빈곤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이혜훈 전 국민의힘 의원. 연합뉴스

초대 장관의 상징성과 그 위험

새로운 기관의 초대 장관은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다. 그는 조직의 DNA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기획예산처가 향후 어떤 기준으로 예산을 심사하고, 어떤 가치에 따라 우선순위를 설정할지는 초대 장관의 철학에 의해 결정된다.

이혜훈 후보자는 관료 조직과 정치권 모두에서 '신중함'과 '보수성'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이는 위기 관리 국면에서는 장점이 될 수 있으나, 구조 전환과 개혁 국면에서는 명백한 한계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기획예산처는 기존의 관행을 답습하는 조직이 아니라, 부처 이기주의를 넘어서고 장기적 국가 전략을 재정으로 구현해야 하는 기관이다. 그런 역할에는 관성에 맞설 수 있는 강한 개혁 의지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혜훈 후보자가 보여준 정치적 행보에서 그러한 개혁적 에너지를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그는 제도의 안정과 관리에 무게를 두는 인물로 평가받아 왔다. 이는 기획예산처가 출범 초기부터 ‘조심스러운 기관’, ‘결정하지 않는 기관’으로 낙인찍힐 위험을 내포한다.

재정 민주주의의 후퇴 가능성

기획예산처를 국무총리실 산하에 두는 구조는, 재정을 보다 정치적 책임 속에 두겠다는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치적 책임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장관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명확히 호흡을 맞춰야 한다. 정책 비전이 공유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독립성’은 민주적 통제가 아니라 관료적 자율성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이혜훈 후보자가 국무총리실 산하에서 재정의 ‘견제자’ 역할을 자임할 경우, 이는 국정 운영 전반의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특히 사회적 위기 상황에서 필요한 신속하고 과감한 재정 투입이 내부적 이견과 보수적 판단에 의해 지연될 경우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재정 민주주의는 단지 예산 권한을 분산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것은 재정이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책임 속에서 운용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초대 장관이 그 합의를 확장하기보다 축소하는 역할을 한다면 기획예산처 신설의 명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메시지 정치의 역설

이번 인사는 분명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과연 누구를 향하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시장과 보수를 안심시키기 위한 신호인지, 지지층에게 ‘우리는 중도적이다’라고 설득하기 위한 제스처인지, 아니면 내부 개혁에 대한 자신 없음의 표현인지 명확하지 않다.

정치는 메시지의 예술이지만, 국정은 결과의 영역이다. 재정 정책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방향 없는 중도와 모호한 절충이다. 이재명 정부가 스스로 내세운 가치와 개혁 과제를 끝까지 밀고 갈 의지가 있다면, 재정의 사령탑은 그 의지를 가장 선명하게 구현할 인물이어야 한다.

통합은 인사가 아니라 방향이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초대 장관 후보 지명은 통합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선택이지만, 그 실질은 오히려 정부의 재정 개혁 의지에 의문을 던지게 한다. 통합은 사람의 출신이 아니라 정책의 방향에서 완성된다. 재정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책임의 영역이다.

새로운 기획예산처가 과거의 재정 관행을 반복하는 또 하나의 관리 기관이 될지, 아니면 국가 전환을 이끄는 전략 기관이 될지는 지금 이 순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초대 장관 인사는 그 시작점이다. 그 시작이 흔들린다면 아무리 훌륭한 제도 설계도 공허해질 수 있다.

이재명 정부가 진정으로 통합과 개혁을 동시에 추구한다면, 지금 필요한 것은 상징적 인사가 아니라 분명한 재정 철학이다. 그리고 그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 선택이다. 이번 결정이 그 기대에 부응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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