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미, 베네수엘라 침공' 힘의 논리로만 보는 한국 언론

이명재 에디터

promes65@gmail.com

다른 기사 보기

'미들파워' 한국 언론에 필요한 건 '진짜 현실론'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사미국곡(思美國曲)'

주체적 중견국가 아닌 '강대국 종속변수'로 체념

'힘의 논리' 단순 인식 벗어나 성숙한 현실론 펴길

미국 트럼프 정권의 베네수엘라 침공과 마두로 대통령 부부의 강제 연행은 국제정치의 지형뿐 아니라 한국의 언론에도 하나의 시험지를 던졌다. 주권국가에 대한 명백한 무력 개입과 국제법 위반 소지가 짙은 사건을 한국의 주류 언론은 어떻게 보도하는가. 이는 ‘선진국’을 자임하는 한국의 언론으로서 그에 맞는 면모를 보여주는가의 한 가늠자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한국 주류 언론의 모습은 그 같은 기대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 오히려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태도, 혹은 ‘트럼프 백악관의 확성기’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임금을 그리는 지극한 정을 노래한 조선조 정철의 가사 '사미인곡(思美人曲)'에 빗대자면, 이는 미국에 대한 연모를 노래하는 ‘사미국곡(思美國曲)’이라고 해야 할 법하다. '미국보다 더 미국을 사랑하는', '한국 안의 미국'이 한국의 언론 지면 위에 출현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사태는 국제법적으로 주권 침해이자 전쟁 범죄적 성격을 지닌 행위다. 그러나 미국의 시각에서 마두로를 ‘범죄자’로 규정한 것을 한국 언론은 그대로 인용하며 무력 사용의 정당성을 사실상 승인했다. 주권국가의 대통령을 심야에 기습적으로 납치한 것을 ‘체포’, ‘작전’, ‘압송’이라는 용어로 묘사했다. 경찰이 범죄자나 용의자를 검거할 때 사용하는 어휘를 그대로 갖다 쓰는 것부터가 사건의 성격을 전도시키는 출발점이다.

 

1월 5일, 서울 주한 미국 대사관 인근에서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후, 시위대가 미국 정부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규탄하는 현수막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2026.1.5. AP 연합뉴스

미국은 스스로를 ‘세계의 경찰’로 자임해왔다. 이번 침공도 경찰의 국제 치안 행위로 설명한다. 한국 주요 언론은 이를 그대로 인용해주면서 세계의 경찰에 의한 적당한 법집행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미국은 경찰이라기보다 오히려 '무단 침입자'에 가깝다. 세계는 지금 '미국이라는 경찰'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위법 행위를 바로잡을 '미국에 대한 경찰'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미 국방부가 붙인 작전명 ‘확고한 결의(Absolute Resolve)’는 한국 언론의 보도를 거치며 더욱 ‘확고해진다’.

한국 주류 언론들의 이같은 보도의 밑바닥에는 뿌리 깊은 친미 일변도와 ‘힘이 곧 정의’라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이 깔려 있다. 언론은 이를 ‘힘의 정치’라는 현실 인식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아니라, 폭력적 질서에 대한 굴종과 내면화에 가깝다.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일 수 없다”는 한국 신문 사설의 주장은 마치 ‘제2의 베네수엘라가 되지 않으려면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자기검열 논리로 들린다. 결국 한국도 언제든 미국의 편에 서거나 그대로 추종해야 한다는 자기비하의 논리다.

한국 언론은 이번 사태에 대해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을 다시 꺼내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그 우방은 어떤 우방인가, 라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과의 관계에서 ‘동맹의 현대화’가 자주 거론되지만, 그 이전에 필요한 것은 ‘동맹의 동맹화’다. 동맹을 무비판적 충성의 대상이 아니라 협상의 관계로 인식하는, 동맹을 동맹답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사고는 여전히 동맹파 대 자주파라는 이분법과도 같은 단순한 도식에 갇혀 있다. 이는 동맹 아니면 반동맹, 친미 아니면 반미라는 흑백 구분에 머무는 사고다. 제3의 선택지와 다양한 외교 전략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군사·문화적으로 세계 10위권 안팎의 국가로, 국제사회에서 ‘미들 파워(Middle Power)’로 불린다. 그렇다면 한국의 언론 역시 그에 걸맞은 세계 인식과 책임감을 보여주고 있는가. 그러나 이번 보도가 그 질문에 대해 흡족할 만한 대답을 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미들 파워는 단순한 경제 규모의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강대국 사이에서 국제법, 인권,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매개로 목소리를 내고, 때로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이는 단지 국가의 외교 전략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언론을 비롯한 그 사회의 총체적 역량의 발현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스스로를 ‘주체적 미들 파워’ 가 아니라, ‘강대국의 종속 변수’로 격하시키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도덕적 권위와 외교적 선택지를 스스로 축소시킨다.

한국 언론에 필요한 '현실론'은 무엇인가. 국제정치가 힘의 논리에 지배되는 것은 사실이다. 강대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질서를 만들고, 약소국은 그 질서에 종속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 명제와도 같은 말은 대체로 사실이더라도 국제질서를 설명하는 전부인 것은 아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과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국제 윤리와 국제 규범 역시 바로 그 ‘현실’의 일부라는 것이다. 20세기 이래 인류가 피의 경험 속에서 구축해 온 ‘제도화된 현실’이라는 점이다.

한국 언론이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두고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 앞에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할 때 보지 못하는 것은 국제정치는 자연법칙처럼 고정된 힘의 질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의 국제질서에 작동하는 힘에는 단지 군사적·물리적 힘뿐만 아니라 윤리적·규범적 힘도 없지 않다. 그 규범은 두 차례 세계대전과 냉전의 폐허 위에서 인류가 집단적으로 합의한 ‘현실’의 규칙이다. 규범이 자주 무력화된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한국 언론이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현실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태’로 서술할 때, 빠뜨리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언론의 그같은 '현실론' 시각은 설명이 아니라 체념이며,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대한 반쪽의 이해다.

미들파워 국가인 한국에 필요한 현실론은 어느 한쪽의 사실만을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현실론은 힘의 정치와 국제규범 사이의 긴장 속에서 그 규범이 실제 작동하도록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미들파워로서의 한국은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규범을 실제적 힘으로, 국제질서의 현실로서 전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미들파워 국가에게 이는 군사력으로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영향력의 원천이다. 이는 현실을 무시하는 이상주의가 아니라 국제질서의 복합적인 면을 꿰뚫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다.

그리고 그같은 전략은 도덕적 선택인 동시에 결국 한국의 국익의 문제다. 규범을 실질적 힘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신뢰 자산을 축적하고, 외교적 선택지를 넓히며, 자신에게 닥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서 더욱 두터운 보호막을 확보한다.

한국 언론이 주목해야 할 현실론은, 힘의 논리 앞에 국제윤리는 무용지물이라는 냉소와 체념이 아니다. 미들파워 국가 언론으로서의 자기비하가 아니다. 국제규범을 현실의 일부로 더욱 '실질화'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성숙한 현실주의'가 필요하다. 그것이 미들파워 한국 언론에 필요한, 미들파워 국가의 언론으로서 한국언론에 요청되는 진정한 현실론이다.

 

저작권자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