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스스로를 ‘세계의 경찰’로 자임해왔다. 이번 침공도 경찰의 국제 치안 행위로 설명한다. 한국 주요 언론은 이를 그대로 인용해주면서 세계의 경찰에 의한 적당한 법집행으로 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미국은 경찰이라기보다 오히려 '무단 침입자'에 가깝다. 세계는 지금 '미국이라는 경찰'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위법 행위를 바로잡을 '미국에 대한 경찰'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미 국방부가 붙인 작전명 ‘확고한 결의(Absolute Resolve)’는 한국 언론의 보도를 거치며 더욱 ‘확고해진다’.
한국 주류 언론들의 이같은 보도의 밑바닥에는 뿌리 깊은 친미 일변도와 ‘힘이 곧 정의’라는 약육강식의 세계관이 깔려 있다. 언론은 이를 ‘힘의 정치’라는 현실 인식으로 포장한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 대한 냉정한 분석이 아니라, 폭력적 질서에 대한 굴종과 내면화에 가깝다. “우리에게 강 건너 불일 수 없다”는 한국 신문 사설의 주장은 마치 ‘제2의 베네수엘라가 되지 않으려면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지 말아야 한다’는 자기검열 논리로 들린다. 결국 한국도 언제든 미국의 편에 서거나 그대로 추종해야 한다는 자기비하의 논리다.
한국 언론은 이번 사태에 대해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말을 다시 꺼내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질문은 그 우방은 어떤 우방인가, 라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과의 관계에서 ‘동맹의 현대화’가 자주 거론되지만, 그 이전에 필요한 것은 ‘동맹의 동맹화’다. 동맹을 무비판적 충성의 대상이 아니라 협상의 관계로 인식하는, 동맹을 동맹답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언론의 사고는 여전히 동맹파 대 자주파라는 이분법과도 같은 단순한 도식에 갇혀 있다. 이는 동맹 아니면 반동맹, 친미 아니면 반미라는 흑백 구분에 머무는 사고다. 제3의 선택지와 다양한 외교 전략의 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군사·문화적으로 세계 10위권 안팎의 국가로, 국제사회에서 ‘미들 파워(Middle Power)’로 불린다. 그렇다면 한국의 언론 역시 그에 걸맞은 세계 인식과 책임감을 보여주고 있는가. 그러나 이번 보도가 그 질문에 대해 흡족할 만한 대답을 주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미들 파워는 단순한 경제 규모의 차원에 그치지 않는다. 강대국 사이에서 국제법, 인권,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를 매개로 목소리를 내고, 때로는 중재자 역할을 수행하는 능력이 핵심이다. 이는 단지 국가의 외교 전략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언론을 비롯한 그 사회의 총체적 역량의 발현에 의해서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 언론은 스스로를 ‘주체적 미들 파워’ 가 아니라, ‘강대국의 종속 변수’로 격하시키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가질 수 있는 도덕적 권위와 외교적 선택지를 스스로 축소시킨다.
한국 언론에 필요한 '현실론'은 무엇인가. 국제정치가 힘의 논리에 지배되는 것은 사실이다. 강대국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앞세워 질서를 만들고, 약소국은 그 질서에 종속되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 명제와도 같은 말은 대체로 사실이더라도 국제질서를 설명하는 전부인 것은 아니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과 함께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국제 윤리와 국제 규범 역시 바로 그 ‘현실’의 일부라는 것이다. 20세기 이래 인류가 피의 경험 속에서 구축해 온 ‘제도화된 현실’이라는 점이다.
한국 언론이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두고 “냉엄한 국제정치의 현실 앞에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할 때 보지 못하는 것은 국제정치는 자연법칙처럼 고정된 힘의 질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의 국제질서에 작동하는 힘에는 단지 군사적·물리적 힘뿐만 아니라 윤리적·규범적 힘도 없지 않다. 그 규범은 두 차례 세계대전과 냉전의 폐허 위에서 인류가 집단적으로 합의한 ‘현실’의 규칙이다. 규범이 자주 무력화된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한국 언론이 미국의 베네수엘라 침공을 ‘현실적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태’로 서술할 때, 빠뜨리는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언론의 그같은 '현실론' 시각은 설명이 아니라 체념이며,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에 대한 반쪽의 이해다.
미들파워 국가인 한국에 필요한 현실론은 어느 한쪽의 사실만을 절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현실론은 힘의 정치와 국제규범 사이의 긴장 속에서 그 규범이 실제 작동하도록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미들파워로서의 한국은 강대국과 약소국 사이의 중간 지점에서, 규범을 실제적 힘으로, 국제질서의 현실로서 전환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미들파워 국가에게 이는 군사력으로 대체할 수 없는 중요한 영향력의 원천이다. 이는 현실을 무시하는 이상주의가 아니라 국제질서의 복합적인 면을 꿰뚫는 '가장 현실적인 전략'이다.
그리고 그같은 전략은 도덕적 선택인 동시에 결국 한국의 국익의 문제다. 규범을 실질적 힘으로 만드는 데 기여하는 국가는 국제사회에서 신뢰 자산을 축적하고, 외교적 선택지를 넓히며, 자신에게 닥칠 수도 있는 위기 상황에서 더욱 두터운 보호막을 확보한다.
한국 언론이 주목해야 할 현실론은, 힘의 논리 앞에 국제윤리는 무용지물이라는 냉소와 체념이 아니다. 미들파워 국가 언론으로서의 자기비하가 아니다. 국제규범을 현실의 일부로 더욱 '실질화'하고 그것을 활용하는 '성숙한 현실주의'가 필요하다. 그것이 미들파워 한국 언론에 필요한, 미들파워 국가의 언론으로서 한국언론에 요청되는 진정한 현실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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