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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생들 보세요

지난해 수출액이 전년보다 3.8% 증가한 7097억 달러로 기존 역대 최대이던 2024년 기록을 다시 넘어섰다. 사진은 1일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2026.1.1 ⓒ 연합뉴스

2025년 말 한국의 연간 수출액이 사상 처음으로 7000억 불(약 1000조 원)을 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은 미국, 독일, 중국, 일본, 네덜란드에 이어 연간 수출 7000억 불에 도달한 세계 여섯 번째 나라가 됐다. 우리보다 국력이 큰 영국이나 프랑스도 아직 연간 수출 7000억 불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자랑스러운 성취임이 틀림없다. 지난해 내내 트럼프 정부의 '관세 폭탄'에 시달린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1971년에 연간 수출 10억 불을 처음 달성한 이래 54년 만에 연간 수출 총액이 무려 700배나 늘어난 셈이다. 1971년은 우리 역사상 출생아 100만 명을 넘긴 마지막 해이기도 하다. 그해 102만 4천여 명의 돼지띠가 태어났다. 1959년생 돼지띠부터 1971년생 돼지띠까지 13년 동안 1965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100만 명이 넘게 태어났다. 1972년 100만 명 아래로 떨어진 출생아는 그 이후 계속 감소했다. 수출 7000억 불을 기록한 2025년에는 1971년생의 4분의 1 정도인 25만 8천여 명이 태어났다. 2024년과 2025년에 연속으로 출생아가 늘어났고, 합계출산율도 0.8명대를 회복했다지만, 1971년의 합계출산율이 4.54명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지금의 인구 감소세는 실로 심각하다.

굶을 걱정은 안 했지만, 사람답게 살기는 참 어려운 시대

1971년생은 2026년 1월 현재 약 94만 명이 생존해 주민등록 기준으로 가장 인구가 많은 연령대이며 앞으로도 상당 기간 그럴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사회의 기반이 농업에서 제조업으로 전환한 상징적 사건인 '수출 10억 불 달성'의 해에 태어난 1971년생은 이른바 '성장세대'의 대표 주자다. 1971년생의 성장기는 한국 경제와 사회가 눈부시게 성장하던 때와 겹친다. 그들은 앞 세대가 집단으로 공유했던 '보릿고개'로 대표되는 극심한 빈곤을 잘 모른 채 성장했다. 물질적 풍요에 기반한 사회·문화적 혁신을 집단으로 경험하며 성장한 첫 세대라 할 것이다. 1971년생은 1986년 아시안게임(중3), 1987년 민주화운동(고1), 1988년 올림픽 개최(고2),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고3)를 관통하며 청소년기를 보냈다. 확실히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팽배했을 때이다.

1971년생은 1990년에 대학에 입학해 군부독재 청산과 민주화를 이끈 386세대와도 구분된다. 386세대는 고도성장으로 직업 기회가 급속히 팽창하던 시대에 사회에 진출했다. 이 팽창의 시대는 세계화 구호가 절정에 달했던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때까지 계속됐다. 그 이듬해인 1997년 'IMF 경제위기'가 닥쳤다. 26개월의 군 복무를 마친 1971년생 대졸 남성 대부분이 사회에 진출한 해이다. '국가부도' 상태의 사회로 진출한 1971년생은 그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찾아온 경제위기와 여러 사회적 재난을 겪으며 청장년기를 보냈다. 이제는 모두가 당연시하는 이른바 '각자도생'이 지배하는 사회를 맨 앞에서 마주한 것이다. 700배로 커져 온 경제 규모 덕에 굶주림을 근심하지는 않았지만, 사람답게 살기는 참 어려운 시대를 1971년생은 살아온 셈이다.

서울 명동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 2025.12.25 ⓒ 연합뉴스

1971년생은 성장기에 겪은 이른바 선지원·후시험 대입 제도를 통해 각자도생의 경쟁 원리를 철저히 내면화한 세대이기도 하다. 먼저 원서를 내고 학력고사를 치러 합격자를 선발하는 이 방식은 1988학년도부터 1993학년도까지 계속됐다. 1969년생부터 1974년생이 대학에 입학하던 때이다. 그때 사설학원의 전국 단위 모의고사를 보면 과목별로 전국 몇 등이라는 석차가 적힌 개인별 성적표가 나왔다. 사설학원의 '배치표'에는 전국 주요 대학과 학과가 점수별로 촘촘하게 서열화돼 있었다. 전국 석차와 배치표에 의존해 대학과 학과를 정하고, 같은 대학의 강의실에서 같은 학과 지원자들이 모여 한 번 보는 학력고사로 당락을 가름했다. 비록 1971년생의 4분의 1 정도만 대학에 진학했지만, 청소년기에 내면화한 경쟁의 원리가 이들의 이후 삶에서 일종의 가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1971년생은 올해 생일을 넘기면 55세가 된다. 세계보건기구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질병과 장애 없이 살 수 있는 건강수명은 2021년 기준 72.5세다. 국민연금공단 조사에서 50세 이상 가구원과 배우자가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노후 시작 연령은 평균 68.5세였다. 대략 70세 전후까지는 매우 건강하게 활동적으로 삶을 산다는 말이다. 1971년생에게는 앞으로 15년 정도가 남은 셈인데, 많은 기업이 55세를 전후로 임금피크제를 적용하며 사실상 퇴직을 압박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연금 수령 전인 65세까지 10년을 가리키는 소위 '소득 크레바스', 즉 소득 공백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응답하라 1988'의 부모들이 사는 방식

tvN <응답하라 1988> 스틸컷 ⓒ CJ E&M

1971년생이 앞으로 살아갈 한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우울한 형편에 처해 있다. 보건복지부의 사망 원인 발표에 따르면 2024년 한국의 자살사망자 수는 1만 4872명이다. 매일 40.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셈인데, 50대 자살사망자 수가 3151명(21.2%)으로 가장 많았다. 자살률(인구 10만 명당 26.2명)은 OECD 평균인 10.8명에 비해 2.4배 높으며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80세 이상 자살률은 무려 78.6명에 달한다. 자살은 10대부터 40대까지 사망원인 1위이고 50대에는 2위이다.

가처분소득 기준 2023년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38.2%이다. OECD 평균(14.8%)의 약 3배이고 회원국 중 1위다.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4명이 빈곤선(2023년 기준 1879만 원) 이하로 생활한다는 의미다. 극심한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1971년생의 노후를 기다리고 있다. 입소스(Ipsos)의 글로벌 행복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행복도는 2011년 71%에서 2024년 48%로 23%포인트나 급락했으며 30개 조사 대상국 중 헝가리와 함께 공동 최하위였다.

수출 10억 불의 해에 태어난 1971년생은 수출 7000억 불의 해에 태어난 2025년생에게 어떤 미래를 물려줄까?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경제 구조는 또다시 탈바꿈하고 있다. 1971년생이 농업 기반 경제가 제조업 기반 경제로 전환하는 시대에 성장했듯, 2025년생은 디지털 경제, 포스트 디지털 경제로 전환이 가속화되는 시대에 성장하게 될 것이다. 희망컨대 1인당 국민소득도 4만 불을 넘어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디지털 전환이 양극화사회, 불안사회, 경쟁사회, 위험사회, 불행사회를 더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그런데 1971년생은 그들이 살아왔던 시대, 그들이 지금 살고 있는 사회와는 질적으로 다른, 소박한 표현이지만 사람답게 살 만한 사회를 2025년생에게 물려줄 수는 없을까? 그래서 1971년생의 자녀 세대도 손자 세대도 아닌 2025년생은 경쟁이 지옥으로 들어서는 관문이 아닌 사회, 서로를 존중하며 차별을 금지하는 사회, 그래도 함께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공동체 의식과 분위기가 팽배한 사회에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있을까?

인기 드라마였던 <응답하라 1988>의 주인공인 서울 쌍문동 골목길 동갑내기들 역시 1971년생이다. 드라마이기는 했으나 그들의 부모는 그래도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아가는 법을 물려주려고 애썼다. 사람 맛 나는 삶을 자녀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 골목길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남긴 것은 돈이 아니라 서로의 사정을 헤아리는 규칙이었다. 서로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아이가 아프면 함께 돌보고, 갈등이 생기면 얼굴을 맞대고 풀어내는 대화의 기술이었다. 지금 한국 사회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기술이다.

수출 7000억 불의 해에 태어난 2025년생에게 1971년생이 남길 유산은 더 큰 숫자로 표현되는 경제 규모가 아니라, 그 경제가 사람의 삶을 지켜주는 방식과 조건이다. 성장과 위기를 동시에 경험한 증인으로서 1971년생은 사람 맛 나는 사회, 공존할 수 있는 미래를 남기는 일에 힘써야 하지 않을까? 그 일은 1971년생만의 과업은 아닐 것이다. 그 일이 개인의 선의와 미담의 영역에 남겨질 수도 없다.

수출 7000억 불 달성 소식이 전해지기 2주일 전인 2025년 12월 15일, 국무총리 소속 '사회대개혁위원회'가 출범했다. 시민사회·정당·정부가 함께 실천 가능한 개혁 과제를 사회적 합의로 도출하겠다는 취지다. 정치·민주, 경제·민생, 사회·교육, 기후·평화·역사 등 4개 분과위원회도 구성했다. 연대가 손해가 되지 않도록, 돌봄이 가족에게만 전가되지 않도록,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사회의 규칙을 다시 짜는 대개혁이 이 위원회를 통해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수출 7000억 불의 해에 태어난 2025년생이, 사회대개혁과 함께 성장기를 보낸 '인간화 세대'로 역사에 기록되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글쓴이 강대중 인권연대 칼럼니스트는 현재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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