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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힘을 다해 싸운 이순신, 죽을힘을 다해 준비한 특별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2/09 09:12
  • 수정일
    2026/02/09 09:13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이한기의 뷰]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 기획한 서윤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26.02.09 06:54최종 업데이트 26.02.09 06:54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을 기획한 서윤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유성호

"우리가 가장 존경하는 역사 인물 이순신. 임진왜란이라는 위기 속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 그는 결코 혼자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함께 했던 사람들을 잊지 않았습니다. '1592년 7월 한산도대첩'. 우리는 세계 해전사 속에서 빛나는 이순신의 승리로 기억하지만 이순신이 기억한 것은 함께 한 그들입니다. 전투가 끝나고 곧바로 임금께 올리는 장계에 그들 한 명 한 명을 기록했습니다.

<임진장초> 1592년 7월 15일 한산도대첩 보고서 중에서

중위장 순천 부사 권준

중부장 광양 혐감 이영담

전부장 방담 첨사 이순신

...... (중략)

본영 2선 진무 순천 수군 김봉수

본영 거북선 토병 사노비 김말손, 정춘

홍양2선 격군 사노비 상좌, 절노비 귀세, 절노비 맛련

...... (중략)

위 사람들은 화살과 돌을 무릅쓰고 죽을 결심을 하고 나아가 싸웠기에 혹은 죽고, 혹은 다쳤습니다. ... 여러 장수와 군사, 관리 등이 분연히 일어나 제 한 몸을 돌아보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힘껏 싸워 여러 번 승리했습니다... 군공 등급을 매기는 것을 만약 조정의 명령을 기다린 뒤에야 공로의 등급을 나누어 정하게 되면, 군사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공로를 참작해 1, 2, 3등으로 별도 장계에 자세히 조목조목 기록했습니다. 처음 약속과 같이 비록 머리를 베지 않았어도 죽을힘을 다해 싸운 사람들을 신이 직접 본 것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결정하고 함께 기록하였습니다. 삼가 갖추어 임금님께 글을 올려 보고합니다.

1592년 7월 15일

절도사. 신하 이(이순신)"

서윤희 국중박 학예관 "이순신 특별전 이걸 알면 더 특별하다" ⓒ 유성호/고정미

국립중앙박물관(국중박)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 에필로그 영상에 나오는 1592년 7월 15일 한산도대첩 보고서다. <임진장초(壬辰狀草)>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중 조정의 임금에게 올린 '장계(狀啓)' 보고서다. 이 보고서에는 수군은 물론이고 사노비와 절노비의 이름까지 세세하게 다 기록돼 있다. 왜 전시 제목을 '우리들의 이순신'으로 붙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난해 시작해 오는 3월 3일까지 열리는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은 충무공 이순신 탄신 480주년과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동안 보기 어려웠던 이순신 종가 유물 20건 34점 원본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친필본 <난중일기>, <임진장초>, 충무공 장검, <징비록> 등 258건 369점이 전시되고 있다. 국보 6건 15점, 보물 39건 43점, 국가등록문화유산 6건 9점이 포함돼 있다. 국내 39곳, 일본 5곳, 스웨덴 1곳에서 출품했다. 이순신과 관련해 열린 종합전시 가운데 최대 규모다.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 이순신 관련 최대 규모 종합전시

"이순신의 조카가 쓴 것으로 알려진 <이충무공행록>에 나오는 구절이 있습니다.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과 조선 수군이 궤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순신은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대목을 떠올리면서 제가 이 전시를 이순신만큼 죽을 힘을 다해 준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이순신 특별전을 기획한 서윤희 국립중앙박물관 고고역사부 학예연구관은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순신이 승리했기 때문에 위대한 게 아니라 함께 싸운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기억하는 훌륭한 사람이었기에 이토록 오랫동안 존경받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일곱 차례 본 이순신 연구가인 박종평 서울여해재단 연구소장은 "'내 생애 이순신과 관련된 이런 전시를 또다시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극찬했다.

지난달 26일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을 기획한 서윤희 학예연구관을 만나 전시회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윤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이 1월 26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에서 이순신 사후에 영의정 벼슬을 내린 문서인 영의정 증직교지를 소개하고 있다.유성호

- 국립중앙박물관 근무 경력은 어느 정도 되나.

"2007년 좀 늦은 나이에 입사했다. 지금 19년째 근무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직들은 지방에 있는 13개 박물관으로 순환하면서 근무한다. 진주박물관에서 3년 동안 근무하면서 임진왜란 관련 전시를 했다. 조선시대 선비 오희문(吳希文)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쓴 피난 일기 <쇄미록(瑣尾錄)>(1591~1601) 전시를 기획·진행한 적도 있다. 코로나 시국이라서 관람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의미있는 새로운 전시였다."

- 왜 지금, 이순신을 호출했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것을 이순신을 통해서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모든 일은 바른 곳으로 돌아간다. 임진왜란은 일본이 명나라를 침략하기 위해서 아주 평화로운 우리나라를 침략한 거다. 그것을 응징한 게 이순신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시기, 세상이 너무 부정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세상에 좀 일침을 놓아주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존경하는 역사 인물 이순신이 떠올랐다."

국보·보물급 '이순신 종가 유물' 34점, 첫 서울 나들이

- '이순신'이라는 인물만을 단독 주제로 한 전시는 <우리들의 이순신>이 처음인가.

"이순신에 관한 전시는 기존에도 있었다. 국립진주박물관에서도 2003년 이순신의 삶에서부터 신화까지를 주제로 한 전시를 했다. 그런데, 이번에 국중박에서 진행하는 특별전은 이순신과 관련된 종합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이순신의 유물만이 아니라 임진왜란과 관련된, 그 당시에 이순신이 사용했을 것 같은 무기들, 이순신 사후에 이순신을 추모하는 내용까지 다양하다. 이순신과 관련된 최대 규모의 종합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특별전에는 유물이 258건 369점이 전시됐다. 이순신 종가에 전해 내려오는 이순신 손때가 묻은 국보·보물을 포함한 유물이 20건 34점인데, 이렇게 대규모로 서울 나들이를 한 것은 처음이다.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큰 규모의 이순신 종가 유물이 포함된 전시를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1월 26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에서 관람객이 이순신이 직접 쓴 <난중일기> 친필본을 살펴보고 있다.유성호

- 이순신 특별전을 언제부터 고민했고, 기획 과정은 어땠나.

"국립진주박물관에 근무할 때부터 조금씩 생각하고 있었다. 박종평 선생님이 <난중일기>(글항아리) 번역본 책을 선물로 주셔서 이순신에 대해 좀 더 고민을 하게 됐다. 나중에 전시로 풀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전시는 기획 단계가 가장 어렵다. 기존 다른 전시에서는 이순신을 어떻게 조명했는지, 그렇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어떤 키포인트와 메시지를 갖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것인지 밑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 전시 방향과 스토리라인이 정해지면, 전시하고 싶은 (대여와 같은) 유물 확보가 무척 중요하다. 이번에는 일본과 스웨덴 등 외국의 기관에 있는 유물도 대여해왔다."

- 특히, 해외 기관으로부터 유물을 대여하는 과정은 매우 까다로울 것 같은데.

"해외 기관과 유물 대여와 관련해 소통하는 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린다. 일본 같은 경우 통상 2년 전쯤에는 섭외하고 접촉해야 한다. 스웨덴과는 계속 메일을 주고받았다. 이번에 전시한 일본 기관의 유물은 미리 가서 실사를 하고 유물 상태를 점검했다. 돌아와서는 대여 협조 문서를 보낸다. 그런 뒤에도 유물 대여에 관해 그쪽에서 방침을 결정하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때로는 상호 협약서를 체결하기도 한다.

대여가 확정이 되더라도, 유럽 같은 곳에서는 압류 면제 조항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유물을 반출해 국내로 들여올 수 있다. 유물 대여가 최종 확정되면 서로 보험을 들고, 호송관을 통해서 유물이 가져오는 절차를 밟는다. 이번 이순신 특별전에는 유물이 국내·외 45개 기관에서 왔다."

전시장 배경 음악, 한산·명량·노량 해전의 바다 소리

- 이번 전시에서 디테일한 영상이 인상적이었다. 전시실 내부 디자인과 영상 작업은 어떻게 진행됐나.

"전시할 유물이 확정되면 디자인 작업에 들어간다. 디자이너가 전시 기획자들과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디자인을 수정·보완하면서 완성해나가게 된다. 전시 영상도 효과가 크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영상도 전시 주제에 맞게 기획하고 작업을 진행한다. 디자인이나 영상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민해야 한다. 그 후 실제 전시실 공사가 진행되고, 마지막에는 그래픽 작업을 한다. 진열장, 인테리어 재질, 색, 받침대, 글자 포인트나 폰트 등 세부적인 부분을 확정하고, 패널을 만들어 설명카드를 완성하면 전시 준비가 마무리된다."

- 전시장 안에 잔잔하게 흐르는 배경 음악도 낯선 듯 익숙했다. 전시장에 전체적으로 배경 음악을 트는 게 흔한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이번 전시에는 시작부터 끝까지 음향을 넣었고, 이를 위해 스피커 20대를 설치했다. 전시의 서사와 함께 음향의 서사를 도모했다. 음향은 전시를 온몸으로도 느낄 수 있게끔 하는 일종의 장치다. 이순신이 크게 이겼던 한산·명량·노량 해전의 바다 소리를 채집했다. 여기에 국악의 타악기, 구음, 칠채장단을 결합해 각 전시 파트별로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통일되게 음향을 만들어 전시 공간 전체에 흐르게 했다. 음향은 의식하지 않으면 잘 모를만큼 자연스럽게 전시장을 채웠고, 관람을 방해하지 않고 전시와 조화를 이뤘다고 본다."

충무공 이순신 장검 칼날에는 '삼척서천 산하동색(三尺誓天 山河動色 석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떤다), 일휘소탕 혈염산하(一揮掃蕩 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유성호

- 처음 전시 기획 아이디어부터 따지면 준비 기간은 어느 정도 되나.

"요즘에는 한 2년 정도를 잡는다. 이순신 특별전도 구상 단계부터 따지면 2년가량 소요됐다. 유물을 직접 대여하고 구체적인 작업이 진행되는 것도 1년 여의 시간이 필요하다. 큰 전시는 그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 '우리들의 이순신'이라는 전시회 제목부터 의미심장한데, 기획자로서 이번 특별전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번 전시의 의미는 '우리들의 이순신'이라는 제목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들'이라는 것은 우리가 너무 친근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이순신에 대한 친밀감을 표현한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한 이순신은 큰 위기를 맞닥뜨리고도 결코 물러서거나 포기하거나 도망가지 않았다.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시련과 고난이 닥쳤을 때 그것을 극복하고 오늘을 잘 살아낸다면 그러한 나의 이순신이 모여 우리들의 이순신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인간 이순신'의 면모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우리들의 이순신>

- '영웅' 이순신과 '인간' 이순신의 차이를 보여주고 싶었던 건가.

"차이를 보여주기보다는 영웅 이순신 이면에 간과하기 쉬운 인간 이순신의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다. 같은 인간으로서 관람객들이 이순신의 선택과 판단을 따라가면서 두려움에 떨기도 했던 이순신,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기도 했던 이순신, 그런 인간 이순신의 면모를 다시 한번 살펴보면 좋겠다는 취지다."

-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제일 어려웠던 점은 이순신 종가의 유물을 빌려오는 일이었다. 이순신 종가 유물이 세상 밖으로 안 나온 지 오래됐다. 종가와 종친 내에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좀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되게 많이 고민했다. 이순신 종가 유물을 빌려오지 못했다면 이번 이순신 특별전이 이처럼 크게 호응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순신 친필본 <난중일기>라든지, 이순신 장검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면 그 차이를 알게 된다."

- 애초 이순신 특별전을 기획하면서 준비했을 때 생각했던 관객 수나 반응과 실제 상황은.

"저희가 예상했던 것보다 반응이 훨씬 뜨겁다. 상설전시실 내 특별전시실에서 전시한 이후 제일 많은 관람객 수를 기록하고 있다. (※ 2월 7일 기준 18만3000명가량의 관객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지난해 11월 28일 오픈했고, 개막 후 일주일 동안 무료였고, 이순신 순국 기념일과 매달 문화의 날은 무료였던 점을 감안하면 실 관객 수는 더 많다. 날씨가 아주 춥기 전에는 '오픈 런' 대기줄이 이어졌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에 서애 류성룡의 임진왜란 회고록인 <징비록>이 전시돼 있다.유성호

- 이순신 특별전을 기획하고 준비한 기획자로서 전시회를 찾은 일반 관객들에게 이런 부분을 관심있게 보면 좋겠다는 '관람 팁'을 준다면.

"이순신의 유물들, 이순신의 장검이라든가 <난중일기>, <임진장초>, 서간첩, 그리고 이순신이 임금에게 받은 문서들이 있다. 그 문서들을 그냥 설명카드 없이 읽기는 어렵겠지만, 그 당시에 문서들이 워낙 크고 글씨도 너무 좋다. 그런 유물을 직접 보는 기회는 참 귀하다. 이번 기회에 관심있게 보면 좋을 것 같다.

전시실 내 9가지 영상물이 있다. 도입부 전쟁 전 폭풍 전야의 이순신의 결의를 실감나는 바다로 표현한 실감 영상부터 마지막 '내 안의 이순신'이라는 체험 영상, 거북선의 외주와 내면을 보여준 영상, <난중일기> 원본을 읽어보는 영상, 정왜기공도와 울산왜성전투도 등 기록화를 세밀하게 보는 영상, 이순신과 조선 수군의 무기운용 영상 등이 있다. 모두 원본 기록들을 바탕으로 세밀하게 기획해 만들었다. 아울러 이 영상들은 옆에 있는 유물과 함께 살펴보면 의미와 감동이 더 잘 와닿을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등장하는 에필로그 영상은 8분으로 긴 편이지만 감동적이니 꼭 보고 가시길 권한다. 에필로그에서는 이순신에 대해서 기획자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넣었다. 지금 거론한 것만 관심있게 봐도 이번 이순신 특별전에서 무엇을 강조하려고 했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아들 '면'의 전사 소식을 들은 이순신은...

- 지금까지 이순신이라고 하면 영웅, 성웅으로 위대한 인물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범접하기 힘든 역사적 인물이라는 거리감도 있다. 이번 전시에서 인간 이순신의 면모도 살펴볼 수 있나.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전시물들은 많다. 전시회 1부, 2부, 3부를 이순신이 실제로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으로 구성했다. 예를 든다면 2부 전시 제목도 '시련과 좌절의 바다를 넘어'인데, 이순신은 임진왜란 속에서 연전연승만 했을 것 같지만 시련과 좌절도 있었다. 그런 시련과 좌절을 극복했다는 것을 전시 제목에서부터 보여주고 있다. 전시장 곳곳 벽면에 적어 놓은 이순신이 직접 쓴 글들을 읽으면서 전시물을 보면 더 큰 느낌으로 와닿을 것이다.

이순신이 둘째 아들 면의 전사 소식을 담은 편지를 받고 딱 펼치니까 '통곡(痛哭)'이라고 써 있었다. 그때 '면이가 죽었구나'를 직감했다. 이순신은 울부짖는다. '내가 가야 되는데 너가 갔구나. 나로인해 생긴 죄인데 너가 가다니.' 그러면서 그 밤을, '하룻밤이 1년과 같다'고 표현한다. 그런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순신도 역시 아버지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에 대한 효심 가득한 문구들을 보면서는 아들로서의 이순신의 마음을 살펴볼 수 있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에서 관람객들이 이순신 영정 전시물을 보고 있다.유성호

- 이순신 특별전을 준비하기 전과 지금 전시회가 진행되는 상황을 비교해보면, 기획자로서 새로운 이순신의 모습을 봤거나 달라진 생각이 있는지.

"특별전 에필로그에 쓴 부분이기도 한데, 이순신이라는 사람을 전시회 준비 전에는 잘 몰랐다. 다른 사람들이 다 아는 것처럼 매일 전투에서 연전연승한 영웅이라는 사실만 알았다. 그런데 실제 전시를 준비하면서 <난중일기>와 <임진장초>를 읽어보니 놀라웠다. 정말 이순신이 그렇게 훌륭한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없지 않았는데, 실제 당시 기록들을 꼼꼼하게 읽다보니 이순신에 푹 빠져들게 됐다."

-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이 있다면.

"옥포·사천·부산포·한산도대첩 등 여러 전투를 겪고나서 왕에게 올리는 보고서(<임진장초>)를 쓰는데, 이순신이 함께 한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다 기록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라웠다. 부상자라든가 사상자들을 어떻게 대우했는지 이런 것들을 보게 됐을 때 '아, 이 분의 명성이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수에서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전투에서 공을 세운 모든 사람의 이름을 기록해놨다. 그런 이순신의 면모를 보면서 '이순신이 승리했기 때문에 위대한 게 아니라 함께 싸운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기억하는 훌륭한 사람이었기에 이토록 오랫동안 존경받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공 세운 부상자와 사상자, 사노비까지 기록한 <임진장초>

- '죽을힘을 다해 싸운 이순신의 전시를 죽을힘을 다해 준비했다'고 했는데, 얼마나 힘들었나.

"이순신의 조카가 쓴 것으로 알려진 <이충무공행록>에 나오는 구절이 있다.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과 조선 수군이 궤멸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순신은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죽을 힘을 다해 싸우면 못할 일이 없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 대목을 떠올리면서 제가 이 전시를 이순신만큼 죽을 힘을 다해 준비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지만,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힘들기도 많이 힘들었다. 전시 한 달 전쯤에는 계속 전시 원고도 써야 되고, 설명카드도 써야 되고, 도록도 내야 하는데 일이 끝나지 않는 거다. 밤샘 작업도 많았고, 새벽 2~3시에 퇴근한 날도 있었다.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의 막을 올리기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고생했다. 전시 기획부터 진행, 유물 대여, 영상과 음향 제작, 인테리어, 홍보, 전시 운영 등의 일을 맡아주신 한 분 한 분이 소중하고 고맙다. 무엇보다도 겨울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전시를 보러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아주신 수많은 관람객 분들께 특별히 감사드린다."

1월 26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에서 학생들이 거북선 모형 영상을 보고 있다.유성호

- 나중에 이순신 특별전을 다시 열게 된다면, 어떤 기획으로 이순신을 조명해 보고 싶나.

"이번 전시에서 이순신에 대한 대체적인 이야기를 펼쳐냈지만, 또 다른 이야기로 전시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전시를 열 당시의 시대가 요구하는 또다른 이순신의 새로운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전시라는 게 과거의 얘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라 바로 지금의 이야기, 이순신을 빌어서 요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때 그 시점에 관객들이 어떤 것에 주목할 것인지가 중심 테마가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들의 이순신이니까, 새로운 이야기가 또 나오지 않을까."

- 전시라는 게 그 시대 흐름과 맞물려야 된다는 것, 현재 속에서 살아 있는 전시의 힘으로 작용해야 된다는 말인가.

"그렇다. 이번에 '우리들의 이순신'이라는 것도 실은 그런 점에 힘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거북선 영상에서도 판옥선에 덮개를 씌운 거, 이건 지금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 당시에서는 새로운 혁신일 수도 있다. 이러한 부분들을 우리가 찾아내서 이야기해 주는 것, 그런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련기사] 박종평 소장 "생전에 이런 '이순신 특별전' 다시 볼 수 있을까?"

서윤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과 충무공 이순신 연구가인 박종평 서울여해재단 연구소장이 1월 26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들의 이순신> 특별전에서 '정왜기공도병' 병풍을 바라보고 있다. 1598년 왜군을 무찌르는 명군의 모습을 담은 채색화 병풍 ‘정왜기공도병’은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과 국립중앙박물관이 각각 앞·뒤 부분을 보관해왔는데, 이번 전시에서 처음으로 나란히 공개됐다.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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