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 : 시위주동자로 몰려 권고사직을 당하다
삼성전자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지금 생각해도 실소가 터집니다. 3학년 2학기가 막 시작된 어느 날 교실에 삼성그룹 인사 담당자가 들어와 반 1등부터 10등까지 지원서를 가져가라더군요. 그런데 일주일 전, 이미 현대그룹에서 10등까지 싹 쓸어간 뒤였습니다. 결국 삼성은 어쩔 수 없이 11등부터 20등까지를 데려갔고, 저도 그 어쩔 수 없이 뽑힌 학생 명단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배치된 곳이 기흥의 1메가 D램 웨이퍼를 생산하던 3라인 팹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다들 반도체가 뭔지 어느 정도 알지만, 당시만 해도 부모님께 반도체니 팹이니 하는 용어를 설명하기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그저 전자기기 부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일한다고만 말씀드렸습니다. 부모님은 그래도 대기업 정규직으로 취직한 게 자랑스러웠는지 제가 회사에서 팹 완공 기념으로 받은 밥그릇을 38년이 지난 지금도 보관하고 계십니다.
삼성전자가 직원을 학력에 따라 5급(고졸), 4급(전문대졸), 3급(대졸)으로 나누던 시절, 열심히만 하면 누구나 승급할 수 있다고들 했지만 실상은 달랐습니다. 2년이 아니라 3, 4년이 걸려도 승급이 어려운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인사고과를 기다리기보다 졸업장을 따는 게 빠르겠다는 판단에, 교대 근무를 하며 야간 전문대에 지원했습니다. 반도체 팹은 교대 근무 체제라 아침 조로 일하면 저녁에는 가까운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는 게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1991년, 시대를 뒤흔든 파도가 저를 덮쳤습니다. 당시 노태우 정권의 폭정에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나섰고 그 과정에 대학생들이 경찰에 맞아 사망하고 또 분신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전 학교에서 뜻 맞는 동기들과 시위에 참여했는데, 그때 필요한 유인물을 제가 직접 작성했습니다.
회사에서 그 사실을 알고는 바로 해고하려 했지만, 명분이 조금 부족했는지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습니다. 대신 그날 이후로 매일같이 인사과 사무실로 출근시키며 사표를 강요했고, 밤마다 같은 부서 선배들이 기숙사로 찾아와 제발 사표를 써달라며 돌아가며 사정했습니다. 일주일 정도 버티다 결국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표를 냈습니다. 제 삶의 첫 번째 사표였습니다.
인사과장은 그날로 저를 삼성전자의 협력업체 한 군데로 데려가 취업을 시켜주었습니다. 사표 강요가 문제가 될까 봐 입막음용으로 자리를 구해준 것이었죠. 하지만 반나절 만에 그곳은 제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 회사 사장에게는 자발적으로 그만두는 것으로 하겠다고 말하고 바로 나왔습니다. 그 후 마트 아르바이트를 하며 남은 6개월의 학업을 마쳤고, 졸업 후 군대에 갔습니다.
두 번째 직장 : 1990년대에 주5일제를 도입한 회사를 내 발로 그만 두다
제대 후 취직한 곳은 모토로라코리아였습니다. 이곳은 팹에서 만든 웨이퍼를 가공하고 포장하는 패키징 회사였는데, 1990년대 초 국내 기업 중 5일제를 시행하는 몇 안 되는 신의 직장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료들도 여유가 넘쳤고 서로에게 다정다감했습니다. 제 삶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직장생활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사표를 낼 일이 생기고 말았습니다.
모토로라코리아처럼 패키징을 주로 하던 아남산업이 웨이퍼 팹 사업에 진출한다고 발표한 것입니다. 당시 생활도 만족스러웠지만, 웨이퍼 팹과 패키징은 그 규모부터가 달랐습니다. 아직 젊어서였는지, 조금 더 크고 최신 기술이 적용되는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봤는데 곧바로 입사 연락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자마자 사표를 냈습니다. 그런데 그날 점심시간, 회사가 중대 발표를 한다며 팀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서울 광장동에 있던 공장을 경기도 파주로 이전하게 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회사에서는 파주로 같이 갈 수 없어 사표를 내는 이들에게 퇴직금 외에 별도의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발표 네 시간 전에 미리 사표를 낸 저는 어떻게 됐을까요? 다행히 인사팀에서는 발표 당일에 낸 사표부터 유효하다고 인정해주었고, 저는 뜻밖의 위로금까지 챙겨 회사를 나올 수 있었습니다. 모토로라코리아에 대한 기억이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세 번째 직장 : <오마이뉴스> 때문에 잘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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