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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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4월 21일 미 의회에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관련해 “정치적 편의가 조건을 앞질러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주제넘은 시건방진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또 다른 핵심 사안을 거론했다. ‘권역 지속지원 허브’(RSH)라는 낯선 용어였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과 밀접한 개념이다. 한국을 미국 군사자산의 ‘유지·보수·정비’(MRO)를 위한 거대한 수리소로 만들겠다는 얘기다. 한국의 항만과 조선소와 정비시설은 미국의 전쟁 수행 능력을 증강하는 군사 인프라가 된다. 중국이 볼 때 한국은 미군의 전진기지가 아닐 수 없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란 한마디로 미국이 제멋대로 한국을 이용하겠다는 말이다. 병력과 장비의 출입 자유는 물론이요, 전략적 가치가 있는 한국의 모든 거점을 구애받지 않고 쓰겠다는 저의다. 그러니 한국을 미군 지원의 허브로 삼는 것은 그러한 전략 하에서 당연한 일이다. 한국은 고정되어 있는 ‘항공모함’이요 미군 무기와 장비의 정비소 밖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어쩌다가 우리나라가 이러한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도 일개 미군 장성 따위가 한국을 갖고 노는 모습이라니 쓴웃음만 나오는 형국이다.

물론 우리의 책임이다. 비록 숭미 극우정권이 주된 비판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주적이라고 일컬어지던 정권들 역시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숭미정권도 결국 국민들이 선택한 결과였지 않은가. 우리는 지난 80년 가까이 미국이 하자는 대로 전부 순응하고 굴종해 왔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한미동맹의 강화”라는 구호다. 그리고 그것만이 우리 외교의 단 하나의 원칙이고 방향타였다. 그러다보니 주한미군은 당초의 대북방어라는 주둔 목적을 벗어나 어느덧 중국을 겨냥하는 실체가 되었고 한국은 그런 미국을 떠받치는 기지가 된 것이다.

미국은 아직도 북한의 위협을 미군 주둔의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 군사적 배치는 중국을 정조준하고 있음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사드 레이더의 운용이 대북 방어용이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은 이제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지난 2월 중순 미국은 우리에게 사전 보고도 허락도 없이 서해상에서 대규모 공군 훈련을 하면서 중국 전투기와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상황을 연출했다. 중국이 한국을 미국의 대중국 전진기지로 여기는 것은 결코 과민한 반응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한중관계의 완전한 복원을 말할 수 있겠는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이 중국을 주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6년 1월 한미 양국 외교장관의 공동성명이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it’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문구를 박음으로써 안전판을 마련했다고 믿었겠지만, 미국은 그건 “당신 생각일 뿐”이라고 일축했을 것이 뻔하다. 왜냐면 ‘개입’의 주체를 영어로만 ‘it’로 표기해놓고 ‘그것’이 미군인지 한국인지를 의도적으로 흐려버렸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그것을 주한미군이라고 생각했지만 미국은 한국이라고 보고 있다.

요는 그것이 미군이든 한국이든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한국이나 한국군이 대만해협 분쟁에 휘말리는 것이든 주한미군이 대중 전쟁에 출동하는 것이든, 한국이 결국 지역분쟁에 휘말리게 되는 것은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번 이란전쟁에서 이란의 공격으로 대파되는 중동 지역 내 미군기지의 모습을 잘 보았듯이, 주한미군이 중국과의 분쟁에 참전하는 즉시 중국은 미군 기지가 있는 한국을 공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혹자는 대만해협에서의 사태 발발 가능성이 없다면서 기우를 버리라 하겠지만 안보에 ‘설마’란 없는 법이다.

더군다나 미국은 국가안보전략(NSS) 및 국가방어전략(NDS) 보고서를 통해 중국을 최우선의 경계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데다, 베네수엘라와 이란이라는 중국의 전략적 파트너들을 때리고 있는 판국에 언제 어디서든 양국 간에 ‘사달’이 날 가능성은 저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미국은 MRO 기지를 한국에 조성함으로써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한층 더 강화하려는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은 중국에 대한 도발 의지를 더욱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 와중에 한국은 바야흐로 미국의 더 확실한 전진기지로 변모하려는 중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변화가 평시의 항만 운영과 정비 계약, 군수지원 협약 같은 일상적 절차를 통해 조용히 진행된다는 점이다. 예컨대 평택과 부산의 항만, 거제와 울산의 조선·정비 설비가 미군 함정과 수송자산의 상시 순환 거점으로 굳어지면 한국은 직접 총 한 발 쏘지 않아도 미국의 역외 작전을 떠받치는 후방기지로 기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국과 중국이 맞붙는 상황에서 주한미군 기지만 공격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미군을 지원하는 한국의 수많은 거점들이 중국 미사일의 목표가 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MRO를 두고 조선업의 일감이 늘어나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숭미주의자들은 바로 그러한 측면을 강조해 한국인을 현혹시킬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목적은 산업협력이 아니라 군사 인프라의 확장이다. 본질은 한국이 얻을 얼마간의 경제적 이득과 국가 안보를 맞바꾸는 위험천만한 거래라는 것이다. 2006년 1월 공동성명은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그것’이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 했지만, MRO는 자칫 한국민의 동의로 ‘그것’이 개입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분명한 대책을 세울 때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은 절대 허용해서는 안 된다. 2006년 문서의 ‘그것’은 주한미군이라고 확실히 규정해야 한다. 또 MRO 협력은 철저히 경제적으로만 이용하고 군사안보 목적과의 결합은 막아야 한다. 그리고 전작권은 당장 회수해야 한다. 한미연합 체제를 파기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우리는 미국의 전진기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미동맹을 절대 선으로 떠받드는 자세를 떨쳐내는 일이다. 그리하여 자주의 길을 걷는 것만이 주한미군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끝.

출처 : 현장언론 민플러스(https://www.minplus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