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주민의 경제 젖줄 말리기 위해 들소 학살
1880년대까지 그레이트 플레인(대평원)의 들소들은 거의 절멸당했다. 백인들은 선주민 학살과 함께 선주민의 경제적 젖줄이던 들소들을 절멸시킴으로써 선주민들의 투항을 유도하려 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선주민들은 연간 10만 마리 미만의 개체만을 사냥해 들소의 수를 1800년대 초반까지 3000만~6000만 마리로 유지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1889년 1월 1일 현재 미국에는 순종 들소가 고작 456마리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 중 256마리는 요세미티 국립공원과 한 줌밖에 안 되는 보호구역 안에 갇힌 상태로 생존했다.(BBC. 2024.12.4. ‘산더미처럼 쌓은 들소 해골들, 더 무섭고 소름끼치는 이유’ 임병선)
노엄이 만든 동영상에 배경으로 비친 들소들은 그러나 AI로 만든 가짜영상이 아니다. 1890년대에 조직적인 들소 보호운동이 시작됐고, 그 덕에 상당수가 복원됐기 때문이다.
들소 보호운동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가 뉴욕에서 1899년에 문을 연 브롱크스 동물원이었다. 거기에서 번식된 들소들 중 14마리가 1913년에 블랙힐즈 남쪽에 있는 윈드케이브 국립공원까지 철도로 실려가 증식됐다.
버팔로 사냥하던 루스벨트, 들소 보호자로 변신
서부 ‘개척’시대 이후 자연보호와 야생동물 보호운동, 국립공원 설치를 추진한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한 사람이 시어도어 루스벨트다. 1901~1909년 대통령(제26대)직에 있던 루스벨트는 트럼프의 ‘돈로주의’보다 100년도 더 전에 제국주의적인 ‘먼로 독트린’을 다시 제창했다.
1858년 뉴욕의 부잣집에서 태어난 그는 20대 후반에 다코다에서 들소 사냥과 목장경영을 하면서 열정적인 ‘개척자적 삶’을 보냈다. 말하자면 그는 맥인들의 서부 ‘개척’시대의 선주민 배제와 들소 절멸정책의 마지막 연대에 가담하면서 자신이 파멸로 몰아간 대상을 애처롭게 여기는 도착적인 수호자와 같은 얼굴을 하고 브롱크스 동물원과 아메리카바이슨협회 설립에 깊이 관여했던 것이다.
그 무렵 국내 정복, 곧 내부 식민지 개척만으로는 부족했던지 루스벨트는 1898년에 미국-스페인 전쟁이 발발하자 해군 차관직을 내던지고 육군 지원병이 돼 선주민과의 전쟁 경험자들과 함께 ‘러프 리이더스’(Rough Riders)라는 의용군 기병대를 창설하고 스페인을 상대로 쿠바 정복 전쟁에 참전했다. 1901년에 대통령이 된 뒤에는 강력한 해군력을 토대로 카리브해 주변에서 강압적인 제국주의 ‘곤봉 외교’(Big Stick Diplomacy)를 펼치는 한편, 태평양 쪽에서는 열강들에 잠식당하고 있던 중국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 ‘문호개방’정책을 추진했다.
인종차별주의자 루스벨트의 한국과의 악연
그때 루스벨트는 일본을 아시아대륙 진출의 교두보로 이용하려 했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데에는 루스벨트의 그 전략이 크게 기여했다. 1904년 러일전쟁 때 루스벨트는 일본의 전쟁비용을 대는 재정 지원에 적극적이었다. 영국과 함께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끝나도록 하는 데 기여한 그는 1905년 러-일 포츠머스 강화조약을 중개하면서 일본에게 유리하게 체결되도록 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그해 7월 루스벨트의 밀명을 받은 육군장관 윌리엄 태프트가 일본총리 가쓰라 다로를 만나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를 보장하는 대신 조선에 대한 일본의 지배를 보장해 준 것이 이른바 ‘가쓰라-태프트 밀약’이다.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였던 루스벨트는 백인 외의 인종들을 경멸했으나 일본을 이용하기 위해 일본인들을 ‘준백인’ 대우를 해 주면서 조선인들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아 마땅한 미개인 취급을 했다.(<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한국> 나가타 아키후미)
이후 미국은 줄곧 일본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일본의 독점적인 중국침략이 노골화한 뒤 적대적 관계로 돌아섰고, 일본군의 진주만 기습으로 대일 전쟁에 돌입했다. 일본 패전 뒤 미국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을 분단해 소련과 분할통치했다. 분단과 전쟁, 1천만 이산가족 등 한국현대사의 질곡이 거기서 비롯됐다는 것을 사람들은 잊고 있다.
‘인종전시’까지 한 백인들의 비백인 차별 여전?
브롱크스 동물원과 아메리카바이슨협회 설립에 관여한 또 다른 주요 인물 중에 매디슨 그랜트가 있다. <위대한 인종의 소멸>(1916)을 쓴 매디슨 그랜트는 당시 동유럽과 남유럽에서 새로운 이민물결이 미국으로 밀려들고 중국과 일본 등 아시아인 이민도 늘어나자 ‘이민의 위협’을 선동하고 다른 인종과의 혼혈을 부정하면서 “위대한 인종”인 “북방인종”의 소멸을 걱정한 인종주의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랜트의 우생학적인 주장은 결국 1924년의 이민법(1890년 인구 조사를 기준으로 미국의 국가별 이민 쿼터를 2% 이내로 제한해 동·남유럽 및 아시아 이민을 차별·배척한 법)으로 이어졌다.
이 또한 트럼프의 ‘돈로주의’와 기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몽골계 선주민과 히스패닉 등 남방계 인종의 미국 이민에 거부감을 지닌 트럼프 정권의 전 국토안보부장관 노엄도 노르웨이계의 이른바 ‘북방인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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