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들의 고민이 곧 나의 고민이었다
'스기나미의 변혁'을 불러온 사토코 구청장은 출마 전 20여 년 간 해외에서 생활했다. 2003년부터 국제 정책 싱크탱크 비정부기관(NGO)인 '트랜스내셔널 연구소'(TNI)에서 활동하던 그는 벨기에에 거주하고 있던 때 구청장으로 출마하지 않겠느냐는 권유를 받았다.
그는 "처음에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지역에서 활동하는 사람 중에서 후보자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필요하다면 제가 정책 지원 정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라며 본인이 직접 출마할 생각은 크지 않았다고 전했다.
"아주 고민스러웠다. 가족들도 모두 벨기에에 있었고 하던 일도 있고, 출마하면 생활 거점도 바뀌는 것이라 단기간에 결정한다는 것에 무리가 있었다. 그런데 완전히 새로운 전략, 경력을 가진 인물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방자치의 민주화나 공공정책을 통한 민주적 정치를 연구하는 연구자로서, 특히 공공서비스, 공공재, 민주적인 관리 운영 등을 연구한 학자로서 스기나미구가 안고 있는 과제들을 들었을 때 이건 공공정책의 문제라고 느꼈다.
제 경험과 스기나미구의 고민, 주민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합치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이렇지 않았다면 출마가 무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지금까지 연구와 관련 운동을 하면서 정치를 통해서 이를 현실화하고 싶었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됐다."
사토코 구청장은 선거를 불과 두 달 앞두고 출마를 결심했다. 짧은 선거 운동 기간에 단연 주목받았던 것은 여성 선거 운동원의 비중이 컸다는 점이다. 스기나미구에는 총 18개의 전철 및 기차역이 있다. 모든 역에 여성 운동원들이 나서서 사토코 후보의 당선을 위해 뛴 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처럼 여성들이 주도하는 선거 운동을 하게 된 배경에 대해 사토코 구청장은 "지역 안에서 생활하고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되면서 여성이 힘을 발휘한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통상 선거는 단체나 운동원, 운동원 가족 등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정당 관계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은 참여하기 어렵다. 기존 운동원들은 대부분 남성 중심이었다"며 "선거에서 일반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라고 그간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사토코 구청장은 "풀뿌리 민주주의인 지방자치 선거의 경우 개인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즉 하고 싶은 사람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열려 있고, 실제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라며 특정 집단에 주도되지 않는 선거운동 특색으로 인해 여성들의 힘이 발휘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스기나미구가 가지고 있는 자발적 시민운동의 전통도 이러한 흐름이 만들어지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사토코 구청장은 "스기나미구의 뿌리 깊은 시민 자치는 정말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1946년부터 1958년까지 비키니 환초에서 미국의 핵무기 실험이 이어졌다. 1954년 스기나미구의 오기쿠보 마을 회관에서 핵실험 반대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의 시발점은 여성들이었다. 방사능으로 오염된 생선을 아이들에게 먹일 수 없다는 이유였다. 40일동안 이어진 운동에 구민의 70%가 반대 서명에 동참했다.
"아주 역사적인 일인데 당시 스기나미구가 핵무기에 반대하는 세계의 운동 중심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경험으로 스기나미구는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됐다.
1950~60년대 여성들의 활동으로 또 다른 변화를 만들어 낸 사례가 있는데 바로 어린이집이다. 여성이 사회활동을 시작한 이후 어린이집을 만드는 운동이 시작됐다. 아이를 맡기지 못하면 여성들이 일을 하지 못하다 보니 생긴 변화였다.
이어 학교가 종료된 이후 아이들이 갈 수 있는 '아동관'이라는 곳도 만들었다. 한 초등학교에 하나의 아동관을 만들었다. 스기나미구에는 주민들이 함께 이러한 시설을 만들어 간 역사가 있다."
이렇게 만들어진 아동관은 자민당 소속의 구청장이 구정을 맡은 이후 점점 기능이 축소되어 갔다. '행정의 합리성'을 이유로 아동관의 역할과 기능을 재편한 것이다.
사토코 구청장은 "시민자치의 상징인 아동관을 행정 합리성만으로 재편하겠다는 계획에 대해 깊은 분노"가 주민들에게도 있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사토코 구청장은 취임 이후 아동관의 공적 기능을 이전으로 회복하고 확대하려고 시도했다.
"구청 직원들의 태도가 바뀌었어요"
사토코 구청장은 취임 이후 아동관의 기능 복원뿐만 아니라 초중등학교의 무상급식을 추진하는 등 공적 기능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그는 '인프라 중심 대 사람 중심', '밀실 결정 대 함께 결정', '사후적 행정 대 참여 행정 기반의 예방 행정'을 언급하며 취임 이후 후자의 방향으로 구정을 운영해 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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