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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판매하는 '전쟁기계' 미국, 군산복합체의 민낯

  • 분류
    아하~
  • 등록일
    2026/05/07 09:48
  • 수정일
    2026/05/07 09:4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전지윤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misotolenin@gmail.com

사회운동가·연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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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

  • 입력 2026.05.07 09:15

  • 수정 2026.05.07 09:20

  • 댓글 0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구조 해부

아이젠하워도 경고, 전쟁기계의 민주주의 위협

양당 카르텔과 로비스트가 만드는 전쟁 생태계

WMD 거짓말에서 드론 암살까지 전쟁의 진화

AI와 테크노 파시스트가 함께한 이란 침략전쟁

연대와 공감으로 전쟁기계 전원을 꺼야 할 때

미군 중부사령부 공보실이 2026년 5월 2일 공개한 이 미 해군 제공 사진은, 2026년 4월 27일 알레이 버크급 유도 미사일 구축함 마이클 머피함(DDG 112)이 군수지원함 헨리 J. 카이저함(T-AO-187)으로부터 해상 보급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행정부가 야심 차게 밀어붙였던 이란 침략전쟁이 처참한 패배와 끝없는 수렁으로 빠져들면서, 미국의 패권주의는 유례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혼돈의 시기에 출간된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기계의 야망>은 미국이 왜 평화가 아닌 파괴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를 해부하는, 흥미롭고도 유익한 텍스트이다.

이 책은 2001년 '9.11 테러' 이후에만 해외 군사개입을 통해 최소 40만 명의 사망자와 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낳은 거대한 '전쟁기계'의 내부 구조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이 책이 묘사하는 미국의 '전쟁기계'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를 자랑한다. 현재 미국은 전 세계 80개국에 걸쳐 약 750곳의 군사기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17만 명에 달하는 상시 주둔군을 배치해 두고 있다.

이는 인류 역사상 유례가 없는 규모의 '지구적 포위망'이다. 오늘날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분쟁 지역을 살펴보면, 한쪽 혹은 양쪽 모두가 미국이 설계하고 제조한 무기를 들고 서로를 살육하는 비극적인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미국은 '평화의 수호자'를 자처하지만, 실제로는 파괴와 살육의 도구를 공급하는 가장 큰 '죽음의 상인'인 셈이다.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 트럼프와 1조 달러 전쟁 기계의 야망/ 윌리엄 D. 하텅, 벤 프리먼 저/ 백우진 역/ 부키

역설적이게도 이 거대한 군산복합체의 실체를 가장 통렬하게 고발한 인물은 반전 운동가가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자 5성 장군 출신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였다. 보수적 공화당이 배출한 대통령인 그는 퇴임 연설을 통해 군산복합체가 민주주의를 파괴할 위험을 경고했다. 그는 이미 1953년에도 다음과 같은 연설을 남겼다.

“만들어지는 모든 총, 진수되는 모든 군함, 발사되는 모든 로켓은 궁극적으로 굶주리지만 먹지 못하는 자, 추위에 떨지만 입지 못하는 자로부터 도둑질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문장은 전쟁의 비용이 복지와 생존권을 찬탈한 결과임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하지만 아이젠하워의 이 준엄한 경고 이후에도 미국의 전쟁기계는 더욱 거대하고 정교하게 성장해 왔다.

이 책의 장점 중 하나는 군산복합체를 단순히 무기 제조 기업들로 한정 짓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군비 확대를 가능하게 만든 공화-민주 양당의 카르텔, 거대 자금을 이용한 로비스트들, 전쟁의 논리를 정당화하는 싱크탱크, 그리고 국방부의 연구비를 수주하며 지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학과 학계의 유착 관계를 촘촘하게 분석한다.

더 나아가 미디어와 할리우드, 그리고 오늘날의 게임 산업이 대중의 무의식 속에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환상을 어떻게 심어주는지를 세밀하게 고발한다. 할리우드 영화가 묘사하는 미군의 영웅적 서사와 전쟁 게임이 선사하는 가상 살육의 쾌감은, 실제 전쟁터에서 벌어지는 참혹한 현실을 가리고 전쟁을 하나의 '멋진 소비재'로 탈바꿈시킨다.

이러한 긴밀한 연결망 속에서 미국의 군사주의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현상이자 생태계로 자리 잡았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날 이스라엘과 같은 대리 세력에게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며 폭격과 학살을 '외주화'하는 방식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는 베트남 전쟁의 참담한 패배 이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고안된 '닉슨 독트린'의 연장선상에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군의 폭격 피해가 발생한 이란 남부 호르모즈간 주 미나브 마을의 초등학교 인근 공동묘지에서 인부들이 수십개의 무덤 구덩이를 파고 있다. 2026.3.4. 로이터 연합뉴스

2003년의 이라크 침공은 이러한 '베트남 후유증'에서 벗어나 미국이 다시 한번 직접적인 무력을 과시하려 했던 위험한 시도였다. 이라크 전쟁의 서막은 거대한 거짓말이었다.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고 있다'는 명분은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가공할 사기극이었다.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콜린 파월은 이 허무맹랑한 사기극에 앞장섰다.

하지만 비판적이어야 할 미국의 '진보 언론'들조차 "그의 목소리는 힘차고 흔들림이 없었다"며 무비판적인 신뢰를 보냈다. 당시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는 미디어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로 칭송받으며 전쟁의 광기를 부추겼다. 결과는 처참했다. 이라크 전쟁은 민주주의의 이식은커녕 중동 전체를 혼란에 빠뜨린 지정학적 대재앙으로 끝났다.

미국 사회에는 베트남전보다 훨씬 심각한 '이라크 후유증'을 남겼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집권한 버락 오바마는 중동에서 지상군을 철수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대신 그는 드론을 활용한 암살과 정밀 폭격이라는 '깨끗해 보이는 전쟁'에 매달렸다. 오바마 집권기 동안 군비는 오히려 증가했고, 드론 공격 횟수는 부시 정권 때보다 무려 10배나 급증했다.

이러한 첨단 기술 중심의 군비 투자와 개발은 오늘날 일론 머스크나 팔란티어(Palantir)의 피터 틸과 같은 '신세대 기술낙관주의적 군국주의자'들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로 전쟁을 관리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 '테크노 파시스트'들은 트럼프의 네오파시스트 세력, 그리고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신네오콘(New Neocons)들과 결합했다.

이 기괴한 연합이 일으킨 것이 바로 이번 이란 침략전쟁이다. 그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대리 세력을 앞세우고, AI 기반의 최첨단 무기들을 활용하면 단기간에 손쉬운 승리가 가능할 것이라는 '개꿈'을 꾸었다. 그러나 현실은 철저한 실패였다. 이제 트럼프와 미국은 베트남과 이라크를 뛰어넘는, 회복 불가능한 '이란 후유증'에 아주 오랫동안 시달리게 될 것이다.

 

2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 도심에서 열린 '왕은 없다'(No Kings) 시위에 참가한 이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6.3.28 LA EPA 연합뉴스

패배가 자명함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군산복합체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트럼프는 내년 군비 예산을 1.5조 달러로, 기존보다 50%나 증액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사실 트럼프는 후보 시절 군비 축소를 약속하며 다음과 같이 군산복합체를 비판한 적이 있다. “그들은 늘 전쟁을 하고 싶어합니다. 미사일 한 기는 200만 달러이기 때문입니다.”

전쟁이 벌어질수록 더 많은 무기를 팔아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는 구조를 지적한 발언이었다. 대통령이 된 트럼프가 태도를 바꾼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엄청난 비용을 들여 만든 고가의 무기를 폭격 한 번으로 날려버리는 것은 극도의 자원 낭비이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 즉 '투자와 이윤'의 관점에서 보면 전쟁은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첫째, 군수산업은 거대한 일자리와 수요를 창출한다. 둘째, 전쟁이 발발하면 소모되는 탄약과 무기를 보충하기 위해 군수기업들은 천문학적인 매출을 올린다. 셋째, 신무기 개발 과정에서 탄생한 기술적 혁신(인터넷, GPS 등)은 민간 산업으로 전이되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한다. 넷째, 전쟁으로 초토화된 국가의 '재건 사업'은 건설 자본 등에 또 다른 기회의 땅이 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창조적 파괴'가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구현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전쟁의 승자는 약소국의 자원을 무상으로 혹은 헐값에 강탈할 권리를 얻는다. 좌파적 경제 분석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군사적 케인즈주의' 혹은 '영구 무기 경제(Permanent Arms Economy)' 효과로 설명해 왔다. 역사는 이를 증명한다.

세계 자본주의가 1930년대의 대공황을 완전히 탈출하기 위해서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거대한 불길이 필요했다. 또한 한국전쟁은 패전국 일본의 경제를 부활시킨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베트남 전쟁은 한국 경제 성장의 초기 자본을 마련해 준 토대가 되었다. 미국-소련 냉전기 동안 지속된 군비 경쟁은 역설적으로 미국 경제 장기 호황의 엔진 역할을 했다.

이 책이 인용하듯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같은 진보적 경제학자조차 과거에 "국방부에 더 많은 돈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배경에는 이러한 경제적 파급 효과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아이젠하워의 군축 노선이 미국의 지배적 권력 집단에 의해 거부당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4월 1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버지니아 주 샬러츠빌로 가기 위해 메릴랜드 주 앤드류스 공군기지에서 에어포스 원에 탑승하기 전 기자들을 향해 걸어가며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6.4.10 .AFP 연합뉴스

사실 아이젠하워가 평화주의자였기 때문에 군비를 줄이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재래식 군사력을 줄이는 대신, 핵무기 같은 전략 무기에 의존함으로써 예산을 아끼고 그 돈을 민간 경제 발전에 투자하자는 '효율적 제국주의'를 지향했다. 하지만 군비 투자 그 자체가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된다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그런 목소리는 줄어들었다.

결국 군비 확대의 뿌리에는 특정한 정파나 특정한 산업과 기업의 필요를 넘어,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체제 자체의 내적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군사적 케인즈주의'나 '영구 무기 경제'에 지적과 분석까지 나아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고민과 분석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적 토대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반전 평화 운동에 참여하려면 반드시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를 이해하고 반대해야 한다'는 식의 기계적인 결론에 빠져서는 안 된다. 장기적인 이론적 분석과 단기적인 실천적 대응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은 성마른 어리석음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방향들을 제시하는 것도 장점으로 보인다.

현재 전통적인 반전 평화 운동은 참가자의 감소와 고령화라는 문제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지적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집단학살과 미국의 이란 침공이 자행되는 이 위태로운 시기에, 평화를 외치는 목소리가 충분치 않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반전 운동은 새로운 세대와 평화를 갈망하는 모든 시민이 쉽고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는 폭넓은 운동이 돼야 한다.

그 점에서 저자가 제안하는 '운동의 연결'은 더 가슴에 와닿는다. "그동안 이민 개혁, 인종과 경제 정의, 기후변화 대응, '끝없는 전쟁' 종식, 핵무기 경쟁 중단, 가자 지구 학살 저지 등 관련된 각각의 대응을 목표로 한 운동 조직들은 때때로 협력해 왔다. ··· 지금이야말로 이러한 연대와 협력, 그리고 더 넓은 평화 네트워크로 통합이 이루어져야 할 순간이다."

반전 운동은 고립된 섬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쟁기계가 1조 달러의 예산과 기술로 무장하고 있다면, 우리는 연대와 공감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로 그들에 맞서야 한다. 트럼프의 야망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가라앉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전쟁기계의 전원을 꺼버리고 진정한 평화의 길을 되찾아야 할 골든타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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