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국가주석의 초청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13일부터 15일까지 중국을 국빈 방문했다. 중국 외교부는 5월 11일에야 중미 정상회담 일정을 공식 발표한다. 중국 정부가 마지막 순간에 와서야 정상회담 날짜를 확정 공표한 것은 원래 4월 초 개최키로 합의했던 일정을 미국이 일방적으로 연기한데 대한 보복인 측면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중국으로서는 이번 회담에 대한 기대치가 없다는 뜻을 애써 드러내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사실 중국이 미국에게 애걸복걸할 사안은 없었다. 온통 미국이 손을 벌려야 하는 이슈만 가득했다.

 

미국은 중국에 희토류와 핵심광물의 안정적인 공급을 사정해야 했고, 대두를 포함한 미국산 농산물, 보잉 항공기, 에너지 구매 역시 부탁해야 했다. 반면에 중국이 아쉬울 것은 미국의 첨단 반도체와 AI 정도였지만, 중국으로서는 설령 엔비디아 칩이 없더라도 자체 기술력으로 얼마든지 자생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특별히 절실할 것도 없다. 사실 AI의 군사적 결합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이 중국과의 대화와 협력을 요청해야 하는 측면이 더 크다. 한편 대만 문제에 관해 중국은 미국이 대만의 독립을 “반대한다”는 언사를 발해 주기 원했겠지만, 종전처럼 “대만에 대한 미국 정책은 변하지 않았다”는 선이라고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시진핑은 대만 문제에 대해 트럼프에게 ‘선빵’을 날렸다. 중미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대만 문제를 잘못 처리하면 양국이 충돌하거나 심지어 분쟁에 빠져 전체 관계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대만 독립과 대만해협 평화는 물과 불처럼 양립할 수 없다고 했으며, 미국은 대만 문제를 다룰 때 “각별히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진핑의 말에 묵묵부답하던 트럼프는 회담이 끝나고 루비오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중국이 대만을 무력으로 취하려 한다면 “끔찍한 실수”가 될 것이라는 입장을 뒤늦게 내놓았을 뿐이다.

시진핑의 역사 강의 또한 준엄한 것이었다. 그는 세계가 “백 년에 한 번 있을 변동” 속에 있고 국제정세가 요동친다고 전제한 뒤, 중국과 미국이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넘어설 수 있느냐, 새로운 대국관계 패러다임을 만들 수 있느냐, 세계에 더 큰 안정을 제공할 수 있느냐가 역사와 세계와 인민이 던지는 질문이라고 지적했다. 시진핑의 답은 “건설적인 전략적 안정 관계”였다. 즉 미중은 경쟁하더라도 통제 가능한 범위 안에서 해야 하고, 차이는 관리해야 하며, 평화는 예측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트럼프는 “당신은 위대한 지도자다”라고 답했다.

트럼프는 할 말이 많은 승자가 아니었다. 새해 벽두부터 중국의 남미 형제국 베네수엘라를 침공한데다 중동의 중국 우방 이란을 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중국 앞에서 제대로 고개를 들 처지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위법판정을 받은 상호관세와 글로벌관세를 무기로 세계를 협박해 온 장본인이 입만 열면 거짓말만을 쏟아 내온 불신의 화신이고 보면 과연 트럼프가 무슨 낯으로 중국에 기어들어 갔는지 신기할 뿐이다. 그런 미국이 이란 문제에 관해 중국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식으로 말하는 모습을 보면서 중국으로서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을 듯하다.

한마디로 미국은 지금 안팎으로 처량한 모습니다. 적벽에서 처참하게 참패한 조조가 화용도에 나 앉아있는 형국하고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조조가 완전히 멸망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당장은 체면도 병력도 위신도 크게 상한 채 빠져나갈 길을 구해야 하는 처지였다. 트럼프도 미국이라는 제국의 물적 힘을 갖고는 있지만, 이번 베이징행의 외교적 자세만 놓고 보자면 “내가 중국을 굴복시키러 간다”는 식의 허세는 애초에 가당치 않았던 것이고, “시진핑이 체면을 좀 세워주면 그것을 성과라고 포장해 돌아가야 하는” 모습에 가까웠던 것이다.

1956년 수에즈 위기 때 영국은 프랑스, 이스라엘과 함께 나세르의 이집트가 국유화한 수에즈 운하를 되찾으려 군사행동을 벌였지만 미국과 소련의 압력 앞에서 물러난다. 영국으로서는 ‘개망신’이었다. 영국이 군사력 부족으로 진 것이 핵심이 아니다. 세계질서를 명령할 자격을 잃었다는 사실이 공개적으로 드러났다는 점이 요체다. 현재 미국의 처지가 딱 그렇다. 미국은 아직 항공모함, 달러, AI 반도체, 제재권력을 갖고 있지만 세계를 향해 “질서”를 말할 때 아무도 신뢰를 보내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1905년 러일전쟁 뒤 유럽의 거대한 제국 러시아 역시 포츠머스 조약에서 일본의 한반도 지배와 동아시아에서의 우위를 인정해야 했다. 백인 제국이 아시아 신흥강국 앞에서 체면을 구긴 장면이었다. 지금의 미국이 러시아처럼 군사적으로 패전한 것도 아니고 중국 앞에 무릎을 꿇은 것도 아니지만, 심리적으로나 문명사적으로 장면은 비슷하다. 한때 중국을 개방시켜 세계질서에 편입시킬 대상으로 보던 미국이 이제는 중국에게 미국산 물건을 사 달라, 희토류를 풀어 달라, AI와 핵 문제를 관리하자고 요청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최근에 발표된 <2026 민주주의 인식 지수(Democracy Perception Index)>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이스라엘, 북한, 아프가니스탄, 이란과 함께 세계에서 평판이 가장 나쁜 5개국에 포함되어 있다. 이스라엘이 최악이다. 반면, 조사 대상 83개국 중 76%가 중국에 대해 더 나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미 대륙을 포함해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도 미국이 중국보다 더 긍정적으로 인식되는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미국이 귀하의 국가에 군사 기지를 두어야 하는가”라고 물었을 때 97개국 중에서 일본, 한국, 이스라엘, 우크라이나 단 4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강한 “아니오”로 답했다. 모두의 경멸을 한 몸에 받은 골리앗이 지금 미국의 모습이다.

중국은 이런 미국을 굳이 거칠게 몰아붙일 필요가 없었다. 오히려 점잖게 환대하고, 국빈 방문의 격식을 차려주고, 보잉 몇 대, 대두 몇 톤, 무역·투자 양국 협의체 같은 선물을 쥐어 주면 되었다. 중국은 미국이 완전히 무너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다만 미국이 중국을 너무 몰아붙이지 못하게 만들고, 대만 문제에서 미국의 태도를 흔들어 놓으며, 반도체와 AI, 희토류, 관세 같은 핵심 문제에서 시간을 벌면 그만이었다. 시진핑은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조조가 살아 돌아가 혼란을 조금이나마 더 관리해주는 편이 자신에게도 유리하다고 계산하는 관우였다.

이번 중미 정상회담의 결론은 ‘큰 타결’보다는 양국 간 수면 아래에서 전개되는 보이지 전쟁의 관리였다. 중미 전략경쟁을 끝내는 회담이 아니라 작년 부산 회담 이후의 불안정한 휴전을 관리하고 양쪽 정상에게 국내정치용 성과를 주는 회담이 되었다는 얘기다. 특히 안보 의제는 성과보다 충돌 관리 쪽에 가까웠다. 미국은 중국이 자기 편에 서서 이란을 압박하기를 요구했겠지만 중국으로서는 응할 생각이 없었다. 대만 문제에서는 중국이 미국의 입장 변경을 원했겠지만 미국은 공식 정책 변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전체적으로 중미 신냉전의 해빙은 없다. 충돌 비용을 줄이기 위한 거래가 전부였다. 트럼프는 “내가 얻어냈다”는 성과가 필요했고, 시진핑은 “미국 대통령이 베이징에 와서 중국의 위상을 인정했다”는 장면이 필요했다. 그래서 외형은 화려하고 발표는 긍정적이었지만, 이란, 대만, 반도체, AI, 희토류를 둘러싼 본질적 경쟁은 지속될 것이다. 특히 반도체와 AI는 미국이 전적으로 양보하기 어렵다. 지금 미국이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거의 마지막 전략 고지다. 그러므로 미국의 봉쇄, 중국의 우회 및 국산화, 제3국 경유 통제, AI 모델 경쟁은 계속될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수에즈 이후의 영국처럼 신뢰를 잃었고, 포츠머스의 러시아처럼 아시아 강국의 상승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며, 화용도의 조조처럼 시진핑이 열어준 길로 체면을 건져 돌아갔어야 하는 처지다. 그러나 조조는 화용도 뒤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시 세력을 수습했다. 영국은 수에즈 뒤에도 핵보유국과 금융 강국으로 남았다. 러시아도 1905년 뒤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은 당장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미국이 세계 질서를 이끌던 시대는 영영 종말을 고하고 있다. 트럼프가 새겨야할 이번 중미 정상회담의 의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