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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군이 먼저 쏘지 않았다"는 아이들 말에, 학교에 518m 길을 냈다

학생자치회 아이들과 함께 교정에 '오월길'을 냈다. 당일 등교하는 전교생이 518m를 함께 걸은 뒤 교실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 서부원

"무장한 시민들의 집단 저항으로 복수의 군인들이 사망한 뒤 계엄군의 시위대 진압이 폭력적으로 돌변했다는 게 사실인가요?"

이쯤 되면,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역사 왜곡은 끝이 없다고 해야 할 성싶다.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 같은 게 돼버렸다. 이른바 '북한군 개입설'이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젠 계엄군을 향한 무장한 시민들의 저항을 '선제공격'인 양 진실을 비틀고 있다. SNS에 떠도는 믿거나 말거나 식 이야기들이 아이들의 인식 공략하고 있는 모양새다.

일단 짚고 넘어가자. 5·18 당시 사망한 계엄군은 대부분 진압 부대 간 오인 사격으로 인한 희생이었다. 군용 차량 조작 미숙으로 숨진 군인도 있고, 시민군과의 직접적 교전 중에 사망한 경우가 더러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분명한 건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력 진압과 집단 발포 이후 시민들이 자위를 위해 무장했다는 사실이다.

아이들의 역사 인식 파고드는 '가짜뉴스'

'형해화(形骸化).' 빈 껍데기만 남게 된다는 뜻으로, 5·18 계기 교육을 준비할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단어다.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교육하고 있지만 늘 개운찮은 뒷맛을 남긴다. 애면글면하며 목이 터질 듯 가르쳐 봐야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에 전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없다. 교육적 효과로 치면, 요즘 아이들에게 학교 수업은 SNS의 적수가 못 된다.

과거엔 5월 18일 당일 학생자치회 주관으로 종이학을 접어 국립 5·18 민주 묘지를 참배했고, 몇 해 전부턴 아침 등굣길 주먹밥 나눔 행사를 해오고 있다. 해마다 학교 현관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점심시간 등을 이용해 작은 음악회를 개최하는 등 다채로운 추모 행사를 연다. 5·18을 기억하고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오월길은 야외 공연장으로 활용되는 민주광장을 거치도록 동선을 꾸몄다. 이곳에서 20일에 5.18 작은 음악회가 열릴 예정이다. ⓒ 서부원

우리 학교가 5·18을 유독 각별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5·18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라는 윤상원 열사의 모교라서다. 또한 계엄군 간의 오인 사격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뒤 대검에 무참히 찔려 사망한 김평용(당시 고2) 희생자의 모교이기도 하다.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의 유해가 암매장된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던져주었다.

'5.18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 윤상원 열사의 흉상이 교정에 서 있다. 오월길의 '중심'이자 '반환점'에 해당하는 위치다. 당일 흉상 앞에는 하얀 국화꽃이 놓이게 될 것이다. ⓒ 서부원

10여 년 전 교정 뒤뜰에 윤상원 열사의 흉상을 세웠고, 학교 도서관 내엔 김평용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 동판을 설치했다.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즐겨 찾는 홈베이스에도 그들을 추모하는 기억의 벽을 조성해 두고 선배들의 숭고한 희생을 떠올릴 수 있도록 했다. 학교는 그 자체로 역사교육의 장이 되어야 한다는 지론에서다.

그러나 이토록 오랜 노력에도 아이들의 5·18에 대한 기억은 시나브로 흐릿해져만 간다. 그 틈을 비집고 SNS를 통한 온갖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현실이다. 아예 5·18에 대해 무지하다면 처음부터 다시 가르치면 될 일이지만, 그들의 관심이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게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교묘하게 왜곡하고 폄훼한 역사를 진실로 믿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손 놓고 있다가는 윤상원 열사와 김평용 희생자조차 대한민국 군인을 향해 총부리를 겨눈 가해자로 낙인찍힐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마저 있다. 아무리 극악한 계엄군이라 해도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했을 리 없지 않냐는 '전두환의 발언'을 그대로 내뱉는 아이가 있다. 계엄군의 총칼에 학살당한 시민들은 '무고하지 않았다'는, 곧 '계엄군의 폭력 진압을 자극했다'는 뜻이다.

46주년 맞아 시작한 오월길 프로젝트

46주년을 맞는 올해는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로, 지금껏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새로운 행사를 기획했다. 이름하여 '오월길 조성 프로젝트'다. 광주 시내 곳곳에 조성된 오월길이라는 이름을 빌려와 학교의 교정에 5·18의 역사적 의미를 담아 새길을 낸다는 취지다. 5월 18일 아침 등굣길에 전교생이 그 길을 따라 걸은 뒤 교실로 들어가도록 하는 행사다.

도서관 입구 벽에 설치한 김평용 희생자 추모 동판. 도서관을 오가며 아이들이 늘 접할 수 있도록 했다. ⓒ 서부원

교문을 기점으로 윤상원 열사의 흉상과 김평용 희생자의 추모 동판이 설치된 도서관, 야외 학습장으로 쓰이는 민주 광장을 둘러보도록 오월길 동선을 꾸몄다. 그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총 길이도 518m로 한정했다. 교정이 워낙 넓은 까닭에 지름길을 찾아야 하는 나름의 고충도 있었다. 여느 학교에선 상상하지 못할 '행복한 고민'이다.

오월길을 곳곳엔 5·18의 전개 과정과 역사적 의미를 알 수 있도록 카드 뉴스 형태의 학습 자료를 게시할 예정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선 간단한 역사 퀴즈를 풀게 한 뒤 기념품을 제공할 것이다. 각자 손에 쥔 스마트폰을 활용해 QR코드를 찍게 하는 방식이다. 길의 안내는 학생자치회 임원들의 몫이다.

길을 따라 군데군데 표식을 부착했다. 검은색과 빨간색의 두 리본을 포개 매달았다. 바람에 나부끼는 두꺼운 비닐 리본은 제주 올레길의 주황색과 파란색 리본 표식에서 아이디어를 따왔다. 리본 위에는 '살레시오 오월길'이라는 이름과 '역사는 망각에 맞선 기억의 투쟁'이라는 체코 출신 작가 밀란 쿤데라의 문장을 적었다. 5·18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여겨서다.

오월길 곳곳에 리본 표식을 매달아놓았다. 리본을 보며 함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 서부원

리본의 색깔을 검은색과 빨간색으로 정한 데에도 이유가 있다. 전통적으로 검은색은 추모의 의미를 담고 있고, 빨간색은 희생과 열정을 상징하는 색깔이어서 프로젝트의 취지에 맞췄다. 표식의 용도로 사용되는 만큼 멀리서도 눈에 띄어야 하는 점도 고려했다. 신록의 계절이니만큼 초록색의 보색으로서 빨간색은 여러모로 효과 만점이었다.

더욱이 두 색깔의 조합은 1980년대 광주를 연고로 한 프로야구팀인 해태 타이거즈의 유니폼을 연상시킨다. 지금은 모기업도 바뀌고 당시의 유니폼도 사라졌지만, 광주 시민들에게는 그 시절의 기억이 여전히 선명하다. 당시 프로야구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던 해태 타이거즈는 군사독재정권에 의해 소외당하고 차별받았던 호남 사람들의 한풀이 대상이었다.

해태 타이거즈가 우승할 때마다 관중들이 감격해하며 얼싸안고 떼창으로 불렀던 노래는 '목포의 눈물'이었다. 일제강점기 목포 출신의 명가수 이난영의 노래였지만, 정작 해태 타이거즈의 공식 응원가로 자리매김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노랫말 속의 눈물은 5·18 당시 희생된 이웃들에 대한 슬픔의 눈물이자, 살아남은 자로서 흘리는 미안함의 눈물이었다.

가짜뉴스 시대, 결국 기억은 발로 걷는 것

요즘엔 아이들조차 광주와 전남 시민들의 특정 정당에 대한 몰표 행태를 두고 '공산당 같다'고 비아냥댄다. 이곳 광주의 아이들도 투표 결과를 문제 삼아 민주주의가 미성숙한 건 영호남이 별반 다르지 않다고 꼬집는다. 독재정권의 악의적인 호남 차별에 대한 시민의 저항이라는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간과한 강퍅한 인식에 아이들마저 물든 모양새다.

온 정성을 쏟은 프로젝트지만, 일부에선 그런다고 아이들의 '세뇌된 머리'가 달라질 것 같으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그들 말마따나 역사 왜곡과 폄훼를 일삼는 SNS의 공세 앞에서 며칠짜리 오프라인 추모 행사가 '언 발에 오줌 누기'일지도 모른다. SNS를 통해 진실을 알리는 반격이 더 실효적이라는 주장도 있다. '눈에는 눈'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SNS로 인해 생겨난 문제를 SNS로 해결할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단언컨대, SNS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존 그레셤의 법칙이 완벽하게 적용되는 공간이다. AI가 머지않아 인간의 뇌까지 지배하게 될 거라는 세상에 '아날로그적 감성'이야말로 인간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일지도 모른다.

스마트폰 대신 종이책을 읽힌다는 심정으로, 등교하는 아이들과 손잡고 교정의 518m 오월길을 함께 걷겠다. 5·18 46주년을 되뇌며 리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가짜뉴스에 휘둘리지 않는 면역력이 생기리라 믿는다. 걸을 때 교정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잔잔하게 울려 퍼질 것이다.

#518민주화운동46주년#오월길#윤상원열사#김평용희생자#살레시오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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