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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는 두 가지 방법, 나의 선택은?

행복을 찾는 두 가지 방법, 나의 선택은?

 
박기호 신부 2013. 12. 13
조회수 853추천수 0
 

출가, 봉헌의 삶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이들이 내 가족이다(마태 12,46~50).”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 입니까? 바로 여기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들이 곧 내 어머니요 형제요 자매입니다.”

 

행복을 찾는 두 가지 삶의 양식이 있으니 ‘현실에 충실하는 삶’과 ‘이상을 추구하는 삶’입니다. ‘현실에 충실한 삶’은 자신에게 주어진 태생 환경에 순응하고 나아가 실존적으로 대응하는 삶입니다. 생활의 윤택을 위해 노력하고 가족에 대해 책임을 지며 기회를 통해 사회적 지위를 얻어가는 일반적 삶을 말합니다. 기회를 얻기 위한 도전과 경쟁, 결혼, 가족, 혈연, 지연이 중시되고, 권력 명예 소유의 긍정적 가치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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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을 추구하는’ 것은 그런 것이 주는 한계 너머의 것을 찾는 삶입니다. 근원적으로 참되고 진실히 선하고 아름다운 영혼, 즉 眞.善.美의 정신세계를 추구합니다. 인연적 충실을 넘어 세계에 대한 헌신을 영적이고 영원한 천상적 가치로 삼습니다. 그러므로 현실과 조화가 쉽지 않기에 이상향을 찾아 출가하고 유유상종의 도반으로 공동체를 이루어 살게 됩니다. 그런 삶의 추구는 古代로 거슬러 갈수록 일반적이었고 존중받았습니다.

 

모든 존재는 시초부터 그가 태어난 집이 있습니다. 영혼이 사는 天宮, 점지받아 잉태되는 자궁, 포대기에 담긴 어머니의 품과 젖, 양육시키는 가정, 모두가 집(家) 입니다. ‘집-家’의 한자는 ‘돼지-亥(豚)’가 지붕 아래 있는 모습입니다. 동물이 비를 피해서 잠을 자는 곳입니다. 그렇게 주어진 환경을 원안으로 해서 새 집을 짓기도 하고 생활수준을 얻어간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런 삶의 한계를 미리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삶에 대해 의문을 갖고 질문하는 사람들입니다. 뜻밖의 죽음을 통해서, 좌절과 혹은 성공하고도 겪는 무상함을 통해서, 시스템의 폭력을 통해서, 이별과 실연, 배신의 아픔을 통해서... 인간이란 도대체 어떤 존재이며 삶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풀잎 끝에 맺힌 이슬방울 같은 것인가? 눈에 보이는 존재 사물인들 확실하게 존재하는 것인가?

 

죽음 이후의 세계는 없는 것인가? 슬픔도 눈물도 배신도 이별도 다툼도 없는 세계는 없는 것인가? 내 자녀들도 내가 걸어온 궤적을 똑같이 밟고 똑같은 혼돈에 빠지게 될 것인가? 대의심(大疑心) 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해답을 찾아 떠났습니다. 고대 이래 온 인류가 추구해왔던 또 다른 길을 찾게 됩니다. 출가!

 

집을 떠난다는 것은 유한한 인생을 넘어서 영원한 것을 구하고자 인연의 지붕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누가 내 어머니이고 형제이고 자매입니까? 어디가 내 집이고 내 땅이고 내 고향입니까?”

이상을 찾아 집을 벗어난 사람은, 같은 의문을 가지고 떠난 출가자들을 만나 도반(道伴)을 이룹니다. 서로를 벗으로 형제로 부모로 삼고 스승으로 삼고 무리를 이루어 새로운 집에 살게 됩니다. 그것이 수도회이고 승가이고 공동체 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들이 바로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입니다.”

 

힌두교나 불교에서 출가라는 개념을 그리스도교에서는 ‘봉헌’이라 합니다. 출가의 삶이 봉헌의 삶이지요.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구원관 차이인데, 불교의 자력 구원, 그리스도교의 타력구원의 원리에 따른 표현입니다. 그리스도교 구원관은 스스로의 구원되는 것이 아니고 은총에 결합되어 구원되며 세계를 위한 헌신으로 구원의 완성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 분들을 교회는 聖人이라 부릅니다. 하느님의 뜻에로의 이끌림과 추구를 ‘부르심(聖召)’ 이라 합니다.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 봉헌이고 출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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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로 산다는 것은 출가이며 봉헌의 삶입니다. 주어진 태생적 길 위에서 좀 더 나은 생활이나 대안의 삶을 찾아 이주(移住) 이민(移民)하는 것이 아니라 ‘출가’ 하고 ‘봉헌’ 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좋은 삶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필요한 삶을 위해 나의 몸을 내어놓는 것이 봉헌의 삶 입니다. 예수님의 출가가 바로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온전한 제헌이었고 마침내 십자가에 바쳐지기 까지 순명하는 봉헌의 삶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산위의 마을 공동체로 살아간다는 것의 이유가 곧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숭고한 삶을 추구함에 있습니다. 우리 가족들 모두는 서로에게 어머니이고 형제고 자매입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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