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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노조'의 공습, 심상치 않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4/01 14:17
  • 수정일
    2014/04/01 14:1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편집국에서]노동법 퇴행 조짐에 노사갈등 고조

이승선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4.01 09:19:36

 

 

 

 

 

 

"요즘 삼성에 뭔 일이래?"
"시민들과 함께 고장난 삼성을 AS하겠습니다."
"삼성을 바꾸자!"
 
지난 3월 2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1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삼성 규탄' 집회를 하며 들고 있는 피켓에 쓰인 문구들이다. 이 노동자들은 왜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이런 피켓을 들고 집회를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집회의 주인공들은 바로 '삼성공화국'으로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삼성전자를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이다. 또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추구하는 삼성전자의 '노동인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노동자들이다.
 
현재 이들은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다. 삼성전자서비스는 삼성전자가 거의 100% 지분을 가진 자회사다. 삼성전자제품을 사용하는 고객들이 제품의 사후서비스가 필요할 때 찾는 삼성서비스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업체다. 대부분의 고객들이라면  이곳에서 만나게 되는 직원들이 삼성전자서비스 직원인 줄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곳의 직원들 대부분은 삼성전자서비스의 정규직 직원들이 아니다. 비정규직 직원들도 아니다. 협력업체 직원들이다. 삼성전자서비스라는 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두 정규직이거나 비정규직 직원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객들이 보기에도 본질적인 업무를 하고 있는 직원들이 정규직도 아니고 비정규직도 아닌 협력업체 직원이어도 괜찮을까? 아니다. 이것은 인건비 절약과 노동법에 따른 책임 회피 등을 노린 편법적인 운용방식으로 의심 받는다. 노동관련법은 직접고용을 원칙으로 하고 사측이 직접 관리하는 간접고용을 제한적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간접고용은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협력업체가 관리하는 것으로 포장하는 편법을 쓰기 때문이다. 사측에서 불법적인 간접고용을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로는 본사에서 인력관리를 해도, 형식적으로 협력업체에서 하는 것으로 꾸미면 그만이다.
 
마찬가지로 삼성전자 측에서도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이 '위장도급'의 피해자라는 지적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처한 '노동인권'은 삼성전자의 협력업체 직원들이라고 해도 믿기 힘들다. 
 
▲3월 2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린 삼성규탄 집회에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삼성로고를 펼쳐보이고 있다.ⓒ연합뉴스

▲3월 28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열린 삼성규탄 집회에서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들이 삼성로고를 펼쳐보이고 있다.ⓒ연합뉴스

 
삼성전자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노동인권'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소속 기사들은 일당이나 시급이 아닌 분당 급여 체계를 적용받고 있다. 분 단위로 직접 수리에 들어가는 노동시간만 책정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15분으로 설정된 수리에 해당하는 AS를 취급하면 3375원(15분×225원/분)을 AS기사가 받는다. 만약 고객의 문의나 수리 과정에서 변수가 발생해 시간이 더 소요된다고 해도 인정받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AS 비수기에 해당하는 9월에서 5월 사이에는 소득도 줄어든다. 삼성 측에서는 이런 급여체제도 협력업체가 책임질 문제라고 한다.
 
참다못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지난해 7월 노조를 결성했다. 그리고 지난 3월 28~29일 전국에 흩어져 있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이 처음으로 삼성전자 본관 앞에 모두 모여 집회와 1박2일 노숙을 하며 절박한 심정을 드러냈다. 현재 삼성전자서비스 노조는 삼성전자서비스 109개 협력업체 근로자 6000여 명 가운데 약 1500명이 가입해있다.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결성한 노조는 해를 못 넘기고 와해될 뻔했다. 노조에 따르면, '보이지 않는 손'의 노조 와해 공작에 시달렸다. 허물어져 가던 노조가 다시 단결하게 된 계기는 삼성전자서비스 천안서비스센터 노동자 최종범 씨의 자살이었다. 최 씨는 지난해 10월 마지막 날 아내와 돌을 보름여 앞둔 딸을 남겨두고 서른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유니폼을 입은 채 자살한 최 씨의 유서에는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라고 써있었다. 노조 결성을 주도했으나 표적 감사에 시달리던 그가 노조가 와해 위기게 몰리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 노조의 주장이다. 이후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우리 모두 최종범이다"면서 죽음을 각오한 결연한 의지로 뭉쳤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심상치 않게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는 시각들이 늘고 있다. 간접고용 관계인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결집 에너지가 정도 이상이 넘어가면, 삼성이 노조 활동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위장도급' 의혹에 이은 '위장폐업' 의혹
 
물론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조합원이 된 협력업체 노동자들을 그냥 둘리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노조에서 탈퇴시키거나 직장을 잃게 만드는 작업에 나설 것이라는 얘기들이 많았다.  이미 노조 응집력이 가장 강했던 부산 해운대서비스센터는 지난 3월 8일 갑자기 폐업에 들어갔다. 아산서비스센터도 3월 31일자로 돌연 폐업에 들어가면서 지역의 정치권까지 나서서 삼성전자가 주민들의 불편을 외면하고 있다고 호소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동자들은 "삼성전자가 위장도급에 이어 위장폐업에 나서고 있다"고 성토하고 있다. 갑자기 멀쩡하던 서비스센터, 그것도 노조활동이 가장 활발한 곳들이 우선적으로 폐업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노조활동과 관계가 있는 폐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삼성전자 측에서 결코 인정할 수 없는 문제다. 그저 자기들과는 상관없는 협력업체들의 사정이라고 할 뿐이다. 이렇게 합법이냐 불법이냐의 논란이 계속된다는 것은 그만큼 관련 제도와 법이 허술하게 만들어져있고,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황제노역' 사건에서 보듯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는 기득권자들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있다. 그리고 현실에서 이런 법과 제도를 운용하는 법조인들이 전관예우와 향검, 향판 등의 유착을 맺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불법적인 인력 운용방식'이니 아니니 노동자가 따져서 인정받기도 어렵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노조원들은 지난해 7월 삼성전자서비스 사측이 실제 사용자라는 근로자지위확인에 관한 소송을 제기해 현재 1심에 계류 중이다. 삼성 측에서는 이 소송에 대해 '경영위협 요소'라고 지적했다. 
 
그래서일까. 최근 '사내하도급법'을 국회에서 통과시키려는 움직임이 여권에서 뚜렷해지고 있다고 한다. 사내하도급법은 합법적인 사내하도급을 엄격히 규정하는 것을 풀어주는 것이 골자다. 이렇게 되면 자본주의 체제에서 위협받는 노동인권을 지키기 위한 직접 고용 원칙은 사실상 무너지게 된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동계에서는 이 법을 '정몽구 보호법' '이건희 보호법'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국 경제의 공룡처럼 군림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불법 사내하청 논란이 이 법만 통과되면 '합법'의 영역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와 법이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가뜩이나 대기업을 위한 '규제완화'에 맞춰 퇴행하는 현상은 우려스럽다. 노사대립의 갈등을 폭발시키는 에너지가 쌓이는 길로 가고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사실상 '무노조 경영'을 유지해온 삼성그룹 내에서 이 신화가 완전히 깨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삼성그룹 내에서 상급노조단체와 연결된 정규직 노조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마침내 지난 3월23일 삼성SDI 울산공장 정규직 직원 12명이 민주노총 가입을 선언하고 삼성SDI 울산지회를 설립했다. 삼성이 노조와 관계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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