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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민간참여 조사기구’ 가족 요구 ‘거부’...세월호 사태, 새 국면 접어들어

정성일 기자 soultrane@vop.co.kr 발행시간 2014-05-17 01:13:59 최종수정 2014-05-17 01:13:59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면담하는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오후 청와대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 대표단과 면담을 하고 있다.ⓒ뉴시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16일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에서 민간이 참여하는 독립적 조사기구 구성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부정적 입장을 표명해 향후 가족대책위와 청와대 사이에 상당한 갈등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정국은 '세월호 특별법'에 포함될 내용을 둘러싸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의 갑작스런 유족면담, 대국민사과 앞둔 수순밟기로 분석

이날 청와대에서 진행된 박 대통령과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와의 면담은 전날 청와대 측의 요청에 의해 이뤄졌다. 청와대 측의 갑작스런 면담 요청은 박 대통령이 예고한 '대국민 사과'를 위한 수순밟기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대국민사과를 예고하면서 사과의 내용 뿐만 아니라 향후 대책까지 포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향후 대책에는 희생자 가족들의 의견이 포함되는 게 필수적이기 때문에 청와대 측은 면담이라는 모양새를 만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하더라도 가족들이 그 내용에 반발한다면 대국민사과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날 이뤄진 면담은 결과적으로 청와대 측의 의도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전날 면담 협의과정에서부터 양 측의 의견차이가 불거졌다. 청와대 측은 면담을 비공개로 진행해 언론 등 외부에 알리지 말자고 요청했다. 하지만 가족대책위 측은 비공개 방침에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가족대책위 측은 충분한 논의 후 다시 일정을 잡거나, 16일 진행하게 된다면 면담을 공개하고 기자회견을 진행하며, 면담에 가족대책위 측 변호사들이 참석해 조언을 받겠다는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가족대책위 측의 이같은 입장에 청와대는 변호사 참석은 '절대 불가'라는 입장을 밝혔다. 대책위 측은 일단 이를 받아들여, 16일 면담을 진행하고 사후 공개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됐다. 청와대 측이 비공개 입장을 철회한 것은 다음 주로 예상되는 대국민사과에 앞서 면담을 진행해야 되기 때문에 면담 일정을 더 늦추기 힘들다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면담이 '공개 불가' 방침 때문에 불발된 것이 언론이 알려질 경우 비난 여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겠냐는 관측이다.

박 대통령, 가족들의 '민간 참여 독립 조사기구' 구성 요구에 사실상 거부 의사 밝혀

박 대통령은 이날 면담에서 가족대책위의 핵심 요구사항인 가족 등 민간이 참여하는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구성에 부정적 입장임을 밝혔다. 이에 향후 양 측 사이에는 상당한 냉기류가 조성될 것으로 보인다.

가족대책위는 이날 청와대 면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9가지 요구사항을 밝혔고, 면담에서도 같은 내용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대책위 측의 요구사항은 '실종자 유실 방지 조치', '진상조사 전 과정에서 가족 참여 보장' , '구조 및 수습 전 과정에 대한 조사와 충분한 조사기간 보장', '지위고하를 막론한 성역없는 수사', '관련정보 투명 공개', ' 독립성 갖춘 기구에 의한 진상조사와 강제수사 권한 부여', '사고 책임자들에 대한 민형사상, 행정적 및 정치도의적 책임 추궁', '관련기관 정보접근 보장', '재발방지시스템 구축' 등이다.

박근혜 대통령 면담한 세월호 유가족 대표단
박근혜 대통령을 면담한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단의 유경근 씨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면담 결과를 밝히고 있다.ⓒ인뉴스 티비 제공

가족대책위의 이같은 요구사항을 한 마디로 축약하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이다. 특히 가족대책위 측은 가족을 비롯한 민간이 참여하는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구성을 특별법의 핵심으로 보고 있다. 이날 면담에서도 가족들은 특별법 제정과 함께 진상조사기구 구성에 대한 대통령의 의견에 대해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가족들의 이런 요구는 특검을 포함해 기존 수사기구의 수사에 대한 불신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간 정부의 세월호 참사 대응과정에서는 가족들에게 경과가 제대로 보고되지 않거나 왜곡돼 전달된 경우가 많아 지속적으로 논란이 돼왔다. 이로 인해 가족들은 진상조사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서는 조사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특별법은 저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검경 수사 외에도 진상규명을 하고 특검도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구성에 대해서는 사실상 거부 입장을 표명했다. 이날 만남 과정에서 가족들은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구성에 대해서 수 차례 질문이 했지만, 박 대통령은 대부분 즉답을 피했다.

그러다 한 유가족이 '민간을 포함한 독립적 진상조사기구를 구성해 일시적으로라도 수사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대한 의견'을 묻자,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박 대통령은 "지금 진행되는 (검찰)수사 과정을 유족 여러분하고 철저하게 모든 것을 공유해서 그 뜻이 반영이 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민간에 수사권을 주는 것은 그게 효율적이겠느냐 하는 것은 좀 생각해봐야 될 것 같다"고 답했다. 사실상 거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또한 '가족 입장에서 만든 특별법을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박 대통령은 "특별법은 사실 대통령이 다 결정하는게 아니고, 국회에 보내야 되지 않겠나"라며 "국회에서 애끓는 유족 여러분들의 마음이 잘 반영이 되도록, 잘 협조를 해 주도록 하고, 거기서 또 그 법을 가지고 많은 토론이 있을 것이다"라고 국회로 공을 돌렸다. 이같은 입장은 지난해 말 야권이 국정원의 대선개입 사건에 특검을 요구하자 "국회에서 합의점을 찾아달라"며 자신의 책임은 회피하며 국회로 공을 넘겨버린 것과 유사한 태도다.

종합하자면, 박 대통령의 입장은 가족들에 대한 지원, 추모공원 건립 등의 내용을 담은 특별법은 만들 수 있겠지만 '수사권을 가진 독립적 민간 참여 진상조사기구 구성'이 포함되는 데는 반대한다는 것이다. "특별법은 저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가족대책위의 요구에 화답한 데서 나온 게 아닌 것이다. 실제로 가족들의 요구대로라면 자칫 청와대 보고라인과 NSC까지 수사대상이 될 수 있어 청와대로서는 상당한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이 이런 입장을 나타내자 유가족들은 면담 후 곧바로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 가족대책위 유경근 대변인은 "(박 대통령이) 구체적 내용보다는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하고 있으니 지켜봐 주고 소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다분히 수사적이고 추상적인 표현으로 일관했다"며 "저희로서는 마음은 감사하게 받지만 실질적으로 얻어가는 것은 별로 없지 않냐"고 말했다. 또한 "박 대통령에게 오늘은 아쉬운 점이 많다. 많은 기대를 가지고 왔지만 결과적으로 아쉽다"고 밝혔다. 향후 유가족 측과 청와대 의견의 간극이 쉽사리 좁혀지기 힘들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진상조사기구 구성 둘러싸고 선거국면 맞물려 복잡한 국면 진행될 듯

박 대통령과 유가족들과의 면담을 통한 의견조율이 사실상 '실패'로 끝나면서 향후 진상규명 과정 등을 둘러싼 논의는 상당히 복잡하게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단 가족대책위 측은 이날 제시한 요구사항을 쉽사리 거둬들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매우 팽배해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참여하는 진상조사기구 구성이 필수적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다음주로 예견되는 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족들과 협의가 사실상 '결렬'됐기 때문에 대국민사과를 하더라도 가족들이 반발할 수 있는데다 여론이 누그러질지도 미지수가 됐기 때문이다.

가족대책위 측의 대응이 예전의 유사 사고와 다르게 진행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 점이다. 예전 대형 사고의 경우 피해자들이 개별적으로 보상금을 받고 흩어져 버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대책위 등을 중심으로 뭉쳐있지 않아 진상규명 등을 추진할 '동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 면담 마친 세월호 가족대책위
박근혜 대통령을 면담한 세월호 사고 가족대책위원회 대표단의 유경근 씨가 16일 오후 서울 종로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면담 결과를 밝히고 있다.ⓒ인뉴스 티비 제공

하지만 세월호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대책위를 구성해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지역적으로 한 곳에 거주하고 있어 결집이 용이하고 대부분 자녀를 잃은 학부모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점도 다른 사건과의 차이점이다. 정부가 보상금 등으로 개별 접촉에 나서더라도 가족대책위의 결집력이 쉽사리 약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가족대책위 측이 대한변협과 협약을 체결해 법률자문을 구하기로 한 점도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이날 가족대책위 측의 특별법 제정 요구도 상당한 법률적 검토 아래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함에 따라 여론 및 야권도 같은 요구를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가족들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청와대까지도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여론도 특별법 제정과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요구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정부에 대한 불신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어 정부의 '셀프 수사'에 여론이 쉽사리 수긍하기 힘들 것이라는 점도 힘을 보탤 것으로 보인다. 같은 맥락에서 야권도 특별법 제정과 독립적 진상조사기구 구성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가족들과 청와대 간의 갈등이 심화될 경우, 지방선거와 맞물려 상당히 복잡한 국면이 조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논의가 오는 20일부터 예정된 5월 임시국회로 넘어오게 되면 국회내에서의 논란이 불가피하다. 여론이 독립 조사기구 구성에 호응할 경우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의중과 여론 사이에서 상당한 고심을 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5월 임시국회는 6월 지방선거와 맞물려 있어 새누리당의 주요 후보들이 표를 의식해 청와대와 입장을 달리 하게 되면 여권 내부의 분란이 촉발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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