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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자 가족 "마지막으로 남는 게 가장 두려워"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4/05/17 11:44
  • 수정일
    2014/05/17 11: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르포] 세월호 침몰 한 달, 진도의 풍경

14.05.16 18:48l최종 업데이트 14.05.16 20:0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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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아 친구들 꼭 데리고 올 수 있지" 세월호 침몰사고 30일째이자 스승의 날인 15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단원고 학생 유가족과 실종자 어머니가 사고 해역을 바라보며 아이들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고 있다. 이날 유가족은 "엄마 품으로 빨리 와 줘서 고맙다"며 "아들아 친구들 꼭 데리고 올 수 있지"라고 울먹였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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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날인 15일, 세월호가 물에 가라앉은 지 30일이 지났다. 피붙이를 잃은 가족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한 달이었다. 그들을 지켜보는 이들도 마음이 무너졌다. 미안해했고, 잊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진도는 여전히 슬픔과 그리움에 잠겨 있다.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실종자 20여 명의 가족 40여 명이 진도를 지키고 있다. 기다림의 땅이 된 진도. 세월호 침몰 사고 한 달째인 15일 전후, 진도의 비와 땀, 그리고 빛을 살펴봤다. 

[비] 국화가 젖었다... "못 찾으면, 언제 제사 지내야 하나 물어"

예로부터 팽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 팽목항. 이제는 기약 없는 만남을 애타게 기다리는 장소가 됐다. 14일 오전부터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에는 비가 흩뿌렸다. 방파제에 걸려 있는 노란 리본에도, 실종자 가족 천막에도 빗물이 흘러내렸다. 비옷을 입은 사람들이 빗속에서 분주히 움직였다. 

바다를 향해 놓인 법당에서 목탁 소리가 울렸다. 불일(52) 스님이 '나무아비타불' 하고 염불을 했다. 스님은 지난달 17일부터 실종자 귀환을 염원하며 슬픔을 함께 나누고 있다. 스님은 "실종자 가족들은 마지막까지 혼자 남게 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며 "끝까지 못 찾으면 언제 제사를 지내야 하는지 묻는다"고 말했다.

제상에 놓인 국화가 젖어들었다. 아들이 좋아하던 햄버거, 피자도 비를 맞았다. 물속이 추울까 올려놓은 보온팩, 케이크, 수박, 참외, 사과 등 온갖 음식들이 촉촉해졌다. 제상 가운데 놓인 밥그릇에는 수저 8개가 꽂혀 있었다. 맥주 페트병에는 '바다의 신에게 - 노여움을 푸소서'라는 문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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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도 팽목항에서 맞는 석가탄신일 석가탄신일인 6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찾은 스님과 불자들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추모행진을 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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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2시경, 3구의 시신이 수습됐다는 소식이 팽목항에 전해졌다. 신원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큰 기대를 나타냈다. 지난 며칠 동안 수습이 되지 않던 가운데 나온 반가운 소식이었다. 전날 자정, 가족들이 실종자를 애타게 부른 것이 효과를 보았다는 얘기도 나왔다.(관련 기사 : 실종자 가족들, 진도 밤바다 통곡)

하지만 실종자 가족은 시신의 인상착의가 생략된 것을 두고 불안에 휩싸였다. 안내문의 '신체특징' 부분이 '없음'으로 처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특징에 덧니가 있다, 이마에 상처가 있다, 몸 어디에 점이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제는 시신이 훼손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한 실종자 어머니는 "새벽에 그렇게 울었더니 효과를 본 것 같다"고 "하루 더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DNA 검사를 맡겼으니까 빨리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다"며 애써 웃음을 지었지만 눈은 이미 촉촉이 젖어 있었다. 

실종자 가족의 애타는 마음은 항구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팽목항 중앙에 설치된 가족대책본부 천막에는 파란 매직으로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이 고생을 시키느냐', '엄마 마음 아냐, 아이 빨리 구해', '우리 아이들 살려내지는 못할망정 빨리 데려와'라고 적혀 있었다. 글귀도 비에 젖어 색깔이 연해졌다.  

등댓길에 놓인 편지도 젖었다. 가족의 품으로 돌아와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사랑하는 딸아. 아빠 엄마에게 빨리 와 주어서 정말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한다! 하늘에서 아직 오지 못한 친구들과 모든 이들에게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하고 기도해주렴. 사랑하는 딸, 미안하고 사랑한다. - 아빠

너무 멀고 험한 물길을 혼자 오느라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그래도 돌아와줘서 고마워. 사랑해. - 엄마"

편지 옆에 놓인 축구화는 파란 비닐에 싸여 있었다. 실종된 아들을 찾는 부모가 올려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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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해 줄 신발 비에 젖을라... 세월호 침몰사고 29일째인 14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등댓길에 실종자 가족이 아들을 기다리며 가져다 놓은 운동화와 새 옷이 빗물에 젖자, 누군가 비닐을 씌워 놨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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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시신 생각하면 작업할 수 없어"... 분주한 잠수사들 

이날 오후 세월호 침몰 지역 주변에서 배들이 비를 맞고 있었다. 범정부 사고대책본부에 따르면 함정 139척, 항공기 36대, 민간선박 42척이 사고 인근에서 해상 수색에 참여하고 있다. 

잠수사들은 구조업체 언딘 마린인더스트리의 바지선에 모여 있었다. 배 위에는 공기통과 공기공급 호스, 가이드라인이 쌓여 있다. 사람들은 "공기줄 밟으면 절대 안 된다"고 소리쳤다. "애국하러 가겠다"며 물에 들어간 민간 잠수사 이광욱(53)씨가 숨진 이유 때문이다. 그는 지난 6일, 입수한 지 5분 만에 공기 호스가 꼬여 숨졌다. 

입수 대기 중인 잠수사들은 의자에 앉아 장비를 착용했다. 그중 한 명이 '풍덩' 하고 물에 들어갔다. 다리를 가위자로 벌렸다. 가이드라인을 잡았다. 호흡 때문인지 기포가 수면으로 올라왔다. 1분 뒤 동료 잠수사가 입수했다. 바지선 위에서는 공기 호스가 꼬이지 않게 줄을 당겼다. 배 위의 사람들은 수심, 수압, 호흡 상태를 체크했다.

30여 분 뒤, 입수했던 잠수사가 바지선 위에 올랐다. 곧장 다른 사람들이 그가 장비를 벗게 도왔다. 그러고 나서 고개를 푹 숙인 채 호흡을 조절했다. 얼굴은 볕에 검게 그을렸다. 잠수 상황판에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마지막 한 명까지'

바지선에서 만난 잠수사들은 수색 과정을 설명했다. 민간 잠수사 전광근(40)씨는 "워낙 시야가 좁고 장애물이 많아 내려가면 손끝에 걸리는 모든 것을 만지게 된다"며 수색의 어려움을 전했다. 건강상태를 묻자 "구호품이 많이 들어와 잘 먹고 있다"며 "현재까지 수색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줘서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민간 잠수사인 이만호(49)씨는 1구의 시신을 수습해 물 위로 올라왔다. 시신을 수습하는 심경을 묻자 그는 묵묵히 대답했다. 

"천안함 인양 때도 참여했고 SSU로 활동하면서 계속해왔기 때문에 어려움은 없어요. (시신을) 기억한다면 계속 작업을 할 수 없습니다. 시신을 보고 안 좋은 마음을 털어내지 않으면 다음 작업을 할 수 없어요."

이후 김석균 해양경찰청장은 바닷속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오랫동안 수중에 노출돼 있어서 가구 같은 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며 "시간이 갈수록 붕괴가 진행돼 잠수사의 안전이 우려 된다"고 말해다. 이어 "한 구라도 빨리 인양하고 싶은 부모들의 마음과 잠수사들의 안전을 잘 조화시켜서 빠른 인양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빛] 검게 탄 가족들... "아들아, 어서 돌아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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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 따뜻한 품으로 어서 돌아오렴" 세월호 침몰사고 30일째이자 스승의 날인 15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 등댓길에 실종자 어머니가 아들을 기다리며 가져다 놓은 축구화를 가슴에 품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축구화에는 '사랑하는 내 아들. 너를 기다리는 모든 이의 따뜻한 품으로 어서 돌아오렴. 사랑한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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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은 종일 화창했다. 쨍쨍한 햇볕이 젖은 대지를 말렸다. 또 다른 기다림의 장소인 진도 실내체육관. 많은 이들이 떠나고 이제는 20여 명의 가족들이 체육관을 지키고 있다. 바닥에 깔린 이부자리에서 잠깐 눈을 붙이는 사람들도 있고,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가족도 있었다.

권오복(60)씨는 체육관 정문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정문에 설치된 TV에 실종자 시신 3구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속보로 떴다. 권씨는 "팽목항에 가봐야 하나" 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동생 가족이 탄 배가 침몰됐다는 소식을 듣고 진도에 내려왔다. 다섯 살 난 작은 조카는 다행히 구조됐고, 베트남에서 온 제수씨는 주검이 돼 만났다. 제수씨의 시신은 20일 넘게 팽목항 안치소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아직 만나지 못한 동생과 큰조카와 함께 장례를 치르기 위해서다. 

"잠이 안 와서 나가서 술을 마시고 옵니다. 사고가 터진 후부터 잠을 못 자요. 잠깐 누웠다가도 눈이 떠져요. 술기운을 빌려서 잡니다."

햇볕이 강한 한낮, 팽목항에서 바라본 수평선은 아지랑이 때문에 흔들려 보였다. 오매불망 실종자를 기다리는 가족들의 피부는 내리쬐는 햇볕에 검게 그을렸다. 이들의 마음은 피부보다 더 새까맣게 타 있을지 모른다.

항구에서 단원고 학생 유가족과 실종자 어머니가 사고 해역을 바라보며 아이 이름을 목놓아 불렀다. 유가족인 어머니는 "엄마 품으로 빨리 와줘서 고맙다"며 "아들아 친구들 꼭 데리고 올 수 있지?"라고 울먹였다. 

전날 파란 비닐에 싸여 있던 축구화가 모습을 드러냈다. 비닐을 벗긴 어머니는 축구화를 품에 앉고 눈물을 흘렸다. 흰 바탕의 축구화에는 검은색 글귀가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내 아들, 너를 기다리는 모든 이의 따뜻한 품으로 어서 돌아오렴.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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