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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들의 슬픔과 분노... 18일 미국 50개주 동시 집회 예정

미국 교민들의 세월호 추모시위가 '망신'이라고요?

14.05.17 21:37l최종 업데이트 14.05.17 21:37l이철호(yi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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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총영사관 벽면은 희생자를 추모하는 글과 실종자의 생환을 기원하는 글로 가득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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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300여 명이 사망했고, 그 중 250여 명은 아직 꽃을 피워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이다. 그리고 19명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도 못한 채 저 남쪽 바다 어딘가에서 떠돌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참사에 슬퍼하고, 이 참사를 만들어낸 무능한 국가와 시스템에 분노한다. 다만 이 슬픔과 분노에 공감하지 못하는 정부, 여당과 이들에 동조하는 세력은 아직도 다수로 한국사회를 지배한다. 어쩌면 이것이 더 슬프다.

세월호 참사에 슬퍼하고 분노하는 것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국민들만은 아니다. 미주에 사는 한인들도 지난 한 달 동안 한국 방송과 신문을 보고 들으며 똑같이 슬퍼하고 분노했다. 미주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인 'MissyUSA' 게시판에서 시작된 <뉴욕타임즈> 광고 게재 모금운동은 단 며칠 만에 예정했던 금액을 훨씬 상회하였다.

<뉴욕타임즈>에는 5월 11일에, <워싱턴포스트>에는 5월 16일에, 세월호 참사의 진실규명과 한국의 언론보도 행태를 규탄하는 전면광고가 실렸다. MissyUSA 게시판에서 만난 주부들은 미 전국 37개 도시에서 동시 집회를 조직하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도시에서 순차적으로 집회가 열렸고, 오는 5월 18일에는 동시 집회가 열린다.

사고가 일어난 지 사흘째 되던 날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 앞에는 작은 '기원소'가 만들어졌다. 평소 알고 지내던 세 사람이 작은 책상 하나와 초 몇 개로 시작한 이 추모의 장소는 SNS를 통해 더 사람들이 힘을 더하게 되었다. 그동안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추모를 위해 사람들이 가져온 초와 꽃이 넘쳐서 책상을 더 큰 것으로 바꾸어야 했다. 

총영사관 정문 벽면은 생환에 대한 염원과 안타까움이 담긴 노란색 메모지로 가득하게 되었고, 주차장 철조망은 노란 리본으로 메워졌다. '기원소'가 차려진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나 총영사관은 영사관 내에 생화로 장식한 분향소를 마련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 남루한 '기원소'에 모인다. 실종자의 생환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두 알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이 장소를 '분향소'라고 부르지 않는다.

남루한 '기원소' 앞에 모이는 사람들... 실종자 수 '0'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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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총영사관 벽에 붙은 정부비난 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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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무능한 대응으로 그 누구 한 사람 '구조'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될 무렵, 기원소 벽에는 정부를 규탄하는 메모들이 붙기 시작했다. 정부를 비판하는 메모들은 밤이면 누군가에 의해 제거되었고, 그러면 사람들은 다음 날 아침 또 갖다 붙였다. 

오늘 밤에도 기원소 지킴이들은 거리에서 밥을 먹으며 이 앞을 지킨다. 그들은 실종자의 수가 '0'이 될 때까지 이 앞을 지킬 것이라 말한다.

사고가 난 열흘 후 4월 26일과 5월 3일에 추모집회가 열렸다. 어떤 단체가 나서서 조직적으로 준비한 집회가 아니었음에도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왔다. 주최 측이 굳이 정부의 무능함을 비판하지 않아도 사람들은 자유발언을 통해 분노를 표출했다.

5월 10일에는 '미 50개주 동시집회'의 첫 번째 집회로 주부들이 대거 전면에 나섰다. 돈을 모아 일간지에 집회 광고를 내고, 초를 준비하고, 리본을 만들었다. 벌써 30도가 넘는 더운 날씨를 무릅쓰고 집회를 알리는 전단지를 돌리고 포스터를 제작하여 상점마다 붙이고 다녔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영사관 앞에서 구호를 외치고 행진을 했다. '박근혜 퇴진'이라는 구호가 이제 더 이상은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한편 국정원 선거 개입을 규탄하기 위해 만들어진 LA시국회의는 지난 5월 7일부터 매일 주중 점심시간에 LA 영사관 앞에서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 박근혜 퇴진'을 위한 추모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주말에 열리는 추모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낮 시간에 메세지를 전달하기 위해 시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LA시국회의의 이용식 대표는 "이제부터는 추모의 슬픔을 넘어서야 한다. 부정선거로 당선된 박근혜 정부가 얼마나 무능한 정부인가 하는 것을 절실하게 보여준 것이 이번 세월호 사건이다. 총체적인 부정과 부패와 무능이 이번 참사 수습과정에서 드러났다. 따라서 이 참사의 책임자인 박근혜를 퇴진시키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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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추모집회
ⓒ Ben Hu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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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추모집회
ⓒ 이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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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국이 이렇게 무능하고 부패한 곳임을 알려주는 게 부끄럽습니다"

<뉴욕타임즈> 광고가 나가고 추모집회에서 한국정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보수성향의 한인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5월 16일에는 보수성향의 단체들이 한인신문에 '세월호 희생자 두 번 죽이는 시위선동을 중단하라'라는 성명서 광고를 냈다.

18일에 예정된 추모집회 장소에서 추모집회를 항의하는 '항의집회'를 열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한 한인은 라디오방송에 전화를 걸어 <뉴욕타임즈> 광고와 집회를 조직적으로 배후 조종하는 세력이 있다며 이들은 다 '공산당'이라고 주장을 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추모집회에 참석한 한 주부에게 물어봤다. 이 집회 참석자들에 대해 나라망신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집회가 망신스럽다고요? 저는 제 아이들에게 부끄럽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제 아이들에게 고국이 이렇게 무능하고 부패한 곳임을 알려주는 게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저는 아이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아이들과 같이 나왔습니다. 내 아이들이 자라 그 자식들을 키우면서 또 저처럼 부끄럽지 않으려면, 제가 지금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오는 18일 오후 6시, LA 총영사관 앞에는 또 한인들이 모일 것이다. 아마도 이젠 더 이상 눈물은 흘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분노의 목소리는 훨씬 더 높아지게 될 것이다. 

한편 한인들이 많이 사는 남가주의 다른 도시인 어바인에서도 같은 날 같은 시간, 추모집회가 열린다. 대형 쇼핑몰 광장에서 열리게 될 이곳의 집회는 타인종과 함께 하는 추모문화제로 치러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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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 영사관 앞에서 10일간 계속된 침묵시위
ⓒ 김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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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미 50개주 동시집회 장소 및 시간 안내 
https://mapsengine.google.com/map/u/0/edit?mid=zkUHcA_IkOaE.kQcO83ySjPQ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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