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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이대로 가면 2008년 금융위기 재발한다"

"규제 완화는 좋다는 생각 바꿔야…박근혜, 약속 쉽게 깨"

최하얀 기자    필자의 다른 기사

기사입력 2014.07.28 18:47:41

 

 

 

 

 

 

"막연하게 이런 책을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쓸 엄두를 못 냈다."

 
장하준(51)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 교수가 28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한 첫 마디다. 읽기에 부담이 없고 재미있으며 동시에 독자들을 진지하게 대하는 '경제학 입문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그런 책이 2년 반에 걸쳐 원고를 두 차례나 뒤엎는 노력 끝에 출간됐다. 신간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김희정 옮김, 부키 펴냄)다. 
 
이 책은 영국의 펠리컨 북스(Pelican Books·펭귄 출판사)의 윌 굿래드 편집자가 지난 2011년 장 교수에게 '가능한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경제학 입문서를 쓰자'고 제안을 하며 만들어지기 시작됐다. 펭귄 출판사는 1937년부터 2878종의 교양 논픽션 문고본을 제작하다 1989년 종간했으며, 최근 25년간의 동면을 마치고 장 교수의 이번 책을 첫 작품으로 복간했다. 지난 5월 영국에서 출간된 책의 영문 제목은 <Economics, The User's Guide>다. 
 
장 교수는 이날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도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한 적이 없었다"며 이번 책에 쏟은 그의 특별한 정성을 표현했다. 
 
그는 "보통 입문서라고 하면 논란이 많은 주제나 철학적·역사적 이야기는 빼고 '10가지만 알아라' 식으로 단순화하는데 이는 독자를 깔보는 것"이라며 "독자를 깔보지 않고 복잡하고 껄끄러운 논쟁도 많이 소개했다. 독자들이 스스로 뭐가 맞는지 틀리는지를 판단하도록 하고 싶었다"고 했다. 
 
▲ 장하준 캐임브리지 경제학과 교수가 28일 오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영국에서 펴낸 '이코노믹스, 유저스 가이드'(Economics, The User's Guide)를 번역한 것으로 대중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이다. ⓒ연합뉴스

▲ 장하준 캐임브리지 경제학과 교수가 28일 오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출간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지난 5월 영국에서 펴낸 '이코노믹스, 유저스 가이드'(Economics, The User's Guide)를 번역한 것으로 대중을 위한 경제학 입문서이다. ⓒ연합뉴스

 
"모든 반지를 지배하는 절대 반지는 없다"
 
에필로그까지 포함해 440여 페이지 분량의 이 책은 결코 어렵지 않다. '경제학은 복잡하고 어려운 학문'이라는 흔한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고 있다. 그러면서도 9개 경제학파별 주요 논쟁과 그것이 다루려는 현실 경제 문제를 입담 좋게 엮었다.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 앞선 그의 책들이 '현안'에 대한 장 교수 나름의 해설본이었다면,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는 경제 전반에 대한 '조감도'다. 
 
큰 그림을 입체감 있게 보이기 위한 책인 만큼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도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경제사, 경제학설사 등으로 보통 표현되는 이러한 주제는 결코 '사라진 유물'이 아니다. 장 교수는 "9개 학파의 그 모든 이론이 지금도 다 살아있고 아직도 많이 쓰이고 있다"며 그럼에도 "경제학 입문서에서 이런 주제를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학계의 절대 주류로 뿌리내린 시카고학파(신고전학파의 한 부류)에서 잠시만 눈을 돌려도, 주류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또는 하지 않는 주제를 좀 더 현실적이고 흥미롭게 탐구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장 교수가 든 게 생산과 노동 문제다. 장 교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은 경제를 '교환 관계'로 설명하며 그 주체를 '개인'으로 본다"며 "기업도 개인의 연장에서 보니 '시장' 얘기는 하면서 '생산' 얘기는 하지 않는다. 공장 문제는 사회학자들이 할 일이라고 하며, 경제학은 '직장 문' 앞에서 끝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결과로 주류 경제학은 대체로 '노동'이란 근본적인 주제를 누락하고 있다. 장 교수는 "사람들이 직장에서 어떻게 일을 하고, 그것이 사람들의 복지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 지에 대해선 얘기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며 "사람들을 자꾸 '소비자'로만 두니 어떻게 돈을 벌게 해서 잘 쓰게 할 것이냐에만 집중하고, 노동 강도나 노동 시간, 고용 불안 문제에 대한 고민은 안 하게 돼 정책에서 노동이 배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모든 반지를 지배하는 절대 반지는 없다"는 표현을 책에서 썼다. 책 115~116페이지에서 장 교수는 여러 "경제를 개념화하고 설명하는 데, 혹은 경제학을 '하는' 데 서로 뚜렷이 구별되는 다양한 길이 있음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며 "어느 학파도 다른 학파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할 수 없고, 자기들만이 진실을 독점하고 있다고는 더더욱 말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실제 숫자를 알아야 현실 경제 '감' 잡을 수 있다"
 
'절대 반지는 없다'와 함께 이 책에서 특히 주목되는 표현이 '실제 숫자'다. 책의 2부 '경제학 사용하기'를 구성하는 7개 모든 장에 이 '실제 숫자'란 챕터가 포함돼 있다. 장 교수는 "경제학이라고 하면 흔히 숫자를 많이 다루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는데, 경제학과 나온 사람들 붙잡고 물어봐도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세계 GDP,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잘 없다"며 "'실제 숫자'들과 익숙해지지 않으면 현실 경제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없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 '실제 숫자'에 대한 '무감각'으로 저지르기 쉬운 오류가, 나라별 다른 가격 수준을 반영한 GDP 혹은 국민총생산(GNP)의 조정치, 즉 구매력 평가(PPP)를 근거로 '어떤 국가가 세계 경제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가'를 따지는 일이다. 시장 환율은 교역이 가능한 재화와 서비스의 수요·공급으로만 결정되기 때문에, 교역되지 않는 서비스 부문이 비싼 나라(주로 선진국)들의 구매력 평가 소득은 낮게 계산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선진국의 생활 수준이 저평가된 지표로 국가별 경제 규모를 비교할 수는 없다는 게, 장 교수의 설명이다. 
 
장 교수는 "중국 경제 규모가 커져 곧 미국을 따라잡는다고들 얘기하면서 구매력 기준으로들 흔히 잘못 얘기한다"며 "구매력은 생활 수준을 얘기하는 것이지 세계 경제에서 비중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실제, 세계은행 집계에 따르면 2010년 각국 GDP를 모두 합한 세계 GDP 63조4000억 달러 중 중국이 차지한 비중은 9.4%, 미국은 22.7%였다. 장 교수는 "모든 숫자를 꼭 다 기억하라는 것은 아니다"며 "다만 될 수 있으면 많은 숫자를 (독자들에게) 드림으로써 세계 경제가 대략 이런 식으로 생겼다는 것을 전달하려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모바일 기기에선 동영상이 재생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이대로면 금융위기 재발…금융 규제로 '경제 안전'도 챙겨야"
 
책에 대한 설명 이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서 장 교수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의 상황을 묻는 말에 "2008년 일어난 일이 재발할 거란 게 제 생각"이라고 답했다. 금융에 대한 과도한 집중과 금융위기 재발 우려는 이 책의 8장 '피델리티 피두시어리 뱅그에 난리가 났어요'에도 상세히 서술돼 있다. 
 
장 교수는 "단순 비교가 불가능한 숫자들이긴 하나, 세계 GDP와 금융자산 두 개가 1970년대까지는 1.2대 1 정도의 비율을 보였다가 지금은 추산에 따라 4대 1일에서 5대 1로도 계산된다"며 "이래서 2008년 금융위기가 일어났지만 그 뒤에 이루어진 개혁은 매우 미진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문제를 일으켰던 파생상품에 관한 규제도 새로 도입된 것이 거의 없고, 그나마 조금 이루어졌다는 게 은행들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7년이란 유예기간을 두며 강화하게끔 한 정도였다"며 "그러니 다시 예전 일이 재현되고 있다. 미국 주가지수가 2007년 가을에 비해 20%가 높은데, 경제지수는 그 때에 비해 1~2%밖에 안 크다. 주가가 엄청나게 거품이라 고꾸라졌는데 그보다 더 큰 거품이 생긴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금융위기가 다시 촉발될 시기를 점칠 수는 없다. 그는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와 서구가 갈등하고 있는데, 만약 러시아에 경제 제재를 가하거나 러시아에서 보복하고자 유럽에 천연가스 등을 수출하지 않겠다고 하면 유럽 경제는 박살이 난다. 어떤 게 뇌관이 돼서 촉발될지는 모른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도 그는 '금융 규제'를 역설했다. 장 교수는 세월호 참사를 "무분별한 규제 완화가 낳은 것"이라고 간추리며 "비행기가 떨어지고 배가 가라앉는 물리적 안전만큼이나 경제 안전도 중요하다. 지난 20여 년 동안 깨지지 않은 '규제는 무조건 풀면 좋은 것'이란 생각을 좀 고쳤으면 하는 경제학자로서의 바람이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아울러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당시 한국 경제 상황이 그나마 좋았던 것 또한 "부동산 대출 규제 등에서 다른 나라보다 나은 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규제를 풀었다가 더 악화된 상태에서 위기를 만나면 문제가 더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부, 약속 너무 가볍게 깬 것 문제"
사내유보금 과세, 못 할 것 없다…배당도 지원 대상인 건 맞지 않아"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장 교수의 평가 및 생각을 묻는 말도 이어졌다. 이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은 어떤가
 
박근혜 정부가 처음 했던 양극화 해소나 복지에 대한 약속을 어긴 것이 되게 많다. 일을 하다 보면 경제 사정에 따라 약속을 못 지킬 수도 있다. 그러나 약속을 너무 가볍게 깬 것이 아닌가 한다. 바꾸더라도 국민을 설득하고 잘 설명했어야 한다. 문제가 많았다고 본다. 
 
두 번째로는 우리 경제에 어떤 새로운 산업을 육성해 한 단계 도약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것들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박근혜 정부뿐 아니라 앞선 대부분 정부가 그랬다. 기술력도 키우고 투자도 많이 하고 시장도 개척해야 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다. 단기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자꾸 뒤로 미루게 되는데, 이 문제에 대해선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주축으로 하는 새 경제팀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기업에 쌓인 돈을 풀게끔 하기 위해 과세를 하려 하자, 선진국에선 유례없는 일이란 반발도 나온다. 
 
이런 식으로 사내유보금 자체를 문제 삼았던 사례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남들이 안 한다고 못 할 것은 없다. 한 가지 걱정이 되는 것은 투자를 하거나 임금을 올리거나까지는 좋은데, 배당을 해도 과세 대상에서 봐준다는 것이다. 이는 정책 의도와 맞지 않는다. 배당금으로 주면 30%는 외국으로 나간다. 가계 투자자는 10%밖에 되지 않는다. 가뜩이나 외국 투자자들 중심으로 배당 압력이 높아지는데, 이를 더 장려하는 게 우리 경제에 좋은 건지 생각해 봐야 한다. 왜 배당이 끼었는지를 이해를 잘 못 하겠다. 
 
- 한국에선 특히 심각한 문제지만 잘 다뤄지지 않는 게 비정규직 문제다. 이에 대한 생각은. 
 
비정규직이 기업 입장에선 유연성을 늘려 좋을지 몰라도 노동자들은,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당사자로선 매우 고달픈 일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복지 제도 자체도 부족해 문제다. 단기 고용이 많은 네덜란드 등 유럽 나라에선, 다음 직장을 얻을 때까지 복지 제도로 먹고살 수 있어 한국처럼 문제가 안 된다. 한국은 OECD에서 GDP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이 개발도상국인 멕시코를 제외하면 단연 꼴찌다. 우리보다 훨씬 후진국인 터키나 칠레보다도 못하다. 이게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이 문제가 더 되는 이유다. 
 
-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자유무역 중심의 대외 경제 정책을 반대해 왔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참여 등에 대해선 어떻게 보고 있나. 
 
자유무역이란 건 수준이 비슷한 나라들끼리 하면 서로 자극이 돼서 좋지만 수준 차이가 크게 나는 나라들끼리 하면 결국 후진국이 손해다. 단기적으론 무역 확대란 이익을 보겠지만 장기적으론 새로운 고부가가치 산업을 발전시킬 수 없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1960년대 무역 개방을 했으면 포항제철, 현대자동차, 삼성전자도 없었을 것이다.
 
한·미 FTA에 대한 평가는 장기적으로 해야 한다. 20~30년 뒤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비해 취약 산업인 제약, 화학 산업, 나노, 생명 공학 등을 따라잡을 수 있겠느냐가 문제다. 흔히 하는 평가처럼 2년 사이에 무역이 얼마나 늘었다는 건 문제가 아니다. 애초에 그런 각도의 비판이 아니었다. 20~30년 뒤에는 후회하게 될 것이다. 
 
TPP와 같은 지역 그룹에 가입하는 것은 이젠 정치적 문제가 돼 버렸다. 미·중 갈등 속에 어느 그룹에 들어갈 지란 문제가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 위치 등을 봤을 때 어느 한쪽에도 쏠려서는 안 된다. 이제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가 다자간 무역질서를 앞장서서 주창해야 하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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