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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헌은 왜 아직도 국회의원인가

등록 : 2015.03.01 19:49수정 : 2015.03.01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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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예결위회의실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김무성 대표와 정문헌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 간사가 악수를 나누고 있다. 2015.02.16. 【서울=뉴시스】

곽병찬 대기자의 현장칼럼 창

뜬금없는 질문일까?

 

그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을 유출한 지 2년4개월이 지났다. 재판부가 국가기밀 누설 혐의를 인정해 1천만원 벌금을 선고한 지 두달이 지났고, 그가 항소를 포기한 지 한달이 지났다. 그런데 이제야 묻는가? 반문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공직에 있을 때 취득한 국가기밀을 누설했고, 그것도 왜곡시켜 유출했고, 대통령선거에 악용했다. 그로 말미암아 새 정부가 들어서고도 1년 동안이나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국론을 분열시켰고, 대한민국 정부를 외국 정부가 믿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 사람이 아직도 국민을 대표하는 위치에 있다면, 국가와 국민의 안녕을 위해 묻고 또 물어야 한다.

 

무식한 물음일까?

 

선거법 위반이 아닌 이상, 벌금형으로 의원직을 박탈할 수 없다. 형사사건에서는 금고 이상의 실형이 확정돼야 자격이 상실된다. 그러나 정치적·도덕적으로 그렇게 따져야 할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권력은 일쑤 그런 부려먹기 좋은 자를 하수인으로 활용하려 한다. 벌할 것을 벌하지 않고 오히려 중용한다. 그런 권력에 순응한다면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권을 범죄자 집단에 내주는 꼴이다. 그런 집단을 심판하기 위해서라도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이 나라의 국민으로 선량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라도 따지고 또 따져야 한다.

 

그는 2012년 국정감사에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란 걸 들이대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해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고 폭로했다. 대통령선거 국면에서 이 발언의 폭발력은 컸다. 문재인 후보는 노 전 대통령과 함께 영토를 포기한 비서실장으로 매도됐다. 정문헌은 2012년 10월12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치생명을 걸’겠다며 “노 전 대통령의 서해 엔엘엘(NLL) 관련 ‘영토주권 포기’ 발언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후 대통령선거는 영토주권 포기 논란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선거가 끝난 뒤 확인됐지만, 국정원이 소장하고 있던 회의록 원본에는 그런 대목이 없었다. 그러자 사초(대화록 초본) 실종 의혹을 들고나왔다. 노 전 대통령이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초본의 폐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장이 정치 전면에 나서서 싸움을 부채질했고, 검찰은 당시 청와대 안보실장 등을 대통령기록물 폐기 혐의로 기소했다.

 

그렇게 박근혜 정부 1년은 대화록을 둘러싼 싸움박질로 흘러갔다.

 

그러나 법원은 국정원에 원본이 있는 만큼 초본은 대통령기록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을 내렸다. 또 법원은 대화록 내용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정문헌에 대해서는 국가기밀 누설 혐의를 인정했다. 국가기밀을 왜곡시켜 누설해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왜곡시키고, 박근혜 정부 1년을 난장판으로 만든 정씨의 대화록 파동은 정씨의 국가기밀 누설 사건으로 귀결됐다. 그러나 그에게 떨어진 벌은 벌금 1천만원뿐이다.

 

지난해 말 ‘청와대 비선조직 국정농단 의혹’ 사건이 터졌다. 청와대 민정수석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생산한 문건이 흘러나와 이른바 십상시의 전횡 의혹이 언론에 보도됐다. 청와대는 즉각 청와대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하는 한편 그 내용은 찌라시 수준의 허위라고 잡아뗐다. 검찰은 이 지침에 따라 문건 생산자들을 족쳤다.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은 구속 기소됐고, 그의 상사였던 조응천 전 비서관은 불구속 기소됐다. 유출에 연루됐다는 의심을 받아 구속영장 청구 등 강압수사를 받던 한 경찰은 자살했다. 찌라시 유출에 대한 처벌은 가혹할 정도로 준엄했다.

 

두 사건 앞에서 국민은 혼란스러웠다. 국가안보와 외교관계를 뒤흔들 기밀을 누설한 자는 벌금형으로 봐주고, 청와대 찌라시를 유출한 사람들은 구속당하거나 자살했다. 그때 몇몇 입바른 언론이 지적하긴 했다. 그러나 지금도 정씨는 의정단상에서 국정을 농락하고 있다.

 

지난 16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투표가 있던 날, 한 통신사가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정씨와 김무성 대표가 반갑게 악수를 나누는 사진을 배포했다. 한 사람은 회의록 왜곡 유출의 장본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유출된 내용을 대선 유세장에서 낭독한 사람이었다. 그것만 보면 이 땅엔 정의란 존재하지 않았다.

 

정씨는 이어 국회 본회의에서 “세종대왕은 인재를 등용함에 있어 청렴하면서 무능한 관리보다는 다소 허물이 있어도 능력이 뛰어난 인물을 선택했다”며 이 총리 후보자를 칭송했다. 2년4개월여 전이나 그때나 다를 게 없었다. 청문 과정에서 이 총리 후보자는 공직생활 전 기간에 걸쳐 병역특혜, 아파트 단타매매, 땅 투기, 교수 특혜 채용, 황제 강연 등의 허물을 쌓아왔음이 드러났다. 국민을 밥 먹듯이 속이던 자가 탈·편법의 달인을 두둔하고 있으니, 초록은 동색이다.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그는 ‘왜 아직도 국회의원인가?’ 묻고 또 물어야 하는 이유다. 더는 그 입이 국민을 속이지 못하고, 그 손이 주권을 훔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법과 정치가 방기한다면 나서서 따져야 할 언론까지 침묵한다. 또 다른 이유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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