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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으로 본 국운

주역으로 본 국운

 
조현 2013. 01. 16
조회수 619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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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 ‘고목생화’(枯木生花)라는 말이 있다. ‘마른 나무에서 꽃이 핀다’는 뜻이다. 인간에게 나이 90이면 고목 중 고목이다. 우리 나이로 올해 90이 된 한양원 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을 만났다. 15일 서울 경복궁 인근 음식점에서다.

 

 그와 함께 활동했던 불교계의 효봉·청담·지관 스님, 천주교의 노기남 대주교·김수환 추기경, 개신교의 한경직 목사 등은 다 고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다. 불교나 개신교, 천주교처럼 대종단의 지도자가 아닌데도 그를 뺀 종교지도자모임을 상상키 어려울 정도로 한 회장은 종교계에서 존재감이 있다.

 

최고령에 삿갓과 도포의 포스도 한몫을 하지만, 재치 넘치는 유머와 호호탕탕한 웃음으로 긴장을 녹이는 중화제이자 윤활유 구실을 하는 풍모 덕이다.

 

 그는 민족종교의 일파인 갱정유도회 대표다. 1945년 도조 강대성이 전북 순창 회문산에서 유교를 갱신해 예(禮)를 되찾기 위해 세운 갱정유도회 도인들은 지금도 지리산 청학동 등에서 삿갓 쓰고 도포를 입고 사서삼경을 낭독하며 살아가고 있다.

 

보통(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신학문을 접고 한학의 길에 접어들어 사서삼경과 음양오행 주역을 배우고 도를 닦은 그는 지난해 9월 별세한 통일교 교주 문선명 총재에게 1950년대 6개월 간 두 선배 도인들과 함께 주역을 개인지도하기도 했다.

 

그래서 대선 때면 어김없이 유력 후보 쪽으로부터 ‘점괘를 뽑아달라’는 요청을 받는 주역의 대가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도 그를 각별히 예우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 초청한 종교지도자들 가운데 그를 끌어안고 번쩍 들어올려 남다른 애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이번에도 박근혜 후보 쪽의 요청을 받고 괘를 뽑아 대선 이틀 전엔 ‘오만하면 안 된다’, 대선 당일 새벽 6시엔 ‘당선될 것’이란 메시지를 전했다고 한다.

 

서양문화에 밀려 옛것을 찾아보기 어려운 현대 서울에서 60여년을 삿갓 쓰고 도포를 입은 채 활보하며 여전히 일세를 풍미하는 유일한 인물이다. 아침마다 40~50분간 도인체조를 빠지지 않고 한다는 그는 여전히 40~50대를 연상케 할 만큼 웃음이 호탕하고 목소리가 짱짱하다. 질문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정확한 기억력으로 간단 명료하게 답했다.

 

-김지하시인이 지난 대선을 앞두고 후천개벽론을 들어 여성대통령의 필요성을 주창했는데.

 “국가 전체의 운수를 봐야지, 지도자 한 명에 의해 후천개벽이 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군사정권 때 자신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고백을 한 뒤라면 모르지만, 아무런 전제 없이 상대에 대한 평가가 극에서 극으로 편의에 따라 바뀌는 것도 지식인의 모습으로 볼 수 없다. 대놓고 돈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돈을 원하면 일찌기 돈벌이를 했어야 하지 않는가”

 

 -후천개벽이 오지 않는다는 것인가.

 “격암 남사고(1509~1571) 선생은 500년 전에 ‘만국인이 우리 마당에 와서 벌거숭이로 춤을 추면 천하대운이 우리나라로 온다’고 했다. 올림픽이 열린 1988년 무진년을 원년으로 볼 수 있다. 그 4320년 전 무진년은 단군께서 이 나라를 연 개국의 해였다. 동의보감에도 나오지만,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이듯이 천지도수는 4320년마다 변화가 온다.”

 

 -서양이 쇠하고 동양이 흥하면, 동양엔 중국이나 인도가 있지 않은가.

 “남사고 선생이 남긴 <격암유록>에선 중국은 50개국으로 나뉘고, 일본은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고 돼 있다. 한국은 1천 번의 외침을 받고도 남을 침략하지 않은 나라다. 하늘이 그런 나라에 대임을 맡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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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예언을 어찌 액면 그대로 믿을 수 있겠는가.

 “격암유록은 주역 음양오행의 원리를 그대로 설해 놓은 것일 뿐이다. 지금 현재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격암유록은 원본과는 거리가 멀다. 천부교의 박태선 장로 수하들이 1950년대 순창 회문산에서 진본 목판본을 가져가서 원본에 없는 감람나무 등을 넣어 왜곡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가만히 있어도 세계 주역 국가가 된다는 것인가.

 “이를 위해 통일이 되어야 한다. 그것도 주변국의 조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남북이 주도적으로 이뤄내야 한다. 우리가 원치 않는 가운데 분단됐는데, 통일도 주변국에 맡긴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들이 나서는 것은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통일 뒤 자기 몫을 챙기기 위함이다. 주변국의 간섭대로 맡기면 또 다른 식민지가 될 뿐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박정희 대통령은 ‘배고픔을 이기기 위해 매진하다가 하나는 얻었지만 하나는 잃었다’고 종교지도자들 앞에서 한탄하곤 했다. 얻은 것은 경제고, 잃은 것은 우리의 뿌리인 정신문화다. 경제와 정신문화가 함께 가야 한류가 세계의 주역이 될 수 있다. 당선인은 박 대통령이 못한 것을 해내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인연이 없는가.

 “있다. 1965년 6월6일 현충일에 갱정유도회원들 500명이 서울에 모여 ‘遠美蘇慂, 和南北民’(원미소용, 화남북민)이란 전단을 뿌렸다. 국립묘지에서 현충일 행사를 하고 청와대로 돌아가던 박대통령이 삿갓 쓴 사람들이 전단을 뿌리는걸 보고 잡아오라고 해 내가 대통령 앞에 끌려갔다. 전단을 보고 이게 뭔소리냐고 묻자, ‘미국과 소련이 권하는 이데올로기를 멀리하고, 우리의 홍익인간 정신으로 남북민이 화합하자’는 소리라고 하자, 그게 ‘용공 아니냐’고 ‘쳐넣으라’고 해 92일간 옥살이를 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한문 잘 아는 영감을 데려 오래서 불려간 김팔봉·박종홍·유달영 선생이 권면해줘 풀려났다. 석방 뒤 박 대통령이 저녁을 먹자해서 갔더니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에 다닐 때 쑥죽을 싼 도시락을 메고 30리길을 가서 도시락을 열어보면 물기는 쏙 빠져버리고 쑥건더기와 밥알 몇알 밖에 없어 도지히 창피해 같이 밥을 먹을 수 없어 점심 시간이면 숨어서 먹었다’며 ‘보릿고개를 어떻게든 넘어서야 하지 않겠느냐’며 눈물을 훔쳤다.”

 

 -가장 인상 깊은 인물들은.

 “1954년 서울에 올라와 유교 수장이던 심산 김창숙 선생의 비서를 하면서부터 수많은 인물들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조병옥·장택상 같은 분들에게 술도 많이 얻어 마셨다. 역시 기상이 살아 있는 분들이 오래 기억이 남는다. 임시정부 요인으로 백범이 암살당한 뒤 한독당 당수를 했던 백강 조경한 선생은 이승만 대통령이 내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는 것을 사양했다. ‘나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독당을 죽이려는 것’이라면서. 조 선생은 5·16 직후 함께 4인 자문위원으로 뽑혀 청와대에 갔다가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이지만 친일 논란이 있던 이갑성이 손을 내밀자 ‘대통령이 불러서 오긴 왔다만 친일파와 상종하려 온게 아니다’고 뿌리쳤다.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 장군 손자가 화신백화점 앞에서 군밤장사를 하고 독립지사들 후손들 3대가 무식꾼이 되어버렸는데, 독립운동을 했다는 당신의 자식 세 명이 모두 일본 명문대를 다닌 것은 밀정을 해주지 않고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변영태·전진한 선생처럼 정치와 행정을 하면서도 사심이 없고 검소하고 꼿꼿했던 그런 인물들을 지금은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는 게 안타깝기 그지 없다.”

 

 -종교인중에선 그런 인물이 없었나.

 “여수에서 나환자를 돌보던 손양원 목사와 새문안교회 강신명 목사,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 같은 이들이 존경할 만한 분들이다. 요즘은 종교인들도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물들만 눈에 뜨인다. 종교심과 애국심을 함께 갖고 욕심이 없고 거짓이 없던 그런 분들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통일교 문선명 교주는 어떻게 보았는가.

 “젊었을 때부터 사업가로 보였지 종교인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지난해 별세해 경기도 가평으로 조문을 갔을 때 그곳에 통일교 왕국을 짓는 데 1조원이 넘게 들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돈을 빈민을 구제하는 데 쓰고 자신은 검소한 데 처했으면 얼마나 칭송을 받았겠느냐’는 말을 해주었다.”

 

 전북 남원에서 보통학교만 나온 뒤 전남 구례 호양학교에서 5년을 공부한 그의 삶을 이끄는 것은 호양학교의 정신이라고 한다. 호양학교는 대유학자였던 왕석보 선생과 그의 제자인 매천 황현과 홍암 나철, 이기, 김태경 등이 이끌던 학교다.

 

 세상의 복식과 정신이 골백번도 더 변한 지금까지 옛 복식과 정신을 잇겠다고 겨레얼살리기에 혼신을 불태우는 그는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밤이 가면 새벽이 오는 게 세상 이치”라며 격암유록의 한 구절로 새 봄을 맞으라고 주문했다.

 

 “개선춘풍(開善春風)이니, 사해(四海)가 해원만세(解怨萬世)라.”(봄바람 따라 선한 세상 열리니, 세상이 원한을 풀고 만세토록 이어지리) 

 

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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