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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가상공간의 무제한 압수 수색 영장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나를 감시하는 눈이 항상 나를 주시하고 있다
 
김홍열 | 2016-02-27 13:45:28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테러방지법 저지를 위한 야당 의원들의 필리버스터가 진행 중이다. 관련하여 SNS가 모처럼 뜨겁게 달아 오르고 있다.

 

필리버스터 자체도 매우 특별한 사건이지만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지금과 같은 SNS활동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려가 현실이 되면 모든 종류의 표현의 자유와 프라이버시가 심각하게 손상 받을 수밖에 없고 네트워크 상에서 돌아다니는 개인의 사적 정보는 고스란히 국가 권력의 감시하에 놓이게 된다. 사실상 기한 없는 자택 수색 영장이다. 이후 권력은 네트워크 어딘가에 숨어서 항상 우리를 감시하게 된다. 네트워크 시대에 예상되는 가장 큰 비극이다. 처음에 막지 못하면 비극은 확산된다. 비극은 더 큰 비극을 낳는다. 처음이 중요하다. 애플처럼 해야 된다.

얼마 전 애플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샌버나디노 총기난사의 테러범이 사용하던 아이폰의 보안기능을 풀 수 있도록 연방수사국에 협조하라는 치안판사의 명령을 거부했다. 애플의 팀 쿡 최고경영자가 직접 발표했기 때문에 애플의 기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진보적 시민사회단체의 지지가 이어지고 있다. 프라이버시는 어느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범죄 예방, 안전한 도시 만들기 등의 이유로 국가는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끊임없이 간섭하고 있다. 애플이 이에 정면으로 거부한 것이다. 물론 애플이 민주적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한 번 풀린 아이폰의 보안 기술은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유사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애플은 범죄 용의자의 아이폰을 보안 해제해야 한다. 국가의 명령에 동의하는 순간 애플의 아이폰 사용자들의 프라이버시는 없어지게 된다.

 

 

애플의 대응은 의미있는 행위이지만, 한국과 미국 두 사례에서 우리는 프라이버시의 연약함을 읽게 된다. 프라이버시의 주제는 당연 개인이다. 개인의 권리다. 개인의 권리가 분명한데도 국가와 자본 양 쪽에서 늘 협박과 회유를 받는다. 국가 권력은 국가의 안녕, 국민 보호라는 명목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일시적으로 또는 필요할 때마다 공개하라고 한다. 자본은 개인의 정보를 요구만 하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근대 이후 이런 현상은 일반적이었다.

근대를 성립시킨 세 주체 개인, 국가, 자본의 삼각관계 속에서 개인만 늘 약자로 취급받아왔다. 국가나 자본에 모든 정보를 제공하고도 주권의 담지자 또는 소비자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했다. 국가 권력은 구조적으로 위계적 질서 구축을 갈망하고 있다. 개인을 통치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어떤 영역 안에 가두기를 원한다. 자본 역시 마찬가지다. 개인은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인 한에서만 유효할 뿐이다. 

개인이 삼각관계 속에서 소외된 가장 큰 이유는 역설적으로 다수라는 데에 있다. 개인들이 많다 보니 서로 연결되기 힘들거나 사실상 불가능하다. 분열되거나 파편으로 존재하다 보니 국가와 자본이 통치하거나 이용하기가 용이하다. 매스 미디어가 그 충실한 도구 역할을 해왔다. 매스 미디어를 통해 국가와 자본은 개인들을 적절하게 활용해왔다. 매스 미디어는 관련법에 의해 신고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국가의 요구에 충실할 가능성이 크고 자본은 광고를 통해 매스 미디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개인만 충실하게 미디어의 손님 역할만 하고 있다. 개인이 국가의 주체가 되는 순간이 있기는 하다. 국민투표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미 오랜 기간 매스 미디어에서 송출된 방송 내용에 의해 개인들의 사고는 편파적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편성과 프로그램은 정치적이고 친자본적 속성에서 벗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들은 개인들을 위한 네트워크의 부재를 오랜 시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불공정한 게임의 룰이 조금이나마 변경되기 시작한 것은 인터넷의 등장 이후다. 국가와 자본에 의해 구축되고 운영되고 있지만 네트워크 시대의 가상공간은 의미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놓았다. 국가와 자본에 의해 운영되는 매스 미디어에서 벗어나 가상 공간에서 개인들만의 네트워크인 SNS 가 구축된 것은 역사적으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물리적 공간에서 조우한 적은 없지만 같은 뜻을 가진 개인들을 가상 공간에서 만나 수다, 잡담, 의견 교환, 정보 제공, 공동 구매 등 다양한 의사 소통을 한다. 개인들만의 공간이다. 이 공간에서 만나 때로는 촛불 시위에 함께 나가기도 하고 세월호 관련 온라인 서명도 한다. 이런 일상적 의견 교환들이 연결되고 합해지면 국가와 자본에 종속되어 왔던 개인들의 공간이 확대되기 시작한다. 안토니오 네그리가 다중의 공동체를 꿈꿀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근거한다.

개인들의 네트워크는 그 자체로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는 형식이나 절차에 의해 완성되지  않는다. 형식이나 절차는 계속 변한다. 민주주의의 알파와 오메가는 프라이버시에 기초한 자유로운 소통에 있다. 인터넷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 공간에서 유통되는 개인들의 이런저런 넋두리와 자기 자랑이 민주주의다. 진보와 보수는 그 다음이다.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가상 공간은 이 소통을 무한대로 확산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이 공간에는 누구라도 들어올 수 있고 몰래 들어 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들은 이 공간을 믿고 자신의 사적 정보를 다른 개인과 공유하면서 소통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몰래 들어와 개인 정보를 취합, 분석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정보를 기초로 개인들의 소통을 억압하고 있다면 가상 공간에서의 소통은 폐쇄돼버린다. 테러방지법의 위험성은 여기에 있다. 가택 수색 영장과 다르다.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나를 감시하는 눈이 항상 나를 주시하고 있다. 나의 모든 인터넷 기록들이 누군가의 데이터 베이스에 저장되어 있다. 기한은 무한대고 보존은 영구적이다. 정보화 사회에 대한 비관론자들의 불행한 예측이 현실이 되는 것 같아 암울하다.

김홍열 (성공회대 겸임교수. 정보사회학)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1&table=hy_kim&uid=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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