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데자뷔’…?, 지난 선거에 ‘20대 총선’ 결과 있네


등록 :2016-02-28 16:18수정 :2016-02-28 22:29

 

4·13 총선 전망. 김영훈 기자
4·13 총선 전망. 김영훈 기자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막전막후 62]
역대 선거에 비춰본 2016년 총선 전망
1988년부터 2012년까지 7차례 국회의원 선거
1995년부터 시작된 기초단체장 선거 살펴보니
‘1여다야’, ‘민심’보다 ‘구도’라면 야권 참패 불보듯
데자뷔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시감(旣視感)이라고 번역합니다. 최초의 경험인데도 이미 본 적이 있거나 경험한 적이 있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을 의미합니다. 4월13일 치러질 예정인 20대 국회의원 선거의 양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과거 몇몇 선거와 무척 닮았습니다. 어느 선거인지는 조금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선거에는 변하지 않는 한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표가 많은 쪽이 이긴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선거의 구도가 중요합니다. ‘1여 다야’ 구도에서는 여당이 유리하고, ‘다여’ 구도에서는 야당에 기회가 있습니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의 기본 틀은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도입된 소선거구제입니다. 당시 소선거구제 도입은 ‘민주화’라는 시대적 명분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국회의원 선거는 1구2인 중선거구제였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유신헌법을 제정하고 국회를 확실히 장악하기 위해 유정회와 중선거구제를 도입했습니다. 1980년 쿠데타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도 중선거구제를 승계했습니다. 국회 안정 의석이 필요했고 이를 위해서는 중선거구제가 확실히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신민당 돌풍’이 거세게 불었던 1985년 2·12 선거에서 민정당은 35.2%의 득표율에 그쳤는데도 전체 의석(276석)의 과반인 148석을 차지했습니다. 1구2인 중선거구제와 제1당이 전국구 3분의 2를 차지하도록 한 규정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1987년 6월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 개헌이 이뤄진 뒤 소선거구제 도입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중선거구제는 ‘유신 잔재’였던 것입니다.

 

소선거구제의 특징은 선거구마다 표를 가장 많이 받은 1명만 당선된다는 것입니다. 득표율은 당선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따라서 정당의 전국 지지율이 의석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습니다. 이변과 파란을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30년 동안 우리나라 정치는 격동의 연속이었습니다. 5년마다 치러지는 대통령 직선제, 4년마다 치러지는 국회의원 선거, 그리고 또 국회의원 선거와 엇갈리게 4년마다 치러지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다양한 조합으로 대한민국 정치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1988년 13대부터 2012년 19대까지 치러진 일곱 차례 국회의원 선거 결과를 살펴보겠습니다. 또 1995년부터 시작된 전국동시지방선거의 기초단체장(시장·군수·구청장) 선거 결과도 살펴보겠습니다. 기초단체장 선거는 소선거구제라는 선거제도뿐만 아니라 선거구 개수와 크기가 국회의원 선거와 닮았습니다. 수도권 민심의 변화를 살펴보기 위해 전국 선거 결과에 서울·인천·경기 선거 결과를 붙였습니다.

 

 

 

<국회의원 및 기초단체장 선거 결과>

 

 

1988년 4·26 13대 총선
전체 299/민정당 125/통일민주당 59/평민당 70/신민주공화당 35/한겨레민주당 1/무소속 9
서울 42/민정당 10/통일민주당 10/평민당 17/신민주공화당 3/무소속 2
인천 7/민정당 6/통일민주당 1
경기 28/민정당 16/통일민주당 4/평민당 1/신민주공화당 6/무소속 1

 

 

* 13대 총선의 특징은 민정당의 참패와 평민당의 ‘황색돌풍’이었습니다. 평민당의 색깔이 노란색이었습니다. 대선 패배의 책임으로 위기에 몰렸던 김대중 총재는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통일민주당은 전국적으로 평민당에 비해 많은 표를 획득하고도 의석에서 밀렸습니다.

 

 

1992년 3·24 14대 총선
전체 299/민자당 149/민주당 97/통일국민당 31/신정당 1/무소속 21
서울 44/민자당 16/민주당 25/통일국민당 2/신정당1
인천 7/민자당 5/민주당 1/무소속 1
경기 31/민자당 18/민주당 8/통일국민당 5

 

 

* 민자당은 1990년 3당합당을 했지만 14대 총선에서 149석에 그쳤습니다. 야당인 민주당과 통일국민당은 약진했습니다.

 

 

1995년 6·27 1회 지방선거(기초단체장)
전체 230/민자당 70/민주당 84/자민련 23/무소속 53
서울 25/민자당 2/민주당 23
인천 10/민자당 5/민주당 5
경기 31/민자당 13/민주당 11/무소속 7

 

 

* 최초의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조순 서울시장 후보를 앞세워 서울에서 대승을 거뒀습니다. 충청에서 자민련 돌풍이 거세게 일었습니다.

 

 

1996년 4·11 15대 총선
전체 299/신한국당 139/국민회의 79/통합민주당 15/자민련 50/무소속 16
서울 47/신한국당 27/국민회의 18/통합민주당 1/무소속 1
인천 11/신한국당 9/국민회의 2
경기 38/신한국당 18/국민회의 10/통합민주당 3/자민련 5/무소속 2

 

 

* 15대 선거에서 야당은 분열했고 여당인 신한국당은 개혁공천을 했습니다. 서울에서 여당이 승리했습니다. 충청에 기반을 둔 자민련은 세를 대구·경북까지 확산시켜 무려 50석을 획득했습니다.

 

 

1998년 6·4 2회 지방선거(기초단체장)
전체 232/한나라당 74/국민회의 84/자민련 29/국민신당 1/무소속 44
서울 25/한나라당 5/국민회의 19/자민련 1
인천 10/국민회의 9/자민련 1
경기 31/한나라당 6/국민회의 20/자민련 2/무소속 3

 

 

* 1997년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정권교체가 이뤄짐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의 새정치국민회의가 지방선거에서도 대승을 거뒀습니다.

 

 

2000년 4·13 16대 총선
전체 273/한나라당 133/새천년민주당 115/자민련 17/민국당 2/한국신당 1/무소속 5
서울 45/한나라당 17/새천년민주당 28
인천 11/한나라당 5/새천년민주당 6
경기 41/한나라당 18/새천년민주당 22/자민련 1

 

 

* 김대중 대통령이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해 1당을 노렸지만 패배했습니다. 자민련은 교섭단체 구성에 실패했습니다.

 

 

2002년 6·13 3회 지방선거(기초단체장)
전체 232/한나라당 140/새천년민주당 44/자민련 16/민주노동당 2/무소속 30
서울 25/한나라당 22/새천년민주당 3
인천 10/한나라당8/새천년민주당 2
경기 31/한나라당 24/새천년민주당 4/자민련 1/무소속 2

 

 

* 김대중 대통령 임기 말에 치러진 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뒀습니다. 그런데도 2002년 12월 대선에서는 한나라당이 패배했습니다.

 

 

2004년 4·15 17대 총선
전체 299/한나라당 121/새천년민주당 9/열린우리당 152/자민련 4/국민통합21 1/민주노동당 10/무소속 2
서울 48/한나라당 16/열린우리당 32
인천 12/한나라당 3/열린우리당 9
경기 49/한나라당 14/열린우리당 35

 

 

*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사태로 한나라당이 몰락하고 열린우리당이 과반 의석을 획득했습니다.

 

 

2006년 5·31 4회 지방선거(기초단체장)
전체 230/열린우리당 19/한나라당 155/민주당 20/국민중심당 7/무소속 29
서울 25/한나라당 25
인천 10/한나라당 9/무소속 1
경기 31/열린우리당 1/한나라당 27/무소속 3

 

 

* 노무현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분열로 한나라당이 대승을 거뒀습니다.

 

 

2008년 4·9 18대 총선 전체 299/통합민주당 81/한나라당 153/자유선진당 18/민주노동당 5/창조한국당 3/친박연대 14/무소속 25
서울 48/통합민주당 7/한나라당 40/창조한국당 1
인천 12/통합민주당 2/한나라당 9/무소속 1
경기 51/통합민주당 17/한나라당 32/친박연대 1/무소속 1

 

 

* 한나라당이 2007년 대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압승했습니다. 친박연대가 14석으로 약진했습니다. 무소속 25명 가운데 12명이 친박무소속연대였습니다.

 

 

2010년 6·2 5회 지방선거(기초단체장)
전체 228/한나라당 82/민주당 92/자유선진당 13/민주노동당 3/국민중심연합 1/미래연합 1/무소속 36
서울 25/한나라당 4/민주당 21
인천 10/한나라당 1/민주당 6/민주노동당 2/무소속 1
경기 31/한나라당 10/민주당 19/무소속 2

 

 

*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인한 민심이반과 야당의 선거연대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집권세력은 천안함 사건으로 안보를 쟁점화했지만 역풍이 불었습니다.

 

 

2012년 4·11 19대 국회의원 선거
전체 300/새누리당 152/민주통합당 127/통합진보당 13/자유선진당 5/무소속 3
서울 48/새누리당 16/민주통합당 30/통합진보당 2
인천 12/새누리당 6/민주통합당 6
경기 52/새누리당 21/민주통합당 29/통합진보당 2

 

 

* 선거 전에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과 야당의 선거연대로 여당의 고전이 예상됐습니다. 그러나 유력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경제민주화를 승부수로 내세워 과반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2014년 6·4 6회 지방선거(기초단체장)
전체 226/새누리당 117/새정치민주연합 80/무소속 29
서울 25/새누리당 5/새정치민주연합 20
인천 10/새누리당 6/새정치민주연합 3/무소속 1
경기 31/새누리당 13/새정치민주연합 17/무소속 1

 

 

* 김한길 대표와 안철수 대표가 전격 합당했고 세월호 참사가 터졌습니다. 그런데도 야당은 이기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이후 7·30 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크게 승리하면서 야당이 위기에 빠졌습니다.

 

 

 

 

 

보수 집권세력 민심이반, 1992·2012년 총선과 비슷
야권 분열은 2006년 지방선거 상황과 닮은꼴

 

어떻게 보셨습니까? 2016년 4·13 선거는 역대 어느 선거와 가장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보수 성향 집권세력에 대한 민심이반이 심각하다는 점에서는 1992년 총선, 2012년 총선과 닮았습니다. 그러나 민심이반만으로 보수세력이 의회에서 다수 의석을 놓친 경우는 없었습니다. 딱 한번 현직 대통령 탄핵소추라는 예외가 있었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지역구도 때문입니다. 영남의 의석은 호남·충청·강원·제주를 합친 의석과 같습니다. 영호남 대립이라는 지역구도가 살아있는 한 영남에 기반을 둔 보수세력이 총선에서 패배할 가능성은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민심’보다 ‘구도’가 선거 결과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야권은 선거연대에 성공한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에서 선전했습니다.

 

반면에 현재의 야권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으로 분열했던 2006년 지방선거에서는 참패했습니다. 2006년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호남에서 각축을 벌였습니다. 지금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호남 민심을 붙잡기 위해 다투는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김완주 전북지사 1명만을 당선시킬 수 있었습니다. 광주시장 당선자는 민주당의 박광태, 전남지사 당선자도 민주당의 박준영이었습니다.

 

기초단체장은 어땠을까요? 전북의 기초단체장(14명)은 열린우리당 4, 민주당 5, 무소속 5였습니다. 광주는 구청장 당선자 5명이 모두 민주당이었습니다. 전남(22명)은 열린우리당 5, 민주당 10, 무소속 7이었습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호남을 놓고 다투는 사이에 영남은 물론이고 수도권과 충청·강원 등 ‘중원’은 한나라당이 차지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 김문수 경기지사, 안상수 인천시장, 박성효 대전시장, 이완구 충남지사, 정우택 충북지사, 김진선 강원지사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서울의 25개 구청장을 몽땅 다 한나라당에 빼앗겼습니다. 인천에서도 당선자를 내지 못했고, 경기도에서 박영순 구리시장(열린우리당) 한 사람을 겨우 당선시켰습니다.

 

야권 입장에서 보면, 2006년과 비슷한 두 가지
호남의 문재인 거부감과 박근혜가 상대라는 것

 

이번 4·13 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바로 그 2006년 열린우리당-민주당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겨우 28석의 호남 의석을 놓고 다투느라 수도권과 충청권에서 새누리당에 어부지리를 안길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는 얘깁니다.

 

야권의 시각에서 보면 2006년과 2016년은 호남의 분열이라는 선거구도 이외에도 두 가지 비슷한 점이 더 있습니다.

 

첫째,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호남의 거부감입니다.

 

2006년 선거를 앞두고 문재인 전 청와대 수석이 부산을 방문해 “대통령도 부산 출신인데, 부산 시민들이 왜 (현 정부를)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발언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전 수석의 발언을 민주당은 이른바 ‘부산정권’ 발언이라며 선거에 적극 활용했습니다. 호남에서 문재인 전 수석과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크게 일었습니다.

 

호남에서는 지금까지도 문재인 전 대표의 당시 발언을 문제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최근 호남 출신 학자들이 영남패권주의 논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는 것도 문재인 전 대표에 대한 호남의 거부감과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둘째, 상대가 ‘선거의 여왕’이라는 점입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박근혜 대표는 얼굴에 칼을 맞았습니다. ‘대전은요’ 한마디로 대전시장 판세를 뒤집었습니다. 그 선거의 여왕이 지금 대통령 자리에 올라 있습니다.

 

현직 대통령이니까 노골적인 선거운동은 못할 것이라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곧 현직 대통령이 선거법을 피해 가면서 어떻게 고도의 선거운동을 하는지 기막힌 묘기를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정치학자들은 대통령 선거는 인물을 보고 찍기 때문에 ‘전망 투표’라고 하고, 국회의원 선거는 정권에 대한 평가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회고 투표’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박근혜 대통령의 3년에 대한 평가와 심판의 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와 외교 분야 양쪽에서 다 실패하고 있습니다. 북한 핵실험과 로켓(미사일) 발사 직후 주한미군 사드 배치, 개성공단 폐쇄를 덜컥 결정했습니다. 정부가 안보 위기를 조장하면서 여론은 박근혜 대통령의 결정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여론은 냉정을 되찾고 있습니다. 이제 국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뭘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동안 국민들에게 국회와 야당 때문에 국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으며 그런 국회와 야당을 심판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이른바 ‘국회심판론’ ‘야당심판론’이라는 신종 프레임입니다. 말이 안 되는 주장이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강하게 밀어붙이면 통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권 심판론’과 ‘야당 심판론’을 지지하는 수치가 엇비슷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억지가 이처럼 통하는 이유는 허약한 야당, 유권자 고령화, 편향적 언론 환경 등 여러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여 다야’의 선거구도를 바꾸지 않는 한 여당의 무난한 승리와 야당의 참패를 막을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우리나라 선거는 쟁점보다 구도에 의해 결판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역대 선거 결과가 그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
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