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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 폐지', 전 이 공약에 투표하겠습니다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3/20 09:29
  • 수정일
    2016/03/20 09:2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주장] 발암물질과 같은 야간 학습... 청소년의 저녁이 있는 삶 보장할 후보 없나요?

16.03.19 20:28l최종 업데이트 16.03.19 20:28l

 

 

만약 대한민국 어느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그것도 1주일 내내 발암물질이 들어간 식재료로 만든 급식을 먹이고 있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난리가 날 것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당장 등교를 거부할 것이고, 교장과 급식 담당자는 구속될 것이다. 대통령은 카메라 앞에서 고개 숙여 대국민 사과 성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릴 것이고, 주무 부서인 교육부 장관과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리를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물론, 언론들은 하루 종일 대서특필할 것이고, 그 학교는 문을 닫게 될지도 모르겠다.

저질 식자재나 식중독 문제로 가끔 시끄럽기는 하지만, 적어도 현재 학교에서 발암물질로 급식을 만들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학생들의 먹거리 문제는 무겁게 다루어진다. 좁게는 학생 개인의 건강권 문제이고, 넓게는 인간 생명의 존엄성 문제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한국 학교에 만연한 '2급 발암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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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급 발암물질 석면.
ⓒ free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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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문제, 교육 문제에 이렇게 민감한 우리나라의 학교에 석면과 더불어 만연해 있는 발암물질이 있다. 바로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이름의 '야간 (학습) 노동'이다. UN 전문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 산하의 국제암연구소는 2007년 야간노동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야간 노동이 건강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점은 예측된 상식이지만, 구체적으로 발암 물질이라는 점을 WHO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사실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암을 유발할 뿐 아니라 야간노동이 심장병, 돌연사 등과도 연관이 있다는 연구 발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가서 가장 불편한 점 중에 하나가 야간에 영업하는 식당이나 가게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야간 노동은 행복권을 해칠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발암물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야간 노동 제한은 세계적 추세다. 

국제노동기구(ILO)의 제171호 야간노동 협약은 두 번 연속 야간근무를 금지한다. 이를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야간 노동을 이러저러하게 제한하고 있다. 몇 가지 사례만 살펴보자.

독일은 서비스 분야에 야간 영업을 금지하며, 이를 어겼을 경우 6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벨기에는 병원, 약국, 호텔, 레스토랑, 감시 활동 등 예외를 인정하는 업무 외에는 모든 노동자에게 야간노동을 금지하고 있다. 노르웨이도 운송, 보건, 숙박업 외에는 오후 9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야간노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성인의 야간노동도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금지해 나가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고, 청소년 야간 노동은 더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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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카트>의 한 장면.
ⓒ 명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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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긴 걸로 유명하다. 성인의 노동시간뿐 아니라 청소년의 학습시간 역시 세계 최장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학생들에게 만성적 야간학습으로 이어진다. 다르게 이야기하면 성인 보다 학생들이 장기간 노동에 고통 받는다는 의미다. 

왜 다른 나라에서는 국민의 건강권과 행복권을 이유로 성인들의 야간노동을 규제하는데, 우리나라는 성인도 아닌 청소년들의 야간노동에 대해 무감각 할까?

물론 우리나라도 근로기준법으로 임신 여성과 18세 미만 청소년의 야간 노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낮에는 학업을,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래서 최근 청소년의 야간근로를 원천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청소년 아르바이트보다 더 심각하고, 더 만연한 청소년 야간노동이 있다. 바로 야간자율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심야학습이다. 공간을 학교 바깥으로 확대하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고등학생이 야간노동에 시달린다. 요즘에는 중학생, 초등학생도 그 대상이다.

학생들의 학습은 임금을 받는다는 점을 제외하면 성인들의 노동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정신노동이자 육체노동이다. 어른들의 노동시간은 하루 8시간으로 규제돼 있으며, 그 이상 일을 시키면 초과수당을 주어야 한다. 특히 야간노동은 발암물질이라면서 엄격하게 제한하려고 한다. 그런데 청소년들의 야간학습에는 어떠한 제한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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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학생이 밤 늦은 시각까지 학교에 남아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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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0시가 되어도 불이 훤하게 켜진 대표적인 건물 중의 하나가 바로 학교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고등학교다. 1980년대 해외토픽에나 나왔던 것들이 지금도 그대로다. 아니 오히려 더 확산되어 지금은 오후 11시까지 야간학습을 시키는 학교도 많다. 기숙사가 있는 경우에는 자정 이후까지도 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진풍경이다. 

이런 대한민국의 야경(야간 풍경)을 WHO 발표와 연관해 표현하자면 대한민국 학교는 학생들에게 발암물질을 먹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 성인들의 야간 노동은 발암 물질이므로 규제해야 한다고 하면서, 왜 청소년들의 야간학습이라는 발암물질에는 침묵하는가? 학생들의 야간학습이 발암물질이라는 인식도 없고, 오히려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하는 생각이 만연해 있는 현실이다.

또 다른 발암물질로 알려진 석면은 학교 건물에서 사라지고 있다. 큰돈을 들여 석면 단열재 교체 작업은 하면서, 왜 똑같은 발암 물질인 야간학습은 금지하지 않을까? 돈도 안 들어가는데 말이다.

교사도, 학생도 괴롭다

교육기본법이나 초중등교육법 같은 법률 어디에도 이와 관련된 조항이 없다. 

사교육 기관인 학원의 야간 교습은 학생들의 건강권을 이유로 금지하면서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서 실시하는 야간 학습은 아무런 제한 없이 이루어진다. 이런 모순을 이해할 방법이 없다.

어떤 학교는 오후 11시까지 모든 학생을 강제로 자습시킨다며 학부모들에게 자랑하기도 한다. 이걸 '관리(care)'해 준다고 표현한다. 어떤 학교는 모든 학생에게 시키기 어려우니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만 따로 모아서 밤늦게까지 야간자습을 시킨다. 심화반이나 영재반은 양반이고, 세종반, 독수리반, 리더반, 사임당반 등 그 이름도 참으로 창의적이다. 

어떤 학교들은 아예 공간을 따로 마련하여 성적우수자에게만 야간자습실을 제공한다. 이는 합리적 근거 없는 차별이다. 인권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나 시도교육청 지침은 현실에서 아무런 영향력이 없다. 그건 공문에나 존재한다. 학부모의 요구, 입시 성적 향상 등의 이유로 많은 고등학교가 이런 권고를 무시하면서 특별반을 운영한다.

심야 야간자율학습이 금지되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교사도 퇴근 후에는 생활인이기 때문이다. 교사도 8시간 노동제를 적용받아야 하고, 초과근로와 야간근로에 대해서는 별도의 수당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교사들은 위와 같은 수당이 적용되지 않는 '이상한 지위'의 노동자다. 초과 근무 시 1.5배의 수당을 별도로 지급받는 일반노동자들과 달리 연장근로, 특히 야간근로나 휴일근로를 하여도 가산수당이 적용되지 않는다. 공무원수당 등에 관한 규정을 적용받는 교사들는 호봉에 따라 시간당 초과근무 수당이 8000원~11000원 정도밖에 안 된다. 또한 1일 4시간까지만 초과수당이 적용된다. 

황당한 것이 또 있다. 정규 근무 시간이 아님에도 교장이 야간자율학습 시간을 오후 10시도 모자라 오후 10시 30분, 오후 11시로 일방적으로 연장해 버린 학교들도 많다. 아무리 교사라도 정규 근무가 끝나면 아이들의 부모이고, 누군가의 자식이며, 누군가의 아내이자 남편이다. 개인 생활이 있다. 그러나 교사는 학생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해야 한다는 이유로 말도 못 꺼낸다.

어떤 학교는 교사들이 공휴일은 물론 설, 추석 같은 명절에도 밤늦게까지 자율학습 지도를 해준다고 자랑한다. 이런 현실을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우수사례라고 자랑한다. 자신들의 행복추구권과 노동권도 지키지 못하는 교사가 학생들의 노동권에 대한 기본 개념이 있을 리 없다. 이게 올바른 교육인지 심각한 의문이다.

특히 여교사가 상대적으로 많은 학교에서는 야간자율학습 감독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어떤 학교는 교사들로는 모자라니 학부모를 불러다가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시키기도 한다. 물론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동의라는 형식을 빌린다. 그런데 과연 이게 학부모들의 자발적인 동의에 의한 것인지 의문이다. 

'저녁이 있는 삶'에 학생은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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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 교실의 모습.
ⓒ s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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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구호와 공약이 난무하는 선거철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한 후보가 '저녁이 있는 삶'을 내걸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현 정부도 수요일만이라도 일찍 퇴근해 가족과 시간을 보낼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런데 저녁이 있는 삶은 어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어른들이 일찍 집으로 왔는데 자녀들은 야간자습을 이유로 학교나 학원에 잡혀 있으면 가족끼리 보내는 '저녁이 있는 삶'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어느 정치인도, 교육 관료도, 저녁이 있는 삶에 학생을 포함시키지는 않는 것 같다. 

총선이 한 달도 남지 않아 거의 모든 정당과 후보가 교육 관련 공약을 쏟아낼 것이다. 그런데 어느 정당도, 어느 후보도, 2급 발암 물질과 맞먹는 학생들의 야간자율학습을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사례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정치인들도, 교육 관료들도, 입으로는 저녁이 있는 삶과 가족과 함께하는 문화, 나아가 학생 건강권과 행복추구권, 인권을 말한다. 하지만 학생들이 늦은 밤까지 만성적인 야간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은 당연하게 생각한다. 

단열재로 사용되는 석면을 학교에서 치우는 것도 중요하다. 그만큼 중요한 것이 2급 발암물질인 야간학습으로부터 우리 학생들을 해방시키는 것이다. 완전히 없애는 것이 안 된다면 최소 오후 9시 이후에는 야간자율학습을 금지시키도록 하는 것이라도 시작하자. 

아이들도 행복해야 할 권리가 있다. 충분히 잠을 잘 권리, 재미있게 놀 권리도 보장되어야 하고, 밤에 아무 것도 안 할 권리도 인정되어야 한다. 그들은 감옥에 갇힌 죄수가 아니다. 공부만 하도록 만들어진 학습 기계는 더더욱 아니다. 

애꿎은 학원만 야간 영업을 규제하기보다는 먼저 공교육 기관인 학교부터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학생의 (과도한) 야간 노동 금지', '성적순 차별 자습반 금지' 같은 교육 공약 내놓은 정당은 어디 없을까? 

서울교육청 조희연 교육감이 노동·성 인권 전문가를 채용했다고 한다. 이분들이 취임 일성으로 "학생들을 야간 학습노동으로부터, 교사들을 야간 감독노동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학교에서 발암물질부터 제거하겠다"고 선언하면 어떨까? 

정치인이든, 교육감이든, 어떤 교육 관료이든 이런 주장을 하는 이에게 나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낼 준비가 되어 있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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