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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 수사결과, 지난 30년간 단 한 건도 바뀌지 않아

군의 수사결과, 지난 30년간 단 한 건도 바뀌지 않아

2015. 02. 02
조회수 7 추천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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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0월 12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 내용 가운데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의 재연 사진

  2013년 8월 22일 낮 2시. 필자는 그날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고등법원 내 한 법정에 앉아 있었다. 무려 30년간 자·타살 공방을 벌이고 있는 한 군인의 민사 항소심 선고 결과를 보기 위해서였다.

  사건은 1984년 4월 2일 시작되었다. 이날 강원도 화천군 육군 7사단에서 군 복무 중이던 허원근 일병(당시 22세)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7사단 헌병대는 허 일병이 스스로 총을 쏴 좌·우 가슴과 머리에 각각 한 발씩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군 복무 염증에 의한 전형적인 군인 자살 사건으로 처리될 줄 알았던 이 사건은, 하지만 이후 30년간 진짜 사망 원인이 무엇이냐를 넣고 치열한 논쟁을 하게 된다.

  군은 허원근 일병이 가혹한 중대장의 업무 지시와 폭언, 폭행 등으로 인해 비관하여 자살한 사건이라고 정리했다. 하지만 유족은 믿지 않았다. 특히 허 일병의 아버지 허영춘 씨는 아들이 사망한 후 30년 세월이 지나가는 지금까지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계속 싸우고 있다. 이러한 아버지의 노력 덕분에 허원근 일병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군 의문사’로 세인들에게 언급되고 있다. 현재도 방송과 신문이 군 의문사 사건을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사례 중 하나가 바로 ‘허원근 일병 의문사 사건’이다.

  허 일병 사망사건에서 가장 큰 의문은 바로 허 일병의 사체에서 발견된 세 발의 총상이다. 허 일병은 좌·우 가슴과 머리에 각각 한 발씩, 모두 세 발의 총상을 입고 숨졌다. 유족이 가장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하는 의혹도 이것이며, 허 일병 사인은 타살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가장 의심하는 것도 바로 이 점이다. 허 일병이 자살하고자 스스로 좌·우 가슴에 한 발씩 총을 쐈는데, 그래도 죽지 않자 마지막으로 자신의 이마를 향해 세 번째 총을 쏘고 자살했다는 군 발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상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혹자는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주력 총기로 사용하는 M16 소총은 당장 바꿔야 한다”며 조롱하기도 했다. 총알을 두 발이나 맞고도 죽지 않는 총으로 무슨 전쟁을 하냐는 조소였다.

더구나 M16 소총을 직접 다뤄본 군 전역자들은 군의 이러한 주장을 믿지 않는다. M16 소총의 위력을 안다면 그런 소리를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설령 총탄을 비껴 맞아 즉시 사망하지 않았다 해도 그 충격과 고통으로 기절할 수밖에 없는데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이나 스스로 총을 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믿을 수 없다는 말한다. 하지만 군의 입장은 불변이다. 국방부는 지난 30년 동안 허원근 일병은 자살했다는 말 외에 나머지 남는 의문에 대해서는 성의 있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그런데 세 발의 총상 외에도 허원근 일병 사건에서는 중요한 의문이 또 있었다. 바로 ‘피’였다. 허 일병이 총상으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는 신고를 접한 7사단 헌병대가 바로 현장으로 출동했다. 헌병대는 허 일병의 사체와 사건 현장을 카메라로 촬영한다. 그런데 헌병대가 촬영한 사진 속에서 허 일병의 아버지는 이상한 점을 확인하게 된다. 앞서 말했듯 허 일병은 무려 세 발이나 총상을 입었다. 당연히 허 일병의 몸에는 모두 6개의 관통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총알이 들어간 사입구와 빠져나간 사출구가 바로 그것이다. 더욱이 통상 사입구는 작으나 빠져나간 사출구는 그보다 훨씬 구멍이 크다. 그렇다면 이 총알 구멍들을 통해 허 일병의 몸에서 흘러내릴 피는 어느 정도의 양이 될까? 법의학자들은 적어도 몇 리터에 달하는 양의 흥건한 피가 현장과 사체에서 보여야 맞는다고 했다. 하지만 현장은 그렇지 않았다. 깨끗했다.

  너무도 상식 밖의 현장에 대한 의문에 대해 군 헌병대의 답변은 어처구니없었다. 흘러내린 피가 땅과, 입고 있던 허 일병 옷에 스며들어 사진 상으로는 보이지 않게 된 것이라고 대답했다.

  아무리 피가 땅에 스며든다 해도 빨대처럼 작은 구멍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상당한 넓은 면적으로 그런 흔적이 남아야 옳은 해명이 될 수 있다. 또한 옷에 스며든다면 거기서도 그런 넓은 핏자국이 보여야 인정될 수 있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런 흔적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다. 땅도 옷도 거의 핏자국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궁색한 군 헌병대의 변명조차도 끝내 피해갈 수 없는 또 하나의 결정적 의혹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2010년 허원근 일병 유족이 낸 민사소송 1심 판결에서 당시 재판부가 “허 일병의 사인은 자살이 아니며 사건 현장은 조작되었다”는 근거로 삼은 증거였다.

 

 사라진 허 일병의 신체 조직

 

  바로 ‘허원근 일병의 뇌 조직이 어디 갔느냐?’였다. 군은 사망한 허 일병이 좌·우 가슴과 머리에 각각 한 발씩 총을 쏴 자살했다고 했다. 그런데 법의학적 분석 결과 머리는 가장 마지막에 총격이 가해졌는데 이로 인해 허 일병의 머리 부위는 상당히 큰 손상을 입게 된다. 따라서 얼굴 피부 조직과 머리 뼈, 그리고 뇌 조직 등이 흩어지게 된다. 이렇게 된다면 사건 현장의 상태는 어떻게 될까. 상상해 보면 당연히 현장에는 허 일병의 손상된 신체 부위가 남아 있어야 했다. 그런데 없었다. 피도 없었고 두개골 조각이나 뇌 조각 등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이 사건 민사소송 1심을 담당했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36부 김OO 부장판사는 2010년 2월 3일 “허 일병의 시신에 대한 법의학적 소견,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의 증거 자료, 국방부 특별조사단의 수사 자료 등을 토대로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결과 소속 부대 군인에 의해 타살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선고한다.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 발생 무려 만 26년 만에 내려진 새로운 법정 결론이었다.

  그러면서 당시 1심 재판부는 허 일병이 타살됐다는 유력 증거 중 하나로 두개골 조각이나 뇌 조각이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했다. 현장에 출혈 흔적이 없다는 의혹에 대해 “피가 땅에 스며들어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군의 황당한 해명과는 달리 재판부는 이 사건에 더 큰 의혹이 있다고 판단하여 타살로 결정지은 것이었다. 총상으로 손상된 허 일병의 머리 부위 신체 조직도 헌병대 촬영 사진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한 단서가 됐다. 더욱이 재판부는 이 사건을 해외 법의학자에게 의뢰했다. 그들이 보내온 답은 간결했다“피는 설령 땅에 스며들 수 있어도 뇌 조직은 땅에 스며들 수 없다.” 즉, 허 일병이 발견된 장소는 허 일병이 사망한 장소가 아니라는 결론이었다. 그러자 재판부는 누군가가 다른 곳에서 사망한 허원근 일병을 사체 발견 장소로 옮긴 것이며, 따라서 허원근 일병이 자살했다는 것은 사실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아버지 허영춘 씨는 그날 감회가 새로웠다고 한다. 그토록 오랫동안 고통 받았던 시간에 비하면 얻어낸 결론은 미약한 진실이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비록 범인을 특정하지 못했고, 남은 의혹에 대해 명쾌하게 다 밝혀내지 못했지만 이번 판결로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기다린 보람 끝에 이겼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1심 결과를 접한 국방부는 곧바로 반발했다. “사실 인정 및 법리상 오류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1심 판결에 불복, 바로 항소했다. 그래서 열리게 된 2013년 8월 22일 민사소송 2심 판결일. 나는 이 2심 선고를 보기 위해 그날 법원에 갔다.

 

 2심 재판부 허원근 ‘자살’ 판결, 30년 돌아 다시 제자리로

 

  잠시 후 서울고등법원 민사합의 9부 강OO 재판장이 법정에 들어섰다. 그리고 내려진 선고. 설마 했던 우려는 사실이 됐다. 타살로 인정되었던 1심 선고는 항소심에서 또 다시 자살로 뒤집혔다. 1984년 당시 7사단 헌병대가 자살이라고 발표한 후 이 사건은 정부기관 조사와 재판을 통해 모두 네 차례나 자·타살 결과가 번복되었다. 2002년 1기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허 일병이 타살되었다고 발표하자 당시 국방부는 특별조사단을 임의로 구성하여 재조사한 후 다시 자살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2004년 2기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국방부가 억지를 부린다며 다시 타살이라고 발표했고 이후 유족이 낸 민사소송에서 2010년 1심 재판부가 타살을 재확인한 것이다. 그런 허 일병 사인이 다시 그로부터 3년이 지나가던 2013년 8월 민사 2심 선고에서 다시 자살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게 만 29년을 돌고 돌아 결국 허원근 일병 사망사건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러면서 자살로 결론을 내린 민사2심 재판부의 판단은 1984년 7사단 헌병대의 수사 결과를 ‘사실상’ 그대로 반복했다. 더 밝혀진 것도 없었고 새로울 것도 없는 29년 전 그 ‘자살론’ 그대로였다. 먼저 세 발의 총상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에 대해 재판부는 “망인과 신체 조건이 비슷한 사람이 M16 소총의 발사 자세를 취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밝혔다. 자세가 가능하니 자살이 맞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시연한 모습을 슬라이드로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시연자는 그 자세로 보여준 것일 뿐 실제로 좌·우 가슴에 총상을 입고도 마지막 세 번째 자세를 할 수 있는지는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 그런 자세가 가능한지만 보여준 것뿐이었다. 가슴뼈가 부러지고 몸에 4개의 큰 구멍이 이미 발생한 상태에서 다시 또 자신의 이마를 향해 세 번째 총격을 가한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재판부의 결론은 참으로 ‘신비한’ 주장이었다.

  사실 나는 항소심 결과를 앞두고 우려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자살로 처리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바로 언급한 것처럼 현장에서 발견되지 않은 허 일병의 뇌 조직 때문이었다. 다른 것은 다 해결할 수 있어도 그 뇌 조직이 사건 현장에서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으로도 해결할 방법도 변명도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적어도 합리적인 재판부라면 그것을 무엇으로 피해갈 수 있겠나 믿은 것이다.

  하지만 결론은 어처구니없었다. 놀랍게도 답은 간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건 현장에 피가 보이지 않은 것에 대해 땅에 스며들었다는 군 헌병대 답변은 옹색한 수준을 넘어서는 황당한 논리를 가져왔다. “M16 소총탄의 회전력으로 혈액이 비산(날아서 흩어짐)하여 날아갔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뇌 조직 역시 “그렇게 어디론가 날아간 것으로 판단된다”였다. 재판부는 그렇게 모든 의혹을 한꺼번에 해결해 버린 후 자살이 맞다며 유족에게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나는 정말 그 판결을 들으며 실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총의 위력이 보잘 것 없어 무려 세 번이나 총을 쏴야 사망할 정도였다고 하면서, 또 반대로는 소총의 회전력으로 그 모든 것이 비산되어 사라졌다는 이중적 논리는 너무도 뻔뻔하지 않은가.

  이런 판결에 대해 허 일병의 유족이 반발하는 것은 당연했다. 아버지 허영춘 씨는 “국방부가 그동안 해 온 아들의 자살 주장을 판사가 그대로 말하더라”며 "말할 수 없이 참담하다”는 한마디를 남긴 채 법정을 떠났다. 그러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며 상고했고 이제 이 사건의 최종 결론은 대법원으로 간 상태다.

  아버지 허영춘 씨 만큼은 아니겠지만 재판이 끝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던 나 역시 너무도 허탈했다. 그야말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럴 수가 있는가 싶었다. 그때였다. 문득 이런 의문이 들었다. 과연 국방부는 지금까지 자신들이 한번 내린 수사 결과를 바꿔 본 적은 있을까? 자신들이 내린 수사 결론을 이후 피해 유족이 반발하여 이의를 제기할 경우 다시 재조사하여 그 결과가 바뀐 사례가 있다면 과연 그 횟수는 얼마나 되며 그러한 구체적 사례는 무엇일까. 이러한 의문이 들면서 나는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국회 자료제출 요청권’에 따라 국방부에 공문을 보냈다. 허원근 일병이 사망한 1984년보다 2년 전인 1982년 1월 1일부터 만 30년 후가 되는 2012년 12월 31일 사이 기간 중 군인 사망사건에 있어 유족이 기존 수사 결과에 반발하여 재조사를 요구한 후 그 결과가 변경된 사례가 있는지, 만약 있다면 그 대상자의 이름과 사건 개요, 그리고 사망 원인이 변경된 결과가 무엇인지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리고 그로부터 약 10여일이 지나가던 어느 날, 마침내 내가 요청한 자료가 국방부 조사본부로부터 전달됐다. 나는 궁금한 마음에 그 문서를 열람해 보니 문서 분량은 고작 ‘한 장’이었다. 아니, 30년 동안 결과를 요청한 것인데 왜 이렇게 분량이 적나 의아했다. 그리고 읽어본 답변서의 분량은 딱 한 문장이었다. 그 답변을 그대로 인용한다.

  “요청하신 자료와 관련하여 군 헌병대의 1차 수사결과에 대해 유족이 이의를 제기하여 그 결과가 변경된 사례는 없습니다.”

  2015년 현재, 허원근 일병 의문사는 만 31년이 지나가고 있다. 또 다른 대표적 군 사망사고중 하나인 19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사건은 올해로 만 17년째다. 많은 이들은 묻는다. 도대체 왜 이런 군 의문사가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냐고. 나 역시 이 공문을 보고 그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되었다.

   군 헌병대 수사는 신이 하는가? 완벽한 신이 하는 수사가 아니고서야 어찌 지난 30년간 군이 한 수사는 단 한 건도 그 결과가 바뀌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다시 전화를 해서 물었다. 내가 물어본 것이 30년 사이 기간인데 혹시 1948년 군 창설 이래 지금까지 바뀐 사례는 있는지 물었다. 정말 놀라웠다. 답변은 "단 한 건도 없다"였다. 이것이  말이 되는가.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이제 답은 하나다. 군 헌병대가 군 사망사고 수사를 독점하는 지금의 상황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객관적이며 중립적인 제3의 민간 외부 기구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의 주장을 더 이상 국가가 외면해서는 안 된다. 허원근 일병처럼, 김훈 중위처럼, 그 외에 이루 헤아릴 길이 없는 수많은 군인의 억울한 죽음을 이대로 군 수사에만 맡기는 것은 또 다른 죄임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나는 그동안 숨져간 모든 군인의 영혼을 위로한다. 이제 진실을 밝히자.

 고상만 인권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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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7만8241명 건보료 분석해보니

등록 : 2015.02.01 22:02수정 : 2015.02.0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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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 리포트]신입 7만8241명 건보료 분석해보니
취직 전보다 더 자주 병원에 가
진료비 지출 평균 10%가량 늘어

자주 속이 쓰리고 소화가 안된다. 전에 없던 일이다. 어깨와 목은 갈수록 뻣뻣해지고 뒷목을 잡는 날이 많다. 감기는 왜 이리 자주 걸리는지….

 

신입사원이 아프다.

 

최악의 취업난을 뚫었으니 ‘불행 끝 행복 시작?’ 아니었다. ‘지옥’을 빠져나왔다고 좋아했는데, 정작 기다리고 있던 건 새로운 ‘전쟁터’다. 낯선 전장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몸과 마음에 차곡차곡 상흔을 남긴다. 악전고투다. 지금도 입사지원서를 고쳐 쓰는 후배나 동료들은 ‘행복한 아우성’이라 핀잔할지 모른다. 그러나 신입사원들이 꿈에 부푼 직장에서 확인하는 건 “여전히 미생”이라는 사실이다.

 

<한겨레>와 국민건강보험공단(건보공단)이 갓 직장에 들어간 신입사원의 입사 전후 1년간의 병원 이용 행태를 추적해 보니, 취직 전에 비해 입사 뒤에 더 자주 병원을 찾았고 그만큼 진료비 지출도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2012년 6월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자격을 취득한 1977~1987년생(2012년 현재 25~35살) 7만8241명의 병원 이용 행태를 분석했다. 이들이 입사 뒤 1년(2012년 7월~2013년 6월) 동안 쓴 1인당 평균 진료비(건보공단 지급+개인 부담금)는 29만원이다. 입사 직전 1년(2011년 7월~2012년 6월) 동안 지출한 진료비 26만2000원보다 10%가량(2만8000원) 많았다. 입사 전엔 77%(6만429명)가 병원을 찾았지만 입사 뒤엔 그 비율이 82%(6만4626명)로 높아졌다. 취직 전에는 병원을 찾지 않은 신입사원 100명에 5명꼴로 입사 뒤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 치료를 받았다는 뜻이다.

 

입사 전후를 가리지 않고 진료 빈도 상위 1~3위를 차지한 질병은 급성기관지염, 편도염, 급성상기도감염이다. 모두 감기와 관련된 증상들로 볼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건 취직 뒤 이런 질병으로 병원을 찾는 이들이 3.4% 늘었다는 사실이다. 직장생활 뒤 스트레스가 쌓여 발병 빈도를 높이거나 새로 병을 유발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는 흔히 복통·설사 증상으로 나타나는 위장염이 신입사원이 된 뒤 무려 31.6%나 증가한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속쓰림 증상인 위염 및 십이지장염을 앓는 직장인도 11.5%가 증가했다.

 

추정은 건보공단 일산병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위장 등 소화 분야 장기는 스트레스에 민감하다. 신입 직원들이 새로운 일을 하느라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지고 업무가 바빠 생활이 불규칙해지면 위염이나 소화장애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잦은 회식과 과음·폭식·흡연도 위염 등의 원인이 된다”고 짚었다. 김형렬 가톨릭대 교수(직업환경의학)는 “신입사원들이 병원을 찾는 횟수가 늘어난 건 취직 뒤 경제적 여유가 생겨 이전엔 참고 넘기던 질병도 병원 치료를 받게 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실제로 신입사원들이 취직 전에 견줘 더 자주 병원을 찾고 진료비를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겨레>는 몇몇 새내기 직장인들을 만나 병을 부르는 그들의 업무 환경, 생활 방식, 고충을 들어봤다. 야근과 과로, 업무상 음주, 인간관계와 조직 적응 과정에서 비롯된 스트레스가 고스란히 몸에 투영된 결과로 요약된다.

 

 

부서 회식에 술접대까지
일주일에 사나흘은 만취

 

 

바쁠땐 며칠씩 제대로 못자
눈치 보여 아파도 휴가 못내

 

 

진상 민원인에도 고분고분
인사불이익 당할라 꾹 참아

 

 

아프다 말해도 대책 안세워
회사서 소모품 취급당해 절망

 

 

1년씩 계약 연장해야 돼 불안
‘월급이 아깝다’ 무시 당하기도

 

 

 

①대기업 사원(27·남)/과음/2014년 9월~

 

총무팀에서 근무한다. 인허가나 규제를 맡은 공무원에게 술자리 접대를 하는 일이 잦다. 일주일에 한번은 부서 회식에 참가해야 한다. 술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업무상 술자리는 고역이다. 마음이 편치 않고 술 마시는 양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도 없어서다. 무엇보다 긴장해야 한다. ‘갑’을 앞에 두고 먼저 흐트러져는 안 된다. 그렇게 일주일에 나흘 정도 술을 마신다. 그 가운데 사흘은 만취할 때까지 마신다.

 

지난해 말 건강검진을 받기 전 선배들의 조언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문진표 음주 습관 항목에 음주 횟수나 주량을 사실대로 적지 말라는 거였다. 나중에 몸에 이상이 생기면 일 때문이 아니라 원래 술을 좋아해 많이 마신 탓이라며 산업재해로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 조언에 격하게 공감한다. 하지만 자괴감이 스멀스멀 온몸을 벌레처럼 기어다닌다. 이렇게 살려고 취업하려 안달복달했나 싶다.

 

②구청 공무원(27·여)/감정노동/2013년 12월~

 

일반직 8급으로 서울의 한 구청에서 일한다. 첫 보직으로 10개월 동안 민원 처리 업무를 맡았다. 요구 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민원인 탓에 곤란할 때가 많다. 함께 화를 내지도 못한다. ‘불친절’ 공무원으로 찍혀 인사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서다. 행동 하나하나가 (구청 공무원의) 대표성을 띤다고 생각하니 행여 말실수라도 할까봐 긴장을 떨치지 못한다. 법과 절차를 따라야 하는데다 업무마저 익숙지 않아 대기 줄이 길어질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내가 낸 세금으로 이런 식으로 굼뜨고 불친절하게 민원을 처리하느냐”며 호통을 치는 사람이 꼭 있다. 어김없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긴 한데, 직접 당해보니 달랐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민원인이 욕을 하거나 언성을 높이면 긴장 탓에 소화가 안되고 오후 서너시면 편두통이 심해진다. 찬 공기를 쐬어도 효과가 없어 약을 먹을 때가 많다. 그런 날은 퇴근 뒤 집에 돌아와서도 가슴이 벌렁거린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귀가 계속 아파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다고 얘기했다.

 

③티브이(TV) 드라마 프로듀서(28·남)/밤샘노동·과로/2013년 12월~

 

촬영에 들어가면 프로그램이 종영될 때까지 쉬는 날이 없다. 일과가 아침 6시께 시작해 일러도 다음날 새벽 1시는 돼야 끝난다. 잠은 두세시간밖에 못 잔다. 그마저도 입사 초기에는 중간에 서너번씩 잠에서 깼다. 현장에 늦게 도착하는 악몽에 시달려서다. 일이 새벽 서너시까지 이어지는 날도 흔하다. 그런 날은 잠은커녕 찜질방에 들러 몸만 씻고 출근해야 한다.

 

학생 땐 규칙적으로 지냈다. 그러다 취직 뒤 하루 두세시간밖에 잘 수 없는 현장에 내던져지니 적응이 어렵다. 입사한 지 서너달 됐을 땐 촬영 나가는 길에 나도 모르게 주저앉기도 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안정이 필요하단다. 선배들도 좀 쉬라고 권한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내 일을 대신 해줄 사람이 없다. 제때 하지 않으면 일이 자꾸 쌓이게 된다. 구멍이 나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눈치를 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요즘에도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많다. 갈수록 머리가 몽롱하고 몸은 나른해진다. 추운 날씨에도 종일 서서 버텨야 하니 온몸이 욱신거린다.

 

④중소기업 사원(30·남)/인간관계 스트레스/2012년 8월~2013년 7월

 

대전의 한 의료기기 중소기업 기획실에서 1년가량 일하다 건강이 나빠져 결국 퇴사했다. 지금은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입사할 때 받은 건강진단에선 아무 이상이 없었다.

 

늘 아침 8시 전에 출근했고, 밤 9시 전엔 퇴근해 본 적이 없다. 하루 13시간씩 일했다. 퇴사 두달 전쯤 혈압이 160까지 올라갔다. 2층에서 5층까지도 걸어서 올라가지 못할 정도로 심한 호흡곤란 증상이 왔다. 의사는 스트레스를 피해야 한다며 무조건 쉬라고 했다. 일을 그만두라는 선고나 다름없었다. 고혈압 치료를 받느라 병원비와 약값으로 두달간 20만원을 썼다.

 

회사에 사정을 설명했는데도 대책을 세워주지 않았다. 사람을 늘리지도, 업무를 다른 사람한테 나눠주지도 않았다. 엔지니어 위주의 회사라 홍보 담당인 나는 업무 배정이나 연봉 협상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그만큼 반감도 컸다. 내 일에 대한 주변의 평가도 피상적이었고 종종 시기와 질투도 받았다. 몸도 몸이지만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나를 소모품 정도로 여기는 회사와 상사들의 태도에 절망했다. 그래서 사직서를 냈다.

 

⑤국립대 기간제 비서(26·여)/모멸감과 고용 불안/2013년 10월~

 

국립대학 산하기관에서 비서로 일한다. 1년 계약을 했고 지난해 10월에 다시 1년 연장계약을 했어야 했는데 연봉 협상 문제로 아직 계약서를 새로 쓰지 못하고 있다. 행정실장은 바빠서 그렇다며 계약을 미룬다. 추가근무수당도 3개월째 받지 못하고 있다. 계약을 하지 않은 채로 계속 일하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될 수도 있다고 하던데, 일이 어찌 될지 몰라 불안하다.

 

상사가 다른 사람들한테는 그러지 않는데 내 인사는 일부러 받지 않는 거 같다. “하는 일에 비해 돈을 많이 받는다”며 수치심과 모멸감을 주기도 한다. ‘알아서 그만두라’는 거 같기도 하고…. 같은 대학의 다른 기관 비서들은 월급을 180만원까지 받는다는데, 내겐 120만원도 아깝다는 거다.

 

입사하고 두달 만에 갑자기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몸이 붓더니 숨쉬기가 어려워졌다. 심야에 병원 응급실에 가야 했다. 면역력이 떨어지고 갑자기 스트레스가 집중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하더라. 한달 가까이 병원에 다니며 치료를 받고 나서야 몸 상태가 어느 정도 회복됐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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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모르는 ‘2·8전당대회’ 정권교체 가능할까?

 
 
새정치연합의 ‘2·8전당대회’ 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임병도 | 2015-02-02 08:56:33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2·8전당대회’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보궐선거와 총선은 물론이고 대선까지 책임질 새정치연합의 지도부를 구성하는 ‘2·8전당대회’이지만, 여론 반응도 신통치 않고, 들려오는 소리도 그다지 좋은 얘기들은 없습니다.

오히려 새정치연합의 ‘2·8전당대회’는 가면 갈수록 지도부가 구성돼도 과연 정권교체가 가능할지라는 의문만 잔뜩 남기고 있습니다.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사람들을 실망하게 하는 새정치연합의 ‘2·8전당대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봤습니다.


‘당심과 민심, 왜 그리 차이가 날까?’

선거 관련 자료 중에 시도별 유권자수를 분석하는 도표는 빠짐없이 나옵니다. 그 이유는 경상도 유권자수가 다른 시도에 비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19대 총선 시도별 유권자수 분포 ⓒ박대용

경상도 유권자수는 전라도에 비해 세 배가 넘습니다.1 전라도와 충청,강원,제주,세종을 합쳐도 경상도 유권자를 넘지 못합니다.

광주와 전북,전남을 모두 합쳐도2 10.2%로 부산 (7.2%)과 경남 (6.4%)를 합친 13.6%에 미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선거에서 지역별 불균형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지역별 유권자수 불균형은 새정치연합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새정치연합의 ‘2·8전당대회’에서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출 비중이 75%인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숫자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서울과 경기지역 권리당원을 합쳐야3 전북이나 전남 지역 하나와 비슷합니다.
 
단순히 숫자만 비교하면 잘 이해가 되지 않으니, 전체 권리당원의 비중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새정치연합의 권리당원 중 전남, 전북,광주를 합치면 50%가 넘습니다. 서울과 경기를 합쳐도 전라도 지역의 권리당원 숫자보다 적습니다.

권리당원의 비중이 높아서, 새정치연합 당대표와 최고위원 후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호남’에만 가면 자신이 ‘호남의 적자’ 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호남지역이 야당의 텃밭이자 근간이 되는 지역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지역별 편차가 심하다 보니 당심과 정권교체에 가능한 민심이 비슷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새정치연합 당대표와 최고위원을 선출하는 ‘2·8전당대회’에서 당심과 민심이 다르다는 소리가 왜 나오는지, 조금은 이해가 되실 겁니다.
 

‘무조건 후보자를 선택해야 유효표?’

새정치연합의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출방식은 대의원의 현장투표와 선거권을 가진 권리당원4의 ARS투표와 여론조사를 합산해서 결정됩니다.

대의원 투표는 전국대의원명부에 기재된 국내 거주 대의원은 현장투표를 하고, 재외국민대의원은 이메일로 투표합니다.

ARS투표는 선거권이 있는 권리당원에게 전화를 걸어 투표하는 방식입니다.5

여론조사는  당원 여론조사와 국민여론조사를 합니다. 여론조사는 25%를 반영하는데, 이때 국민여론조사는 득표율을 합산한 평균값 결과 5분의 3을, 당원 여론조사는 5분 2를 반영합니다.

문제는 여론조사에서 당대표 후보자 1명과 최고위원 후보자 2명을 모두 선택해야만 유효표 된다는 점입니다. 6
 
이 말을 바꿔말하면 서울시장과 구청장, 구의원을 뽑는 선거에서 서울시장과 구청장을 선택하고 구의원 투표에 ‘지지후보 없음’이라고 하거나 기표를 하지 않으면 무효표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지금 새정치연합의 최고위원이 누구인지 잘 모르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권리당원이라고 해도 최고위원 후보가 누군지 모르는데, 일반 국민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새정치연합은 최고위원 2명을 무조건 선택해야 유효표로 인정한다고 합니다.

그냥 대놓고 여론조사를 무효로 만들겠다는 태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2월 3일부터 권리당원에 대한 ARS투표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새정치연합 홈페이지에 가보면 무슨 ‘강제적 권리당원 ARS투표’나 ‘자발적 권리당원 ARS투표’라는 어려운 말만 잔뜩 텍스트로 나열되어 있습니다.

권리당원이지만 새정치연합 당비만 자동이체로 나가지, 평소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유권자를 위해 자세하게 투표 안내를 해줘야 마땅하지만, 그저 경선규칙만 나와 있지, 쉽고 간편하게 이해될 안내문이 없습니다.

동영상으로 간단하게 투표 방식을 알려줄 의무가 있지만, 새정치연합은 홈페이지 어느 곳에도 그런 친절함은 없습니다. 공지나 자료실을 가봐도 현장중계 일정만 나옵니다.

투표 참여를 아예 처음부터 가로막는 참 불친절한 정당입니다.


‘정권교체 전에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

아이엠피터는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진 정치적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왔습니다. 특히 민심을 새정치연합 내부로 끌어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문재인 후보는 여기서 나아가 제대로 된 ‘탕평책’을 펼쳐야 합니다. 자기와 우호적인 세력을 끌어 오는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상대방 진영을 중요 보직에 임명하거나 정치신인을 등용해야 합니다.

선거 전에 이런 모습을 과감하게 보여줘야 ‘2·8전당대회’가 끝나도 새정치연합을 이끌 수 있는 수장이 될 수 있습니다.

지역위원장이나 대의원이 장악한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그들과 연대하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시스템을 바꾸어 공정하게 새정치연합이 개혁될 수 있는 방법 또한 모색해야 합니다.

박지원 후보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주장하는 핵심은 ‘당권과 대권 분리’입니다. 그런데 2010년 박지원 후보는 원내대표 경선에 나와서 “전당대회에서 대권을 꿈꾸는 우리 당 인재들이 지도부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정권교체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당권과 대권을 분리하느냐는 중요한 점이 아니라고 봅니다. 당권과 대권을 분리해서 ‘정권교체’가 가능하느냐를 묻고 있을 뿐입니다.

새정치연합의 당권이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도록 대선을 준비하고 승리한다면, 그의 말이 맞겠지만, 지금 새정치연합을 보노라면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아이엠피터는 정치블로거이지만, 새정치연합보다는 항상 새누리당의 행보에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새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을 비교하면, 새누리당이 오히려 더 젊어지고 진보적 성향의 모습을 가식적이나마 보여주고 있습니다.7

새정치연합의 ‘2·8전당대회’를 보면 참석자 대부분이 노령층입니다. 젊은이들은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그저 각 후보 진영 자원봉사자들이나 젊지, 참석자의 연령대는 대부분 높습니다.

‘2·8전당대회’조차 젊은이들이 참여하지 않는 정당을 보고 있노라면, 이래서 어떻게 ‘정권교체’를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새정치연합이 정권교체를 할 수 있게 하려면, 전당대회 투표에 선거권을 가진 권리당원이나 여론조사에 많이 참여해야 합니다.

새정치연합의 모습을 보면, 민심과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당원이 있어야 정당이 운영되지만, 민심을 얻지 못하면 선거에서 패배, 정당 자체가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민심과 당심을 하나로 합칠 수 있는 ‘2·8전당대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1. 박대용기자블로그 2012년 7월 29일. 19대 총선 시도별 유권자수 분포http://biguse.net/608
2. 광주 1,108,862명 2.8% 전북 1,476,325명 3.7% 전남 1,525,241명 3.8% 
3. 서울:37,503 경기:35,935
4. 2014년 6월 31일까지 입당한 당원 중 3회 이상 당비를 납부한 당원 
5. 새정치연합 당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을 위한 시행세칙. http://npad2015.kr/page/rule.php 
6. 새정치연합 경선방법,시행세칙 http://npad2015.kr/page/way.php
7. 새누리당의 홈페이지와 새정치연합의 홈페이지만 비교해봐도 누가 더 시민에게 다가가고 있는지 쉽게 이해된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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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가 낯선 나이? 6살 위 윤여준 장관도 하는데"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5/02/02 09:55
  • 수정일
    2015/02/02 09:55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인터뷰] 팟캐스트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 시작하는 정세현 전 장관

15.02.02 08:05l최종 업데이트 15.02.02 08:05l

 

 

기사 관련 사진
▲  팟캐스트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 진행자인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과 황방열 오마이뉴스 기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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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1945년 6월에 태어난, '해방둥이'입니다. 그 시절 만주라 불린 중국 동북3성의 북쪽 헤이룽장성에서 태어난 그는 생후 100일 만에 강보에 쌓여 그곳을 떠나 만주와 한반도를 관통하는 40일간의 여정을 거쳐 아버지의 고향인 전주에 도착합니다. 

이런 개인사를 보면 그가 통일 문제를 일생의 화두로 갖게 된 것이 그의 표현대로 "강보에 쌓여 넘어온 38선을 되짚어 다시 평양으로 가는 길을 뚫는 일을 하게 된 것"으로 "그의 운명이었구나"라고 해도 심한 비약은 아닐 듯 합니다.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통일부 장관과 바로 이은 노무현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이례적인 경력으로 널리 알려진 그는 1977년 국토통일원 공산권 연구관으로 공직을 시작한 이래 말단 실무부터 장관까지 통일관련 업무를 경험한 거의 유일한 통일부 장관입니다. 또 '공산 중국'에 대한 연구가 척박했던 1982년에 '모택동의 대외관 전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론가이기도 합니다.

장관 재임중 남북대화 95회, 합의서 73개 나와

그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때까지 열린 606회의 남북대화 중 99회의 회담에 관여했고, 총 226건의 남북합의서 중 76건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특히 통일부 장관으로 있던 2년 5개월(2002년 1월~2004년 6월)동안 95회 남북대화가 있었고 73개 합의서가 작성됐습니다. 지금 상황과 비교하면 '꿈같은 시절'이라 할 만합니다.

27년간의 공직생활을 마친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민화협(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대통령자문 통일고문회의 고문,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등을 맡아 민간에서도 계속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면서, <프레시안> '정세현의 정세토크'와 <한겨레> 칼럼 등의 언론활동을 계속해왔습니다. 

그가 '평화통일을 하려면 남북한이 한통속이 돼야 한다'는 취지아래 <오마이뉴스>가 만드는 남북관계-통일문제 전문 팟캐스트 방송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에 참여하기로 한 것도 이같은 활동의 연장선일 겁니다.

방송을 한 주 앞두고 만난 그는 "박근혜 정부 대북 정책의 문제점을 짚고, 그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대책을 제시하고자 한다"는 포부를 밝혔습니다. 

한편,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은 오는 2월 3일 시작되며, 매주 화요일에 방송될 예정입니다. 현재는 예고방송이 나가고 있습니다.

☞팟빵에서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 듣기
☞아이튠즈에서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 듣기

다음은 정 전 장관과의 문답 전문입니다.

-1945년에 중국 헤이룽장성(흑룡강성)에서 태어나셨는데요. 뭔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습니다. 
"45년 6월에 헤이룽장성 자무스(佳木斯)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헤이룽장성 성도 하얼빈에서 러시아쪽으로 동북단 끝에 있는 곳입니다. 아버님이 젊었을 때 이주해서 한의원으로 자리를 잡고 계셨는데, 내가 태어나고 두 달 뒤 해방이 된 겁니다. 내가 태어난 지 100일 정도 지났을 때 추석 직후인 9월 말에 아버님이 가족을 이끌고 고향인 전주로 출발하셨답니다. 

기차 타고가다 막히면 걷다가 다시 기차를 구해 타는 식이었다는데, 당시 만주와 북한을 점령한 소련군이 젊은 처자들을 그냥 두지 않는다고 해서 어머니가 얼굴에 검정 칠을 하기도 하고, 아기 울음소리 나면 소련군이 마구 죽인다고 해서 극도로 조심했다고 합니다. 

또 그해 장티푸스가 창궐해서 아기들이 많이 죽고 또 유행병도 돌았다는데, 피난민들은 그런 게 더 심했을 텐데 나는 명줄이 길었나 봐요. (랴오닝성) 단둥에서, 신의주, 평양, 38선을 지나 예성강을 건너서 (한국전쟁 전에는 남쪽 지역이었던) 개성, 서울역 그리고 전주까지 40일 걸려서 도착했답니다. 예성강 가파른 철교를, 철로 수리하는 지붕 없는 차량 타고 건너다 떨어져 죽은 사람들도 있었다는데 우리는 별 일이 없었습니다. 강보에 쌓여서 한반도를 관통한 것인데, 최연소 월남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71년 대선 때 김대중 장충단 연설 들으러 갔는데"

이런 개인사가 이후 통일 문제에 매진하는 데 영향을 준 것 같아 보이기도 하네요.
"글쎄요, 그런 점도 없지않아 있을 것 같기도 해요. 어렸을 때부터 그 얘기를 하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기억도 없는 어렸을 때 얘기이고, 대학 때 서울대 외교학과를 만든 이용희 교수가 '한국에서 국제정치를 공부하는 이유는 결국 통일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다'라는 말씀을 하는데, 멋지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뒤 대학원 1학년 때인 1971년 7대 대선 때 김대중 후보의 장충단 연설을 보러 간 일이 있습니다. 당시는 현실 정치에도 관심이 있던 때라 연설 잘 한다는 김대중 후보의 연설기법을 보러 갔는데, 세계적인 화해 흐름에 맞춰서 남북 화해를 추진해야 한다는 말이, 당시 대학 교수들보다 더 국제정세에 해박했습니다. '이용희 교수 말씀이 저거였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박사 논문이 모택동(마오쩌둥) 시대 중국 외교에 대한 것인데 그 시절에는 드물었을 것 같습니다. 
"내가 중국에서 태어났고, 아버지가 한의사여서 어렸을 때부터 한문에 친숙해서 그런지 중국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973년에 한비자 연구, 그러니까 중국 고대 정치사상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77년에 이용희 교수가 국토통일원 장관이 돼서 뽑은 공산권연구관 중 한 명으로 통일원에 들어간 것이, 통일관련 업무를 시작한 계기가 됐습니다. 1982년에 '모택동의 대외관 전개에 관한 연구', 그러니까 모택동 시대의 중국 외교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직업적인 전공은 남북관계지만, 학문적 전공은 중국 외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 그 때는 국내에 중국 관련 자료가 별로 없던 시절 아닙니까.
"나는 통일원에 근무하고 있었잖아요. 당시 민간에서 그런 자료 봤으면 불온문서 소지로 쇠고랑 찼을 겁니다(웃음). 모순론, 실천론 같은 당시 운동권의 필독서인 모택동의 주요 저작을 다 넣었습니다. 그때 중국과 소련 자료들 보고, 중국 공산주의와 소련 공산주의 비교도 하면서 비교 공산주의적 시각을 갖게 된 것이 이후 통일문제, 북한 문제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이 논문을 보강해서 '모택동의 국제정치사상'(형성사)이라는 책으로 내기도 했습니다. 

한창 일할 때는 기억도 못하는 어렸을 때 경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강보에 쌓여 넘어온 38선을 되짚어 다시 평양으로 가는 길을 뚫는 일을 하게 된 것을 보면 결국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시나리오는 있는데 본인은 모르고 그 장소에서 그 역할 하는 게 인생 같아요."

"대통령의 대북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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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팟캐스트 <정세현·황방열의 한통속> 진행자인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과 황방열 오마이뉴스 기자.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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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방송이 익숙하신 연세는 아닌데, 어떻게 마음을 먹게 되셨습니까. 물론 제가 제안하기는 했지만요(웃음).
"나보다 6살 위인 윤여준 전 장관도 계시잖아요? 우선은 황 기자의 적극적 제안이 있었는데 그건 인간관계 영역이겠구요. 이 팟캐스트를 하기로 한 것은, 박근혜 정부 대북 정책의 문제점을 짚고, 그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대책을 제시하고자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분석과 대책, 공직생활의 오랜 습관입니다.

북한은 물론 군사적으로는 적이지만, 현 정부는 북한을 적으로만 봅니다. 입만 열면 통일하겠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통일과정 동반자라는 점을 감안해서 정책을 펴야 합니다. 먼저 믿을 수 있는 상대인지를 보여달라는 조건을 걸고, 내 기준에 맞추라고 하면, 남북관계가 아무리 민족내부 문제이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이고 외교인데 이렇게 하면 성과를 내기 어렵습니다. 신뢰를 전제조건으로 거는 게 아니라 협상과정에서 신뢰를 확인해 가야 합니다. 미세한 차이 같지만 이 부분은 남북관계 풀어가는 데 중요한 문제입니다.

77년부터 역대 정권을 거치면서 대통령의 대북관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습니다. 이것이 우리 국가 이익과 국제 위상에 도움이 되는지 해가 되는지 청취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머리를 짜내보려 합니다. 세금으로 국록을 먹고 살았으니, 국민들께 보고하는 자세로, 현장 경험과 현장에서 닦은 이론을 설명드려서, 국민들의 판단을 높이는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더불어 후학들이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언론의 남북관계·통일문제 보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옛날에 통일부 기자실에 '북한은 만주벌판이다'라는 농담이 있었습니다. 뭘 버려도 흔적이 안 남는다는 얘깁니다. 북한이 어떻다고 써도 확인이 어려우니까요. 현재 언론의 남북관계와 북한 보도의 편향성이 너무 강합니다. 전문가라는 분들도 마찬가지구요. 정부가 분위기를 조성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국민을 이렇게 흑백논리, 선악개념으로 끌어가면 안 됩니다. 사상·언론·표현의 자유 속에서 나오는 창의성이 미국 경쟁력의 원천 아닙니까."

"오바마 북 붕괴론 언급, 금융제재 정당화 위한 기초작업"

-최근 현안 하나만 짚어보겠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군사해결책은 답이 아니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북한 붕괴를 언급했습니다. 북미 관계 개선은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 아닙니까.
"북한 내부적으로 붕괴되도록 조여들어가겠다는 것은 금융제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초작업의 일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융제재가 얼마나 더 세게 들어갈지 모르지만 2005년 9.19 공동성명 직후 금융제재가 가해진 지 1년 뒤에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했습니다. 미국의 자충수였던 겁니다. 북한은 이번에도 통증이 있다 해도 굴복하지 않을 겁니다. 군사적으로 뚫고 나가면서 '미국이 북을 이렇게 다뤄서는 안 된다는 얘기'가 나오게 만들려 할 겁니다. 

현실적으로 북한이 붕괴할 것인가? 미국과 힘겨루기 하는 중국과 러시아가 방관하지 않습니다. 지구상에 미국만 있는 게 아닙니다. 중국과 러시아도 동의한 유엔 제재는 계속 늘어났지만, 어찌됐는지 북한 경제는 미약하게라도 호전됐다는 것 아닙니까. 2차 대전이후 70년간 국제정치를 끌어온 미국이 북한에 대해 플랜B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미국도 비전이 없는 것 아닙니까. 

또 미국의 대북정책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 우리 국민의 안보불안은 어떻게 할 겁니까. 우리 보수 언론도 이에 대해 생각하고 기사를 써야 합니다. 지나치게 사대적입니다. 보수 언론이 국수적이기까지는 안되겠지만 우리 국익이 아니라 미국의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 이것이 우리 보수 언론의 패러독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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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남측위 총회.후원의밤,

"창구 단일화 깨기 위해 배전의 노력해야"6.15남측위 총회.후원의밤, 이창복 의장 연임.원혜영 후원회장 추대
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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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31  13:2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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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5남측위 결성 10주년 기념 후원의 밤 행사가 30일 한국노총에서 열렸다. 축하떡을 자르고 있는 모습. 왼쪽부터 이부영 동북아평화연대 명예이사장, 이규재 범민련남측본부 의장, 박남수 천도교 교령, 백낙청 전 상임대표, 이창복 상임대표의장, 김상근 전 상임대표, 함세웅 신부.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 정권은 3년 밖에 안 남아 있다. 그러나 민족은 앞으로 영원하다. 3년 밖에 안 남은 이 정권에 민족의 문제를 다 맡겨놓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이하 6.15남측위) 상임대표의장은 30일 오후 6시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에서 진행한 ‘6.15남측위 결성 10주년 기념 후원의 밤’ 행사에서 “이 정권은 모든 통일문제,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정부로 창구 단일화를 획책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6.15남측위는 30일 오후 4시부터 정기 총회를 개최해 이창복 의장의 연임을 결의하고 후원회를 결성해 초대 후원회장으로 국회 남북관계특위 위원장인 원혜영 의원을 추대했다.

   
▲ 이날 6.15남측위 정기총회에서 연임된 이창복 상임대표의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창복 의장은 “금년은 분단 70주년, 광복 70주년이다. 또 6.15공동위원회가 조직된 지 10년이고 선언이 발표된 지 15주년 되는 해”라며 “3자(남.북.해외) 간에 공동기획단을 만들어서 열심히 1년 동안 사업을 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또 그 준비를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고 밝혔다.

이 의장은 “통일문제는 민족의 문제이기 때문에 정부만이 이 남북문제를 전횡해서는 안 된다”며 “정부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있고 민간은 민간들이 해야 할 일이 있는데 이것들이 서로 상호 보완되어 가면서 할 때 통일은 더 가까워진다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나아가 “깜깜한, 답답한 면이 없잖아 있다”며 “창구 단일화를 깨기 위해서 금년의 사업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도 배전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결의를 다졌다.

6.15남측위 후원회장을 맡은 원혜영 의원은 “6.15남측위원회 결성 10주년을 뜻있는 모든 국민들과 함께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인사하고 “국회에서 입법으로 또, 정부 정책에 대한 감독과 견인으로 6.15공동선언 실천하는 일에 역할을 하라는 뜻이겠지만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나도 걱정을 같이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 의원은 정부나 여당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권에서 누구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남북관계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있다면서 “제발 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올해 역할을 해달라 부탁하지만 철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 후원의 밤 행사장은 빈자리도 많이 보였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6.15남측위 1,2기 상임대표를 맡았던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는 남북 정상이 6.15공동선언에서 “연합제와 연방제의 중간이 아니라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의 중간 쯤, 그 어름에서 일차적으로 (통일)하자”고 합의했음을 상기시키고 “대단히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선언이었고, 그런 지혜가 담겼기 때문에 우리가 6.15공동선언을 민족의 헌장으로 존중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백 명예교수는 올해 남북 간 공동행사 성사 여부가 불투명한 현실을 지적하면서도 “예단하기 어렵지만 좋은 일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날이 맑으면 맑은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우리 할 일을 하자”고 말했다.

백 명예교수에 이어 6.15남측위 3,4기 상임대표를 맡았던 김상근 목사는 “6.15선언 실천을 위해서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면서 “한민족을 두 개로 쪼개놓고 국토를 분단시켜 놓고 그리고 70년 동안이나 아무 책임을 지지 않고 지금도 그냥 움켜쥐고 있는 미국이라는 세력을 어떻게 넘어갈까”라는 과제를 제기했다.

김 목사는 또한 최근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을 거론하며 “분단이라고 하는 상수를 극복해내는 운동 역시 6.15남측위원회가 넓혀야 될 과제”라며 “부디 힘을 합쳐서 남측위원회가 활동이 폭을 넓혀나갈 수 있는 계기를 꼭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박남수 천도교 교령은 ‘남진원만 북하회’(南辰圓滿北河回, 남쪽 별이 원만해지면 북쪽 강물이 돌아온다)는 경전 구절을 인용하면서 “6.15남측위 10주년을 맞아 누구를 탓할 것 없고 누구에 책임지울 것 없이, 우리들 스스로 남쪽 이웃들이 돼서 남쪽의 별들이 되자”고 당부했다.

   
▲ (사)서울오케스트라가 '아리랑'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최진미 전국여성연대 집행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후원의 밤 행사에서는 설훈 민주당 의원, 이부영 동북아평화연대 명예이사장, 함세웅 신부가 축사를 했으며, 서울오케스트라와 팝페라 가수 최의성이 축하공연을 했다.

6.15북측위원회는 축하인사를 보내와 “결성 10돌을 맞이하고 있는 귀 위원회와 각 부문본부, 지역본부 성원들에게 열렬한 축하를 보낸다”면서 “북남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온갖 장애물을 제거하고 나라의 평화와 자주통일의 돌파구를 열어놓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앞서, 6.15남측위는 정기총회에 해당하는 ‘6기 1차년도 정기 공동대표 회의’를 개최, 올해 사업계획과 예산을 의결했다.

특히 6.15선언 15돌 민족공동행사와 8.15 70돌 민족공동행사는 물론 남북노동자통일축구대회와 유니버시아드대회 남북공동응원, 한반도 평화랠리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 6.15남측위가 30일 한국노총에서 정기 총회를 개최하고 있다. [사진제공 - 6.15남측위]

6.15남측위는 총회 결과를 담은 ‘6.15남측위 결성 10주년 결의문’을 통해 “새해의 초부터 남과 북의 양 정상들은 광복 70년을 내세우면서 대화와 관계 발전을 공언하였지만, 그러한 제안과 약속들은 점점 공허한 메아리처럼 빛을 잃어가고 있다”며 “지금이야말로 민이 앞장서서 남북관계 변화의 전기를 열어야 할 때”라고 밝혔다.

이들은 △비방중상 중단, 군사적 위협행위 중단, 5.24조치 해제와 민간교류 재개 △민족공동행사 성사 △노동자통일축구대회, 농민추수한마당, 여성교류모임, 유니버시아드대회 남북공동응원단 구성 등을 결의했다.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결성 10주년 결의문 (전문)

광복과 2차 세계대전 종전 70년의 역사적 해가 밝았음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대결과 갈등은 사라지지 않고 있으며, 동북아 주변국들의 패권경쟁 역시 더욱 격화되고 있다. 광복과 함께 시작된 분단 70년의 역사로 인해 한반도는 아직도 진정한 탈냉전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한국전쟁의 미 종식과 그에 따른 항시적인 군사 충돌의 위험성 속에서 늘 평화와 민주주의는 위협받아 왔다.
 
지난 70년 동안 우리 민족은 분단체제의 사슬에서 벗어나기 위해 지난한 노력을 기울여 왔고, 그런 노력의 결과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같은 통일의 대장전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또 각계각층의 교류와 연대, 남북 양 정부의 협의와 지원 속에서 탄생한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민족공동위원회 역시 이러한 분단체제 극복을 위한 우리 겨레의 역사에서 빛나는 한 페이지로 자리 잡고 있다.

새해의 초부터 남과 북의 양 정상들은 광복 70년을 내세우면서 대화와 관계 발전을 공언하였지만, 그러한 제안과 약속들은 점점 공허한 메아리처럼 빛을 잃어가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민이 앞장서서 남북관계 변화의 전기를 열어야 할 때이다. 이에 6.15남측위원회는 각계각층의 분출하는 통일에너지로 온 강산이 들썩였던 그 ‘6.15시대’의 주인으로서 광복 70년, 6.15남측위원회 결성 10년을 맞아 온 겨레 앞에 다음과 같이 우리의 굳은 결의를 표명한다.

1. 우리는 고비고비마다 남북관계 발전에 초석을 놓아온 지난 10년의 6.15남측위원회 역사를 자랑스럽게 계승할 것이며, 광복 70년, 분단 70년이 되는 올해를 민족의 화해와 단합, 평화와 통일의 새로운 역사를 쓰는 대 전환의 만들어나갈 것을 온 겨레 앞에 결의한다.

2. 우리는 남과 북이 맺은 통일의 약속들, 7.4 공동성명,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지키고 실천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나갈 것이다.

3. 우리는 상호 비방중상 중단, 모든 군사적 위협행위 중단, 5.24조치 해제와 민간교류 재개 등 남북사이의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를 개선시키기 위한 전제적 조치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다.

4. 우리는 올해 6.15공동선언 발표 15돌, 8.15 광복 70돌을 계기로, 지난 8년간 중단되었던 화해와 평화의 축제마당 <민족공동행사>를 반드시 성사시킬 것이다.

5. 우리는 노동자통일축구대회, 농민추수한마당, 여성교류모임 등 각계의 민간교류를 복원하고, 아울러 광주에서 열리는 유니버시아드 대회 남북공동응원단 구성 등을 통해 다시 한 번 화해와 평화의 기운을 온 강산에 펼쳐 보일 것이다.

6.l5남측위원회는 ‘민’이 주인답게 역할 하는 참된 통일과정을 개척하기 위해, 지난 10년의 우리 활동을 냉철히 되돌아보고 스스로를 더욱 가다듬고 성찰하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이다. 사상·종교·이념의 모든 것을 넘어 평화와 통일의 한 마음을 일구기 위해 우리 속의 깊은 힘을 쌓아가는 노력이 함께 할 때, 우리의 결의는 더욱 빛을 발할 것이라 믿는다.

2015년 1월 30일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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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엄 촘스키, 강정 무력 행정대집행 중지 박대통령에 친서

 
 
뉴스프로 창간 1주년 기념 중ㆍ고교생 국제 영문번역 경시대회
 
뉴스프로 | 2015-01-31 12:53:20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노엄 촘스키, 강정 무력 행정대집행 중지 박대통령에 친서 
-70년 전 폭력의 역사 제주도에서 재현되는 듯
-박 대통령 사회 화해와 통합, 인권과 정의 존중 약속지킬 것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 MIT 교수가 한국의 박 대통령에게 강정 주민들에 대한 무력 행정대집행 중단을 요청하는 친서를 보냈다고 한국정책연구소 연구원(Fellow, Korea Policy Institute)인 시몬 천 정치학 박사가 뉴스프로에 전했다.

시몬 천 교수는 영국 출신 평화 운동가와 노벨 평화상 후보였던 엔지 젤터 등을 포함한 여러 국제학자들도 1월 31일 예정된 해군의 강정마을 행정대집행 반대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길 바란다는 편지를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촘스키 교수는 4만명 가까이 희생된 제주 학살 사건을 언급한 후 70년이 지난 오늘 비극과 같은 폭력의 역사가 제주도에 재현되고 있는 듯 하다며 강정에서 수천명의 용역과 경찰을 동원하여 평화 행동가들을 무력으로 해산시키려는 행정대집행을 중단할 것을 박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다음은 노엄 촘스키 교수의 서신 전문과 번역이다.

Honorable President Park Geun-hye:

As you know, between 1948 and 1949, approximately, 40,000 residents in Jeju Island were massacred by South Korean army which was at the time under the control of the U.S. Interim Military Government. The massacre left more than 50 percent of homes in Jeju Island destroyed, 40,000 residents seeking refugee in Japan, and survivors, descendants, family members with tragic memories and trauma. More than 70 years later, the tragic and violent history seems to repeat in Jeju Island.

I have learned that on January 31, 2015, more than 1000 scabs and police force supported by the Korean army are expected to forcefully disband villagers and activists who have been engaging in a peaceful 24-hour protest in front of the construction site of the new housing for 3000 navy personnel. We respectfully request that you stop the planned attack on Gangjeong villagers by the Korean army and police. You had promised a departure from the iron-fisted policies of your predecessor, declaring your intention to lead the nation based on a policy of social consensus, respect for human rights, and justice. We hope that you keep your promise.

Please stop the planned attack on Gangejong villagers on January 31st based on humanitarian grounds.

Respectfully,

Noam Chomsky

친애하는 박근혜 대통령님:

아시다시피 1948년과 1949년 사이, 40,000명 가까운 제주 도민들이 당시 미국 임시 군사 정부하의 한국군에 학살되었습니다. 그 학살은 50 퍼센트가 넘는 제주 도민들의 주택을 파괴 했고, 40,000 도민들을 피난민으로 일본에 이주하게 했으며, 생존자와 자손들, 가족들에게 비극의 기억과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70년 지난 오늘, 비극과 폭력의 역사가 제주도에 재현되고 있는 듯 합니다.

1월 31일 한국군 지원을 받는 1,000명이 넘는 용역과 경찰들이 3,000여명의 해군과 가족들을 위한 새로운 주택을 건설 현장 앞에서 24시간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마을 주민들과 평화 행동가들을 무력으로 해산시키는 행정대집행을 강행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강정 주민들에 대한 무력 행정대집행을 막아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대통령님은 과거의 정책에서 벗어나, 사회 화해와 통합으로 국민들을 이끌고 인권과 정의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 약속을 지켜 주길 빕니다.

인도적인 원칙에서 1월 31일 강정 주민들에 계획된 공격을 중지해주십시오,

노엄 촘스키

 


 

포커스 아시아, 박근혜 지지율 20%대 추락 보도
-레임덕의 현실화
-네티즌들의 준엄한 비판 생생히 전해


박근혜의 지지율은 이른바 ‘콘크리트 지지층’인 30%선도 붕괴할만큼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박근혜의 지지율에 촉각을 곤두세우던 일본은 지지율 30%선 붕괴를 타전했다.

일본 포커스 아시아는 28일 박근혜의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했음을 한국 이데일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이 매체는 또한 레임덕이 현실화 되었다고 전하면서 “당연한 결과다”, “4월 16일이 지나가면 10%대가 될지도” 등 박근혜에 대한 민심이반을 드러내주는 네티즌들의 생생한 반응을 상세히 전했다.

박근혜 집권 이후 한일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달았음을 감안해 볼 때 일본 언론의 냉담함은 박근혜 정권의 자업자득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다음은 뉴스프로가 번역한 포커스 아시아 기사 전문이다.
번역 및 감수: Ohara Chizuru

기사 바로가기 ☞ http://bit.ly/18CmS1g

 レームダックが現実化・・朴槿恵大統領の支持率が20%台に転落、韓国ネットは「当然の結果だ!」 「支持率がここまで低い政権は…」


레임덕의 현실화 ..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추락, 한국의 SNS에서는 「당연한 결과다! 」「지지율이 최저인 정권은 …」

FOCUS-ASIA. COM 1月28日(水)15時14分配信

아시아 포커스. 1월 28일(수) 15시 14분 배포

28日の韓国・イーデイリーによると、朴槿恵大統領の支持率が就任後初めて20%台に落ち込んだ。

28일 한국 · 이 데일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20 %대로 떨어졌다.

世論調査機関リアルメーターの調査によると、26、27日に全国の成人1000人を対象にした調査の結果、朴大統領の支持率は29.7%となった。朴槿恵大統領の支持率は昨年までは40%以上で推移してきたが、今年に入って急落、ついに20%台となった。

여론 조사 기관 리얼 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26, 27일 전국 성인 1000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29.7%로 나타났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해까지 40% 이상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올해 들어 급락, 마침내 20% 대를 기록했다.

一方で、不支持率は62.6%と過去最高を更新している。イーデーリーは、朴大統領が任期を3年残した段階で早くも「レームダックが現実化」と伝えている。

한편, 지지하지 않는 비율은 62.6%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이 데일리는 박 대통령의 임기를 3년 남긴 시점에서 이미 「레임덕의 현실화」라고 전했다.

これに対し、韓国ネットユーザーからも朴大統領に手厳しいコメントが寄せられている。

이에 대해 한국 네티즌들도 박 대통령에게 준엄한 비평을 가하고 있다.

「当然の結果だ!ロクに成果もあげず。公約も守らずに!」

「당연한 결과다! 제대로 된 성과도 없고. 공약도 지키지 않고!」

「4月16日が過ぎれば10%台あるかも」

「4월 16일이 지나가면 10%대가 될지도」

「増税。無い福祉」

「증세. 없는 복지」

「慶尚道の人口が多すぎるのが問題」

「경상도의 인구가 너무 많은게 문제」

「高齢者は放っておこう、クソッ」

「노인은 건드리지 말자. 제발」

「この辺で辞めなされ。貴女がいつも口にしたがる国民こそが望んでいる。そもそも貴女は大統領の器では無かった。お疲れ様。降りなさい。もう…」

「이쯤에서 물러나세요. 그대가 항상 입에 달고 있는 국민들이 희망하고 있다. 원래 그대는 대통령의 그릇이 아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내려 오십시오 이제 …」

「朴大統領はマインドが腐っている。失政続きの2年間が立証している。もう何も望まないし、退陣決断が答えだ。さもなきゃ、国民が力づくで青瓦台から引きずり出そうか?」

「박 대통령은 마인드가 썩어 있다. 계속되는 실정 2년이 이를 입증한다. 더 이상 아무 미련두지 말고, 퇴진 결단만이 해답이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이 힘을 합쳐 청와대에서 끌어내야 되겠습니까?」

「キム秘書室長・側近3人衆を切れば支持率回復します。もう決断して。国民を捨てるか、側近3人衆を捨てるか」

「김 비서실장 · 측근 3인방을 경질하면 지지율은 회복합니다. 이제 결단하세요. 국민을 버릴것인지, 측근 3인방을 버릴것인지」

「支持率がここまで低い政権は過去に例が無いな…鉄板の支持率50%後半台を2年で半分まで落とした朴槿惠政権の威厳…それもすべて親父の支持率だったろ…全然ダメ」

「지지율이 여기까지 낮은 정권은 과거에 예가 없는데 … 콘크리트 지지율 50% 후반대였던 것을 2년반 만에 떨어뜨린 박근혜 정권의 위엄 … 그것도 모두 아버지의 지지율일 것이다 … 해답이 안 보인다」

「この大統領は支持層を裏切る変わった気質の持ち主で、トンデモ人事が特技!!!」

「이 대통령은 지지층을 배신하고 입장을 쉽게 바꾸며, 황당한 인사가 특기 !!!」

「本人はまた誰かのせいにするさ~~~」

「본인의 잘못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

「親日派=大手保守メディア3社=政経癒着で続いてきた、財閥に協力する政治勢力・既得権による勢力強化など…これらの歴史の積み重ねが、国中に不正腐敗をはびこらせ、原則や正義より非常識のまかり通る社会を作った。弾劾せねば」

「친일파 = 주요 보수 언론 3사 = 정경 유착으로 이어져 온 재벌에 협력하는 정치 세력 · 기득권에 의한 세력 강화등 … 이러한 역사의 축적으로. 역대 부정 부패중 가장 심하며, 원칙이나 정의보다 비 상식이 난무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탄핵해야」

 


 

뉴스프로 창간 1주년 기념 중ㆍ고교생 국제 영문번역 경시대회

지난해 3월 3일 세계적인 석학 노엄 촘스키 교수와의 인터뷰로 첫 뉴스를 내며 창간한 미국소재 비영리 외신전문 언론기관인 뉴스프로가 창간 1주념 기념 행사로 중ㆍ고등학생 국제 영문번역 경시대회를 개최합니다.

그간 뉴스프로는 영어, 일본어, 중국어, 불어, 독어 등의 외국어 기사들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번역해 정치, 사회, 경제 등 한국 사회의 다양한 이슈들을 보는 외국의 시각을 독자들께 제공해왔습니다.

뉴스프로 번역기사를 이용해 외국어 공부를 한다거나 가족들의 대화로 이용한다는 소감을 독자들이 보내주시기도 합니다.

창간 1주년을 맞아 뉴스프로는 특히 청소년 독자들의 영어 학습을 돕고 격려하는 취지에서 국제 영문번역 대회를 개최합니다. 이런 번역을 경험으로 많은 우리 청소년들이 직접 외신을 찾아 읽으며 국제 뉴스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가자격은 전세계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인 학생들 모두에게 주어집니다. 최우수작과 우수작 각각 한 편을 선정해서 상금과 상장을 드리며 최우수작은 뉴스프로에 올려 소개됩니다.

1. 경시대회 일시
2015년 2월 22일 오후 7시 – 2015년 2월 23일 오후 7시 (미 동부).
2015년 2월 23일 오전 9시 – 2015년 2월 24일 오전 9시 (한국).

2. 참가신청 
2015년 1월 30일 – 2015년 2월 20일 오후 9시 (미 동부)/2015년 2월 21일 오전 11시 (한국) .
신청서는 https://thenewspro.org/?p=10441 의 신청하기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참가를 원하시는 분은 필수사항을 모두 기입하신 후 학생증 복사본을 첨부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신청서가 접수된 후 접수확인 이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3. 대회 진행
번역할 영문글이 2월 22일 오후 7시 (미 동부)/ 2월 23일 오전 9시 (한국) 이메일로 발송이 되며, 번역글의 마감시간은 24시간 후가 됩니다. 번역문은 완성 후 이메일(news@thenewspro.org)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번역문을 받은 후에 확인 이메일을 보내 드립니다.

4. 심사 기준
원문에 충실한 정확성과 한글의 자연스러움을 봅니다.

5. 당선작 발표 
2015년 3월 3일 오후 9시 (미 동부), 2015년 3월 4일 오전 11시 (한국).

6. 상금
최우수작 1인 500 달러
우수작 1인 300 달러
* 상금은 페이팔로 보내 드립니다.

단 참가자의 번역문이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당선작을 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기타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이메일(news@thenewspro.org)로 연락해 주시면 됩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9&table=c_sangchu&uid=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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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두번째 일본인 인질 고토 ‘살해’ 영상 올려

등록 : 2015.02.01 07:58수정 : 2015.02.01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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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4일 유카와 참수에 이어 고토도 참수 주장
일본 정부 “격렬한 분노”, 미국 정부도 “강력 규탄”

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47)씨를 참수했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1일(한국 시각) 오전 올렸다. 영상에서 고토씨는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무릎을 꿇고 있으며, 그의 옆에 복면을 하고 있는 남성은 앞서 여러 서방 인질 살해 영상에 등장했던 ‘지하드 존’과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2015.2.1 / AP 연합뉴스
이슬람 수니파 원리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일본인 인질 고토 겐지(47)씨를 참수했다고 주장하는 영상을 1일 인터넷에 올렸다. 지난달 24일 고토씨와 함께 붙잡고 있던 또다른 일본인 인질 유카와 하루나씨를 참수했다고 밝힌 지 8일 만이다.

 

IS는 한국시간 이날 오전 5시께 고토씨로 추정되는 남성이 살해됐음을 보여주는 1분 분량의 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고 AFP와 NHK 등 외신들이 일제히 보도했다. ‘일본 정부에 대한 메시지’라는 영어 문자로 시작하는 영상에서 고토로 추정되는 남성은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고 무릎을 꿇고 있으며, 그의 옆에 복면을 하고 칼을 든 남성이 서서 일본 정부가 그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앞서 여러 서방 인질 참수 영상에 등장했던 ‘지하드 존’과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 이 남성은 영국 남부 억양의 영어로 “너희는 이슬람 칼리파 국가의 권위와 힘을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향해 “이길 수 없는 전쟁에 동참하는 부주의한 결정 때문에 이 칼은 겐지뿐만 아니라 너희 국민을 계속 겨냥하게 될 것”이라며 “일본의 악몽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상의 마지막에는 고토씨가 살해된 이후 모습을 담은 정지 화면이 등장했다. 영상 왼쪽 상단에는 IS의 홍보부서가 성명 등을 발표할 때 사용하는 로고가 새겨져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이날 새벽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테러 행위가 재차 발생한 데 대해 격렬한 분노를 느끼며, 단호하게 비난한다”고 밝혔다. 스가 장관은 또 아베 총리 주재로 관계 각료 회의를 소집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버나뎃 미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변인은 “현재 영상의 진위를 확인 중”이라며 “IS를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IS는 지난달 20일 일본인 유카와씨와 고토 씨 등 2명의 영상을 공개하며 72시간 안에 2억달러를 주지 않으면 이들을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일본 정부가 몸값 요구에 응하지 않자 IS는 지난달 24일 고토 씨를 내세워 유카와 씨를 살해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달 29일 일몰까지 사형수 사지다 알리샤위와 고토씨를 교환할 준비가 되지 않으면 자신들이 생포한 요르단 조종사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를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IS는 이날 고토 참수 주장 영상에서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않았다.

 

미야기현 센다이시 출신인 고토씨는 1990년대 도쿄에서 ‘인디펜던트 프레스’를 설립한 후 분쟁지역 취재에 천착해온 프리랜서 언론인이다. 그는 작년 10월 말 자신에 앞서 IS에 붙잡힌 유카와 씨의 정보를 얻고, IS가 장악한 지역의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보도하고 싶다는 말을 현지인 가이드에게 남긴 뒤 시리아로 들어갔다가 실종됐다.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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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 속 주말 세월호 촛불.. “진실 인양하라” “끝까지 밝혀줄게”

“진상규명 아직인데 농성장 철거? 국민이 지켜달라”한파 속 주말 세월호 촛불.. “진실 인양하라” “끝까지 밝혀줄게”
나혜윤 기자  |  balnews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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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31  20:56:41
수정 2015.01.31  22: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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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 3도의 매서운 추위에도 시민들은 세월호의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서북청년단의 ‘세월호 농성장 철거 테러’를 막기 위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섰다.

31일 오후 6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 모인 백여명의 시민들은 추운 날씨에 장갑과 목도리, 핫팩 등으로 무장을 하고 “진실을 인양하라”, “끝까지 밝혀줄게” 등의 구호를 힘차게 외쳤다.

   
▲ ⓒ go발뉴스(나혜윤)

이날 토요 촛불문화제는 ‘서북청년단 그들은 대체 누구인가’라는 짧은 강연으로 시작됐다. 앞서 서북청년단은 31일 자정을 기해 광화문 농성장을 철수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강연에 나선 이동훈 전 우리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서북청년단은 46년 서울에서 결성된 단체로, 이북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이승만과 미 군정 세력을 등에 없고 조직됐다”며 “경성방직공장 테러, <동학란> 공연장 다이너마이트 투척 등 온갖 백색테러를 일으켰던 단체”라고 서북청년단을 설명했다.

이 전 연구원은 “김구 선생 암살과 4.3 사건에서 30만명의 민간인을 학살하는 등 폭거를 저질렀다”며 “이들이 진정 원했던 것은 국민에게 공포를 주어서 반항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게 아닐까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바로 ‘가만히 있으라’ 이것을 원하는 것이다. 한 사회학자는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라는 말을 했다”며 “70년이 지난 지금 국민들은 많이 변했다고 생각한다. 가만히 있지 않고 오늘 끝까지 남아 이 사회 정의와 진실이 무엇인지 힘을 모아달라”고 시민들에 호소했다.

올해 졸업하는 단원고 8기 졸업생들은 ‘끝까지 밝혀줄게’ 라는 피켓을 들고 무대에 올라 안산부터 팽목항까지 세월호 인양을 위한 도보행진에 나선 유가족들을 응원하기도 했다.

   
▲ ⓒ go발뉴스(나혜윤)

원광현 학생은 “이번에 도보행진 참가하면서 유가족분들을 만나 뵈었는데 더 챙겨주시고 농담도 하시면서 저희를 아껴주셨다”며 “유가족들의 반응이 어떨까 망설이시는 분들 망설이지 말고 다같이 함께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행진에 관심을 촉구했다.

또한 이날 문화제에서는 ‘엄보컬과 김선수’, ‘경희대학교 한의학과 노래패 소리결’ 등이 공연을 펼쳤다.

노래패 소리결은 무대에 올라 “참사 200일이 지나는 동안 변한 것도 없고 슬펐던 봄 여름에 시청 광장을 가득 메울 정도로 많았던 사람들이 줄어들었다”며 “기억 속에서 지워지는 것 같아 현실적인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다 공연을 기획했다”고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했다.

이들의 공연이 시작되자 시민들은 촛불을 머리 위로 높게 들고 흔드는 등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하루 빨리 진상규명이 될 수 있기를 염원했다.

   
▲ ⓒ go발뉴스(나혜윤)

수원에서 온 40대 여성은 ‘go발뉴스’에 “춥지만 유가족들이 인양을 위해 행진을 시작한 소식을 듣고 작은 마음이라도 표현하고 싶어 광화문에 나왔다”며 “이 광장을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지켜줬으면 한다”고 밝혔다.

서울 광진구에서 온 한 대학생도 “실종자 수습을 위해 인양은 꼭 이루어졌으면 한다”며 “나랏일을 하는 사람들이 국가가 한명의 국민일지라도 어떻게 책임을 지는 지 꼭 보여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한편, 토요 촛불문화제가 마무리되자 시민들은 ‘가족도보행진과 함께하는 광화문 달빛행진’에 나섰다.

앞서 지난 26일 세월호 가족대책협의회는 지난 26일부터 세월호 실종자 수습을 위한 선체 인양과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을 시작했다. 안산을 출발해 진도 팽목항까지 530여 km 길이의 이번 도보행진은 내달 14일 팽목항에 도착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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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원탁회의 거리에서 '정권 퇴진'외쳐

 
 
오는 2월 28일 대규모 반정부 집회 예정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5/01/31 [22:39]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민주수호 1천인 원탁회의 참가자들이 유신부활을 막아내자며 반정부 투쟁에 나설 것을 결의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서울지역 시민사회단체 인사 1,000 여명이 현시국을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로 규정하고 원탁회의를 개최했다.

 

민주수호 서울시민 1,000인 원탁회의는 NCCK 조헌정 목사함세웅 신부안병길 양심수후원회 회장정동익 사월혁명회 회장류경원 6.15 합창단 운영위원장 등이 제안자로 참여했다.

 

서울시민 원탁회의는 31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에서 회의를 열고 오는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2주년을 맞아 오는 28일 서울 시민들과 함께 대규모 시국대회를 연다고 밝혀 대정부 투쟁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 향린교회 조헌정 담임 목사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민중의 생존권과 통일인사를 탄압하는 박근혜 정권을 반대하는 투쟁에 나서자고 호소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제안자인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이대표 의장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이 부자 감세를 하면서 봉급 생활자들에게는 세금을 전가해 살기 힘들다면서 남북관계는 대결로 치닫고 있다.”고 정책 실종을 비판했다.

 

이창복 상임대표 의장은 민주수호운동이 서울로부터 시작하여 전국으로 번져가길 바란다.”며 대정부 투쟁에 함께 할 것을 호소했다.

 

NCCK 조헌정 화해평화위원장은 대표자 제안 연설을 통해 생명과 평화가 가장 중요한 가치인데 박정권 아래에서는 땅에 떨어졌다.”며 박근혜 정권은 평화와 통일을 외치는 인사들을 종북으로 몰아 탄압하고 있다반생명반평화 정권에 맞서 싸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 할 때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의소리 백운종 대표는 박근혜 정권은 국정원과 기무사를 비롯한 정부의 거의 모든 기관이 총체적으로 개입해 부정 당선되었다.”며 역사는 예측 가능하지 않을 때 일어섰다민주주의가 바로 설 수 있다는 희망 속에 대정부 투쟁에 떨쳐나서자” 목소리를 높였다.

▲ 천도교 수운회관 본당을 가득 메운 1천인 원탁 회의 참가자들이 박근혜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통합진보당 변호를 맡았던 이재화 변호사는 진보당 해산 결정은 또 다른 종북 몰이라면서 헌재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은 찌라시 엉터리 판결이다헌재는 진보당 해산 결정을 철회하고 다시 재판을 열어야 한다.”고 헌재의 결정을 비난했다.

 

통일이야기 공연에 참여했다가 종북으로 몰려 구속당한 희망정치 포럼 황선 대표의 남편인 윤기진 선생은 통일이야기 공연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에 대한 대통령의 안이한 인식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폭탄 테러의 피해자인 황선대표를 구속했다황선 대표는 구속 되면서 페이스북에 단 줄을 써달라고 요구했다내용은 이번 구속은 종편방송과 검.경을 앞세운 정부의 청부 구속이다’”라고 말해 황선 대표 구속 뒤에 정부가 있음을 확인했다.

▲ 1천인 원탁회의 참가자들이 박근혜 정권의 실정을 규탄하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고 거리 행진에 나섰다.     ©자주민보 이정섭 기자

 

제안자 발언에 이어 자유 토론 시간에는 노동자주부철거민청년들이 나서 민주수호 서울시 원탁회의가 나아갈 방향을 제기하면서 정권 퇴진 운동에 나서자고 결의했다.

 

원탁회의 참석자들은 회의 후 촛불을 들고 천도교 수은회관부터 행진을 시작해 을지로를 거쳐 청계광장까지 행진 한 뒤 마무리 집회를 마치고 해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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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대 총장 임명 거부된 류수노 후보

"총장 임기 첫 날, 교육부 공문 한 장에 죄인됐다"

[인터뷰] 방송통신대 총장 임명 거부된 류수노 후보

15.01.31 19:39l최종 업데이트 15.01.31 19:3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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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수노 방송대 총장 후보.
ⓒ 류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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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수노(59) 한국방송통신대학교(방송대) 농학과 교수의 삶은 지난해 9월 29일 이후 크게 변했다. 당초 이 날은 류수노 교수가 방송대 7대 총장으로 임기를 시작하는 날이었다. 그는 화제의 인물이었다. 검정고시 출신인데다 방송대에서 학사학위를 받은 첫 번째 총장의 탄생이라는 스토리에 많은 이들이 주목했다.

하지만 그날 오전 10시 30분께 교육부는 방송대에 몇 줄짜리 공문 한 장을 보냈다. 류 교수를 총장으로 임용 제청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국립대 총장은 교육부 장관이 대학에서 추천한 후보자를 제청한 뒤 대통령이 임명한다. 류 교수는 "하늘이 노랗게 변했다"고 말했다. 공문에는 그가 총장으로 왜 부적합한지 나와 있지 않았다.

류 교수는 집으로 돌아갔다. 칩거 생활을 했다. 학내에서는 '사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집에서 물 한 잔 삼키기 어려울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짧은 시간에 살이 5kg 빠졌다. "한 순간에 죄인 신분이 됐다"면서 "음주운전 한 번 하지 않고 파출소 한 번 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짚이는 바가 없었다"고 말했다. 

교육부와 국민권익위원회 문을 두드렸지만, 부적합 사유를 알려 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명박 정부 당시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린 탓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지만, 교육부는 묵묵부답이다. 결국 류 교수는 지난해 10월 서울행정법원에 교육부의 임용제청 거부를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22일 법원은 류 교수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교육부는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류 교수는 "국민 세금으로 재판을 끌고 가면 무슨 실익이 있느냐"면서 "교육부가 교육을 담당하는 부서답게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0일 오전 서울 대학로에 있는 방송대 학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청와대에서 광우병 사태 시국선언 물었다"

방송대는 지난해 4월 새 총장을 뽑기 위한 절차에 돌입했다. 류수노 교수를 포함해 5명의 후보가 나섰다. 세 차례의 토론과 후보자 심사 과정이 있었다. 학내·외부 위원 50명이 참여하는 총장임용후보자 추천위원회 투표에서 류 교수는 과반이 넘는 31표를 받았다. 방송대는 한 달에 걸친 연구윤리 검증을 거쳐, 류 교수를 총장 1순위 후보자로 교육부에 추천했다. 

- 그 뒤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나.   
"그렇다. 9월 초로 기억한다. 사정조사팀이라는 곳에서 여러 차례 내게 전화했다. '조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 자세히 알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했다. 제가 낸 서류 내용을 토대로 여러 질문을 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청와대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성실히 대답했다. 그랬더니 '오케이, 오케이'라고 했다."

- 청와대 쪽에서는 2008년 시국선언에 대해서도 물었다.
"광우병 사태 당시 정부가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해) 너무 쉽게 판단하고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주사회 퇴행을 우려하는 교수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사정조사팀에서 이와 관련해 물었고, '내가 하는 학문은 진보나 보수를 논하는 게 의미가 없다, 난 정치적인 색깔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전 정권의 일이고 문제 될 것 같지 않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뒤로는 신경 쓰지 않았다."

- 9월 29일 교육부는 임용제청을 하지 않겠다는 공문을 보내왔다.
"7대 총장 임기 시작일 전날까지 소식이 없었다. 당시 대통령의 해외 순방이 잦았기 때문에, 결재가 늦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인수인계를 받았다. 총장으로서 업무를 시작하는 첫 날, 공문이 내려온 것이다. 부적합 사유가 없으니, 해명하고 싶어도 해명할 수 없었다. 학내에서는 '사생활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가 돌았다. 명예가 땅에 떨어졌다."

그는 "얼마 전 교수회에서 '내가 키가 작고 못생겼다거나 학력이 부족하고 세련되지 않았다는 부적합 사유를 내놓는다면, 수용하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면서 "그만큼 답답하다"고 전했다.

"교육부, 재판 과정에서 증거 자료 내지 않았다"

류 교수는 결국 교육부 상대로 소송을 냈다.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소송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돈과 시간이 많이 든다"면서 "잠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육부로부터 미운 털 박히는 게 두렵지 않았느냐"고 묻자 그는 "그렇지 않았고 떳떳했다,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대학의 자율권을 위해 싸워 이름을 남기는 게 낫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 재판 과정은 어땠나?
"재판장이 교육부 쪽에 임용제청을 거부한 관련 증거를 내라고 했다. 교육부 쪽 변호인은 없다고 했다. 재판 과정에서 서류를 하나도 제출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임용제청 여부를 심의할 때 쓴 자료가 있지 않았겠나. 설마 백지를 앞에 두고 심의했겠나. 이해하기 어려웠다."

법원은 교육부가 어떠한 근거와 이유로 임용제청하지 않았는지 밝히지 않은 것을 두고 행정절차법 23조 1항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판결문에서 '모든 국민이 공무담임권을 가진다'는 헌법 25조와 대학의 자율성을 규정한 헌법 31조 4항을 거론했다. 판사 출신인 황우여 교육부 장관에게는 뼈아픈 판결문이다. 

특히, 김현규 공주대 총장 후보자도 같은 내용의 소송을 내,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서 잇따라 승소했다. 김사열 경북대 총장 후보자도 소송을 냈다. 류 교수는 "법원에서 헌법을 언급했다"면서 "교육부가 교육을 책임지는 부서답게 행동해야 한다, 이렇게 해놓고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겠느냐"고 지적했다. 

- 교육부는 항소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교육부는 이미 세 차례나 졌는데…. 대법원에 간다고 해도 결과가 뻔하지 않겠나? 교육부는 그렇게 국민의 세금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다. 또한 대법원까지 간다고 해서 어떤 실익이 있는지 모르겠다. 총장 선거를 다시 한다면 학생들 등록금을 사용해야 한다. 지금 혼란도 큰데, 더 큰 혼란이 생길 것이다. 누가 책임지려고 하나."

- 임용제청 거부를 두고 정치적인 이유 탓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저희 집안은 전통적인 유교 집안으로, 진보보다는 보수에 가깝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를 건드릴 이유가 없다. 미스터리다. 한국체육대는 4명의 총장 후보자가 낙마한 끝에 새누리당 전직 의원이 후보자가 됐는데, 결과가 어떨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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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임용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달 27일 방송대에서 교육부의 총장 임용 제청 거부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임용 비상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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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학내 혼란 알고 있나"

- 방송대 캠퍼스에 교육부를 규탄하는 플래카드가 많이 보인다. 동문과 학생들이 격앙돼있다. 
"재학생과 동문들이 가장 큰 피해자다. 5만 명이 총장 임용 제청을 요구하는 서명에 이름을 올렸다고 들었다. 1972년 방송대가 개교한 후 졸업생만 58만 명이고, 현 재학생은 14만8000여 명에 달한다. 졸업식 때 총장대행의 졸업장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렇게 하지 말자고 했다. 우리마저 격에 안 맞는 행동하면 되겠나."

-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 
"하늘 아래 비밀이 어디 있겠나. 언젠가는 그 사유가 밝혀질 것으로 본다. 초조해하지 않고, 논문을 쓰고 정상적인 연구자의 길을 가겠다. 또한 당당한 총장 후보자로서 법적 대응을 하면서 우리 학교의 미래를 위해 일하겠다. 이번 일은 정상의 비정상화다. 방송대를 비롯해 국립대 여러 군데에서 혼란이 빚어지고 있는데 박 대통령이 알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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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댐의 시대는 끝났다!!

우릴 구제할 만능인가, 자연파괴의 부메랑인가

[함께 사는 길]댐‧① 대규모 토목사업

 
 
 
"왔노라, 보았노라, 압도됐노라(I came, I saw, and I was conquered)." 
 
1935년 미국의 32대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완공된 후버댐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후버댐은 미국의 애리조나와 네바다 주 사이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 협곡에 세워진 아치형 댐이다. 후버댐의 높이는 221미터이고 저수용량은 320억 톤으로 우리나라 소양강댐보다 약 100미터 높고 저수용량은 11배 많은 엄청난 규모이다. 
 
당시 미국은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토목사업을 대규모로 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사업이 후버댐 건설이었다. 후버댐은 미국 자존심의 상징이었고 자연을 인간의 기술로 정복할 수 있다는 시대적 분위기를 대변했다. 이후 전 세계 하천에서는 경쟁적으로 댐 건설의 광풍이 불었다. 
 
우리나라 역시 1972년 소양강댐 준공을 시발점으로 본격적인 댐 건설을 시작하였다. 현재 약 1만8000개의 크고 작은 댐들이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다.  
 
▲ 댐은 홍수와 가뭄으로부터 우리를 구제할 만능인가 아니면 자연파괴의 부메랑인가. ⓒ수자원공사 소양강댐 관리단

▲ 댐은 홍수와 가뭄으로부터 우리를 구제할 만능인가 아니면 자연파괴의 부메랑인가. ⓒ수자원공사 소양강댐 관리단 

 
 
국토부의 댐 추진 방식 
 
2012년도에 발표한 댐건설장기계획을 살펴보면 14개 댐에 대한 규모, 필요성, 기대효과 등 댐 건설의 근거가 되는 자료는 없다. 댐 건설 위치를 개략적으로 설정하고 댐 규모, 필요성 등은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토부의 입맛에 맞도록 조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리산댐의 용도가 애초 용수공급에서 용유담 수몰문제가 불거지자 홍수조절로 바뀌었다.  
 
최근 홍준표 경남지사가 용수공급을 위하여 지리산댐 건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자 현재 이에 대한 검토를 하고 있다. 댐건설장기계획은 '댐건설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법정계획인데 장기계획에서 제시한 댐들은 그 용도조차도 확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기계획에 댐 이름만 포함되면 온갖 협박과 회유 그리고 다양한 꼼수로 댐건설을 추진하는 것이 현재 국토부의 댐 추진 방식이다. 
 
또한 국토부는 댐을 건설할 때는 홍수조절효과를 부풀리고 건설된 후에는 홍수조절효과를 줄이는 절차를 거쳐 또 다른 댐 건설 계획을 수립한다. 환경영향평가는 사업승인을 위한 법제상 귀찮은 장애물로 취급된다. 또한, 댐의 환경파괴는 경미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쉽게 저감 가능하며 댐건설 후 지속적인 모니터링으로 환경문제는 해결 가능한 것으로 기술한다.  
 
최근 들어 수자원공사는 천문학적 혈세를 투입하여 댐 부근을 공원화하는 사업을 추진, 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줄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가뭄과 홍수가 발생하여 사회적 관심이 집중되면 국토부는 향후 대책으로 어김없이 댐건설계획을 들고 나오는데, 댐은 그 부정적 요소는 사라지고 전지전능하고 유일무이한 해결책으로 치장된다.
  
ⓒ함께 사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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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토부가 추진했던 주요 댐에 대한 예측사업비와 실측사업비를 비교해보면 대부분 댐은 평균적으로 예측사업비보다 4배 많은 사업비로 건설됐다. 전두환 때 만들어진 합천댐의 경우 예측사업비보다 17배의 예산이 투입됐다. 우리나라 댐 정책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그럼에도 댐 건설 사업이 법적 타당성을 갖고 추진되는 이유는 댐 건설 공무원 조직이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수자원개발과와 수자원공사 수자원개발처가 존재하는 이상 해당부서는 댐을 건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나아가 댐 건설을 확대하는 것이 이들 조직의 주어진 사명이다. 한번 만들어진 공무원조직은 현상유지 수준을 넘어서 확대하려는 본질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조작된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추진하는 댐 건설과 그로 인한 예산낭비, 환경파괴와 생활터전 상실과 같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는 댐 건설을 할 수밖에 없는 조직을 전면 개편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나아가 국토부와 수자원공사가 일부 분야에서는 시대적 소임을 다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선진국들은 댐 건설 아닌 댐 철거 중 
 
미국과 유럽에서는 댐으로 홍수를 방어하는 것은 근본적인 한계가 있고 생태계의 파편화로 인한 부작용이 훨씬 더 심하다는 인식이 댐 정책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미 연방개척국장은 1995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제 댐의 시절은 끝났다(The era of dams is over)"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전 세계 댐 건설을 지원하던 세계은행(World Bank)도 최근 댐의 부정적 요소에 초점을 맞춰 댐 건설을 위한 예산지원을 대폭 줄였고, 수력발전 댐이 지구온난화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주장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고 밝혔다.
 
미국의 깨끗한 물법(Clean Water Act) 404조를 보면 하천에 댐을 건설하려면 '피할 수 없는 악영향을 상쇄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야만 댐 건설사업이 승인된다. 또한 유럽연합의 물 관리 기본지침(Water Framework Directive)은 댐 건설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고 댐 철거에 바탕을 둔 생태계가 살아있는 하천복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990년대 들어 과학자들은 하천이 중요한 생태적 기능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하천에 대한 인식의 변화로 미국에서는 650개 이상의 댐이 철거되었고 일본에서도 326개의 댐과 보가 철거되었다. 철거의 이유는 댐의 노후화와 유지관리의 어려움이었지만 최근에는 생태계 회복 또는 하천복원 차원에서 댐을 철거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토부는 보도자료(2010. 3. 31.)에서 '미·일에서 철거되는 보·댐은 본래 기능 상실한 것들'이라며 애써 댐 철거의 의미를 축소하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4대강 사업이 시작될 무렵인 2008년 환경부·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작성한 '기능을 상실한 보 철거를 통한 하천생태통로 복원 및 수질개선효과'를 살펴보면, 보고서 제목 그 자체가 결론이고 또한 '하천복원의 취지에 맞고 하천본래의 모습에 가까운 하천으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기존 보에 어도를 조성하거나 보 형태의 개량보다는 보의 완전철거에 의한 하천복원이 더 효과적이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양구군에서 발표한 '소양강댐 건설로 인한 양구지역 피해산정(2012)'에 따르면 소양강댐이 건설된 이후 42년 동안 양구군 주민들이 입은 피해액이 3조 원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 미국과 유럽연합 등에서 다수의 댐들이 철거되고 있다. 우리도 댐 건설이 아닌 불필요한 댐의 철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다. ⓒ함께 사는 길(이성수)

▲ 미국과 유럽연합 등에서 다수의 댐들이 철거되고 있다. 우리도 댐 건설이 아닌 불필요한 댐의 철거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때다. ⓒ함께 사는 길(이성수)  

 
 
홍수와 더불어 사는 사회 
 
댐으로 조성된 새로운 담수는 주요 생태계 중 가장 황폐한 곳으로 전락했다. 댐은 강과 그를 둘러싼 유역의 생명체들이 엮어놓은 복잡한 사슬을 해체하고 수변생태계를 파편화하기 때문이다. 댐은 현재 세계 담수 어종 9000여 종 중 멸종했거나 멸종위기에 처한 20퍼센트의 어종을 만들어낸 주요 요인이다. 이 비율은 댐이 밀집된 나라일수록 높다. 또한 댐은 자연의 역동성(홍수와 가뭄)을 사라지게 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댐은 오히려 자연하천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하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자연하천은 작은 유량과 큰 유량이 계속 반복하는 역동성을 지니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댐으로부터 토사유출이 차단되어 댐 하류에 어류서식처가 감소하는 것 역시 하천의 역동성을 저해한다. 강제 이주자들이 댐 건설 과정에서 댐 반대운동으로 심신이 지쳤거나 고향이 수장된다는 정신적 상실감에 시달리게 하는 사회적 문제도 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하천관리 패러다임에 주목할 시점이다. 먼저 홍수와 더불어 사는 사회(Society Living with Flood)를 만들어야 한다. 완전한 홍수방어는 인간의 기술로는 가능하지도 현명하지도 못하다. 하천에게 본래의 물길을 돌려주고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는 인식을 하천관리의 철학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기후변화와 이상기후 등으로 갈수록 커지는 홍수를 막기 위해 댐과 제방과 같은 구조물적 대책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원래 하천이 가지고 있던 모습을 현실의 제한성을 염두에 두면서 다시 복원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는 천변저류지 설치, 하천 폭 확대, 홍수터 편입 등이 대안이 될 수 있다. 2006년 낙동강유역종합치수계획에 따르면 당시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하여 천변저류지 20개소를 만들어 홍수조절(5500만 톤)과 생태계복원을 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4대강 사업으로 천변저류지 계획은 백지화되었다. 강원도 인제에서 추진했던 저지대 거주지를 높은 곳으로 이주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하천변 저지대는 사람이 살기에 적절하지 못한 하천의 공간인데 2006년 태풍 에위니아가 몰고 온 홍수 때 저지대에 살던 많은 주민이 목숨을 잃었다.
 
무엇보다 우리사회가 주목해야 할 점은 기능을 다한 댐과 보를 철거하는 것이 근본적인 하천 복원의 길이라는 사실이다. 사회적 담론으로 이행하기에는 아직 우리사회가 댐 철거에 대한 인식에 부정적인 면도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연합 등 하천관리 선진국에서는 댐 철거를 하천정책의 중요한 핵심사항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늦었지만 불필요한 댐의 철거를 새로운 담론으로 확산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댐은 하천개발사에서 빛나는 성과물인가 아니면 자연 파괴의 부메랑인가. 적어도 댐으로 만들어진 저수지는 더 이상 강이 아니다. 강의 본질은 흐른다는 것이고 저수지의 본질은 그것이 고여 있다는 것이다.
 
*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함께 사는 길>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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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노동 부산 생탁, 사장 연봉은 100억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5/01/31 10:29
  • 수정일
    2015/01/31 10:2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직원 수 절반이 ‘사장들’, 이들 연봉이 매출액의 35%
 
육근성 | 2015-01-31 08:33:0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29일 276일 째 파업 중인 부산 사하구 장림동 소재 부산합동양조(생탁)을 찾았다. 빨간 조끼를 입고 정문 옆에서 농성 중인 노동자들 대부분은 50대 이상의 중년여성들이었다. 파업 노동자들이 털어 놓은 근무환경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직원 대부분이 근로기준법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을 사측이 최대한 악용해 온 것이다.


업계 2위 알짜기업… 직원 대부분은 촉탁계약직

부산 생탁은 서울의 장수막걸리에 이어 업계 매출 전국 2위다. 부산 지역 시장점유율은 70% 정도이며 경남지역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막걸리로 통한다. 연매출액은 230억 정도. 70년대 부산의 양조장들이 모여 합동양조를 만든 것이 생탁의 출발이었다.

직원들의 연령은 높은 편이다. 50대 이상이 대부분이며 70대 노인도 있다. ‘정년 55세’라는 사규 때문에 거반의 직원이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촉탁계약)이다. 직원들의 근무 여건이 대체 어떠하기에 칼바람 속에서 비닐을 깔고 바닥에 앉아 사측을 규탄하는 걸까.

파업의 발단은 구내식당에서 우연히 보게 된 사규집 때문이었다. 노조 조직부장인 송복남 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작년 11월 식당에서 보게 된 사규에 이상한 문구가 있더군요. 연차를 쓰지 않으면 연말에 자동 소멸된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한 번도 연차를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왜 연차를 못쓰게 하느냐, 못쓴 연차는 수당으로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더니 봉급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된 ‘포괄임금’이라고 우기더군요. 답답해서 몇 명이 민주노총을 찾게 된 겁니다.”


근로자들이 들려준 얘기는 ‘충격적’

농성장에서 노동자들이 전해주는 근무환경은 참담했다. 박정희 정권이나 5공 때를 연상할 만큼 열악하기 짝이 없다. 현장에서 농성 중인 생탁 근로자들로부터 직접 들은 얘기다.

▲밥 먹을 시간도 없었다. 4시 30분에 출근하니 아침과 점심을 회사에서 먹어야 한다. 하지만 밥 먹어야 하는 시간에도 기계는 계속 돌아간다. 잠시도 쉴 틈이 없다. 5분 만에 밥을 먹어야 했다.

▲택시타고 출근해야 하는데도 버스비만 줬다. 버스가 다니지 않는 시간대에 출근하려니 거리가 먼 경우 택시를 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회사는 버스비에도 부족한 월 7만원을 지원해 주는 게 고작이었다.

▲작업화까지 직원 개인 돈으로 사야 했다. 작업현장엔 항상 물이 질펀하다. 한겨울에는 무척 발이 시리다. 그래서 회사에 속에 털이 있는 장화를 지급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했다. 직원들이 개인 돈으로 직접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휴일에도 근무했다. 주 5일 근무는커녕 한 달에 한번 쉬는 것도 쉽지 않았다. 지금은 조금 사정이 나아졌지만 몇 달 만에 휴일을 갖는 직원도 많았다. 물론 휴일수당 같은 건 없었다.

▲장례도 치를 수 없었다. 송복남씨가 겪은 일이다. 아들이 없는 삼촌이 세상을 떴다. 때문에 자신이 상주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회사에게 설명하고 휴가를 요청했지만 사측은 사규집 뒤적거리더니 “삼촌 상에 휴가를 주라는 규정은 없다”며 거절했따. 결국 장지에도 갈 수 없었다.

▲하루 18시간 일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명절 전 3일 동안 배송 기사들은 혹사를 당한다. 잠은 대기하는 동안 차 안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졸면서 운전하기 일쑤였다.

▲휴게실에는 곰팡이와 쥐, 바퀴벌레가 득실댔다. 밤 근무자가 잠시 눈을 붙이는 공간이 있지만 환경은 끔찍했다. 노조가 설립된 뒤 노동청에 진정해 겨우 개보수가 이뤄졌으나 사측은 왜 그런지 언론의 취재를 막고 있다.

▲ <야근 직원이 눈을 붙였던 휴게실. 사진은 수리 전 상태(자료제공: 블로거 거다란>

▲산재 처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다. 직원 이봉호씨의 경우다. 술과 물을 섞어 비율을 맞추는 작업현장은 바닥과 계단이 미끄럽다. 이 씨가 넘어져 손이 찢어지고 손가락이 부러졌다. 의사 권유로 MRI 촬영을 했건만 사측은 “누구 맘대로 사진을 찍었느냐”며 MRI 검사비 지불을 거절했다.

▲못쓰는 술탱크가 직원 목욕탕이었다. 쓰다 버린 술탱크에 지하수 받아서 오토바이 헬멧 같은 걸로 물 끼얹도록 해 놓은 게 고작이엇다. 샤워하면 오히려 몸이 간지러웠다. 파업하고 난 뒤에야 겨우 수리가 이뤄졌다.

▲직원 1인당 한끼 부식비는 450원. 100명 직원이 아침 저녁 두끼 먹는데 사측이 지불하는 비용은 고작 9만원이다.

▲휴일에는 점심을 제공하지 않았다. 배가 고프다고 하소연 하면 고구마 혹은 삶은 달걀을 두 개도 아닌 딱 하나씩만 먹으라고 줬다.

▲성추행도 있었다. 혼자 근무하는 여성 근로자의 바지 속에 손을 집어넣는 등 추행이 있었다고 말했던 피해자는 회사로 복귀하자마자 말을 바꿔 “그런 일 없다”고 부인했다.

사측은 파업 9개월이 되도록 대화에 소극적이다. “이미 식약처로부터 벌금 맞을 거 다 맞았다”며 오히려 배짱을 부리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 생탁은 식약처로부터 제조 일자 조작, 기계와 식기류 염소로 세척, 암반수 사용한다고 과대 광고한 사실 등이 드러나 처벌을 받은 바 있다.


매출액 35%가 사장 연봉

노조에 대한 경찰의 과잉 대응도 문제다. 지난 26일 경찰은 파업집회에 참여한 노동자 5명을 붙잡아 이 중 3명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법원은 ‘도주와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현장근로자의 급여는 130만원 수준. 그런데 놀라운 건 사장이 챙겨가는 액수다. 전체 근로자 인건비는 매출의 9%도 안 되는데 사장은 연매출의 35%를 가져간다. ‘합동 체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사장단’이 41명이나 된다. 사장 한 사람이 챙겨가는 배당금은 월 2300만원. ‘사장단’ 연봉이 100억원에 육박하는 셈이다. 아무 일도 안 하면서 지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뭉칫돈을 빼내가는 것이다.

‘사장들’이 챙겨가는 엄청난 연봉은 열악한 근무환경과 박봉에 시달리며 노예처럼 일하는 근로자들을 쥐어짠 결과다. 중소기업 사장 연봉이 100억 원이라니. 기네스북에 오를 일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2&table=c_aujourdhui&uid=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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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인터뷰>를 리뷰하다

 
이규정 2015. 01. 30
조회수 725 추천수 0
 
  역사에 남을 ‘표현의 자유’ 사건이 연달아 터졌다. 소니픽쳐스사의 <더 인터뷰> 해킹 사건과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이다. 프랑스에서는 이 테러사건을 규탄하기 위해 무려 370만 명이 가두시위를 벌였다. <더 인터뷰>는 소니픽쳐스 온라인영화 사상 최고액인 3천만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북한이 소니를 해킹했다’고 발표하면서 <더 인터뷰>는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됐다. 
그런데 숭고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기 위해 영화를 보려다가는 실망할 수도 있다. 억압받는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B급’이라기에도 민망한 작품성 때문이다. 영화는 김정은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는지, 그가 얼마나 자격 없는 최고지도자인지 밝히는 데 열중하기 보다는 어떡하면 억지로라도 사람들을 웃기려는 데 더 혈안이 돼 있다. 제작진의 빈곤한 창작력은 김정은이 인터뷰 도중 대변을 보는 바보로 만드는 데까지 간다. <더 인터뷰>는 미국내 널리 퍼진 우스꽝스러운 독재자 김정은의 이미지를 코메디로 만들어 팔아먹으려는 상업 영화다. 이것이 오바마 행정부가 <더 인터뷰>를 통해 쟁취하려는 ‘표현의 자유’ 다.
 
 북한 군인들이 봉기를 결심한 이유가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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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 큰 일 사건’을 계기로 북한 정부는 붕괴 된다
 
  김정은 암살의 명분? 간단하다. 김정은을 인터뷰하는 데이브(제임스 프랭코 분)가 말하듯이 “김정은은 빈 라덴, 히틀러와 같”기 때문이다. 사상 최악의 테러리스트와 독재자의 결합, 김정은에게 덧씌워진 무시무시한 이미지다. 김정은 암살 지령을 내린 CIA 요원의 발언에는 디테일이 있다. CIA 요원은 “김정은은 자국민을 고문하고 굶어 죽이는 사람이다. 그는 미국 서부를 날릴 핵무기를 갖고 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대외적으로 ‘악의 축’이건만 데이브 일행을 따라 북한 내부를 들여다보니 허점이 많다. 우선 김정은의 ‘똥’이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은이 항문이 없는 줄 안다. “위대한 영도자님은 대소변을 보지 않아요. 열심히 일해서 에너지를 내부적으로 소모하기 때문이죠. 항문도 없습니다” 데이브 일행의 평양 안내를 맡은 박숙인 대외연락부 직원의 어처구니없는 전언이다. 
  게다가 알고보니 김정은은 ‘미 제국주의’의 유명 여가수 케이티 페리의 팬이며 농구를 사랑한다. 실제로 유년시절 스위스에서 공부한 김정은은 서양 대중문화에 익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데이브 일행은 김정은과 가까워지는데 문화적으로 이질감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김정은의 이런 취향은 유년시절의 상처였다. 독특한 문화적 취향 때문에 김정은은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가족들 몰래 케이티 페리 노래를 들으며 마음을 달랬다. 
  데이브가 아버지에 대한 김정은의 복합한 감정을 건드리고 김정은 유년기의 주제가라 할 수 있는 케이티 페리의 노래를 부른다. 김정은은 그만 감정에 복받쳐 눈물을 흘리고 아이처럼 엉엉 운다. 그리고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울던 김정은은 갑자기 바지에 ‘거사’를 치른다. 김정은 인터뷰를 시청하고 있던 전국의 북한 주민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김정은을 보고 패닉상태가 된다. 판문점의 북한군인은 “우리하고 똑같지 않습네까!”라고 소리를 지르고 상관과 동료들을 밀친다. 결국 이들은 김정은 우상화의 허상을 깨닫고 봉기하기에 이른다. 훗날 역사는 이를 ‘똥 혁명’으로 기록할 것이다.
 
마이클 무어까지 ‘영화 보고 ‘표현의 자유’ 수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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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 트위터 갈무리(@MMFlint)
 
  매진! 사람들은 뭘 볼 수 있는지, 볼 수 없는 지 검열 받는 걸 싫어한다.
 
  <더 인터뷰> 흥행의 일등공신은 미국 연방수사국(FBI)와 오바마 대통령이다. 소니픽쳐스가 극장테러 위험 때문에 ‘개봉 무기한 연기’를 결정한 다음날, FBI는 소니 해킹이 북한소행임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몇 시간 뒤 오바마 대통령은 ‘비례적 대응’을 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기관과 대통령까지 나서면서 이 영화는 거대한 상징성을 얻었다. B급 코미디 영화가 갑자기 ‘표현의 자유’ 상징이 됐다. 
<화씨9.11> 등 비판적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온 마이클 무어 감독은 지난해 12월26일 자신의 트위터에 “매진! 사람들은 뭘 볼 수 있는지, 볼 수 없는 지 검열 받는 걸 싫어한다”라는 트윗을 올렸다. 그가 트윗과 함께 올린 극장 전경 사진을 보면 ‘검열은 없다(No Censorship)’이라는 홍보문구가 있다. 미국에서 이 영화가 소비되는 방식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에릭 슐츠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이 영화를 상영하기로 한 소니의 결정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대통령이 명시했듯이, 미국은 자유로운 발언과 예술에 있어 표현의 자유를 존중한다. 소니의 이번 결정과 그에 따른 극장들의 참여는 국민들에게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줄 것이다. 우리는 상영을 환영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이 선택적으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한다는 비판도 있다. 2012년 미국 영화제작사 콘트라필름은 영화 <레드 던>을 제작하며 중국을 미국의 적국으로 설정했다. 하지만 중국 측의 항의에 제작사는 부랴부랴 북한으로 적국을 바꿨다. 미국 게임 개발사 카오스 스튜디오가 2013년 제작한 게임 <홈프론트>도 같은 이유로 북한이 주적이 됐다. ‘표현의 자유’보다 무시할 수 없는 중국의 시장성 때문이다. 
미국 내 평단도 이 영화가 ‘표현의 자유’ 상징이 될 만큼 훌륭한 영화인지에 의문을 던졌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평론가 베스티 샤키는 ‘인터뷰’에 대해 “거칠고 무례한 영화”라면서 “적당히 재미있지만 대단한 영화는 아니다”라고 평했다. <뉴욕포스트>의 새라 스튜어트는 “이렇게 이야기해서 유감이지만 풍자 영화로서 이 영화는 기대했던 것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고 혹평했다.

이규정 디펜스21+ 기자 okeygun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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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에 등돌린 압구정 70대들??


"거짓말쟁이...대선 때 찍은 거 후회"

[르포] 20%대로 무너진 콘크리트 지지율... 종로-강남 노인층에 이유를 묻다

15.01.31 09:23l최종 업데이트 15.01.31 09:23l

 

 

지난 28일 오후 2시경 서울역 2층 대합실 옆에 마련된 TV 모니터 앞에는 60~70대 남성 4명이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TV 모니터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29.7%까지 내려갔다는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이재천(63·용산구)씨는 옆 사람에게 "나도 박근혜를 지지했지만 요새 국민은 뒷전이다"라며 "(정윤회) 문건 파동이나 서민 증세 같은 것들을 보면 신물이 난다"고 말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27일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29.7%로 나타났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26일 발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 역대 최저치인 30.1%를 기록한 지 불과 하루 만에 30%선이 무너진 것이다. 각종 매체는 이를 보도하며 '박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층이 무너졌다'고 평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50·60대에서의 이탈 현상이 두드러졌다. 50대 지지율은 52.5%에서 44.2%로 8.3%p 떨어졌고, 60세 이상은 65.5%에서 57.9%로 7.6%p 하락했다. 50·60대의 민심은 정말 박 대통령에게서 돌아선 것일까. 실제 시민들의 말을 들어보기 위해 종로구 탑골공원과 강남구 압구정역을 찾았다. 

[돌아선 종로 50·60대 민심] 10명 중 6명은 "마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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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정말 무너진 것일까? 28일 오후 종로 탑골공원 인근에서 50·60대 노인들을 만났다.
ⓒ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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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서울의 최저기온은 영하 9도였다. 이 때문인지 종로 탑골공원에는 8명 내외의 중장년층만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인터뷰 요청에 '정치 얘기는 안 한다'며 빠르게 지나가는 시민들도 있었다.

공원 한쪽 조각상 앞에 앉아 있던 백발의 노인 정아무개(75, 서대문구)씨는 "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지지율이 떨어진 건 이미 기정사실 아니냐"라고 반문했다. 

"(박 대통령이) 한 일이 있으니 (지지율이) 떨어지는 거지. 원래는 대선공약에서 노인들에게 20만 원씩 준다고도 하고, 복지도 강조하고... '아, 우리같은 노인들도 막걸리 값은 받을 수 있겠다' 생각해서 뽑았지. 근데 지금 그거 지키지 않았잖아. 오히려 서민들 세금만 걷고 부자 증세는 안 하잖아. 예전에는 어쩌다 개천에서 용이라도 났다지만, 이제는 절대 안 돼. 부익부 빈익빈 차이가 너무 커졌어. 우리야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네들이지만 후세는 더 힘들어 질 거라고 봐... (지지율이) 더 떨어져야 돼." 

이춘기(69, 성북구)씨도 "경제 살린다고 해서 뽑았더니 이런 불황은 살다 살다 처음 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내가 서울에서 60년이 넘게 살았지만 이렇게 불황인 적은 없었어. 내 직업이 용달 운전해서 시장에 물건 배달하는 건데, 장사가 안 되니까 일이 없어, 요새. 시장 상인들도 장사가 안 되니까 다 놀아. 임대료 못 내서 쫓겨나는 사람도 많아지고." 

이씨는 박 대통령에 실망한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는 "(정윤회) 문건 파동 이후에 인적 쇄신을 하지 않고 그냥 용서해버리는 것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 후보라 잘할 것 같아서" 박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양경혜(75, 동작구)씨 역시 "국가를 잘 운영하라는 국민 뜻을 무시했다"며 박 대통령을 질책했다. 그는 박 대통령에 대해 "자기 사람만 쓰는 독단적인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또 "나 같은 경우 사업이 망한 이후 아르바이트가 생기면 간간히 일하는 신세가 됐다"며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다들 살기 힘들다고 한다"고 말했다. 

탑골공원에서 만난 중장년층 10명 중 6명은 '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 맞는 것 같다'고 답했지만, 3명의 시민은 '잘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이아무개(58, 서대문구)씨는 "새누리당이 그래도 믿을 만해서 박근혜를 뽑았다"며 "지지율이 하락했는지 잘 체감되지 않는다, 야당도 별 게 없지 않냐"고 말했다. 이씨 외에 다른 두 시민도 공통적으로 "(국정 운영을) 그냥 보통으로 하고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이들은 지난 대선 때 각각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라서' '뽑을 사람이 없어서' 박 대통령에게 투표했다고 한다. 그 중 한 시민은 "그래도 담뱃세 같은 서민 증세는 싫다"며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 같지만 (박 대통령이) 고집이 있어 이 기조를 밀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탑골공원에서 만난 시민들 중 유일하게 '박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잘 하고 있다'고 응답한 배아무개(59, 용산구)씨는 "여자 힘으로 정말 잘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을 보고 박 대통령을 지지하게 됐다"는 배씨는 "문재인 후보가 당선됐으면 복지 규모가 더 커서 세수 부족이 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비판이 쉽지, 정치를 직접 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강남 노년층도 지지 균열] "이렇게 소통이 안 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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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대통령의 '콘크리트 지지율'은 정말 무너진 것일까? 28일 오후 강남 압구정역 현대백화점 지하 출입구에서 50·60대 노인들을 만났다.
ⓒ 이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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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날 오후 7시, 강남 압구정역 현대백화점 지하 출입구는 사람들로 붐볐다. 특히 노년층의 출입이 잦았다. 베레모를 쓴 노신사는 케이크상자를 들고 백화점 문 밖으로 나섰다. 입구 근처에 있는 초콜릿 매장에는 모피코트를 입은 할머니 두 분이 선물포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쇼핑을 하는 노인들에게 대선 때와 비교해 현재 박 대통령의 지지 변화 여부를 물었다. 

압구정에 거주하는 문아무개(74)씨는 "대통령? 할 말이 너무 많아, 따라와"라며 기자를 데리고 백화점 지하 1층에 위치한 VIP 라운지로 들어갔다. 문씨는 "대선 때 박근혜를 찍은 것을 후회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소통이 안 될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문씨는 또 "정치에서는 다수의 의견이 한 사람의 의견보다 더 옳다"며 "그런데 박 대통령은 자기 고집이 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동네(압구정) 같은 경우, 이명박이 살인을 저질러도 지지를 하는 곳이다"라며 "하지만 여기 사람들도 최근 박 대통령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고 말했다. 

부인과 쇼핑을 마치고 나온 임아무개(66)씨는 박 대통령에 대해 "무식하다"며 "제대로 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임씨는 "아직 나는 새누리당 지지자이지만, 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또 "문제의 원천은 박 대통령이 솔직하지 못해서인 것 같다"며 "이번 연말정산 문제도 거짓말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고 평가했다. 

김아무개(65)씨 역시 '거짓말'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증세 없는 복지도 결국 거짓말이었다"며 "거짓말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연말정산 때 터졌다"는 것이다. 그는 또 "'인사' 역시 마찬가지다"라며 "비선조직을 건드리지 않고 국민의 지지를 얻겠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백화점에서 쇼핑을 마치고 걸어가던 강아무개(69)씨는 "500만 흡연자의 인권이 유린됐다"며 주변 사람들이 쳐다볼 정도로 큰 소리로 호통을 쳤다. 강씨는 "담뱃값 인상이나 흡연 장소 제한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흡연자들을 내몬 것이 문제다"라고 말했다. 

한편에서는 박 대통령에 대한 강남 노년층의 '콘크리트 지지'도 확인할 수 있었다. 곽문순(73)씨는 "박 대통령은 욕심이 없다"며 "가족 문제도 없고, 본인도 깨끗하다"고 평가했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 저하에 대해서는 "아직 국민들이 (박 대통령의) 진심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정아무개(81)씨는 "(박 대통령이) 특히 외교를 잘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여성 대통령이라 인식이 안 좋아서 지지도가 낮을 뿐"이라는 것이다. 김아무개(76)씨는 "참 운이 안 좋은 대통령"이라며 동정표를 던졌다. 김씨는 "현재 사건들은 대통령이 컨트롤 할 수 없는 문제"라며 "박 대통령은 언제나 노력하기에 지지한다"고 밝혔다. 

김복희(75)씨는 "언제나 바뀌는 게 지지도이기 때문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면서 "박 대통령이 아주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지만, 기왕 대통령이 된 거 밀어주는 게 국가 장래에 좋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진혁, 이유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21기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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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남북관계 전망: 북미관계를 중심으로

<기고> 안태형 LA통일전략연구협의회 수석연구위원
안태형  |  taehyungahn@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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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1.30  15: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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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형 / LA통일전략연구협의회 수석연구위원

 

2015년은 한반도 해방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동시에 분단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백낙청의 분단체제론 등에서 보여지듯이, 한반도의 분단은 남북 모두의 분단이후의 역사전개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해 왔으며 남과 북은 냉전의 잔재로 인해 아직까지도 여전히 여러 방면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한반도의 안정과 번영을 위해서는 남북이 하루빨리 화해와 협력을 통해 정치군사적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체제를 정착시켜야 한다. 다행히 최근 남과 북 모두 2015년을 남북관계 개선의 해로 만들고자하는 의지를 보이면서, 남북관계 개선과 긴장완화, 평화정착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작년 말 미국이 쿠바와의 국교정상화계획을 발표하면서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남북관계의 개선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들은 여전히 존재하며, 미국과 북한의 관계개선도 기대만큼 쉽지 않은 형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글은 한반도를 둘러싼 최근의 국제정세를 미국, 북한, 한국, 3자간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특히, 미국 오바마 정부 시기의 한반도정책과 대북정책, 그리고 남북한 정부의 관계 개선을 위한 최근의 적극적인 움직임 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현재 어떤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으며, 또 어떠한 어려움이 여전히 남아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 올해와 내년의 한반도 정세를 간단히 전망하고자 한다.

오바마 정부 하의 북미관계 (2009-2015)

전임 부시 대통령의 일방주의적이고 군사주의적 외교를 지양하고 “핵없는 세계”를 이루겠다고 공언한 오바마 미 대통령은 한반도 분단상황 개선에 대한 기대 또한 한 몸에 안고 임기를 시작했으나 지난 6년 간 그의 대북정책은 한 마디로 말해 매우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소위 “전략적 인내 strategic patience” 정책으로 일컬어지는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그 동안 대북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미 행정부 내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오바마 정부 하에서 6자 회담은 단 한 차례도 열리지 못했고 북한은 이 시기 동안 두 차례의 핵실험을 추가로 실시하고 핵무기의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에 성공했다고 선언했다. 이제 북한은 플루토늄으로 제조한 핵무기 뿐 아니라 우라늄으로 제조한 핵무기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한 집권 후반기에는 외교적 업적을 쌓기 위해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오바마는 작년 말 올해 초에 대북강경책으로 급선회하면서 남북관계 개선에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 정권은 결국 무너질 것”이라며 북한붕괴까지 거론하는 등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다행히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군사적 해결책에는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기는 하다.

오바마의 대북정책, 더 나아가 대한반도 정책이 기대했던 것만큼의 큰 성과를 내지 못한 데에는 다음의 세 가지 요소가 크게 상호작용했다. 국제정치학에서의 세 가지 분석수준인 개인(individual level), 국내정치(domestic politics level), 국제정치(international level)가 그것이다.

첫째, 오바마 대통령 개인의 대북인식에 문제가 있다. 취임 초부터 오바마는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북한의 신뢰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협상대상으로서의 북한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였고, 다른 불량국가들(rogue states)에 비해 북한에 대해서만은 유달리 강경책을 선호했다.

이는 최근 영화 “인터뷰” 해킹사건에 대한 오바마의 신속하고 확신에 찬 대응과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의 “북한은 쿠바, 이란, 미얀마 등과 다르다”는 발언 등을 통해 잘 드러난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교육제도나 경제발전에 대해 여러 차례 칭찬하고 한미동맹의 유지, 강화가 대한반도정책의 핵심임을 거듭 강조했다. 한 마디로 말해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은 매우 모범적인 국가이지만 북한은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 미국의 국내정치적 요소가 강력하게 작용했다. 미국에는 실제적으로 북한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이익단체나 미디어, 시민단체 등이 거의 없기 때문에 다른 외교정책에 비해 민주, 공화 양당의 대북정책에 본질적 차이점이 거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북강경책은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군산복합체 등의 이익에 기여한다.

더 나아가 작년 중간선거 결과, 공화당이 상하양원에서 다수당이 되면서 남은 임기에 오바마의 대북정책이 근본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다. 이는 클린턴 시기 상하양원을 장악했던 미 공화당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있어서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 기억을 떠올려보면 알 수 있으며, 최근 공화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점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셋째, 국제정치적 요소가 작용했다. 미국의 대북정책과 대한반도정책은 대중국정책의 종속변수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중국을 잠재적 위협으로 생각하는 한 한반도의 상황은 개선되기 어렵다. 미국의 대중국견제정책이 아시아로의 회귀정책(pivot to Asia) 또는 재균형정책(rebalancing)으로 불리는 대아시아정책의 핵심이지만, 미국이 아직까지는 중국을 직접적/공식적인 적으로 설정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북한을 이용해서 동북아에서 (대중국) 한미일 삼각동맹을 강화하고, MD나 THAAD 등 대 중국 군사봉쇄정책을 실현하고자 한다.

또한 북한도 일관성 없고 세련되지 못한 대미정책으로 인해 미국에 빌미를 제공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최근 미국과 쿠바와의 수교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북한과의 수교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미국이 쿠바와 수교하고 미국과 이란과의 핵협상이 타결된다면, 북한이 미국의 가장 강력한 위협국가로 남게 되어 오바마가 자신의 외교정책은 유화정책(appeasement)만이 아니며 미국에 대한 위협국가에는 여전히 강력하게 대응한다는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한 대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하겠다.

미국의 대북정책과 남북관계 개선 전망

한반도에서 군사적 대립과 갈등을 억제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북미관계 개선이 남북관계 개선을 추동한다든지, 아니면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관계 개선을 추동시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으로 볼 때, 지금은 남북대화를 통한 화해협력 분위기에 의해 남북관계가 먼저 개선되고, 개선된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의 개선을 가져오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북한도 남한과의 관계개선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이 6자회담 재개에 앞서 북한에 대해 선제조건을 요구하는 것을 비난하는 북한이 남북대화에 앞서 자꾸 한국에 선제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며, 이는 북한이 남북대화에 대한 의지를 결여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북한의 핵/경제건설 병진노선 등도 외교적으로는 유연하게 적용해서 적절한 보상이 주어진다면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진정성 있는 태도를 적극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북한은 벼랑끝 전술(brinkmanship)이나 팃포탯(tit-for-tat) 전술보다 더 일관성 있고 적극적이며 선제적인 외교정책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엽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공식적인 외교성명서에 자주 쓰이는 호전적이고 저급한 수준의 용어사용을 지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진정으로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원한다면, 미얀마나 베트남, 쿠바 사례를 적극적으로 연구, 분석할 필요도 있다.

박근혜 정부도 대북협상에 있어 더욱 유연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먼저 남북대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북한체제를 자극하지 말고, 북한입장에 대한 고려 없이 선언적 제안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합의를 이루기 위해 작은 것부터 양보하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정부의 제안 중 생산적이고 바람직한 것들도 많지만, take it or leave it 등과 같은 일방적인 제안방식이나, 일관성 없는 대북정책, 북한문제를 국내정치위기 돌파를 위해 이용하는 등의 태도 등으로 인해 북한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현재는 어려운 남북관계를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효율적인 키를 박근혜 정부가 쥐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5.24조치 해제와 같은 과감하고 선제적인 대북정책으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 필요가 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국내정치적 이익을 우선으로 고려하며 북한문제에 접근해 나간다면 남북관계 개선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성과가 미미해서 지지도가 낮아지고 현 집권당의 정권재창출이 어려워지는 상황에 처한다면,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법으로 남북정상회담 등이 성사될 가능성도 있지만 이러한 계산으로 성사되는 남북정상회담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될 수 있다고 하겠다.

미국은 한반도 긴장완화와 평화체제 정착에 있어 여전히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로 남아 있지만 오바마 대통령 임기 내에 획기적인 대북정책 변화나 한미동맹에 기초한 대한반도정책의 변화를 가져 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여진다. 국내/국제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선언적 의미에서의 변화는 가능할지 몰라도 공화당이 상하양원을 장악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실질적인 의미에서의 변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또한 미국은 좀 더 거시적이고 일관성 있는 대한반도 정책의 청사진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현재 미국의 대한반도정책이나 대북정책은 장기적이고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대응한다기보다 그 때 그 때 사안에 따라 주먹구구식 대응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미국은 북한의 화해 제스처에 대해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성도 있다. 최근 뉴욕타임즈는 사설을 통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지하면 핵실험을 중지하겠다는 북한의 제의를 “암묵적 위협”이라면서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즉각 거절하는 미국의 대응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은 동북아가 미국의 국익에 정치, 경제적으로 사활적인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볼 때, 북한문제와 한반도 정세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짧게는 올해, 길게는 내년까지의 1-2년의 기간 동안의 한반도 정세는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 외교적 주도권을 잡으면서 외교적 성과와 리더십을 보여주고자 하는 북한(김정은)과, 뚜렷한 대북전략과 목표 없이 남북관계를 국내정치적 위기상황에 대처할 카드로 사용하기 위한 기회를 엿보고 있는 한국(박근혜), 대북정책에 있어서 중국문제와 국내정치적 요소를 먼저 고려해야 하는 미국(오바마)의 3자 조합이 어떤 식으로 이뤄지느냐에 따라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적어도 오바마의 남은 임기 동안 미국이 먼저 한반도문제나 북한문제에 대해서 의미 있는 이니셔티브를 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 글은 LA통일전략연구협의회(회장 곽태환) 주최 제 26차 통일전략포럼 발표문을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안태형 박사 프로필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학사, 석사

플로리다국제대학교 (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 국제관계학 석사, 박사

전 플로리다국제대학교 (FIU) 강사, 전 유씨얼바인 (UC Irvine) 객원연구원

현 LA 통일전략연구협의회 수석연구위원

박사학위논문 “위기의 정치: 대통령, 의회, 미국의 대북정책”을 포함해서 북미관계, 북중관계, 미국외교정책, 북한 외교정책 등에 대한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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