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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하루하루 생각나는 것들을 모아 조각퍼즐처럼 모아놓으면 언젠간 '나'를 완성할 수 있을까?

165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3/15
    봄날이 끝나다.(1)
    엉망진창
  2. 2005/03/15
    죽음과 수치에 무뎌진 사람들
    엉망진창
  3. 2005/03/14
    잊었던 몇가지(1)
    엉망진창
  4. 2005/03/07
    젠장...
    엉망진창
  5. 2005/02/12
    한동안 멍하니...(2)
    엉망진창
  6. 2005/02/05
    진짜...(1)
    엉망진창
  7. 2005/02/04
    옛날 생각(1)
    엉망진창
  8. 2005/02/03
    하루 적기
    엉망진창
  9. 2005/02/01
    정리
    엉망진창
  10. 2005/01/30
    간만에 쓰는 포스트
    엉망진창

봄날이 끝나다.

* 이 글은 Daybreak_님의 [봄날'' 을 보다가.] 에 관련된 글입니다.

봄날.
봄날이 끝났다. 보고 난 후. 그냥 한편의 하이틴로맨스 소설을 읽은 느낌이랄까? 한 쪽 구석으로는 순수한 감성이 약간이나마 살아있던 어린 시절에 순정만화나 소설을 읽고 난후 가슴이 찡해져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 동안 나도 사랑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 같다.
  요즘 딱히 빠질 만한 것이 없는 까닭도 있긴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1회부터 마지막회까지 챙겨 본 드라마가 봄날이 처음이다. 그 유명한 옥탑방 고양이서부터 아일랜드. 미사를 한편도 제대로 보지 않았던 내가 봄날에 유독 빠졌던 이유가 뭐였을까? 한동안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래도 봄날의 대사에서 나오는 인물들의 상처가 한낱 삼류 로맨스의 줄거리가 아니라 삶 자체로 다가오는 느낌 때문일랄까.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가슴 한 구석이 쓰리지 않은 사람이 없다는 점 때문에 그렇게도 봄 날에 빠져있었던 것도 같다.

  말하는 순간 사실이 되어버린다는 또 하나의 사실도. 언젠가 누군가에게서 사랑하는 연인들이 정말로 사랑하게 되는 순간은 "사랑한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부터라고 했던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런것 같다. 네가 신경쓰인다, 좋다라고 말하는 순간 정말 그렇게 되어버린다. 말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복잡했던 오만가지 생각들이 하나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는 느낌. 그런 것은 꼭 인간과 인간 사이문제 뿐 아니라 회의를 하다가도, 공부를 하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줄기차게 나오는 사실이다. 왠지 작가가 일상의 삶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잡아낸 한 가닥인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맘에 들었던 것도 있다.
  그러다가 후반부로 갈 수록 흥미가 떨어졌던 건, 내가 느꼈던 등장인물들의 아픔이 결국 작가가 그들의 내면심리를 세밀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라는 생각. 그리고 그럼으로 인해 정작 주인공의 내면심리는 덜 하게 다루었다는 점. 그래서 스토리 전개가 점점 지리해지고 감성 위주의 드라마로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트랜디 드라마로 자리지워지는 느낌 때문이었다.
결국 처음에 우려했던 대로 두 형제와 한 여자의 삼각관계에서의 갈등과 사랑으로만 작품이 위치해버리는 결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맺혀있던 상처가 다시 치유되는 모습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볼만하다고 생각했던 장면들 덕에 드라마에 나왔던 음악을 들으면 감상에 빠지는 것도 같다.

조인성고현정.jpg (273k)

 

 

그냥 그런 드라마. 다음번엔 좀 다른 고현정의 이미지도 기대해본다.

그나저나...이젠 빠져들 드라마도 없어졌군. 항상 10시쯤 집에 오면 보게 되던 드라마였는데...

뭐...또 다르게 가족들의 드라마 선택에 빠져들든지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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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수치에 무뎌진 사람들

* 이 글은 뎡야핑님의 [내 여자친구가 살해당했다면] 에 관련된 글입니다.

간혹 뉴스를 듣다보면 하루에 사건사고는 무수하게 발생하고,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죽음의 위협을 느끼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자고 일어나면 하루에 몇 백명씩은 죽어있고, 나는 그 소식을 아침을 먹으면서 듣는다. 그 때마다 내가 참 무섭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요즘 사람들은, 물론 나를 비롯해서 죽음에 참으로 무감각해졌다는 생각이다. 간혹 죽은 사람의 수치가 너무 많아서 도저히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때조차도 있다. 계속되는 우리 주변의 많은 수치에 무감각해진 것이 요즘의 현대인인 듯 하다. '어린왕자'를 좋아해서 가끔 빗대어 이것저것 생각해보니도 하는데, 죽음과 숫자에 무감각해진 요즘 사람들을 보면, 숫자로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는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적인 어른들이 그 정도를 넘어서 수치에도 무뎌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의아니게 요즘 전쟁영화 몇 편을 연달아 보는데, 대부분 영웅주의, 국가주의의 입장에서 앵글을 돌리는 영화이거나 혹은 전쟁의 참상과 비인간화에 초점을 맞추는 것들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전쟁이 정말 싫고 무섭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끔, 더불어 그래서 자유를 위해 싸우는 민주주의 국가의 수호가 얼마나 위대하고 고결한 산물인가를 우리에게 심어주기도 한다. 나는 그런 영화를 볼 때마다 전쟁의 참상을 얼마나 잘 표현했는가의 리얼리티적 요소와 함께, 전쟁이 나면 자살해버릴 것이라고 농담처럼 말하던 선배의 말을 떠올리고는 한다. 내가 죽는다는 것, 내 주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고 그 상상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위협적이고 공포스러운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 사람들을 제외한 불특정 다수의 죽음은 죽음 그 자체의 사실로만 다가오는 것 역시 아이러니하다.

  한 명이 죽는다는 것, 수십명이 죽었다는 것, 수 백명이 죽어가고 지금도 죽음의 위협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죽는다는 것, 내 가족이나 주변의 친구들이 죽었다는 것, 나와 관계된 여러 사람들이 지금도 죽음의 위협에서 피폐한 삶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로 굳이 환원시키지 않아도 충분히 끔찍한 일이고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다. 그럼에도 역시 이를 나의 일로 등치시킨 후에야 더욱 더 끔찍함을 깨닫게 되는 모습이야말로,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뎌진 일상을 살아가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상, 그 자체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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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었던 몇가지

#1.

3월이 되고, 이래저래 사람들의 소식이 전해져온다.

간만에 오는 연락에 여차저차해서 다시 싸이에 접속한 지 몇일간.

잊었던 사람들과 잊으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의 소식이 원하지않게 들려오기도 한다.

어쩌다 생각나는 것을 억지로 잊으려고 노력하면 할 수록

더 생각난다는 것쯤은 이미 예전에 알게 되었기에,

생각나면 생각나는데로 놔두면서 잊어가는 중이었는데.

 

한 동안 접어뒀던 사람의 모습이 계속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불편하다, 불편하다, 불편하다,,,

 

 

 

 

#2.

연쇄법

 

언제나 뜨거운 열기를 혼자 품기에는 너무 더워서

손 가득 움켜쥐던 뜨거움을

네 차가운 손 움켜잡아 따뜻함으로 맞바꾸던

그런 때가 있었다.

 

하지만 겨우 새 차가워진 내 손이

더 이상 열기를 나눠줄 수 없기에

혼자 움켜진 채 펼 줄 모르면서도

한 없이 서리는 냉기에 더욱 굳게 손을 닫았다.

 

손을 펴면 널 잡고 싶고,

널 잡으려면 봐야하고,

널 보려면 내가 다가서야 하고,

내가 다가서려면 마음을 열어야 하고ㅡ

마음을 열면, 보고 싶어지고 생각이 나고,

생각이 나면 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니까.

 

난 다시 아무것이라고 하기 위해서 생각을 잠그고,

마음을 닫고, 한발자국 물러서고

눈도 감고, 다시 손을 꼭 쥐고 펼 줄 모르고.

 

그래서 움직이지도 못한 채

두 손 꼭 쥔채 서 있기만 하는 참 바보같은 이야기.

 

 

 

#3.

옛날 생각 하나 -

 독한년이란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철 없는 것이란 소리를 듣고 난 다음 단계 정도였던 것 같다. 매년 명절때마다 친척들이 모이면, 사람 하나 잘난 놈이나 나쁜 놈으로 둔갑하는 건 순식간이다. 그렇게 화제거리에 잘 오르는 인간 중 하나가 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집안의 기둥이자 희망으로 곱게 곱게 자라던 내가 갑자기 공부는 때려치고 매일 데모질만 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 무렵, 우리 어머니는 눈물도 많아졌고, 아픈 곳도 많아졌다. 그리고 친척들의 잦은 잔소리도 공공연한 정당성을 띠게 되었다.

  그 잔소리 중 가장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건, 어머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청주에서 올라온 고모할머니가 진득히 내 손을 붙잡고 울면서 했던 말. 철 좀 들으라는 내용의 말이었는데, 아직까지 잊지 못한 말은 언제까지 네 어머니 피를 빨아먹으면서 살꺼냐는 말이었다. 그건 부정할 수 도 없을 만큼 정확한 말이었기 때문에, 당시 난 정말 아무말도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나서 철이 없는 단계를 넘어서는 말이 독한년이었다. 하필이면 내가 잠깐 집을 비운사이 어머니가 병원에 신세를 지시는 바람에, 말많은 집안에서는 또 한번 내 이야기가 돌았다. 데모에 정신나간 년, 지 엄마가 죽어도 눈 깜짝 안할 독한 년이라나... 뭐...덕분에 평생 먹을만한 나쁜년 시리즈의 욕을 바가지로 잡수셨으니, 나도 장수는 못해도 제 명에는 살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뭐, 이런 종류의 말은 꽤 여러번 들어서 이젠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편이다. 내가 어렸을 적 일을 기억할 때부터 들어왔던 말이기도 하니까. 한번은 아버지를 따라 회사수련회에 놀러갔다가,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과 장을 보러 간 사이에, 내가 발을 다치게 된 적이 있었다. 아직도 흉터가 남아있을 정도로, 줄줄줄 흐르는 피를 어찌할 바를 몰라서, 옆에 있던 언니들이 더 당황해했다. 그런데 그 때 기억에 온다간다 말 없이 나를 언니들 틈에 놓고는 사라져버린 아버지가 꽤 미웠던 모양이다. 당시 아버지 친구분들이 아버지께 전하던 말이, 제 애비가 어디갔냐고 한 마디 묻고는 울지도 않고 발을 움켜쥐고 앉아서는 줄줄 흐르는 피를 계속 쳐다만 보고 있는게 어찌나 섬뜩했는지 몰랐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한 바가지는 안되더라도 꽤 많은 피를 흘렸는데, 내 발과 손에 모인 피가 응고될 때까지 아버지가 오지 않아 꽤 한참을 발을 움켜쥐고 앉아있었던 건 같다. 그 때부터 아버지 친구분들께는 내가 독한년이라고 불렸다니 나름의 역사가 있긴 한 말인 듯 하다.

   몇일 전에 감기도 잘 걸리고 몸도 많이 안 좋아서 비틀거리면서도 바득바득 공부하겠다고 나가는 나를 보고 어머니는 나보고 또 독한 년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들은 말이라 웃고는 도로 들어와서 그냥 자리를 펴고 누워 며칠을 앓았다. 독한 년이면 몸도 독해져야 하는데, 이 큰 허우대에 허약이란 말은 붙이기가 심히 민망스러운데 말이다. 봄이 되면 또 목이 아프고, 5월 쯤 되면 한동안 목소리가 안 나오겠지? 하아... 내 몸에 주문을 외워야겠다. 독해져라, 독해져라, 짠!

 

 

#4.

간만에 만난 친구. 그래서 간만에 웃기도 하고 정말 기쁜 일이 생기기도 하고.

너라도 좀 재미있게 살아야, 나도 사는 낙이 좀 생길 것 같다.

맨날 뭘해야 좋겠냐고, 뭘 해야 할지 앞길이 안 보인다고 투정부리던 녀석이

하나 둘 씩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계획을 세우고, 그걸 이뤄내고,

그리고 아직은 억지 웃음이지만, 그래도 내 앞에서 웃어간다.

 

아...제발 내 주변에 좋은 일들만 생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모습보면서 나도 덩달아 웃고 좀 살 수 있게...

근데, 정말 네 말대로 내가 즐겁지 않아서 죄다 그런 사람들만 보이는 걸까?

 

너도 결혼 안하고, 나도 할 생각 없고. 그럼 나중에 같이 살아도 되겠다.

에이...그러다 너에게 좋은 사람 생기면 우선은 꼼꼼하게 내가 따져주고,

됐다 싶으면 평생 행복해서 웃다가 죽기를 빌어주마. ㅋㅋ

그 전까지는 내가 언제든 네 편이 되어줄께.

힘내. 지금 하고 있는 네 생각들. 부모님이 반대하실거야 당연하지만

난 네가 정말 대견스럽기까지 하니까 언젠간 부모님도 알아주실꺼야.

 

아! 그리고 아웃백도 데려가줄께..ㅠ.ㅠ

 

 

어느 순간 비슷해져버린 우리.

평생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가슴 속 뭉친 실타래 하나를

너한테 풀어놓았더랬지.

생각해보니, 그건 내 옛날 남자친구한테도 말하지 않았던 거다.

너 빼고는 아무한테도.

넌...이모님께 다 말했을 걸 알고 있지만..

 

아...이모님 생일이었는데, 이 녀석

이모 선물 잘 샀나 모르겠군. 헉...이모님 생일을 내가 씹어버렸군.

어서 문자를 날려야겠다.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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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잠을 자야할 때를 놓치면 잠을 못 자는 경우가 있다.

밥 때를 놓쳐서 밥을 먹지 않는 경우와 비슷하다.

이런 경우에는 후유증이 남기 마련이다.

지금 잠을 자지 않고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으니,

아마 평소 때처럼 일어나는 것은 힘들 것이다.

이렇게 되면 평소 생활 사이클은 무너지기 마련이고,

난 또 그 사이클을 되잡기 위해 이 삼일간은 고생을 해야할 거다.

젠장 젠장...

 

아침에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몇 일을 아침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이유로 운동을 못 하고 있다.

몇 일 전에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꼭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역시 쉽지 않다.

 

원래도 뜀박질을 잘 못하는 타입이고, 선천적으로 기관지와 폐가 기능이 약하다.

근데 엊그제 배가 더부룩해서 제자리 뛰기를 하는데

2분도 못하고는 숨쉬기 운동으로 방법을 바꿔야만 했다.

힘들고 숨이 차는 정도가 아니라 호흡이 매우 곤란해서 2분 뛴 대신 5분동안

숨을 쉬지 못한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젠장 젠장...

 

운동방법을 바꾸는 것과 생활패턴을 다시 조정해야 하는 문제.

거의 절대절명의 생존위기와 함께 다가오다.

아...예전엔 아무리 못 뛰어도 이정도는 아니였는데.

젠장 젠장...

 

 

하고 싶은게 하나 둘씩 생겼다.

물론 지금 하는 일도 최근 내가 너무 하고 싶은 일이였기 때문에

몸은 고단한건 사실이지만 대단히 흡족해하고는 있다.

그런데 사람이란게 참으로 간사해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나면 또 다른 하고 싶은 것이 생기고

그 외에 것들이 하나 둘 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난 욕심이 많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짐짓 공상에 빠진 나를 보고 있으면 난 아직도 17,18살 뭐든지 가능할 것 같은

그 때에 아직도 살고 있는 것 같다.

 

꼭 해야겠다는 것들이 생겼다.

생각만해도 벅차오를 만한 것.

지금의 이 시간과의 싸움이 끝나면,

 

 

 

 

-나는 아직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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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멍하니...

그냥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는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것들이 한꺼번에 덮쳐오면

울수도, 웃을수도 없이 그저 멍하니 앉아있게 된다.

 

나도 날 제발 그만 흔들어놓으라고

더 이상 미치지 않게 놔두라고 말하고 싶은데

말할 대상이 없다.

이것저것 엮여서 도저히 풀 수가 없어 보인다.

누구도 해결할 수 없는

정말 내 문제다.

그래서 너무 어렵고 힘이 든다.

 

 

문득 이러다 정말 미치면 어떻하지란 생각을 했다.

여기서 한 발자국만 나가면 정말 걷잡을 수 없을 것 같다.

정신을 잃는 건 순간이고, 돌아오기 힘들 것이란 걸 알기에

선 밖으로 나가지 않고, 최대한 나를 방어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불쌍하다.

하지만 울지는 않는다.

눈물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인걸 알기 때문에.

 

그래, 난 싸가지가 없다.

그러니 제발 나에게 싸가지를 강요하지 말아라.

싸가지를 갖추기 위해 애쓰는 나를 발견할 때면

그 순간만큼 내가 혐오스러울때도 없으니.

그나마 지탱하고 있는 나에 대한 방어막을 붙잡고 있으려면

난 나를 지독히도 사랑해야만 한다.

 

아직은 틀을 깨고 나갈 힘이 부족하다.

그러니 아직은 온전한 모습으로 나를 사랑하고 보호해야 한다.

이기적이라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유보상태.

누군가 정지해있는 모든 것은 독을 품고 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나는 지금 독을 품고 있는게 분명하다.

 

 

나는 오늘로 입을 닫는다.

지금은 이것이 최선의 결정이다.

마음을 닫으려면 입을 닫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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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미치기 일보 직전.

 

 

 

 

 

아...진짜 미쳐버릴 것 같아서 무섭다.

 

 

 

 

 

그러니까 제발 날 더 흔들지 좀 말아줘

 

안그래도 난 지금 충분히 힘들고 미칠 것 같단 말이야.

 

 

 

 

살고 싶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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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생각

* 이 글은 행인님의 [폭력의 기억은 핏속에 남는다] 에 관련된 글입니다.

글을 읽다가 나도 내가 학교 다닐 적을 생각해봤다.

내 경우에는 여학생이란 특성 상 조심히 다루려는(?) 경향이 존재했고,

학교에서 시키는데로 착실하게 살던 범생이였으므로 별다른 기억은 없는 편이었다.

몇 가지 있다면, 중학교 1학년 때 영어를 외우지 못해 엉덩이를 혹사시켜야 했던 기억,

혹은 고등학교 때 부모님 문제로 담임 말을 씹어서 몇 번 혼난 정도.

아!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 한 분이 나 때문에 수업시간에 나가시고는

사과할 때까지 안들어오겠다던 일.

마지막 국어선생의 경우만 제외하면 나머지는 다 돈 때문에 벌어진 일들인 것 같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단기기억 하나는 자신있었으나,

미리 학원에서 영어를 배워온 아이들과, 알파벳을 처음부터 익혀야 했던 나와는

시작부터가 달랐기에 난 영어시간마다 글을 못 외워서 한동안 엉덩이에 불이 났었다.

아마, 덕분에 그 이후로 영어에 불이 나도록 공부를 했지 싶기도 하다.

 

그리고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은 체육 선생이었는데, 술을 좋아했고, 코도 항상 빨갰다.

그래서 우리는 분명 담임 책상 어딘가에 술이 숨겨져있고, 쉬는 시간마다 한 모금씩

마시고 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언제가 담임 없는 틈을 타 진짜 뒤져봤던 적도 있었다.

물론 술은 나오지 않았다.

 

 고1 때 담임은 돈을 무지하게 밝히는 인간이었다.

담임에게 사랑받고 보살핌을 받는 아이들은 부모님이 운영위원 회원이신 경우였고,

공부를 잘하더라도 반항적이거나 돈이 없으면 열외 대상이었다.

물론 공부도 못하고 돈도 없으면서 말도 안들으면

운좋으면 무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남아나지 못했다.

 

 

 



한번은 일명 동아리 사건이 있었는데,

엄마가 운영위원인 몇 몇 아이들이 봉사동아린가 음악동아리를 들어서

담임이 동아리를 바꾸라고 강요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자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했었는데,

나중에서야 동아리가 목적이 아니라 실은 돈이 목적임을 알게 되었던 일이었다.

 

눈에 보이는 담임의 행동은 학부모와 진로상담으로 확장되었는데,

내 경우에는 3월 모의고사 결과가 나오자마자 바로 아버지 직장으로 담임이 직접

전화를 걸었다.

입학 때보다 성적이 떨어졌다며 걱정되듯 부모와의 면담 일정을 잡았다는데,

나중에서야 어머니께 들었던 이야기지만 내 고등학교 1년이 와인 한 세트로 무사하게

지켜졌다는 사실이었다.

아버지가 별 준비없이 담임을 만나러 갔다가,

학교에서 나와서 술을 사들고 도로 학교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변했던 것은 여러가지인데,

하나는 담임의 태도가 조금 바꼈던 것(하지만 일정시기가 지난 후 약발은 금새 떨어졌다)

다른 하나는 그 이후로 우리 부모님은 학교에서 오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몇 주일을

머리를 싸매고 계시는 것.

또 다른 하나는 그 이후로 난 절대 부모님을 학교에 가시게 하지 않았던 것이다.

 

고3때 대학진로 때문에 숱하게 부모님이 오시던 그 때에도

난 결코 부모님을 모셔가지 않았었다. 나 혼자 잘 할 수 있으니, 걱정마시라고.

그 때문에 정말 무서운 담임에게 대든 적이 있었는데,

 3월 말 경 부모님 중 한분이 운영위원회에 들어가셔야 하니 학교에 오시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어머니가 아프셔서 오실 수 없었고, 아버지도 바쁘시니 학교에 오시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운영위원회에 들어가면 사립학교이니 한 달에 못내도 십만원은 기본으로

걷어야 하는 일이 나에겐 퍽이나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이러한 상황을 담임에게 말하고, 저희 부모님은 운영위원회에 들어가실 수 없다고 설득을

하는데, 도대체 설득이 불가한 사람이라 난 결국 그날 오후 수업을 하나도 못 들어갔다.

무섭게 부라리는 눈에도 고개를 젖히고 고집을 피우는 내 상황을 당할 수 없었는지,

담임은 결국 두 시간 정도만 나를 교무실에 세워놓고는 알겠으니 올라가라고 말했다.

5교시가 시작될 때쯤 불려가서 6교시가 끝날 때 즘에 교실로 올라갔는데,

다행히도 종교 시간이라 모두가 강당에 가있을 때였다.

그 때 화장실로 달려가서 정말 서럽게 울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무서운 담임을 이겼으니,

역사에 기록될 일에 기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서럽게도 울었는지...

어쨌든 그 이후로 담임은 나에게 한번도 부모님을 모시고 학교에 오란 소리를

해 본 적이 없으니 내 고집대로 되긴 된 것이었다.

 

그리고는 별다른 기억은 없는 편이다.

 

내 경우는 물리적 폭력에 의한 것보다는

돈에 의한 차별과 정신적 폭력이 핏속에 더 많이 흐르고 있다고 해야하는게 더 나을까?

 

 

 

오늘 문득 내가 선생이 된다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리고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할까란 생각을 한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마침 불로그의 글을 보면서 잠깐 내 옛날을 떠올리며...

난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혹여나 내가 그러고 있을 것 같아서 무섭다는 생각을 했었다.

혹여나 내가 느낀 폭력의 기억이 그대로 혹은 증가되어 되물림될까봐.

 

세상에서 그게 제일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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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적기

오늘 하루동안 내가 한 말

 

 

다녀오겠습니다.

 

돈까스주세요~

 

다녀왔습니다.

 

 

 

 

 

간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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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1.

하루, 본의아니게 짐 정리를 하느라 거의 초죽음 직전이다.

방은 좀 좁아졌고, 덕분에 낡은 책장 하나도 버렸다.

그래서 책상 위에 책들이 너저분하게 쌓여있고,

그 동안 이래저래 모아 놓은 서류들과 책들이 내 책장에 빼곡하게 놓여있게 되었다.

그래도 가까운 거리로 이동하게 되어서 생각보다 참 빨리 끝난 것 같다.

세상도 좋아져서 인터넷이나 전화, 전기, 수도 등등 모든게 다 금새 완료되는 걸 보면.

옷들이랑 이것저것 정리해야 할 것들은 많은데,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 해야될 것 같다.

 

아...집에 있던 잡다한 이러저러한 물건들도 다 버렸다.

ㅋㅋ 그래서 여름마다 물고기들 집청소 해줘야 하는 수족관도 버리고,

가끔 생각날 때 먹이를 주던 물고기들도 가게에다 그냥 키워달라고 줘버렸다.

열대어라 물 온도도 맞춰줘야되고, 때 되면 산소도 갈아줘야되고, 밥도 열라 비쌌던 건데

내 버려서 한편으로는 속이 무진장 시원하다.

 

근데 한편으로는 물 속에 살던 놈한테도 정이 붙었나 물고기가게에서 비슷한 놈들이랑

섞어놓았더니 구석에서 혼자 놀고 있길래 한참을 바라보다가 나왔다.

못난 놈. 이제는 좋은 주인 만나서 제 때 밥 먹는 생활하거라~

아...그리고 싸이키도 버리고, 원래 내 방에 있던 컴퓨터도 버렸다.

한 동안 문서 쓸일도 없을테니, 뭐 그런대로 참을만도 할 것 같다.

개까지 내어버리지 않았으니, 다행이지.

 

 

 

 

 



05.1.31 추운 바람을 뚫고 새롭게 거처를 옮긴 후,

불타는 정리벽으로 신들리듯 정리한 책상을 기념으로 한 장 찍다.

곧 다시 돼지우리가 될 내 책상.

 

 

 

#2.

 짐 정리를 하다가 이러저러한 옛날 것들이 다시 눈에 띄기 시작했다.

난 소심한 성격이라 초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받은 쪽지부터

농활 때 받은 마니또 쪽지까지 다 모아놓았다.

이젠 한 상자 가득차고도 넘쳐서 이걸 버려야 하나, 아님 상자를 또 하나

만들까 한참을 고민했다. 결론은 그냥 넘치게 방 한구석에 놔뒀다.

 

성적표도 다시 발견했는데,

한 때 재수없다고 백번은 되뇌이던 담임들이 종합평가란에는

훌륭한 미사여구를 수도 없이 늘어놓았는지,

읽어보다가 한참을 웃었다.

나에게 예능기질이 있어서 사람들 앞에서 춤과 노래를 잘 한다니...

국민학교2학년 때 성적표에는 이러한 기질을 잘 살려 교육하라는

담임의 당부말까지 있다.ㅋㅋㅋ

 

고등학교 때에는 나에게 사회과학에 흥미가 많다고 했으니,

이것을 진작에 잘 알려줬더라면,

지금의 전공에 목눌려 살지는 않았을 것 아닌가.ㅋㅋ

하긴 그 때 담임이 썼던 사회과학이 마르크스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였을테니.

별반 다르지 않을 수도 있었겠다.

 

 

 

#3.

 이것저것 정리를 하다가.

만물상인 우리집에 찾다보니 지갑도 하나 나오길래 지갑을 바꿨다.

잃어버린 것들은 참 많은데, 지갑을 정리하다 늘 가지고 다니던

지하철 패스권 한 장을 잃어버렸단 사실을 알게 되고는 내내 기분이 착잡하다.

 

그걸로는 지하철을 탈 수 없는 다 쓰고 남은 종이짝일 뿐인데,

그래서 이미 오래전에 버렸어야 할 물건인데.

그냥 가지고 다니라면서 별 의미없이 그걸 나한테 줬던 사람의 말과

패스권에 찍힌 날짜때문에 차마 버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오히려 잘 됐지란 생각도 한다.

버릴 수 없는 물건이었는데,

이미 버려졌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대로 지나다보면 잊혀질 수 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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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쓰는 포스트

#1.

간만에 쓴다고 하긴 했으나, 달력을 보니 이틀만에 쓰는 거다.

하긴... 블로그 폐인이 이틀이나 쉬었다 포스트에 글을 쓰는 것이니,

가히 죽었다 살아난 수준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ㅋㅋ

아...잠을 자야하는데, 새벽이 되면 될 수록 정신이 맑아져오니...

아직도 못버린 이 버릇을 어찌하면 좋은가. 쩝.

 

 

 

 



 오늘 하루종일 집에 있었다.

집에서 할 일도 있고 날씨가 안 좋아서 어머니가 나가지 못하게 했던 까닭도 있지만,

쪼맹씨가 하루종일 아파하며 누워있어서 계속 신경이 쓰여서 그랬다.

먹을게 있으면 재빠르게 달려와 먹던 먹보가

아프니까 누워만 있고 제대로 걷지 못해서 마음이 너무 무겁다.

더구나 나 때문에 아픈 것 같다.

 

어제 집 밖에 데리고 나갔다가 쓰레기를 주워 먹길래

한참 실랑이를 벌이다가 바닥으로 떨어뜨렸는데

착지가 잘못되었나보다.

그 순간에 내 손에 독기가 있었으니, 충격이 컸을수도 있고.

하아...주말동안 지켜보고 차도가 없으면

엑스레이를 찍어봐야겠다고 한다.

 

아...제발 무사하길

미안해. 미안해..

 

몸집이 크고 힘이 센 것으로

작은 생명에게 폭력을 가하다.

아...어떻해.

 

 

#3.

아...또 뭔가 쓸 말이 있었는데...뭐더라.

아...요즘엔 너무 많은 지식들이 쏟아져 들어와서

내 기억력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있다.

그런데 매번 실패다.

된장...된장...

 

 

#4.

 갈대

                    -신경림

 

언제부터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 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요즘에 자꾸 입속에 맴도는 시.

 

 

#5.

글을 다 쓰고 자려는데,

고양이 두 마리가 내 방 창문 앞에서 울고 있다.

둘이 싸우나보다. 서로 한 소리씩 앙칼지게 우는데,

소름 만빵.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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