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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하루하루 생각나는 것들을 모아 조각퍼즐처럼 모아놓으면 언젠간 '나'를 완성할 수 있을까?

207개의 게시물을 찾았습니다.

  1. 2005/07/03
    어중간한 시간
    엉망진창
  2. 2005/06/17
    남산 나들이(1)
    엉망진창
  3. 2005/06/10
    비가 온다.(2)
    엉망진창
  4. 2005/05/29
    무슨 말이 필요해...
    엉망진창
  5. 2005/05/25
    별은 항상 내려와(2)
    엉망진창
  6. 2005/05/12
    그냥...(4)
    엉망진창
  7. 2005/05/10
    두루미가 생각나서^^;;
    엉망진창
  8. 2005/05/07
    드디어, 짤렸다.(7)
    엉망진창
  9. 2005/04/28
    기다리는 것, 기다리게 하는 것(2)
    엉망진창
  10. 2005/04/12
    그렇게 그렇게(1)
    엉망진창

비가 온다.

비가 온다.

어쩐지 낮에 숨 쉬기도 힘들만큼 어지럽게 해가 내리쬐고, 야산 나즈막히 개구리들이 우는가 싶더니

저녁이 되니 비가 온다.

그러고보니 ... 누가 그렇게 노래를 기가 막히게도 지어놨을까.

아들,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울었다는 개구리 대가족 이야기.

 

그러고보니 대학에 들어와서 4학년까지 매년 여름에 개구리를 봤던 것 같다.

오늘 옆산에서 들려오는 정체모를 대규모 울음소리에 개구리인가 싶다가

문득 개구리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농활가는 곳마다 물과 공기가 좋은지 조그만 청개구리를 보곤 했는데,

이 조그만 놈 뒷다리를 어디에 붙여먹을까 싶어 놔줬던 고것들이 그리워지는게

점점 서울 살기 싫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곤 한다.

 

 

제길...비가 온다. 안 그래도 마음이 심란한게 방황을 빙자해 여행이나 갈까 했는데...

비가 그치고 나면 마음도 좀 안정되고 괜찮아질까?

 

하아...

 

생각해보면 이 맘 때즈음엔 항상 뭔가 일이 터져 나를 곤혹스럽게 했던 것도 같다.

오늘 하루는 더더욱 작년 이 때가 생각나 잡생각까지 더해지는게

한편으로는 그렇게 서운했던 작년 일이 차라리 다행이었던 것도 같다.

작년에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기억이었다면, 지금쯤 그 행복했던 기억에 몸서리치며 울고있을테니

차라리 그 때 서운하고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잡생각은 7월에도,8월에도,9월에도...

내년 이 맘때까지도 계속 될 것 같아서 걱정스럽기도...젠장

안 그래도 충분히 신경쓸 것들이 많은데 말이다.

 

왜 인간은 한 번에 여러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걸까?

아니 나란 인간은 어떻게 이렇게도 동시에 여러 생각들을 끄집어 낼 수 있을까?

마음 속에 수성을 10단짜리 여러개로 쌓아 놓고는 도무지 허물어 낼 생각을 하지 않으니,

가히 어처구니가 없다고나 하려나...쯧쯧

 

 

이게 다 비가 와서 그렇단 생각.

비가 오면 마음도 처벅처벅 해져서는 다 마를 때까지 이것저것 계속 생각나기 마련이다.

 

 

비가 와서 잡생각들.

어쨌든 생일 축하한다.

항상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늘상 혼자이고 싶은 날이지만.

 

내일은 맑으면 좋겠다.

흐린 뒤 맑음.

 

 

 

 

 

 

p.s)한동안 고민하고 관심 두었던 여성주의에 대한 내 시선도 당분간은 거둬두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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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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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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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항상 내려와

 

옛날 생각이 참 많이 났다.

지나간 옛 일들을 후회하거나 떠올리는 것이
얼마나 소용없는 일인가를 알면서도 아련한 추억쯤으로 여기면서
다시 옛 기억들을 떠올리는 것도
역시 인간인가 한다.

많은 것들이 변해있고, 내가 있을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들도 많은데
여전히 그대로인 것들도 있고, 내가 그로 인해 웃을 수 있었던 것들도 존재한다는 사실.

예전에 건물 앞에서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봤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이젠 그 시간을 증명해 줄 것은 어둡게 나온 핸드폰 사진 한장 뿐.
나머지는 그 시간을 공유했던 사람들의 머리속에서만 아련히 존재할 뿐이다.
하긴, 굳이 증명할 필요는 없는 것이기에
그냥 내 머리속에서 흐릿한 추억쯤으로 남겨두면 되는 것이다.



오늘은 그 때 보았던 하늘의 별이 그리운 날이었다.
다시 시꺼먼 도심의 하늘에서 별을 찾으려고
시멘트 바닥 한가운데 돗자리를 깔고 누워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그런 일이 있을까


-별은 항상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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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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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가 생각나서^^;;

* 마녀 키키 & 한마음님의 [어느 한 교사의 이야기 :"선생님, 제발 저를 사랑하지 말아 주세요"] 에 관련된 글.

우연히 글을 읽다가, 이렇게 좋은 선생님이!란 생각이 들어 몇 자 적는다.

내가 고등학교 때 이런 선생님이 한 분만 있었어도, 학교에 대한 내 생각도 어느 정도 달라져있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함께 말이다.

 

내 경우엔 학교에 있기 싫다는 생각은 애석하게도 해 본적이 없다. 그렇다고 학교가 좋았다는 의미도 아니다. 싫지도, 좋지도 않은 상태.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요구하는 질문들은 있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지식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학교는 당연히 다녀야 하는 곳이였고, 정해진 시간 대에 있어야 할 곳이었다.

 

 무언가 꼭 이루어야 할 목표도 없었던 것 같다. 때 맞춰 돌아오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에 이리저리 치이고, 하고 싶은 것들이 점점 없어졌다. 수업시간 40분, 45분은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가공할 만큼의 인내를 발휘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이었고, 가끔 진로와 관련해 상담할 때 의례적으로 대는 몇 가지. 그것은 내가 학교와 이야기하는 몇 안되는 수단 중 하나였던 것도 같다.

오히려 학교에 있기 싫어 조퇴증을 달라고 이야기하는 학생이 약간 부러워지기까지 했다.

 

 

이 생각을 하다가 얼마전에 두루미가 한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학원에서 시험준비 때문에 암기과목까지 설명을 해 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하필이면  망할'도덕'을 한 시간 맡게 되었던 적이 있었다. 자신이 주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무엇이냐는 내용이었는데, 나는 교과서에 나온 암기적 지식들을 설명하는 대신에 각자 돌아가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나 꿈이 무엇인지 말해보자고 했다. 아이들은 이전의 내가 그러했듯 괜찮은 직업 몇 가지를 말하고 있었다. 뭐, 예를 들면 외교관, 통역관, 국사 선생님, 국어선생님 등등

 

그 중에 두루미는 자긴 꿈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얼마 전에 선생님에게 꿈이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혼났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내용은 정말 잘 할 수 있는 것들은 학교나 학원에서 찾기 힘든 것들이 많은데, 하루 반 나절 이상을 같은 자리에 앉아 책만 들여다보면서 어떻게 꿈을 찾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러니 꿈이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는데, 왜 꿈이 없다고 혼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공감했다. 그래서 두루미에게는 아마 선생님은 네가 꿈이 없다는 말보다 네 특유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화가 났을 수도 있었겠다는 사족을 붙여주며, 내 친구 이야기를 해줬던 것 같다.

요는 꿈은 없을 수도 있고, 어쩌면 없는게 당연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하고 싶은 걸 찾아가는 노력이 아니겠냐는 뻔한 결말. 그리고 난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찾아가는 중인데, 아직도 방황 중이라는 말까지도.

 

원장의 눈초리를 피해 수업을 대충 마무리짓고, 나와서는 내가 해 준 말이 과연 도움이 되었을까 뭐 등등의 생각이 들었다.

 

두루미는 이제 중3 여학생. 성적도 그리 좋은 편도 아니고, 얼굴도 그리 고운 편도 아닌 보통의 평범한 학생이다. 지금의 나처럼^^; 보통 그 자체.  

두루미는 몇 달후면 이제 고등학교에 가게 될 것이고, 자기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될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두루미에게 놓여있는 상황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아가는 꿈찾기의 과정보다는 입시를 생각해야하고, 수능준비를 하면서 내신에도 신경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함께 웃으며 놀 수 있는 친구보다 노트 필기를 빌려주기 꺼려하고 서로 눈치를 살피는 경쟁상대가 주변에 더욱 많다는 기억이 두루미에게 학교가 더욱 싫다는 생각이 들게 할까봐 그게 걱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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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짤렸다.

공부를 하겠다고 도서관에 박힌지 얼마 안되서, 하루에 세 마디 하는 생활이 싫어져서

의자를 박차고 사교육에 진출한지 2개월만에 짤렸다.

무한한 노동력 착취에 혹독했던 비정규직 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청년실업의 대열에 끼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한 생각으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파트타임으로 애들을 가르치고 나머지 시간에는 내 공부를 할 것으로 계획했었다. 학원에 출근하는 시간은 오후 3시, 퇴근은 9시 반으로 내가 입을 열고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으로, 살아있는 것을 느끼기에는 적절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집에서도 교통이 좋아서 임금은 낮지만 용돈 벌기에는 적당한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내 생각은 출근 첫 날 부터 삐끄덕거리기 시작했다.

 

면접을 볼 당시에는 잘 몰랐는데, 막상 첫날 출근을 해보니 강사들이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고

이리저리 청소를 해대는 것이 아닌가.

나에게 인계를 해주기 위해 앉아있는 전임 선생에게 넌지시 청소를 해야되냐고 물어보니,

자세한 이유는 나중에 친해지면 해주겠다면서 청소를 해야한다고 했다.

물론 나중에 알게 된 이유야 별거 없었다. 건물 관리인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더 지불하느니 강사들에게 싸게 청소를 시키는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청소는 물론 시작에 불과했다.

 

한 달정도 묵묵히 일을 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을 했다.

길에서 우연히 다른 파트 선생들을 만났는데, 어제 사회 파트 선생이 일한지 한달만에 짤렸다는

소식을 전해주는 것이었다.

사회 선생이 짤린 이유야 나중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원장이 평소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고, 그 마음에 들지 않은 이유가 유독 퇴근시간을 칼같이 맞춰서 갔기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비정규직 인생이 위태로운 줄에 매달린 인생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한낱 파리 목숨조차도 되지 않는 대우에 치를 떨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내가 가졌던 분노와는 별 다르게, 이 사실은 다른 강사들에게도 적용되어

원장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 짤릴 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함께 짤리지 않기 위해

성심성의껏 일을 하게 만들었다.

불행하게도 원장의 계산은 정확히 맞아들어갔고, 4월 중간고사 기간에 들어서면서

선생들은 새벽 2시까지 아이들을 쉼없이 굴리는데 동조했다.

새벽엔 택시를 타고 집에 갔다가 오후 1시에 출근해서 또 새벽2시까지.

전임선생들은 그렇게 2주일을 반복했던 것 같다.

일요일 휴일도 없이 월요일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계속 말이다.

 

당연히 강사들의 불만은 계속 쌓일 수 밖에 없었지만 분출되지는 못했다.

애석하게도 선생들은 세 패 정도로 나눌 수 있었다.

크게는 원장의 애제자들과 제자가 아닌 피고용인, 그리고 후자는 또다시 전임과 파트직.

나야 물론 가장 불안정한 자리인 제자도 아닌 피고용인으로서 파트직에 속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야 어느 누구하나 모자랄 것 없는 좋은 선생들이었지만

업무 분담과 권한에 있어서는 확연히 차이가 났다. 사람이 많으니 제법 말도 많았다.

 

권한의 차이는 확실히 어느곳에서나 발생했다.

시험기간에 아이들이 '빛나리 아저씨'라고 부르는 분이 시험감독을 도맡아했다.

물론 어디에서나 악역은 필요하다지만, 도가 지나칠 정도로 아이들 위에 군림했고, 말을 듣지 않는 아이는 때렸다. 수업 시간에 조금이라도 떠드는 기색이 보인다하면 밖에서 창을 통해 지켜보고 있다가 문을 벌컥 열며 아이들을 끌고 나갔다. 나는 그것이 너무 싫어서 한번 따로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물론 반응은 그럼 왜 애들이 시험기간인데도 소란스러워보이냐는 태도였고,

수업시간에 벌컥 문을 여는 일은 수그러들었으나, 멀뚱하니 밖에서 내 수업을 지켜보곤 했다.

 

빛나리 아저씨의 정체는 어느 학생의 아버지라는 이야기에서부터 점점 밝혀져

원장 부부가 경영하는 다른 두 곳의 학원 가운데 초등부 선생님이며

더욱이 여자 원장의 친 오라버니라는 사실까지 나왔다.

알고보니 나는 감히 대들수 없는 상대에게 눈을 부라린 셈이었다.

내가 순응하지 않았던 댓가는 물론 아이들에게 왔다.

단체기합을 주며 체벌을 가하는 기겁할 만한 모습에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했던 일까지 있었으니.

 

내 임금을 결정할 당시 학원이 많이 어렵다는 변명을 늘어놓던 원장 뒤에는

가까운 곳에 영어와 수학학원을 포함해  총 세 곳의 학원을 운영하고 있었고,

그 곳에는 각각 친오라버니, 올케, 외사촌의 친척과 아끼는 제자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으니,

도서관을 박차고 나간 선택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드디어 짤리게 된 오늘, 원장은 파트선생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해 놓고 월급봉투를 주며

학생들이 시험을 많이 못봐서 인원이 적어졌다.

그래서 학생수가 적으니 반을 줄이고 전임으로 구할 예정이다.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 되풀이했다.

다른 파트 선생님들과 함께 일괄처리되어 학원을 나서면서 다른 파트 선생님은 오히려 그만두게 해줘서 얼마나 다행이고 고마운지 모른다는 말을 했다.

내심 나 역시도 그러했던 것 같다.

 

내가 짤리게 된 것을 뒤늦게 안 전임 선생님은  금방 전화를 해서는

몇몇 선생님들도 이제 그만두고 다른 자리를 알아보겠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또 다시 그 자리를 채우게 될 누군가를 생각하면서

연신 제길 제길을 외쳤다.

 

 

 

쓰다버린 치약들 셋이 마지막 혼신의 힘을 다해 힘껏 짜이고 나서는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주린 배를 채우고 집으로 각기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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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것, 기다리게 하는 것

간만에 블로그질을 시도해본다.

그런데 꽤 피곤해서 오래 못가지 싶다.

 

한동안 싸이를 살려놓았다가 다시 폐쇄해놓았다.

허상의 인터넷 상의 공간을 딴에는 관리를 해야 하는 까닭에 이래저래 귀찮은 것들이

몇 가지 존재하기 때문에 그랬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싸이에  빠져든다'는 것이 나에게는 다른 말로 표현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되고, 그것은 또 다르게는 '기다리게 만든다'는 점이다.

 

난 기다리는 것을 잘 하는 편이 아니다.

물론 기다리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냐만은,

특히 나는 무언가를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이 정말 싫다.

누군가를 만나기로 했다가도 그 사람이 시간적 여유가 나지 않아서 얼마동안 내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언제나 난 아예 약속을 깨버렸다.

하하..그러고보니 내 인간관계가 협소한 까닭이 여기에 있었던 것 같기는 하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다른 표현으로는 앞으로 다가올 무언가에 대한 기대를 의미한다.

내가 기다리는 것을 싫어하는 건 정확히 말하면 기다리는 동안 내가 갖게되는 기대감이

깨어지는 순간 느끼게 되는 실망감 때문인 것 같다.

차리리 어떤 기회도 만들지 않기 위해 싹부터 잘라버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상처받기 싫어서 점점 작은 플라스틱 벽 속으로 나를 가둔다는 생각 역시

가끔 들기는 하지만.

그 틀을 깨기 싫어하는 속성 역시 내 모습이기도 하다.

 

 

....

또 다시 우울증이 시작되나 싶다.

이번에는 조증이 꽤 빨리 사라진 편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 우울하지는 않은 편이다.

우울하지도 그렇다고 기쁘지도 않은 그저 그런 상태

 

감정을 잃어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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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그렇게

#1.사교육 진출기

  얼마 전부터  사교육에 몸을 담고 공교육을 조금씩 망치고 있는 중이다. 입으로는 사교육 망해라 사교육 망해라를 되뇌이지만, 어쩔 수 없다고 표현되는 이 기생관계에서 내 생계(?^^;;)를 맡기며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2. 시작하기 전에

  그 전에는 우리나라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저녁 늦게까지 학원에 과외에 치이며 사는 지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는데. 얼마 전 홍대 앞 좁은 4차선 도로에 차가 막혀 갇히게 되고 주위를 둘러보고서야 깨닫게 되었다. 열에 여덟은 노란색 학원 차들이 들어서 있는 가운데, 차마다 피곤에 절은 아이들이 창 밖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집에 가는 모습을 보고서야 우리 나라 아이들이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 불쌍하다는 정도가 아니라 나까지 힘이 축 늘어지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3. 임하는 태도

  그렇게 보고 나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정도는 축 늘어지지 않게 하는 것. 그래서 원래 워낙 재미없는 이 성격으로 백년에 한 번 웃길까 말까한 기적을 행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는 중이다. 아...말이 다시 거칠어지기 시작했는데, 40명 정도를 가르치는데 5명을 제외하고는 다 남학생인 까닭에 그렇다. 제길... 작년 이 맘때 교생실습을 하고는 언어순화를 하겠다고 그렇게 맘을 먹었는데, 제 버릇은 어디 못 주는 모양이다.

 이번에도 유도를 했다고 뻥을 쳤다. 그러나 아이들은 믿었다.

 

#4. Behind stroy

  오늘은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문제를 풀도록 시키는데, 한 아이가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문제를 푸는 것이라... 그런데 듣다보니 어디서 많이 들어본 노래라 자세히 들어보니, 인터내셔널가의 곡조가 아닌가. 화들짝 놀라며 그 아이에게 이 노래를 어디서 알았느냐고 물어보았다.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인데, 군가를 찾다가 이 노래를 알게 되었다며 나에게 "인터내셔널가"라고 곡명까지 친철히 설명해주는 것이 아닌가. 후후... 오늘에서야 처음 알게 된 아이인데, 이 노래로 러시아 노래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하는 모습이 그냥 신기했다.

  정말, 어디에서든지 이렇게 신기한 사람들은 하나씩은 꼭 있구나라는 생각. 뭐, 군가를 왜 찾았든지 등등의 앞 뒤 사연들 다 빼버리고 그냥 국어문제를 풀면서 인터내셔널가를 흥얼거리는 사람이 하나 더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묘했던 기억.

 

  그렇게 그렇게 소소한 재미에 공교육을 망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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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할 땐

정신없이 이틀을 보냈다. 그래도 시험이라고 하루 반을 나름대로 공부를 했는데,

역시 한 일주일은 공부를 해 볼 걸 그랬나보다.

오늘 돈을 날린 것 같은 생각에 입에 제길을 연달아 외치면서 집에 왔다.

물론 덕분에 밀린 것들이 있어서 지금도 해야 할일이 많이 쌓여있고,

그 일들을 다 끝마치려면 난 도대체 몇 시에나 잘 수 있을까란 생각이 들지만

은근히 신경 쓰이던 것 하나가 사라져서 마음에 여유가 좀 생긴 것 같다.

 

막상 11월쯤 되면 히스테리에 걸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어쩌나란 생각에

무엇보다 지금 내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게 가장 중요하겠다란 생각도

해본다.

 

평소 같았으면 그대로 도서관으로 직행했겠으나,

고등학교 주변을 거치게 되어 은근히 시간을 즐기면서 왔던 것도 같다.

예전엔 시간이 나면 덕수궁에도 들어가서 시간도 때우고,

선배들을 통해 알게 된 샛길을 통해 학교에서 교보문고까지 점심시간을 활용해

부지런히도 다녔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긴 하다.

하긴...생각해보니 대학교가서도 공강시간에 경복궁에 가거나

졸업을 한 지금도 도서관에 드나들고 있으니,나도 참 재미가 없긴 하지.

 

여하튼 나름대로 시간을 만끽하고 세찬 바람부는 날 이리저리 쏘다닌 탓에

몸이 많이 피곤하다.

컴퓨터 앞에 몇 시간동안 앉아있어야 할텐데

벌써 눈이 빨갛게 충열된 것을 보면.

무엇보다 집에 오자마자 갑자기 왠 필이 꽂혔는지,

내 방 구석구석 청소하고 책상정리까지 해댄 것이 큰 타격을 준 듯.

 

하긴 덕분에 옛날 사진들과 편지들도 찾았다.

이것들은 나중에 시간이 좀 나면 살 붙여서 글이나 좀 써놔야겠다.

 

피곤해서 몸을 좀 풀어주려고 떨리는 손으로 5800원짜리 핫초코 하나를 사왔는데,

따뜻한 우유에 데워서 핫초쿄 한 숟가락 넣고 책을 좀 보다가 자야겠다.

흠...맛이 있어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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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의 작은 외침, No war!

  한 일주일 동안 정신이 없게 지내는 바람에 오늘이 3.20 2주년임을 오전에 뉴스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화면에 나와서 뭐라뭐라 떠들어대는 내용을 듣고, 오늘이 20일임을 그제서야 알게 된 것.

 

  정확히 2년 전ㅡ 3월 20일 이 날에 전 세계적으로 미국의 이라크전에 대해 반대의 뜻을 표명하던 그 자리에 함께 했었고 거리를 뛰어다니며 목 터져라 이라크 전쟁을 반대한다고 외쳤다. 아마도 작년이었나, 또 다른 3월 20일에는 후배들과 거리에서 줄기차게 전쟁반대를 외치며 어떤 의미의 전쟁이며 왜 반대를 할 수 밖에 없는가에 대해 침 튀기며 이야기했던 것도 기억이 났다. 그리고 정리집회를 하며 잠깐 거리에 머물러 있는 동안 종로 바닥 어딘가에, 몇일 전 촛불집회를 갔다가 남겨 둔 검은색 초를 후배에게 뺏어 "No War"라는 글씨를 촛농으로 만들어냈다.

 

 

 

그 때는 아무런 선전물도 준비를 못 해갔던 까닭에 즉석에서 뭐 하나 만들어보자는 심정으로 촛농을 떨어뜨려 만들었던 건데, 예상외로 호응이 좋아서 얼마나 당황해했었는지들 모른다. 어디 포스터였는지 지금은 기억이 잘 안나는데, 멋들어지게 찍힌 사진이 배경으로 쓰인 걸 보고 한동안 후배들도 매우 좋아했던 기억도 났다.

 

 그리고 2년이나 지나버린 오늘엔.

 전쟁도 계속되고 있고, 물론 나의 반전에 대한 생각도 변함없지만, 나의 행동면에 있어서는 좀 변화가 있었다. 난 예년처럼 거리에서 반전을 외치기보단 건물 구석 한 곳에서 친구들과 3.20의 의미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게 다였다. 정말 소시민의 자기만족적 반응인 듯한 느낌. 얼마 전에 염상섭의 만세전을 다시 읽었는데, 거기에 나오는 이인화의 소시민적이고 무기력한 지식인의 모습이 딱 내 모습인 것 같아 너무 씁쓸하단 생각이 들었다. 문제의 원인은 대충 아는데, 그냥 세상이 묘지같다고 말하고는 도피해버리는 무기력증에 빠진 그런 모습.

 

 그래서 앞으로는 더 이상 이런 느낌을 가지지 않기로, 더욱이 내년 이 맘때에는 끝나지 않은 전쟁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민중에 의해 끝나게 된 승리를 기념하고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그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작게 외치면서 집으로 왔다.

 No war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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