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연실> 2005.10월 노동, 조직, 민주주의

노동, 조직, 민주주의

 



《노동과 조직, 그리고 민주주의》

/한울/조효래,김재훈/22000/2005년 9월

리뷰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10월호 136호

양솔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흔히 회자되듯이 노동운동의 위기는 현실 속에서 움직이고 있는 ‘운동’ 자체의 위기(토대?)이기도 하거니와 더불어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사상, 정체성, 지향점을 나타내고 재정립해 나가는 노동연구의 위기(상부구조?)이기도 하다. 이미 배출된 노동관련 연구자들 외에 새롭게 성장하거나 준비된 연구역량이 거의 바닥난 상태이기도 하거니와 그나마 있는 연구자원 조차 정부․자본에 급속하게 편입되어가고 있는 상태이다. 현장과 대학의 새로운 세대들은 집단적 미래 설정보다는 개인적 미래 설정에 더 관심이 많은 듯 하다.

한국의 노동운동이 눈부신 성장을 보였다는 것은 분명하고 이에 세계의 진보적인 지식인 집단과 노동형제들이 한국의 노동운동에 주목했던 것도 명확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신자유주의 공세에 힘겹게 대응하고 있는 지금의 전세계 노동운동은 한국의 노동운동에 힘겨운 만큼 공세기와는 다른 새로운 기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주지하듯이 ‘계급정치의 영역에서 대항권력에 의해’ 규제되어야 하는 시장은 그러나 노동의 성찰적 실천의 부재 속에서 ‘자본의 자기전복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양산해 내고 있다. 그야말로(노동사회를 포함하여) 사회를 자본 자신의 얼굴 그대로 구조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힘겹게 싸우고 있는 화물연대 노동자들과 완성차 비정규직 조합원들, 중소사업장 노동자들은 그 결과물이며,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양극화의 문제 역시 그러하다.


이러한 때에 조용히(?) 노동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연구자 두 사람이 자신의 논문들을 모아 ‘시장’에 내밀었다. 김재훈 교수와 조효래 교수가 낸 『노동과 조직, 그리고 민주주의』(한울, 2005.9)는 두 연구자가 공동집필한 것은 아니지만 공통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한국 노동운동과 노동연구의 현재 상태와 과제들에 대해 나름대로 정면으로 맞이하면서 쓴 책이다. 두 연구자는 시장의 폭력이 제도적으로 규제되어야만 하는데, 이를 규제할 수 있는 것은 계급정치의 영역에서 중층적으로 형성되는 대항권력이며 이는 곧 ‘조직화된 노동의 힘’이라고 보고 있다. 이 ‘조직화된 노동의 힘’은 안으로는 작업장 민주주의와 노조민주주의, 밖으로는 사회적 민주주의 혹은 실질적 민주주의의 확장과 제도화를 추구하는 이중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며 이는 곧 대항권력의 확장과 ‘조직화된 노동의 힘’의 ‘사회적 힘으로의 전화’를 가져오는 동인이라 할 수 있다. 두 연구자는 노동연구의 쟁점부터 정리하고, (생산직, 사무직)노동의 ‘현재적 상태’를 분석한 후, 조직과 민주주의를 분석하고 있다.

저자들은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 오대수의 질문과 이우진의 답변에 빗대어 ‘“왜 시장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라고 묻기보다는 “시장의 야만성을 규제하기 위하여 노동은 어떻게 조직화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분석의 시기는 1997년 경제위기 이후이다.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이 금지되는 2007년이 곧 새로운 노동체제로의 이행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저자들은 전망하면서 한국의 97-2005년까지 9년을 분석대상으로 삼아 2007년 이후 노동체제를 보다 내실 있게 맞이하기 위한 쟁점과 고민을 풀어내고 있다.

이 책에 실린 10개의 절대로 만만치 않은 논문들은 그동안 각종 학술지(경제와사회 등)와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사회과학연구총서(한울)에 실렸던 글들이다. 또한 《연대와실천》에도 6개의 글(조효래 4개: 1,5,8,9장, 김재훈 2개: 6,7장)이 소개되기도 했었다(연대와실천 이번호에 김재훈의 논문 6장 수록). 열 개의 논문 중 5개는 조효래(1,5,8,9,10장), 5개는 김재훈(2,3,4,6,7장) 선생이 쓴 글이다.(이하 존칭 생략)

‘1장 노동조합 조직연구의 동향과 쟁점’은 그간의 한국 노동연구의 동향을 살펴보고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조효래에 따르면 이전까지의 노동조합 내부정치에 대한 분석들이 이념형과 유형화에 의존해왔지만 각 유형들에 대한 인과적 변수(예를 들어 외부적 환경의 변화, 내부 조합원, 간부, 상급조직 간부의 인식, 노동조합운동의 가치, 조합목표 정의방식, 의사결정과정과 그 통로 등)에 대한 연구가 심도있게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앞으로의 노동조합 조직연구에서 해명되어야 할 과제들은 첫째, 노동조합 조직의 여러 수준들의 기능과 역할이 어떻게 분화되고 내부통제와 조정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둘째, 단위노조와 상급노조 수준에서 노동조합 리더십의 가치와 태도,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에 관한 연구이다. 셋째, 내부 균열구조와 조직적 분파들의 선거경쟁에 대한 분석을 필요로 한다. 넷째, 조합원들의 참여수준과 형태에 대한 분석이다.

 

‘2장 노동력 재생산연구의 동향과 쟁점’은 97년 이후 노동계급의 노동력 재생산구조가 어떤 변화를 겪어 왔는가 하는 문제의식을 핵심으로 가지고 출발하고 있다. 앞으로의 연구과제로는 첫째, 소득과 자산의 계급 간 불평등 구조와 변화과정이 연구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둘째, 계급간 소득지출의 불평등을 연구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본다. 셋째, 거시적 수준의 분배 및 복지제도에 대한 연구과제이다. 넷째, 기업 내 노동조건의 변화가 노동력 재생산에 미친 영향에 대한 연구이다.

‘3장 생산직 노동자의 노동력 재생산구조’에서 김재훈은 생산직 노동자의 노동력 재생산구조를 가계소득구조와 소비구조의 측면에서 분석하였다. 심각한 고령화 수준, 유일한 대안인 초과노동 수용, 국가복지나 기업복지 대신 시장복지 대안 선택, 노동계급 내부의 이질화의 심화가 바로 그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김재훈은 이러한 노동력 재생산의 특징들은 노동체제의 특징과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로 두고, 따라서 ‘초과노동과 집합적 소비재 부담의 악순환’은 기업규모별 계급 내부의 이질감과 불신감을 증폭시키고, 노동력 재생산의 차이가 ‘산별노조 전환을 통한 노동체제의 전환’을 가로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4장 생산직 노동자의 고령화와 초과노동’은 금속노조를 사례로 하여 고령화와 초과노동이 노조에 미치는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 금속노조의 각 지회들을 고령화와 초과노동을 두 축으로 놓고 평균을 상회하는 곳과 평균 이하인 곳을 교차시켜 네 가지 지회 유형으로 분류하고 있다. 연구 결과를 보면, 노동력 재생산의 차이가 연대의 수준을 낮추는 효과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나 ‘최저임금제’로는 한계가 많다고 지적한다. 왜냐하면 적용대상이 적어 조합원 동원이 어렵거나(최저임금제), 소득극대화를 위한 수단(노동시간 단축)으로 변용되기 쉽다는 것이다. 김재훈은 따라서 생활임금제로 초점을 맞추어야 포괄 지회가 넓어질 수 있고, 동원 수준을 높일 수 있으며 초과노동의 동기를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5장 사무전문직 노동자의 구성과 상태’에서는 사무전문직 노동자들의 계급상태 변화를 추적하고 이러한 변화가 사무전문직 노동조합운동에 갖는 함의를 분석하고 있다. 97년 경제위기 이후 사무전문직 노동자 내부구성에서의 변화를 보면 여성 비중의 급격한 증가와 평균연령 상승, 임시일용직의 급격한 증가, 고학력화 현상 속에 학력과 고용형태의 상관관계 약화, 상용직의 고령화와 젊은 층의 비정규직화로 요약할 수 있다. 근속기간, 노조유무, 고용형태별로 상대적 임금격차가 97년 이후 급격하게 확대되고 있고 노동시장 분절과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 조효래는 따라서 여성과 비정규직을 노조운동의 중심으로 조직하는 것이 노조운동의 역동성뿐 아니라 장기적 생존을 위해서도 무엇보다 필요하며 미룰 수 없는 과제라고 역설하고 있다.

‘6장 노동시장 분절과 노동조합 조직변화’는 《연대와실천》본 호에 실려 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김재훈은 산별전환의 다섯 가지의 경로 중 소산별전환 후 대산별 단계전환론은 소산별노조 유지론에 머물 가능성이 높으며, 결국 기업별연맹체계의 경로와 대산별체제의 경로 간 경쟁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또한 김재훈은 전략적 산업군내에서 업종노조내의 수직적 통합보다는 수평적 통합전략이 더 현실성이 있다고 보고, 제조업 산별노조로서 조직 확대와 발전을 꾀하는 것을 장기적으로 추진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즉 금속산업과 화학섬유간 제조산별노조로의 확대는 불확실한 환경과 목표의 불명확함 속에서 하나의 준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7장 산별노조의 조직자원과 조직유형’은 금속노조를 사례로 하여 노동조합의 조직능력을 구성하는 조직자원을 분석하고 조직의 유형적 특징을 밝히고 있다. 김재훈에 따르면 금속노조의 조직능력은 기업별노조의 특징이 강한 조직자원들에 의해 제한되고 있으므로 상대적으로 동원 수준이 높은 전략적 자원에 의존하는 ‘전략적 자원 동원형’으로 유형화할 수 있다. 이는 조직전환의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산별노조로의 발전 속도를 늦추게 만든다는 것이다. 김재훈은 대공장노조 조직전환은(외연적 확대전략)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대공장노조의 리더십에 그 관건이 달려 있기에 금속노조는 이와는 별개로 각 지회들이 양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제도적 조건을 마련하는 ‘내포적 발전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산별노조로서 금속노조의 정당성과 중소지회의 제도적 안정성, 조직의 견고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대규모 지회에 걸린 부하를 줄이고 거대지회의 영향력을 낮출 수 있다. 이는 규모별 갈등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는데 도움을 주며 미전환 대규모 사업장의 전환에도 간접적으로 유인하는 효과가 있다.

‘제8장 산별노조 지부의 조직과 운영 - 경남 1, 2 지부의 사례’는 2003년 경남 1, 2지부가 통합되어 경남지부로 되기 전에 쓴 논문이다. 금속노조 경남 1, 2 지부에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공히 대기업 지회의 영향력이 지역지부의 활동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조효래는 기업별 노조의 관행의 극복이 시급하며 지역지부의 집행력을 강화하는 것, 대기업노조의 산별 전환을 가속화하는 것이 산별노조 전환의 성공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9장 기업별노조의 조합민주주의’는 부산, 울산, 경남지역의 금속연맹 소속 단위 노동조합 및 금속노조 지회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기업 수준의 노조민주주의의 실태를 분석한 논문이다. 선거경쟁 측면에서는 대체로 양당제적 구조가 정착되어 있으며 조직운영과 의사결정 측면에서는 조합의 의사결정이 다수조합원들의 의사에 따라 집행부가 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조합원들은 보고 있다. 또한, 기업수준의 조합원 참여는 높은 편이지만 그 참여는 헌신과 희생을 수반하지 않는 소극적 참여라는 점을 보여준다. 금속 조합원들의 상대적으로 높은 ‘집합주의적 지향’에도 불구하고 이는 이데올로기적 헌신에 기초하기 보다는 ‘도구적, 경제적 지향’에 기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금속산업의 노동조합 민주주의는 여전히 활성화되어 있으나 점차 실리적 태도와 도구적 참여의 성격이 강화되고 있다. 또한 실리적 목표에 한정된 단체교섭 선호에 기초한 노동조합 선거는 높은 참여도에도 불구하고 계급적 연대와 사회적 수준의 참여라기보다는 사업장 수준의 실리적 목표에 한정되어 있다. 이러한 기반 위에서 ‘전투적 경제주의’ 정체성이 유지되고 있으며 노동조합 선거는 이념과 전략에 따른 경쟁보다는 전술상의 차이로 수렴되고 있다.

‘제10장 산별노조 전임간부의 리더십과 가치지향’은 금속노조, 금융노조, 보건의료노조 전임간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한 논문이다. 세 노조의 전임간부들은 비교적 개별적 단체교섭 등보다는 전체 노동자들의 사회적 지위와 정치세력화와 같은 사회적 수준의 기능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또한 사회주의적 지향, 변혁적 지향을 가진 간부의 비중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세 노조 각각을 비교해 보면 차이 또한 나타나고 있다. 금속과 보건에 비해 금융노조 간부들은 보다 정치적으로 온건하며 실리적, 도구적 지향이 강하며, 직업적 전문성을 강조하는 경력 지향적 리더십이 보다 높게 나타난다. 반면 금속과 보건은 이념적 헌신에 기초한 리더십이 다수이다.


조합 내부로 보면 본조 및 지역간부와 기업지부 간부 간 인식 격차가 존재하기도 한다. 이는 곧 기업별 노조체제에서 산별로 전환하면서 직접적인 조합민주주의를 어떻게 정치적, 전략적으로 조율된 민주주의로 발전시킬 것인가, 그리고 이를 누가(중간간부) 담당할 것인가와 관련이 있다. 보건과 금속의 경우 사업장 지부 간부들의 간부기피현상은 산별노조의 조합민주주의 형성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상당히 많은 내용들을 검토하고 있으며 가볍지 않은 주제들을 다룬 학술적인 글이기 때문에 지역 동지들이 선뜻 읽기 쉬운 글은 아닌 것 같다. 또한 주로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한 연구가 많다. 하지만 그 외에도 사무전문직 노동자의 상태, 보건과 금융노조에 대한 연구 역시 포함되어 있으며 조합민주주의나 노동력재생산의 문제 등 전체 노동조합과 노동자들에게 해당되는 포괄적인 주제들 역시 많이 다루고 있다. 때문에 지역의 동지들과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예비 연구층들이 한국의 노동자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고 앞으로의 전망을 고민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글들이라는 점은 확실하다. 한울출판사의 책이 대개 비싸다는 점이 걸리기는 하지만 술렁술렁 넘어가는 책보다는 우리에게 밀접한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권하고 싶다. 산별전환을 지겹도록 얘기했고, 2007년이 이제 불과 얼마 안 남은 이 시점에 특별한 관심이 필요로 하지 않겠는가? 비록 재미는 떨어지는 머리 아픈 논문들이기는 하나 우리에게 이만큼 다가온 ‘친절한 연구서’에 조금은 가까이 해야 하지 않겠는가? 머리의 작동은 점차 느려지기 마련이고 시간은 뒤로 흐르지 않는다. 2007년은 2년만큼이나 우리를 늙게 만들 것이고 오늘은 결코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기 때문에.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