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게시물에서 찾기2006/06/01

<연실>2005.7월《한국적 생산방식은 가능한가?》-Hyundaism의 가능성 모색

리뷰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5년 7월호 133호


http://www.ynlabor.net

《한국적 생산방식은 가능한가?》-Hyundaism의 가능성 모색


양솔규(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redstar@jinbo.net

 

개인적으로 나는 ‘한울 출판사’를 아주 싫어한다. 단순하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가격이 너무 비싸다. 잘 팔리지 않는 도서들을 발간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수지타산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알지만 풍족한 재력을 지니지 못한 나로서는 기분이 나쁘다. 게다가 다른 인문사회과학 서적들에 비해 품도 별로 팔지 않는 것 같아 비싼 가격에 비해 디자인도 단순하기 그지 없다. 인문사회과학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이 출판사에 고운 시선이 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한울 도서들을 정기적으로 체크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많은 사회과학 도서들이 어쩔 수 없이(?) 이 출판사에서 발간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검색을 하다가 도발적인 제목의 이 책을 발견했다. 조형제 교수는 울산대 사회학과 교수인데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자동차산업분야 전문가이기도 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동차산업에 대해 내가 아는 바는 거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순간 이 책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한국 최대의 수출품인 자동차, 한국 최대 단위노조인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인정을 하든 안 하든, 하고 싶든, 안 하고 싶든 여전히 중요할 수밖에 없는 단위인 현대자동차에 올인하기로 했다.


낭패다.
되도록 쉬운 책, 되도록 읽기 편한 책을 고르려고 했으나 운명은 그렇게 정해졌나보다. 책을 받아 드니 재생지를 써서 그런지 부피에 비해 아주 가볍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내용은 가볍지 않다. 조형제 교수가 《경제와사회》, 《산업노동연구》, 《한국사회학》 등에 실었던 본인의 글을 모아 놓은 책이다. 논문 모음집이라니! 자동차 산업과 관련한 생소한 용어들 하며 논문 특유의 딱딱한 틀거리를 따라가려니 안 그래도 일상에 머리가 아픈데 고문이 따로 없다. 그래도 여러 사람이 쓴 글을 엮은 게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조형제 교수의 문제의식은 이렇다. 새롭게 성공의 신화를 쓰고 있는 “현대자동차는 포드나 도요타와 구분되는 의미에서 자동차산업의 또 다른 최고의 관행을 구현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여러 가지 요소들을 다각도로 살펴본다.


생산방식과 작업조직

조형제 교수에 의하면 현대자동차는 생산기술의 유연성은 높아지고 있으나 이에 상응하는 작업조직의 유연성이 높아지지 않고 있다고 한다. 이는 한편으론 현대자동차 회사측이 유연자동화가 진행될수록 노동의 역할이 낮아진다고 보는 시스템합리화론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립적 노사관계로 인해 노동에 투자하는 것이 위험부담이 높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동화에 기반한 생산기술의 유연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도요타 미야타 공장과의 비교를 해보면 현대 아산 공장은 미야타 공장을 벤치마킹 했음에도 불구하고 승진체계와 임금체계의 한계로 인해 작업자들의 창발성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현대 에쿠스 공장은 자기완결형 직렬 라인을 설치했음에도 불구하고 볼보의 우데발라 공장과 같은 셀 생산방식은 도입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에쿠스 모델이 주력 모델도 아니었고, 고급 노동력 확보가 어렵지도 않았으며(노동시장적 요소) ‘노동의 인간화’를 위한 노동조합의 압력도 없었다. 또한 투자부담 및 생산관리 기술의 부족에도 원인이 있었다.

인적자원관리와 노사관계

현대자동차는 보다 유연한 생산방식을 추구하지만 그에 걸맞는 인적자원관리 방식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대립적 노사관계 때문이다. 노사간 불신은 회사 측의 교육훈련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게 만든다. 직능자격제도의 도입을 노동자 단결 와해의 우려 때문에 노동조합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98년 정리해고 투쟁 이후 최고경영진의 교체와 연이은 99년의 호황으로 인해 필요성 역시 감소하면서 숙련형성을 위한 제도 개편보다는 의식교육에 치중하게 된다.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기업지배구조가 변화하게 되고 주식시장의 단기적 평가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경제시스템 속에서 숙련형성을 위한 교육훈련의 가능성은 더욱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게 조형제 교수의 예측이다.


80-90년대 한국노동운동의 중요한 축이었던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를 비교해 보자면, 현대자동차 노조는 생산합리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면서 현장 통제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는 반면, 현대중공업의 경우 그렇지 못함으로써 현장 통제력을 상실하게 된다. 이는 조선산업과 자동차산업의 기술적 특성 등의 구조적 요인도 영향을 주었겠지만 이보다는 당사자의 행위 양식의 차이로 인한 귀결이라는게 조형제 교수의 판단이다. 하지만 자동차 노동운동이 작업장 참여를 외면하는 점을 한계로 지적하고 있다.


부품산업과 산업구조조정

모듈화가 진전되면서 대규모 모듈 부품업체들을 중심으로 부품공급시스템이 변화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일본업체들의 적기조달 시스템에(JIT) 근접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의 비용절감 압력은 부품업체들의 기술개발 및 임금지불 능력을 고갈시킨다. 결국은 수평적 협력은 약화되고 수직적 위계가 급속하게 강화되고 있다. 자동차전문 그룹으로 분리된 현대자동차는 시장 독점자로서 부품업체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고 있다.

과제

조형제 교수가 제시하는 과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고숙련의 노동자들이 적극적으로 노동과정에 참여하는 작업조직을 실현해야 한다.
둘째, 노동자들의 숙련을 향상시키고 생산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교육훈련 제도를 대폭 확충할 필요가 있다.
셋째, 대립적 노사관계를 해결하기 위해 쉬운 사안, 예컨대 교육훈련 투자와 같은 부분부터 협력해 나가야 한다.
넷째, 부품업체와의 진정한 동반자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다섯째, 현대자동차의 경영능력 혁신이 요구된다.

조형제 교수는 현대자동차와 관련하여 세 가지 비교 연구(미야타 공장, 우데발라 공장, 현대중공업), 그리고 숙련형성과 교육훈련제도, 노사관계, 생산합리화에 대한 노조의 대응, 부품공급시스템, 산업구조조정 등 산업연구 측면에서 거의 모든 부분을 다루고 있다.


사실 조형제 교수는 자동차 분야 뿐만 아니라 관련지어 산업도시에 대한 연구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산업도시의 재구조화와 거버넌스 :피츠버그와 디트로이트의 비교>(국토연구 2004 제43권), <울산 지역 노사관계의 현황과 과제 :지역노사정협의회의 가능성 탐색>(울산발전 통권 제6호 2004. 여름), <울산의 지역경제와 노사관계>(울산발전 통권 제2호 2003.4), <지역경제의 혁신 모델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관계를 중심으로>(경제와사회 통권57호 2003), <울산 지역의 산업구조조정과 테크노파크 건설>(울산대 사회과학논집 10,1. 2000년8월) 등이 그것이다.

사실 운동권의 ‘한 이론 하는’ 교수들은 너무(?) 많지만 지역에 천착하면서 지역 노동운동(혹은 자동차산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연구를 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울산의 활동가들은 관점의 차이를 떠나 조형제 교수의 글을 무리를 해서라도 읽어볼 기회를 갖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가능하다면 많은 동지들과 함께 형식을 갖춰 읽어봤으면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연실>2005.4월 -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재벌 부활 프로젝트?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재벌 부활 프로젝트?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 창비 / 13000원 / 신장섭, 장하준

양솔규(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리뷰 출처: <연대와실천> 2005년 4월 통권 130호

IMF 경제위기가 터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한국 자본주의의 전대미문의 상황 전개에 대해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낙관적인 기대는 끝도 없이 추락하는 상황 속에서 산산이 부서졌고, 국정을 책임지는 관료들과 대통령 김영삼에게 분노의 화살을 마구 쏟아내기도 했다. 하지만, 마냥 분통만 터뜨리기에는 상황은 너무 안 좋았다. 당장 노동자의 목을 정확하게 겨누며 진행되는 구조조정과 노동시장에서 비껴난 실업자군, 생존의 사각지대에서 몸부림치던 노숙자 및 빈민들은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뭔가 해보아야 될 일이었다.
운동권에서는 그동안 잘 이야기되지 않았던 얘기들이 회자되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사회적 안정망을 얘기했고, 실업자동맹(운동)을 얘기했다. 모라토리움(파산)을 선언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렸다. 자본의 위기는 곧 노동의 기회라고도 했다. 지나고 보니 노동의 기회이기는커녕 노동의 위기이면서 자본의 기회인 것으로 판명났다. 실업극복과 관련된 수많은 단체들이 생겨났으며 일주일이 멀다하고 토론회가 개최되었다.
김대중은 해외자본 유치를 선동했고 TV에는 ‘한국을 사달라’는 광고가 연일 등장했다. 나(한국)를 사주는 사람에게 모든 걸 내주겠다는 식의 요염한 구애가 있었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출이 되지 않아 도산하는 중소기업들의 더 처절한 구애가 있었다. 또다른 한편에서는 목숨이 경각에 달린 빈곤의 바다가 울부짖는 끔찍한 비명들이 있었다.
변할 수 없는 현실이 있었다. 한국이라는 작지만 거대한 배가 파산했고,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진행되면서 더 이상 이전의 한국과 지금의 한국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버렸다.
경제관료들, 정치인들, 재계 자본가들 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들에게도 널리 퍼진 시각은 이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든 걸 개방하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빡세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불 가릴 것 없고, 예전의 ‘좋았던(?)’ 기억들은 다 잊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과거의 것은 모두 철밥통으로 낙인찍혔고 전면적인 개혁의 칼날은 포청천의 작두처럼 정의의 상징이 되어 목전으로 날아들었다. 과연 IMF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한국 경제에 불가결한 요소였는가? 위기는 한국 경제의 내재적 원인 때문이었는가?

사상 유례없는 출판시장 불황에도 불구하고 작년 사회과학 분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책 중 하나는 《주식회사 한국의 구조조정》의 저자중 한 사람인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였다. 또한 두 공저자인 장하준, 신장섭은 <대안연대회의>에 관여하고 있으며, 2004년 8월에는 <투기자본감시센터>가 만들어졌는데 여기에도 <대안연대회의>의 주요 인사들 뿐만 아니라 민주노총, 사무금융연맹의 주요 간부들도 참여하고 있다. 그만큼 한국 사회의 반신자유주의 대항 담론으로서 폭넓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 경제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던 것에 대한 논박이다. 위기의 원인으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던 한국의 발전주의 국가는 사실은 위기 이전에 해체되었기 때문에 위기의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위기의 또다른 한축이라고 비판받고 있는 ‘재벌’ 역시 위기의 원인이 아니다. ‘재벌’은 미국 경제사가인 거셴크론이 제시한 후발국의 추격전략에 따르자면 자본의 부족 속에서 그나마 한국이 취할 수 있었던 합리적인 조직형태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위기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한국은 이미 김영삼 정부 시절, 자본자유화와 산업정책 포기를 통해 이전의 한국 발전주의 국가 모델에서 벗어났다. 이러한 전환은 곧 지구화의 과정에서 대규모 해외투자를 추구하던 재벌에게 기회를 가져다주었고, 단기자본의 대규모 유입이 도래되었다. 위기는 단기부채의 급속한 증가에 기인한 것이었으며, 이를 직접적으로 추동한 것은 발전주의 국가의 후퇴와 자본 자유화, 재벌의 공격적인 상품시장의 지구화 전략이었다는 것이다.


둘째, IMF 경제 구조조정 프로그램은 한국 경제를 급속하게 영미식 신자유주의 모델로 변화시켰다. 이전 한국 경제의 주요 축, 추격모델의 축이었던 ‘국가-은행-재벌’ 시스템은 해체되었다. 이를 통해 ‘주식회사 한국’으로 표현되는 한국 시스템의 강점은 사라졌고, 해외자본의 급속한 유입, 통제하지 못하는 정부, 성장 동력 형성을 위한 장기투자에 인색한 은행 및 금융권으로 변모했다. 재벌은 이전에 자원을 집중시키던 내부거래 관행들(무기들)을 빼앗겼다. 따라서 저자들이 보기에는 ‘제2의 추격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전 모델의 강점을 살리는 방식, 즉 국가의 재활성화, 기업그룹의 강점 활용, 해외 자본 통제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국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 즉 해외자본의 급속한 유입으로 인해 한국 경제를 제어할 방법과 주체가 없는 현재의 신자유주의경제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풍부한 사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일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반성없이 일방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일련의 흐름들에 대해 비판적 재고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제2의 추격 시스템’의 구축을 위해서는 국가의 재활성화를 통해 해외자본을 견제하고, 산업정책 등의 재가동이 필요하다는 점 역시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들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결론은 재벌에 이르게 된다. 왜 하필 재벌인가? 마치 ‘자유기업센터’가 신자유주의로 무장한 전경련의 오른팔이라면 이들과 대안연대회의는 제도주의 경제학으로 무장한 전경련의 비주류 왼팔쯤 되는 것이다.

먼저 비판할 점은, 저자들은 재벌의 합리성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합리성을 강제하는 요소는 전지구화된 상품시장과 금융시장이며 이 구조 속에서 재벌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합리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험적인 전제는 역사적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대우그룹의 엄청난 규모의 분식회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중소기업과의 원하청 불공정거래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기업총수와 그 가족의 비정상적인 기업지배구조는 재벌을 여타의 기업그룹들과는 차별적이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자들은 마치 재벌을 보편적인 기업그룹의 한 형태로 강조하고 있다. 그동안 비난받아 왔던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해서도, 다각화가 부정적이었다는 실증은 없으며, 이는 강점으로 봐야 하며, 최적의 다각화란 없고 과도한 다각화가 있었다면 재벌이 알아서 줄였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재벌이 재벌일 수 있는 이유는 단지 다각화뿐만 아니라, 극소수의 주식소유를 가지고 총수와 가족들이 수많은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행태이다. 정부가 재벌에게 또다른 (재벌)기업을 헐값으로 넘기던 수많은 은밀한 거래들도 과연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저자들은 기업의 투명성 제고와 비민주성 제고를 재벌의 강점인 ‘고위험부담과 시장확대 능력’을 훼손하는 것으로 본다. 저자들이 우려하는 집중투표제는 의무화되지 않았으며, 정관을 통해 배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의미가 없다. 저자들이 재벌의 강점으로 보는 고위험부담과 시장확대 능력은 그에 걸맞는 위험 감시 시스템과 합리적 투자를 전제로 하는데, 재벌이 합리적이라면 왜 대우부도와 같은 사태가 발생했는가?

저자들은 중소기업과 재벌과의 관계가 상호대립적이지 않으며, 협력적인 관계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는 전경련의 중소기업인 조사나, 민주노동당의 중소기업인과의 대화 과정에서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내부 거래 메커니즘이 크게 약화된 재벌은 해외자본의 공세에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힘 없는’, ‘불쌍한’ 상태로 보인단다. 과연 재벌에게 다시 힘을 실어주면 이들이 해외자본과 피터지는 싸움을 할 것인가? 그 결과 승리의 전리품들을 노동자 민중에게 나누어 줄 것인가? 저자들이 주장하듯이 재벌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협력적인 것이라면, 해외자본과 재벌과의 관계는 협력을 넘은 연합의 상태 아닌가?
소유구조든 자본동원이든 저자들이 전제하는 이러한 재벌의 합리성은 그러나 수많은 재벌 기업과 하청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에게는 비합리적이고 전근대적인 노동자 통제와, 권리박탈의 물질적 조건일 뿐이다.

두 번째로, 저자들은 재벌의 책임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 삼성자동차, 대우 구조조정 과정에서 든 막대한 비용, 금융구조조정 과정에 투여된 막대한 돈은 누구의 돈인가? 단지 정부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보여준 관리에 있어서의 무능력만을 지적하지만, 일차적 책임은 재벌에게 있음을 저자들은 지적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재벌의 실책은 정부의 무능력에 비하면 미미한 정도일 뿐이며, 구조조정의 성과는 재벌의 강점에 비하면 미미할 뿐으로 본다. 저자들에게 남은 것은 재벌의 부활뿐이다.

세 번째로, 저자들의 재벌 옹호 관점은 반신자유주의적일 수는 있으나, 노동배제적 관점이기도 하다. 해외 자본과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비판한다고 해서 곧 우리가 무조건 차용할 수 있는 관점은 아닌 것이다. 저자들은 성장동력 신장을 얘기하고 있지만 노동자, 서민 경제가 파탄나고, 거시 경제 성장과 서민 경제 부문의 연관이 파탄난 지금 이 시점에서 노동자, 서민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자들이 98년말부터 시작된 경제위기의 극복의 진정한 원인으로 얘기하는 케인즈주의적 거시경제정책 패키지는 그러나,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몫으로 자신의 목을 겨누는 칼날에 불과했다. 저자들은 말한다. 재벌을 약화시킨다고 해서 중소기업이 잘된다는 보장이 있는가? 바꿔 말할 수 있다. 재벌의 확장능력이 강화된다고 해서 국민경제가 건강해지고 노동자 서민이 행복해지는가?


네 번째로, 저자들은 여전히 성장 중심주의적 사고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제2의 추격시스템? 무엇 때문에? 왜? 라는 질문은 없다. 저자들에게 재벌 체제의 복구는 목적 없는, 이유 없는 자본의 이윤 추구와 마찬가지로, 확장, 추격을 위한 것이다. 이왕 ‘체제 이행’이 필요하다면 어떤 이행인지에 대한 성찰을 제공하는 것이 배운 사람의 기본적인 소양이어야 되지 않은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은 그동안 서로 논쟁을 벌이며 대립각을 세우던 <참여연대>와 <대안연대회의>의 담론들을 광범위하게 수용해 왔다. 두 단체의 논자들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각급 조직의 각종 토론회에 참석해 왔다. 이러한 어정쩡한 상태를 벗어나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으론 이들이 제공하던 담론들의 강점이 존재했다. 이 두 단체간의 논쟁은 한국 경제의 장기적 전망과 관련된 시스템의 구축을 둘러싸고 진행되었다. 즉, 현재의 시점을 넘어 미래를 바라보는 정치한 주장들을 제기했다는 점이다.


현재의 ‘분배요구’에 머물러 있는 민주노동당의 담론은 그 자체로 의미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비전을 제시하는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다. 자금 동원 및 장기 투자, 성장과 관련한 입장과 전망, 재벌 구조 개혁 및 기업지배구조, 산업의 재편, 노사관계 변동 등에 대해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시스템적인 담론 구축이 필요하다. 여기에 더해 이러한 시스템적인 담론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이행 전략과 맥을 같이 해야 한다는 점을 덧붙일 필요가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따라서 순식간에 마련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것임에는 분명하다. 언제까지나 주류담론과 비주류담론의 격돌에서 비껴나 있을 수만은 없기 때문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연실>2005.2월 - 칭찬받아 마땅한 하루 정복! 중남미 참고서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 - 중남미의 재발견


서평 출처 : 영남노동운동연구소(http://www.ynlabor.co.kr)
            <연대와실천> 2005년 2월호


칭찬받아 마땅한 하루 정복! 중남미 참고서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


양솔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이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을 알고자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리 앎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하더라도 내용이 너무 어렵다면 그 욕구는 금방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가뜩이나 힘든 노동과 활동에 지쳐 있는데,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일요일 오후에 ‘어려운’ 책을 인상 쓰면서 볼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물론 필요하면 죽도록 고생하면서 봐야 하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이유로는 ‘재미’를 찾기 위해서이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라든지, 흥미 있는 사실들을 섭렵하기 위해서라든지 등등은 모두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취하기는 일상 속에서는 쉽지 않다. 일단 외국 저자의 책을 번역한 경우에는 생소한 문체 때문에 글 읽기가 쉽지 않다. 설사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번역을 했다손 치더라도 너무 전문적인 내용일 때가 많다. 그렇다고 판타지 소설이나, 통속적인 수필집들은 ‘재미’는 있을지 모르지만 남는 게 없다. 누구 말처럼 ‘노동운동은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따라서 ‘뭔가 있어 보이’면서도 ‘재미있고 쉬운’ 책이 필요하다. 왜 그런 책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필수적이고도 전문적인 내용을 쉽고도, 재미있게 글을 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이다.

얼마 전 브라질 포르투 알레그레에서 다시 세계사회포럼이 열렸다. 전세계 운동권이란 운동권들은 모두 모였단다. 이번 세계사회포럼에서 단연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은 브라질 대통령 ‘룰라’가 아니라, 베네주엘라의 대통령 ‘차베스’였다. 이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한국에 남미 바람이 불었다. 몇 년 전부터 불고 있는 남미 바람은 단지 이국적인 정서의 한때 유행이라기보다는 신자유주의 광풍에 대한 저항의 구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남미의 ‘좌파 바람’ 때문이었다. 90년대 후반의 유럽 좌파 바람이 힘없이 지나가고 나자 공허한 가슴을 남미의 좌파세력이 채워 주고 있는 것이다. 세계사회포럼이 여러 번 개최되면서 한국 사회단체나 노동조합 기관지 등에서도 사람들의 다양한 참관기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고, 국제연대와 사회포럼에 대한 분석글들과 비판들이 발표되기도 한다. 어떤 젊은 활동가들에게는 이러한 전세계적 연대의 흐름이 열광적인 대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아저씨 활동가들에게는 ‘생뚱맞은’ 철없는 아이들의 유행처럼 보이기도 하는 듯 하다. 어쨌든 간에, 이런 새로운 흐름은 속도는 모르겠지만 당분간은 일관된 추세가 아닐까 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일년에 엄청난 숫자의 유학생이 가고, 그것의 몇 십 배의 배낭여행족들이 떠나고, 그것보다 훨씬 많은 수의 여행객들이 해외로 떠나는 이 시점에, 우리 노동운동은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일반 여행객들보다야 훨씬 지적이고, 수준 있게 놀아야 되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들은 다른 나라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쌍심지를 키고 배타적인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그게 뭐 대순가?’, ‘우리 이야기나 하자’고 말하기도 한다. 직접적으로 ‘그 나라가 우리의 대안이냐?’하면서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엄마가 아빠 역할은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엄마가 아빠가 될 수 있는 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지만 너무 당연한 말을 자기만 아는 거대한 진리인 양 얘기하면 정말 할 말 없다. 창원만 알면, 울산만 알면, 서울만 알면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지 않은가. 오히려 창원 사람이 보는 서울, 서울 사람이 보는 울산, 울산 사람이 보는 창원이 더 정확할 수가 있다. 그리고 세상은 내 눈에 보이는 사람들 0.01%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 99.99%가 함께 사는 곳 아닌가? 우리는 우리를 제대로 알고, 얘기를 나누고, 어깨를 나누고, 우리의 길을 좀 더 (특수한 길이 아니라) 보편적인 길로 만들기 위해서 서로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어떤 분은 이러실 지도 모르겠다.‘배우려면 앞서가는 놈들을 배워야지. 뒤쳐진 걸 배워서 뭐하게?’ 하지만, 남미는 뒤쳐진 곳이 아니다. 20세기 최초의 혁명은 남미 멕시코에서 일어났으며, 21세기 벽두 변화의 가장 큰 진원지 역시 남미라고 할 수 있다. 산업화, 이념정당, 민주화투쟁, 노동자대투쟁, 노동자 정치세력화, 게릴라 투쟁, 무장봉기, 혁명, 선거를 통한 혁명, 게다가 미국 영토를 침범한 역사까지 그 어느 것 하나 우리보다 못하지 않다. 미국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외국어는 스페인어이며,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배우는 언어도 스페인어이다. 미국의 안마당이라 일컬어지는 곳에서 변화를 일구고 있는 남미를 어떻게 쉽게 무시할 수 있겠는가. 친구를 사귈 때는 편견을 버리는 게 좋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생활 속에서 터득한 진리 아닌가.

또다른 분은 이러실 지도 모르겠다. ‘기껏 다른 거 대충 공부했더니 이번엔 남미야?’ 맞다. 아직도 진도가 한참 남았는데, 다른 걸 공부하자면 열 받는게 당연하다. 그런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좋은 참고서 하나 나왔기 때문이다. 이 책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는 거의 눈으로 보는 무협지, 또는 중남미 발‘시사주간지’수준이다. 우리가 스페인 말을 아나, 포르투갈 말을 아나, 당연히 모른다. 그런데 이 책만 있으면 라틴 아메리카 전 나라를 한번씩 훑게 된다. 게다가 동료들한테도 잘난 척 할 수 있는, 이빨 세울 수 있는 풍부한 이야기 거리들이 넘쳐 난다. ‘너 △△가 뭔지 알아? 그게 말이지. 이래저래 된거야. 알아 짜샤!’ 아주 손쉽게 3시간 만에 업그레이드 된다. 그렇다고 이 책에 나오는 내용들이 간단한 것이냐? 아니다.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중남미 전문가인 송기도 교수의 글들은 아주 꼼꼼하게 체크한 고급 정보들로 짜여져 있다. 오죽하면 작년 11월 APEC 정상회담 참석과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순방하기 위해 출국하기 전 노무현 대통령이 이 책을 꼽아 읽었겠는가? 쉽고 간결하고, 그러나 고질의 책을 고를 시간도 능력도 그에게는 없었을 것이고, 비서진 중 하나가 추천을 했겠지만 말이다.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알아주는 또다른 중남미 전문가가 남미를 둘러본 후 기행문을 책으로 엮어 출간을 했었다. 워낙 학문적으로 좋은 글들을 많이 쓰는 사람이고, 제목도 아주 그럴 듯해서 잔뜩 기대를 품고 읽어 봤는데, 영 책이 읽히지를 않았다. 학문적인 글에 비해, 기행문은 기대 이하였다. 하지만, 송기도 선생의 책 『콜럼버스에서 룰라까지』는 정말 괜찮은 책이다. 아버지(또는 어머니)와 초중고등학생, 아들, 딸이 함께 읽어도 손색이 없다.

내용을 상세하게 전달하고 싶지만, 책 읽는 재미를 서평자가 빼앗는 것은 월권이 될 것 같아 그만 두도록 하자. 다만 간단한 목차와 저자의 목소리를 소개하고자 한다.
1부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본 중남미의 역사이다. 이 역사에는 쿠바 등 중남미와 미국, 식민지배와 독립, 분열과 중남미 통일단결을 위한 노력들 등이 포함된다. 세세한 사건들보다, 현재의 남미를 이해할 수 있는 핵심적인 내용들을 역사적으로 해부하고 있다. 말하자면 친구를 이해하기 위한 호구조사라고나 할까?

인물 비평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 송기도 선생답게 2부는 인물을 통해서 본 현재의 중남미 정치사회사에 대한 내용으로 꾸며져 있다. 브라질 노동자당 출신 대통령 룰라, 룰라와 함께 메르코수르(남미공동시장)를 주도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키르츠네르. 피노체트 군부 쿠데타 이후 최초로 정권을 잡은 사회당 출신 라고스 칠레 대통령, 반미와 남미 통합을 추진하는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등 좌파적인 정권들의 지도자. 또한 신자유주의를 추진하는 ‘우파 정권’이긴 하나, 남미 역사의 큰 획을 그은 두 나라의 대통령, 즉 500년만에, 국가 건설 이후 최초로 탄생한 페루의 인디오 출신 똘레도 대통령과 1910-1917년 멕시코 혁명 이후 71년만에 최초로 정권교체를 이룩한 멕시코 비센떼 폭스 대통령 등을 통해 현재 한반도의 지구 반대쪽에서 벌어지고 있는 남미의 ‘거대한 전환’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책을 보면 우리 머리 속에 남아 있는 중남미에 대한 이미지의 근원과 오류들을 파악할 수 있다. 사실 어떤 공부라는 것이 기능적으로 특정 부문과 관련 있는 내용만 쏙 뽑아 본다는 것은 자칫 ‘숲은 못 보고 나무만 보는’ 오류를 범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남미를 보는 재미있는 망원경과 같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말한다.

아직까지도 중남미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장님이 코끼리 다리 만지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이 씌워준 안경을 쓰고 코끼리를 쳐다보고 이해하던 수준에서 이제 코끼리의 다리라도 직접 만질 수 있는 수준이 됐으니, 한 단계 나아졌다고는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미국이라는 ‘창’을 통해 그들을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 눈으로 직접 보고 느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해방과 민주화를 위한 중남미인들의 험난한 투쟁을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가슴으로 함께하고 이해할 때, 그들도 우리를 열린 가슴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 책은 그 첫 시작이다.

이 책은 세계사회포럼에 가는 사람들, 또는 세계사회포럼에 ‘가고 싶은’ 사람들, 아니 세계사회포럼에 ‘못가는’ 사람들이 읽어야 하는 책임에 틀림없다. 독자들은 이 책을 다 읽을 때쯤이면, 318쪽밖에 안 되는 이 책의 분량을 아쉬워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책값은 단돈 만원밖에 안 되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연실>2005.1월 - 이천년대 제국의 모자이크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지은이: 김동춘
제목: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가격: 13000원
출간일: 2004년 11월
출판사: 창비
 


----------------------------------------------------

리뷰 출처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5년 1월호 통권 127호
http://www.ynlabor.co.kr

이천년대 제국의 모자이크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양솔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redstar@jinbo.net

최근 눈에 두드러질 정도로 미국의 문명과 그에 대한 비판조의 저서들이 봇물같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번역된 외국 저서들도 많지만 국내의 미국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도 여럿이 끼어 있을 정도로 미국에 대한 관심과 우려는 하루를 넘기기가 무섭게 증폭되고 있다. 노엄 촘스키의 《불량국가》,《숙명의 트라이앵글》외에도《키신저 재판》,《네오콘 Neo-Con》,《불쌍한 백인들》이 최대의 출판 불황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판매부수를 올릴 수 있었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다고나 할까?

최근에는 좀 더 이론적이고 학문적인 분석서들이 출간되고 있다. 지난《연대와실천》2004년 7월호에도 소개된 바 있던 이매뉴얼 월러스틴의《미국 패권의 몰락》외에, 전세계 동시출판, 동시대박을 일으킨 네그리․하트의《제국》, 토드의《제국의 몰락》, 찰머스 존슨의《제국의 슬픔》이 잇달아 출간되었다.

알다시피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미국 대선에서 부시가 재선되었고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과 국회의 연장안 처리의 과정이 진행되었으며, 이 속에서 한국의 모든 개인과 세력들은 싫든 좋든 자신의 입장을 어떤 논리 하에서든 정리해야만 했다. 참고서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중적인 도서들과 학문적인 도서 사이, 압도적 다수인 미국 국적의 저자들과 한국 도서 소비자 사이에는 일정한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 소개하려는 김동춘 교수의《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창비, 2004.11)은 시류에 편승하지 않으면서도 핵심을 간취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적절한 책이 될 듯싶다. 흥미 위주의 가십거리를 모아 놓은 저널리즘적인 책들은 재미는 있으나 미국과 미국 패권 속에 돌아가는 세계의 핵심 동력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반대로 학문적인 책들은 분과 학문적 그리고 이론적 관점은 물론이거니와 사전지식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가독성을 떨어뜨리고 만다. 하지만 미국에 대한 관심, 미국과 관련한 서적들의 ‘수요’가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국’, 특히 격동의 80년대가 지나고 90년대를 지나 2000년대를 지나고 있는 이 시점의 미국에 대해 우리가 무관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운동권의 한 정파로 존재하는 ‘낡은 시각’, 소위 민족해방파 또는 NL의 관점으로는 세계의 중심이자 세계자본주의의 심장부 미국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도 자명한 사실이다. 정치, 군사적 시각으로 한정된, 그것도 좁은 한반도로 한정된 시각, 주의주의적이고 감정적인 시각으로는 미래의 변화 동력을 끌어내기엔 역부족이다.

잘 알다시피 김동춘 선생은 노동운동과 분단문제에 천착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진정성 있는 학자이다. 학문적으로 많은 중요한 저서들을 출간한 바 있고,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학술운동에서 꽤 중요한 발언들을 해 온 분이다. 그런데 이 책의 성격은 김동춘 선생이 이전에 출간한 학문적인 책들과는 사뭇 다르다. 김동춘 선생도 책머리에서 밝혔듯이 선생은 미국 전문가도 아니고, 이론적 해명보다는 시사적인 쟁점을 중심으로, 그리고 비판적 시각에서 미국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데 집필에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가 2004년의 학문적 성과 10대 도서로 선정을 한 것에 나는 동의할 수 없다.하지만 그러하기 때문에 이 책은 연구소《연대와실천》에 소개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선생이 연구년을 이용해 미국에 가 있는 동안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 책은 전쟁 중인 나라에 대한 참여관찰의 결과로서 나온 책이다. 각주의 대부분은 미국 언론의 기사들로 채워져 있다. 소득도 낮을뿐더러 비영어권 국가인 것은 물론, ‘악의축’과 같은 악마의 피가 흐르는 불량국민이기 때문에 미국에 갈 수 있는 비자조차 얻을 수 없는 이 땅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미국 보수언론의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고, 세계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에 대한 생생한 정보를 알 턱이 없다. 미국 언론들 역시 자국민들에게 왜곡되고 편향된 정보만을 공급하는데 수억 만리 떨어져 있는 이곳에서는 오죽하랴. 따라서《연대와실천》은 다른 어떤 책보다도 이 책을 소개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이라크전쟁으로 시작한다. 냉전이 끝난 곳에서 군수자본, 금융자본, 석유자본, 신보수주의 정치가들의 이해에 따라 시작된 이라크 전쟁은 가상의 적, 허깨비 적을 만들어 놓았다. 9.11은 사그러들던 군수자본과 전쟁분위기를 다시 한번 일으켜 세웠다. 중동전체에 대한 독점적 패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 직접 이라크로 건너가 막대한 이윤의 유전에 빨대를 꽂으려는 충동, 한 놈만 열나게 패서 세계를 줄 세우려는 조폭적 의지가 합쳐진 전쟁이 바로 이라크 전쟁이다.

그러나 이러한 전쟁은 20세기 미국 역사에서는 거의 항구적인 상태에 있었다. 전쟁은 평화상태의 짧은 예외가 아니라 반대로 평화는 전쟁상태의 짧은 예외 기간일 뿐이었다. 미국은 냉전 체제하에서도 끊임없이 저강도 전쟁, 작은 전쟁을 벌여 왔다. 작은 나라들은 미국의 밥이었다. 사실은 세계의 많은 국가에 미군이 주둔해 있고, 따라서 미국민들의 안전은 당연히 위협받을 수밖에 없었다. 착한 흥부 미국은 놀부한테 뺨을 내밀고 제발 주걱으로 때려달라고 한다. 마지못해 놀부가 뺨을 살짝 건들면 선한 흥부 미국은 순간 람보가 되고, 코만도가 되고, 터미네이터가 된다. 폭탄을 퍼붓고 총질을 가하는 동안 금고엔 자본이 쌓여 가는 것이다.

이렇게 미국을 조폭으로 이끄는 충동은 바로 군-산-정 복합체에서 시작된다. 냉전 이후 수요가 떨어져야 마땅한 미국 군수자본들은 전쟁을 의도적으로 부추긴다. 덩달아 신보수주의자들은 미국적 가치, (가짜) 자유, 기독교적 가치를 수출한다는 명목으로, 야만적인 세계를 문명화한다는 명목으로 침략을 합리화한다. 세계 군비지출 중 미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에 36%로 5년 전보다 5%나 증가했다. 이라크전쟁의 명분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를 찾는다는 것이었지만 세계 무기시장에서 판매되는 거의 대부분의 무기들은 미국 군수산업에서 생산된 것이다. 이란과 이라크 전쟁 당시 둘은 서로 미국제 무기를 들고 서로를 겨누기도 했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국 내 공공성은 실종되고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만들고, 자국의 헌법정신에 맞지 않는 침략전쟁을 일삼는 전쟁광, 자본가 대통령 부시를 왜 미국의 국민들은 재선시켜 주는가? 미국민들은 무엇보다도 정치선전을 일삼는 상업미디어에 포위되어 있다. 90년대 들어 대규모 기업간 M&A는 미디어, 문화산업 역시 마찬가지였다. 거대 미디어자본들은 광고주들인 거대 산업자본, 금융자본의 이해와 일치될 수밖에 없다. 전쟁이 시작되면 진실은 죽어버린다. 그리곤 거짓말들이 세상을 채운다. 그리고는 세계의 중심엔 미국이 있다고 믿는다. 중심부 밖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하다. 이스라엘 국민이 팔레스타인의 공격으로 숨지면 90%가 방송되지만, 팔레스타인 국민이 숨지면 겨우 5%만 방송될까 말까 한다. 미국민 중 20%만이 외국 여행을 했다. 미국민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선택된 백성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백성일까?

더욱 심각한 것은 평온해 보이는 미국 내에서도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소위 말해서 노동자에 대한 계급전쟁이다. 당연히 승리자는 자본이고, 패배자는 노동자, 특히 비백인인 흑인과 히스패닉계 노동자들, 빈곤 여성들, 동성연애자 등 소수자들이다. 시장은 패배자들에게 자선을 베풀지 않았다. 그렇다고 국가가 나서서 책임지지도 않는다. 전태일의 청계천 공장이 뉴욕의 스카이라인과 공존하는 나라, 아프리카와 마찬가지로 굶어죽는 국민들이 즐비하고 이를 방치하는 정부가 호령하는 나라 그곳이 바로 미국이다. 정부를 비판하면 빨갱이로 몰던 매카시즘의 시대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부시의 친자본정책과 전쟁에 비판적이면 ‘반역자’로 몬다. 미국은 절대로 자유의 나라가 아니다. 사상의 자유는 억압되고, 계급적, 인종적, 성적 차별, 아니 차별보다 심한 분리와 폭압이 존재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포로들을 국제법이든 국내법이든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쿠바의 관타나모 기지 안에 기약 없이 가둬두는 나라가 바로 미국이다. 법치국가는 사전에만 존재한다. 로렌스 브릿에 의하면 히틀러, 무쏠리니, 프랑코 체제 등을 종합하면 14가지의 파시즘의 특징들을 조합할 수 있다고 한다. 그 중 미국 사회는 현재 11가지의 특징들을 보여주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꿈은 헐리우드에만 존재한다.

미국에 대한 비판적 분석서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 역시 미국의 패권, 헤게모니는 위기의 상황에 처해 있다고 분석한다. 정치, 경제적 위기, 지도력의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사실은 아시아나 라틴아메리카 그리고 유일한 라이벌 유럽의 많은 국가들의 많은 세계시민들은 미국을 우려하며 심지어 미국을 증오한다. 지배의 핵심은 힘과 동의라고 했던가? 힘만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제국에 걸맞지 않은 미국의 오만한 지도력은 점점 더 많은 적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땅에서 미국의 표준이 아니라 우리의 표준을 만드는 것이다. 미국을 아는 것은 세계자본주의를 아는 것이며, 바꿔 말하면 한국을 아는 것이기도 하다. 거울을 통해서 우리의 등을 들여다보는 것, 이 책의 목적이기도 하다. 냉전과 미국의 패권 속에 놓여 있던 한국 땅에서 새로운 흐름을 창출하는 것, 이것이 김동춘 선생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조각조각 흩어진 미국의 단면들을 모아 하나의 모자이크로 만들었다. 비록 추한 모자이크 작품이긴 하지만 한번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연실>2004.12월 : 선로를 복구하라!《탈선》,《네비게이터》

 

제목: 탈선
지은이: 앤드루 머리
가격: 12000원
발간일: 2003년 2월
출판사: 이소출판사


리뷰 출처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12월호 통권 126호
http://www.ynlabor.net

선로를 복구하라!《탈선》,《네비게이터》


양솔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redstar@jinbo.net


2000년대 거세게 몰아친 신자유주의가 단지 경제적인 궁핍만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세상을 자기의 뜻대로 창조하는 인간의 의지를 거세시키고, 모든 행위의 주체, 논리의 출발점을 자본으로 단일화시키는 것. 이것이 신자유주의 위험성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사회는 합리성을 중요한 작동논리로 상정하지만, 이상하게도 사람들의 삶은 점점 더 비합리적인 위험에 직면하고 만다. 따라서 우리는 합리성 자체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다. 어떤 합리성인가? 경제적 수익을 우선시하는 합리성인가? 사람들의 삶을 중심에 둔 합리성인가?



신자유주의를 이끌었던 나라 중 하나인 영국에서는 이러한 잘못된 합리성에 기초해 진행된 철도 사유화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고 결국 철도를 다시 국유화시키는 쾌거를 거두었다. 물론 아무런 대가 없이 진행된 것은 아니었다. 영국 국민들은 연이은 열차사고로 인한 불안감을 감내해야만 했고, 자신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사용되어야 할 막대한 부가 사유화의 혜택을 입은 소수의 자본가에게 공적 보조금이라는 이름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또한 안전은 고려하지 않은 채 달리는 열차는 결국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던 승객들에게 죽음을 선사했다. 죽음의 질주, 위험의 증대 속에서 사람들은 뭔가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영국 철도 기관사 노조(ASLEF)의 공보담당관인 앤드루 머리가 쓴 <탈선>(이소출판사, 오건호 옮김, 2003년)은 영국 철도 사유화의 참혹한 결과와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영국의 우익 연구소들이 내놓은 철도 사유화 방안은 효율과 경쟁이라는 미명하에 보수당 대처 정부의 광신적인 믿음을 배경으로 추진되었다. 노동당이 ‘집권 후 재 국유화’를 주장하는 가운데, 신속하게 추진된 철도 사유화는 영국 철도를 100여 개의 수많은 기업으로 분할시켰다. 화물 철도는 세 개의 기업으로 분할(이후 다국적기업 EWS의 민간독점으로 귀착), 열차운행은 25개의 기업으로, 여객 차량 임대회사는 3개의 기업으로, 선로유지 보수 회사는 3개의 기업으로, 선로, 역, 다리 등 시설은 레일트랙(Rail Track)의 독점으로 귀결되었고, 그 밑에 하청관계에 있는 수많은 분할 구조가 존재하게 된다. 철도산별노조(RMT) 위원장 지미 냅은 철도 안전성 심의 컬런 조사위원회에서 재하청 계약으로 ‘철도와 연계된 기업이 적어도 1,000개는 될 것’이라고 답변했다.



<민영 철도의 구조>




이러한 분할 체계 하에서 기존 고용과 노동조건에 대한 협상을 보장받았던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악화되었고, 기업 간 수많은 계약관계들 속에서 그 누구도 철도 운행과 안전과 관련한 총체적인 책임 속에 있지 않게 되었다.
사유화의 강력한 논리를 살펴보자. 영국 정부와 자본 측은 사유화를 토해 승객 수와 화물 운송량이 증가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이 과연 사유화를 통해 이루어진 것인지, 아니면 자연증가분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오히려 철도의 강력한 경쟁자인 도로운송과의 경쟁에서 밀리고 있었다. 더군다나 경쟁력 없는 노선의 경우 공공적 이익에 반함에도 불구하고 폐쇄되었고 이는 ‘수익성’의 논리 하에 운송량의 억제를 자본 측이 조장했음을 나타낸다. 또 다른 사유화 신앙의 주장은 납세자인 국민의 부담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납세자들의 보조금은 주식 보유자의 은행 계좌로 흘러 들어가고, 레일트랙 등에 대한 보조금의 주요 부담자는 국민들이다.

결국 국유화 시절보다 더 많은 자금이 보조금으로 지급되고 있는데, 국유화 시절에는 보조금이 그나마 철도 부문에 머물면서 쓰이고 있었던 반면, 사유화 이후에는 주주들과 사기업의 금고에 쌓이고 있는 것이다. 레일트랙은 매년 10억 파운드의 보조금을 받아, 주주들에게 3억 5천만 파운드를 배당금 명목으로 지급하고 있다. ‘경쟁’ 속에서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킨다는 정부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철도 각 부문은 경쟁 없는 독과점 체제로 출발했으며, 독점 이윤은 안전을 갉아 먹었다.


97년 런던 서부 사우스올 사고(7명 사망), 99년 10월 래드브로크 그로브 열차 충돌(31명 사망), 2000년 10월 햇필드 사고(4명 사망) 등 연이은 사고들을 거치면서 사건의 진상은 드러나게 된다. 선로의 균열 또는 자동 보호 장치 미설치와 노동강도 강화로 인한 기관사들의 신호 무시 무단 통과는 바로 이윤을 우선시하는 사유화의 예정된 결말이었던 것이다. 승객과 철도 노동자의 안전은 결박당했다. 유럽의 자동 보호 장치는 재정 문제와 경제성 논리에 따라 도입되지 않았다. 또한, 서비스의 질은 저하되었다. 열차 정시성은 하락하였고, 철도 요금은 물가상승률을 초과했다.



오랫동안 신자유주의 사유화의 폐해에 대해 연구해 왔고 지금은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실에 있는 오건호 씨가 이 책을 번역했다. 역자가 이 책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을 밝히고 있지만, 이는 역자 뿐 아니라 우리 철도 노동자를 비롯해 많은 활동가들에게도 똑같은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출간된 지 2년이 다 되 가지만, 한국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지금부터 읽어야 하는 책임이 분명하다.

<탈선>이 책으로 읽는 영국 철도 사유화 보고서라 한다면, 영화 <네비게이터 the Navigators>는 영화로 보는 사유화의 악몽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는 영국의 좌파 감독 캔 로치(Ken Loach)의 작품으로 철도 노동자들이 비정규직으로 전락하면서 겪는 고통과 사유화의 폐해에 대해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동료들은 철도 사유화 이후, 다른 일터로 쪼개지고 에이전시에 등록되어 비정규직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고 만다. 이들은 서로가 경쟁 상태에 놓여졌고 이전에 보장받았던 휴가나 수당 등은 사라졌다. 인간적인 애정이 가득했던 일터에는 이제 명령과 복종만이 남았고, 비용절감의 미명하에 안전 장치는 사라졌다.

노동자들 역시 일거리를 뺏기지 않기 위해 안전은 뒷전이다. 철도 보수 작업 중 다친 동료는 도로에서 차에 치인 것으로 위장된다. 일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영화 전반부에는 코믹하고 끈끈한 동료애, 화기애애한 일터의 모습이 나타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하의 영국 국민들의 팍팍한 일상, 고통스런 난관들이 점차 영화를 지배하게 된다.

11월 16일, 의왕역 근처 경부선 선로 철도 침목 교체 작업 중 한 철도 노동자가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인력 부족 상태에서 6일간 연속 야간 근무 상태에서 고인은 서행 표지판 철거 작업 중이었다고 한다. 올해만 9명의 노동자가 철도 현장에서 사고로 사망했다. 우리는 한 권의 책과 한 편의 영화를 통해 영국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신자유주의가 인간다운 삶을, 공동체적 사회를 ‘탈선’시킨다면 노동자의 사명은, 노동운동의 사명은 ‘탈선’된 열차를 제대로 돌려놓고, 부서진 선로를 복구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연실>2004.11월 - 민주노동당의 선택과 집중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11월 (125호)

민주노동당의 선택과 집중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 redstar@jinbo.net

노무현 정부 들어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용어가 부쩍 많아졌다. 최근에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용어가 그러하다. 산업 클러스터를 기반으로 하는 국가 경쟁력 모델을 제시한 미국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이클 포터 교수는 ‘무엇을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바꾸어 말하면 무엇을 선택하고, 어디에 집중할 것인가가 국가경쟁력의 핵심이라고 밝힌 바 있다.


클러스터, 허브 등의 용어에 이어 이제 경영학 서적 속에 등장하던 ‘선택과 집중’이라는 용어가 한국의 모든 분야, 모든 뉴스에 등장하고 있다. LG 경제연구원, 삼성경제연구소 등등의 재벌 및 자본 연구소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업종과 산업, 체육계, 학원계, 심지어 정치권까지 ‘선택과 집중’을 언급하지 않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 민주노동당까지도 얼마 전 끝난 국정감사 과정에서 열린우리당 의제가 겹치면서 당의 독자적 이슈 제기가 부족했다고 평가하며, ‘선택과 집중’ 전략이 필요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의 ‘열린우리당 2중대’ 문건 유출 논란 과정에서도 김창현 사무총장은 당의 ‘선택과 집중을 통해’ 당을 이끌어 가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저들이야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경영학 용어가 익숙하겠지만, 우리에게 낯선 ‘선택과 집중’을 저들의 논리와 동일하게 사용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한다. 가용 가능한 자원과 선택지가 한정된 상황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렇다고 무엇을 선택하고 선택하지 말 것인가는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민주노동당 내에서 비정규직 투쟁이 우선인가, 국가보안법 폐지 투쟁이 우선인가 하는 점을 놓고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이 두 투쟁이 대립될 수가 없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쟁점으로 불거진 데에는 민주노동당 내적으로는 열린우리당과의 ‘개혁공조’와 곧 이어진 파기, 민주노동당 내 당면전략을 둘러싸고 회람된 소위 ‘열린우리당 2중대 논란 문건 파동’ 등이, 당 외적으로는 열린우리당의 의제 선점(소위 4대 개혁입법)과 보수수구세력들의 집결과 준동, 정부의 비정규보호법안(양산법)이 한 원인으로 작용했다.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싸고 민주노동당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이었을까? 대중투쟁의 기운을 높일 수 있는 기획이 전혀 없는 상태 속에 열린우리당이 선점한 의제에 한나라당이 적극 반발하면서 생긴 정치적 냉각상태 속에서 민주노동당의 존재는 사라져 버렸다.


사학법과 관련, 전교조는 10월 말일 한 차례의 집회 이후로는 그다지 의미 있는 행보를 보이지 못하고 있고 내부적으로는 위원장 선거 국면으로 넘어갔다. 언론관계법과 관련, 언론개혁 국민행동이 국회 앞 농성을 벌이고 있지만, 언론관계법과 관련한 주요 타격 대상은 안타깝게도 한나라당에 쏠리고 있다.


열린우리당이 내놓고 있는 4대 개혁입법은 사실 개혁입법이라 할 수 없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대신 형법개정안을 채택했고, 이적단체죄는 계속 지속되며, 간첩죄 처벌이 보강되기까지 했다. 언론관계법 역시 신문사의 특정인 소유지분 제한 제도가 제외되면서 그 개혁적 의미는 사라졌다. 사립학교법 개정안에는 학교장의 교직원 임면권 부여, 재단의 공금횡령 관련 규정에 대해서는 현행 사립학교법에서 재단의 공금횡령 사실이 알려져도 15일 이내에 변제만 하면 처벌을 받지 않는 이른바 계고기간 삭제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

더군다나 누더기 개혁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이 보수 세력의 반발을 무릅쓰고 정면으로 돌파할 의지가 있는지도 미지수이다. 열린우리당 이부영 의장은 ‘산이 높으면 돌아간다’는 이른바 개혁우회론을 제기했고, 열린우리당 내 한나라당과의 타협파가 상당수 존재한다. 한나라당 역시 보수파의 거센 압력 속에서 박근혜 대표가 당의 명운을 걸고 ‘4대 악법’을 막겠다고 했지만, 내부 의견통일이 완전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4대 입법의 연내 일괄처리는 아직 그 추이가 명확하지는 않은 상태이다. 또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양당의 타협의 가능성도 매우 높다. 4대 입법의 결정물은 열린우리당의 안보다 더욱 후퇴한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도 매우 높다. 국가보안법 역시 상정조차 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입법안에 대해 ‘견인’을 이야기하면서 민주당-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의 개혁공조를 단행했었다. 하지만, 민주당은 열린우리당보다 훨씬 보수적인 당론을 가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열린우리당의 대한나라당 투쟁의 엑스트라 역할 밖에는 하지 못했다. 견인은커녕 개혁공조가 지속되는 동안 민주노동당은 열린우리당의 시야에 들지도 않았다는 것이 좀더 정확한 평가일 것이다. 김창현 사무총장은 ‘한나라당에게는 각을 세우고 열린우리당의 기회주의에는 가차 없이 공격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개혁입법을 주도한 열린우리당의 행보가 부유하는 자유주의세력의 기회주의인지, 정국을 주도하면서 지배세력의 점유권을 휩쓸기 위한 치밀한 전략인지, 아니면 협상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주고받을 공수표의 목록 만들기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더군다나 내년 4월 재보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보안법 형법 대체를 연내 통과까지 상임위를 거쳐 본회의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지, 아니면 재보선 전까지 미룰지도 미지수이다.


민주노동당이 4대 개혁입법과 관련해 선택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열린우리당과의 공조이고 선택해야 할 것은 4대 개혁입법을 둘러싼 대중투쟁의 조직화였다. 단지 국회 앞 농성으로 거대여당을 견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거야말로 오산이다. 각각의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 각론적인 차원에서 공조 또는 견인하는 것과 당대당 공조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더군다나 잃을 것과 얻을 것이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공조를 유지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지를 좁히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 것이었다. 만일 지금 이 시점이 국가보안법 폐지, 사학법 개정 등을 이룰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더더욱 대중투쟁과의 접점을 만드는 데 당력이 할애되어야 한다. 4대 개혁입법 투쟁을 대중투쟁 속에 녹아 내면서 시너지효과를 높이지 않는 이상, 개혁성도 실종되고 민주노동당 역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당장 직면한 문제는 4대입법을 둘러싼 문제보다는 현재 정부의 비정규보호법안에 반대하는 민주노총의 총파업과, 정부의 강력한 탄압과 자체 동력의 소진 속에서 탄압받고 있는 공무원노조 문제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의 투쟁을 정치적으로 엄호하는 역할을 자진 선택해야 한다. 그렇다면 누구와 정치적 적대선을 그어야 할 것인가? 실체도 없고, 깡다구만 있는 ‘반핵반김 국권수호 국민협의회’와 선을 그을 것인가? 한나라당 김용갑과 선을 그을 것인가? 공무원노동조합을 유명무실화하려 하고, 비정규양산법을 상정하려는, 기만적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을 일으킨 정부여당과 선을 긋지 않고서는 대중투쟁과 정치투쟁의 결합이라는 구호는 한가한 장식에 불과하게 된다. 현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판을 마련하고 직접 등장해 전투를 벌이고 있는 것은 열린우리당이지 한나라당이 아니다. 또한, 기업도시법, 한국형 뉴딜 정책 등 경제파탄과 재벌특혜 정책들 역시 열린우리당의 주도 속에서 국회통과를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야당과 싸우는 야당은 야당인가? 여당인가? 국회공전 속에서 보수준동에 대한 과다한 의미부여는 열린우리당의 주도성을 가리는 착시현상을 가져왔다. 민주노동당 최고위원회가 보지 못한(또는 않은) 것은 이해찬의 막말과 한나라당의 막무가내가 실은 칼로 물 베기로 끝날 싸움이었다는 점이며, 이런 애들 장난 같은 싸움에 견인이니 양비론이니 읊어대며 누구 편을 들 것인가 따지는 동안 이해찬은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한나라당은 용서 같지 않은 용서를 하고 말았다.


비정규직 양산법에 대한 총력투쟁은 다른 선택지가 없는 상황 속에서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의 강요된 ‘선택과 집중’점이다.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입법이 연내 통과되지 못한다면, 또는 노무현 집권 시기 동안 계속해서 민주노동당의 줄서기를 강요하면서 등장할 ‘개혁공조’ 논란 때마다 다시 되짚어 보고 떠올려야 하는 것은 이번 민주노동당 내 문건파동과 관련한 논의 과정이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열망 속에서 그나마 10석의 의원을 만들어낸 것이 의미를 발하려면 되풀이되는 논란과 실수가 아니라 구체적인 정세 속에서 주체적으로 만들어 낸 ‘선택과 집중’이어야 한다. 참으로 등장인물들이 많은 현재의 정치세력 속에서 역동적인 주동성마저 없다면 거대한 소수는 ‘거세당한 소수’ 또는 ‘거대함 속의 소수’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과거 보수야당 신민당의 개헌 현판식과 같은 주도력마저도 보이지 않는다면 노동자 정당임을 자부하는 민주노동당의 현실적 의미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연실>2004.10월 -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신개발주의에 위협받는 노동자와 도시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10월(124호)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신개발주의에 위협받는 노동자와 도시


양솔규(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요즘처럼 도시가 주목받는 시대가 있었을까? 기업도시, 경제자유구역, 혁신도시, 행정수도 이전 등 생소한 단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면서 대체 다가올 변화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난감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진행 속에서 내외 자본은 한국 경제구조의 변화와 새로운 분업체계를 요구하고 있다. 이른바 세계 자본주의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기존의 보호주의에 입각한 공업형 수출주도 산업정책과는 달리, 소위 ‘개방형 (신)통상국가론’이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면서 조립․가공뿐만 아니라 광고, 금융, 유통, 판매, 물류, 교통, R&D 등에 점점 더 주목하게 되었다. 경제, 산업정책과 연관된 도시의 재구조화는 IMF 위기 이후 시작된 구조조정 프로그램에 영향을 받으면서 내외 자본의 요구에 종속된 상태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으론 지역 간 불평등의 심화, 다른 한편으론 도시 내 불평등의 심화 속에서, 지자체를 중심으로 한 지역 내 성장연합은 누가 더 자본에 기생적인 존재인지를 놓고 심각한 경쟁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중앙정부든 지자체든 모두가 성장주의에 긴박당한 채 조급증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자본주의에 고유하게 내재하고 있는 ‘불안’이라는 요소는 한 개인의 삶만이 아니라 집단적 정체성에도 깊이 스며들어 있다. ‘1990년대는 신고전주의적 시장자유화라는 거의 유토피아적인 조건 속에서 전지구적 도시개발이 이루어진 역사상 최초의 10년이었다’.1)


얼마 전 부산과 광양의 경제자유구역 사업에 대한 전윤철 감사원장의 비판이 알려지자, 부산과 전라도 지역의 여론이 비등(沸騰)했다. 8월 20일 전윤철 감사원장은 “3개 경제자유구역 추진사업에 대한 감사를 해보니 걱정스럽고, 문제점이 많다”며 “지역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채 경쟁적으로 물류, 첨단, 관광산업을 유치함으로써 예산의 중복투자 등이 우려 된다”고 밝혔다.

감사는 감사원 내 국가전략사업평가단(이하 평가단)을 통해 2003년 말부터 이루어지고 있고, 2004년 9월 중 경제특구사업 개선방안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평가단은 ‘국가전략사업에 관한 감사’, ‘동북아 경제중심 추진사업에 관한 감사사항’, ‘신행정수도 건설 등 국가균형발전사업에 관한 감사’ 등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되자, 부산일보는 사설에서 ‘중복 투자가 되거나 과당경쟁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렇다면 처음부터 경제특구로 지정하지 말았어야 옳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경제특구 지정 시 전윤철 감사원장이 경제부총리로 재직 중’이었기에 지금에 와서 특구 선정이 잘못됐다고 운운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산항을 사랑하는 모임’과 ‘부산경제살리기 시민연대’ 등도 전 감사원장의 발언을 성토하고 나섰다.

그러나 전윤철 감사원장은 인천 경제자유구역의 경우에는 적극적인 집중 지원을 언급했다. 이를 두고 ‘신지역주의 단체’들은 ‘감사원장의 중앙집권적 사고방식, 지역균형발전을 위해하는 발언’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부산 지역의 일부 여론이 침소봉대되고 있는 가운데 파이낸셜타임즈의 사설은 다소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 신문은 ‘경제특구가 실적없이 표류하고’ 있는데 늦게나마 ‘감사원이 특별감사에 나선 것은 다행스럽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내세우는 근거 중 하나는 교통개발연구원이 실시한 부산, 광양항에 대한 다국적기업들의 동북아 물류거점 선호도 조사에서 9개 조사대상 중 8위를 기록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파이낸셜타임즈는 경제특구의 성공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 지원만 주문할 뿐 구체적인 문제점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2)

경제자유구역 주무부처인 재경부 뿐만 아니라, 각 부처와 동북아시대위원회, 국가균형발전위원회 등 다른 부처, 기관들도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다. 2004년 6월 교육인적자원부는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인학교에 내국인 학생비율을 해당 학교장이 결정할 수 있게 하고, ‘해외송금 금지 장벽’도 없애기로 결정했다. 이는 전교조 등 노동․교육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대했던 ‘교육개방’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사항이기도 하다.

2004년 8월, 오갑원 재정경제부 경제자유구역 기획단장은 외국계 병원에서 내국인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침을 확정했다. 보건의료노조와 의료개방공대위의 반대는 간단하게 무시되었다. 국내의료법에서는 금지된 영리(營利)병원 설립도 허용키로 했고, 수익금의 해외송금과 자본 투자 등이 자유로워지게 되었다. 작년 경제특구법이 통과된 이후 노동계와 시민사회 단체들의 움직임이 둔화된 가운데 현재 제반 사항들이 아무 저항 없이 강력하게 관철되고 있는 상황이다.

<표1>과 같이 인천경제자유구역의 경우 자본 및 대기업의 수도권 개발이 상대적으로 제한되어 있고, 거대한 시장과의 인접성(서울 및 경기, 중국)이 높기 때문에 투자유인 효과에 있어서 지방의 경우와는 상황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3)

그러나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청과 광양경제자유구역청이 출범했으나 투자 유치 실적은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부산-진해경제구역청의 경우에는 3월 개청 이후 양해각서(MOU) 체결 실적마저 전무한 상태이다. 공장용지도 아직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고,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재원 역시 부족한 상태이다. 재계가 감세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원에 필요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예산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현재 경제자유구역의 문제점은 한국 산업 성장엔진에 대한 숙고 없이 노동, 환경 등의 희생을 대가로 ‘저진로(low road)’를 지원하는 마인드를 가지고 구성되었으며,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기조가 유지되는 한 정책추진력의 소진이 불을 보듯 뻔하다는 사실에 있다.

 


<표1 인천경제자유구역 투자유치 실적>

(단위: 달러)

시기

투자자

내용

투자규모

02년 1월

게일(미), 포스코

송도 개발, 컨벤션센터 건설

127억

2월

백스젠(미), KT&G

항암제 생산설비 투자

1억5천만

03년 6월

아멕(영)

제2 연륙교 건설

11억

7월

클럽폴라리스

골프장 개발

1억

11월

TNT(네덜란드)

물류센터 건설

8백만

04년 1월

DHL(미)

물류센터 건설

3천4백만

3월

한국중화총상회(화교)

차이나시티 건설

20억

4월

P.H 컨소시엄(미,독)

송도신항 건설

15억

4월

아멕(영)

복합레저타운 조성

20억

5월

보난자(미)

R&D센터, 쇼핑몰, IT 빌딩

3억1천만

6월

보난자(미)

유방암 스크리닝센터

3천만

8월

보난자(미)

외국학교 설립

2천만

8월

MS, HP, 삼성, LG 등

IT 비즈니스 지원설비

10억

(자료: 인천경제자유구역청)


그렇다면, ‘자본의 천국’처럼 보이는 경제자유구역에(특히 부산-진해, 광양) 왜 외자유치가 되지 않고 있는 것일까? 추후 세밀한 비교 검토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우선적으로 들 수 있는 것은 IMF 위기 이후 한국의 경제시스템의 변화이다. 현재 한국에 들어온 해외자본들은 ‘투기자본’들이다. 이들은 장기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기 수익률에 관심을 갖는다. 또한, 중소기업 및 벤처보다는 우량 대기업을 투자 대상으로 설정한다. 결국 우량 대기업들이 경제자유구역에 투자를 해야 하지만(해외자본 10% 이상이면 투자 조건이 성립한다. 따라서 한국의 대부분의 우량 대기업은 경제자유구역에 투자할 자격이 있다), 이들은 현재 경제 조건 하에서 (정부의 각종 지원에도 불구하고) 설비투자보다는 내부 유보 내지는 해외투자를 선호하고 있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근접한 거리에 한국보다 더욱 매력적인 조건을 지닌 경쟁상대(중국 칭다오, 심천 경제특구 등)가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는 보다 더 자본주도적인 기업도시의 추진 속에서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80년대 말부터 추진된 한국의 ‘생산의 세계화’ 전략은 ‘금융의 세계화’에 하위 종속된 상태이다. 자본의 입장에서는 대등한 노사의 ‘대타협’에 의한 고진로(high road)가 아닌, 노동의 배제 속에서의 고진로(high road)를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깨끗한 도화지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것이다. 소위 산업 클러스터라고 일컫는 지역혁신체제를 자본은 기업도시와 등치시키면서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더군다나 경제불황 속에서 각 지자체는 지역경제 활성화 대책을 기업주도 개발주의에 의탁하려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세 번째로는 현재 경제자유구역과 관련한 제반 사항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부산과 같은 전통적인 도시에서는 용지 확보가 쉽지 않고,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설사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지더라도, 기업도시처럼 효율적으로 빨리, 이해당사자들의 저항 없이 이루어지는 방식보다 나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에 자본은 망설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추후 전경련이 추진하고 있는 기업도시와 경제자유구역을 비교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

넷째, 경제자유구역의 경우에는 동북아중심국가 구상 하에 기획되었다. 애초 금융 허브 건설이 추진되었으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물류/유통 기능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따라서, 자본의 입장에서는 참여의 폭이 넓지 않으며, 설치지역도 인천, 광양, 부산-진해 등으로 제한된 것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다섯째, 소위 선별과 집중 전략이라는 국가 경제 발전 방안은 각 지자체간 이해관계의 대립, 정치적 문제로의 비화 등으로 차질을 빚고 있다. 부산-진해 및 광양 경제자유구역이 물류 중심지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부산신항 명칭을 둘러싼 부산과 경상남도 간 이해대립, 부산/광양을 거점으로 하는 투포트(Two-Port) 정책 포기 또는 재기 논란에서 보듯이 첨예한 지역간 대립은 앞으로 기업도시, 혁신도시4), 과학단지구역 등의 유치에서도 재현될 것으로 보인다.

이상, 부산-진해, 광양 경제자유구역 축소조정 논란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역의 개발을 둘러싼 각 이해당사자들의 ‘성장연합’이 ‘경제자유구역’의 취지와는 무관한 이권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경제자유구역은 ‘지역분권’ 또는 ‘국토균형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신지역주의’의 물질적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양적 성장 지상주의’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지역민 전체의 고른 발전이라는 관점보다는 ‘특정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단지, 경제자유구역 문제뿐만이 아니라, 부산 영도대교 문제, 지역 산업정책 등 모든 부분에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이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 전체가 지역개발의 블랙홀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으나, 합리적 룰과 통제 시스템은 전무한 ‘개발 지상 무정부’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 당연하게도 행위주체들은 ‘이해관계’에 따른 행위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셋째, ‘부산시민’이라는 호명 속에서 시민 일반이 ‘이해당사자’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이 발생한다. 결국 노동자, 서민, 농민, 중소제조업자, 주부, 학생 등 다양한 계급계층의 이해는 사라지고, 각 주체들에게 다르게 적용되는 정책 효과는 논의의 장에서 빠져버리게 된다. 이 틈을 지역 언론사와 개발업자, 이권관련자들이 ‘부산시민 전체를 대리, 대표’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다.

넷째, 최근 부산 해운대구 수영만매립지 개발을 둘러싼 특혜 의혹에서도 볼 수 있듯이(2004년 10월 7일 지구단위 입안권이 해운대구청에서 부산시로 넘어간 뒤 초고층 아파트 개발 특혜논란이 불거짐), 지자체의 개발주의는 도를 넘어서고 있다.

경제자유구역 문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경제자유구역이 노동자 서민의 목을 죄어오고 있는 상태가 아니다. 국민의 삶을 담보로 한 경제자유구역 설립은 초입 단계에 있다고 봐야 한다. 법안 통과가 곧 투쟁의 종결을 의미할 수는 없다. 재계와 정부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노동자, 민중의 삶을 중심에 놓는 ‘산업정책’을 만들지 않는 한 민주노동당은 ‘반대하는 존재’ 이상의 의미를 얻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감사원 감사로 불거진 센텀시티 조성사업 문제점

 


2004년 7월부터 8월 사이, 감사원은 부산시 감사결과를 공개했다. 그 중 센텀시티 조성사업과 관련해서 많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감사원의 감사결과를 보자.

 


센텀시티 마스터플랜과 실시계획에서 지원시설용지를 전시, 문화관광, 상업업무, 유통시설 용지 등 4개 구역으로 구획하였으나, 각 구역별로 건축물의 제한 등 세부개발계획을 수립하지 아니한 채 분양하였기 때문에 유통시설 용지와 상업업무시설 용지 등에 공동주택이나 오피스텔 등이 건축되거나 건축예정으로 있어 당초의 도시개발 구상과 다르게 주거단지화 우려.

센텀시티 조성에 소요되는 자체재원이 부족하여 1996년부터 2001년까지 계 4,900억 원을 차입함에 따라 2003년 말까지 1,729억 원의 이자를 부담하였고, 앞으로도 연간 167억원의 이자를 부담하여야 하는 등 재정압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조성된 부지를 조속히 매각하여야 하나……도심위락지역을 최고가에 의한 경쟁입찰이 아닌 부지 전체를 동일인에게 일괄 매각하는 것으로 계획하고 있어 매각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거나 매각성사 여부 불투명

감사원, 감사결과 처분요구서-부산광역시 일반감사, 2004년 3월

 


문제는 마스터플랜 단계에서부터 졸속 계획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계획 조차도 수시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국민들의 세금은 개발업자와 금융업계에 넘어가게 되고, 다른 노동자, 서민들에게 쓰여야 할 돈은 바닥나고 정부 재정은 압박받게 된다.

부산시는 센텀시티 개발과 관련해 특히 제2 BEXCO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BEXCO는 작년부터 흑자(당기순이익 3억 6000여 만원)로 돌아섰고 가동률은 해마다 증가해 2001년: 26%, 2002년: 40%, 2003년: 46%, 2004년: 51%에 이르렀다.

 


하지만, 국내외 컨벤션 산업의 과잉투자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어 제2 BEXCO는 위험성이 매우 높다. 중국은 90년대 이후 매년 컨벤션 산업이 20%씩 급성장해왔으나, 공급 과잉 폐해가 심각하다. 일본 역시 과잉성장한 컨벤션 산업을 다시 부흥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각 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컨벤션센터를 추진하고 건립하면서 2007년-2009년에는 과잉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서울(COEX), 부산(BEXCO), 대구(EXCO), 제주(ICC)가 운영중이고, 경기 고양, 광주, 경남 창원, 3곳이 2005년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다. 울산과 대전, 인천도 대규모 컨벤션센터 건립을 추진중이며, 경북도 정부에 예산 지원을 건의한 상태이다. 현재의 가동률을 기준으로 제2 BEXCO를 건립하겠다는 것은 무모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창원의 컨벤션센터와 부산 BEXCO는 인접거리에 있어 중복투자가 될 것이 뻔하고 서로가 제살 깎아먹기를 할 것이다. 이미 건립중인 창원 컨벤션센터 운영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제2 벡스코의 경우에는 민주노동당 부산시당과 민주노동당 경남도당이 함께 대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APEC 회의가 부산-제주에서 개최됨에 따라 지역에서는 컨벤션산업에 대한 기대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고, 이를 빌미로 외국인대상 대형 카지노장 건설 논의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내년 중으로 BEXCO 타당성 용역 조사가 끝나 보고서가 나올 예정이다. 울산의 경우에는 타당성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컨벤션센터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의 경우에도 조사 결과와 상관없이 신개발주의 욕망은 쉽게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기업도시 건설 경과

 


2003년 10월 전경련은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름하여 ‘주택가격 안정과 지방균형 발전을 위한 기업도시 건설방안’이 그것이다. 올해 2월에는 심각해지는 일자리문제와 연결하여 기업도시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이후 전경련이 제안한 기업도시 개발에 대해 6월 10일 이헌재 재경부 장관이 긍정적으로 화답하면서 기업도시 건설은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전경련의 제안을 참고해 건설교통부는 ‘민간복합도시개발특별법(안)(일명 기업도시 특별법)’을 마련했고, 9월 21일 법안을 공개했다. 전경련도 기업도시와 관련 대 정부, 대 언론 로비를 강화하면서 정부를 압박해 나가고 있다. 9월 22일 건설교통부는 공청회를 개최했고, 10월 8일 당정 협의를 거쳐 11월 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고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기업도시 특별법에 우호적인 상황에서 통과가 유력시되고 있다. 또한 정부는 연내 1-2곳의 기업도시를 발표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열린우리당과 노무현정부가 기업도시 특별법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경제위기 논란의 와중에서 현 정부는 내수경기의 심각함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이해찬 총리는 경제회생을 위해, 특히 건설경기의 연착륙에 역점을 두고 있다면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민간자본 투자 확대를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경부 역시 ‘뉴딜 정책’을 본받는다며 사회기반시설 중심의 재정지출 확대를 주장했다. 전경련 역시 내수 진작과 고용 창출 효과가 큰 ‘복합서비스 클러스터 단지(대체에너지+관광레저+유통)’의 조성을 제안했다.

두 번째로는, 정치적인 이유를 들 수 있다. 현재와 같은 불황 속에서는 열린우리당이 2006년 지자체선거에서 전국적인 압승을 기대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지방선거를 겨냥한 내수경기 진작을 염두하고 있는 방책으로 보인다. 2006년 6-7월경에는 기업도시 개발 실시계획 승인과 기업도시 건설 착공이 예정되어 있다.

세 번째, 재벌기업들에 포위당한 노무현 정부로서는 기업이 요구하는 신자유주의적 규제 완화와 특혜를 제공해주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 대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의제를 둘러싼 개혁-보수 논쟁과는 별개로 경제분야에서의 재벌기업 의존성은 여야구별없이 점차 심화되고 있다. 재벌에게 상대적으로 강하게 저항하던 정권 초기의 모습은 이제 대등한 파트너쉽을 지나 알아서 기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기업도시 내용 및 쟁점

 


전경련이 내세우는 기업도시 모델은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스웨덴의 시스타 사이언스파크이다. 전경련은 이러한 모델을 원용해 한국적 기업도시를 건설해 주택가격 안정, 지역균형발전, 일자리창출과 고부가가치 산업혁신 시설을 갖춘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전경련은 건교부가 제시하는 수도권과 충청권 이외 지역 기업도시 추진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이 내세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애초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산업뿐만 아니라 교육, 보건, 주거, 문화, 레저 등 도시기능의 일부가 아닌 자족형 모델을 기업도시의 중요한 요건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전경련과 자본이 동원하는 수사에 불과하다. 실제로는 자본의 투기를 위한 토지수용권과 개발이익 환수가 핵심이다. 카지노와 놀이동산, 대규모 호텔이 자족형 모델인가? 전경련의 주장에 따르면 카지노 옆에 자립형 고등학교, 학교 옆에 놀이동산과 고급호텔, 대형병원이 이어지는 희안한 조감도가 그려질 수밖에 없다.

전경련은 기업도시를 내세우면서 산학연(産學聯) 지역혁신체계구축(RIS)을 매우 중요하게 제시하고 있지만, 유치 희망지역 내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진 곳은 포항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전경련은 노동권의 유연한 적용 하에 노동할 수 있는 권리(대체근로 인정, 무노조 가능 등)까지도 요구하고 있다.5)

 


<표2 기업도시에게 주어질 혜택>

토지

기업이 주도적으로 토지 수용, 개발 처분

학교

외국인 대학 및 기업의 대학설립 허용

병원 및 레저

기업이 종합병원 설립, 체육시설에 기업 이름 사용

인프라

기업이 개발이익으로 건설, 도시 밖은 정부가 부담

규제

출자총액제한 적용 제외, 부채비율 규제 예외

노동시장

해고제한 조건과 근로자 파견제 규제완화

조명래: ‘외국사례에 비추어 본 기업도시와 경제정의’에서 재인용

 


기업도시의 네 가지 유형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유형은 관광레저형이다. 정부도 올해 안에 결정될 기업도시 예정지 2곳도 관광레저형 기업도시로 상정하고 있다. 또는 산업형이나 관광레저형, 물류형과 관광레저형이 혼합된 형태의 기업도시도 예상할 수 있다. 이는 개발초기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을 부동산 투기를 통해 쉽게 보전할 수 있다는 계산을 기업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6)

 


<표3 예상되는 기업도시>

기업

유형

예상도시

비고

금호

물류 및 관광레저형

광양항 배후, 새만금

 

동부

 

 

 

롯데

복합물류, 관광레저

김해

 

벽산

 

 

 

삼성

 

 

(충남탕정 좌절)

에버랜드

 

 

 

포스코

산업교역 및 지식기반형

포항

 

한진

물류 및 관광레저형

서귀포 또는 김해

 

한화

복합관광레저

여수 방산공장 부지

 

현대자동차

자동차 R&D 및 지식기반형

 

(경기화성 희망)

LG필립스

복합레저단지

새만금

(경기파주 희망)

SK

 

 

 

현대

골프장 등 레저단지

현대소유 서산 간척지

 

 


<표3 기업도시 유치 희망지역>

 

(전경련에 유치신청을 낸 지자체는 당초 9곳에서 23곳으로 확대)

지역

특징 및 인센티브

도시형태

인천

경제자유구역

경제자유구역, 영어인프라 확충

수도권 규제 완화, 원스톱 서비스

R&D형

충주

충주 첨단산업단지 부근

산업형

진천

신행정수도와 인접

편리한 교통, 풍부한 용수, 토지확보 제공

산업형, 문화-레저형

음성

음성 유통단지(2007년 완공예정)

물류형, R&D형

서산

20만t급 선박 입항가능

산업형(화학)

원주

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와 연계

진입도로 등 기반시설 지원

R&D형(의료산업)

군산

최적의 항만조건, 풍부한 용수

추가적 부담없이 부지 확보 가능

산업형, 물류형

익산

투자재원 확보(총1,000억원)

입주업체에 싼 가격에 토지 제공

산업형

전주

기계, 자동차 부품산업 클러스터 조성

장기토지 이용권 부여, 세금 감면

산업형

목포

 

산업형

광양

경제자유구역

신덕: 주거단지, 외국인 학교, 병원건립

화양: 관광, 레저 휴양단지 조성

산업물류형, 문화-레저형

무안

 

산업형

포항

신항만 배후단지 기본계획 수립 완료

지방세 감면, 고용이전보조금 지원

산업형

대구

달성군 구지면 용지 대구시 소유

국가예산 확보, 현재 진행중인 사업

R&D형, 산업형

영천

대구의 배후주거단지 조성계획

도시기본계획 반영, 기반시설 전액부담

산업형

김해

부산, 창원, 마산 등 인접 대도시 중심

산업형

진주

필요부지 확보 및 입지기반 시설 지원

산업형

사천

첨단항공 및 부품소재산업 클러스터 추진

산업형

밀양

토지매입에 따른 행정지원

R&D형, 산업형

창원

산학연 네트워크로 경쟁력 우위

산업시설과 연계한 R&D 시설 집적화

R&D형, 산업형

마산

마산-시모노세키 직항로 운항

수출자유구역, 창원등과 인접

산업형

통영

부지확보 및 도시기본계획 변경

상하수도시설 제공

문화-레저형

서귀포

국공유지로 싼값에 매입 용이

제주국제자유도시

문화-레저형

(출처: 한국경제신문 2004.10.7 A37면)

 


이러한 전경련의 주장과 건교부의 특별법안이 발표되자 노동사회단체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이 법안의 문제점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도시 토지수용권 문제이다. 건설교통부의 특별법에 따르면 민간기업이 대상 토지의 50%를 협의매수할 시 나머지 50%의 토지에 대한 강제수용권한을 기업에게 준다. 전경련은 아전인수격으로 100% 토지수용권을 기업에게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평소 시장자유주의를 내세워 온 전경련이 엄연히 사유재산인 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권한을 기업에게 부과하는 것은 ‘시장을 부정’하는 것이다. 공공기관 등이 토지를 수용할 때도 공공적 목적에만 국한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러한 토지수용권의 기업 이전은 명백하게 헌법에 위반된다. 이에 손호철 교수는 ‘재벌 사회주의’라는 용어를 쓰면서 냉소에 찬 비판을 가하고 있다.

둘째, 개발이익 환수 문제이다. 정부의 안에는 기업도시 조성과정에서 70%의 개발이익을 환수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 개발이익을 따질 것인가 하는 문제가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정부의 안대로 하자면 개발이익은 전체 개발이익의 70%가 아니라 15% 정도에 불과하다. 건교부는 준공과 완공 두차례에 걸쳐 개발이익을 산정하고 환수할 방침이고, 기업의 직접사용 토지분에 대해서는 예외로 했다.

전경련은 이를 개발이익 환수율을 명문화하지 말고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간 협의를 통해서 결정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불황과 지역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지역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는 지자체와 기업간 관계는 대등한 협의가 불가능하다. 지자체는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각종 인센티브 경쟁에 돌입한 상태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전경련은 꿰뚫고 있다.

셋째, 출자총액제도 예외 인정 문제이다. 정부의 안에는 사회간접자본 투자 금액에 대한 출자총액 제한 제외를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출자총액제한제를 풀지 않으면 기업의 투자는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재벌을 그나마 최소한으로 규제하는 출자총액제한제를 기업도시법안에서 예외로 규정할 경우 앞으로 재벌의 각종 규제 폐지요구를 정부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넷째, 기업의 학교와 병원 설립 허용 문제이다. 경제자유구역에서의 허용 문제와 마찬가지로 병원 및 학교를 영리법인화할 경우 보건과 교육체계는 심각한 혼란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또한 의료비의 대폭 인상과 불평등한 교육, 공교육의 사유화로 인한 공공성 훼손이 우려된다.

다섯째, 건교부안에는 각종 세제혜택이 경제자유구역과 같은 수준으로 제시되어 있다. 위의 사항과 마찬가지로 재벌기업들에게 특혜를 주는 기업도시 특별법은 재벌 의존성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여섯째, 환경 파괴의 문제이다. 애초 전경련은 주택가격 안정을 내세우면서 기업도시를 제의했지만, 이는 고양이가 생선의 안위를 걱정하는 꼴이다. 기업 도시 유형 중 관광레저 도시개발에 기업의 선호도가 가장 높은 상황에서 전국토의 위락시설화, 카지노화가 우려된다. 이게 과연 산업의 혁신과 성장동력 창출과 무슨 관련이 있겠는가?

일곱째, 건교부는 노동권 규제완화는 빠져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재 비정규직 법안을 통해 파견제 확대 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어불성설이다.

조명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전경련의 기업도시법안을 비판한다. 첫째, 기업의 독점적 지배가 관철되는 도시란 새로운 산업패러다임과도 맞지 않고 지방민주주의 정신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둘째, 해외 기업도시 사례에 대한 전경련의 벤치마킹은 잘못되었거나 기만적으로 제시되었다. 조명래 교수에 따르면 신산업공간의 성공요인은 지자체-주민-기업간 협력 네트웍을 구축하는 데 있지, 법적용의 예외를 통한 개발이익에 있지 않다. 이는 정경유착을 통한 자본의 치외법권적 공간에 불과하다. 셋째, 전경련이 내세우는 기업도시의 공익성은 허구다. 사익의 합이 전체의 공익과 같지 않다. 넷째, 법규의 예외적용은 공동체성을 훼손한다. 다섯째 토지수용의 문제의 경우 자본주의의 근본원리인 사적소유제를 자본 스스로 부정한다. 여섯째, 지방자치단체의 계획고권(計劃固權)의 포기이다.

가장 우려되는 바는 전국에 걸쳐 부동산 투기가 과열되고, 전국토가 개발의 열기 속에 빠져드는 것이다. 기업도시법은 사실상 재벌기업이 관철한 부동산투기법과도 같다. 또한,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특별법 등 재계의 요구가 점차 관철되면서 예외법규로 인해 노동법, 교육법, 제반 관련 법규들을 통한 재벌 기업들의 규제가 사실상 무력화되는 상황이다. 예외법규의 탈예외화는 정상법규의 예외화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전면적 친자본법의 완성이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노동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은 너무나도 친재벌적인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정부가 정부이기를 포기하고 투기장을 전면화시키는 경제 망치는 악법’이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비생산적 투기와 투자를 생산적 투자로 이끌어야 할 노무현 정부의 경제팀은 전경련의 ‘심부름센터’가 되고 있고, 지자체들은 머슴이 되고 있다.

 


노동자, 민중의 힘으로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회수하자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법, FTA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공간재구조화와 신제도 등은 계급간, 계급내부 격차와 더불어(연결하여) 지역간 불균형의 심화와 자본 힘 관철의 심화를 낳고 있다. 앞으로도 문화관광부의 관광레저복합단지법(골프장, 카지노, 기업도시법과 연동)도 예정되어 있고 혁신도시 건설도 닥칠 것이다.

노동자, 민중 진영은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법에 대해서 적극적인 무력화 투쟁에 나서야 하고, 기업도시법의 국회 처리를 저지해야 할 임무가 놓여져 있다. 또한, 기꺼이 자본의 머슴으로 굴종하려는 지자체에 대해 지역 내 노동자, 민중의 적극적인 참여와 견제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전면적인 신자유주의 공간 재구조화로 인해 피해보는 광범위한 부문, 계급, 계층과 연대하여 저지투쟁에 나서고, 민중적, 진보적 지역 재구조화에 대한 대안을 시급히 정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는 협소한 지역차원의 대응이 아니라 부산, 울산, 경남 등 동남벨트 전체에 대한 비판적, 총체적 시각을 가지고 지역 노동, 민중 간 상호 협조와 소통 속에서 마련해 나가야 한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연실>2004.8월 - 해석의 정치 속으로 - 누구의 기회인가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8월호(122호)

해석의 정치 속으로

- 누구의 기회인가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딱따구리의 운명?


2003년에 출간된 책이 헌책방에서 골라 낸 책처럼 철지난 책으로 느껴지는 건 왜일까? 곰곰이 시간을 따져보니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불과 1년 6개월 정도밖에는 되지 않았단다. 많은 일을 겪고 나면, 그만큼 성숙해지기 마련이라는데, 그렇다면 나와 우리 사회는 ‘성숙한 느낌’을 받고 있는 것일까? 오히려 ‘성숙한 느낌’보다는 ‘국방부 시계’에 몸을 맡긴 것 마냥 뻐근하고 쉬고 싶고, ‘소모전의 훈련’을 거친 패잔병 같은 느낌뿐이다. 마침 오늘 아침 태풍 ‘메기’까지 부산을 지나갔다.

어쨌든 많은 일이 일어나긴 일어났나 보다. 새벽 편의점을 보고 있는 아줌마도, 출근길을 서두르는 직장인도, 현장에서 투쟁하고 있는 노동자들도 (노무현을 포함한) 참여정부의 주요 인사들의 면면을 이해했을 뿐만 아니라 분위기 파악까지 마스터한 것 같다. 전두환을 거쳐 김영삼까지 오로지 대필, 대독에 익숙했던 리더들이 이끌던 시대는 갔고, 바야흐로 ‘그 잘난 입’으로 ‘말발’ 세우는 DJ와 노무현 정부의 시대가 왔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노무현 정부의 주둥아리들은 오늘도, 어제도, 1년 전에도 떠들고 떠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떠드는 딱따구리처럼. 금속 조합원들에게 ‘귀마개’라도 얻어야 되는 건 아닌지 모를 정도다.

‘친일진상규명, 과거사 청산’을 내세우던 열린우리당 신기남 의장은 월간 신동아의 부친 친일부역 행위 폭로로 인해 의장직을 사퇴했다. 자신의 거취와 상관없이 과거사를 청산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는 친일 부역 부친과 상관없이 자신의 거짓과 뻔뻔함에 대해서는 반성하지 않았다. 그는 왜 ‘의장직’만 사퇴했을까? ‘국회의원직’도 내놓고 친일파의 후손으로서, 국민을 기만한 책임을 지고 ‘자진귀양’이라도 가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이리하여 1년 6개월 전, 노무현 정부 출범 후 일찌감치 대권을 노리던 유력한 주자가 이렇게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전혀 신선하지 않은 이름이 된 김민석, 추미애와 더불어 ‘날개없는 추락’ 리스트에 또 한 명이 더해진 것이다.

신기남의 우스꽝스러운 사퇴 과정보다 더 희한한 것은 과거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 침략에 부역한 ‘씻을 수 없는 역사적 범죄’를 바로 잡겠다는 ‘대한민국 국가’ 전체가 제국주의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부역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0년 또는 40년이 지난 어느 날, 노무현의 자식이, 김근태의 자식이, 정동영의 자식이 또다시 우기고, 사퇴하고, 미화하는 되풀이가 예정되어 있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훗날 열린우리당의 무덤에서는 죽은 박정희의 ‘진시황병마용(秦始皇兵馬俑)’이 발굴될 것이다.


한나라닭대가리들의 반역(反歷)


참여정부라는 나무 위에서 딱따구리들이 짜증나게 떠들고 있을 때, 이에 질세라 ‘닭장’에서 떠들고 있는 날지 못하는 ‘계두(鷄頭)’들이 있었는데, 일명 ‘한나라닭’들이다. 어제도, 오늘도 조중동과 경제신문을 확성기 삼아 얼토당토 않는 ‘3류 코미디 믿거나 말거나’ 떠들고 있는 이들은 얼마 전 중앙일보 선공하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소속 ‘간첩과 사노맹 출신 조사관들’이 나라를 망치고, 한풀이를 하고 있다고 떠들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의문사의 진상’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위 ‘참여정부의 정체성’을 가지고 논란을 벌이기 위한 ‘꺼리’였을 뿐이다.

이들에게는 한국의 정체성이 민주주의, 자주국가, 인간존엄 등의 가치가 아니라, 반공반북, 시장 자유, 소수독점이다. 과연 이런 집단이 한국에서 생존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인가? 박근혜는 배짱 좋게 일제시대 뿐 아니라 ’과거사 전체’를 다루는 ‘과거사 국회 기구’ 구성을 제안했고, 여야는 합의했다. 박근혜는 친일 부역자 뿐 아니라, 해방 후 ‘좌익’들도 다뤄야 하며 ‘중립적 인사’들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과연 ‘편파적’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중립’을 알아볼 수 있을까? 한국의 헌법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중립을 운운하며 ‘대한민국의 과거’를 해석하겠다는 것은 그야말로 닭짓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지금의 정치지형은 ‘중립’의 이름 하에 해석의 우선권을 쥐려는 쟁투과정을 요구하는데, 여기서 승리하는 것은 곧 ‘과거’뿐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헤게모니를 선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와 한나라당은 승리할 수 있을까?

이것은 한국 사회를 둘러싼 지배이데올로기의 층위 변동을 내포하고 있다. 반공반북 이데올로기를 정점으로 하고 타 이데올로기를 하위수준에 배치했던 기존의 지배이데올로기 체계는 무너졌다. 이 자리에 ‘(경제)성장이데올로기’ 또는 ‘발전이데올로기’가 ‘새로운 군주’로 등장했다. 따라서 한나라당 박근혜가 제안한 내용은 전략적 고지를 선점하는 교묘한 책략이 아닐 수 없다. (중요하기는 하지만) ‘좌익도 검증해야 한다’에 방점이 찍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사 전체’와 ‘공’과(功過)에 방점이 찍힌다. 좌익이라는 과(過)는 민주노동당이나, 열린우리당, 운동세력에게 떠넘길 것이다. 소위 ‘산업화 세대’라 일컬어지는 경제성장기의 역사적 공(功)이 친일을 포함한 과(過)를 능가할 수 있는 자신감은 박근혜식 뒤집기의 토대이다.


개미들의 과거 청산


사실, 민중운동 차원에서 의문사진상규명위에 대한 엄호는 거의 없었다. 어쩌면 우리 머리 속에는 암묵적으로 과거와 현재를 분리시키는 기제가 작동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나라당 박근혜가 ‘신기남 사건’을 돌파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 우리의 무능력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기도 한다. 우리의 공(功)은 얼마나 왜소화되었는가? 상대의 과(過)는 얼마나 드러났는가?

이참에 잘 됐다 싶기도 하다. 일제시대를 포함해 과거사를 몽땅 다루겠다고 했고, 공과(功過)를 몽땅 다루겠다니, 그렇게만 된다면 K-1 보다 더 뜨거운 ‘승부’의 격투기 장이 만들어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이러한 과거규명 작업에 ‘성향’을 내세워 소수만이 참여하는 자리로 왜소화시킬 것이다. 이 작업은 실은 대한민국 전체 인민들의 머릿속을 뒤집어 놓는 작업이다. 역사는 소수의 소유물이 아니며, 과거의 유산은 모두가 짊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표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유신시대를 사과했지만, 실은 김대중 개인이 사과를 받고 말고 할 입장이 아니었다. 박정희 독재의 ‘억압적 그림자’는 그만큼 넓고 깊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거 청산은 현재를 둘러싼 정치적 투쟁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노동자의 이름으로 박정희 독재를 단죄하고, 민족의 이름으로 친일을 단죄하는 것은 ‘그들의 중립성’이 두려워하는 바이다.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 과거해석을 둘러싼 투쟁은 현 계급역관계의 미래다. ‘정통성 논쟁(?)’ 속에서 누가 미래를 담지할 자로 점지될 것인가? 우리인가? 그들인가?


<2004. 8. 19>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연실> 2004.1월 - 소금 : 그대는 철도 여성노동자/붐 : 몰락, 그리고 공동체의 재구성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4년 1월(115호) 

소금 : 그대는 철도 여성노동자/붐(Boom): 몰락, 그리고 공동체의 재구성



양솔규 /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1. 노동자 영상사업단 희망,『소금-철도 여성노동자 이야기』, (2003)

 

노동자 영상사업단 희망에서 제작한 영화『소금』은 철도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공교롭게도『연대와실천』이번 호에는 철도노동자의 2004년 투쟁 전망에 대한 현장통신 글이 실려있다. 과연, “관계자외 출입금지” 지역, 철도 노동자들의 일터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이 속에 소수자로 존재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수색역 수송일을 맡고 있는 김○○는 4개월 전 4년만에 임신한 애를 잃었다. 수송일 중 열차를 떼어 다른 열차에 붙이는 일을 ‘입환’이라고 하는데, 달리는 기차에서 매달렸다 뛰어내렸다 하다 보면 임산부들에게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김▽▽는 민주노동당 유인물을 뿌린 것과 역장에게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임산부 처우를 개선해 달라는 내용의 글을 여성부 site에 올린 것 때문이었고, 조합원들과 함께 항의를 했지만, 결국 그녀는 2년 동안 정들었던 수색역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서울역 수송일을 하는 강▲▲은 임신 7개월이다. 그녀는 현재 서무보조로 일하고 있다. 임신 후 그녀는 보건휴가를 썼다. 그녀의 상관 과장은 “병원 갈 거 아니면 근무”를 하라고 종용하고, 임신 증빙 서류와 보건휴가시 의료 진료서를 떼올 것을 요구했다. 그녀는 임신한 것이 죄도 아닌데, 모성을 전혀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에 눈물을 흘렸다.

이 외에도 모성보호를 받지 못하는 철도 여성노동자들은 수 없이 많다. 불과 4-5년 전까지만 해도 남성노동자들이 담당하던 업무에 여성노동자들이 진입했지만, 모든 업무와 작업환경, 관례는 아직 남성노동자들에게 맞춰져 있다. 열차 승무원 중 7명 중 4명이 유산을 경험했으며 1명은 하혈을 경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들은 쉴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했다. 철도 노동자들의 근무는 24시간 맞교대로 이루어진다(한 여성노동자는 “다른거 필요없이 3조 2교대만 하면 살 것 같다”고 말한다). 또한 인원충원이 안되면서 자신이 쉬면 업무가 다른 동료들에게 과중되기 때문에 쉴 수도 없다. 따라서 출산을 앞두고서도 열이면 열, 일하는 도중에 병원에 실려가 출산을 한다. 노동조합과 철도청은 인원충원에 합의했지만, 4․20 합의 파기 이후 인원충원의 구체적 일정은 아직 나와 있지 않은 상태이다.

매표업무를 보고 있는 김●●은 철도에 들어오기 전에는 “매표원들이 왜 저렇게 불친절할까?”하는 의문을 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들)는 현재 ‘불친절’을 강요당하는 작업환경 속에서 자신의 선택을 놓고 싸우고 있다. “그만둘까? 참아볼까?”

80년대 후반까지도 여성노동자들은 자신을 가정 내 존재나 모성으로 인식하고 있었지만, 90년대를 거치면서 여성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복합적 정체성(어머니이자 노동자)을 부정하지 않고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한다(오장미경, 『여성노동운동과 시민권의 정치』).” 하지만 철도에서는, 아니 이 사회에서는 이러한 복합적 정체성은 매일매일의 갈등과 투쟁 없이는 유지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2000년을 3년이나 지나온 작년 영화제에서 한 남성 관객이 박정숙 감독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왜 아이를 죽여가면서까지 일을 해야하느냐”. 감독은 “남성에게 왜 일을 하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 여성에게도 일은 중요한 가치이자 자아 실현의 도구”라고 답변을 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되지 못하는 현실! 모성과 노동자 정체성이 충돌되지 않는 조건은 아직도 요원한 것이다. 과연 철도 여성노동자가 어머니임을 포기하고 뱃속의 아이들을 죽인 것일까? “엄마가 아이를 죽였다”고 말하는 자가 아이를 죽인 것은 아닐까?


감독은 철도 내 모성보호가 안 되는 현실, 철도 노조의 협상 의제설정에서 여성노동자들의 요구가 배제된 현실을 안타까워하면서 4․20 합의 때 기뻐하는 조합원들의 모습과 교차시킨다. 그러나, 그조차도 정부에 의해 파기되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비참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노동조합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이는 특정 노동조합의 문제라기보다, 노동조합운동 전체의 현 실태이며 이는 노동조합 대표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아기는 부모 모두의 책임’, 이를 넘어 ‘육아는 사회의 책임’이 되어야 할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아니 도래했다. 단지 육아의 문제뿐 아니라, 교육과 주거, 문화와 노후, 정보의 자기결정권 문제 등등 모든 부문에서 사회적 책임이 중요해짐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괴리의 극심함을 극복하기 위해 노동조합은 주요한 행위자로 나설 수밖에 없으며 점점 더 그러해질 것이다.

가슴 아픈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의 제목이 달콤한 “설탕”이 될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렇다면 왜 “소금”이라는 제목이 붙었을까? 감독은 “이 땅의 여성 노동자들이 꼭 필요하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소금’ 같다는 생각”으로 이런 제목을 붙였다고 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꼭 슬픈 것만은 아니다. 엄마들은 철도노동자로서 일터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간다. 비록 아가에게 죄인이지만, 그녀들은 ‘더 많이 아프더라도 그들에겐 눈물이고 아픔인 기차에서 희망의 기적 소리를 들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스산한 눈물만이 아니라, 언 손을 호호 불어주는 따뜻한 입김 같은 화면이 영화 속에 있다. 그녀들의 삶이 그러하기에 화면 역시 그러한 것은 당연하다.


이 영화는 2003년 7회 국제노동영화제, 2003년 8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앵글 부문, 2003년 3회 인디다큐 페스티벌 국내신작전 등에서 상영된 작품이다. 노동자영상사업단 <희망>을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참조: (02) 2272-8934, e-mail: tshope@jinbo.net


2. 위스퍼드 미디어,『붐(Boom, The Sound of Eviction』, (2001)

 

영화 붐(Boom)은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변화와 이에 맞선 주민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이다.

미국 서부의 중심 도시 중 하나인 샌프란시스코는 무한한 흡입력을 지닌 자석과 같은 도시였다. 라틴 사람들과 유색인종들, 극빈층 예술가들과 노동자계급이 모두 이곳 샌프란시스코에 둥지를 틀고, 저마다 나름대로의 꿈을 간직하며 살아가고 있다. 이 도시의 활력은 바로 이러한 다양한 구성과 교우 속에서 생성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닷컴(dot com) 기업의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샌프란시스코의 미션 구역(The Mission District)에는 외지인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외지인들이 도시에 몰려드는 것이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지만, 문제는 그들이 돈과 권력을 가지고 주민들의 ‘주거권’을 위협하게 된 것이다. 1년 새에 40% 이상 집세가 오르자, 라틴 및 유색 인종, 노동계급과 그 가족들은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또한 건물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오래된 건물을 허물고, 고급주택화(gentrification)를 서둔다. 어쩔 것인가? 정들었던 이웃들과 헤어져 생활기반과 친인척이 전혀 없는 낯선 곳으로 이주해 갈 것인가? 아니면 ‘주거권’을 위협받는 사람들과 단결해 맞서 싸울 것인가? 그들 중 일부는 떠나갔지만, 많은 미션 구역 주민들은 끝없는 싸움에 돌입했다. 거주민들의 퇴거와 이주를 부동산업자들은 자발적인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어느 누구도 이를 믿는 사람은 없다.

‘주거권’을 중심으로 스스로를 조직화하면서 주민들이 목격한 바는, 원래 이 사회의 주인은 자신들이 아니라, 자본과 권력이었다는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이러한 상황을 다시 바꾸는 과정에서, 다시 말해 스스로 일구워왔던 공동체를 원상복구시키기 위한 투쟁의 흐름 속에서 축소되어 있던 ‘나’를 확대된 ‘우리’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주민들은 깨닫기 시작했다.

이들은 반(反)강제퇴거연합(Anti-Displacement Coalition)을 조직하고, 미션 거주민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시 위원회’를 장악하기 위한 위원 선출 선거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나간다. 그들은 결국 자신의 대표를 위원회 선거에서 대거 선출시킨다.

부동산업자와 미국 지배층이 공유하고 있던 시각 중 하나는, (미국판 ‘산업 성장이데올로기’인) 미국 신경제(New Economy)는 하나의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이며, 이를 거부하는 것은 성장을 멈추자는 것, 즉 몰락을 자초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션 구역 주민들의 ‘주거권’을 위협했던 닷컴 열풍(인터넷 기업 호황)은 꺼지고, 닷컴 기업의 80%는 파산했다. 미국 신경제를 상징하는 닷컴 붐이 꺼지면서, 미션 구역에 들어와 있던 기업들도 파산과 철수를 완료한 상태이다. 그러나, 집세는 원상회복되지 않았고, 그들은 지금도 싸워 나가고 있다.

 

미국 좌파 역사학자 로버트 브레너는 이렇게 말한다.


2000년 봄에, 닷컴 기업들이 하나 둘씩 자금난에 봉착하면서 무너지자 주가가 하락했다. 대다수 닷컴 기업들은 단돈 1센트도 이익을 내지 못했다. 뒤어어 가을과 겨울에도, 호황기에 선두를 달리던 거의 모든 유명 정보기술 기업-실패한 기업은 말할 것도 없고-이 연이어 이윤이 하락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보고서를 발표함에 따라, 특히 투자자가 이윤율이 여전히 기본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점차로 상기하게 됨에 따라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게다가 이 글을 쓰던 때, 즉 2001년 중반에도 주식시장이 아직 바닥을 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로버트 브레너,『붐 앤 버블Boom & Bubble』, 아침이슬, 2002)


이 영화에는 샌프란시스코의 역동적인 모습들이 잘 드러나 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민중들의 자율적 생활 영역이 살아 있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도시 중 하나인 이 도시가 처음부터 그러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큐멘터리 부문 아카데미상을 받은 바 있는 영화『하비 밀크의 시대』를 보면, 샌프란시스코라는 이 도시에서 동성애자 시의원 하비 밀크(뉴욕에는 동성애자 고등학교인 하비 밀크 고등학교가 있다)와 지역주민 운동이 어떻게 샌프란시스코를 변화시켜 나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샌프란시스코는 동성애자들의 천국이다. 동성애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거리 곳곳에 휘날리고 있고, 96년부터 동성애 부부 및 동거인 권리 인정을 명문화했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평범한 시민 하비 밀크가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뒤, 모두가 낙선될거라 예상했던 시의원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당선되었다. 그는 당선 후, 동성애자와 노약자, 여성, 빈민의 정책을 입안하고 ‘부자도시’를 바꾸어 나갔지만, 결국 동성애 혐오주의자인 공화당 시의원에 의해 살해당한다.

 

작년 말, 샌프란시스코 시장 선거에서는 민주당 소속 개빈 뉴섬(36)과 미국의 진보정당인 녹색당 후보 매트 곤잘레즈(38)가 경합을 벌였으며, 결국 뉴섬이 당선되었지만, 곤잘레즈도 47%를 득표하는 기염을 토했다.

영화 붐을 보면서 우리는 노동자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운동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 출퇴근을 하고, 물건을 사고, 여가를 즐기는 지역에서 노동자계급과 사회적 약자들의 연합과 힘은 곧 지역의 역사를 함축하고 있다. 자신의 처지에 맞게 사회적 의제를 만들어 나가고, 이 과정에서 단결력을 키우고 연대의 폭을 넓혀 나가는 과정이 샌프란시스코를 진보적 도시로 형성시킨 중추적 힘이라 할 수 있다.

이 영화를 만든 마크 리브, 제프리 테일러, 아담스 우드는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영화 집단 위스퍼드 미디어를 96년에 창립했다. 멕시코, 우크라이나, 우르과이, 네덜란드, 미국 전역에서 상영된 『붐 Boom』은 2002년에 서울 국제노동영화제 상영되었으며, 현재 노동자뉴스제작단이 배급을 하고 있다. 연락처: (02) 888-5123,    http://www.lnp89.org 

                                                                                                                         <2004.1.16>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연실> 2003.12월 - 노무현 정권 1년을 되돌아보며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3.12월

노무현 정권 1년을 되돌아보며

지속되는 노동배제, 확대되는 차별, 개혁의 침몰



양솔규 / 연구소 사무국장

 

1. 깨어진 환상


2002년, 월드컵과 노사모, 자발적 참여와 젊은 애국주의라는 증폭된 블랙홀에 4천만이 빠져든 후, 이제는 정말 한국도 '원시적 시공간'을 지나 21세기로 들어선 듯한 착각이 한반도를 뒤덮었다. 효순이․미순이 추모 촛불집회는(결말은 달라지지 않았다) 집단적 자각의 시발점으로 보였다. 절망의 깊이만큼이나 붉었던 장밋빛 희망에 찬 전망이 2003년 우리 앞길에 펼쳐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기대는 처참하게 추락하고, 다시 거리 곳곳에, 뇌리 구석에 움크리고 있던 산산조각 난 절망의 파편들이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남 창원 두산중공업의 나이든 노동자 배달호가 자본측의 손배 가압류와 노조탄압에 대한 항의로 분신자살하면서, 애초부터 변동 없이 그대로이던, 그러나 시야에서 벗어나 있던 ‘전근대적 노동통제 관행’과 ‘노동배제의 에토스(ethos)’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전무후무한 노동의 ‘죽음의 정치’는 해결되었지만, 이들을 추모하는 마음은 계급적 차단막에 가려져 있다. 모두가 보지 않으려 하지만 언제나 존재하고 있던 그 사실은 여전히 시야에서 벗어나 있다. 아니 노동배제적 시선은 ‘지속되는 배제’를 피해 버린다.


국민의 정부, 김대중 정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 일년이 되어 간다. 지금 현재, ‘준비된 대통령’ 김대중을 청와대에 입성시킨 대통령 핵심 측근 박지원, 권노갑은 구속․수감되어 수사를 받고 있는 상태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IMF 경제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했다고 선언했지만 그것은 빛 좋은 숫자놀음에 불과했고, 건실한 경제구조보다는 재벌들의 독점 강화, 빈곤층의 증가와 빈부격차의 심화, 여전히 지속된 온갖 추잡한 비자금 스캔들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래도 DJ는 통일문제 하나는 잘했잖아”, “경제는 어려워도, 남북정상회담은 대단한 성과이다”라고 말이다. 국민의 정부가 통일, 외교분야에 있어서 얼마나 큰 성과를 냈는지 의아하지만, 민심은 대체로 이러한 견해로 수렴되는 듯 하다.

노무현 정부는 임기가 지난 후 과연 어떤 평가를 받게 될까? 억측이 될 수도 있겠지만, 현재의 추세로 봐서는 이런 평가가 나오지 않을까? “노무현은 노동문제 하나는 개판이었지”, “경제도 어려운데, 노동정책은 정말 대단한 과오였다”고.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든, 반대하는 입장이든,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여론이 압도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필자 자신을 포함해 다수가 노무현 정권의 노동정책을 우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지만, 정작 노무현 정권은 명확한 정책기조를 세워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노무현 정권은 민주노총으로 대표되는 조직화된 노동자와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재벌, 자본의 입장을 초월한 객관적 중립자로서 노동정책을 수립했는가? 또한,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계급해방적 요구’를 내걸고 자본주의를 ‘전복’하기 위한 ‘과격한 투쟁노선’을 밀고 나가고 있는 것인가? 극한적 대립을 해결하기 위한 노무현 정권의 복안은 있는 것인가?

 


2. ‘노동죽이기’ 카르텔 형성과 ‘이회창 없는 이회창 체제’의 성립

 2002년 대선 당시 민주노총은 노무현 후보가 아니라,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노동계의 많은 이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의 다수는 ‘전통적인 비판적지지’ 정서와 이에 기반한 분석, 그리고 실용적인 득실에 기대어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를 ‘비공식적’이지만 가시적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진 비밀이다. 이러한 상황을 빚어낸 논거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권영길은 당선될 수 없다, 둘째, 한나라당에 비해 민주당의 상대적 개혁성, 민주당 내부에서의 노무현 후보의 상대적 개혁성, 80년대 민주화운동과 사회운동의 성장을 노무현 후보가 공유하고 있다는 동질의식, 셋째,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에 대한 공포감, 넷째, 위와 같은 논리의 귀결로서 점진적 개혁(노사중립적 입장)의 필연성(적어도 높은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요는 노무현 후보의 정치적 기반과 전략적 선택지에 대한 고려 없이 감정적인 호감이 밑도 끝도 없이 증폭된 결과였다.  


인수위 시절 차별 시정과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을 검토하면서 이러한 기대가 ‘과학적 기대’인 것으로 보이기도 했고, 두산중공업 배달호 분신사망 처리과정, 철도노조, 화물연대 1차 파업에 대한 처리과정에서 뭔가 달라지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지만, 이러한 ‘유연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2003년 5월 12일,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방문에는 많은 재계인사들이 대동했으며 일련의 ‘동거동락’ 이후 재계-정부의 관계는 데탕트로 접어들었다. 또한,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이 사측의 노조탄압에 항의해 목매 자결한 이후인 11월 5일에는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편집국장들과 화해의 장을 마련하면서 정부-재계-언론의 ‘노동죽이기’ 카르텔을 형성했다.  


돌이켜 보건데, 노무현 정부 초기의 친노(親勞)적(?) 행보는 노무현 정부의 노동배제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명분쌓기’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철도노조와 철도청(사실상 교섭의 실질적 주체는 정부였다)이 합의한 4.20 합의에는 손배 가압류에 대한 취하와 부족 인력 충원 및 민영화 방안 배제, 철도개혁에 철도노조 등 이해당사자와의 충분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를 거친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 사항은 정부 자신에 의해 파기되었고, 올 한 해 많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손배 가압류는 법원의 기각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앞장서서 청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손배 가압류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매우 유력한 노동통제 수단으로 떠오른 것이다.

학생들의 정보인권을 침해하는 NEIS에 대해 전교조와 교육부가 추진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이것 역시 정부에 의해 파기되었다. 급기야 법원에서 NEIS CD 제작배포를 금지하는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교육부는 그대로 강행한다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에, 12월 16일 NEIS의 인권 3개영역은 별도의 시스템으로 관리하기로 하고, 학생 신상정보의 수집 관리주체는 학교장이라는 두 가지 원칙을 토대로 최종방침을 밝혔고, 전교조도 이를 수용하면서 일단락 되었다. 하지만, 교육부의 효율성과 경제성에 여전히 집착하고 있고 이러한 시각이 일소되지 않는 속에서 또 다른 문제는 잠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수많은 노동쟁점의 전개과정에서 원칙과 대화, 참여와 합의정신은 배격되었고 ‘합리적인 21세기 비전’은 소멸되었다.

하반기, 노무현 정부는 이주노동자 추방, 손배가압류에 대한 방치, 공공부문의 노사합의를 파기한 후 독단적 밀어붙이기를 계속하고 있고,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탄압과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근거없는 이데올로기 유포를 통해 전(全)사회적 노동배제 질서를 내면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결코 노무현 대통령과 개혁세력이 정부 내 역학관계에서 밀려났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다. 소위 ‘노빠’(노무현 빠xx)들은 노무현 vs 조중동, 노무현 vs 한나라당, 노무현 vs 전경련 식으로 현재의 국면을 극명한 이미지로 정식화하고자 하지만, 이러한 시각은 미시적인 지배권력 내부 관계를 살피는데는 도움이 될 지도 모르겠지만, 거시적인 지배권력간 이해공유와 정책방향에 대해서는 눈을 감는 것이다.  

'노빠'들과 ‘열린당’의 총선출격 386 돌격대들의 노동문제에 대한 의도적 배제는 노무현 정부의 약한 고리인 노동문제가 담론화되는 것을 꺼리는 이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조중동과 같은 시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싫어서이기도 하다. 이들은 인기 없는 경제정책(정리해고, 공기업 사유화 등등)을 ‘용감하게’ 추진한 김대중 정부를 높게 평가하면서 이를 계승하면서 등장한 노무현 정권은 이러한 신자유주의 구조개편 과정을 충실하게 수행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를 더 밀고 나가면 ‘인기없는 정책이 국민경제를 살찌’우기에 현재의 노무현 지지도의 하락은 곧 올바른 정책의 올곧은 추진이며, 이것이 증명되는 날, 열린우리당이 다수당으로 등극한다는 순진무구한 그러나 충성스러운 꿈을 꾸고 있다. 이라크 파병문제에 있어서도 ‘옳다고 믿으면 무모할 정도로 고집을 피우는’ 노무현식 정치 때문에 ‘노무현 지지하기 힘들다’고 토로하면서도 정작 파병문제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파병반대-노무현지지 철회자들에 대해 ‘조중동 추종자’라는 얼토당토 않는 레떼르를 붙인다. 파병반대자들은 조중동의 파병찬성에 대해서는 적극 반대하면서도, 조중동의 파병관련 정보는 백퍼센트 믿는다는 것이다. 후세인이 체포되면서 상황은 일사천리로 바뀌고 있다. 물론 국내 정세에 따라 시기는 가변적이지만, 노무현 정권은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하워드 딘(Howard Dean)의 추격을 뿌리쳐야 하는 부시 정권의 강력한 요청 때문이라도 파병을 결정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권이 파병을 결정할 경우, 과연 노빠들은 어떤 논리를 가져올 것인지 심히 기대된다.

(이데올로그ideologue는 못되나 훌륭한 프로파간다들이다) 서프라이즈의 논객들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추종자들이며,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조중동의 정책적 방향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따라서 노동문제는 경제성장 이데올로기에 가리워지고, 법률상의 권리인 파업권은 상황에 따라 유보될 수 있는 ‘선택적 옵션’에 불과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애송이 선동주의자들인 이들의 시각을 법조인 출신 통수권자가 공유하고 있다는 아니, 선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아마추어리즘에 빠져있다.  

3. 얼어붙은 노동배제, 강요된 동투(冬鬪)  


노무현 대통령 자신은 ‘대기업 이기주의’를 비난하고, ‘정규직에 의한 비정규직의 차별’을 비난했지만, 노동현실은 이와 판이하게 다르다. 대통령은 정확하게 조선일보, 중앙일보의 왜곡된 시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 언론들은 금속산업의 주5일제 근무제 실시 합의와 이에 이은 현대자동차 노사합의에 대해 끊임없이 왜곡하면서 이데올로기적 타격을 가했다. 논란이 끝난 후 조선일보는 정정보도를 했지만 이미 노동조합은 사회적으로 고립된 후였고, 어떠한 진실도 통하지 않았다. 현대자동차 합의안에는 비정규직 차별 철폐에 대한 내용이 들어있었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조중동은 이를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논의의 흐름을 끊어버렸다. 조중동 언론은 현대자동차 노동자의 연봉이 5,000만원이 넘는다고 왜곡하였고,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현대 재벌 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하였으며, ‘민노총은 이 나라를 거덜낼 셈인가?’라는 사설과, ‘폭력시위 나라가 멍든다’는 시리즈를 내고 있다. 정작 불안을 선동하는 것은 극우매체 조중동이다. 전경련은 현대자동차 노사 협상에 사사건건 끼어 들어 노사합의를 방해하려 하였고, 협상 타결에 임박해서 현대자동차 사용자측은 오히려 (삼성 출신이 부회장으로 있던)전경련에게 볼멘 소리를 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제반 조건의 격차를 해소해 ‘사회적 통합’(노무현 정부의 국정목표이기도 하다)을 이루어야 할 노무현 정부는 불구화된 주5일 근무제와 개악된 근로기준법을 통과시켜 노동 내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있으며, ‘노사 자치주의’라는 이름아래 정부의 자기 역할을 방기하면서 노사관계의 제도화를 거부하고 약육강식의 자본 위주 게임을 관장하고 있다.  


참여정부 초기,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네덜란드 모델’을 현 정부의 노사관계 모델로 상정했지만, ‘네덜란드 모델’이 사회적 차별 해소를 전제로 한 모델이라는 점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참여정부에 의해 제시된 노사관계 로드맵이 노리는 것은 ‘노동 내부 분할 심화를 통한 이주노동자, 청년 실업자 등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철저한 방기’, ‘자본 주도 노동정책의 진전’, ‘민주노총을 비롯한 조직 노동자의 대(對) 사회적 발언력의 철저한 봉쇄’이다. 참여정부의 노동통제전략은 이데올로기적 통제 속에, 물리적 통제를 결합시키는 방식이다. 이는 노태우 정권 이후의 통제전략과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부분이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노동이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거의 없었으며 따라서 분신, 투신 등 극단적인 자기 희생을 통한 ‘죽음의 정치’가 불과 참여정부 1년 만에 현상하게 된 것이다. 이주노동자, 운송노동자,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이 이어졌고, 개별적인 타결이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안전장치는 하나도 마련되지 않고 있다.

강제출국과 단속에 직면한 이주노동자들의 상황 역시 끔찍하기는 마찬가지다. 겨울 들어, 이름도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지하철역에서, 공장에서, 송환되던 배에서, 화장실에서, 은신처에서 동사(凍死)하고, 목을 매고, 바다로 뛰어내리고, 절단기에 잘리고, 압사 당하며 이국에서의 삶을 마감했다. 명동성당을 비롯한 전국의 농성장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전두환․노태우 군사정권 시절보다 더 많은 노동자 구속을 양산했던 김영삼 정부, 그보다 더 심한 노동자 구속을 양산했던 김대중 정부... 이보다 더 많은 노동자를 구속하는 노무현 정부는 과연 민주적 개혁분파 정부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가 ‘극좌 혁명적 파괴주의’로 나가고 있기 때문에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이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이었는가? 대부분의 노동 관련 학자들은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에서 실리적 노선으로 옮겨오는 것을 불가역적 추세로 판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상황은 노동의 선택지를 좁히는 노동배제적 노동정책으로 인해 이러한 흐름은 아직도 가로막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는 재벌과의 데탕트 이후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불구화된 주5일 근무제는 전경련을 비롯한 자본가단체들과 한나라당의 찬성 속에서 통과되었다. 민주노총은 대다수 평범한 정규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과제였던 온전한 주5일 근무제를 주장했지만, 노동배제적 담론 지형과 왜곡, 날조 선전선동, 전통적인 성장 이데올로기 속에서 여론의 몰매를 홀로 감수해야 했다.  


2003년 12월 5일, 노사관계법제도 선진화연구위원회(위원장 임종률․성균관대 교수)는 지난 9월 발표했던 중간보고서에 이어 최종보고서를 노동부에 제출했다. 핵심적 내용을 보면, 최종안은 '공익사업'의 범위를 사회보험업무 등 공공서비스와 열(난방)․증기 공급사업까지 확대했으며, 부당해고와 관련해선 상습적일 경우에만 처벌토록 했다. 정리해고 사전통보기간이 60일에서 30일로 줄어들었고,  '파업예고기간'(7일)이 신설되었다. 쟁의행위의 합법, 불법과 관계없이 직장폐쇄가 가능해졌다. 올 한해 가장 중요한 쟁점 중 하나였던 손배 가압류와 관련해서는 가압류 시 노조 존립 및 조합원 생계 보장을 고려한다고 했지만, 그 선은 명확하지 않으며 힘 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노조 활동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살아있는 노동력, 죽은 노동조합은 여전히 가능하다.

권기홍 노동부장관은 11월, 전국 6,500명의 노조위원장 및 지회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노동부와 참여정부가 노동계의 의견을 경청하고 있다고 했지만, 그 시간에도 ‘죽음의 정치’는 풀리지 않았고, 정부에 의한 노동조합 손배 가압류는 풀리지 않았으며, NEIS 추진을 고집했고, KTF, 두산중공업 등에서 대규모 명예퇴직이 이루어졌다. 졸업시즌을 앞두고 청년 실업자의 대량양산이 코앞에 닥쳤고, 여성 노동자들의 생리휴가는 무급으로 바뀌었다. 수구보수 대중선동지 조중동은 노동을 코너에 몰아넣었고 정부는 차별 해소에 대한 공약과 국정지표도 포기한 지 오래다.  


작년 대선 당시, 노무현 광신도들은 노동진영을 향해 “표를 구걸”했다. 노무현에게 표를 던지지 않으면 이회창이 당선되며 이는 곧 민주주의의 후퇴와 파시즘의 출현 가능성이 예상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지금 일부 사회단체(문화연대)에서는 “노무현 파시즘”이라는 파격적(?)인 헌사를 했고, 부안사태를 “제2의 80년 광주”로 비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중요한 것은 노무현 정권 1년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민중탄압으로 점철되었다는 것이다. 이름도 희한한 ‘이회창 없는 이회창 체제’가 현 노무현 체제이며, 사회통합적 내용 없는 사회통합적 노동정책이 현 정부의 노동정책이다. 빈곤한 자, 노동하는 자, 사회적 소수자의 참여 없는(배제하는) 참여 정부가 노무현 정부이다 


4. 마치며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정책에 대한 이러한 혹독한 평가를 내리는 것이 시기상조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초국적 자본분파와 국내 재벌, 수구언론은 대선 시기부터 노무현 정부의 행보를 틀 지워져 왔기 때문이며, 노무현 정부 1년의 과정은 대통령과 추종세력의 ‘시각교정’의 트레이닝 코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레이닝의 스파링 파트너는 물론 조중동과 재계, 한나라당과 부시정부였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한 골격은 이후에도 크게 변화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노동이 ‘약자에 대한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동질성을 회복하는 계급내적 정치와 이러한 과정에서 일반민주주의적 시민권으로서의 노동권을 방어하고 사회적 발언력을 확장하면서 다양한 개입을 통해 변화의 이니셔티브를 획득한다면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에 일정한 반향을 일으킬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최대치라는 사실은 안타깝지만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다.

12월 19일 대선 1주년을 기념해 노무현 친위대(서프라이즈, 노사모, 국민의 힘, 라디오21)들이 여의도에 모여 당시를 되새기는(리멤버) 축제를 연다고 한다. 김두관의 축하메시지가 인터넷을 떠돌고 있고, 청와대에서도 참석을 고려한다고 한다. 어제와 오늘, 연달아 작년 대선 후보 이회창과 현 대통령 노무현의 기자회견이 있었다. 내일은 제1야당 한나라당 최병렬의 기자회견이 있다고 한다. 정세에 민감해야 할 나조차도 3일 연속 이들의 기자회견을 듣자니 구역질이 나오는데, 하물며 바쁘게 땀흘리며 생계를 꾸려 가는 우리네 이웃들은 오죽이나 정치에 신물이 날까? 10억이든, 100억이든, 1000억이든 그 공감되지 않는 숫자에 얼마나 무감각한가?

2004년은 멀지 않았으나 아직 봄은 우리에게 멀다.



<2003. 12. 17>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