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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17시당논평>대통령의 오른팔 이광재씨의 출마에 부쳐

<2004.3.17시당논평>대통령의 오른팔 이광재씨의 출마에 부쳐

 

 

썬앤문 수수 관련 불구속 기소된
노무현대통령의 오른팔 이광재 출마에 부쳐

이광재기도문

천상에 계신 우리 썬앤문 문회장님, 회장님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4월에 노무현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노무현님의 뜻이 열우당에서와 같이
총선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대선에서도 그랬던 것과 같이
총선에 쓸 총알 1억원을 주십시오.

지지율이 하늘에 닿았사오니, 이제 우리는 우리의 뜻대로 나아가고자 하옵니다.
뇌물수수혐의를 우리 자신이 용서하오니
저 이광재의 죄를 용서하시고
저 이광재를 후보 사퇴와 개과천선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노무현님의 오른팔로 머물게 하시고
총선에 올인하게 힘을 주소서

열우당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노무현님
한-민-자 국회 다수 통치 아래서 왕따를 받으셨으나
탄핵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 바로 부활하셨나이다.
전능하신 노대통령 오른편에 제가 앉았나이다.

저도 이제 총선에 나갑니다.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의원의 길을 믿나이다.

아멘

2004.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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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3.8시당논평>민주노동당 후보는 국민의 ‘개나 소’가 되겠다.

국제신문도 민주노동당후보 배제하는 기사

국제신문은 2004년 3월 7일, ‘부산진을 최대승부처 부상’이라는 기사에서 한나라당 이성권 후보와 탈당한 김영재 후보, 박재율 후보를 자세히 소개하면서 명실상부한 3당인 민주노동당 김기태 후보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게다가, 당내 의견조율조차 안 되어 무작정 출마와 갈라서기를 반복하고 있는 구태의연한 한나라당 후보들을 소개하면서 ‘최대 승부처 부상’이라는 선정적 제목을 달고 있다. 이처럼 17대 총선을 코앞에 둔 현 시점에서 지역언론들이 한-열 양당에 초점을 맞추는 보도행태가 빈번히 드러나고 있다. 더군다나 한-민-열 보수3당의 선거법 개악시도와 ‘미루기’로 인해 ‘새로운 정치세력’의 제도정치로의 진입이 풍전등화에 처해 있는데, 지역언론마저 시류에 영합한다면 정치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은 오뉴월에 ‘폭설’을 맞게 되는 꼴이다.

김기태 선본 사무국장의 항의에 그 기사를 쓴 기자가‘후보라고 개나 소나’ 다 실어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부산에서 민주노동당이 3당의 위치인 것은 기자가 더 잘 알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노동당의 국회의원 후보가 ‘개나 소’에 들어간단 말인가? 오히려 국민들에게는 100억에서 800억을 수뢰하고, 방탄국회에, 비리에, 민생법안 처리 외면과 각종 반개혁법을 통과시키는 저 국회의원들이 ‘개나 소’가 아닐까?

‘개나 소보다 못한 정치인들’이 판을 치고 있는 현재 기자가 민주노동당 후보를 ‘개나 소’의 범주에 포함시킨 발언을 우리는 깊이 숙고하면서 다시 한번 되짚고자 한다. 국민들이 발 뻗고 잘 수 있게 집을 지켜주는 ‘개’, 고집스럽게 묵묵히 ‘민생의 밭’을 가는 ‘소’가 되는 것이 민주노동당 후보들의 ‘꿈’이다. 우리는 그 각오를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기자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그러나 국민의 충실한 ‘개나 소’가 되고자 하는 명실상부한 3당, 민주노동당 후보들을 외면한다면, ‘정치 판갈이’를 바라는 시민들이 ‘국제신문’에 대해 촌철살인의 ‘레떼르’를 붙일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2004. 3. 8 민주노동당 부산시지부 이창우 대변인

 

이창우 (2004-03-08 18:24:22)

위 기사는 부산진지구당 양솔규당원이 제 부탁을 받고 작성한 글을 팩스 발송용으로 재편집한 것입니다.
양솔규당원의 통찰력이 보통이 아니군요. 시지부도 단독 대변인 구조가 아니라 '대변인실'을 운영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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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자기 역사를 말하다>

 

출처: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연대와실천> 2006년 1월호, 통권139호

<노동자, 자기 역사를 말하다 >

양솔규/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redstar@jinbo.net

 

노동자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혹자는 ‘계급투쟁을 배우는 계기’라고 대답할 것이고, 다른 이는 현재를 위한 길잡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노동자의 어깨에 심대한 ‘역사적 짐’을 올려놓는 그 언사는 진정성과는 별개로 역사를 노동자로부터 멀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노동자에게 역사는 살아있는 역사이며, 살아가는 역사다. 다르게 얘기하자면 노동자에게 역사는 자신이 주인공이며 역사의 주체임을 가르쳐 주는 의미가 있다.

역사학연구소 지음, 󰡔노동자, 자기 역사를 말하다󰡕, 2005.11, 서해문집, 14,900원.

그렇다고 우리 노동운동이 발전하지 않았는가? 단순한 양적 발전뿐 아니라 안정적인 조직이 있고, 부족하나마 교육도 진행된다. 위기가 얘기되지만 한편으로는 많은 노동자들이 자동차도 몰고 다니고 심지어 외국여행이나 연수를 떠나기도 한다. 그런데도 노동자에게 역사는 당시보다 더욱 멀어진 듯 한 느낌은 왜일까?

 

이 책의 백미는 ‘2장 노동자, 역사 기록의 주체로 서다’이다. 책 제목과도 어울리는 이 장은 노동자가 역사를 어떻게 획득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사례를 들면서 생생하게 밝히고 있다. 전노협 편집실에서 일하였으며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노동운동자료실 연구위원으로 있는 정경원 동지의 글은 노동자가 자기 역사를 쓰는 집단적 작업으로 ‘백서 작업’을 들고 있다. 필자 역시 전노협 백서의 작업과정에 참여하였으며, 한국통신계약직노동조합의 백서작업과 발전산업노동조합 투쟁백서에 참여하기도 했다.


정경원 동지가 가르쳐 주는 해법은 이런 것이다.

①기록을 남길 때 수단에 얽매이지 말 것 ②백서작업의 기본은 자료수집이며 투쟁 과정에 조직적인 자료수집이 이루어져야 한다 ③가능한 주체 스스로, 최대한 주체를 추동해서 기록하자 ④백서는 과거의 기록과 미래의 평가뿐 아니라 현재적 의미를 지닌다.


변화를 위한 투쟁은 역사기록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통신계약직노조 백서작업과 발전노조 백서작업의 생생한 사례들에서 묻어나오는 것은 ‘역사기록 과정’이 곧 투쟁의 과정이었으며, 이 과정 속에서 투쟁시기만큼의 변화들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바로 그 지난하고 힘들었던, 때로는 끔찍했던 투쟁기억을 돌아보는 것은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그 ‘돌아보기는 새로운 인식의 출발점’이기에 노동자의 자기 역사 쓰기는 변화의 과정인 것이다. 한통계약직노조 이운재 선전국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제는 투쟁한 거에 대해서 글로 써달라고 해도 거부반응이 안 생긴다. 왜냐면 필요성을 공감했기 때문에.’ 단지 거부반응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를 노동자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몸에 베였다는 뜻이다.

‘투쟁 한복판에서는 투사였던 노동자들이 투쟁의 결과로만 판단해 자신의 능동적인 경험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리는 경우가 허다하고, 상처를 받았다고 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돌아보기는 과정을 묻어두지 않기 위함이다. 돌아보기를 통해 스스로의 삶이 변화했음을,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자신이었음을 자각하게 된다. 즉 돌아보기는 행동의 주체인 노동자가 기록의 주체로, 한발 더 나아가 자신을 새롭게 하는 주체로 서는 길이다.’(95쪽)


평가가 부담스러워 기록하지 않거나, 시간에 쫓기거나 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아예 시도조차

평가에 대한 부담 때문에 차라리 건드리지 않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이 책에는 노동자교육과 관련하여 전노협 이전부터 노동자교육에 힘써왔으며 민주노총을 거쳐 노동자교육센터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김진순 대표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또한 70년대부터 청계피복에서 노동운동을 해온 민종덕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위원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말하자면 이 두 글은 노동자, 노동교육활동가의 일종의 생애사인 셈인데, 추상적인 역사적 흐름 속에서 두 인물이 어떻게 대응해왔고 어떻게 상황을 받아들였는지 재미있게, 의미 있게 읽을 수 있다. 두 글 모두 유경순 연구원이 기록했다.


또 다른 장은 현대 한국 노동운동사 연구 현황과 과제인데, 다소 어렵기도 하거니와 제목과는 조금 거리가 있고 견해의 차이가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짧막한 글들이기에 해방 이후, 70-86, 87년 이후 세 시기에 대해 참고하고자 할 때 읽어두면 좋을 것으로 생각된다.


마지막 장은 노동자교육운동과 관련한 역사이다.

1930년대 최초의 사회주의 학교인 경성 고학당에 대한 글과, 70-80년대의 민중교육운동 속의 파울로 프레이리의 사상의 영향에 대한 글, 더 좁혀 90년대 초반 노동자대학에 대한 사례를 통해 사회 변화 속에서 실패 또는 (노동조합으로의)이전, 중단되고 만 노동교육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각 지역에서 노동교육에 대한 새로운 욕구들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노동교육의 지난 역사를 되돌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지은이들은 머리말에서 라다크의 격언인 ‘‘지혜’란 지금 여기에서 하고 있는 일을 나중에 지금의 아이들이 어떻게 평가할까 생각하는 것’을 들어 돌아보기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있다. 우리가 노동자의 역사 형성과 그 역사에 대한 교육을 강조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역사는 다른 누군가가 죽이려고 해야 죽일 수 없고, 살리려고 해야 살릴 수 없는, 노동자들 스스로 해야만 하는 작업이며, 그것이 세상을 만들고, 기억하는 유일하게 올바른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노동자에게 역사는 자기 역사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역사책들에는 역사의 주인이자 주체인 노동자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며, 노동자들은 역사를 고리타분한 먹물들의 전유물로 여기거나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기억해보자. 80년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던 ‘노동자의 역사’, ‘노동의 역사’ 등의 책들은 내용적으로는 어떨지 몰라도 당시의 학문적인 성과를 체계적인 정리, 쉬운 문체, 짧은 분량으로 많은 청년 노동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켰다. 그러나 이제는 서울 주변의 헌책방이나 부산 보수동 골목으로 숨어들었고 그마저도 이제는 ‘헌책방의 헌책’으로 Kg당 얼마씩의 가격으로 팔려나가는 형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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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책2005.7] 아직 이 세상은 믿을 만하다

아직 이 세상은 믿을 만하다

[작은책2005.7]아직 이 세상은 믿을 만하다

우리들 한마당

양솔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내가 고등학교에 입학했던 1989년은 그야말로 격동의 시절이었다. 초·중학교 때부터 나는 사회 민주화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알게 모르게 주섬주섬 보고 듣게 되었고, 《창비》니 《실천문학》이니 하는 문학 잡지들을 보면서 자랐다.
고등학교에서도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곤 했다. 나는 우리 학교가 있던 서울 관악 지역 내의 전교협(전국교사협의회) 관악·동작지회에 고등학교 입학식을 하기 전 무작정 전화를 걸고 찾아갔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전교협 소속 선생님들이 내가 입학할 고등학교에 계신지, 그리고 학교 동아리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등이었다. 그때는 전국교직원노조가 없었다. 전교조는 1989년 5월에 창립하였고, 전국교사협의회가 있을 때였다.
고등학교 입학식 다음날 교무실 한 편에서 전교협 선생님 두 분을 뵙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한 분은 첫인상이 참 인자하셨고 수업도 무척 재미있게 하셨다. 학생들에게 격의 없이, 권위 없이 대하셨고 되도록 학생들과 친근하게 어울리는 전형적인 ‘전교협’ 선생님이었다. 자유로웠던 중학교에서 빡빡해진 고등학교 생활로 넘어가면서 약간 기가 죽을 무렵, 그 선생님은 나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것 같다. 사정상 선생님의 성함을 ‘김진표’라고 해두자.
봄이 지나면서 전교조가 창립되었고 문교부와 사법 당국의 탄압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기 때문에 대책을 논의하는 우리 학교 모임에서 선배들의 발언을 듣고 실행에 옮기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우리 학교 선배들은 ‘선생님 사랑해요’라고 쓴 리본 달기를 하기로 결정했다. 선생님들이 끌려가고 다른 학교 학생들이 집회 도중 옥상에서 투신도 하는 일이 일어나면서 그야말로 학교 분위기는 아슬아슬한 형편이 되어 가던 때에 우리 학교만 너무 얌전(?)한 것 아닌가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던 중 전교조는 조합원 명단을 《한겨레신문》에 발표했다. 우리는 신문을 들고 우리 학교 선생님들의 명단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런데 김진표 선생님 이름이 없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았다. 우리 학교 대표를 맡으셨던 분…….
그리고 그 밖에 전교조 탈퇴를 거부하던 선생님들은 해직이 되었고 교문 앞에서 ‘출근 투쟁’을 감행하였다. 학교에서 쫓겨난 선생님들은 한여름 명동성당 뙤약볕 아래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명동성당 담 옆 계성여고 누나들은 전국의 고등학생들을 대표해서 전교조 선생님들의 단식 농성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광주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 권한대행, 부산고협 권한대행, 마산창원고협 권한대행과 서울에는 고협이 없었기 때문에 대표로 남서울상고 학생회장이 평민당사에서 농성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김진표 선생님은 집안에, 경제적으로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 그리고 분회 안에서 선생님들끼리 할 일을 나누었다고 한다. 현장에 남는 사람과 밖으로 나갈 사람, 전교조 후원회와 분회를 챙기는 일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연한 논의들이 있었다. 어린 마음에 단순한 생각으로 선생님을 불신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어쨌든 내 고등학교 3년을 김진표 선생님은 옆에서 지켜봐 주었다. 대자보와 유인물, 학생회 직선제 쟁취와 축제 시간 보장, 두발 규제 철폐, 이성 교제와 음주, 흡연 따위 거의 내 모든 것을 지켜봐 주신 선생님은 김진표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은 묵묵히 행동으로 깨달음을 주었다.
여전히 사람을 믿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에 대해, 다른 사람에 대해 기대치를 낮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게다. 어쩌면 세상이 사람을 믿지 않게 만드는 것보다는 내 스스로 불신과 마음의 벽을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믿을 놈이 있다는 것, 믿음이라는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 아니 널려 있다는 것을 ‘작은책’은 일깨워 준다. 작은책 6월호에 실린 김성환 삼성일반노조 위원장이 그렇고 박훈 변호사가 그렇다. ‘작은책’ 독자 여러분이 그렇다. 나는 그런 내 마음의 불신의 벽을 허물어 주는 ‘작은책’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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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기억의 정치를 보증한다

건축, 기억의 정치를 보증한다.


승효상, 《건축, 사유의 기호》, 돌베개, 2004, 18,000원


*리뷰 출처: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소식지 진보부산 10호 8월호 http://busan.kdlp.org/
건축, 기억의 정치를 보증한다.

                                                                     양솔규(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가끔 여러 분야에 일을 하는 사람들의 글, 즉 글과는 별로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쓴 글을 읽다가 화들짝 놀랄 때가 많다. 소위 ‘글발’이 글 쓰는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 훨씬 더 뛰어날 때가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글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글이 지식전달과 감동은 고사하고 고치며 읽어야 할만큼 초보적 훈련도 되지 않은 것을 볼 때도 있다. 건축가 승효상의 글발은 장난이 아니다.

필자의 이런 경험이 처음은 아니다. 승효상이 중앙일보에 건축과 관련한 글을 연재하면서 책을 펴냈다면, 건축가 서현 역시 동아일보에 글을 연재하였고 책을 펴냈다. 서현이 다룬 주제들은 대개 서울이나 광주, 부산 등 한국의 거리에 대한 에세이였다.

얼마 전 한 당원이 자기 동생에게 선물할 책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했다. 불현듯 나는 서현의 <건축, 음악처럼 듣고 미술처럼 보다>를 추천했다. 건축에 대한 문외한(門外漢)인 내가 건축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볼 계기를 준 책이었다. 하지만 곧 도서 추천을 후회하게 되었는데 책 추천이라는 게 그렇게 심오한 행위는 아니지만 자기 경험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어쩌면 책을 권한다는 것은 책 한 권을 뛰어 넘어 삶의 변화를 권하는 것은 아닐까. 일종의 책임감이 드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건축’이라는 가깝고도 먼 주제에 대한 책이라면 더더욱.

다른 어떤 미디어보다 책이 주는 장점은 장르와 시공간을 뛰어 넘어 모든 부분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이다. 공간을 바탕으로 하는 미술이나, 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음악, 영화 등 직접적 감각에 의존해야만 하는 장르조차도 책을 통해 우리는 그에 관한 지식과 정보를 공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2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직접적 감각의 체험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어떤 감동과 울림은 때때로 말과 글을 통해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어느 부분보다도 건축은 직접적 체험과 그에 대한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건축계의 대부라 할 수 있는 건축가 김수근의 수제자로서, 한국의 현대건축계를 버티고 서 있는 건축가 승효상은 그 누구보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는 독창적인 자기세계를 구축해 오고 있는 사람이다. 직접적 체험이 무엇보다 중요시될 수밖에 없는 ‘건축가’라는 직업을 가진 이가 책을 펴냈다. 그것도 건축에 관한 책이다. 건축가의 글은 어떤 모습을 지닌 것일까? 삶의 직접적 체험을 기반으로 하는 건축(가)에 대해 2차적인 책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전달한다는 것, 쉽지 않은 일이다.

이 책은 승효상이 자신의 ‘관습과 타성을 씻고 버려 건축의 본질에 가깝게 가려는 데 큰 자극’을 받았던 건축물과 건축가의 삶에 대해 다룬 책이다. 승효상의 화두는 이런 것이다. ‘토탈 이클립스’라는 영화에서 랭보가 베를렌에게 했던 말, ‘당신은 시를 어떻게 쓰는지 알지만 나는 시를 왜 쓰는지 안다.’ 건축의 궁극적 목표, 목적, 왜 건축을 해야만 하는 지에 대해 끝없는 탐험을 승효상은 하고 있는 것이다.

승효상에 의하면 건축에 대한 일반의 상식은 건축이 예술의 한 분야거나 기술의 한 분야로 포함시키지만, 이는 망상이라는 것이다. 굳이 건축을 인접학문 속에 분류한다면 ‘인문학’에 가깝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학적 상상력과 논리력, 역사에 대한 통찰력, 사물에 대한 사유의 힘, 이웃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 속에서 작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건축이 단순한 기술적 공학이 아님은 물론, 일반 대중의 삶과는 동떨어진 뭔가 고색창연한 예술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삶이 공간을 기반으로 하고, 건축은 또한 공간, 즉 장소와는 뗄레야 뗄 수 없으며 건축의 존재의의는 인간의 삶의 영위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혁명만 혁명이 아니다. 흔히 건축의 3대 혁명을 이야기한다. 첫째는 2,000년 전, 로마인들이 발명한 콘크리트이다. 재료적 혁명. 이를 통해 재료의 의지보다는 작가의 의지가 중요해진 것이다. 둘째는 고딕양식의 완성이다. 전형적인 고딕양식인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기억해보자. 이를 통해 벽은 새로운 기능, 창문을 담당할 수 있었고 건축은 ‘중력에서 해방’되었다.
세 번째 혁명은 바로 파리의 ‘뽕삐두 센터’이다. 각종 배관과 설비가 모두 외관에 드러난 상태의 센세이셔널한 건물. 사회당 미테랑 대통령의 야심찬 문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던 뽕삐두 센터는 바로 ‘하이 테크놀로지’의 혁명이었고, 그 자체보다는 ‘하이 테크놀로지’를 만든 ‘정신’이 곧 ‘큰 기술’이었다. ‘우리가 가졌던 종래의 건축개념을 뒤집어 우리가 믿었던 신념들을 다시 반추하게 만들었으며 동시에 우리 시대 삶의 방식을 새롭게 제시’했던 그 ‘정신’이 곧 혁명이라는 것이다.

도시와 주거, 지역이라는 한정된 공간 속에서의 도시정치. 민주노동당이 숙명적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우리의 환경이다. 이 외부 환경을 어떻게 바꾸는가 하는 것은 민주노동당의 과제임과 동시에 미래의 환경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세계에서 가장 밀집된 건축현장이 있으나 건축의 정신과 건축의 목적은 사라진 곳, 재산증식에 철저하게 복무하는 건축물들만이 ‘생존할 수 있는’ 곳, 대한민국. 아파트(부동산) 투기 문제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APEC을 대비해 만드는 누리마루가 부산시민의 뇌리에 뿌리박히는 것. 이는 APEC에 대한 정당성, 도시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의탁, 한나라당과 성장연합의 주도권이 확고해지는 기제가 된다. 소위 ‘기억의 정치’는 도시 건축물 속에서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하게 되는 것이다. 한나라당에게는 ‘누리마루’가 ‘기억의 정치’의 기제이다. 부산시민의 바램과 열망을 모아 일체감을 갖게 하고 그 상징을 누리마루에 고스란히 유폐하는 것, 생각보다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도시 곳곳에 프린트된 누리마루의 경관은 내년 선거 때까지 유지될 것이다.

열린우리당에게는 ‘민주공원’이 있다.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정통성을 토대로 만들어진 그 공간은 소위 민주 대 반민주의 구도가 수구 대 개혁의 구도로 허위 전화되면서 ‘누리마루’보다는 약하지만 더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 있다. 이 역시 역사성을 토대로 부산시민의 일체감을 조성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에겐 도시정치의 상징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 아니 우리의 상징성은 그들과는 달라야 한다. 역사적 조형물, 이벤트의 기념물이 아니라 도시 생활, 부산 시민의 삶을 오롯이 담을 수 있는 그 무엇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쌓여 나갈 때에만, 도시는 좌파의 강력한 상징을 기억하고자 할 것이다. 바로 뽕삐두 센터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 종래의 개념을 뒤집고 신념을 다시 반추하는 것, 이를 통해 삶의 방식을 새롭게 제시하는 것, 건축과 정치가 만나는 지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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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부산9호]부산을 바꾸려면 이 책을 보라!

 

리뷰출처: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진보부산 9호>

부산을 바꾸려면 이 책을 보라!

                                                                   양솔규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도시는 미디어다
/ 김찬호 지음 / 책세상 / 2002 / 4,900원 /178쪽

가뜩이나 통풍이 안 되는 방에서 무더운 여름밤을 보내다보면 답답하기만 한데, 집에 있는 모든 창을 열어두면 시끄러운 차소리 때문에 예민한 나로서는 여간 잠을 청하기가 힘들다. 이 도시를 두고 누구는 잿빛이다, 무겁다 하는 표현을 붙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낭만적 표현보다는 차라리 ‘재수없어!’, ‘짜증나’라는 말이 더 솔직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깔끔하게 조성된 고층 아파트를 가게 되면 괜히 주눅들고, 돈 없는 것에 대해 후회와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왜 이렇게 잘 사는 놈들은 편안하게 살고, 못 사는 놈들은 짜증내면서 살게 되는 것일까?
물론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고 활동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과연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궁극적으로 올 때까지’ 모든 행복과 가치는 유보해야만 하는 것인가? 소위 근본모순이 해결되는 그 순간에 와서야(그러니까 그 전에는 결코!) 비로소 행복의 활시위는 서서히 떠나게 되는 것인가? 그럼 이 도시의 팍팍한, 짜증나는 경관과 소음, 부딪힘과 낯설음은 감내해야만 하는 고통으로 남게 되는 것인가? 답답하기만 하다.

도시란 무엇인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자본의 필요에 의해 새로운 시공간적 구획이 시작되었고 이 속에는 인간, 노동자가 있었다. 있으나 없는 ‘빈 공간’은 무엇으로 꽉꽉 채워야만 했다. 도시는 자본주의가 만든 하나의 거대한 공장이다. 소위 근대 이전의 도시와 근대 이후의 도시는 여러 가지 점에서 차이가 난다. 정치적, 경제적 의미에서 다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대규모의 인구이동을 전제로 한 산업적 공간구획이 그 특징이라 하겠다. 노동력과 상품이 거래되고, 그 속에서 물질적 부가 끊임없이 쏟아져 내는 도시는 한편으론 빈곤을 생산하고 다른 한편으론 화려함을 생산한다. 근대 이전의 정적인 인간관계는 상품과 가치 중심으로 탈바꿈한다. 이른바 맑스식으로 말하자면 모든 굳어진 것은 사라진다(All That is Solid Melt Into Air).

예전부터 도시의 문제는 곧 계급적인 투쟁의 형태와 함께 전개되어 왔다. 직접적 공격일 수도 있고 이데올로기적 공격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도시는 그 모든 투쟁의 결과물이 각인된 거대한 화석이기도 하다. 승리자는 거대한 구조물로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며 패배자는 기억과 술자리에서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응축된 투쟁의 결과물이 도시인 것이다. 서울 올림픽 공원은 승리자에겐 기념물일 수 있지만 패배자에겐 무덤일 수 있다.

한국 자본주의 역시 초국가적인 도시 문제를 만들어 왔다. 이는 자연스럽게 어쩌다가 생긴 문제가 아니다. 종속적이고 유혈적인 산업화(소위 유혈적 테일러리즘에 기초한)는 서울을 정점으로 한 전 지역의 복속을 낳았고 이는 사회 곳곳에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

사진. 생태도시로부각되고있는고베.

도시는 자본주의 이후에도 수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2차대전 이후 자본주의 황금기를 거치면서 체계적인 도시정비의 필요성이 생겨났고 이 과정에서 도시빈민과의 거대한 전투가 벌어졌다. 71년 경기도 광주대단지 투쟁, 80년대 올림픽을 앞두고 벌어진 상계동 철거투쟁 등이 대표적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른바 환경문제를 둘러싼 투쟁은 지역운동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송전탑 반대 투쟁, 댐 건설 반대 운동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도시의 구획을 둘러싼 운동의 특징은 한 마디로 ‘반대운동’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영속성은 보장되었고 도시의 재구획은 90년대 초중반에는 거의 완료되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도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시민운동의 때늦은 (혹은 때이른) 붐과 함께 지역운동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다. 도시를 살리자는 것이다. 한국 사회 역시 단지 도시의 구획뿐만 아니라 그 속에 사는 인간들의 세대 역시 바뀌게 되면서 도시 출생 인구 비중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산업 역시 주도산업이 이미 성숙산업화 되면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제 한국 사회는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인구구조, 성별 시스템, 도시, 산업구조, 산업의 성숙도, 교육수준 등에서 서구의 모습과 많이 닮게 된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반대’와 더불어 ‘반대’를 넘어선 참여, 목표에 있어서의 생태, 생활적 요구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마을 공동체) 형성이 도시 재생, 주민운동의 중요한 축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버마스가 구분한 바 돈과 권력을 중심으로 한 ‘체계’와 구분되는 ‘생활세계’가 점차 주요한 전장이 되는 것이다. 개인 삶의 세계를 침범하는 ‘체계’에 맞선 투쟁, 그것을 신사회운동이라 부른다.

하지만 이 과정이 그렇게 간단하게 진행되지는 않는다. 주민들과 접촉하고 노력하는 것은 많은 준비를 필요로 한다. 즉 생활세계를 어떻게 재조직할 것인가는 새로운 생활세계의 상, 즉 개인적 생활태도(가치관)와 사회적 교류 방식의 변화를 전제로 해야 하고 이는 선험적으로 규정할 만큼 쉽고 단순하지가 않다. ‘체계 내’ 투쟁과 ‘생활세계 내’ 투쟁이 씨줄과 날줄처럼 동시에 필요하다. 이러한 투쟁에 민주노동당이 끼어들어야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아니 90년대 초중반에 개입의 주도권을 놓친 것이 중요한 우리의 실책일 수 있다.

지금도 도시를 둘러싼 담론은 우리를 무수히 들었다 놨다 한다. 한전 이전이 실패하자 부산은 노무현의 균형정책이 실패했다고 떠들고 있고, 주공이 들어서는 경남에서는 기초단체들끼리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이제 내년이면 지방자치체 선거이다. 선거에 목숨 거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계기로 도시 하드웨어의 전반적인 문제, 도시 삶의 양식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 좁은 운동의 토양을 넓히는 현대적 운동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당원동지들에게 선거운동이 시작되기 전 이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 이 책에는 선거 공약과 관련한 아이디어뿐만 아니라 우리가 도시와 사람들간의 관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도 함께 담고 있다. 도시도 숨을 쉴 수 있다. 도시도 숨을 쉴 권리가 있다. 도시 속 시민의 주인됨은 도시 디자인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

탈출구는 없다! 문제는 상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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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부산8호]미술과 도시, 좌파와 공공예술(다니엘 뷔렝과 콩소르시움, 크리스토와 잔느 클로드)

출처: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진보부산> 8호(2005년6월)

미술과 도시, 좌파와 공공예술

양솔규(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중동서 당원), redstar@jinbo.net


다니엘 뷔렝과 콩소르시움

다니엘 뷔렝(Daniel Buren)은 프랑스 출신의 세계적인 설치미술가이다. 이 작가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모든 형태를 사상하고 수직으로 뻗은 선으로 구성한 작품 때문이다. 때론 공원에 때론 유적지에 때론 지하철 선로 옆에 설치된 작품들은 기존의 전통적인 형태의 전시회 즉, 미술관에서‘만’ 열리던 전시를 거리와 의외의 장소로 곳곳에 옮겨 놓았다.
파리의 팔레 로얄(Palais Royal-프랑스혁명기에 혁명군중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기 위한 행군을 이곳에서 시작하기도 했다)에 전시되어 있는 다니엘 뷔렝의 전시물은 프랑스 사회당이 정권을 잡은 시기에 계획되었다. 그러나 작업이 진행되던 와중에 정권은 우파에게 넘어가게 되고, 전통과 보수의 정신이 살아 있는 이 곳에 ‘전복적’인 작품이 설치되는 것에 대해 반발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현재 이곳은 다니엘 뷔렝의 작품으로 인해 더욱 유명해졌다.
미술관이 예술의 제도적 형식을 보증하는 중요한 기제라는 점에서 다니엘 뷔렝의 작품들은 반(反) 미술관적인 것뿐만 아니라, 반(反)정부적이고 반(反) 제도적인 예술이기도 하다. 다니엘 뷔렝 역시 유럽의 68혁명의 와중에 몇몇의 미술가와 함께 좌파적 그룹을 결성하고 활동을 전개한다. 거리미술(street art)로 일컬어지는 이러한 조류는 마야코프스키의 언급, ‘거리를 우리의 붓으로 만들자, 광장이 우리의 팔레트가 되게 하자’던 선동과 연결된다. (중국 목판화운동이 영향을 미친) 멕시코 벽화운동이나 젊은이들의 그라피티 역시 이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시대가 바뀌었다. 예술에 있어서의 좌파들은 퐁피두를 점령하기에 이른다. 2002년 여름, 프랑스 파리의 퐁피두 센터에서는 다니엘 뷔렝(1939~)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었다. 또한, 다니엘 뷔렝과 오래전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디종의 ‘콩소르시옴’ 아트센터는 퐁피두센터에서 자신들의 컬렉션전을 열었다. 퐁피두(프랑스의 중도우파 대통령의 이름을 딴) 센터에 좌파 미술가들이 입성을 한 것이다. 물론 좌파들이 기치로 걸었던 반 제도의 기치가 이제 사그러 든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콩소르시옴은 여전히 정치사회적 변혁을 꿈꾼다. 이들의 퐁피두 입성은 투항의 의미보다는 확산의 의미로 보아야 할 것이다. 콩소르시옴은 보르도 지방의 누보 뮤제(신미술관)와 함께 노동자들의 참여 속에서 77년에 만들어진 좌파 미술운동의 작지만 중요한 ‘진지’ 중 하나이다. 예쁜 그림과, 완성된 형태의 액자 속 고정물이 아닌 ‘과정 중인 작업work in progress’을 통해 관계와 새로운 형태로의 변화를 곧 작품 안에서 구현하려는 이들의 시도는 설치된 장소에 따라 그 의미를 달리하는 다니엘 뷔렝의 작품과도 일맥 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대지 미술가, 크리스토(Christo)와 잔느 클로드(Jeanne-Claude)

 

부부인 크리스토 야바체프(Christo Javacheff, 1935~, 불가리아 출생)와 잔느 클로드(프랑스 출생)는 대지 미술가(Land Artist)로 알려져 있다. 두 부부는 각종 자연적 경관이나 거대한 인공물에 천을 덮어씌우는 것으로 유명한 설치미술가들이다. 이들의 작품 역시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 물체로 형태상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의 맥락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현대 개념미술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거리, 자연, 관공서 등은 그 자체로 공공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오브제에 포장을 씌우는 의미는 곧 천과 태양에 따라 작품의 일시적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덧없는 작품의 일시성이라고나 할까? 따라서 이들의 작품 역시 작품이 구성되는 맥락, 과정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물론 현대미술의 중심에 서 있는 설치미술의 대부분이 이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말이다. 크리스토 야바체프는 말한다. ‘작품은 새로운 것이며,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덧없는 것이다’
이들의 작품은 오랜 기간동안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실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례로 79년에 계획한 ‘문 the Gate 프로젝트’는 2005년 2월, 뉴욕 센트랄 파크에서 짧은 2주간의 설치로 막을 내렸다. 40여년을 뉴욕에서 살아온 이 부부의 프로젝트가 완성되기까지는 장장 26년이 걸린 셈이다. ‘과정’은 한편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논의를 촉발시킨다. 미술계의 인사들뿐만 아니라, 환경단체들, 일반시민들이 논의에 참여하게 된다. 공공미술의 공공적 성격은 곧 예술의 대중화뿐만 아니라 공공미술을 둘러싼 미와 형식, 자연과 미래에 대해 나름의 견해가 폭발처럼 분출된다. 어쩌면 거대한 규모의 작업은 그 규모만큼이나 커다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점은 이러한 사회적 논쟁 과정이다. 독일제국의회 건물을 뒤덮는 프로젝트 역시 기나긴 논쟁을 동반했다. 렌조 피아노와 리차드 로저스의 퐁피두센터 설계안을 둘러싼 논쟁 역시 마찬가지이다. 도시공간의 구획을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 중요한 좌파 의제가 될 것이다. 이명박의 청계천 프로젝트는 그 시발점이었다.
모든 예술과 문화에 있어 소외된 상태를 오랫동안 강요당해 온 한국적 현실에서는 예술을 둘러싼 공론의 장에 참여하는 서구의 경험들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그 소외 덕분에 노동자 민중과 예술은 서로가 다른 영역으로 침범할 수 없는 장벽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예술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상상력과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일은 곧 정치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부르디외가 분석했듯이, 학력과 직업에 따른 문화적 자본을 소유한 계급과 그렇지 못한 계급이 서로 다른 미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 노동자계급의 기준은 강요된 기준이기도 하다. 꽃과 바닷가의 풍경만을 아름답게 느끼게끔 하는 이러한 기준은 곧 노동자계급을 타계급과 구별을 짓게 만든다. 이러한 구별의 기준들은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다. 문화적 좌파와 계급적 좌파가 만나는 지점은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고 공통된 실천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에 있다. 단지 도덕적 헤게모니만이 아니라, 문화적 헤게모니를 쥐지 못할 때, 객체화되고 소외된 상태의 지양은 절대로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정치적 좌파가 성장한 도시들의 대부분은 수많은 예술가들을 가진 문화적 도시이기도 하다. 이러한 곳, 파리, 센프란시스코, 베를린, 런던 등에서의 공공미술과 건축물을 둘러싼 논쟁들은 그 도시의 노동자계급과 좌우 이념의 운명과 관련이 있다. 한국의 일방적인 우파 헤게모니 아래서 당의 문화적 실천은 곧 이러한 여지를 넓힐 수 있는 시야를 확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80년대 민중미술 이후 수많은 미술작가들은 새로운 조류(미니멀리즘과 설치미술)들을 형성했다. 이들의 정치적 지향이 노무현으로 쏠렸다가 다시 중립으로 회귀하고 있다. 이제 당은 천 개의 눈 중 단 몇 개의 눈만이라도 도시 문화정치에 돌려야 한다. 칸딘스키와 러시아 아방가르드 작가들은 러시아혁명을 지지했고, 트로츠키는 이들을 열렬히 옹호했다. 레닌 역시 (좋아하지는 않았으나) 이들의 예술을 묵인해 주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이후 추상회화를 인정하지 않았다. 21세기의 진보정당, 민주노동당은 범람하는 이미지 속에서 자신의 눈을 확고하게 그러나 폭넓게 업그레이드해야 할 것이다.

<추천 사이트>

다니엘 뷔렝(Daniel Buren)의 사이트 : http://www.danielburen.com/
장 클로드 & 크리스토 야바체프의 사이트 : http://christojeanneclaude.net/index.html.en
쌈지 스페이스 : http://www.ssamziespace.com/
대안공간 풀 : http://www.altpool.org/
포럼 A : http://www.foruma.co.kr/ 영화감독 박찬욱의 동생인 박찬경이 주도하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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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부산7호]태양은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다

태양은 청구서를 보내지 않는다
 

                                                     양솔규(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리뷰 출처: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소식지 <진보부산> 7호 http://busan.kdlp.org/

<다시 태양의 시대로> - 이필렬 씀/양문/2004년/1만원


마음 한 구석에 빈자리가 느껴지고 더 이상 예쁜 꿈을 꿀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지는 나이. 그런 나이가 되어야 알 수 있는 ‘맛’이 있다. 간만에 만난 친구와 주고받는 술잔의 맛이 그러하며, 진한 육수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의 맛이 그러하다.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는 산행의 커피맛이 그러하며, 똑같은 일상을 벗어나 조용히 라디오를 켜고 앉아 읽는 책맛이 그러하다.

그런 나이가 되면 사람들은 꿈을 꾸기 마련이다.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나를 둘러싼 익숙하지만 힘겨운 짐들과 풍경들을. 그리곤 상상한다. 자연을 벗하며 사는 삶으로 돌아가는 꿈을. 이젠 내가 어제까지 접촉했던 하찮은 것들은 더욱 하찮아지고 결심은 굳어진다. 나 돌아갈래! 그 나이. 더는 참을 수 없을 만큼 밀리고 밀려 내 등이 거대한 절벽에 맞닿은 나이. 그때서야 나타나 내 눈을 사로잡는 삶은 더 이상 어제의 삶이 아니다. 자본이라는 인공의 거대한 힘은 내 안에서 파괴된다.

그런 선택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닥치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그런 꿈이 있다. 쭉 뻗은 아스팔트와 화려한 조명이 번쩍이는 도시를 동경할 만큼 순진한 나이가 아니라면, 오르지 못할 타워팰리스를 더 이상 쳐다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 인생이 포기를 의미한다거나 인생의 마지막 정착지로 흘러 들어가는 노파의 힘겨운 발걸음도 아니다. 태양의 강렬한 빛이 내리쬐고, 굳은 발 뒷꿈치에 시원한 흙의 감촉이 전해지는데 우울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는 쉽게 떠날 수가 없다. 거창한 이유는 아니더라도 내 주위는 자기장처럼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당장의 결정도 쉽지 않고 자신감도 생기지 않는다. 우리의 삶과 몸은 인공에 둘러싸여 매연을 마시면서 병원이나 들락거리면서 시멘트처럼 굳어져야 하는 것인가?

이필렬 선생이 쓴 <다시 태양의 시대로>는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전해 준다.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에서 잃어버린 꿈,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나갈 희망 말이다. 간단하다. 사람, 문명이 돌아가야 할 태양의 시대는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화석연료 시대는 단지 생태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경제적 이유, 문화적 이유, 효율성인 이유 때문에라도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제 화석연료 고갈은 눈앞으로 다가왔고, 미국과 한국 등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은 새로운 대체에너지,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경제성? 석유와 석탄에 의존한 에너지의 가격은 상승하고 있고, 태양에너지, 풍력에너지의 가격은 하락하고 있다. 언제쯤? 2010년이면 태양광전기가 가스화력과 경쟁하고, 2030년이면 석탄, 원자력과 경쟁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추세로는 이 시기는 더 빨리 단축될 수 있다. 난방, 전기생산, 조리 등 태양을 이용한 에너지전환은 생태계와 민중의 생활(어쩌면 자본주의에도)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2004년 정부에서 제출한 2차 전력수급 계획을 보면 대부분의 전력소비 증가분을 화력과 원자력으로 채우고 있다. 석유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는 에너지 소비에서 매우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미 독일, 일본, 영국보다 더 많은 에너지 소비량을 기록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많은 부분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독일은 2050년까지 에너지 소비를 현재의 60% 수준으로 줄일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에너지 소비 구성에 있어서도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70%로 채우고 원자력 의존은 2030년이면 없앨 계획이다. 야심찬 계획을 구상했다. 이미 많은 나라들과 초국적 석유회사들(예: Shell) 역시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화석연료 사용으로 인한 지구 기후 재앙은 이미 초읽기에 들어갔다. 해수 온도의 변화는 강수와 기온의 급격한 변동을 가져오고 있다. 재생가능한 에너지는 우리에게 무한한 에너지뿐만 아니라 안정적인 기후도 가져다 줄 것이다.
얼마 전 민주노총 공공연맹, 에너지대안센터, 민주노동당 조승수 의원 등이 모여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 준비위’를 만들었다. 흔히들 노동과 환경이 대립되는 경우를 예로 들면서 두 부문의 ‘화해할 수 없는 적대적’ 관계를 상정하고들 한다. 물론 그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러한 관점은 현체제를 패배적으로 인정하게 하는 효과를 생산한다. 노동과 환경, 두 부문이 만날 수 있는 지점은 현 체제의 ‘극복’에서이다. 자본주의 내 근본모순 중 하나로 노자간 모순 뿐 아니라, 자연/사회 모순을 상정하는 (제임스 오코너와 같은) ‘생태 사회주의’ 관점도 존재한다. 이러한 관점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눈에 보이는 위기를 극복하지 않고 나의, 가족의, 이웃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 어찌 저항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사는 이 땅, 이 공간을 우린 너무 일찍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멀리 떠나지 말자! 내가 있는 곳이 바로 저항의 중심! 부러운 그들의 삶을 차근차근 만들어 가자!



<추천사이트>
* 에너지 대안센터
http://energyvision.org/
* 환경수도 프라이부르크 http://haeseong.hs.kr/HMC/freiburg/main.htm


<추천도서>
* 환경 수도, 프라이부르크에서 배운다 / 이후 /김해창
*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 / 존 벨라미 포스터 지음, 김현구 옮김 / 현실문화연구
* 생태적 경제기적 / 프란츠 알트 / 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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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부산5호]빈곤과의 투쟁은 민주노동당식 민주주의 투쟁이다.

출처: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소식지 <진보부산> 5호(2005년 1월). 글을 다시 보니, 현재 민주노동당 내에서 '빈곤과의 투쟁'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낍니다.

빈곤과의 투쟁은 민주노동당식 민주주의 투쟁이다.

 

양솔규(중동서지구당 당원,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2005년이 밝았다. 작년 한 해는 2003년 노동열사들의 잇다른 죽음과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행복한 한 해였던 것은 아니다. 높아지는 정치개혁의 열기 속에서 치뤄진 4.15 총선에서 노동자 민중들은 숙원이었던 노동자 민중의 정치세력화를 이루었지만, 파탄 난 민생, 불평등의 심화는 우리가 샴페인을 터트리는 순간에도, 우리가 잠든 순간에도 꾸준히 멈추지 않고 진행되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당의 정책이론지 <이론과실천> 2004년 9월호에는 '빈곤과의 전쟁‘을 선포하자는 다소 무시무시한 내용의 글이 실렸었다. 지금은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에서 활동하는 장석준 동지가 쓴 글인데, 그는 이 글에서 신자유주의의 약한 고리인 분배의 문제에 당이 집중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물론, 우리 당은 작년에도 여전히 꾸준하게 분배의 문제를 제기해 왔다. 한편으론 성장우선주의자들에게 대항해 성장을 위해서라도 내수를 확대해야 하고, 내수확대는 분배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어쩐지 수세적인 느낌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었다. 그것은 전체적인 경제 시스템과 패러다임, 노사관계와 비정규직 확산과 관련된 노동시장정책, 산업정책 등 거시적 계획 속에 위치 지어진 주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허점도 많고, 믿음이 가지 않는 주장이었다. 또한 노동자 민중의 정당으로서의 민주노동당이 가져야 하는 정치적 헤게모니를 틀어쥐기에는 뭔가 부족한 주장이기도 했다. 다행히도 민주노동당은 원내 진출 이후 최소한의 무기도 주어졌고, 군사와 장수들도 준비되었다. 이제 지형지물을 이용한 총체적 진군 경로와 작전이 구축되어야 한다.

  

2004년 마지막 날, 당의 진보정치연구소는 2004년 10대 뉴스의 첫 번째로 ‘빈곤 문제’를 거론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체인구의 5.8%(경상북도 주민 수 270만 명)가 절대빈곤층이고, 차상위계층을 포함한 인구는 부산시 인구보다 40만 명이 더 많은 410만 명이라고 한다. 이 광활한 빈곤인구 수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숫자는 점점 더 늘어날 것이고, 부자는 더 급속하게 빨리 부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 즉 빈곤층과 부유층이 동시에 증가하는 ‘양극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단지 통계상의 숫자의 문제가 아닌 것이, 계급이동의 주요한 기제였던 교육, 문화, 경제적 기회 모든 측면에서 봉쇄되고 거세당한 현실은 이미 십 수 년 전부터, IMF 전부터 우리 피부로 느껴온 지 오래 되었다.

  

사실 가장 우려스러운 점은 세계적으로 몰아치고 있는 ‘빈곤의 세계화’ 속에서 동아시아 자본주의의 선두에 있던 한국이 ‘남아메리카화’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점이다. 저성장과 불평등의 극단화, 종속의 심화와 정치적 후원주의 등 헤어 나올 수 없는 고난이도 미로를 최근 남미의 진보세력들은 좌파바람을 일으키며 헤쳐 나오려 하고 있지만, 반대로 한국은 이러한 특징들을 하나씩 안으면서 실질적인 퇴보 과정에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은 ‘광활한 빈곤의 바다’는 극단적인 우익(더 나아가 파시즘)의 배후지가 된다는 사실이다. 또한, 빈곤에서의 해방은 민주주의적 과제, 계급정치의 발전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중첩된 연관성을 갖는다. 브라질 룰라 정부가 출범 당시 빈곤퇴치 프로그램을 가장 중요하게 주장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비정규직의 확산, 절대빈곤층의 급증, 극단적 양극화, 폐쇄적 계급구조 속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는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으며, 결국 민주노동당과 사회적 연대가 설 자리는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현실을 담론화시키는 것, 그 속에서 압도적 다수의 곤궁한 자들의 거대한 연대를 구축하는 것, 그것은 한 순간의 지지율 획득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잊혀지지 않는 역사적 축적물이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감히 정의한다면 '빈곤과의 전쟁'은 계급형성 과정임과 동시에 실질적 민주주의의 정초과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단지 2006년 선거 득표를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자 민중의 그리고 우리의 삶을 위해서 ‘빈곤과의 전쟁’을 민주노동당은 선두에서 지휘해 나가야 한다. 민주노동당을 등산로 입구까지 끌고 온 노동자계급이 바라는 것은 등산로 입구에서 피켓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산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것이다. 계급의 손을 잡고 희망찬 산행을 하라는 것이다. ‘오늘의 절망을 넘어’ 가는 것은 시대가 당에 짊어 준 역사적 과제에 다름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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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부산3호]천 개의 눈, 천 개의 상상력 그리고 천 개의 진보정치

 

출처: 민주노동당 부산시당 <진보부산> 3호 (2004년 11월 15일)

 

천 개의 눈, 천 개의 상상력 그리고 천 개의 진보정치

 

-깊어가는 겨울 학습하는 정당이 되길 바라며

순정만으로는 2% 부족. 정진(精進)하는 자, 사랑을 얻는다!

                                                                  양솔규(중동서 당원, 영남노동운동연구소 사무국장)

‘발언하기의 두려움’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르시스는 연못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며 환희했고 그리워했지만, 범인(凡人)들의 사고는 그렇게 짜지지 않는다. 즉, 신화의 인물과 땅위 인간의 자기애(自己愛)에는 넘어서지 못할 장강(長江)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발언’은 자신을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행위의 일종이다. 가수는 공연이나 앨범발매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며,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통해 유적(類的) 존재로서의 자신을 드러낸다. 운동권 용어로는 ‘개입’이라고도 한다. 드러낸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는 자신의 부끄러운 점들이 여지없이 함께 드러나기 때문이다. ‘발언의 두려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동창회든, 조기축구회든 어떤 모임이든 간에 언제나 빠지지 않는 순서가 있다. 바로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이다. 이름과 얼굴을 드러내는 것 말고도 권장되는, 때때로 강요되는 ‘신상명세서’ 까발리기, ‘민증 까기’의 순서는 지금껏 나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특히, 앞 순서에서 먼저 소개한 사람이 사람 녹이는 혀의 기술을 가졌다면 나는 더더욱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뭐라고 나를 소개해야 하나?’ 잔뜩 머리를 굴려본다. 곧 내 순서가 되면 구상한대로 소개를 하려 하지만, 머리는 하얘지고, 입은 굳고, 어지럽고, 앞이 안보이면서 더듬더듬 소개를 한다. 소개가 끝나면 대체 내가 뭐라고 떠들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기소개 하나 하기 힘든 범인들에게 더군다나 세상을 바꾼다는 부담스러운 ‘당’ 내에서 발언하기란 영 어려운 것이 아니다. 워낙에 출중한 인물들이 모여 있기도 하거니와, ‘내가 말한 게 틀리면 어떡하지?’ 하는 부담감이 혀뿌리를 잡는다. 사실, 세상의 빛을 본지 오래지 않아서 ‘뜨거운 맛’이 어떤 건지 잘 모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당 중에서 자민련을 제외하고는 가장 오래된 당이라고 하는 민주노동당은,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뜨거운 맛’이 뭔지 알지 못한다. 이제 겨우 대중들에게 자기소개 한 정도일 뿐이다. 우리가 올해 4.15 총선 전, 또는 총선 시기 걱정했던 그것! 그것은 바로 민주노동당의 모습이 대중들에게 낱낱이 드러날 때 감당해야만 하는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아니었던가?

민주노동당은 앞으로 전진만 하고, 사납게 달려들기만 하는 ‘사마귀’가 아니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이 굳세게 지켜야할 모습은 충분한 양식과 내공을 갖추기 위해 준비하는 ‘개미’의 모습이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변방에서 미래를’ 찬란하게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민주적 토론과 학습 속에서 서로가 힘을 얻고 자신감을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 과정이 없다면 우리는 영원히 대중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꺼려하는 동굴 속 ‘박쥐’ 신세가 되고 말 것이다.

미국 대선이 끝났다. ‘부시가 당선 될꺼야! 이미 결정 났어’ 말하고는 속으로 걱정하는 부류의 사람들도 있었다. 또 어떤 이는 ‘부시가 당선되든, 케리가 당선되든 마찬가지 아니냐’ 하고 짐짓 외면하기도 했다. 모두가 제국의 운명에 관심을 가졌으나, 우리는 제국에 개입할 방법이 없었다. 불가항력적인 패배가 역사에는 존재한다. 하지만 가능한 승리도 세상엔 있다. 단선적인 역사가 없다면, 아흔아홉 번의 연패란 없다. 우루과이 좌파의 선거 승리, 네덜란드 노동자들의 거센 저항의 물결도 있다. 우리에겐 이 땅 한반도가 무대다.

오늘도 내일도 생활 속에서, 현장에서 투쟁을 조직하고 열심히 뛰어다니는 순박한 우리 당원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눈물 한 아름 나게 아름답지만, 모든 ‘순정’이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다. ‘순정’을 대중들이 알아줄 것인지는 목소리 크기나, 쪽수로 판가름 나지 않는다. ‘순정’이 ‘짝사랑’으로, 또는 ‘배신’으로 귀결될 운명이라면 그 순정은 거두는 것이 어느 모로 보나 현명하다. 사랑이 ‘눈물의 씨앗’이라고 믿고 있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순정’을 다 바쳐 사랑을 얻으려 한다면, 나의 ‘순정’이 어떠한지 알려야 한다. 고백하지 않고 어떻게 사랑을 얻을 수 있는가? 내 마음을 어떤 형식으로 갖춰, 어떤 방식을 통해 고백할 것인가? 나의 ‘순정’을 무엇에 쏟아야 할 것인가? ‘사랑한다면?…’ 우유 먹이는 걸로 그칠 것인가? 우리는 다음의 스케줄을 짜고 하나하나 갖추어야 한다. 세상엔 아흔아홉 번의 연패란 없지만, 아주 쉽게 승리의 고리를 놓칠 수도 있다. 자신감이 자만심이 되고, 뚝심이 아집이 되고, 결단이 경직성이 되며, 유연함이 우유부단함이 될 수 있다. 사랑에도 전략이 필요하다. 그 흔한 패배가 아니라, 역사적 패배는 우리가 흘린 눈물만큼이나 흔하다.

이제 가을이다. 곧 겨울이다. ‘개미’들이 해야 할 일은 지난 4.15의 환희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내년, 내후년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아니, 백년을 준비하는 시기다. 민주노동당이 ‘거대한 소수’가 되고자 한다면 아니, ‘거대한 소수’가 되고자 한다고 해서, 당의 실력을 키우고, 쓰임새 있는 정책을 만들고, 지역대중 속에 뿌리 내리는 일까지 당내 ‘거대한 소수’에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 서울의 마천루 속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영도 태종대의 절경은 우리가 그려야 한다. 우리가 상상해야 한다. 브레히트의 말처럼 당이 ‘천 개의 눈’을 가졌다면, ‘천 개의 눈’ 속에서 비치는 ‘수천 만 개의 상상화(想像畵)’가 그려져야 한다. 소수로는 부족하다. 가을과 겨울은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다. 상상하기 좋은 계절이다.

미국의 역사학자 하비 케이는 ‘역사학자는 과거와 현재를 장악한 지배세력에 맞서 인민들에게 역사를 되돌려주는 일종의 로빈후드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민주노동당은 ‘역사만’을 되돌려주어서는 안 된다. ‘현재를 역사로 만들어’야 한다. ‘천 개의 눈으로 만 개의 상상화를 그리는 순정파 개미가 되어 인민에게, 인민과 더불어, 인민 속에서 현재를 역사로 만드는 핵심’이 되어야 한다. 실현(實現)은 손끝에서, 발끝에서, 신경세포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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