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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strike), 동맹파업(turnout), 살쾡이(wildcat) 어원 및 의미

'파업(strike)'이라는 말 자체는 아마도 영국의 성난 상선 선원들이 닻을 내리고 출발하라는 그들 주인의 명령을 거부했던 행동에서 기원한 것이다. 유사하게, 불어로 '파업'이라는 단어는 'greve'로서 17세기 파리의 일용 노동자들이 일당제 노동력을 충원했던 장소인 '그레베 광장(Place de Greve)'에 위치한 공장에서 무자비한 소유주에게 저항하는 행동을 도모한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두 가지의 개념 모두 19세기 영국과 프랑스에서 국가가 기업단위의 파업행위를 합법화하기 오래 전에 이미 사라진 (노동자들의) 집합행동을 지칭하는 용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구 사회에서는 파업이 노동자들과 사용자들의 상호 작용을 규율하는 반복적인 표준화된 절차로서 점차 널리 받아들여졌다. 미국에서는 '살쾡이(wildcat)'라는 표현이 확립된 절차, 특히 공인된 지역노조의 적법한 절차에 부합되지 않는 파업행위를 지칭했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파업(strike)이 동맹파업(turnout)을 대체했다. 그 동맹파업은 지역 내 불만족스런 직종노동자의 소집단이 공장들을 돌며 각 공장의 노동자들을 부추겨서 그들의 행진에 참여할 것을 종용하고, 성공하면 근처 광장에서 집회를 열어 그들이 지역 소유주들에게 제시할 요구사항들을 정하고 소유주 혹은 그들의 대표자가 모여 있는 곳에 대표를 보내어 회동을 갖도록 하면서 소유주들이 만족스런 조건을 제시할 때까지 노동자들이 일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분명히 동맹파업과 기업단위 파업은 서로 다른 생산조직에 적용되었다. 동맹파업은 주로 상대적으로 대등한 지위를 갖는 소유주(master)와 숙련공(journeyman)으로 나누어져 있는 소규모 직종공장에 가장 잘 맞는다. 파업은 더욱 다양한 노동력으로 구성되어 있는 대기업들에 적합한 개념이다. 생산조직이 변하면서 기업단위 파업이 동맹파업을 그리 쉽고 원만하게 대체한 것은 아니었다. 사법적 판결, 지역 관습, 노동자 조직 그리고 집단적 기억이 동맹파업의 변종 - 점차 불법적 음모로 불리고 있지만 - 을 자본주의적 대공장체제의 시대에도 유지되도록 했다. 일정하게는 이탈리아의 뜨거운 가을 기간에 공장 지대에서의 행진은 산업단지를 자본집약적 공장으로 대체하는 동맹파업을 재발명하여 전개한 것이었다.

 

 

출처  : <자본주의의 노동세계> 크리스 틸리, 찰스 틸리 / 이병훈, 조효래 등 옮김 / 한울아카데미 /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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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 호니스(Willy Ronis)의 사진

윌리 호니스(Willy Ronis)의 사진

1947년 작품

1947년 Aubagne

 

꼬마 파리지앵

꼬마 파리지앵 1952년작

 

 

1957년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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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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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까르띠에 브레송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윌리 호니스는 프랑스의 좌파 사진가로 사진계에서는 살아있는 전설로 잘 알려져 있다.  대중들에게 친근하면서도 기하학적인 건물 구조물과 오고가는 행인들의 절묘한 조화를 담은 그의 사진들을 실물로 처음 접하는 느낌은 어떨가 당연히 설레이기도.
전시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낮시간임에도 전시장 내부는 사람들로 꽉 차서 사진 앞에 느리고 긴 인간띠를 형성하고 있었다. 게다가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무려 200점에 달하는 작품을 다 둘러본다는 것도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결국 중간에 칭얼대는 딸아이땜에 주마간산격으로 돌아 볼 수 밖에 없었지만, 보통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넘치게 느껴져서 그런지 훈훈하다 못해 후끈거릴 정도였다. 다만 열렬한 공산당 지지자로 노동자들의 파업장면 등을 담은 정치적인 사진들보다 한없이 달콤하고 낭만적인 파리인들의 일상을 다룬 사진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어서 작가의 색깔이 확연히 드러나지 못했다는게 아쉬웠다고나 할까?  
전시장을 나와 종로에 있는 빵집 <오봉팽>에도 걸려있는 '꼬마 파리지앵'등 윌리 호니스의 사진 이미지가 프린트 된 포스터나 엽서를 살까하고 둘러봤더니 생각보다 비싼 가격(포스터 12000원에 엽서 각 2000원)에 한참 망설이다 결국 구매를 포기. 대신 전시를 못 가본 이웃들을 위해 겸사겸사 이미지 올리는 걸로 대리만족 해야겠다.
 
 
사진가란 평범한 행복에 다가서는 작은 발자국이다.
-윌리 호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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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가도(Salgado)의 사진 한 장.

살가도의 사진 한 장!

1986년 세라 페다라 금광(브라질) 노동자와 무장한 경찰간 논쟁.

1986 세라 페다라 금광(브라질) 노동자와 무장한 경찰 간 논쟁

 

강렬한 눈빛과 다수의 관망!

86년, 한국에는 애학투련과 김세진, 이재호 분신이 일어나던 해.

5.3 인천사태와

부천 성고문 사건이 일어나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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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10년 역사 담아 연표집 출간

민주노총, 10년 역사담아 연표집 출간

95년 이후 10년의 민주노조운동 역사 집대성

 

이꽃맘 기자 iliberty@jinbo.net

 

768쪽에 담긴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

 


민주노총의 10년의 역사를 담은 연표집이 출간되었다. 이는 한국 민주노조운동의 10년의 역사를 노동자의 시각으로 집대성한 유의미한 사료의 모음이다. 민주노총은 1995년 11월 11일에 출범했다.

 

민주노총은 지난 2005년 창립 10주년을 맞아 활동을 정리하는 백서 작업을 기획한 바 있다.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에서 기획해 출판된 이번 연표집은 그 첫 번째 성과물이다. 연표집을 만들기 위해 연표 정리 작업에만 6명의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이 보태졌다. 또한 연표 입력 기간만 1년 6개월이 걸렸으며, 교정·교열 작업에 3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릴 정도로 방대한 역사가 담겼다. 연표는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를 기본으로 작성되었다.

 

한국에서의 민주노조 운동은 유구한 역사에도 그 역사는 제대로 정리되지 못해 왔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은 ‘전노협 백서’를 비롯한 여러 논문으로 정리되어 있기도 하나, 민주노총 출범 이후 10년여의 역사는 비어있다. 이번에 출판된 연표집은 그 자리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1995년~2005년의 노동현장과 우리의 일터에서 벌어졌던 노동과 자본의 치열한 힘 대결의 역사를 회고하고 사실관계를 밝히며 그 배후의 힘들이 부딪히는 과정을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기초 사료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자를 역사의 주체로 기록하기 위해”

 

이번 연표집의 책임편집 역할을 맡은 정경원 민주노총 정책연구원은 연표 정리는 “지난 활동을 정리하고자 할 때 그 길을 찾아 갈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것”이라며 중요성을 지적했다.

 

이어 정경원 정책연구원은 “민주노총 주요회의, 산하조직의 주요 투쟁, 연대단체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기록하려 노력했다”라며 “이 자료집이 노동운동사를 재구성하는 데 활용되기 기대하며, 그 일은 노동자를 역사의 주체로 기록하고자 하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둔다”라고 밝혔다.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도 발간사를 통해 “자본과 정권은 자신들의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고 교육한다. 이는 자신들의 현실과 미래를 재생산하기 위함”이라고 지적하고, “노동자 스스로 기록하지 않으면 왜곡되고 주체가 빠진 역사만 남게 될 것”이라며 “지난날의 치열했던 노동운동에서 현장성, 투쟁성, 그리고 대중성이 어떻게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했는지 알아내고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도 기록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라고 전했다.

 

연표집은 2만 5천 원이며, 민주노총 정책연구원(02-2670-9253)으로 연락하면 주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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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 방문객

            방문객

 

                                          정현종

 

사람이 온다는 건

사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의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비평 복간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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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겔스가 Joseph Bloch에게 보낸 편지를

엥겔스가 Joseph Bloch에게 보낸 편지를 볼 것.

 

<1890년 9월 22일>

 

 

 "때때로 젊은 사람들이 경제적 측면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마르크스와 나에게도 일부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장 주요한 원리를 부정하는 적들에 대해 그것을 강조했지만 우리에게는 항상 상호 작용에 포함된 다른 요소들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블로흐(Bloch)에게 보낸 엥겔스의 편지. 1890년 9월 21일(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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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그릇/교육원]지구화 한 그릇 드실래요?

 

-노동사회교육원 4월 회보 양솔규 글

-제호를 고민해 봤으나 떠오르지 않음. <연대하는 노동>, <노동과 교육><노동의 희망, 미래의 씨앗> <연대와 실천> <진보와 노동>, <노동의 창, 연대의 장><해방 심기> 등등.

-꼭지 이름 : 책 한 그릇 or 미래를 여는 책 or 책풍경, or 책 사냥꾼

<책 한 그릇>

  지구화 한 그릇 드실래요?

지구화, 현실인가 또 하나의 신화인가 / 구춘권 / 책세상 / 2000년 / 3900원, 142쪽

 

한미 FTA가 타결되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2007년 4월 2일), 각 뉴스 포털 사이트와 방송들은 FTA의 타결 소식을 급히 전달하고 있다. 어제 밤에는 민주노총 민주택시노조연맹 조합원이자 민주노동당 관악구위원회 당원인 허세욱 동지가 FTA를 막아내고자 54년을 함께 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지금 현재 허세욱 동지는 위독한 상태이다. 이제 우리 현실이 어떻게 변할 지, 각 산업별 득실은 어떻게 변할 지, 촌에 계시는 우리 할매, 할배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우리 고향은 이제 유지될 수나 있을런지, 만감이 교차하는 시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사실은 한미 FTA가 되기 전부터 한국의 개방화 정도는 도를 넘고 있었다. 도를 넘고 있다는 점은 단지 양적인 부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속도의 부분 또한 의미하는 것이었다. 소위 ‘개발독재’ 시기로 일컬어지는 경제 개발 시기에 대한민국은 폐쇄적인 수출주도 보호 무역 정책을 가진 나라였다. 미국은 냉전 시대, 자신들의 동아시아 정책에 지정학적으로 한국이 중요했기 때문에, 한국의 경제 발전을 의도적으로 돕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폐쇄적이고 국가주도적인 경제체제는 외부 시장에 개방적이고 시장주도적인 경제체제로 ‘압축적’인 변화를 이루게 되었다. 이러한 계기는 김영삼 정권 시기의 세계화 전략과 그로 인한 ‘IMF 경제위기’였다.


배낭여행과 영어마을은 차라리 애교스러운 어린 것들의 유행일 뿐이다. 정작 무서운 것은 만성적인 실업과 저성장, 급격한 빈부의 격차와 저항의 붕괴, 교정의 불가능성이 아닐런지.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에서 보아 왔다. 이제 한국은 유럽식 사민주의의 길도, 영미식 신자유주의의 길도, 20세기 초의 사회주의의 길도, 일본식 길도 아닌, 남미식 종속적 신자유주의의 경로로 추락하고 말 것인가? 심히 걱정스럽다. IMF 이후 언제나 어려웠다고, 언제는 해뜰 날이었냐고 퉁명스럽게 내뱉을 지도 모르겠지만, 영화 매트릭스의 대사 한 꼭지를 인용한 우석훈 교수의 말은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괴물.”


이 책의 속지에는 “지구화의 패자와 희생자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적혀 있다. 과연 나는 세계화의 패자인지, ‘노동사회교육원’ 회원들은 세계화의 승자인지, ‘6시 내고향’이나 ‘전국 노래자랑’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패자인지, 승자인지 곰곰이 따져보아야 할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좋든 싫든, 세계화된 세계에 살고 있으며, 그 사회의 보다 나은 모습을 위해서 노력하고 기대하며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화에 대해서는 수많은 책들이 이미 나와 있다. “도둑 맞은 세계화(창비)”, “세계화와 싸운다(창비)”, “세계화 없는 세계화(시유시)”, “세계화 시대 초국적 기업의 실체(책세상”, “더 나은 세계는 가능하다(필맥)”, “아래로부터의 세계화(아이필드)”, “허울뿐인 세계화(따님)” 등등.

그러나 이 책의 강점은 당연히 “짧고, 값싼” 책이라는 사실에 있다. 또한, 수많은 ‘반세계화’ 교과서가 외국의 필자들이 쓴 반면에 이 책은 한국 사람이 썼다는 점도 장점일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 책의 경우 일차적인 목적이 ‘반세계화’를 말하고자 한다기 보다는, 세계화(또는 지구화 Globalization)라는 것이 어떤 경로를 밟으면서 등장했는지, 그 탄생의 역사를 요약해서 설명하는데 일차적 목적이 있다. 하지만, 이 책이 짧다고 해서 쉽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의 변화를 책 100쪽으로 요약하는 것은 저자로서는 당연히 쉽지만은 않으며 또한, 독자의 입장에서도 마치 꿈을 꾸듯이 100년을 익혀야 하기 때문이다. 1쪽에 1년씩! 우리가 이러한 부분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든 적게 가지고 있든 간에, 어쨌든 간 우리의 나머지 삶을 ‘지구화된 세상’은 지배할 것이다. 그렇다면 좀 알아 두는 게 필요하다. 이 짧은 책으로 먼저 예습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자기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주워  들은 이야기들을 정리하면서 복습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우리에게는 물론 자본주의 역사, 또는 세계화를 둘러싼 다른 여러 가지 책들을 함께 보는 것도 필요하며, FTA에 대해 분석해 놓은 책들도 역시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운동 진영에서도 반FTA와 관련하여 괜찮은 책 네 권 정도는 내놓았다. “투자자-국가직접 소송제(녹색평론사)”,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녹색평론사)”, “한미 FTA 이미 실패한 미래(사회운동)”, “한미 FTA 국민보고서(그린비)” 등. 물론 FTA 맹신도들이 매일매일 수 백 권의 책과 매스컴, 정부관료, 정당 대변인의 입을 통해 쏟아놓는 양에 비해서는 ‘새 발의 피’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이 책이 살핀 지구화는 바로 ‘포드주의적 축적체제’의 ‘경제적’ 위기에 대해 ‘정치적 개입’이 대단히 무력하게 되면서 나타난 과정이라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시장’의 전지전능함을 믿는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지니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지구화는 수익성 위기를 겪은 전 세계 자본가(특히 금융 자본)들의 ‘위로부터의 정치적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어볼 수 있다. 노동자, 민중들의, 즉, ‘아래로부터의 정치적 전략’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적 지구화’의 핵심은 네 가지이다. 첫째 국제금융시장이 규제되어야 한다. 둘째, 지구적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셋째, 대안적 지구화는 환경적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넷째, 경제적 지구화를 규제하기 위해서 민주주의적인 전지구적, 지역적 국제협력기구가 필요하다. 한미 FTA의 타결로 인해 우리는 이러한 대안적 지구화를 해 나갈 지렛대나 무기(예컨대 국가의 힘)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너무 걱정만 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FTA이든, 지구화된 초국적 금융 체제이든, 어떠한 체제든 간에 실물 자본주의와 유리되어, 또는 사회를 초월한 체제는 영원할 수가 없다는 것이 자본주의 역사, 또는 인류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위기가 기회라고 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좀 더 근본적으로 핵심에 다가서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지식의 비관주의와 의지의 낙관주의라는 그람시의 경고를 상기하자. 지구화라는 현실을 분석하면 할수록 비관주의에 빠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낙관주의를 고수해야 한다……노동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 등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모든 사회운동은 대안적 지구화의 희망이다. 전 지구적 연대만이 개별 국가들로 하여금 대안적 지구화의 길로 들어서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사회교육원의 회보가 이제 출발한다. 보라. 우리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어 나가고 있지 않은가? 어설플지도 모르지만 진지하게 탐색하는 다수를 소수가 어찌할 수는 없다. 다수의 깊음을 어쩌겠는가? 아무쪼록 회원 여러분께서 ‘책 한 그릇’으로 FTA 체결에 대한 분노와 두려움을 삭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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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the Red’을 위하여, ‘USA the Red’를 위하여

 

<평등사회로 전진하는 활동가연대> 4월호 기고.


‘에릭 the Red’을 위하여, ‘USA the Red’를 위하여


양솔규(전진부산 회원)



에릭 포너(Eric Foner),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 알마, 2006년 11월





가만히 ‘역사’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세상이 내 마음대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 같다. 내가 원하는 대로 또는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세상이 만들어지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게만 된다면야 ‘운동’이니 ‘혁명’이니 하는 말은 사전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맑스는 ‘브뤼메르 18일’에서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지만, 그들이 바라는 꼭 그대로 역사를 만드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환경에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넘겨받아 직접 맞닥뜨리게 되는 환경에서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라고 썼다. 내 안에 ‘역사’가 있는 것이며 ‘애미애비’를 전제하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맑스나 엥겔스, 그람시와 같은 고전적 맑스주의의 흐름에서 ‘미국’이라는 사회는 매우 특이한 조건을 가진 사회로 보였나보다. 이들 사회는 전(前) 자본주의적 요소들이 없는, 봉건적 조건이 거세된 순수한 의미의 자본주의로 여겨졌다. 말하자면 위대한 ‘역사적 전통’은 없는 대신에 선조로부터 내려온 ‘납덩어리’ 같은 부담도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적 의식과 계급전선이 왜곡되지 않고 투명하게 드러날 것으로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 시대에 있어서는 영국과 독일 등이 혁명의 도화선이 될 것으로 보였는지 모르겠으나, 조만간 미국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였다. 예컨대 새로운 시대의 준거점은 유럽이 아니라 미국으로 보였다.

하지만, 20세기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이러한 미국 자본주의의 ‘순결함’은 사회주의 이행의 모범정답을 제시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주의의 발전을 가로막은 한계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매우 아이러니하다.


과연 미국은 ‘사회주의’를 거부하는가? 사회주의로 가기에는 너무나 편안한 사회인가? 아니면, ‘실천의 동력’이 없는 것인가? 생산력이 아직도 불충분한 것일까? 최종적인 질문을 던져보자면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을까?’


여기 이와 관련한 ‘글’이 있다. <에릭 포너, 『에릭 포너의 역사란 무엇인가?』, 알마, 2006년 11월> 사실 ‘서평’란에 ‘책’이 아니라 ‘글’이라고 한 이유는 이 책의 모든 내용이 ‘미국 사회주의’와 관련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2002년 미국에서 출판되었고 한국에는 2006년에 번역되었다. 이 책에는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을까?’에 대한 글뿐만 아니라, 역사가의 의미, 남아공에 대한 에세이, 러시아에 대한 글, 미국 흑인과 헌법 등 다양한 역사학자로서의 고뇌가 담긴 수필들이 담겨져 있다. 따라서 미국의 역사에 대해 쉽게 그리고 고급 해석을 바라는 독자들이 읽기에는 더없이 좋은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의 운동과 관련해서는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는가’를 제외하고는 약간은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만이 아니라, 미국의 역사, 저항의 역사에 대해서는 다른 책들 역시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전제로 소개를 하고자 한다.


위의 질문은 예전부터 오래된 질문이기도 했다. 또한 나름 많은 학자들이 대답을 내놓기도 했다. 또한, ‘미국의 사회주의’의 ‘형성’이라는 실천적 문제는 ‘전진’ 동지들의 역사적 임무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미국의 (사회주의의 역사를 포함한) 역사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미국의 미래가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하는 점은 단지 미국에만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수출주도 개방경제 체제인 한국이 외부의 조건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한 현실이며, 더군다나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으로 미국이라는 나라는 (남미가 미국의 앞마당이라면) 한국을 자신의 ‘베란다’ 정도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네그리 식 표현대로라면 미국 신자유주의의 확산의 결과 ‘제국주의에서 제국’으로 변화했고, (제국=미국은 아니지만) 미국의 미래는 어쩌면 제국의 흥망성쇠를 가늠하는 결정적 열쇠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네그리는 지구 어느 곳이든 자신이 존재하는 곳이 곧 제국의 중심이라고 말했지만(실천의 의미를 부여해준다는 점에서는 고맙고 고무적인 발언이기는 하나), 내가 보기에, 또는 초국적 자본의 경영자가 보기에 그렇다고 본사를 부산이나 칸쿤에 가져다 놓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두 번째 이유는, 이게 더 중요한 이유일 수 있는데, 미국으로의 길이 어쩌면 우리의 앞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맑스는 “자본”에서 “더 발전된 국가는 덜 발전된 국가들에게 그들의 미래상을 보여 준다”라고 했다. 물론 이러한 언급을 기계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당연히 없지만 말이다. 우리가 미국식의 사회로 변할 것이라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기도 하다. 미국 이외의 나라에게는, 그리고 초국적 자본의 지배블록 밖의 노동자계급에게는 이것은 하나의 재앙이 될 터인데, 그러한 재앙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미국이 제시하는 강력한 궤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미국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 아닐까 생각한다. 바로 이러한 점이 에릭 포너가 우리에게 일깨워주는 내용이기도 하다.


저자인 ‘에릭 포너(Eric Foner)’는 말하자면 미국의 ‘에릭 홉스봄’ 같은 역사학자인 것 같다. 미국의 진보적 지식인이면서 존경받는 역사학자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또한 미국의 전통에 비추어 볼 때 꽤나 정치적 보수주의자들로부터 민감한 인물인 것 같다. 마치 ‘강정구 교수’에 대해 한국 우파들이 난리를 치는 꼴이라고나 할까? 그에 대한 별칭이 ‘빨갱이 에릭 Eric the Red’ 이라고 불리워지는 것을 보면 에릭 포너가 단순한 학자라기보다는 정치적으로 실천적인 지식인이라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뉴레프트 리뷰나 먼슬리 리뷰 같은 잡지에 글을 실어 오기도 했다.


그에게 쏟아졌던 비판, 아니 언어폭력을 들어보자면,


“미국을 망치고 있는 1백인 가운데 75번째 인물”(버나드 골드버그, 언론인)

“소련 체제의 노골적인 옹호자이며 미국에 대해서는 앙심을 품은 역사학자”(존 패트릭 디긴스, 뉴욕시립대)

“단연 눈에 띄는 역사가이며 급진 분파 및 여론의 빨치산”(시어도어 드레이퍼, 역사학자)


또한 그에 대한 찬사를 들어보자면


“지난 20년 사이 가장 많은 저술을 발표한, 독창적이면서 영향력 있는 미국 역사가”(워싱턴 포스트)

“에릭 포너의 책은 미국의 모든 학교에서 읽어야 하는 필수적인 저작”(냇 헨토프, 언론인)

“에릭 포너는 다른 역사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쳐왔다.”(스티븐 한, 펜실베니아대 교수)


그는 미국 역사학자 단체인 미국역사학자기구(OAH), 미국역사학회(AHA), 미국역사가협회(SAH), 세 단체의 회장을 모두 지낸 단 두 명 중 한 명이다. 그만큼 미국 역사학계와 미국 사람들에게 학문적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인 것 같다.


실제 에릭 포너의 글을 읽어보면 그다지 급진적이거나 위험한 사람 같지는 않다. 설마 이 사람이 권총이나 석궁을 들고 부시 대통령이나 대법관을 공격할 것 같지는 않다. 물론, 한 권의 책이 지배계급에게는 더 위험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한국에는 이 사람의 책이 처음으로 번역되었을 뿐만 아니라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마크 C. 칸즈가 쓴 “영화로 본 새로운 역사 2(소나무 출판사, 1998)”에 ‘역사학자 에릭 포너와 영화감독 존 세일즈와의 대화’라는 글이 번역되어 있다. 또한, 이 책을 번역한 손세호(현 평택대 미국학과 교수) 선생이 87년 ‘서양사론’에 쓴, 에릭 포너의 책인 “Nothing But Freedom(1983)”에 대한 서평이 4쪽 적혀 있을 뿐이다. 이 책에서 에릭 포너는 자신의 전공분야인 남북전쟁 이후 재건시대(Reconstruction Era)에 경제적 자원획득, 노동력 통제, 토지분배 등등의 문제에 있어 흑인노예와 농장주들의 투쟁 과정에 천착했다. 그리고 이들 간의 관계를 맑스주의적인 계급론에 입각해서 분석하고 있다.

또한, ‘진보저널 읽기모임(http://journal.jinbo.net/)’에서 먼슬리 리뷰에 실린 특집글을 번역했는데 (미국의 세기의 사회주의 잡지: 먼슬리 리뷰) 여기에 에릭 포너에 대한 언급이 딱 한 단어로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외국의 이론, 책, 주장들을 수입해서 매우 잘 버무리는 한국의 극성스러운 지식사회의 풍토를 생각해보면, 왜 ‘에릭’ 홉스봄이 알려진 만큼 ‘에릭’ 포너는 잘 안 알려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전진’이 꼭 ‘에릭’을 좋아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긴 요즘 ‘전진’과 ‘에릭’의 가는 길이 다르기는 하다.) 홉스봄이 영국에 국한되지 않는 세계사적 또는 유럽다국적 역사를 정리했다면, (영토로 보면 비슷하지만) 포너는 공간적으로 미국에 한정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또 다르게 보자면, 한국의 진보적 서양사학자들이 게으르며, 특히 미국사 교수들이 너무나 ‘미국적’ 시각을 가져서인지도 모르겠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한국의 역사는 영국보다는 미국과의 상호작용이 너무나도 많았음에도 말이다. 오히려 김동춘 선생의 책(『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창비, 2004)이나 백승욱 선생(『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 그린비, 2005) 같이 사회학자들의 분석들이 좀 더 대중적이거나 진지한 것 같다.


독일의 사회학자 좀바르트가 똑같은 질문을 던진 지 80년이 지났다고 한다. 그런데 에릭 포너가 보기에는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을까?”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지금도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별다를 게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들이 있다고 한다.

첫째로 ‘사회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를 너무 탈역사적으로, 추상적으로 취급하거나 상대방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마치 사회구성체 논쟁이 떠오르지 않는가?

둘째로, ‘부정의문문’에서 탐구를 시작했으니 대답이 탈역사적인 대답밖에는 나올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질문’이 정확치 않은 바는, 유럽의 ‘사민당, 혹은 노동당’이 사회주의 정당 혹은 사회주의 정치라고 할 수 있는가와 관련이 된다. 사실은 이 질문은 미국에는 ‘사민당’, ‘노동당’이 없는 현실, 민주당과 공화당의 양당제라는 현실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점에서 에릭 포너가 보기에는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을까?’ 라는 질문보다는 ‘왜 미국에서 사회주의가 한때 세력을 얻었다가 퇴장했느냐’ 혹은 ‘왜 유럽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주의적 전환이 일어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이 역사적 질문이며, 해답 가능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서유럽 사민주의는 포너가 보기에는 ‘마르크스주의 원론과 근본적으로 배치’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럽의 좌파 정당들은 사회주의보다는 자유주의와 평등주의를 퍼뜨리는데 더 많이 이바지했으며, 사회의 혁명적 변화를 추구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미국 예외론’적 질문,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는 없는가?’라는 질문은 흔들리고 만다. 그렇다고 ‘미국 예외론’을 버리는 것이 자본주의 국가는 모두 똑같다는 것(사회과학적으로는 수렴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공통적 양상을 가지고 ‘미국 예외론’을 설명하는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동계급운동이 노조 중심의 경제주의나 사회민주주의적 개량주의의 한계 안에 갇혀 있는 현상’은 미국에서 뚜렷한 바와 똑같이 유럽도 그렇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이무어 마틴 립셋의 “미국 예외주의(후마니타스, 2006)”와 비교해볼 수도 있다. (트로츠키주의에서 네오콘의 1세대로 전향한) 립셋의 ‘미국 예외주의’는 뛰어난 저작이기는 하지만, ‘미국인들의 자민족 중심주의 혹은 노골적인 우월주의 정치선전’에 빠져들게 만든다는 비판이 있다. ‘우리는 다르다’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자만심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튀는 행동(예를 들어 전쟁수행)의 알리바이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사회주의의 운명과 관련해 여러 가지 해석을 살펴보자.


첫째, 미국 노동자들이 현재의 조건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 투쟁에 나서기보다는, 서부 이주 등 노동이동을 택한다는 이른바 ‘변경 테제’가 있다.(프레드릭 잭슨 터너) 일리가 있는 설명이기는 하나, 포너가 보기에는 ‘사회적 유동성은 정치적 안정성을 높이기보다는 해치는 교란 요인’일 수도 있기 때문에 위의 테제는 설명력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둘째, 미국인들의 국민성 자체가 계급의식이나 사회주의는 물론 다른 급진주의에도 적대적이었다는 설명이다.(루이스 하츠, ‘일치’학파) 미국인들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따라서 로크식 개인주의 관점이 지배하게 되었고, 따라서 ‘봉건주의가 없으면 사회주의도 없다’는 식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식화에는 흑인이나 여성 등의 집단은 아예 분석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이러한 미국의 ‘통합성’에 대한 서술은 신노동사가 등장하면서 깨지게 되었다. 또한, 남부지역은 ‘봉건적’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여러 면에서 ‘전부르주아적’이었다는 것이다. 하츠의 논리대로라면 미국 남부는 사회주의의 온상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미국 독립전쟁은 로크식 개인주의보다는 공화주의에 기초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포너가 보기에는 비자유주의적 사고방식 때문에 사회주의로 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특정 형태의 급진적 관점이 끈질기게 살아남으면서 사회주의가 해야 할 역할을 대신했다는 것이다.


셋째, 미국 노동계급의 분열로 인해 사회주의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분석이 있다. 이 분석은 라이히, 고든 등의 분석인데 한국에도 번역되어 있다.(『분절된 노동, 분할된 노동자』, 신서원, 1998년. 노동시장론 등에서는 매우 중요한 저작이다.) 이들을 사회적 축적구조론자라고 일컫는데, 이들이 보기에는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하나의 거대한 단일 계급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인종에 따라, 종족에 따라, 성별에 따라, 숙련에 따라 점차 여러 ‘노동계급들’로 분열되고 있다는 것이다.1) 한국  또한 이러한 분열이 노동시장 내 분절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또한 다양한 인종적 배경이 계급의식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포너가 보기에는 이러한 사실은 분명 존재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보편적인 원인을 가지고 ‘미국 예외론’의 증거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또한 종족적 소속감이 특정 상황에서는 강력한 저항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것이다.


넷째, 어쩌면 이 질문은 기각 여부와 상관없이 매우 중요할 수 있는데, AFL-CIO(미국노총)의 문제이다. 현재 미국의 총연맹은 ‘역사적인 분열’을 거쳐 두 개로 나눠져 있지만, 어쨌든 간에 미국노총은 그동안 흑인, 여성, 신이민자들 등이 노동운동에 참여할 수 없는 구조였거나, 노조 지도부가 계급투쟁보다는 자본과 타협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실을 봐도 중요한 문제이기는 하다. 말하자면 좌파들의 전통적인 주장이기도 한데, 에릭 포너가 보기에는 그렇다면 ‘잘못된 지도부’를 왜 조합원들이 선택하는 것인가? 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사고에는 지도부를 제외한 나머지 조합원이나 미국 노동자들은 한결같이 단결돼 있고 전투적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있는데 이를 뒤엎는 사례도 얼마든지 많다는 것이다. 예전 98년 당시 한국에서도 이런 식의 주장이 떠돌 때, 상당히 진위가 의심스러웠던 기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다섯째, 미국의 정치적 민주주의가 공짜로 주워졌기 때문에, 즉 미국 정치체제의 성격으로 인해 사회주의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설명이 있다.(셀리그 펄먼) 하위적 요소로는 승자독식 대통령선거 제도 등이 양당제를 고착화시킨 점도 들 수 있다. 또한 미국 정치는 뉴딜 정책에서 보듯이 개혁 요구에 상당히 수용적이었으며 따라서 노동자들이 사회주의라는 정치적 ‘오버’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또한 사회당과 IWW에 대한 탄압에서 보듯이 직접적 탄압도 하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설명들을 모두 묶어서 포너는 다른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양상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미국보다 더한 탄압들도 있었으며(독일이나 스페인), 다른 설명들도 너무 지엽적이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설명들이 대체로 ‘외재적’이었다면 사회주의 운동 ‘내재적’으로 실패의 요인을 따져볼 수도 있겠다. 여기에는 IWW, 사회당, 공산당 등의 역사적 분석이 필요하다. 재미있는 것은 미국 사회당의 노동계급과의 상대적 거리감과, 원칙성이(유럽과 다른 반전의 원칙을 고수) 미국 사회당을 몰락시켰다는 점. 미국 공산당은 유럽 사민주의 정당처럼 전시 국가 방위에 협조했다가 노동계급으로부터도 멀어지고 탄압에도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원칙이냐, 생존이냐 하는 점이 중요할 수 있다. 일종의 선택이 필요한 시기가 있는 것이다. ‘역사적 인정투쟁’을 선택하고 장렬하게 전사할 것이냐, 현실의 운동과 대중을 지키기 위해 잠시 ‘유연과 눈가림’을 할 것이냐? 언제나 투쟁에 있어서 다가오는 딜레마인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대해서는 설사 다소 주관적인 영웅심이나 다소 패배적인 느낌이 들지도 모르지만 두 개의 탁월한 저서 마이크 데이비스의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창비)와 리차드 O 보이어, 모레이스의 『알려지지 않은 미국 노동운동이야기』(책갈피)를 볼 필요가 있다. 또는 아주 최근에 나온 존 리드 평전(아고라, 2007)이나 워렌 비티가 주연한 영와 ‘레즈’를 참고할 수도 있다.


마지막 결론을 보자.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없을까?’ 하는 질문에는 바로 시간적으로 운명이 결정되어 있다는 식의 논리가 깔려 있다. 유럽이 걸어간 사회주의 정당(사실은 사회주의를 포기한 사민주의)길을 미국이 따라와야 하는데 왜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마치 토끼가 지나간 길을 거북이가 따라와야 하는데 왜 거북이는 그 길로 안지나 갔을까? 묻는 것이다.


포너가 보기에는 토끼는 그 길로 가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세히 보면 신자유주의 시대에 미국화가 진행되면서 유럽이 미국의 길을 뒤따라오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거북이가 저 앞에 있고, 토끼가 거꾸로 따라오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대중정치, 대중문화, 대량소비가 유럽보다 미국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아래서 사회주의적 정치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느냐 하는 딜레마를 미국 사회주의자들이 가장 먼저 부딪쳤다는 것이다. 계급이념 소멸에 관해 유럽은 미국의 사례를 보고 타산지석으로 삼으라는 메시지다. 그렇게 본다면,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왜 없는지 따지기 전에 너네들은 있었는지, 그리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미국처럼 되지 않으려면 뭘 해야 하는지 잘난 척 하지 말고 따져봐야 할 일인 것이다. 예전 90년대 초반 신경영전략이 대우조선을 뒤덮으면서 노동조합 활동이 힘들어졌을 때, 현대중공업 활동가들에게 대우조선 활동가들이 ‘너네들도 준비해라, 곧 닥친다’고 경고했다고 한다. 한 공장에서 어쩐다고 될 일인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어쩌면 중공업 활동가들은 당시 내부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현재의 ‘세계혁명’의 출발이자 완성은 ‘미국혁명’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직된 미국 노동계급에게 이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고, 미국 내 다양한 내부 식민지들의 노동계급의 새로운 흐름으로 등장하고 있는 인종, 계급, 성, 정체성에 착목해야 할지도 모른다. 또는 포너의 기대처럼 유럽과 미국의 새로운 급진적 흐름이 부상할 지도 모른다. 또한 이러한 흐름이 미국 역사에서 되풀이 되는 그저그런 흐름으로 끝날 수도 있다.


우리의 상황은 어떨까? 아니, 우리는 유럽이 미국에게 던지는 약간은 오만한 역사적 경험을 가지지도 못했다. 계급의 조건만을 보자면야 미국이나 한국이나 매한가지이며, 역사적 전통으로 따져 봐도 미국보다 나은 상황은 아닌 것 같다. 한국의 노동계급은 형성되었는가? 어쩌면 그럴 수도,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한국의 노동계급은 단일한가? 이 질문도 난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질문, ‘미국의 사회주의’를 따져보는 것은 우리에게는 학문적 관심이 아니다. 이미 이러한 제목을 가진 책들이, 논문이, 연구서들이 한국에도 나와 있고, 외국에도 나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에릭’의 힘을 빌려 ‘전진’의 지렛대는 무엇이어야 하며, ‘전진’이 피해가야 할 것은 무엇인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하는 점이다.


과연 ‘전진’이 부르는 사회주의는, 그 애매하기 짝이 없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사민주의인가? 그 이상인가? 우리의 사회주의는 역사적 조건을 충족시켜 가고 있는 중인가? 우리를 옥죄고 있는 노동시장과 정치제도는 어떻게 바꾸어야 하며, 한국 노동계급(들)의 역사적 배경인 한국전쟁, 북한, 기업별 노동조합, 계급정치와 의식의 후진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 노동계급, 또는 사회주의에 대한 질문에 순진한 호기심을 머금기에는 현실의 과제는 너무나 크기만 하다.


역사적 법칙을 그야말로 법칙으로 인식하고 있는 자는 단지 ‘열심히’만 살면 될지 모르지만, 법칙이 ‘실천’을 매개로 한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또한 그 ‘실천’의 귀결은 ‘승리의 필연성’ 못지않게 ‘실천의 패배’로 역사화되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악몽처럼 인식해야만 한다. 필연성이 가능성으로 전환되지 못하면 ‘승리의 필연성’은 ‘실패의 가능성’이 될 것이다. 봄에도 눈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패배의 가능성을 인식하는 것은 실천적으로 매우 중요할 것 같다. 그 악몽이 현실화되었을 때는 주체와 역사에게 치명적인 상황이 될 것이다. 이는 맑스가 가르쳐 준 무서운 잠언이기도 하지만, 미국 역사가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 책의 원제는 Who Owns History?, 누가 역사를 소유하는가 이다. 노동계급이 역사를 소유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부르주아지가 역사를 소유한다는 것이다.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가 같이 사이좋게 역사를 소유할 수는 없다. 중간은 없다. ‘전진’은 이 먹고 먹히는 길에서 작은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다. 한국의 노동계급이, 운동이, 얼마나 많은 성취를 이룰 지는 우리 같이 힘을 합쳐보아야 할 것이다. 포너는 미국의 사회주의의 운명에 대해 좀 더 기다려봐야 한다고 했다.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소심할 필요도 없지만, 잘난 척 할 필요도 없다. 가보는 것이다. 나는 ‘R’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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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똘레랑스] 161회 (2006.12.20) 스쾃, 도시 공간을 다시 생각한다

[똘레랑스]  161회 (2006.12.20) 스쾃, 도시 공간을 다시 생각한다
 
 
□ 기획의도
‘스쾃(Squat)’이라는 말은 1835년 오스트리아의 목동들이 허가 없이 남의 초지에 들어가 양에게 풀을 먹이던 관습에서 유래되었는데, 산업혁명이후 도심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이 잘 곳을 구하다 귀족 소유의 빈집에 사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유럽에선 공간을 둘러싼 사회적 불평등에 이의를 제기하며, 도시의 공공 영역을 확대해 나가려는 하나의 문화 운동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심각한 공간의 소유 편중 상황을 맞은 우리나라에서 스퀏 운동이 공공 영역을 확장하려는 노력으로, 주거권 확보를 위한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행자부 발표에 따르면 인구상위 1%가 우리나라 전체 사유지의 51.5%를, 상위 5%가 82.7%를 소유하고 있는 가운데, 연소득대비 주택가격은 서울이 7.2배로 동경(5.6), 런던(4.7)보다도 높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 가운데 노숙인, 노점상, 철거민 등 도시 빈민들은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부동산 투기 열풍에 휩싸여 ‘집’이 주거 목적이 아닌 재산증식 수단으로 왜곡되어가고 있는 한국 사회에 스쾃 운동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을까. 돈이 없으면 결코 한 뼘의 땅도 소유할 수 없는 2006년 대한민국에서 ‘스쾃’을 통해 도시의 ‘공간’과 ‘집’의 의미를 고민해본다.

1. 스쾃, 도시에 질문을 던지다
서울 목동 예술인 회관 등을 점거하면서 공공건물을 놀리지 말고 예술가와 시민의 품으로 돌려달라고 외치는 김윤환 화가. 그가 벌이고 있는 '오아시스 프로젝트'는 '스쾃(Squat)' 운동의 일환이다. 남의 땅 또는 공유지에 무단으로 정착하거나, 불법으로 점유한다는 뜻을 지닌 스쾃.
한국의 또다른 스쾃은 ‘더불어 사는 집‘에서 일어나고 있다. ’노숙인 빈집점거는 정당하다, ’주거는 소유가 아니라 생존의 권리이다‘, ’노숙인에게 잠자리를 보장하라‘ 외치는 ’더불어 사는 집‘. '더불어 사는 집'은 철거가 예정되어있던 삼일아파트를 지난해 2004년 7월부터 점거해서 만들어진 노숙인들의 생산 공동체다. 아파트의 빈 공간을 점유해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구청과의 마찰을 겪다가 결국 2005년 9월 삼일아파트 철거가 시작되자 새로운 보금자리인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서울도시개발(SH)공사 소유의 다가구 주택의 빈집을 찾아 점유하게 되었다. 방치되고 버려진 공간을 보다 절실한 필요를 가진 사람이, 유용하게 사용한다면 오히려 가치로운 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2. 스쾃으로 부활하는 도시의 공공 공간
19세기 오스트리아 목동들이 허가 없이 남의 초지에 들어가 양에게 풀을 먹이던 관습에서 유래해, 산업혁명이후 도심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이 잘 곳을 구하다 귀족 소유의 빈집에 사는 일을 가리키는 스쾃. 1980년대 초반이 되면서 예술적 색채를 띠더니, 1990년대엔 자유를 꿈꿀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빈 건물을 점거해 작업실로 쓰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점거 아틀리에>란 말로도 통하고 있다. 현재 파리 근교에만 서른 여 군데의 점거 아틀리에가 자리해 있는 가운데, <로베르의 집>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해지면서, 점거 아틀리에의 모든 것을 일반인들에게 개방해 인근 주민들의 문화적 숨통을 틔워주고 삶의 여유를 안겨주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스쾃은 오아시스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활성화되고 있지 못하다. 그곳이 버려지고 방치된 곳이든, 더 가치로운 곳으로 운용되든 상관없이,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사유지의 공공화라는 접근 자체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공미술’이라는 이름으로 비어 있거나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살아 있는 공공 공간으로 활성화시키려는 노력이 진행 중이다. 예술가들은 우리 도시에 질문을 던진다. 건물을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행위는 경제적인 가치를 창조하며 정치적, 문화적으로도 올바른 일이 아닌가 하고.

3. 한 평 땅을 허락하지 않는 도시, 서울
계속되는 도시의 재개발 속에서 우리나라 대도시 땅값은 40여 년 만에 7백80배, 서울은 9백54배 올랐고, 대한민국 전체 땅값은 2300조에 이르러 한국을 팔면 캐나다 6번, 프랑스 7번 사고, 미국 절반을 산다는 계산이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 평에 수 천 만 원에 이르는 아파트를 건설하겠다는 개발업자에게 살 던 집을 내주고 밀려난 철거민들은 더 이상 밀려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몸 하나 누일 곳이 없어 서울역과 영등포역을 떠돌다 추위 속에서 죽어가는 노숙인과 생계 유지를 위한 한 평의 땅도 허락 받지 못해 쫓겨가는 노점상이 있다. 자본주의 논리에 따라 어느 작은 한 공간도 공공의 영역으로 내주지 못하는 우리 도시의 닫힌 포용력을 짚어본다.

4. 스쾃, 주거권을 외치다
스쾃은 문화 운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주거권 운동, 공공성 확대 운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더불어 사는 집에 이어 포이동 골목을 ‘주거 공간’으로 점거하고 있는 넝마공동체. 넝마공동체 사람들은 함께 하는 주거 공간을 바탕으로 함께 일하며, 자립해 가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스쾃이라 볼 수 있는 비닐하우스촌 사람들 역시 이제 단순한 점거가 아니라, 주택 협동조합을 법인화 하려 하는 등 공공 영역을 확장시키는 주거공동체를 꾸려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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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제7회 노동영화제 상영작인 <점거하라!>

서울국제노동영화제 6월 정기 상영회

노동영화제 정기 상영회가 6월 26일 토요일 늦은 6시, 미디액트에서 열립니다.
6월의 상영작은 지난 2003년 제7회 노동영화제 상영작인 <점거하라!>입니다. 구조적인 실업과 가난을 강요하는 체제에 맞서서 빈집을 점거해서 살아버리는 스쿼트 운동을 생생하게 담아낸 <점거하라!>는 2003년 Hot docs! 영화제에서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풍동을 비롯한 각 지역에서 아직도 살인적인 철거가 진행되는 우리의 현실에 어떻게 개입할 것인지 많은 고민을 던져주는 이 작품의 상영회에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점거하라!>
(2003, 캐나다, 82분, 이브 라몽)
Squat!
(2003, Canada, 82min, Eve Lamont)
* 점거하라 ! (2003, 캐나다, 82분, 이브 라몽)
Squat! (2003, Canada, 82min, Eve Lamont)
집이 없어서 노숙을 할 수밖에 없는 극빈자들이 넘치는데 반해 아무도 살지 않는 빈 집도 넘나는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무엇일까 ? 가난한 사람들이 빈 집에 들어가 살면 안되는 것일까? 어차피 빈 집인데? 2001년, 캐나다 몬트리얼의 실업자와 극빈자들은 스스로를 조직화하고 이 소박한 결론을 실천한다. 이른바 스쿼트 운동으로 불리는 이런 반자본주의적 직접 행동은 물론 엄청난 탄압을 초래하게 된다. 50명의 점거자들은 자신들의 주거 공동체를 건설하지만, 빌딩 조사관, 소방관, 전투경찰들, 그리고 미디어를 총망라하는 체제의 총공세에 맞서야 한다. <점거하라!>는 자율적인 주체들로 서고자 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정직한 실천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기록한다.



-감독사진

이브 라몽
Eve Lamont
이브 라몽은 15년에 걸쳐서 다큐멘터리 촬영자, 독립 영화 감독 등으로 활동해왔다. 그녀는 상업화된 현 사회에서 주변화되고 무시되는 사람들의 관점에 서서 그들과 함께 민중의 현실, 자기표현, 권리에 관한 작품을 만들어왔다. 이브 라몽은 특히 체제에 저항하고 대안적인 실천 영역을 개척하는 민중들이 자본주의 시스템과 충돌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인간적이고 사회적인 드라마에 특별히 많은 관심을 지니고 있다.

Hot Docs! 2003년 최우수감독상 / 인도주의상

*점거하라 도입부 비디오 클립
mms://media.cast.or.kr/lnp89/7th/Squat.WMV


노동자뉴스제작단 Labor News Production
노동자뉴스제작단은 1989년이래 노동영상운동의 최전선에서 활동해온 단체로서, 영상물 제작, 일상 촬영, 미디어 교육, 영상동아리 조직, 국내외 연대, 조사 연구, 배급 및 상영 등 을 활동 영역으로 삼고 있습니다.

서울국제노동영화제
Seoul International Labor Film and Video Festival
1997년부터 시작된 서울국제노동영화제는 노동영화의 상영 공간으로서, 그리고 영상활동가, 투쟁 주체간의 상호 교류의 장으로서 그동안 7회에 걸쳐서 개최되었습니다. 2004년 1월부터 노동자뉴스제작단은 영상미디어센터에서 노동영화제 월례 정기 상영회를 개최합니다. 노동자뉴스제작단이 주최하는 서울국제노동영화제 및 정기 상영회는 많은 자원활동가들의 참여를 통해서 준비되고 있으며, 정기 상영회 및 영화제를 준비하기 위해서 자원활동가의 모임인 <노동영화제지원단>이 조직되어 있습니다. 프로그래밍, 홍보, 후원조직, 번역, 자막작업, 행사진행, 노동영상운동 연구사업 등 다양한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지원단의 활동에 많은 분들의 참여를 바랍니다.
(연락처 : 노동자뉴스제작단 02-888-5123 / http://www.lnp89.org/festiva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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