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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치가 만난 사람] 택시 운전사가 된 정창윤 전 울산시당 위원장

“40대, 진정 행복한 삶 살렵니다”
[진보정치가 만난 사람] 택시 운전사가 된 정창윤 전 울산시당 위원장
   오삼언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나 자신이 억압하고 살았구나. 설움과 이유모를 원망 등이 밀려왔습니다”

“울산 터미널에서 어디로 가면 될까요?” “제가 터미널에 있는데요, 뭐”
택시 운전사를 만나기 쉬운 곳, 터미널에서 택시 노동자가 된 정창윤 전 울산시당 위원장 을 만났다.

 

정 당원은 지난 해 9월부터 영업택시를 몰고 있다. 택시 운전 4개월에 접어들어서야 평균 수입이 맞춰지고 있다는 초보 택시 운전사다. 딱히 ‘운전’과 인연이 없는 그가 택시를 몰게 된 이유는 뭘까.

“‘오래된 정원’이라는 영화, 혹시 봤습니까?” 정 당원은 영화 얘기를 먼저 꺼냈다. 영화를 보며 눈물이 징 솟아올랐다는 정 당원은 82학번이다. 80년대 한국사회의 초상을 그려낸 영화는 정 당원의 삶 또한 묻어나 있었다.

“주인공이 상상 속에서나마 자신의 딸을 치켜올리며 껴안는 장면이 있습니다. 눈물이 마구 쏟아졌습니다. 나 자신이 억압하고 살았구나, 설움과 이유모를 원망 등이 밀려왔습니다. 그야말로 행복한 것이 미안한 시대였죠”

암흑의 시절 건너온 40대, ‘행복’을 모르다

아내, 아이들과 대화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붕어빵 하나 사갈 줄 몰랐다. 생활 속에서 사람들과 함께 하지를 못했다. 세상을 바꾸자 마음먹었으면서도 사람들과 진정 어울리지 못했다. 정 당원은 “운동을 기계처럼 해왔구나” 청천벽력과 같은 인식에 대면해야 했다.

한편으로 억울했다. 청춘의 삶을 바쳐온 지난 시절이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이 나이가 되도록 운동하는 길에 자신을 바쳐왔다’는 자부심은 어느새 ‘보상 심리’로 변해 있었다. 자신의 판단과 잣대를 내리먹이게 되고, ‘권력욕’으로 추해질 수 밖에 없는 길을 가고 있는 듯 했다.

“1절만 들으면 뻔한 잔소리까지 하는 완고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는 변화된 시대를 읽지 못하고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는 3, 40대, 50대에 대해 말했다. 지금까지 ‘80년대처럼’ 살아왔던 자신에 대해 말했다.

 

집사람 고생시키며 가족, 친지를 챙기지 못하고 살아온 삶은 ‘결국 뭐라도 돼야지’라는 욕구를 만들었다. “보상심리는 성과가 안 나오는 것에 마음만 급해지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패거리를 만들게 됩니다.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때, 세상에 보탬이 되겠다며 가졌던 순수한 자부심은 사라지는 겁니다”

자신의 내면에 남아있는 보상심리와 마주했던 그는 “너도 어차피 한 자리 하려고 하는 거 아니냐”는 물음과도 대면했다. 부인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이 어물거리게 됐다. 내면에 남아있던 보상심리는 정 당원을 행복하게 만들지 않았다. 즐겁고 기쁘지도 않았다. 그래서 그는 즐겁고 행복하기 위해 노력중이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보상심리 벗어나 '새시대' 적응해야

정 당원은 80년대 암흑의 시대를 함께 겪어온 선후배들도 “너무 진지하고 심각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된다”고 한다. 간단히 말하면, “요즘 시대에 안맞을 것 같은 것”이다.
정 당원은 ‘행복한 것이 미안했던 시절’을 헤쳐온 ‘자신같은 사람이 활동을 계속 해야한다’는 ‘강박’이 보수가 되는 위험을 가지고 있다며 진보진영 내 보수의 면면을 본다고 한다.

“후대가 커서 올라오고 자신들은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보상심리에 휘둘리면서 자기 자신을 놓치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 당원은 “민주화의 시대에서 진보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생각해요. 과거 사고방식과 행동 패턴 등은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라면서 40대와 자신이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한다고 강조했다.

“과거를 계승하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주도해나가는 진보운동이 돼야합니다. 진보가 대중의 상식이 되고 진보의 테두리를 넓히자면 자신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진보운동에 대한 고민은 괴로움에 앓았던 나날에 싹텄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되는 사람인가” 자신과 대면한 경험

그는 2005년 10. 26 울산북구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패배를 책임지며 울산시당 위원장을 사임했다. 그는 “그 때 심정은 그야말로 참담했다”고 회상했다. 어느 순간 평당원, 남편, 아버지인 자기 자신은 처량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그릇이 이것밖에 안되는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에 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기도 했습니다”

정 당원이 자신 스스로와 대면할 수 있게 용기를 부어준 사람은 그의 아내다. 생계를 책임지며 두 아들을 혼자서 키워온 그의 아내는 “잘한 일”이라며 명쾌하게 격려해주기도 하고 “보양식인 줄 알고 ‘쥐약’을 먹고 있다”면서 자신이 못 보고 있는 점을 보게 해줬다. “집사람은 내게 ‘안내자’입니다. 집사람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 몰랐을 겁니다” 정 당원에게 아내는 ‘스승’이자 ‘길 벗’과도 같다.

“너무나 진지했습니다. 나와 함께 하고자 했던 당원분들, 많은 사람들이 나를 힘들어했겠다 싶습니다. 서로 교감하고 공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잘 몰랐습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견해를 강변만 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족점을 알려준 아내의 가르침이 고맙다.
밤길 가로수 옆에 택시를 탈 손님이 서 있었다. 페달을 밟아 앞에 서니 사람이 아니라 ‘네온사인 광고판’이었다.

“사람은 자신이 보려고 하는 것을 보는 거더라구요. 돈을 벌자하니 광고판이 사람으로 보이는 거죠.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봤던 것이 옳은 것, 객관적인 것이라고 단언할 수 없겠구나 싶었습니다” 정 당원은 이렇게 택시 운전을 하며 순간 순간 번뜩 뜨인다고 한다. “택시 운전사는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듣게 되는 사람입니다. 떠들기만 하다가 많이 듣게 되니 ‘저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삶에 뿌리내리는 운동 배운다"

노인분들의 하소연을 들으며 노인문제를 실제 체감하고, 부부싸움의 얘기를 들으며 여성문제와 경제문제를 새삼 느끼며 배우고 있다는 정 당원은 “삶에 뿌리를 내리는 운동을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부부싸움을 하고 새벽에 택시를 탄 손님이 차에서 내릴 때, “기사 아저씨, 돈을 두배로 드리고 싶은 심정이네요”라고 상담료를 말할 때도 있다.

정 당원은 운전을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몇 초간을 깜박 졸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면서 ‘여기가 어디지?’하는 섬뜩한 경험을 했단다. 택시 운전이 고달파도 달갑다. “몸은 힘들어도 머리는 맑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쟁을 치르듯 삶을 살고 있는 민중들을 만나며 배우고 깨우치지 않았다면 머리만 무거워졌을 것 같습니다. 답답하고 억울하고 처량했을 테지요”

그러나 정 당원은 여전히 자신이 과거로 되돌아갈까 두렵다. “새로운 사고, 방식으로 거듭나야하는데 나 자신이 보고 느꼈던 것을 잊어버릴까 경계심이 듭니다” 달콤하고 치명적인 보상심리, 참담한 좌절감과 자괴감 속을 건너온 정 당원은 아직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과거 암흑과 같았던 시절을 살아 오늘을 열어준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격려는 오늘을 살아 내일을 열어야 하는 이들에게는 또다른 교훈이 돼야한다. 영화속에서 “행복한 사람이었어요?”라는 묻는 장면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는 정 당원은 진정 행복해지기 위해 자기 자신, 세상과 계속해서 화해하고 또 싸워나갈 것 같다.

 


[진보정치 307호] 오삼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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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을 통해서 본 우리의 모습

2007.01.08 10:12

 

반기문을 통해서 본 우리의 모습

우석훈

 

 

반기문 UN 사무총장에 대해서 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은 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쳤으면 하는 정도이다. 삼족오 인장의 경우는 언제든지 터져나올 수 있는 폭탄같은 경우인데,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당장 외교적 마찰을 빚을 수 있는 문제라서, 같은 인장이라고 하더라도 그렇게 신중했던 처사는 아니다. 뒤집으면 만약 일본의 어느 고위인사가 UN 사무총장이 되었는데, 일황의 상징이나 임나 어쩌구 하면서 급조한 상징을 들고 나오면 우리나라에서도 잘 참지 않을 것이다. 이런 건 UN의 정신에 어긋난다.

1. UN의 특수성

UN이라는 조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높은 월급을 받거나 큰 힘을 쓰는 곳은 아니다. WTO가 출범한 이후에 더 영향력이 작아졌고, 예전부터도 IMF나 세계은행 같은 곳들이 실제로 UN보다 더 권한이 많고, 유럽계와 미국계에서는 WTO를 UN의 상위기구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국제 기구들 사이에는 “사전에 결정된 위계(pre-established hierarchy)”가 있느냐 없느냐를 가지고 아직도 논쟁이 끝나지 않았다. UN 입장으로 보면 기분 나쁘기는 하지만, 현실이고, 그러다보니까 경제기구보다는 UNEP나 UNDP 그리고 UNESCO 같은 문화와 인권 혹은 환경 문제 같은데 더 집중하는 편이다. 그리고 consensus라는 특별한 장치에 의해서 결정되는 의사결정 장치의 특징상 소수국에 대한 배려가 생각보다 많다.

그러다 보니까 UN 사무국 직원의 정서라는 것이 있고, 또 나름대로 그런 조직 문화가 UN 내에서 생겨났다. 개혁에 대한 열망도 있고, 나이 많은 UN 관료들에 대한 염증같은 것도 젊은 직원들은 종종 느낀다. 개도국과 선진국의 비율 같은 것들도 상당히 신경쓰기 때문에 다른 어느 곳보다 일방주의가 잘 움직이지 않는 특수한 곳이다. 미국은 이것을 UN의 비효율성이라고 하고, 시간보다 한 시간씩 늦게 움직이는 회의 때문에 UN time이라는 농담도 있지만, 다른 눈으로 보면 소수자에 대한 배려같은 것들이 UN에는 존재한다.

2.

반기문 총장이 첫 발언은 사담 후세인의 처형에 대해서 지지하는 말이었고, 이 때문에 세계가 잠깐 뒤집어졌다. 반기문 입장으로 보면 미국 언론에서 오히려 더 심각하게 이 문제를 지적해서 억울하기는 할 것 같다.

나는 이 발언 자체가 심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UN은 UN의 입장이 있고, 사무총장도 개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게다가 더 들어가보면, 실제로 사형을 금지하고 사형에 대해서 강력하게 반대하는 호주 같은 국가가 전쟁에 대한 범죄 즉 “반인륜적 범죄”라는 이유를 들어서 사담 후세인의 처형에 대해서 환영 논평을 내기도 하였다. 단순하게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만 들어서 이 사건을 볼 일은 아니다. 그건 나도 동의한다.

3.

원래 UN 사무총장이 그렇게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 물론 중요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캐스팅 보트와 유사한 막후조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하면 또 그렇기는 한데, 그래봐야 사무국일 뿐이다. 사무국은 회의를 보조하는 역할이고, 회의마다 전부 별도로 선출되는 의장이 있고, 또 지역별 회의와 함께 여러 가지 장치들이 따라다니기 때문에, UN이라는 국가가 있고 그 국가의 대통령이 사무총장이다... 이런 식으로 단순하게 볼 수 있는 기구는 아니다.

지금과 같이 UN 사무총장의 입을 전세계가 주목하게 된 것은 코피아난 때 생긴 일이다. 이 매력적인 사무총장을 아마 전세계인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는 정말 멋졌었고, 그래서 사실 따져보자면 사무총장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코피아난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오랫동안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좋아하지 않았고, IMF와 WTO 체계가 거의 독재하다시피 만들어내는 세계화 국면에서 그야말로 전세계인들의 마음을 진무해주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코피아난을 사랑했다.

반기문의 불행은 그가 코피아난의 후임자였다는 사실에 있다. 그 이전의 평범한 시절이었다면, 상황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드골이 미국에 대항하는 제3세계 동맹을 외치던 시절에는 세상이 드골의 입을 쳐다보고 있었고, 한동안 교황을 쳐다보는 시기도 있었다. 그 시절에는 임기마다 바뀌는 UN 사무총장이 누군지 세계인들은 신경도 안 썼다.

그러나 코피아난이 사무총장이 되면서 그는 세계인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의 뒷자리에 들어온 반기문과 코피아난은 너무 다른 사람이고, 세계관도 너무 다르다.

지금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은 반기문은 “코피아난과 다르다”이다. 그가 말한 후세인 처형건은 그래서 뉴스가 된 것이다. 다른데 어떻게 달라? 음, 과연 다르군.

워낙 사람들이 코피아난을 사랑했기 때문에 지금부터 반기문이 하는 말들은 한동안 뉴스가 될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사람이 다른 걸 어떻게 할 것인가?

정상적인 업무를 시작하면 UN의 스탭들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반기문이 만들어내게 될 스캔들을 상당히 줄여줄 것이고, 그도 조금씩 UN 내부의 선택과 규칙에 대해서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 정도는 적응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간간히 터져나오는 불협화음은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4.

진짜 문제는 UN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게 된다. UN 사무총장에 대한 탄핵이나 그런 일은 벌어질 일이 없고, 또 언제부터 UN이 그렇게 효율적인 조직이었다고 일사분란한 군대처럼 사무총장에서 P1급 실무자들까지 하나의 생각을 가질 수 있나? UN은 그런 조직 아니다. 좋은 총장이 와도 돌아가고, 그렇지 않은 총장이 와도 조직은 돌아간다. 그런게 UN이다. 설령 미국의 매파가 총장 자리에 와서 전격적으로 신자유주의적인 조직 전환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그 조직은 원래 그렇다.

우리나라의 외교관을 포함해서 공무원 엘리트들은 국제 기준을 적용하면 상당한 극우파들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북한을 기준으로 좌우가 나뉘고 박정희를 기준으로 또 다른 입장이 나뉘는 경향이 있지만, 국제적으로는 소수자, 환경, 인권 혹은 문화 다양성과 같은 조금 더 세밀한 기준으로 정치적 입장이 나뉘어지고, 이런 기준들에 의하면 우리나라 엘리트들은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건전한 보수”가 아니라 “극우파”에 가깝다.

10년 전부터 미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표현으로 “politically correct”라는 표현이 있다. 미국의 사회적 특징이 있겠지만 낙태와 줄기세포 같은 얘기들이 복잡하게 얽힌다. 공지영이 며칠 전에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잠깐 밝혔듯이 미국에서의 기준을 들이대면 공지영도 상당한 보수주의자이다. 본인도 그런 것 때문에 고민을 했다고 밝혔던 걸 보면서 나도 상당히 긴 시간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았다.

politically correct하면 좌파이냐? 그런 건 아니다. 네오콘의 극우파들도 이 정도는 지켜야 한다는 사회적 기준 같은 것인데, 대체적으로 우파에서 중도좌파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기준이다.

이 기준으로 하면 반기문만이 아니라 참여정부의 많은 엘리트 장관들도 복합적인 정치적 기준으로는 극우파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5.

원래도 극우파인 반기문이 더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은 것은 그가 했던 ‘작은 국내 정치’는 더 극우파 코드, 그리고 더 민족주의 코드와 손을 잡았다는 점이다. 그거야 그의 개인적인 정치적 판단이지만, 국제기준보다 더 신중한 UN의 기준을 들이대면 좀 상식 밖의 일이다. 인종주의, 민족주의와 가장 거리가 먼 보편주의의 가치 위에서 움직이는 곳이 UN인데, 여기에 지역 패권주의와 미국 중심사고를 가지고 들어갔으니 앞으로 문제가 더 많이 생길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한국의 위신과 관련되어 있다거나 혹은 국가를 대표한다고 과장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반기문은 반기문이고, 한국은 한국이다. 어느 나라에나 극우파 인사는 있고, 또 보수적이며 민족주의적인 공무원은 존재한다. 그걸 국가와 직접 연결시켜서 생각하는 것은 UN 상식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언론에서는 이걸 더 극우파 분위기로 몰아갈 것 같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반기문에 대한 음모? 혹은 한국에 대한 음해? 그런 건 없다. 다만 국제적인 정치적 기준에서 극우파 인사가 UN 사무총장이 되었다는 사실에 국제사회가 조금 더 익숙해지고, 이 변화를 이해하게 될 뿐이다.

다만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평균적 한국”이 얼마나 극우파적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 사건일 뿐이다.

생각해보면 이상호 기자의 X-파일이 아니었다면 홍석현이 갈 자리였다. 물론 100% 한국 사람이면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륙별 순환과 아시아의 몇 가지 상황을 놓고 보면 한국이 사무총장을 하게 될 개연성이 굉장히 높았다.

그래서 홍석현이 그 자리를 탐냈던 것이고, 노무현 정부 초기에 삼성과 중앙일보 그리고 정부 사이에 약간의 밀월 관계가 생겨났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정부가 지지하지 않으면 정부 대표로 UN 사무총장 자리에 출사표를 던질 수는 없었을테니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홍석현이 총장이 되었다면 반기문 보다는 훨씬 조용하게 일처리를 했을 것이다. 정몽준과 비교하면서 해보는 생각이다. 현재 반기문이 보여주는 행보가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홍석현이 삼성이 UN을 끼고 돌면서 생난리치는 것보다는 사태가 훨씬 조용하게 전개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6. 다시 삼족오 질문

반기문 사무총장이 자신의 인장으로 삼족오를 선택했다는 것은, 그러나 상당히 오랫동안 입에 오르내릴 일이다. 물론 개인의 선택이니까 그렇게 해도 된다.

문제는 이 삼족오 인장에 기뻐하는 사람들이 문제다. “그런 일도 있군” 혹은 “삼족오가 뭐야?”라는 게 정상적인 반응일 것 같은데, 마치 10년 전부터 삼족오가 복권되거나 휘장으로 날리는 날을 기다리면서 살아왔던 것처럼 기쁘다면 뭔가 자신이 스스로 한 번 돌이켜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사회에 대한 생각을 뒤돌아봐야 할 것 같다.

자신이 삼족오라는 것을 언제 알았을까? 자신에게는 무슨 의미일까? 중국도 역사 왜곡인데, 우리가 긍지를 좀 가지면 안 되나? 물론 이렇게 생각해도 되는데, 국제 기준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극우파라고 한다.

일제 때 좌파가 있었고, 민족주의자가 있었는데, 이들이 서로 힘을 합치자는 것을 ‘좌우 합작’이라고 불렀다. 우파에도 극우와 보통 우파가 있는데, 요즘은 시장을 중심으로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것을 우파라고 부르고, 여기에 민족주의가 결합된 것을 극우파라고 부른다. 클린턴주의가 끼면 조금 더 어려워진다. 클린턴은 세계화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대신에 국제적인 패권주의를 반대했다. 그게 민주당식 우파 혹은 경우에 따라서 민주당식 중도좌파라고 부른다.

반기문이 사용한 삼족오 인장은 사실은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물론 그는 당연히 많은 한국인들이 그 사실에 두 손을 들고 환영할 줄 알았고, 그래서 그 인장을 선택한 것이다. 그래서 그를 극우파라고 부르는 것이고, 여기에 대해서 기뻐하는 사람들을 극우파라고 부르는 것이다.

프랑스가 사용하는 인장과 상징들은 세 가지를 의미한다. 자유, 평등, 박애... 그렇다면 삼족오의 가치는 무엇인가? 홍익인간? 지금 삼족오가 의미하는 바는 순수하게 패권주의 아닌가?

만약 다른 가치가 있다면 삼족오와 반기문이 UN 사무총장으로서 삼족오 인장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 다르게 평가하고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삼족오는 ‘고구려’라는 것 외에 무엇을 상징할까? 게다가 삼족오가 정말로 역사적으로 고구려의 상징이었을까?

UN 사무국의 직원들과 국제 사회는 조금씩 반기문의 정치적 identity에 대해서 이해하고, 거기에 적응해갈 것이다. 정작 남은 것은 한국인들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극우파이면 안돼? 물론 안 될 것 없다. 그것도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고, 정체성이고, 그건 자신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국의 강철대오”가 위험한 것처럼 “극우의 강철대오”도 전횡하게 되면 위험해진다.

삼족오를 미학적으로 사랑할 수는 없는가? 물론 순수하게 아름다움으로 사랑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면, 삼족오는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정치적 성향과 내 안의 것들에 대한 질문과 같은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우석훈 / 성공회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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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노동운동연구소의 해산을 보며

영남노동운동연구소의 해산을 보며


김 정 호 / 사) 미래를 준비하는 노동사회교육원 소장


어수선한 세밑이다. 비정규악법과 로드맵 국회 통과의 쓰라린 기억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민주노총은 나름대로 총파업으로 저항했지만, 그 힘으로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없었다. 더구나 지난 12월22일 로드맵이 국회를 통과할 때는 이렇다 할 투쟁도 조직하지 못하고 울분만 삭이면서 지켜보아야 했다. 올해 여름을 뜨겁게 달구었던 ‘하중근 열사 투쟁’에서도 민주노조운동은 결실을 거두지 못했다. 그나마, 올해 노동운동의 기억 중 가장 가슴 뿌듯한 것으로는 금속산별노조의 출범을 중심축으로 공공, 운수 부문 등에서 산별노조 시대가 활짝 열린 점을 꼽을 수 있겠다. 
금속산별노조의 출범으로 금속연맹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금속연맹의 해산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발전적 해산이라는 점에서 ‘아픈 기억’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에 알려진 영남노동운동연구소의 해산은 많은 생각을 떠올리게 한다. 1994년에 문을 연 영남노동운동연구소(이하 연구소)는 그동안 기업별노조 체제의 극복과 산별노조운동의 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 왔다.

연구소가 발간한 산별노조와 관련된 각종 자료와 책자는 산별노조운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 노동운동의 척박한 토양 속에서 금속산별노조의 청사진을 그리는 데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연구소가 발간한 『산별노조 100문 100답』은 많은 노조 간부와 활동가들이 산별노조의 교과서로 활용했다. 내 경우에도 금속산업연맹과 금속노조에서 교육 선전 일을 하면서 연구소의 연구 성과물들을 엄청나게 ‘도용’해서 써먹었다. 외국의 산별노조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활동을 어떻게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요즘 고려대 이필상 교수의 논문 표절 사건이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내가 연구소의 자료들을 우려먹은 것과 견주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이다. 물론 차이는 있다. 나는 그렇게 마구잡이로 ‘도둑질’을 하면서도 “배워서 남 주자”는 구호를 내세우며 ‘당당’했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많이 도둑질해 가라”는 것이 연구소가 바람이었으니까. 김석준 이사장이 말했듯이 영남노동운동연구소는 하도 ‘산별노조’를 부르짖는 바람에 ‘산별 만능주의자’로 딱지가 붙여지기도 했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결코 부끄러운 딱지가 아닌 듯하다. 되레 연구소의 활동에 대한 ‘찬사’로 후대에 기억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연구소는 해산의 주요 배경으로 현장활동가들의 참여가 갈수록 떨어지고 연구 역량을 재생산하는 것이 어렵게 된 점을 들고 있다. 두 가지 중에서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현장활동가들의 결합력 저하와 관련된 문제이다. 물론 연구소의 노력이 부족한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더 중요한 이유는 우리 노동조합운동의 풍토에서 비롯된 탓이 크다는 생각이다. 다시 말해서 민주노조운동이 90년대 후반 제도권으로 들어간 이후 상당한 수준으로 ‘권력화’되면서 제도권 밖의 각종 연구소나 단체를 대상화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결합력이 더 떨어지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나 자신부터 그랬던 것 같다. 앞서 밝혔듯이 아무 거리낌 없이 연구소의 연구 성과물들을 도둑질하면서도,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었다. 민주노조운동에 대한 지원이야말로 연구소의 본연의 기능이라고 생각했기에, 연구자들의 노력과 헌신에 대해서 별로  고마워할 줄 몰랐고, 그들의 남모르는 고충에 대해서도 헤아릴 줄 몰랐던 것이다. 과연 나만 그랬을까. 내가 보기엔 예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우군’에 대해 ‘이용’만 할 줄 알고 있지, 함께 고민을 나누고 공동의 발전을 꾀하는 노력이 부족한 것 같다. 이제 민주노조운동은 예전과 달리 그 덩치나 재정 규모에서 상당한 힘을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난 해 11월23일 역사적인 금속산별 완성대의원대회가 열리던 날, 대회장의 참관석 한켠에 앉아 있는 임영일 소장을 보았다. 단병호, 문성현, 이승필, 김창근, 심상정 … 금속산업연맹과 금속노조의 전직 임원들이 사회자의 화려한 수사와 박수 속에서 인사하는 장면을 보면서, ‘영남노동운동연구소에도 한 자리 쯤 마련해주었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기분이 씁쓸했다. 

교육원을 운영하면서 우리 노동운동에 ‘아래로부터의 연대, 내용 있는 연대’가 절실히 요구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각종 집회의 연대사로 대표되는 판에 박힌 공식적 연대, 폼 잡고 보여주기 위한 연대가 아니라 제도권 밖을 향해서도 활짝 열려 있는 활발하고 생동력 있는 의사소통과 연대가 복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연구소의 해산은 앞서 말한 두가지 상황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것은 ‘산별전환’이라는 시대적 소임을 다했다는 평가 속에서 본격적인 산별시대의 산적한 과제들에 답하기 위한 새로운 틀을 모색하려는 몸짓의 일환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임영일 소장은『연대와 실천』종간호(2006년 12월호)에서 “노동문제 전문가들과 현장의 활동가들이 헌신적으로 참여하여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고 작업하고 활동하였던 역동적인 운동성을 지금의 조건에 맞게 다시 일구어 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고민을 깊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고민을 함께 나누려는 노력이 현장에서도 나와야 할 것이다.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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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신문>, 결국 문 닫게 되나

 
<시민의 신문>, 결국 문 닫게 되나
이형모 전 사장, 경영복귀 시도로 파행
 
박진형 기자    메일보내기
 
 
 

  사내 여직원과 시민단체 여성 활동가에 대한 잇단 성추행으로 이형모 씨가 지난 9월 <시민의 신문> 대표이사직을 자진사퇴한 뒤, 3개월 여 동안 경영공백 상태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의 신문>이 더 깊은 파행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시민의신문 분회(분회장 이준희)가 이 전 대표의 사퇴 뒤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사회를 독려해 겨우 언론계와 시민사회 인사를 중심으로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했고, 사추위가 지난 11월 23일 남영진 전 한국방송광고공사 감사를 사장 내정자로 확정했지만, 12월 14일 열린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40%의 지분을 확보한 이 전 대표가 나타나 “남영진 대표이사 선임을 반대한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현재 이 전 대표는 자신을 포함해 11명의 주주들로부터 위임받은 지분 40%를 내세워 “본인이 데려 온 대리인을 통해 임시 운영한 뒤 3월 주주총회에서 정식으로 새 대표이사를 선출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법테두리 내에서는 사실상 손써 볼 도리가 없는 막막한 상황이다.
  
  

 
△12월 14일 <시민의 신문> 주주총회에서 이형모 전 사장이 이준희 노조위원장의 옷깃을 움켜잡고 있다. (사진제공=시민의신문)

  따라서 ‘시민단체 공동신문’을 표방하고 있는 <시민의 신문> 정상화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중재와 정체성 확립 등 근본적인 해법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겉으로는 '시민단체 공동신문', 실상은 '이형모 1인지배 신문'
  
  <시민의 신문>은 그 동안 ‘시민단체 공동신문’을 자임하며 지면을 통해 시민사회의 다양한 활동과 주장이 소통될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해왔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이형모 1인 지배 신문’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 같은 <시민의 신문>의 현 주소가 극명히 드러난 것이 바로 주총장에서의 파행. 파렴치한 행위로 도덕적 지탄을 받으며 물러났던 이 전 대표가 절반에 가까운 지분을 확보해 낯 뜨거울 정도의 억지를 부릴 수 있는 구조가 바로 <시민의 신문>의 실상이었던 것이다.
  
  조직운영에 있어서도 외형적으로 ‘시민단체 공동’의 성격이 강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이형모 전 대표가 전권을 휘둘러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식회사로서 이사회가 구성되어 있고 각 시민단체의 이름 있는 대표자들이 이사로 참가하고 있지만 성추행 파문 이전에 이사회는 사실상 형식적으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희 시민의신문 노조위원장은 “1년에 한, 두 번 예결산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는 역할 정도를 했다”고 밝혔다. 성추행 파문 이후에도 이사회가 이 전 대표를 감싸는 등 사태 해결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시민의신문 노조는 주장한다.
  
  아울러 <시민의 신문>에는 고문이나 편집위원 등으로 상당수 명망있는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이 또한 <시민의 신문>이 ‘시민단체 공동신문’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형식적인 요소가 강할 뿐 <시민의 신문>의 실질적인 운영에 별다른 영향을 주거나 간여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체불임금, 각종 체불공과금, 직원 차입금, 미지급금 등 최대 6억원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는 <시민의 신문>은, ‘시민의 신문 비상경영위원회’가 의뢰한 경영 컨설턴트의 설명에 따르면 ‘거의 부도 상황’에 이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광고 외에는 별다른 수입구조가 없는 <시민의 신문>은 심각한 경영난 속에서 그나마 이 전 대표가 자신의 인맥 등을 동원해 광고를 수주해오면서 외형적으로는 큰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였고 오히려 ‘시민의 신문이 저 정도로 버틸 수 있는 건 이형모 사장의 경영능력 덕분’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이 전 대표 또한 주총장에서 자산이 부채보다 많음을 칠판에 적어가면서까지 설명하고 ‘내 재임 동안 1억원의 흑자를 달성했다’고 주장할 정도다.
  
  하지만 이에 대해 <시민의 신문> 직원들은 ‘사실왜곡’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실제 <시민의 신문>의 주거래통장은 주총 파행 직후 압류되었고 임금 또한 석 달째 체불된 상태다. 그 정도로 경영이 심각한 위기 상태에 봉착해 있지만, 이 전 대표는 <시민의 신문> 사장을 역임하는 동안 ‘시민단체 공동신문 발행인’으로서 각종 명예는 물론 엄청난 금전적 혜택도 누린 것으로 나타났다.
  
  직원들은 임금체불, "사장은 사회적 명예와 금전적 혜택 누려"
  
  현재 이형모 씨는 (사)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 회장, (재)한국녹색문화재단 이사장, SBS문화재단 이사, (재)포스코청암재단 감사 등을 포함해 스무 곳 이상의 단체나 재단의 주요직책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부분 <시민의 신문> 대표이사를 하면서 얻은 직책들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단체나 재단의 주요직책을 맡는 동안 상당한 금액의 연봉을 받아왔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12월 20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형모 씨가 “지난 해 2억 1천여 만 원의 근로소득을 신고했다”며 “시민의신문으로부터 1억 1천 5백여 만 원,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에서 6천여 만 원, 녹색문화재단으로부터 3천 6백만 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시민의 신문> 직원들이 임금체불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것.
  
  
 
△12월 14일 <시민의 신문> 주총장. 미소를 띤 이형모 전 사장과 사추위에서 대표이사로 선임된 남영진 사장 내정자의 괴로운 모습이 대비된다 (사진제공=시민의신문)

  언론노조는 “결과적으로 시민운동과 시민의신문은 이형모 전 사장의 명예와 금전적 이득에 막대한 기여를 한 셈”이라며 “최저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수십 만 원의 활동비로 헌신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는 시민운동가들은 뭐란 말인가”라고 개탄했다.
  
  하지만 문제는 40%의 지분으로 의결권 행사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이형모 전 대표가 버티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결방안을 찾느냐는 것. 상황은 더욱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상황을 더 큰 파국으로 몰고 가는 <시민의 신문> 이사회
  
  12월 20일 오전 열린 <시민의 신문> 이사회는 주총이 파행으로 치달으면서 남영진 대표이사 승인이 무산된 것을 ‘대표이사 승인을 받지 못한 것’으로 해석하고, 사장추천위원회에서 새로운 임시 대표이사를 선임하여 내년 3월 주주총회 때까지 운영한 뒤, 3월 주총에서 정식 대표이사를 선임한다는 계획을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이사회의 결정은 사실상 이형모 전 대표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것.
  
  이와 관련해 <시민의 신문> 이준희 노조위원장은 “이형모와 시민사회단체 명망가들이 시민의신문 언론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쫓으려 하고 있다”며 더 이상의 사태 해결 전망을 찾을 수 없다고 절망을 토로했다. 사실상 ‘<시민의 신문>이 망했다’고 보는 것.
  
  <시민의 신문> 사장추천위원회 위원으로 참석했던 언론개혁시민연대 양문석 사무처장 또한 “도덕성을 강조해왔던 시민단체 명망가들이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지 충격적이다”며 “<시민의 신문>의 존재와 정체성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시민사회의 정론지’를 자임했던 <시민의 신문>의 역할을 수용하고 인정해왔던 시민단체들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요구하는 목소리 또한 높아지고 있다.
  
  <시민의 신문> 노조는 시민사회가 지금이라도 적극적으로 나서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이형모 전 대표에 대한 공분을 모아주길 바라고 있다. 동아일보 기자들이 나서 한나라당 최연희 의원을 여기자 성추행으로 검찰에 고발했듯, 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서 이형모 전 사장을 사법처리시킬 수 있도록 의지와 힘을 모아달라는 것이다.
  
  언론노조 또한 “그동안 조용한 해결을 바라며 지켜만 봐왔던 (시민사회단체의)소극적 자세가 사태를 키웠다”며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지금이라도 시민사회 진영이 한 목소리를 낸다면 사태 해결은 쉬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유진 사무처장은 “<시민의 신문>이 ‘시민단체 공동신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그에 걸맞는 조직 운영구조를 갖추기 위해서는 시민단체들의 근본적인 논의와 해법모색이 있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갈수록 파행으로 치닫는 <시민의 신문> 사태. 이 상태로 간다면 결국 <시민의 신문>은 문 닫을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여기저기서 제기되고 있다. 이제 <시민의 신문>은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관련기사]
 
 
<시민의 신문> 이형모 전 사장의 성추행 전모 ㅣ 박진형 기자
 


2006년12월21일 ⓒ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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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지주, 왜 투기자본일 수밖에 없는가

하나금융지주, 왜 투기자본일 수밖에 없는가

감시센터, "헐값 매입, 지분매각, 슬림화 이후 구조조정... 전형적 투기자본 행태"

 

라은영 기자 hallola@jinbo.net

 

또한 현재 하나금융 지주회사가 보이고 있는 행태는, 지주회사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금융권에서 새롭게 등장한, '신종 구조조정의 사례'라는 점에서 관련 노동계의 우려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7일 거래소에서 진행된 '투기자본감시센터/증권노조 하나지주 구조조정 저지 공대위 공동 기자회견' 모습.
 전국증권산업노동조합


헐값 매입 그리고 내부 정리용 지분 매각

 

하나금융지주는 2005년 5월 대한투자증권과 대투운용을 4,750억 원에 사들였다. 당시 매입 과정에서 ‘헐값’논란이 있기도 했다. 하나금융지주가 대투증권을 매입한 이후에 보이는 행태가 투기자본의 전형이라는 지적이다.

 

하나금융지주는 대투증권을 인수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대투증권 자회사인 대투운용의 지분 51%를 1,500억 원에 UBS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06년 10월 하나증권을 자회사로 편입시켰고, 11월 하나증권의 리테일본부(소매영업)를 영업양수도(어떤 회사가 영위하는 영업, 사업을 다른 회사나 개인에게 파는 것) 방식으로 대투증권으로 넘길 계획을 밝혔다.

 

계획 발표 이후 곧이어 하나증권의 지분이 리만브라더스로 매각된다는 언론보도들이 터져 나왔다. 이어 지난달 28일에는 하나금융그룹의 상품을 전담하여 판매하는 별도법인 하나GMG를 설립했다.

 

복잡해 보이지만 원리는 간단한다. 하나금융지주는 지주회사 출범 1년의 시간동안 ‘외국자본으로의 지분매각을 통한 수익 확보, 향후 구조조정을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하나증권은 껍데기만 남을 위기에 놓인 상황이다.

 

하나금융지주, 리만브라더스를 통한 구조조정 계획

 

하나금융지주는 2007년 11월 30일까지 하나증권의 자회사 편입을 완료해도 됨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월 주식맞교환을 통해 하나증권을 완전자회사로 편입시켰다. 이는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유가증권매매로 명백한 증권거래법 위반 사항이다.

 

투기자본 감시센터는 "하나금융지주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하나증권주식을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주식 교환했고, 이를 위해 우선주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들을 개별 접촉까지 해가며 집중적으로 우선주를 매입하여 50%에 지나지 않았던 지분율을 65%까지 끌어올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말 그대로 하나증권 소액주주들을 싼값에 스퀴즈아웃(소액주주 내몰기)시키고 그 차액을 하나지주가 독차지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감시센터는 하나증권의 리만브라더스로 매각 협상이 상당히 진전된 시점을 고려할 때, 매각차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회사 편입을 앞당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나금융지주 홈페이지


뛰어든 인수전에 고배를 마셨지만 계속되는 기도

 

하나금융지주는 대투증권 인수당시 싱가포르 국영투자은행(테마섹)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당시 테마섹은 지분참여 조건으로 원금 연 10%의 수익률 보장을 요구했다.

 

투기자본 감시센터의 설명에 따르면, ‘테마섹’은 기업 가치 제고와 기업의 사회공공적 측면은 도외시한 채 단기적 이익만을 꾀하는 대표적 투기자본이다. 그리고 하나금융지주의 최대 주주(9.89%)이기도 하다. 물론 정부의 수익률 보장 불허조치로 인해 이 컨소시엄은 무산되었다.

 

그리고 대투운용 매입을 시도한 UBS는 2004년 스위스 금융당국으로부터 기관 경고 조치를 받은 바 있다. 또한 현재 미국 SEC로부터 의도적으로 미국 국채의 공급 부족 상황을 초래해 시세를 조작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또한 '하나증권의 지분을 넘기려 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는 리만브라더스의 경우도 지난 2001년 11월 고려산업이 확정채권 8000억 원 가운데 채권자 90% 이상의 찬성을 얻어 정리계획안을 법원에 제출했으나, 고가로 채권을 매수할 것을 요구하며 정리계획안을 반대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투기자본 감시센터는 “하나금융지주는 공공성을 외면하고,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자본이라도 지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상관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음”을 강조하며 “이는 하나금융지주가 투기적 행태를 보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투기자본은 ‘상생’이 아닌, ‘이윤율’ 최고의 방식만 택한다

 

하나지주 사측은 '대투증권은 브로커를 강화하고, 하나증권은 IB로 특화시켜 각각의 장점을 살리겠다'고 입장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를 뒤집어 보면, 하나증권을 자회사로 편입시킨 후 영업양수도 방식으로 하나증권 리테일(소매영업)은 대투증권으로 넘기고, 하나증권의 지분은 리만브라더스로 매각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하나GMG를 통해 대투의 펀드 상품 등 자회사 상품을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투기자본 감시센터는 "하나증권과 대투증권의 리테일 통합을 통해 하나증권을 슬림화한 뒤, 리만브라더스로 매각하고, 대투증권을 비롯한 자회사의 상품을 하나GMG를 통해 판매하여 사실상 계열사 모두를 구조조정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기존 하나증권의 리테일 본부를 대투로 넘기는 영업양수 과정은 향후 지주회사 내 구조조정의 시발탄인 셈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투증권의 법인세 감면 효과를 통해 이익을 취하겠다는 것도 포함된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하나금융지주가 법인세 감면 효과를 노리고 있는 이러한 행태는 투기자본들이 조세회피 지역에 근거를 두고 한국에서의 이익에 대한 세금을 탈루하는 것과 같은 행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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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개혁의 위기]2-7. 좌담 : 진보는 왜 전진하지 못하고 있나

[진보개혁의 위기]2-7. 좌담 : 진보는 왜 전진하지 못하고 있나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김혜정 환경운동연합사무총장, 단병호 민주노동당의원(왼쪽부터)이 좌담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문석기자
 
경향신문 창간 60돌 특별기획 ‘진보개혁의 위기-길 잃은 한국’ 2부를 마치며 진보진영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좌담을 마련했다. 좌담에는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 김혜정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이 참석했다. 좌담은 경향신문 이대근 정치·국제에디터의 사회로 지난 2일 경향신문사 회의실에서 열렸다.

◇ 지금은 ‘민주화 이후’ 새 길 모색의 진통기



사회=진보개혁세력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얘기해보고자 한다. 우선 진보가 위기라는 데 동의하는지.

조희연=‘전환적 위기’라 본다. 어느 시기든 진보는 특정 문제에 대응하고 또 저항하는 형태로 운동해왔다. 독재 타도라는 시대적 과제 속에서 1987년 6월 민주화라는 거대한 흐름을 주도했던 민주진보 진영은 이제 전환국면에 있다. ‘포스트 민주화’ ‘지구화’ 시대의 진보로 전환하는 진통을 겪고 있다. 진보가 통째로 몰락하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새로운 진보로 나아가야 하는 과제가 남았을 뿐이다.

김혜정=삶 자체가 성장만 할 수 없듯 운동도 언제나 성장할 수는 없다. 시민운동이 새로운 의제를 설정하고 다양함을 요구받는 시기에 그것을 수용해내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위기의 본질은 양적인 성장을 이룬 시민운동이 질적으로 성숙함을 요구받는 것이다. 환경운동의 실패라는 평가에는 완전히 동의하지 않는다. 환경운동이 없었다면 여기까지라도 왔을까 싶다. 새만금 논쟁을 통해 국민들이 갯벌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큰 진전이다.

단병호=현재 상황을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수십년간 운동을 해오며 느낀 직감으로는 진보운동이 위기적 상황으로 가고 있다는 건 분명하다. 진보운동을 추동해온 주체들의 계급 안에서 구심점이 사라지고 있다. 노동자·농민을 한 덩어리로 보고 우리 사회를 추동해 왔는데, 노동 내에서조차 분화가 일어나면서 민주 진보를 추동해온 세력들이 서로 고립되고 있다. 새로운 민주 진보를 추동해 나갈 수 있는 주체가 형성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희연=민주화 이후 진보의 위기는 우리만의 현상이 아니다. 대만 천수이볜 정부, 태국 탁신 정부 등 80~90년대 제3의 민주화 물결을 이룬 아시아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우리의 경우 박정희가 개발을 성취했으나 그 개발이 가져온 새로운 모순의 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재벌개혁이 진행됐음에도 결과적으로는 더욱 거칠고 험악한 모습의 계급사회가 출현해버렸다. 또한 민주개혁은 정치경제적 의제 중심이었다. 정치경제적 개혁조차 제대로 이루지 못했고, 생태적 진보, 생활세계적 진보로의 확장은 거의 손도 못댔다. 지금까지 성취한 민주개혁이 어떤 전환을 요구받고 있는지, 어떤 것은 여전히 성취하지 못했는지를 나눠서 봐야 한다.

사회=생활의 진보, 진보의 확장에 대해 더 말해달라.

김혜정=현재 개혁과 진보의 가장 큰 문제는 ‘녹색’이 빠져 있다는 점이다. 진보의 선봉에는 정치·경제를 포괄하는 단체가 주류인데, 참여정부의 개혁에는 환경, 평화, 문화 분야는 완전히 실종됐다. 개발독재 때보다 더하다. 20여년 환경운동을 해오며 느낀 것은 참여정부가 역대 정부 중 가장 반환경적이고 재벌편향적이라는 것이다.

단병호=일반 국민들은 개혁과 진보, 민주와 진보라는 것을 개념적으로 구분해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시민운동을 참여정부와 한 덩어리로 보고 그 정부를 출범시켜 줬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 안에서 ‘진보세력’은 아무것도 한 게 없다. 국보법이 그대로 살아있고 집시법은 오히려 더 강화됐다. 양극화는 심화됐고 고용불안정도 더 심해졌다.

조희연=참여정부에 돌 던져 버리고 끝나서는 안된다. 그 실패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참여정부 내 준비 안된 주체와 그들의 개혁성에는 어떤 문제가 있었나. 이른바 개혁적인 386들 역시 삼성 보고서를 다 베껴 쓰는 실정이다. 정책수행 능력이 떨어졌던 것이다. 민노당도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국보법 실패는 참여정부가 안하려고 해서 안한 게 아니다. 국보법 해체를 우리 사회가 강제할 수 있는 진보적 역량이 사회 전체적으로도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민주화 이후 역설적으로 계급적 기득권 세력은 더욱 강고해졌다. 진보를 확장할 수 없는 거대한 사회적 한계가 있는 것이다. “강남 사람들은 계급의식이 투철한 데 비해 강북 사람들의 계급의식이 부족한 게 문제”라는 말이 있다. 조선일보를 친일신문, 반개혁신문으로 평가하지만 조선일보는 오히려 투철한 계급신문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김혜정=참여정부 하에서 더욱 심해진 양극화의 주범은 건설 마피아의 득세다. 건설 마피아는 개발독재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다. 필요하지도 않은 댐, 다리, 도로 등 대규모 공사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한다. 참여정부가 말로는 ‘친환경’ 했지만 정권을 장악한 것은 건설 마피아, 토건세력들이다. 이들에 대한 실질적 개혁 없이는 민주개혁은 물론 우리 시민들 삶의 질 성숙도, 희망도 없다. 양극화가 더 심해지고 국토는 파괴될 것이다. 양극화가 심해지면 국민들은 환경 문제 같은 삶의 질 문제에는 관심이 옅어지고 개발해서라도 잘 먹고 잘 살아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조희연=포스트 민주화 시대에 운동이 조급할 필요는 없다. 전두환·노태우 시대보다 노무현 정부가 더 반환경적이지는 않다. 개발독재국가에서 민주화운동, 민중운동이 쟁점화됐던 것은 독재의 성장국가 담론이다. 토건국가적 측면은 충분히 쟁점화될 기회가 없었다. 그때 쟁점화되지 못했던 것이 이제서야 터져 나오는 것이다.

단병호=참여정부, 개발 기득권층 얘기만 했는데 우리 스스로도 돌아볼 부분이 많다. 2년 전 국민들이 민노당에 13%의 지지를 보내며 10명이나 국회로 보내줬는데, 그 기대에 부응하는 역할을 했느냐 생각해 보면 사실 죄송한 마음밖에 없다. 국회 들어가 뼈저리게 느낀 것은 들어오기만 했을 뿐 우리가 준비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는 것이다. 법이나 제도를 만들어 내는 역량이 부족했다.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든지 구조적인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도 없었다. 계획도, 실행도 부족했다. 진보에 대해 국민들이 회의하고 실망한 점, 저희 민노당이 기여한 측면이 크다. 민노총 역시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다. 노동운동이라는 게 조직원들이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이해와 요구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민주노조를 해오며 그 안에서 버릴 것과 가져가야 할 것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기존에 갖고 있던 형태의 운동만 고집했다. 민노총은 단협, 임금 등의 문제에 있어 자기 구성원 중심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가지 못했다. 조직된 조합원의 임금 문제에만 신경쓰고 비조직된 8백50만 비정규직에는 소홀했다.

조희연=민주화가 진행되며 나타나는 제도화의 도전이라 본다. 민노당의 의회 진출은 진보가 제도정치적 공간으로 확장됐다는 말이다. 그 확장은 사실 탄핵이라는 보수쪽 실책에 힘입은 측면도 크다. 진보진영의 정책 역량은 많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제도화의 도전은 시민운동에도 적용된다. 시민운동의 의제가 주류에 포섭돼 버렸다. 특히 인권, 여성 같은 종합적 시민운동이 그렇다. 제도화가 진전된다는 것은 진보세력에게도 제도적 활용공간이 늘어난다는 얘기다. 그걸 활용하면서 보수의 일부까지도 진보가 획득하는 헤게모니의 정치를 해야 했다. 진보는 지금까지 ‘정체성의 정치’만 고민했지 ‘헤게모니 정치’에는 미흡했다. 보수를 비개혁적이라고 비판만 했을 뿐 그들을 진보 헤게모니로 끌어오는 것에 미숙했다.

사회=경향신문 진보시리즈가 나온 뒤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진보의 실패는 진보 안에서 찾아야지 왜 엉뚱하게 노정부(盧政府)에서 찾느냐. 진보 스스로 반성하라”는 글을 올렸다. 진보의 위기에서 노정부 책임이 더 많은가, 진보 내부 책임이 더 많은가, 아니면 신자유주의라는 외부 요인이 더 큰가.

단병호=문제가 있으면 자기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는 그 말인즉슨 맞다. 옛날만큼 진보운동이 치열했느냐, 나 자신부터 자신있게 대답하기 부끄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여정부가 애초 “우리는 신자유주의자이고 보수주의자다”라고 표방했다면 이렇게 문제가 커졌을까. 참여정부는 끊임없이 자신이 민주세력이고 약간의 진보세력인 것처럼 포장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펴왔다.

김혜정=‘좌회전 깜박이 켜고 우회전하는’ 참여정부 정책이 온국민을 혼돈에 빠트렸다. 일반 시민들은 인식하지 못했겠지만 노정부가 진보의 위기를 초래한 문제가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시민운동이 변화된 사회에 걸맞은 의제를 설정하는 능력이 부족했던 점 역시 사실이다. 이슈 중심의 운동에서 보다 정책 역량이 배가된 형태의 운동은 부족했다. 과거 환경운동은 친환경적인 언론 보도에 힘입은 측면이 크다. 이제는 언론 보도 없이도 우리 자체적인 회원이라든가 시민 참여, 축적된 정책 역량 등 자생적 힘으로 뚫고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약자가 중심된 ‘풀뿌리운동’으로 거듭나야

사회=여러 진보세력의 문제점을 보면 전망 및 대안 부재, 투쟁을 위한 투쟁, 기득권화, 정파갈등 등 몇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

조희연=가장 중요한 것은 전망과 대안의 부재다. 민주정부와 진보세력은 박정희와 다른 방식으로 서민들과 국민들을 먹고 살게 하는 방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참여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박정희 모델을 전유하는 식으로 출구를 찾으려 했다. 사람들은 민주정부 하에서 훨씬 계급적으로 양극화돼 있고 살기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박정희와는 다른 방식의 작동 가능한 경제모델을 제시하고 추진력 있게 그걸 실행해야 하는데, 대안적 모델도 문제고 그걸 실행하는 정책 능력도 없었다.

김혜정=북한 핵실험에 대해 민노당이 입장을 제때 못낸 것은 아주 심각한 문제다. 한반도 평화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공당이 내부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질질 끌다가 나중에야 슬며시 낸 것이다. 핵무장을 인정하는 진보란 있을 수 없다.

조희연=정파 구도의 고정화는 진보의 혁신이라는 차원에서 성찰해야 한다. 모든 경계가 고정되고 관성화될 때 문제가 생긴다. 정파는 민주화 초기 형성된 것으로 정파가 도전하고자 했던 미국의 패권, 계급적 억압이 여전하긴 하지만 포스트 민주화 및 지구화 시대를 맞아 그 작동방식은 변하고 있다. 정파가 배제의 범주로만 작동할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을 포섭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단병호=분단이라는 한국적 특수성 때문에 진보정당 내에는 진보적 가치와 민족적 가치가 공존해온 측면이 있다. 진보정당의 기본으로 돌아갔을 때 북한 핵문제 대응 부분은 반성해야 하는 것이 맞다. 정파 문제는 좀 다르다. 정치운동에서 정파는 없어질 수 없다. 획일이 어쩌면 더 무서운 것이다. 정파구도가 어떻게 긍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하느냐가 문제다. 이제는 정파라는 틀이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다른 정책을 내놓고 활발하게 토론하고 동의와 지지를 묻고 실행을 통해 평가를 받는 식으로 가야 한다.

김혜정=민족주의는 시민운동의 큰 걸림돌이다. 민족주의가 극한으로 가면 전쟁, 파쇼적 지배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노동운동의 결과 시민운동의 공간이 마련됐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이제 노동운동이 선봉에 서는 전선식 운동은 지양해야 한다.

조희연=우리 사회에 아직 계급적, 친미적 권력이 강고하게 존재하는 상황에서 노동운동의 바리케이드가 시민운동을 확장시켜 주는 측면이 있다. 노동운동은 현재의 계급적 역관계를 돌파하는 역할을 하고 시민운동은 공공성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공동행동을 폭넓게 형성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민중운동의 계급적 실현과 시민운동의 공공성이 만나는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단병호=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갈등은 조금만 토론했으면 커지지 않았을 문제다.

조희연=운동의 일상적 분화는 불가피하고 노동운동과 시민운동의 긴장·갈등은 오히려 있는 게 더 좋을 수 있다. 시민사회 일각의 보수화 현상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도 문제다. 진보 위기 이후 보수의 능동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사회=사회경제적 조건이 많이 변했는데 여전히 ‘투쟁을 위한 투쟁’을 고집한다는 비판도 있다. 가령 정부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텐데.

김혜정=과정은 다 무시하고 결과적으로 운동이 투쟁을 위한 투쟁만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건 문제다. 가령 방폐장과 새만금 문제에서 환경운동 진영이 일반 대중의 지지를 얻고 운동적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이슈를 제기하고 사회의제로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언론은 기본적으로 대립 구도를 선호한다. ‘보존이냐 개발이냐’는 제목이 일단 나와야 기사화한다. 투쟁으로 반대 입장을 이슈화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다. 우리 역시 법률구제 활동이나 연구조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환경운동을 해오고 있으며 갯벌을 살릴 수 있는 조정안을 냈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단병호=언론도 그렇고, 고향이나 지역에서 사람들 만나봐도 투쟁, 집회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더라. “시대와 상황이 바뀌었는데 투쟁 방식만 고집한다” “자기 이해관계만 집착한다”고들 하는데 이거야말로 정부의 통치 이데올로기다. 물론 통치 이데올로기가 국민들에게 먹혀들어가는 것은 투쟁 주체가 과제 설정을 잘못했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으로 집권여당, 참여정부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 국회 들어가 보니 그건 불가능하더라. 사회적 조건이 구비돼 있지 못해 국보법 문제를 해결 못했을까. 아니다. 힘을 가진 사람들의 실행 의지 문제였다. 정부여당은 민노당을 비정규직법 제정을 막는 당으로 몰고 있다. 현재 정부 방안으로는 비정규직 문제를 결코 해결할 수 없다. 은행 창구에 함께 근무하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겠다며 정규직을 모두 비정규직으로 대체해버리는 식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활용하겠나.

조희연=민주화 이후 민중·시민운동 단체가 순수한 약자 집단은 아니다. 이제는 정치적 고려를 좀 해야 한다. 지하철 노조나 전교조 파업이 그렇다. 전교조가 현장에서 약자 집단이라고 인식되진 않는다. 독재 하에서는 일직선적인 전투성이 계몽 효과를 가져왔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고 전투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 정치력과 전투성을 병행해야 한다. 계급적 우위자들, 즉 자본이 계급적 약자를 낭떠러지로 내모는 비타협성이 있기 때문에 벼랑끝 전술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자본과 기득권 세력의 비타협성 때문에 불필요한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김혜정=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에서 보듯 우리 사회는 핵 마피아 집단이 갖고 있는 기득권이 강고하다. 부안 주민들이 처음부터 투쟁했겠나. 평화시위로는 안먹혔기 때문이다. 방폐장이 경주로 선정된 것을 두고 참여정부는 지역주민들의 지지 하에 성취한 민주주의의 성공 사례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민주주의를 악용해 가장 나쁜 방식으로 문제가 해결된 경우다. 매표와 금권선거, 관권 개입에 지역주의까지 붙었다. 우리 사회가 피 흘리며 이뤄온 민주주의가 다 실종됐다. 국가는 자신의 국토 관리 권한을 자본에 넘겨버렸다.

단병호=투쟁이라고 하면 노동, 그 중에도 민노총으로 상징화돼 있다. 정책이든 정치적 의제든 반대만 한다는 이미지로 굳어져 있다. 하지만 시민·사회단체도 민노총의 투쟁을 엄호해줘야 한다. 순망치한이라고 하지 않나. 민노총 투쟁이 무력화되면 본격적인 화살은 바로 시민사회로 향한다. 물론 투쟁에 대한 비판도 수용해야 할 측면이 있다. 민노총 조합원들은 전체 노동자들 중 기득권층으로 비쳐지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사람들의 투쟁이 국민들에게는 물론 노동자 계급 내에서도 부정적으로 비치는 것이다. “우리는 죽도록 일해서 월 1백만원 받는데 저 사람들은…”이라고 푸념하는 비정규직의 현실을 냉철하게 돌이켜봐야 한다.

조희연=전투적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중요치 않다. 대중이 전투적인 분노를 느끼는 의제를 발굴하고 그것에 대해 투쟁해 대중이 환호하면 문제가 없다.

사회=진보가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조희연=신자유주의 지구화 시대의 대안적인 사회적 국가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서구의 국가 사회주의 모델은 자체 문제로 실패했고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신자유주의 공세 속에 무력화됐다. 새로운 사회적 국가모델을 구체화하기 위해 일국적·지구적·계급적 사회모델의 형성을 고민해야 한다. 포스트 민주화 시대 진보의 재구성이라는 과제도 고민해야 한다. 정치경제적 진보보다 더 급진적인 새로운 차원으로 심화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강고한 계급적 장벽을 뚫고 다양한 진보의 차원을 생태적 진보와 풀뿌리 진보로 확장하고 내부화해야 한다. 새로운 조건 속에서 고통받는 약자 집단과 저항적 주체들, 가령 비정규직과 외국인 노동자가 한국 진보운동의 중심으로 더 나와야 한다.

단병호=더 큰 소유를 위해서는 가진 걸 버릴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어쩌면 문제가 있는 부분은 1백만 조직 노동자들의 일부에 있을 뿐인데, 전체 노동자의 문제로 비쳐지고 있다. 지금 상태로라면 조직 노동자들이 고립돼 살아남기 힘들다. 기존 조직원의 임금, 단협에 매몰되지 않아야 운동의 새로운 주체 형성도 가능하리라 본다.

김혜정=시민운동, 진보세력이 성장하는 게 우리의 희망이기에 이런 논의를 하는 것 아닌가. 한국 사회에서 진보는 전인미답의 길이다. 그동안 부족했던 정책 역량을 강화하고 전문성을 강화하고, 시민들의 많은 참여를 위한 풀뿌리 운동의 확대, 무엇보다 미래를 열어가는 의제 설정의 역량 강화가 중요하다.

단병호=이렇게 볼 수도 있다. 내재적 불만은 커져 가고, 자괴감과 상실감이 도처에서 심해진다는 점에서 오히려 역동성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진보가 재결집할 수 있는 내재적 동력은 커가고 있는 게 아닌가.

<손제민기자>

<특별취재팀=이기수 오창민 김광호 박영환 김종목 전병역 최민영 이주영 손제민 장관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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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을 '경제동물'로 만들려 하나?

청소년들을 '경제동물'로 만들려 하나?
  [경제교과서 논란(2)] 기존 경제교과서의 실상
 
  2006-11-16 오전 9:07:32
 
   
 
 
 현행 경제교과서는 학생들에게 부르주아 경제학을 교육하는 데서 더 나아가 자본주의 시장경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현행 경제교과서의 검인정 기준인 '제7차 교과과정 경제편'이 "경제 과목이 지향하는 민주시민 상은 시장경제의 경쟁원리에 적응하여 효율성과 공정성을 바탕으로 이윤을 추구하면서 국민경제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합리적, 윤리적 경제인"이라고 분명하게 천명한 데서 확인된다.
  
  자본과 노동의 사회적 관계를 핵심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모순에 대해 학생들이 이해하도록 하기는커녕 이런 사회적 관계를 소비자와 생산자의 관계로 치환한 현행 경제교과서가 도대체 어떤 점에서 반시장적, 좌편향적이라는 것일까?
  
  노동인권 교육이 불가능한 교과서
  
  현행 경제교과서는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현행 경제교과서에는 그 어디에도 주류 경제학의 체계를 벗어난 서술이 없다. 주류 경제학에 맞서 경쟁적인 흐름을 형성해 온 마르크스 경제학, 포스트케인스주의 경제학, 제도주의 경제학 등 비주류 경제학의 흐름은 현행 경제교과서에서 전혀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또한 6차 경제교과서에는 '노동시장과 산업평화'라는 제목으로 들어 있었던 노동문제에 관한 절이 현행 경제교과서에서는 완전히 삭제됐다. 그 결과 현행 경제교과서에는 기업과 소비자만이 존재하고 노동자, 노사관계, 노동과정에 관한 서술은 자취를 감추었다. 노동과 관련해서는 기업과 근로자의 역할, 실업의 원인과 대책 정도만이 단편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교과서의 내용이 이러하니 학생들이 노동인권 교육을 받을 수 있겠는가? 2004년에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노동인권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참았다'와 '그만두었다' 등 소극적 대응을 한다는 응답이 대부분이었고, 그런 상황에 대한 대처방법을 배운 적이 없다는 응답이 80%로 나타났다(하인호 외, '청소년 노동인권 교육 개선방안 연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제출 연구보고서, 2004년).
  
  또 한국노동교육연구원이 노동부의 의뢰를 받아 총 72종의 교과서 내용을 분석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조사대상 교과서에서 노동자를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학생들의 직업관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는 내용이 40여 건에 이른다. 특히 초중고의 모든 교과서에서 '노동'과 '근로', '노동자'와 '근로자'라는 표현이 혼용되고 있으며 그것이 '육체노동자'와 '사무근로자'라는 식으로 사용됨으로써 노동자들에 대한 학생들의 부정적 편견을 부추기는 것으로 지적됐다(송태수, '한국 노동교육 내실화를 위한 정책대안 연구', 한국노동교육연구원, 2006년).
  
  인간성과 사회의식의 골격이 청소년기에 형성됨을 감안한다면, 대학 진학 후에 비판적 사회과학 등을 통해 청소년기에 형성된 기존 사고방식의 틀을 깨기란 대단히 어렵다.
  
  우파는 재벌과 정부기구를 총동원해 고등학교 이하의 경제교육 과정과 그 내용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기존 체제에 대한 저항이나 거부의 요소를 어린 싹부터 제거하고 학생들에게 체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이제 진보진영도 이런 우파의 움직임에 정면 대응해야 한다. 시장경제에 순응하는 경제동물로 청소년들을 파편화, 불구화하는 데 기여할 뿐인 7차 교과과정 경제교과서는 전면 폐기돼야 한다.
  
  수학이나 물리학 같은 자연과학과 달리 모순과 이해관계의 대립으로 가득 찬 사회문제를 탐구하는 사회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은 가치중립적일 수가 없다. 사회과학의 경우 교과서의 역할은 모순적 사회현상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이해하고 비교하고 토론하는 것이 돼야지, 어떤 한편의 주장을 보편적 진리라고 획일적으로 강제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경제교과서의 경우 역사적으로 특수한 시장경제 체제를 당연한 것 내지 초월할 수 없는 여건으로 간주하고 그 속에서 순응하는 원리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시장경제의 운동법칙과 그 모순 및 한계, 나아가 대안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이해하고 토론하는 것이 돼야 한다. 특히 경제교과서는 아직 세계관이 확립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시장경제 지상주의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그들을 세뇌할 것이 아니라, 객관적 시각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토론하게 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현실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시각과 능력이 함양되도록 하는 것을 교육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
  
  새로운 경제교과서는 학생들이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최대한 접하도록 해야 한다. 동일한 문제에 대해 보수적 시각(자유시장을 주장), 자유주의적 시각(관리되는 시장을 주장), 급진적 시각 등 여러 시각에서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학생들을 교육해야 하며, 경제적 선택을 평가할 때의 기준으로 경제성장, 경제적 효율, 소득분배, 경제적 자유, 형평성, 안정, 경제발전 등을 제시한 미국의 교육학자들도 있다.
  
  교사가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기보다 다양한 입장을 제시하고 학생들 스스로 자신이 처한 입장에서 자기주장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한다는 원칙은 다른 나라의 사회과 교육에도 확립돼 있다. 독일의 사회과 교육에서는 ① 교화 또는 주입을 금지한다, ②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학교 수업에서도 역시 논쟁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③ 학생은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 있고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당면한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끼칠 수 있도록 교육돼야 한다는 3가지 원칙이 교육자들 사이에 합의돼 있다. 또 독일에서는 교육방법의 경우 모든 교과서가 토론식, 유도식, 체험식 방법을 채택하고 있으며 강의식, 주입식, 강독식 교육방법은 심지어 해롭기까지 하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경제교과서를 완전히 새롭게 써야 한다
  
  새로운 경제교과서에는 노동인권 교육이 필수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거나 대학에 들어가는 사람은 노동해서 살아가는 성인으로서 자신의 기본적 인권을 지킬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프랑스 고등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노사관계와 노동자의 권리를 다루는 교과를 배우는 것을 본보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개혁과 참여를 표방한 노무현 정부는 신자유주의 시장이데올로기의 교본인 현행 경제교과서를 민주적으로 개혁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진보학계의 거듭된 문제제기를 외면하고 7차 교과과정의 방향을 그대로 고수하는 내용의 8차 교과과정 시안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8차 교과과정 시안 작성과정에서 진보진영이 완전히 배제된 것은 물론이다.
  
  게다가 8차 교과과정 시안은 교과서 서술에서 다양성과 경쟁을 고무한다는 미명 하에 교과과정을 개략화, 신축화했는데 이는 교과서 내용뿐만 아니라 제작과 선정 및 유통에까지 시장논리를 확실하게 관철시킴으로써 이미 경제교과서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부르주아 경제학의 헤게모니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가 개혁과 참여의 초심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다면, 그리고 21세기 미래의 주역인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신자유주의 경제동물이 아니라 민주주의적이고 연대적이며 합리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으로 육성하기를 조금이라도 바란다면 지금이라도 8차 교과과정 시안을 백지화하고 진보진영과 관련 이해당사자들의 민주적 참여가 보장된 가운데 경제교과서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장상환 정성진/경상대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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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윤기 기고] 윤평중 교수에게 말한다

 

[홍윤기 기고] 윤평중 교수에게 말한다

 

 

당신의 ‘이성’은 허수아비를 향해 있다
헛다리 비판을 하느니 차라리 인신공격을 하시지요!

 

한겨레

 

 

홍윤기 동국대 교수·철학과

 
 
경애하는 윤평중 교수님,
 

지난 9일치 <중앙일보>는 리영희 선생의 “비체계적인 ‘인본적 사회주의’”가 “우리 사회를 시장맹·북한맹으로 만들었다”고 비판했다면서 교수님의 글 내용을 이례적으로 크게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문은 우선 두 가지 이유로 나의 실소를 자아냈습니다.

먼저, 이 보도는 교수님이 리영희 선생을 “시장맹, 북한맹”이라고 공격했다는 겁니다. 교수님이 인신공격을 했다는 거지요. 그리고 이 보도는 교수님이 리영희 선생의 사상을 놓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시장맹, 북한맹을 “초래”했다고 전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리영희 선생의 “인본적 사회주의”의 영향으로 우리 사회는 시장과 북한을 바로 알지도 못할 정도로 맹(盲)한 “인본적 사회주의 국가”라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교수님의 글을 직접 보니 이 보도가 오보는 아니었고, 또 정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리영희의 사회주의적 정향은 직관적이며 그만큼 파편적이다. 사회주의에 대한 체계적이고 이론정합성을 갖춘 논의 자체가 부재한 것이다.” “자본주의의 우상을 부순 자리에 리영희가 세운 것은 바로 사회주의의 우상이었다.” “리영희의 인본적 사회주의와 유가적 도덕주의는 근대적 시장의 입체성과 역동성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시장맹(市場盲)으로 귀결됨으로써 자유인의 존재 근거를 부인하는 자기모순에 빠진다.” “조야(粗野)하고 도식적인 그의 인본적 사회주의는 시장맹과 북한맹(北韓盲)을 배태(胚胎)하면서 우리 시대를 계몽함과 동시에 미몽에 빠뜨렸다. 리영희는 결국 냉전 반공주의가 압살한 불행한 시대의 자식이었던 것이다.”

위의 인용은 모두, 리영희 선생의 책 <우상과 이성>을 비틀어 ‘이성과 우상’이라고 제목 붙인 글에서 교수님이 손수 굵게 부각시킨 리영희 비판의 핵심들입니다.

만약 교수님이 리영희 선생을 “이성적”으로 “비판”했다고 믿는다면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리영희 선생이 어느 글에서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서 ‘사상적’ 입장이나마 세웠던가요? 그리고 선생이 어느 자리에서 어느 정도나 시장체제의 ‘이론적’ 비판이나 대안을 제시하는 데 열중하였는가요? 선생은 사회주의의 도덕적이고도 인간주의적인 기본 가치를 선택적으로 수용하자고 주장하기는 했지만, 그것이 과연 자본주의를 부정하고 사회주의를 우상화시키겠다는 이데올로기적 의도나 목표와 연결된 일이었습니까? 시장체제가 생활에 안겨주는 각종 고통을 리영희 선생은 집요하게 ‘비판’하고 ‘고발’하기는 했지만 과연 시장체제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대안’의 탐구를 자신의 ‘학문적 주제’로 삼았던 적이 있던가요?

교수님은 ‘반시장주의자, 북한 숭배자인 사회주의 사상가 리영희’, 그러면서 우리 사회를 그런 것에 눈멀게 만든 ‘괴력의 리영희’를 비판합니다. 아, 교수님! 교수님이 비판하는 리영희씨는 우리가 아는 리영희 선생과 동명이인인 것 같습니다. 그런 헛다리 비판을 우리 철학 교수들은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지요, 아마.


그리고 교수님이 “근대적 시장의 입체성과 역동성”을 “자유인의 존재 근거”와 연결한 발상은 너무 멋졌습니다. 그런데 “이윤을 매개로 작동하는 시장은 생산력의 확대와 함께 바람직한 사회의 기초를 구성한다”고 언명한 것은 아무래도 너무 나가신 것 같습니다. 그토록 균형을 강조하는 분이 시장의 이윤기제가 “바람직한” 사회의 기초를 구성한다고 속편하게 말하시는데, ‘시장의 실패’라는 또 다른 측면은 어떠한가요? 나도 시장에 대해 맹(盲)한가요? 우리끼리 얘기지만, 아무래도 철학을 업으로 하는 교수들의 얼치기 사회과학부터 깨져야 할 듯합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리영희 지성의 진면모부터 제대로 파악해야 할 듯합니다. 내가 아는 리영희 선생은 우리의 현대가 전적으로 결여한 채 출발하였던, 비판적 계몽의 선도자입니다. 그 분의 역할은 볼테르를 연상시킵니다. 그런데 볼테르더러 마르크스가 못됐다고 비판하면 공정한 비판이 되겠습니까? 아무래도 우리 윤 교수님은 기준 혼동의 오류까지 범한 듯합니다.

 

경애하는 윤평중 교수님,

이렇게 한없이 오류로 가득찬 A4 11쪽짜리의 조야한 잡문을 학교 연구비까지 지원받아가며 쓸 일이 아니라 차라리 리영희 선생을 속편하게 인신공격 하시지요. 그것이 철학교수의 비판이라는 것이 얼치기라는 직업상의 기밀을 은폐하는 데 더 효과적이라는 동류의식이 발동하는군요. 교수님과 교수님에 훨씬 못미치는 나 자신에 대한 학문적 연민의 심정으로 간청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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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동영화제 울산 상영장소와 시간표(16,17,18,19일)

제10회 국제노동영화제 울산지역 상영장소와 시간표

16~17일(목금)

현대자동차 문화회관 2층 대강당(양정동)


18~19일(토일)

전교조울산지부 2층 교육관 (삼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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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로치 특별전(부산 시네마테크, 서울 동숭동)






켄 로치 특별전 Ken Loach Retrospective

컬러 | 영국 등 | 영화등급 : 12세관람가 | Director 켄 로치 Ken Loach

켄 로치 특별전 개요.


프로그램명 : 켄 로치 특별전 Ken Loach Retrospective
기간 : 2006년 11월 10~26일 (매주 월요일 휴관, 22일 상영없음)
시간 : 공지사항(시네마테크 소식 참조)
주최 : 시네마테크 부산, 동숭아트센터
후원 : 주한영국문화원
장소 : 시네마테크 부산
문의 : 051-742-5377, cinema.piff.org
상영작 : 총 14편 <캐시 컴 홈> <케스> <게임키퍼> <외모와 미소> <하층민들> <히든 아젠다> <레이닝 스톤> <레이디버드> <랜드 앤 프리덤> <내 이름은 조> <스위트 식스틴> <다정한 입맞춤> <티켓>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켄 로치 Ken Loach

역사란 향수가 아니다. 역사는 왜 우리가 지금의 모습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왜 우리가 현재의 상황에 있는지를 말해준다. 역사가 향수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것은 권력을 가진 부르주아들에게 적합하다. 그렇게 되면 그들이 계속 권력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우리가 지금 처한 상황을 설명해주며, 따라서 역사를 탐구하여 민중들에게 그들의 역사를 되돌려 주는 것은 감독으로서 갖는 책임 중 하나이다. 역사야말로 미래를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민중의 과거에 대한 생각을 조절할 수 있다면 당신을 그들의 현재를 재조정할 수 있고, 현재를 조정하게 되면 결국 그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게 된다. 그렇기에 과거에 대한 민중의 생각을 조정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 켄 로치


1936년 영국에서 출생한 켄 로치 감독은 옥스포드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BBC 방송의 TV 시리즈 연출자로 활동하며 시리즈 등에 참여했다. 이후 그는 프리시네마의 영향을 받아 다큐멘터리적 기법과 리얼리즘을 반영한 <캐시 컴 홈>, <케스>를 연출, 세상의 왼편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며 영국 사회에 큰 반향과 성공을 거뒀다. 그리고 1967년 <불쌍한 암소>로 영화 감독으로 정식 데뷔했다. 그 후, 켄 로치는 극영화의 제작비를 벌기 위해 TV 다큐멘터리에서 활동해 왔다.

70년대 켄 로치 감독은 <블랙 잭 Black Jack>(1979)과 <게임키퍼 Gamekeeper>(1980)를 연이어 만들면서 극영화 연출로 복귀해 영국 사회로부터 소외되는 노동자의 일상을 현실적으로 담아 내 다시 한번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그 이후의 작품들은 계속 고전을 면치 못해80년대 중반까지 노조투쟁 현장을 돌아다니며 기록영화를 찍었다.  

그러나 90년에 들어서면서 그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북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정치드라마 <히든 아젠다 Hidden Agenda>(1990)로 90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고, 계급적으로 각성하는 건축 노동자들의 애환을 그린 <하층민들 Riff-Raff>은 91년 '올해의 유럽 영화상'을 받아 전성기를 맞았다. 그리고 성찬식 때 입을 딸의 드레스를 마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실직자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레이닝 스톤 Raining Stones>(1993)으로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랜드 앤 프리덤>(1995)으로 칸영화제 비평가상과 유럽영화상을 수상해 켄 로치 감독은 만드는 작품마다 세계 유수 영화제에서 초청 되어 뜨거운 관심과 찬사가 끊이질 않았으며, 2006년 최신작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으로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면서 그의 영화 인생 정점에 이르렀다.


세상의 왼편에서 사랑과 혁명을 노래하는 시네아스트

불평등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인권을 찾아주기 위해 사십 년 동안 일관된 주제와 스타일을 고수하며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의 애환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 온 켄 로치 감독. 그는 영화의 사회적 리얼리즘을 전달하기 위해 그들이 실제로 겪는 삶을 그대로 반영해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한 착각을 하게 만들고, 비전문 배우 기용을 통해 일상의 세세한 면까지 묘사하는 탁월한 연출력으로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 캐릭터에 빠져들게 한다. 그래서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진실되며 마음의 경적을 울리는 힘이 느껴진다. 또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유머를  창출해 내는 위트야 말로 켄 로치 영화가 가진 또 다른 매력이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영화 속에 표현하고, 자신도 그와 같이 행동하기에 앞장선다. 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영화를 만들며 늘 청바지를 즐겨 입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이다. 소외된 이웃들의 어려운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는 그의 노력과 자세는 ‘깨어있는 지식인’,‘행동하는 지성’으로서 그의 면모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켄 로치 식’ 영화에서는 스타일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오직 ‘무엇을 말할 것인가, 무엇을 느끼게 해 줄 것인가가’ 영화의 핵심 요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꾸밈 없이 소박하고 단순하다. 미리 배우들하고 리허설을 하지 않기로 유명하며, 공유할 기본 사항들만 체크 하고 바로 촬영에 임하고 스토리보드 또한 만들지 않아 배우들의 즉흥 적인 연기를 뽑아 낸다. 모든 현장 그림은 켄 로치 감독의 머리 속에만 그려져 있을 뿐이다. 그 대표작으로는 <하층민들>을 꼽을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노동자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유머를 녹여내 노동자들을 위한 상징적인 영화로 평판이 나있다.  

켄 로치 감독은 "민중들이 그들의 두뇌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영화란 시나리오와 영화 속 인물들 사이의 변증법이다. 시나리오 속 인물들이 사실적이라면 영화 속 인물들도 사실적이어야 한다."라는 것이 관객들과 함께 소통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으며, 이것이야 말로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미학이다.



주요 필모그라피

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124min / 35mm
2005년      <티켓 Tickets> 109min / 35mm
2004년      <다정한 입맞춤 Ae fond Kiss> 104min / 35mm
2002년      <스위트 식스틴 Sweet Sixteen> 106min / 35mm
2001년      <네비게이터 Navigator> 96min / 35mm
2000년      <빵과 장미 Bread & Roses> 110min / 35mm
1998년      <내 이름은 조 My Name Is Joe> 105min / 35mm
1998년      「희미한 불꽃 The Flickering Flame」  (TV)
1995년      <랜드 앤 프리덤 Land & Freedom>  109min /35mm
1996년      <칼라 송 Carla’s song> 127min / 35mm
1994년      <레이디버드 Ladybird Ladybird> 101min / 35mm
1993년      <레이닝 스톤 Raining Stones> 90min / 35mm
1990년      <하층민들 Riff - Raff> 95min / 35mm
1990년      <히든 아젠다 Hidden Agenda> 95min / 35mm
1986년      <파더랜드 Fatherland> 111min / 35mm
1984년      「당신은 어느 편인가? Which side are you on? 」 53min / 35mm (TV)
1981년      <외모와 미소 Looks & Smiles> 104min / 16mm
1980년      <게임 키퍼 The Gamekeeper> 84min / 16mm
1979년      <블랙잭 Black Jack> 105min / 35mm
1971년      <가족생활 Family Life> 108min / 35mm
1970년      <흑과 백 Black & White> 105min / 35mm
1969년      <케스 Kes> 113min / 35mm
1967년      <불쌍한 암소 Poor Cow> 101min / 35mm – 첫 영화 데뷔작
1966년      「캐시 컴 홈 Cathy Come Home」 80min / 16mm (TV)
1964년      「Z카 Z-Cars」 중 에피소드 세편 (TV 시리즈)
1964년      「캐서린 Catherine」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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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작 소개


1. 캐시 컴 홈 Cathy Come Home
1966, 80min, 16mm, b&w  /  주연: 캐롤 화이트, 레이 브룩스

TV 드라마로 제작되어 거센 사회적 반응과 뜨거운 화제를 모은 작품. 젊은 여성 캐시는 출산과 남편의 실직으로 가정이 파괴되고 홈리스가 된다.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해 관료적 복지제도가 어떻게 가족을 해체시키는지를 꼬집고 있다.

2. 케스 KES
1969, 113min, 35mm, color  /  주연: 데이빗 브래들리, 프레디 플레쳐
1970년 카를로비바리국제영화제 그랑프리

켄 로치가 만든 성장영화의 걸작. 영국의 한 탄광마을에 사는 15세 소년 빌리는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이 없는 문제아로 항상 학교와 가정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 어느 날 빌리는 매의 새끼를 키우게 되고, 언젠가 초원에서 그 매를 날게 하는 소망을 가진다.

3. 게임키퍼 The Gamekeeper
1980, 84min, 16mm, b&w  /  주연: 리타 메이, 필 아스크함

켄 로치가 가장 기쁘게 만든 작품으로 전해지며, <케스>의 원작을 쓴 배리 하인즈의 작품이다. 철강소에서 해고되어 사냥터지기가 된 조지는 전원생활에 만족한다. 이따금 숲에 찾아오는 불청객을 제외하면 평화롭기만 한 생활은 어느 날 다시 나타난 사람들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4. 외모와 미소 Looks & Smiles
1981, 104min, 16mm, b&w  /  주연: 그래함 그린, 캐롤린 니콜슨

실업문제가 심각한 <케스>의 빌리 세대의 청년기를 그린 작품. 18살인 앨런과 믹은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하지만 쉽지 않다. 앨런은 군대에 자원해 아일랜드로 가고, 믹은 술과 싸움으로 지내다 카렌을 만나 사랑을 키우지만 위기가 찾아온다.

5. 하층민들 Riff-Raff
1990, 95min, 35mm, color  /  주연:  로버트 칼라일, 에머 맥커트, 지미 콜먼
1991년 칸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수상작

1980년대 영국의 하층민들과 노동계급에 포커스를 맞춘 작품. 공사판에서 일하는 스티브는 노동현장의 열악한 처우를 알게 된다. 그러던 중, 미모의 가수지망생 수잔을 만나 동거를 시작하지만, 그녀가 마약중독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6. 히든 아젠다 Hidden Agenda
1990,  106min , 35mm, color  / 주연:  프랜시스 맥도먼드, 브라이언 콕스
1990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국제 정치의 음모와 아일랜드 문제를 스릴러 형식으로 다룬 작품. 미국인 인권운동가 폴은 북 아일랜드의 인권을 조사하던 중 의문의 테이프를 도난 당하고 암살된다. 사건의 파장은 커지고 이를 수사하던 수사관은 정부 고위층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된다.

7. 레이닝 스톤 Raining Stones
1993, 90min, 35mm, color  /  주연: 브루스 존스, 줄리 브라운
1993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작

영국 노동자의 고단한 삶을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 낸 작품. 밥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양을 훔쳐 팔려고 하지만, 일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그의 일곱살난 딸의 성찬식 때 입을 드레스를 사줄 돈이 없어, 그는 돈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

8. 레이디버드 Ladybird Ladybird
1994, 101min, 35mm, color  /  주연: 크리시 록, 블라드미르 베가
1994년 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상, 여우주연상 수상작

실화를 바탕으로 영국의 사회복지정책을 비판한 작품. 아버지가 다른 네 명의 아이를 키우며 힘겹게 사는 매기. 그녀가 외출한 사이 집에 불이 나, 첫째 아이가 다치게 된다. 복지기관은 노동계층인 그녀가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다고 네 아이를 빼앗아 간다.

9. 랜드 앤 프리덤 Land and Freedom  
1995, 109min, 35mm, color  /  주연: 이안 하트, 로자나 파스트로, 이시아 볼레인
1995년 칸영화제 국제비평가상 수상작

파시즘에 대항한 스페인 내전을 객관적으로 그렸다. 실업 수당을 받고 배고픈 시위를 하는 영국에서의 생활에 염증이 난 데이빗은 약혼녀와 헤어진 후, 스페인에서 시민군과 합류해 전쟁에 참가한다. 하지만, 좌파 내부의 이념적 갈등으로 분열이 생기게 된다.

10. 내 이름은 조 My Name Is Joe
1998, 105min, 35mm, color  /  주연:  피터 뮬란, 루이스 굿올
1998년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작

실업과 알코올, 마약문제로 얼룩진 사회를 희망적으로 고민한 작품.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조는 약체 축구팀을 맡아 꾸려 나간다. 그는 마약 중독에 빠진 리암과 시빈의 집에서 보건원 사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11. 스위트 식스틴 Sweet Sixteen
2002, 106min, 35mm, color  /  주연: 마틴 콤스틴, 미셀 콜터
2002년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질풍노도와 같은 사춘기를 그린 켄 로치의 걸작. 리암은 마약중독으로 교도소에 수감 중인 어머니와 새집에서의 행복한 생활을 꿈꾸고 있다. 열심히 돈을 모아 새 아파트를 장만하여 어머니를 만나게 되지만, 그에겐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12. 다정한 입맞춤 Ae fond Kiss  
2004, 104min, 35mm, color  /  주연: 아타 야쿠브, 에바 버시슬, 샤바나 박쉬
2004년 베를린영화제 Eucmenical상 수상작

‘로미오와 줄리엣’의 켄 로치 버전으로 인종과 종교문제를 다뤘다. 클럽에서 일하고 있는 파키스탄 2세 카심의 부모는 사촌자스민과 결혼 시키려 한다. 하지만, 카심은 카톨릭 신자이자 백인인 르와진과 사랑에 빠지고 둘의 관계가 알려지자 큰 파장이 일어나게 된다.

13. 티켓 Tickets  
2005, 109min, 35mm, color  /  주연: 필리포 트로야노, 마틴 콤스턴, 윌리엄 루에인

켄 로치와 두 감독이 만든 옴니버스 작품으로 여러 사회문제를 유쾌하게 엮었다. 로마에서 열리는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기차를 탄 소년 셋은 알바니아 소년을 만나 친절을 베푼다. 하지만, 자신들의 표가 사라진 것을 알고 알바니아 소년을 의심한다.

14.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2006, 124min, 35mm, color  /  주연: 킬리언 머피, 패드레익 딜레이니, 올라 피츠제럴드
2006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1920년대 아일랜드 분쟁의 비극을 다룬 작품. 아일랜드인에 대한 영국 군대의 횡포를 목격한 데미언 형제는 친구들과 함께 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싸운다. 그러나, 영국과 평화조약을 맺게 되고 자치권을 둘러싼 분열로 데미언 형제는 동지에서 원수로 돌아서게 된다.





'시네마테크 부산'은 수영만 요트경기장 내에 위치해 있습니다.

'시네 파크'(자동차야외극장)와는 다른 곳이니 혼동하지 마세요.



대중교통 이용시 '한독경정여고'에서 하차하셔야 합니다
하차 후 하단 옆을 지나 대우마리나APT와 경동APT 사이 도로로 약 600M 가량 걸어 내려오면 요트경기장 중문이 있습니다. 중문으로 입장 후 좌측으로 약 50m정도 내려오면 건물 상단에 'PIFF' 로고가 세겨진 건물입니다.

일반버스 이용시 '한독경정여고'에서 하차 .
5, 31, 31-1, 36, 38, 39, 40, 63, 63-1, 100, 100-1
115, 140, 141, 142, 239, 240, 200, 200-1, 240, 302번외 다수
(해운대역으로 향하는 대중교통은 모두 한정경정여고(舊 한독여실)에서 하차함)
좌석버스(302, 307번) 이용시 '경남마리나APT'에서 하차

지하철 이용시 '2호선 동백역'에서 하차



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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