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詩] 그 해 작은 기억들

그 해 작은 기억들

 

황영선


나의 시댁인 벌교읍 호동리 1구
사십여 가구가 채 안 되는 전형적인 시골이다
이웃집 숟가락이 몇갠지 아무개 집 제삿날이 언젠지까지
정확히 알고 있는 울타리없이 사는 소박한 마을
한달에 네번 오일장이 설 때면 자전거도 드나들 수 없는
산길을 따라 정성껏 가꿔온 밭 작물들을 머리에 이고
혹은 지게에 지고 읍내 장으로 돈 사러가는 마을 사람들
읍내 장엘 갈려면 족히 십 오리는 걸어야 했다
구불 구불 좁은 산 길 언덕을 넘어 비 포장된 신작로 길
뿌연 먼지를 평생토록 마셔 오면서도 불평없이 새벽에 갔다가
어스름이 들어서야 돌아오는 사람들

 

그 때가 아마 70 년대 후반 쯤으로 기억된다
내가 시집 오던 해에 남편이 마을 일을 맡게 되었다
때마침 전국적으로 새마을 운동이 펼쳐질 때다
농촌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고 초가 지붕이 기와나 스레트로 바뀌고
곳곳 마다 도로가 확장 된다고 야단들이었다

 

어느날
마을 사랑방 학성기에서 남편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르신들 기뻐해 주십시오
  드디어 우리 마을에 길을 넓힐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이제 경운기도 다니고 차도 다닐 수 있게 됐습니다"

 

취로 사업
남편이 날마다 군으로 읍 내로 쫓아다닌 보람이 있었나보다
당시 밭 작물 아니면 돈 만져볼 기회가 없는 마을에
돈도 벌고 길도 넓힐 수 있게 됬으니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워낙 작은 마을이라 일 손이 많이 부족 했지만 어린애서부터
칠순 노인 분들까지 발 벗고 나섰다

 

울퉁 불퉁한 좁은 길이 고르게 펴지던 날
마을에 조촐한 잔치가 벌어졌다
남편은 마을에 딱 한대 뿐인 경운기에 어른들 몇분을 태우고
마을 뒷산 바람을 가르며 시멘트를 발라 단단히 굳어진 길 바닥이 행여나 패이지 않을까
조심 조심 그렇게 읍내를 한 바퀴 돌고왔다
그날의 함성이 아직 귀에 쟁쟁하다

 

삼십년하고도 몇년이 흐른 지금
나는 가끔 그 좁은 길이 생각난다
굳이 고개 숙이지 않아도 몸으로 부딫혀 주고 받았던 길 위의 정겨운 인사
궂은 일 좋은 일 표정으로 읽을 수 있었던 길 위의 안부
바쁘지만 느긋할 수밖에 없었던 그 좁은 길 위의 사람들이
환한 웃음과 함께 지금 눈 앞에 오고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