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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3 : 레볼루션>매트릭스단상

싸이월드에 2004년4월 올린 글이다.

ㅎㅎ....트랙백을 아직 잘 몰겠따...퍼날라올수밖에...

 

<매트릭스3 : 레볼루션>매트릭스단상

 

예술가는 자신의 창작물이 세상에 던져졌을 때 보다는 그것들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훨씬 더 많은 성취감을 느낄 것이라는 생각을 <매트릭스>를 보면서 느낀다.

 

<매트릭스>를 처음 접했을 때, “아! 이런 식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감탄을 연발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21세기 SF영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될 만한 여러 가지 형식적 새로움과

스토리의 철학적 깊이는 산업이라는 이름아래 예술이라는 감투 또한 씌울 수 있겠다는

가능성에 놀라고 놀랐던 것이다.

 

<매트릭스>가 신화가 되어가고, 드디어 2편의 영화가 뚜껑을 모두 열었지만

여전히 비판적이든, 찬사의 연발이든 사회적 논란의 핵인 것만은 사실인 듯하다.

국내 철학자들은 <매트릭스>를 철학적 시각으로 풀이하고, 영화잡지에서는

감독, 비평가, 사회학자 등을 이용해 새로운 해석을 풀어내느라

지면이 모자랄 정도처럼 보인다.

 

워쇼스키 형제가 부럽다!
사회적 논란의 핵심이 될만한 작품을 쏟아내는 작가나 예술가는 별로 많지 않고,

세상은 공평하게도 그런 능력을 많은 이에게 부여하지는 않는 듯하다.

 

<매트릭스, 레볼루션>이 <매트릭스>이 주던 감동을 주리라고 기대했던

자신이 순진했다라는 생각을 영화 보는 내내 떠나지 않았다.
단지, 시각적 표현은 <매트릭스>나 <매트릭스, 리로디드> 이상의 발전,

또는 차별화가 있었다.
특히 시온에서 APU군단과 센트럴의 전쟁은 컴퓨터그래픽의 예술적 발전을

한단계 올려놓은 사례라고 본다.
영화관의 커다란 Screen은 컴퓨터그래픽의 실수들이 종종 눈에 띄는데

눈을 똥그랗게 뜨고 찾아보았지만 어느 한군데 어설픈 구석이 없는

환상적인 장면의 연속이었다.
기갑로봇에 타고 전투하는 대장의 모습을 보면서 감정이입의 오버였는지

아니면 너무나 실감나는 시각적 표현력 때문이었는지 나 스스로 전투에 지쳐

떨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저 많은 센트럴을 어떻게 다 죽일란지... 난 이제 죽었다!”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참고로 AB형은 환상과 현실을 가끔 구분하지 못한다는 혈액형별 성격분석은

얼추 맞아 떨어지는 대목이라 할 수 있지^^;;

 

가상과 현실을 뛰어넘는 제3세계를 권터 안더스는 “팬텀(환영)이라고 하고,

실재가 아닌 실재인 파생실재를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 (simulation)”이라고 했다.


“진실, 도덕, 권력, 신, 역사, 상상, 이데올로기, 삶과 죽음등에 의해 형상화되던

실재는 그의 기호, 이미지, 모형인 시뮬라크르에 의해 대체되어 파생실제로 변환한다.

이처럼 실재가 실재 아닌 실재인 파생실재로 전환되는 작업이 시뮬라시옹이고

모든 실재의 인위적인 대체물이 바로 시뮬라크르이다.”


무쟈게 어려워서 책을 그래도 옮겼다. 휴~
이 책 읽다가 머리에 쥐났었다. 물론 반은 이해도 못하고

그냥 넘기다 끝내는 다 읽지도 못했다.ㅎㅎ

 

여튼 각설하고, 현실과 꿈을 가끔 혼동하기도 하고, 환상과 실재를 구분하지 못해

환상 속에서 살기를 희망하는 나약한 인간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실재하는 자신은 누추하나 환상 속의 그대는 자신이 원하는 어느 누구도 될 수

있기 때문 아닐까?
난 가끔 공간을 내가 원하는 곳으로 꾸미는 버릇이 있다.
물론 결국엔 내가 그리는 환상을 현실화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성취감의 짜릿함이란 꿈꾸는 자만이 알 것이다.

 

행복하다고 믿으면 그곳이 유토피아 이듯이, 가상세계를 지배하는 A.I(인공지능컴퓨터)는

인간이 혁명을 일으킬 것도, The one인 인간의 유일한 희망 “Neo”의 출현도 미리 예견하고

인간의 역사를 통제해 나간다.

가상과 현실이 구분되어지지 않는 상태를 씨네21에서 진중권은 미리 예견될것을

알고 있다는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대립이라고 설명하더군.
내가 살아가는 주변환경도 그다지 나의 자유의지로 형성되지 않는 다는 것은

성인이 되고, 사회과학서적을 몇 권 읽고, 구조적 사고를 하면 누구나 알게 되는 사실이다.


"자유의지는 피지배자의 환상에 불과하다"라고...

 

스미스는 어디에도 존재한다.


국가일수도 있고, 선생님의 모습으로 접근하기도 하며, 사회적 관습으로 변용되기도 하며,

학구적이고 부드러우나 바람둥이의 남친얼굴이기도...인심좋은 상사의 얼굴을 하기도 한다.
옘병할…..
대적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세상살기 참 힘들다!

마지막으로, <애니매트릭스>가 주는 신선한 충격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매체가

주는 차별화가 감동의 변화 또한 가능하구나 였다.
인간의 상상력을 컴퓨터그래픽으로 표현하는 데 기술의 한계가 있거나,

매체의 특성이 작용한다.
애니메이션처럼 수동적 방식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건 예술가들이 끊임없이 고민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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