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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싼 파디, <진흙으로 만든 궁전 - 민중과 함께하는 건축> 中

 

 

하느님은 식물과 동물세계로 둘러싸인 자연 속에 인간을 창조하였다. 그런데 우리의 도시에는 아스팔트와 철, 알루미늄, 콘크리트밖에 없다. 우주의 방사선을 고려할 때 우리의 주위를 둘러쌀 수 있는 가장 좋은 물질은 나무이다. 가장 나쁜 것은 이로운 방사선을 차단하는 콘크리트이다. 물은 달에서 오는 우주선(宇宙線)에 영향을 받는데, 우리의 몸은 거의 물로 되어있으므로 역시 영향을 받는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런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는 일이 없다. 현대인은 이런 우주적 의식을 잃어버렸다. 프랑스의 성당은 하늘의 처녀좌가 지구에 반영된 표시를 나타내는 위치에 건립되었다. 어째서인가? 우리는 하나의 체계의 부분이다. 만일 내가 자신을 그 체계 속에 통합시키면 그 체계 속의 모든 요소들이 나를 도울 것이다. 내가 손가락을 베이면 내 몸의 모든 요소들이 그것을 치유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손가락이 몸에서 분리되어 있다면 그것은 치유될 수 없을 것이다.

 

 

고대사회에서는 하늘을 반영하는 사원건축이 있었다. 그래서 태양의 각도가 달라지면 그들은 사원을 철거하고 새로운 치수와 방위에 따라 다시 지었다! 우리는 건물을 지을 때 참고로 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현대과학, 물리학의 발견들인가? 그러나 우리들은 그것조차도 고려에 넣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날 사막에 짓는 '현대'식 가옥들에 커다한 창문을 내어 그 창문 하나마다 한 시간에 수천 킬로칼로리의 열량이 들어오게 한다. 거기에는 많은 냉방장치와 많은 현금이 필요한데 현금이 다 떨어지면 그 사람들은 자신과 그 집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느님은 단지 현대적이 되기 위해서 코를 입 위에 두었다가 목 뒤에 두었다가 하면서 얼굴의 설계를 바꾸지는 않았다. 하느님이 진흙으로 인간을 만들었을 때 그는 천사들에게 아담에게 절을 하라고 하였다. 모두들 절을 하였는데 하느님이 콘크리트로 인간을 만들기를 원했던 사탄만은 절을 하지 않았다!

 

 

 

- <녹색평론선집1>의 230-236쪽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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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랑시에르, <무지한 스승>(궁리) 中 발췌

 

무지한 스승 - 지적 해방에 대한 다섯 가지 교훈
무지한 스승 - 지적 해방에 대한 다섯 가지 교훈
자크 랑시에르
궁리, 2008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한다는 것은 먼저 상대가 혼자 힘으로는 그것을 이해 할 수 없음을 그에게 증명하는 것이다.”

 

 

조제프 자코토를 사로잡은 계시는 다음으로 귀결된다. 설명자가 가진 체계의 논리를 뒤집어야 한다. 이해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바로잡기 위해 설명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반대로 이 무능력이란 설명자의 세계관이 지어내는 허구이다. 설명자가 무능한 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즉 설명자가 무능한 자를 그런 식으로 구성하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설명한다는 것은 먼저 상대가 혼자 힘으로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음을 그에게 증명하는 것이다. 교육자의 행위이기에 앞서, 설명은 교육학이 만든 신화다. 그것은 유식한 정신과 무지한 정신, 성숙한 정신과 미숙한 정신, 유능한 자와 무능한 자, 똑똑한 자와 바보같은 자로 분할되어 잇는 세계의 우화인 것이다. (19p)

 

 

우리는 텍스트로부터 시작하지 문법부터 시작하지 않으며, 완성된 단어부터 시작하지 음절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더 잘 배우기 위해 그렇게 배워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자코토의 방법이 전반적인 방법의 시초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우리는 B, A, BA보다는 칼립소부터 시작할 때 더 빨리 나아갈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얻은 속도는 획득한 역량의 효과, 해방하는 원리의 결과일 뿐이다. “옛날 방식은 문자들부터 시작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 방법은 지적 불평등의 원리에 따라, 더구나 아이들이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원리에 따라 학생들을 지도하기 때문이다. 구식은 무자가 단어보다 더 구별하기 쉽다고 믿는다. 이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결국 구식은 그렇게 믿는다. 구식은 아이 같은 지능이 C, A, CA를 배우기에 알맞을 뿐, 칼립소를 배우려면 어른의 지능, 다시 말해 우등한 지능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62p)

 

 

소크라테스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메논의 노예로 하여금 그 안에 있는 수학적 진리들을 깨닫게 만든다. 거기에는 앎의 길이 있을지언정 결코 해방의 길은 없다. 반대로 소크라테스는 노예가 자기 안에 있는 것을 재발견할 수 있도록 만들려면 그를 계속 붙들고 있어야 한다. 노예의 앎을 증명하는 것은 그의 무능을 증명하는 것과 같다. 노예는 결코 혼자 걸을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스승의 교훈을 예증하기 위한 때가 아니고는 아무도 그에게 걸으라고 주문하지도 않는다. 소크라테스는 자기 안에서 노예로 남아 있도록 운명 지어진 노예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65p)

 

 

지도와 교육의 조화로운 균형은 이중의 바보 만들기의 균형이다. 여기에 정확히 해방이 대립된다. 해방이란 모든 인간이 자기가 가진 지적 주체로서의 본성을 의식하는 것이다. 그것은 데카르트의 정식을 거꾸로 뒵은 평등의 정식이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하곤 했다. 이 대철학자의 훌륭한 생각은 보편적 가르침의 원리 중 하나다. 우리는 그의 생각을 뒤집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인간이다, 고로 나는 생각한다.” 이 뒤집기는 인간주체를 코기토[나는 생각한다]의 평등 안에 포함시킨다. 생각은 사유 실체가 가진 한 속성이 아니다. 그것은 인류의 속성이다. “너 자신을 알라”를 모든 인간 존재의 해방 원리로 변형하기 위해서는 플라톤의 금지에 맞서 『크라틸로스』의 환상적인 어원 중 하나를 가지고 장난을 쳐야 한다. 인간, 즉 anthropos는 자신이 본 것을 검토하는존재, 자신의 행위를 헤아리는 가운데 자신을 아는 존재다. 보편적 가르침의 모든 실천은 다음의 질문으로 요약된다. 너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편적 가르침의 모든 힘은 그 실천이 스승에게서 실현되는 해방, 학생에게서 생겨나는 해방을 의식하는 데 있다. 아버지는 자기 자신을 앎으로써, 다시 말해 자신이 그것의 주체가 되는 자적 행위들을 검토함으로써, 그가 자신의 행위 속에서 사유하는 존재의 힘을 쓰는 방식에 주목함으로써 시작한다면 자기 자식을 해방할 수 있을 것이다.(77p)

 

 

불평등에 대한 믿음은 그런 것이다. 자신을 깎아내리려고 자기보다 우월한 자를 구하는 우월한 정신은 하나도 없다. 자기를 무시하기 위해 자기보다 더 열등한 자를 구하는 열등한 정신은 하나도 없다. 루뱅의 교수가 입는 정복(正服)은 파리에서는 별것도 아니다. 그리고 파리의 장인은 지방의 장인들이 얼마나 자기보다 열등한지 알고 있다. 지방의 장인들은 농부들이 얼마나 그들보다 뒤떨어져 있는지 알고 있다. 이 농부들이 사태를 파악하고, 파리 [대학교수의] 정복이 [그 옷 속에] 몽상가를 감추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날, 상황은 원점을 ㅗ돌아올 것이다. (85p)

 

 

 

우리는 지능을 그것의 효과로만 안다. 그러나 우리는 지능을 고립시킬 수도 측정할 수도 없다. 우리는 지능의 평등이라는 의견에서 착상을 얻은 실험들을 늘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지능이 평등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의 문제는 모든 지능이 평등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문제는 [지능이 평등하다고] 가정함으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이 의견이 가능함을, 다시 말해 그 역(逆)의 어떤 진리도 증명되지 않음을 보이기만 하면 된다. (95p)

 

 

 

차이와 불평등은 인간 센체의 모든 다른 기관들의 짜임새 및 기능에서와 마찬가지로 두뇌에서도 지배적이다. 뇌가 무거운 만큼 지능도 높다. 그와 관련해서 골상학자와 두 개 진찰자는 바삐 움직인다. 그들은 말한다. 이 사람은 천재의 돌기가 있고, 이 다른 사람은 수학자의 돌기를 갖고 있지 않다. 이 돌출부들은 그들이 하는 돌출부 검사에 맡겨두자. 그리고 이 사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자. 우리는 사실 일관성 있는 유물론을 상상할 수 있다. 일관성있는 유물론의 안중에는 두뇌밖에 없으며, 물질적 존재에 적용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두뇌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사실 지적 해방의 명제들은 멜랑콜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특수한 형태의 낡은 정신병에 걸린 괴이한 두뇌들이 꾸는 몽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 우월한 두뇌의 소유자들은 자신들의 우월성을 열등한 두뇌에게, 그것도 정의상 그들을 이해할 수도 없는 두뇌에게 굳이 증명하려고 헛수고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들은 열등한 두뇌를 지배하는 데 만족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서 아무런 장애물과도 마주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지적 우월성은 물리적 우월성과 다름없이 사실로 서 행사될 것이다. 정치 질서에서는 법도, 의회도, 정부도 더는 필요 없을 것이며, 지적 질서에서는 교육도, 설명도, 아카데미도 필요 없을 것이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정부와 법이 있다. 열등한 정신들을 지도하고 설득하려고 애쓰는 우월한 정신들도 있다. 더 이상한 점은, 지능의 불평등을 신봉하는 사도들 정대다수가 생리학자들을 따르지 않을뿐더러 두 개 진찰을 비웃는다는 것이다. 그들에 따르면 자신들이 뽐내는 우월성은 두 개 진찰자들의 도구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우월성은 두 개 진찰자들의 도구로 측정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우월성을 유물론으로 손쉽게 설명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고 다른 사례를 만든다. 그들의 우월성은정신적이다. 그들은 먼저 자신들을 후하게 평가하기 때문에 정신주의자다. 그들은 빗물질적이고 불멸하는 영혼을 믿는다. 그러나 빗물질적인 것이 어떻게 더 많고 더 적을 수 있을까? 그것이 우월한 정신을 가졌다는 자들이 빠지는 모순이다. 그들은 빗물질적인 영혼, 물질과 구분되는 정신을 바란다. 그들은 지능들이 다르기를 바란다. 그러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물질이다. 불평등을 고수하려면, [정신이] 두뇌에 위치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정신적 원리의 단일성을 고수하려면, 동일한 지능이 다른 정황 속에서 다른 물질적 대상들에 적용된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우월한 정신들은 오로지 [두개의 차이에 의한] 물질적인 우월성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열등한 정신들과 평등하게 만들 [단일한] 정신성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빗물질성에 고유한 정신의 고양을 말하면서도 유물론자들이 말하는 차이들을 주장한다. 그들은 두개 진찰에서 말하는 돌기들을 지능의 타고난 선물인 양 꾸민다.

 

하지만 그들도 그것이 약점이라고 느낀다. (...) 그들은 말한다. 모든 인간에게는 빗물질적인 영혼이 있다. 이 영혼 덕분에 가장 보잘것없는 자도 선과 악, 의식과 의무, 신과 심판에 대한 위대한 진리들을 알 수 있다. 그 점에서 우리는 모두 평등하다. 심지어 우리는 보잘것없는 자들이 그 주제에 대해 그들이 우리보다 낫다는 것을 자주 보여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들이 거기에만 만족하게 해야 한다. 그들이 사회의 일반적 이익을 신경 쓰는 임무를 가진 자들의 특권인 이 지적 능력을 조금도 주장하게 해서는 안 된다. (...)

 

하나는 다른 하나보다 더 성공한다. 그것은 하나의 사실이다. 당신들은 말한다. 그가 더 성공한다면 그것은 그가 더 똑똑하기 때문이라고. 여기에서 설명은 모호해진다. 당신은 그가 더 성공했다는 사실의 원인일 수 있는 다른 사실을 내놓았는가? 만일 어느 생리학자가 [두 아이의] 두뇌 중 하나가 다른 하나보다 더 조밀하거나 더 가볍다는 사실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사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생리학자는 정당하게 그러므로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신은 우리에게 다른 사실을 내놓지 않는다. “그는 더 똑똑하다”라고 말하면서 당신은 그저 사실을 이야기하는 관념들을 요약했을 뿐이다. 당신은 그 사실에 하나의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러나 하나의 사실에 대한 이름이 그것의 원인은 아니다. 기껏해야 그것의 은유일 뿐이다.(97-100p)

 

 

 

 

즉흥작은 알다시피 보편적 가르침의 규준이 되는 훈련 중 하나다. 그러나 그것은 먼저 우리 지능의 첫 번째 덕인 시적인 덕을 훈련하는 것이다. 우리는 진리를 느끼면서도 그것을 말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우리는 시인으로서 말하기도 하고, 우리 정신의 모험을 이야기하고, 또 그 모험을 다른 모험가들이 이해한다는 것을 검증하고, 우리의 느낌을 소통하고 그것을 느낌을 갖는 다른 존재들이 공유하는 것을 본다. 즉흥작은 인간 존재가 제 자신을 알게 해주고, 자신의 본성 속에서 이성적 존재, 다시 말해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그와 비슷한 자들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단어를 만들고, 형상을 그리고, 비교를 하는” 동물임을 확인시켜주는 훈련이다. 우리 지능의 덕은 아는 것이기보다 행하는 것이다.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며, 행하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이 행함은 근본적으로 소통 행위다. 그런 까닭에 “말하기는 무엇이건 행하는 능력에 대한 최상의 증거다.” (128-9pp)

 

 

 

 

'천재‘, 다시 말해 해방된예술가의 진짜 겸손이란 이것이다. 그는 우리가 그와 똑같이 알거라고 믿는 다른 시[무언의 시]의 부재로서 그의 시를 우리에게 내놓기 위해 그가 가진 모든 역량과 모든 기술을 쓴다. “우리는 스스로 라신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는 옳다.” 이 믿음은 어떤 광대의 자만과도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도 우리의 시구가 라신의 시구에 값한다거나 곧 값하게 될 것임을 함축하지 않는다. 그것은 먼저 우리가 라신이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을 알아듣는다는 것, 그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다른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것, 그의 표현은 우리의 역번역에 의해서만 완수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먼저 그를 통해서 우리가 그처럼 인간임을 안다. 그리고 우리는 또한 그 덕분에 기호들의 자의성을 통해 우리에게 이것을 알려주는 언어의 역량을 안다. 우리는 라신과 우리의 ’평등‘이 라신이 들인 수고의 열매임을 안다. 라신의 천재성은 그가 지능의 평등이라는 원리에 따라 작업을 했고, 그가 말을 건네는 자들보다 스스로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그가 [길가의] 카페처럼 무심코 지나칠 수 있다고 예상하던 사람들을 위해 작품을 만들었다는 데 있다. 우리에게 남은 일은 이 평등을 입증하는 것, 우리 자신의 작업을 통해 이 역량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는 라신이 쓴 비극과 동등한 비극을 만들어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느끼는 바를 이야기하기 위해 그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그만큼 기술을 탐구해야 하며, 언어의 자의성을 가로지르거나 우리 손으로 만드는 작품에 대한 모든 물질의 저항을 가로지름으로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겪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생이 하는 바보 만드는 교훈과 하나하나 반대되는 예술가의 해방하는 교훈은 이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스스로 이중의 발걸음을 내딛는 한에서 예술가다. 예술가는 직업인이 되는 데 만족하지 않고 모든 일을 표현 수단으로 만들고 싶어한다. 그는 느끼는 데 만족하지 않고 나눌 방도를 찾는다. 설명자가 불평등을 필요로 하듯, 예술가는 평등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예술가는 이성적 사회의 모델을 그린다. 그 사회에서는 이성에 외적인 것--물질, 언어적 기호들--에도 이성적 의지가 관통한다. 어떤 점에서 우리가 그들과 비슷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느끼게끔 하는 의지 말이다. (139p)

 

 

 

<평등한 자들의 공동체>

 

우리는 그렇게 예술가들의 사회가 될 해방된 자들의 사히를 꿈꿀 수 있다. 그런 사회는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 지능의 특성을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 사이의 나눔을 거부할 것이다. 그런 사회에는 행동하는 정신들만 있을 것이다. 행하고, 자신이 한 것에 대해 말하고, 그리하여 자신의 모든 작품을 모두에게 있는 것과 같은 자신의 인간성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변형하는 사람들만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누구도 그의 이웃보다 더 많은 지능을 갖고 태어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이 발현하는 탁월함이란 다만 다른 이가 도구를 다루는 열의만큼 고집스럽게 똑같은 열의를 가지고 단어를 다루어 얻은 열매임을 알 것이다. 그들은 또 어떤 사람의 열등함이란 그로 하여금 좀 더 찾아보도록 강제하지 않았던 상황에서 비롯된 결론임을 알 것이다. 간단히 말해 그들은 이런 저런 사람이 그의 고유한 기술에 부여한 개선이란 모든 이성적 존재에 공통된 힘을 저마다 특수하게 적용한 것일 뿐임을 알 것이다.

(...)

그러므로 빈정대는 자들의 질문을 뒤집어야 한다. 그들은 묻는다. 지능의 평등 같은 것을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런 의견은 사회를 무질서에 빠뜨리지 않고서야 어떻게 정착될 수 있는가? 우리는 거꾸로 지능이 평등 없이 어떻게 가능한지 물어야 한다. 지능은 그것이 아는 것과 그 앎의 대상을 비교하는 일을 맡는 이해 능력이 아니다. 지능은 타인의 검증을 거쳐 자신을 이해시키는 능력이다. 그리고 오로지 평등한 자만이 평등한 자를 이해한다. 이성과 의지가 동의어이듯, 평등과 지능은 동의어이다. 낱낱의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을 정립하는 이동의관계는 사회 일반을 가능케 하는 동의관계이기도 하다. 지능의 평등은 인류를 이어주는 공통의 끈이자 인간 사회가 존재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만일 이간들이 서로를 평등하게 본다면 헌법은 곧 만들어질 것이다.” 사실 우리는 인간이 평등하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는 인간이 어쩌면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의 의견이다. 그리고 우리처럼 그 의견을 믿는 자들과 함께 우리는 그것을 입증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어쩌면 덕분에 인간 사회가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140~143pp)

 

 

 

따라서 사회 세계는 그저 비-이성의 세계가 아니라, 무분별의 세계, 다시 말해 불평등에 대한 정념에 사로잡힌 왜곡된 의지가 활동하는 세계다. 계속해서 개인들은 비교를 통해 서로를 묶으면서 이 무분별, 이 바보 만들기를 재생산한다. 제도는 이 무분별과 바보 만들기에 법령을 부여하고, 설명자들은 두뇌 속에 그것들을 응고시킨다. 이렇게 무분별을 생산하려면 개인들은 자기 정신으로 만든 작품들을 이성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들이는 그만큼의 기술과 지능을 그 일에 써야 한다. 간단히 말해 이 일은 애도 작업이다. 전쟁은 사회 질서의 법칙이다. 그러나 이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치명적인 물리력도, 짐승 같은 본능에 지배되는 어떤 미쳐 날뛰는 무리들도 상상하지 말자. 전쟁은 인간이 만드는 모든 작품과 마찬가지로 먼저 말하는 행위다. 그러나 [전쟁이 하는] 말은 다른 지능과 다른 담론을 불러일으키는 역번역자의 빛을 발하는 관념들의 후광을 거부한다. 전쟁에서 의지는 더 이상 스스로 짐작하거나, 상대로 하여금 자신의 말을 짐작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전쟁 속에서] 의지가 자신의 목적으로 삼는 것은 타인의 침묵, 말대꾸의 부재, 동의라는 물질적 응집 속에서 일어나는 정신의 추락이다.

(158-159pp)

 

 

 

 

사람들이 말했듯이 수사학의 원리는 전쟁이다. 사람들은 수사학에서 이해를 찾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의지를 무화시킬 방법을 찾는다. 수사학은 말하는 존재의 시적인 조건에 반기를 드는 말이다. 그것은 입 다물게 하기 위해 말한다. 너는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할 것이다. 이상이 수사학의 강령이다. 수사학의 실효성은 그것 자체의 중단에 좌우된다. 이성은 항상 말하라고 명령한다. 수사적인 무분별은 침묵의 순간이 오게 만들기 위해 말할 뿐이다. 사람들은 곧잘 [침묵의] 순간이 말을 행위로 만드는 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행위의 순간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 순간은 오히려 행위가 결핍된 순간, 지능이 부재하는 순간, 의지가 굴복하는 순간, 무게의 유일한 법칙에 인간들이 복종하는 순간이다. (163-4pp)

 

 

 

카스트 제도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우월한’ 자는 자신의 이성을 열등한 자의 법에 넘긴다. 철학자들의 의회는 그 의회 고유의 무분별, 만인의 무분별이라는 축을 ㅗ굴러가는 관성적인 물체다. 불평등주의적 사회는 헛되이 그 자체로 이해되기를 바라고, 스스로에게 자연적 토대를 부여하려고 애쓴다. 정확히 말하면 지배에는 어떤 자연적 근거도 없다. 그래서 협약이 명령하고 또 절대적으로 명령하는 것이다. 우월성으로 지배를 설명하는 자들은 오래된 아포리아에 빠진다. 우월한 자는 그가 지배하기를 멈출 때 우월하기를 멈춘다. 아카데미 회원이자 프랑스 귀족원 의원인 레비 공작은 자코토의 체계가 끌어낼 사회적 결론을 우려한다. 만일 지능의 평등을 주장하면, 어떻게 여성들이 그대로 그들의 남편에게 복종할 것이며, 어떻게 피통치자인 시민들이 통치자인 관료들에게 복종하겠는가? 만일 레비 공작이 모든 우월한 정신들처럼 부주의하지 않다면 자신의 체계, 바로 지능의 불평등의 체곅 사회 질서를 전복하는 것임을 알아차릴 법도 했는데. 만일 권위가 지적 우월성에 달려 있다면, 역시 지능의 불평등에 설득당한 피통치자인 시민이 도청에서 근무하는 어느 저능한 사람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날 무슨 일이 벌어지겠는가? 장관과 도지사, 시장과 국장들이 과연 우월한지 검증하기 위해 그들을 시험해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들 중 몇몇 저능한 사람—그가 모자라다는 것이 알려지면 시민들의 불복종을 야기할 수도 있을 터—이 슬그머니 끼어들어가 있지 않다고 어찌 장담하겠는가? (169-170pp)

 

 

 

 

 

 

 

모순을 설명하는 것은 간단하다. 우리는 말했다. 진보적 인간이란 걷는 자, 다시 말해 보고, 실험하고, 자신의 습관을 바꾸고, 자신의 앎을 검증하고 이렇게 끝없이 가는 인간이다. 이것은 진보라는 단어를 문자 그대로 정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진보적 인간은 또한 다른 것이다. 진보의 의견에서 출발해서 생각하는 인간, 이 의견을 사회 질서에 대한 지배적 설명의 서열로 승격시키는 인간이다. (22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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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엔 발리바르, <스피노자, 반 오웰: 대중들의 공포>

개인성과 다중이 분리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스피노자는 또한 전체주의에 대한 이론들의 부조리함을 미리 보여주는데, 이 이론들은 대줄들의 운동들에서 단지 발본적인 역사적 악(mal)의 형상만을 보고, 거기에 인간의 의식[양심]의 영원한 재출발에 대한 믿음과 인권의 지배를 확립하는 인간의 의식[양심]의 능력에 대한 믿음만을 대립시킬 줄 알 뿐이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민주주의자라는 용어에 부여할 수 있는 의미에서 전혀 민주주의자가 아니었지만, 아마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스피노자는 복종에 맞서 사고할수 있는 표지들과 수단들을, 그가 민주주의의 제도들을 기술하는 데에 성공했을 경우 보다 더욱 견고하게 우리 시대에 제공해 주는 것 같다. 스피노자의 대중들의/대중들에 대한 공포는 지성을 마비시키며 오직 개인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데에 기여할 뿐인, 총체적으로 비합리적인 공포가 아니다. 스피노자에게 깃들어 있는, 이해를 위한 노력(sed intelligere: 오히려 인식하라)은 이러한 공포가 저항하고 투쟁하고 정치를 전화하는 데에 사용될수 있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대중들의 공포] (최원/서관모 역, 도서출판b) 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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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이행논쟁(2) - &quot;봉건제의 붕괴와 자본주의 성립&quot; (모리스 돕)

<자본주의 이행논쟁> (김대환 편역, 동녘 출판사) 1부 2장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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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제의 붕괴와 자본주의 성립

- Maurice Dobb, Studies in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 1946. pp. 33~82.



비판의 대상 : 농노제를 부역 혹은 영주의 영지에서 직접 행해지는 의무노동과 동일시하기 / 중세 말기에 상업과 원격지시장을 위한 상품생산이 발전하는 정도에 따라 그러한 부역노동이 일반적으로 소멸하고 화폐적인 계약관계로 전화되는 것을 보이기


정의 : 자본주의의 개념과 마찬가지로 봉건제를 하나의 ‘생산양식’으로서 특징지우려 함. 즉 봉건제는 농노제와 일치. 즉 그것은 영주의 특정 경제적 요구(부역의 형태이든 화폐나 생산물로 지불되는 조(租)의 형태를 취하든)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자에게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적으로 부과되는 의무. 여기서 강제력은 봉건영주의 군사력일 수도 있고 사법적 수속으로 뒷받침되는 관습 또는 법률의 강제력일 수도 있음.


봉건적 농노제는 낮은 기술수준과 관련되어 생산도구는 단순하고 대체로 저렴하며 생산활동은 주로 개인적 성격이었음. 분업은 매우 원시적인 수준이었고 광범위한 시장을 위한 생산이 아니라 가계나 촌락공동체의 직접적인 필요를 위한 생산조건과 관련됨.


이 체제의 발전의 정점은 직영지 경작, 즉 종종 상당한 규모로 강제적인 부역노동에 의한 영지의 경작으로 특징지워짐(이러한 고전적 형태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이 경제체제는 정치적인 분권화의 형태, 봉사를 조건으로 하는 영주의 조건부토지보유 및 (더욱 일반적으로) 예속민과의 관계에서 영주의 사법기능 또는 그에 준하는 기능의 보유와 결부됨(상당히 중앙집권적인 국가에서도 영주제가 발견되기는 하지만).



비판의 대상 : ‘자연경제’(natural economy)와 ‘교환경제’(exchange economy)는 혼합될 수 없는 두 개의 경제질서이고 후자의 출현은 전자를 분해시키는 데 있어 충분하다고 하는 설명


비판 : 14세기경 영국 특히 런던에 가장 가까운 주들(‘영주의 권력에 대해 가장 파괴적인 분해력이었던 화폐가 흐르는 동맥’)의 경우 부역이 화폐지불로 전화한 가장 좋은 증거가 발견됨. 또한 보다 진보적인 남동부지방에서 부역노동이 가장 오랫동안 잔존. / 발틱국가들이나 폴란드, 보헤미아에서 곡물수출의 기회증대는 농민층에 대한 노예적 의무의 폐지는커녕 오히려 이를 증가 부활시켰고 대규모 영지에서 농노노동을 기반으로 한 시장을 위한 경작에로의 길을 촉진함. / 영국에서의 금납화(金納化)가 시장생산의 성장과 결부되어 비롯되었다는 증거가 없음. - 화폐경제의 성장 그 자체는 봉건제 쇠퇴의 원인이었다는 증거만큼이나 농노제의 강화를 낳았다는 증거도 많음(특히 동유럽의 역사에서).

==> 화폐경제 성장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야기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


상업의 발달이, 시장을 목표로 한 직영지 경작에 강제노동을 공급하기 위해 농노제를 강화했다고 믿어짐.


봉건제의 쇠퇴에 대한 이제까지의 논의에 있어서는 시장을 위한 상품생산은 필연적으로 임노동에 기반한 생산을 의미한다는 가정이 흔히 부지불식간에 전제되곤 했음. 전통적인 해석에서의 명백한 오류는 생산양식으로서 봉건제가 갖는 내부관계의 분석과 이것이 이 체제의 분해나 잔존에 미친 역할과 분석을 놓친 점.(봉건제의 상황에서 공동체 간 생산물 교환이 아니라 그 내부의 생산양식에 주목해야 한다는 뜻) 실제로 봉건제의 쇠퇴는 시장이라는 외부충격과 이 제도의 내부관계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다루어져야 하지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해질 수 있는 것은 후자임. 봉건제의 쇠퇴에 주된 원인이 되는 것은 지배계급의 증대하는 수입욕구와 더불은 생산체계로서의 봉건제가 갖는 비효율성이었음. - 여기서 소득증대의 유일한 원천은 예속계급이 행하는 잉여노동시간. 이에 비해 당시의 노동생산성은 그에 부합하지 못하고 생산자를 노동력 고갈 상태나 사실상의 소멸로 몰아넣음.


이민운동 : 증대된 억압은 장원을 떠나는 비합법적인 이민운동 즉 생산자의 대량이탈을 낳음. 그 결과 14, 5세기에 이르러 봉건경제는 일련의 위기 속에 휘말려 들어감 - 주기적인 농민폭동의 발생. 1300년 이후 인구는 서유럽 대부분에 걸쳐서 1000년 이래 증가해왔던 것과는 달리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 인구감소의 직접적 결과는 수입의 감퇴를 가져와 봉건사회를 위협하게 되었고 14세기에는 소위 봉건경제의 위기가 촉진됨. * 돕은 인구감소에는 전쟁과 흑사병이 아니라 경제적인 근본이유(경제적 위기 : ‘노동시장에서의 균형의 변화’(립슨)?)가 있었음이 확실하다고 주장.



봉건적 위기에 대한 귀족들의 대응책 : 결코 획일적이지 않음 - 이러한 대응책의 차이에서 이후 수세기에 걸쳐 유럽 각지에서는 서로 다른 경제사가 전개됨 → 백년전쟁 후의 프랑스 특히 남부프랑스의 경우 영주의 양보와 농노의 부담 경감 / 동부유럽의 경우 ‘봉건반동’, 즉 영주들은 봉건적 부담을 오히려 강화시키고 이미 완화되었던 노예적 강제를 다시 가중시킴 / 대륙의 여러 지방에서 일어난 사실상의 농노제 부활.


그러나 정치적 요인들은 어느 정도 원인이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유럽 각지에서 일어난 사태진행의 차이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음. 모든 징후로 미루어볼 때 최종결과를 결정짓는 데 있어서 경제적 요인이 가장 두드러진 영향을 미쳤다고 상정할 수 있음(그러나 경제적 요인들의 정확한 성격이나 중요성을 파악하기에는 신뢰할만한 자료가 불충분함).


여기서는 당시의 지배적인 경작형태를 살펴봄 : 직영지경작의 새로운 형태(고용노동에 의한 경작 - 13세기 이후?)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종래의 것과 다름. 즉 부역노동제도에서 직영지에 지출되는 노동시간은 모두가 순전히 영주의 잉여였던 반면, 여기서 노동력은 먼저 임금으로 구매됨. 새로운 형태의 경작이 유리하게 되기 위해서는 고용노동이 강제적인 농노노동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생산성이 반드시 어느 ‘최저수준’에는 도달해야 함. 요컨대 부역의 금납화와 고용노동에 의한 직영지경작에의 이행에는 다음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 - 여분의 노동 / 이 고용노동의 생산력수준이 임금보다 상당한 정도로 높을 것. (요컨대) 고용노동에로의 이행은 노동의 순생산이 높은 경작형태에서 보다 발생하기 쉽고 노동력생산이 낮은 생산형태가 지배적이거나 생산방법이 매우 저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경제사의 시기에는 농노노동이 잔존하기 쉬움. 봉건영주가 취할 수 있었던 또 다른 하나의 방책(고용노동에 의해 영지를 경작하는 것이 아니라 직영지를 소작인에게 대여하는 방책)을 고려하는 경우도 위와 같음.


노동력의 착취가능성 : 노동(또는 소작인)에 대한 영주의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가운데 결정적인 것은 영주의 수요를 만족시켜 줄만한 노동력의 존재유무 뿐 아니라 노동력의 착취가능성이기도 함. 착취가능성이란 보잘 것 없는 보수로도 큰 부담을 짊어지려고 하고 약간의 토지에 대한 댓가로서 무거운 지대의 지불도 불사하려는 정도를 말함. 이 착취가능성의 정도는 농민의 인구수에 비한 ‘농민토지’의 크기에, 농민이 소유하고 있는 가축이나 경작도구의 양에, 토지의 비옥도나 촌락의 농업기술 등에 반비례하는 경향이 있음. 또한 농노노동의 공급에 관한 상태는 영지의 규모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고려해야 함(이를 통해 봉건귀족의 서로 다른 계층 사이의 정책대립이나 얼핏보아 모순되게 보이는 많은 것이 설명될 수 있음).


영국에서 14, 5세기와 같은 어려운 시대에 있어서 일련의 사태는 정기소작의 확대와 고용노동의 증대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것 같음. 일련의 사태란 농민층 내부에서의 경제적 분화의 심화이며 이 무렵 농촌 내부에서의 일부 비교적 부유한 농민층의 대두였음.


비판 : 부역의 쇠퇴와 봉건적 농노제의 해체를 실질적으로 동일시하는 일반적인 견해는 명백히 잘못된 것임. (15, 6세기에) 봉건적 수입욕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자 부역에 의한 직영지경작에로 바뀌었던 움직임이 역전되었음. 그러나 비록 공납(현물지대나 화폐지대)이 다시 한번 부역을 대체했다고 하더라도 생산자가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그의 생계가 사실상 영주의 의지에 달려있는 한 그 강제적 성격을 반드시 상실하는 것은 아님. 또한 금납화가 항상 봉건적 부담을 실질적으로 경감시킨 것도 아님(12세기에 영주의 주도로 영국에서 이뤄진 금납화경향은 명백히 (계산되어질 수 있는) 부역의 시장가치보다 상당히 높은 가격이었음).


(그런데) 그 범위가 크든 비교적 작든 부역에서 화폐지대로 바뀌는 초기의 전화는 15세기에 극히 강력하게 작용했던 한 경향의 시작에 불과했음. 15세기 말경 봉건질서는 분해되고 여러 가지 점에서 약화되었음. 그러나 봉건제의 종말을 위해서는 영국의 시민전쟁의 세기까지 기다리지 않으면 안되었음.


러시아역사는 지대가 비록 노동지대에서 화폐지대로 이행된다 하더라도 농노제의 본질적 특성은 지속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우리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함 - 11~12세기 대영주의 영지(boyars)를 경작하는 농노 지위의 농민 / 공납관계 / 14~16세기 대영주의 영지에서 농민층의 부역을 강요하는 경향이 생김(16세기 말에는 부역노동이 급속히 화폐지대를 압도하여 증가).



시장의 발전과 봉건제의 붕괴 : 시장의 발전은 봉건제구조의 해체에 영향을 미치고 봉건제를 약화시키는 힘이 성장하는 토양을 준비. 그러한 한 경제적 정치적 독립을 소유한 자치체로서의 도시의 발흥과 상당히 일치함. 도시공동체가 상업과 계약거래의 독립적인 중심지였던 만큼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봉건제와는 이질적인 존재로서 그것의 성장은 봉건질서의 해체를 돕는 것이었음. 반면에 이 단계의 도시를 자본주의의 소우주라고 여기는 것은 타당치 못함. 도시민은 농노가 부담하는 과중한 부역에서는 벗어났지만 영주에 대해 여전히 특정의무를 지고 있는 장원의 자유소작인과 단지 정도에 있어서만 차이가 날 뿐이었음.


도시공동체가 도시의 수공업에서 가졌던 생산양식은 단순상품생산의 형태를 나타냄. 그것은 즉 비계급적이고 농민적 형태이며 그곳에서 사용된 도구는 수공업자의 소유에 속했었음. 이 초기시대(즉 15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영국에서는 이러한 생산양식을 자본제적이라 할만한 점은 없었음.


도시공동체의 기원에 대하여 : 9세기 이후 생겨난 새로운 그룹의 인구나 새로운 종류의 집단을 다룸(연속성의 부재) / 순수하게 농촌에 기원을 두었다는 주장(도시는 봉건사회의 태내에서 생장했으며 따라서 도시의 주민은 영주에 대하여 어떤 종류의 예속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음 / 대상(隊商)의 정착에서 도시의 기원을 구하는 견해 / 도시의 발흥은 봉건영주에 의해 주어진 소베떼(Sauvete) 즉 봉건적 권위에 의해 주어지는 면책특권과 관련시키는 설명(이 견해에 따르면 도시는 자생적으로 성장했다고 하기보다는 봉건영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도적으로 만든 것임). 현재로서 우리들은 중세도시의 발흥에 관해서는 절충적인 설명, 즉 경우에 따라서 여러 가지 영향력에 상이한 비중을 두는 설명에 만족할 수 밖에 없을 것임.


(하지만) 감히 시론적인 판단을 내린다면 대부분의 도시는 봉건사회의 완전한 이질체라기 보다는 오히려 봉건사회의 주도에 의해 봉건사회의 한 요소로서 발생했던 것 같음.


봉건시대에는 상업이 전혀 없었고 따라서 화폐유통도 이질적인 것이었다는 그릇된 생각을 떨쳐버려야 함. 당시에는 도시를 통제하거나 건설하는 것이 봉건적 수입증대를 위한 중요한 원천으로 여겨졌음은 당연했음.


도시의 독립을 위한 투쟁의 주도권은 처음에는 봉건적 지배에 가장 적게 예속된 사람들에게 있었던 것 같음. 그 이유는 그들이 외부에서 들어온 상인이었거나 또는 양도장이나 특허장을 가지고 처음부터 특권적인 지위를 보장받았기 때문이었음. 이들은 봉건제의 체내에서 불편한 상태에 놓여있었는데 그 이유는 도시 내에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 시민의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생계는 기본적으로 상업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임. 그리하여 이들은 매우 일찍부터 자기들 사이에 조합이나 길드 소위 ‘상인길드’를 만들고, 길드나 사실상 길드의 지배하에 있는 도시자치정부를 위해 투쟁하고 지방의 수공업이나 시장을 통제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꾀했던 것임. 영국에서 13세기 및 14세기에 확대된 도시의 자치권투쟁은 폭력의 형태를 띠는 경우가 많았음. 봉건적 지배층 스스로가 상업에 종사하고 보다 저렴한 식량의 원천을 확보하기 위하여 국지적 시장을 육성한다는 사실이야말로 분명히 시민들의 자치권에의 요구가 그렇게 격렬하게 저항을 받았던 주된 이유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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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이행논쟁(1) - 돕과 스위지 주장 정리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견해: Dobb과 Sweezy의 논쟁


 

(1) Dobb-봉건제 내부 계급간의 세력구조에서 붕괴 요인을 찾음.


1) 봉건제의 정의

봉건제는 기본적으로 농노제. 봉건제의 정점은 강제적인 부역을 통한 직영지의 경영.


2) 봉건제의 붕괴요인

시장, 교환의 확대 자체가 봉건제를 해체한 결정적인 요인을 아니다. 봉건제의 해체요인은 제도내부에서 찾아야 함. 즉 “지배계급의 증대하는 수입욕구와 더불어 나타난 생산체제로서 봉건제가 갖는 비효율성”에서 붕괴의 원인을 찾아야 함. 영주들의 수가 증가하고 화폐취득의 욕구가 커지면서 생산자에 대한 과도한 압력(노동력의 과잉착취)이 나타나고 이는 농노의 도망, 생활수준 감소에 따른 인구의 감소 등을 가져와 노동력이 고갈, 소멸됨.

인구모형에서와는 달리 인구가 외생적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인구의 변화도 계급간의 관계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고.


3) 자본주의의 기원-상인들의 자본 축적은 수탈이며 상인부르주아는 자본주의 발전의 방해자.

 중세초기의 상인들에 의한 자본의 축적은 “생산된 것”이 아니라 다른 계급의 잉여를 수탈한 것. 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듯 교환이라고 하는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생산된 것이 아니고 독점을 통하여 농촌에서 생산된 잉여를 수탈. 독점은 불완전한 시장으로부터 발생. (수요와 공급의 지역적 괴리와 정보의 부재 하에서 높은 가격의 차이를 이용할 수 있음) 독점적인 지위는 정치적인 특권과 상인조합의 활동에 의해 뒤받침 됨.

상인 부르주아들은 배타적인 상인단체를 만들었고 이들 단체들은 시정을 장악. 정치권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특권을 강화하고 수공업자들을 종속시킴. 수공업자들이 외래상인과 직접 계약을 맺는 것이 금지되었고 그 지역의 부유한 특권상인들과 계약을 맺어야 했음.

상인 부르주아는 결코 생산양식으로서의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촉진했다기보다는 오히려 이를 방해했음. 상인 부르주아는 봉건세력과 신속히 타협했음. 진정으로 혁명적인 길은 생산자 자신이 자본을 축적하여 상업적인 기능을 담당하게 되고 수공업 길드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본제적인 기반 위에 생산을 조직하는 과정. (임노동 생산)

앞서 본 상인자본에 의한 생산의 종속이 또 다른 길인데 이는 결코 자본주의 태동의 원동력이 아니었음. 상인 부르주아가 득세하던 14세기-16세기: 이는 기본적으로 봉건제의 연속으로 파악해야 함.


(2) Sweezy의 견해


1) 봉건제의 정의-자연경제

봉건제를 농노제로 파악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함. 농노제는 명확히 봉건적이지 않은 체제하에서도 존재할 수 있음. 봉건사회는 오히려 “사용을 위한 생산경제,” 다른 말로 자연경제“로 파악될 수 있음. 즉 화폐거래 및 금전계산의 부재를 함축하고 있음. 봉건체제에도 인구의 증가나 봉건영주와의 전쟁 등 불안정 요인은 존재함. 그러나 이는 농민들의 궁핍화를 가져올 망정 봉건사회를 변형시킬 수는 없음.


2) 봉건제의 붕괴요인-자연경제를 붕괴시키는 것.- 도시의 성장과 상품화폐경제의 진전에서

봉건제의 외부요인 - 도시의 성장과 상품화폐경제의 진전에서 찾아야 한다고.

a) Dobb의 논의에 있어서 왜 영주의 수입필요가 증대했는가? 낭비 증가의 이유는 교역의 급속한 확대.

b) 농노의 도망: 도망갈 곳이 없이 도주할 수 있었을까? 도시의 성장이 이를 뒤받침 했을 것.

교역의 증가와 이에 따른 시장을 위한 생산의 증가는 봉건체제에 다음과 같은 영향을 미쳤음:

a). 합리적 분업과 특화체제의 확립은 장원적 생산조직의 비효율성을 부각.

b) 상인들뿐만 아니라 교환경제에 접촉하게 되는 사람들은 사업적인 태도를 갖게 됨

c) 봉건계급의 기호가 증대 - 낭비가 심해짐.

d) 도시의 발흥은 더 나은 삶에로의 전망을 열어줌.

Dobb이 주장하듯 상업이 발전하던 동유럽에서 재판농노제가 나타나기도 했음 그러나 다음과 같은 반론이 제기될 수 있음:

a) 봉건반동에서 볼 수 있는 반례에도 불구하고 저변에 깔린 장기적인 경향을 그래도 농노제의 붕괴. 농촌에 남아있던 농민들의 생활조건도 장기적으로 개선되는 추세.

b) 동부유럽에서 재판농노제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도시화가 덜 진전되어 있었기 때문임. 즉 농민들의 선택가능성이 없었기 때문. 서유럽의 봉건제는 (도시라고 하는 농민들의 선택권 때문에) 지배계급이 사회의 노동력을 통제하여 그로부터 과잉착취를 못했기 때문.


3) 자본주의의 기원

Marx의 “진정으로 혁명적인 길”을 다르게 해석. 즉 이는 자본가의 사회적 배경(생산자 출신 vs. 상인출신)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님. 오히려 임노동에 기반한 자본제적 생산과 선대적인 생산이 대조되고 있음. 선대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자본제로 이동하는 경우가 혁명적인 길이라고.

14-16세기: 이는 봉건제의 연장으로 파악할 수는 없음. 이는 봉건제도 자본제도 아닌 전자본주의적 상품생산의 단계. 물론 그 스스로 존립할 수 있는 체제는 아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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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타니 고진, <세계공화국으로> 통째로 요약

제1부. 교환양식



1. ‘생산’에서 ‘교환’으로

․ 사적유물론의 오류 : 국가가 상부구조라는 견해는 근대자본주의 국가 이후에만 성립. 원시사회에는 애당초 국가가 없었고, ‘동양적 국가’에서도 국가장치(군, 관료, 경찰기구 등)는 경제적인 의미에서의 지배계급 위에 있는 것이 아님. 애덤 스미스가 범했던 근대사회에서의 양태를 원시단계에 투영하는 오류는 사적유물론에서도 반복됨.

․ 생산양식이라는 관념은 생산이 일차적이고 교환, 분배가 이차적이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이어짐. 보통 교환은 상품교환과 같은 이미지로 생각되나, 그것은 교환일반 속에서 오히려 작은 부분. 미개사회로부터 공동체 내적으로는 증여와 답례로 구성되는 호수적 교환이, 공동체 사이에서는 폭력적 약탈관계가 형성. 상품교환은 사실상 상품과 화폐의 교환. 교환이 아닌 것이 교환인 것처럼 표상되는 관계

B 재분배

(약탈과 재분배)

A 호수

(증여와 답례)

C 상품교환

(화폐와 상품)

D ?

 


2. ‘교환’의 현재적 의미

․ 마르크스는 사실 ‘생산’이 아니라 ‘교환’, 또는 그보다 넓은 의미로 ‘교통’이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 여기서 교통은 가족이나 부족과 같은 공동체, 공동체 사이의 교역 또는 전쟁까지 포함하는 것. ⇒ 모제스 헤스의 영향. 『독일 이데올로기』, 『경제학․철학초고』등에 나타남.

․ 마르크스의 ‘생산’개념의 초점 : 자연과의 물질대사. 생산과정에서의 폐기물에 대한 사고. ⇒ 합리적 농업과 자본주의의 양립 불가능성.


3. 다섯 가지 사회구성체

․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경제학 연구에 전념하면서 ‘교통’ 개념 사용을 중단함. 그러나 이 때문에 마르크스를 비판하기 보다는 『자본론』에서의 작업을 국가와 네이션에도 적용해야 함. 근대의 자본제경제, 국가, 네이션은 기초적인 교환양식의 변형과 접합에 의해 역사적으로 형성.

․ 교환양식의 관점에서 파악한 사회구성체

 └→ 씨족적 사회구성체 : 호수(互酬)가 지배적. 공동체 사이에선 약탈-재분배가 존재.

 └→ 아시아적 사회구성체 : 비트포겔이 말한 수력사회. 중요한 것은 수력사회가 발전시킨 문명, 즉 국가기구의 출현.

 └→ 고전고대적 사회구성체 : 아시아적 사회구성체인 제국의 ‘아주변’(submargin)으로 성립된 도시국가. 제국의 문명을 향수하면서 동시에 부족적인 호수성을 유지. (그리스의 폴리스와 노예제)

 └→  봉건적 사회구성체 : 서유럽, 일본 등 제국의 아주변. 서유럽에서는 집권적 국가를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교황과 황제의 항쟁, 영토간의 항쟁 속에서 도시와 상업이 자립.

 └→  자본주의적 사회구성체 : 상품교환의 우위. 약탈-재분배 관계는 봉건적 특권을 빼앗긴 귀족들이 국가 관료로서 토지세를 배분받으면서 변형된 채 유지. 세금을 통한 복지국가의 유지. 호수적 교환은 ‘네이션’이라는 상상의 공동체를 통해 유지.

 └→  어소시에이션 : 상품교환이라는 위상에서 생겨난 자유로운 개인 위에서 호수적 교환을 회복하려고 하는 새로운 운동. 이는 역사적으로는 보편종교가 설명하는 ‘윤리’로서 나타남.

․ ‘세계제국’과 ‘세계경제’ : 자본제 이전의 세계는 ‘세계제국’, 이후의 세계는 ‘세계경제’(월러스틴)



제2부. 세계제국



1장. 공동체와 국가


1. 미개사회와 전쟁 (씨족적 사회구성체)

․ 레비-스트로스가 말한 미개사회의 원리 : 근친상간 금지는 여성의 호수적 교환관계를 나타낸다. 즉 사회를혈연적인 좁은 범위로 축소시키지 않기 위해서, 말하자면 ‘문화’를 ‘자연’으로 환원시키지 않기 위해서 필요함. 그러나 이 미개사회의 공동체는 기본적으로 폐쇄적이고,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시스템.

․ 피에르 클라스트르는 미개사회에서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를 발견하지만, 그것은 바깥 국가로부터의 독립과 수렵․채집이 가능한 자연조건이 갖춰져야 가능한 것. 아메리카 대륙의 미개사회는 잉카, 마야 아스텍 등 ‘아시아적 국가’의 주변부에 있었기 때문에 생존이 가능했음.

․ 생산력 발전이 국가형성(×), 국가에 의한 집단적 농업과 장시간 노동 강제가 생산력 발전 유발(○)


2. 국가의 탄생 (아시아적 사회구성체)

․ 국가는 공동체 속에서 발생하지 않으며, 그것은 본래 하나의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들을 계속 지배하는 형태. 지배자와 수탈당하는 자의 관계가 지속적이기 위해서는 약탈-재분배가 마치 호수적 교환인 것처럼 표상되어야 함.

․ 칼 슈미트 “정치적인 것의 특유한 영역은 ‘친구와 적’의 구별에 있다” ⇒ 국가는 다른 나라를 상정하지 않고서는 생각할 수 없다. ⇒ 국가는 그 내부에서 폐지할 수 없다.


3. 아시아 전제국가와 그리스․로마 (고전고대적 사회구성체)

․ 동양적 전제국가의 출현 : 아시아적 국가에서는 지배자의 공동체는 사라지고 피지배자의 공동체만 남음. 피지배자의 공동체에 국가가 간섭하는 일은 거의 없음. 이 관계의 최상위에 제국이 존재. 이들 제국은 보호와 복종이라는 ‘교환’에 의해 많은 주변 국가를 지배 하에 놓고 그 범위를 넓혀 ‘제국’이 됨. 막스 베버가 말한 관료제의 원형이 출현했다고 할 수 있음. 그러나 공동체의 호수원리는 그대로 남아있음.

․ 그리스 민주주의 : 부족적 공동체의 평등주의와 호수원리가 관철됨. 이집트나 페니키아 문명에 있었던 문명의 많은 것을 계승하면서도 집권적 국가체제만은 받아들이지 않음. ⇒ 제비뽑기에 기초한 아테네식 민주주의 출현.


4. 봉건제와 자유도시 (봉건적 사회구성체)

․ 봉건제는 로마제국의 아주변 즉 게르만의 부족사회에서 성립된 것. 로마제국의 봉건제에서 주군과 가신의 쌍무적 계약관계는 호수원리. 이것은 왕이나 제후들의 전쟁에 의한 분산화, 다중심화가 통일적인 국가형성을 방해했던 것. 봉건제와 병행한 농노제는 아시아적 공납제와는 다르게 농노가 토지를 소유하고 강한 농업공동체 존재.

․ 제국의 집권성이 약하므로 황제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교황 측에 붙어 다양한 특권을 얻는 로마교회 등장. 피렌체의 코무네 선언(1115년), 쾰른 대주교의 ‘자유를 위한 성서공동체 결성’(1112년) ⇒ 1871년 파리코뮌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운동의 모체가 됨.


5. 아주변의 행방 ( “ )

․ 부르주아사회를 육성한 것은 봉건제. 서양의 일반적 특징은 중핵, 주변, 아주변이라는 위치와의 관계에 기초한 것. 일본 봉건제도 중국 제구의 아주변에 위치함으로써 가능. 조선이 중국의 제도에 완전히 편입되어 동양적 국가가 구축된 것과 상반 됨.

․ 일본 봉건제는 쌀농사에 수반되는 공동체적 소유와 구속이 있었지만, 농민은 실질적으로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음. 16세기에는 사카이나 교토 같은 자치도시 존재. 조닌(부르주아)의 무화적인 활동도 계속 됨. 일본의 사회구성체는 봉건적이지만 아시아적이지 않음.


※ 정리 : ① 중앙집권적 제국 성립 (동,서 아시아)  ② 제국의 바깥(아주변)에서 중핵 문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집권적 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고전고대적 도시국가와 봉건적 사회구성체 등장 ⇒ 이후 그곳에 중앙집권적 국가가 형성되나, 이는 아시아적 국가가 이미 이룬 수준을 따라잡은 것에 불과.

 ⇒⇒ 국가 일반에 대한 고찰에 있어서 동양적 전제국가에 주목해야 함.



2장. 화폐와 시장


1. 상품교환이란 무엇인가?

․ 상품교환의 성립 조건 : ①공동체 바깥에 존재. 공동체 내부의 교환은 호수적 교환이 되지 상품교환이 되지 않음. “상품교환은 공동체가 끝나는 곳에서, 공동체가 다른 공동체 또는 그 성원과 접촉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마르크스)  ②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에는 생산물 교환보다 약탈이 선행하므로, 상품교환이 성립하려면 약탈이 배제된 자유로운 합의에 기초해야 함. 이는 역설적으로 폭력을 독점함으로써 다른 폭력을 금지하는 국가와 법이 선행되어야 가능.


2. 미개사회와 원시사회

․ 폴라니는 트로브리안드 제도의 쿨라 교역에서 유통되는 선물인 바이구아(vaygue)라 불리는 재화나 보물을 화폐라고 지적했지만, 이와 같은 교환은 간(間)공동체적인 교역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공동체 내부의 호수적 교환.

․ 원시단계는 미개사회가 아님. 미개사회는 바깥의 국가가 간섭하지 않으면 그 사회시스템을 영속시킬 것. 미개사회는 교환양식 A를 순수하게 고찰할 수 있음. 반면 원시사회는 교환양식 A,B,C가 동시에 존재. 원시단계에서도 자신의 환경에서 생산할 수 없는 것을 반드시 다른 공동체에서 얻을 필요가 있었는데, 이 과정에는 호수원리가 작동하지 않음.

․ 국가와 상품교환은 상보적 : 상호계약을 강제하는 힘을 국가만이 가짐. 다시 말하면 상품교환은 교환양식 B를 전제하는 것(상업에 대한 과세).


3. 화폐의 기원

․ 고전파의 화폐론 : 화폐는 각 상품에 투여된 노동가치를 표시하는 것. 리카도학파 사회주의자는 화폐를 폐지하고 노동시간을 표시하는 노동증표의 사용을 주장.

․ 마르크스의 가치형태론 : 애덤 스미스의 생각(상품은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가진다)과는 다르게 상품은 다른 상품의 사용가치로 표현된다. 상품a는 상품b의 사용가치에 의해 표시 됨. 상품b는 사실상 화폐(등가물). 여기서 실제로 화폐가 등장하기 위해서는 상품b만이 등가형태(일반적 가치형태)여야 함. 한 상품만이 다른 모든 상품과 교환가능하게 되었을 때 화폐가 등장.

 └→ 생각의 전도 : 금이나 은이 그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화폐인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특별하기 때문에 화폐라고 생각. 홉스의 사회계약에서와 같이 화폐는 상품들의 사회계약인 것. 상품교환이 만드는 세계는 인간의 동의에 기초하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의지를 넘어선 객관성을 가짐.


4. 상인자본과 대금업

․ 화폐에 의한 교환은 자유롭고 대등한 관계를 초래하지만, 동시에 등가형태와 상대적 가치형태 즉 화폐와 상품이라는 비대칭적인 관계를 수반. 화폐를 가진자가 더 우월. 자본가는 이 화폐를 항상 새로운 유통에 맡김으로서 가치의 끝없는 증식을 추구.

․ 화폐에는 상품과 교환할 권리가 있지만 상품에는 화폐와 교환할 권리가 없음. 마르크스는 상품이 화폐와 교환될지 어떨지를 ‘목숨을 건 도약’이라 함. (‘에서 ’의 과정) 이런 위험을 당분간 피하는 것이 ‘신용’. 신용제도는 자본운동의 회전을 가속화/영속화 함. 이 과정에서 ‘빌린 자본’, 즉 상인자본과 대금자본을 고려해야 함.


5. 국가 ․ 화폐 ․ 교역

․ 화폐는 상품들간의 사회계약이다 : ① 화폐는 국가가 유통시킬 수 없음. 국제적으로 통용도지 않는 화폐라면 국내에서도 통용되지 않음. 소련연방과 같이 강한 국가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말기에는 국내에서 루블이 통용되지 못함.   ② 세계화폐가 상호신용에 의해 성립한다는 견해는 화폐가 금일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것. 미국의 달러-금 태환 정지 이후에도 달러가 세계화폐로 존속 중. 그러나 금이 태환되어 유출되어버렸기 때문에 태환을 정지시킨 것인데, 만약 금준비가 불필요하다면 금의 유출을 정지시킬 필요는 없음. 그러므로 여전히 금=세계화폐.

․ 상인자본은 국가간 가치체계 차이에서 이윤을 얻음. 그리스인들은 그런 상인을 경멸함. 소크라테스, 플라톤은 그런 상인 소피스트들을 비난.

․ 도시와 상업의 발전은 공동체나 국가를 넘어서 통용되는 화폐의 힘. 이로 인해 봉건제는 붕괴하고 그 결과 절대주의 왕권국가 성립. ⇒ 부르주아와의 연대를 통해 봉건적 특권 폐지. ‘경제’의 자율성 인정.



3장. 보편종교


1. 보편종교와 예언자

․ 네 번째 교환양식의 특징 : 정치적 국가조직을 거부. 또한 시장경제(C)위에서 호수적인 공동체(A)를 회복하려는 것. 이것은 다른 세 가지 교환양식과 달리 이념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역사적으로는 보편종교의 형태로 나타남. 사회주의는 본래 종교의 형태로 태어남.

․ 예언자 종교에는 초월적․초감성적인 무언가에 대한 호수적 관계로 드러나는 주술적 영역이 강하게 남아있음. 반면 주술에서 종교로의 변화는 사회적으로는 공동체에서 국가로의 이행에 대응하는 것. 종교의 보편화 또는 일신교의 출현은 국가의 보편화 즉 세계제국의 형성에 수반되는 현상. 보편종교는 현실적으로 세계제국의 지배수단이 됨.

․ 제4공간과 예언자 : 예수, 마호메트, 불타 모두 예언자이자 카리스마적 개인. 이들은 사제계급에 속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기구에 대립. 또한 도시에 기반을 가지고 또 그곳에서 퍼져나감. “농민이야말로 신의 뜻에 들어맞는 경건한 인간의 특수한 전형으로 간주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완전히 근대적인 현상이다.”(막스 베버) ⇒ 보편종교(앞에서 말한 보편종교와는 다른 개념?)는 제3면(C)의 도시공간에서 출현하고 그로부터 제4면의 공간을 ‘개시’한 것.


2. 자유의 상호성을 위하여

․ 니체의 관점에서 보편종교의 출현은 주술=호수적 교환을 폐기하고 화폐에 의한 교환이 지배적이 된 시점에서 생기는 것. 예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직접적 교환을 배척하고 “만약 누가 네 오른뺨을 때리거든 왼뺨도 돌려 대어라.”라는 대응을 함.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은 그리스도가 몸을 가지고 전 인류의 ‘부채’를 지불한 것으로 해석.  ∴ 보편종교는 상인자본주의, 공동체, 국가에 대항하여 호수적인 공동체 즉 어소시에이션을 지향하는 것.

․ 그러나 종교가 현실적으로 확대되고 정착하게 되면, 국가의 종교가 됨. 서유럽도시에서 일어난 다양한 종교개혁은 새로운 문맥에서 보편종교를 회복하려는 것. ‘천년왕국’운동. 독일 농민운동을 이끈 토마스 뮌처, 영국 청교도혁명에서의 수평파(Levellers)와 개척파(Diggers) 등. 영국 부르주아혁명의 주요 시사점은 부르주아가 아닌 계급에 의한 사회운동으로 게다가 종교적 운동으로 개시되어 최후로 그것이 배제된 시점에서 성취되었다는 것.

․ 칸트는 타인을 목적으로서 다루라는 ‘자유의 상호성’을 주장. 이 때 타자는 살아있는자 뿐만 아니라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타자를 포함(환경 파괴에 대한 감수성 필요). 칸트적 윤리는 보편종교에서 유래. 윤리=교환양식. (보편종교의 운동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지는 않음)




제3부. 세계경제



1장. 국가


1. 세계제국에서 세계경제로

․ ‘약탈-재분배’ 관계가 우위인 세계제국들의 연결 ⇒ 세계경제의 탄생. 세계경제 하에서 주권국가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모두 일국적으로 형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근대세계체계)

․ 세계경제의 등장으로 중심과 주변의 형성. 이전에 제국의 아주변이었던 유럽이 중심이 되면서 종래의 중심부가 주변화. 그런데 이전 세계제국에서 중핵과 부분의 차이는 얼마간 남게 됨. 러시아나 중국에서 일어난 사회주의혁명은 그러한 시도.


2. 절대주의국가의 탄생

․ 절대주의의 조건 : ①파괴력있는 화기의 발명으로 귀족=전사신분을 무력화시킴. ②왕과 도시 상공업자가 결탁하면서 봉건제후의 조세를 비롯한 특권 폐지, 관세와 소득세를 얻기 위해 무역 추진. ⇒  귀족세력은 절대주의 국가기구 속에 흡수되어 정착. 방대한 관료조직과 상비군 형성.


3. 국가와 폭력

․ 국가는 정부와는 다른 것이고, 국민의 의지로부터 독립된 의지를 가지고 있음. 국민이 정부를 선출할 수는 있지만, 국가를 선출할 수는 없다. 시민혁명 이후, 국가․정부․국민의 관계는 주주․경영자․노동자의 관계. (절대주의 왕권국가에서 국가의 존재는 확실했음. 그러나 시민혁명 이후 우리가 국가를 보려하면 정부만을 발견하게 됨. 주주가 경영자를 해임하거나 기업을 매수할 때 사람들이 자본(주주)의 실체를 실감하게 됨. 마찬가지로 국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이 여실하게 느끼는 것은 전쟁.)

․ 홉스의 주장을 원용해 생각해보면, 국가는 복종과 보호의 교환으로서의 ‘사회계약’이 소위 사회계약에 선행하고 있음. 홉스의 주장은 절대주의 왕권 옹호를 위해 쓰여짐. “주권자 이외의 모든 이는 그의 국민subject이다.” 홉스는 원자론과 무관.


4. 관료지배와 복지국가

․ 헤겔에 따르면, 의회는 사람들의 의견에 의해 국가정책을 결정해가는 장(場)이 아니라, 관리들에 의한 판단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마치 그들 자신이 결정한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데 있음. 근대 자본주의에서 관료제의 팽창은 봉건제가 행정기능을 왜소화시키고 자기 자신의 경제적 존립에 불가결한 범우 l안에서만 예속민의 경우를 생각하는 것과 대비되는 ‘가부장적 가산제’이다.



2장. 산업자본주의


1. 매뉴팩처의 시대로

․ 상인자본은 본래 원격지와의 자연적, 역사적 조건의 차이에 따른 가치체계 차이에서 생기는 잉여가치를 챙겨왔다. 그러나 ‘세계시장’ 내 교역에서는 스스로 생산을 조직하면서 적극적으로 가치체계의 차이를 만들어냄. 기계의 채용이 자본제 생산을 낳은 것이 아니라 매뉴팩처에서의 분업과 협업의 조직적 발전에서 기계의 채용이 생김.

․ 세계시장에서 농노제 등 전근대적 생산양식은 사라지지 않음. 이는 상인자본주의가 기본적으로 국가들 간의 가치체계의 차이에서 이윤을 발견하는 것이며, 각각 어떤 생산양식을 취하는가에 무관심.


2. 생산=소비하는 프롤레타리아

․ 산업자본과 상인자본은 차이가 있나 없나?

 └→ 막스 베버 : 산업자본가에게는 프로테스탄트적 윤리가 있다. ⇔ 좀바르트

 └→ 모리스 돕 : 생산과정 중시(차이 있다) ⇔ 폴 스위지 : 유통과정 중시(차이 없다)

 └→ 마르크스 : “자본은 유통에서 생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유통을 떠나서도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이라는 유통과정에서 노동력이라는 특수상품을 발견하고 이를 고용하여 생산한 상품(’)을 파는 것. ⇒

․ 영국에서 산업자본주의가 발전한 것은 ‘소비자로서의’ 프롤레타리아가 출현했기 때문. 이것이 산업자본이 상인자본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으로서, 상인자본이 주로 사치품을 취급하는 것과 대조됨. (생산수단(토지)를 잃은 도시빈민의 출현만으로 산업자본주의 발전이 설명되지 않는다!)

․ 상인자본이 국외를 향했다면, 산업자본은 국내를 향함. 프롤레타리아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농촌 근방의 새로운 도시에서 산업가가 상인이 되어 직접 대규모로 상업을 위해 생산하는 것.


3. 기술혁신에 의한 존속

․ 상인자본과 달리 산업자본은 생산과정에서 잉여가치를 얻지만 이는 아직 잉여가치의 실현이 아니다. 잉여가치가 진짜로 실현되는 것은 그 생산물이 유통과정에서 팔릴 때. (개별 자본 차원에서 잉여가치 운운하는 것은 불가) ⇒ “자본은 유통에서 생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유통을 떠나서도 생길 수 없는 것이다.”

․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자를 직접적으로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로서의 노동자가 스스로 만든 것을 다시 사는 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 기술혁신은 자본 자체가 존속하기 위해 끊임없이 강요되는 것.


4. 자기재생적 시스템

․ 산업자본의 잉여가치는 노동자가 노동력을 팔고 그 생산물을 소비자로서 다시 산다는 광의의 ‘유통과정’에만 존재. ⇒ ①노동자는 자본가에 대해 단순히 ‘예속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②개별자본의 운동과정만으로 잉여가치를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

․ 대량생산-대량소비의 구축 ⇒ 자본주의는 자기재생적 시스템.


5. 자본에의 대항

․ 노동력과 토지 : 자본이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는 것. 수요가 없다고 폐기할 수 없고, 부족하다고 증산 할 수 없음. 이것에 기초해 공동체는 상품교환의 원리에 대해 끝까지 저항.

․ 선진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수정주의로 전환, 기존에 혁명을 고집한 자들은 후진자본주의 국가에서 혁명을 발견하려 함. 그러나 이는 자본주의의 중핵을 공격하는 것이 되지 못함. 이는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 산업자본을 생산지점에서의 착취라는 관점에서 보면, 본질을 이해 할 수 없음.

․ 유통과정에서 자본은 프롤레타리아를 강제할 수 없음. 일하는 것을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은 있지만, 구입하는 것을 강제할 수 있는 권력은 없기 때문. 유통과정의 프롤레타리아 투쟁은 보이콧.



3장. 네이션


1. 네이션의 탄생

․ 오늘날의 네이션=스테이트는 전부 옛 세계제국 또는 근대 제국주의에 의한 분절화의 결과물.

․ 세계제국은 자신의 지배 하에 있는 다수의 부족적 국가에 대해 간섭 없이 통치. ⇒ 신성로마제국의 해체로 왕, 봉건제후, 교회 등이 나란히 서있는 형태로 싸우는 단계로 이행. ⇒ 시민계급과 국왕의 결탁 하에 절대주의 국가의 성립.

․ 루터의 종교개혁 : 봉건세력으로서의 로마교화가 가진 경제적 지배에 대한 반항. 제국의 법이나 교회법을 넘어선 주권국가나 봉건적 제도들로부터의 해방을 구하는 농민전쟁 야기.

․ 절대주의 국가의 의미 : 그때까지 다양한 신분이나 집단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 주권자 아래서 신하로서 동일한 지위에 놓여 ‘인민’(people)이 되는 것. 다양한 지역적 공동체성이 제거되고 신하로서의 동일성이 형성되는 과정이 집단적으로 ‘망각’되지 않는 한, 네이션은 확립되지 않는다.


2. 공동체의 상상적 회복

․ 네이션은 계몽주의의 결과물(베네딕트 앤더슨). 내셔널리즘은 종교 대신에 ‘상상력 가득한 응답을 해왔다’.

․ 살아가는 자들 간의 호수뿐만 아니라 죽은 자(선조)와 이제부터 살아갈 자(자손) 사이에도 상호적인 교환을 상정했던 농업공동체의 해체로 무너진 공동체 내부의 호수적 관계를 네이션이 대체. (‘국민’이라는 호명) 네이션이란 상품교환 경제에 의해 해체되어 있던 공동체의 ‘상상적’ 회복에 다름 아님.

․ 네이션의 감정이 형성되는 것과 상상력의 지위가 높아지는 것은 역사적으로 평행하는 사태. 애덤 스미스는 공감(동정)이란 상대의 몸이 되어서 생각하는 상상력이라 말함. 그의 후예들은 ‘자유방임’과 ‘공감’의 대립을 해소하기 위해, 스미스가 자유방임으로 인해 불가피하게 초래되는 폐해를 깨달았다고 말하며 그를 후생(厚生)경제학의 선구자로 이해함. 그러나 스미스에게 자유방임적인 이기심과 공감이 모순되지 않으며, 이 ‘공감’이라는 능력은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서 비로소 출현.


3. 보로메오의 매듭

․ 스미스의 공감은 프랑스혁명의 ‘우애’와 같은 것. 본래 우애는 기독교적 기원을 갖는 것이지만, 혁명 과정에서 네이션에 흡수. 네이션에 대항한 19세기 전반 사회주의 속의 우애도 역시 내셔널리즘으로 귀착.

․ 칸트는 감성과 오성을 예리하게 절단. ‘도덕감정’이 있다고 하면 그것은 도덕법칙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에서 생기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님. 오성과 감성의 분열은 상상력에 의해 결합 됨. (오성-감성-상상력)

․ 네이션에서 현실자본주의 경제가 초래한 격차, 자유와 평등의 결여가 상상적으로 메워지고 해소 됨. 네이션을 통해 국가와 자본주의 경제라는 서로 다른 교환원리에 서는 것이 상상적으로 종합됨. (국가-시민사회(경제)-네이션)

․ 헤르더의 국가와 민족 : 풍토, 언어, 그리고 언어공동체로서의 민족이라는 감성적 존재에서 출발. ⇒ 감성을 이성화 하는 것.

․ 헤겔의 국가와 민족 : 민족이 가족이나 부족과 같은 감성적 기반에서 유래하며, 또 그것은 (가족, 공동체를 넘어선) 시민사회를 다시 넘어서서 실현되는 고차원 즉 국가에서만 나타남. (감성의 단계에 이성의 맹아가 있다는 단계론) 여기서는 네이션이 상상물에 지나지 않아 자본=네이션=국가의 매듭이 지양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음.



4장. 어소시에이션이즘


1. 칸트의 구상

․ 어소시에이션이즘 : 상품교환 원리가 존재하는 도시적 공간에서 국가나 공동체의 구속을 거부함과 동시에 공동체에 있던 호수성을 고차원적으로 회복하려는 운동. ‘타자를 수단으로서만이 아니라 목적으로 다루는’ 사회.

․ 칸트의 종교론 : 교회=국가적인 형태의 종교를 비판. 그러나 종교가 도덕적 법칙(자유의 상호성)을 개시하는 한에서 종교(=순수이성종교)를 인정.

․ 칸트의 구상 : ①상인자본의 지배를 거부한 소생산자들의 어소시에이션. ②국가들이 그들의 주권을 양도함으로 성립하는 세계 공화국.

  └→ 구성적 이념 : 칸트는 프랑스 혁명이 성급한 ‘외적 혁명’으로 인해 그 오류를 수정하는데에 수세기도 더 걸릴 것이라고 비판함과 동시에, 그것이 무한히 멀리 떨어진 미래라 할지라도 이 지상에 실현될 ‘신의 나라’(세계공화국)로의 제일보가 된 것을 높이 평가. 이런 자코뱅주의의 ‘구성적 이념’을 비판하면서도 규제적 이념은 승인.

  └→ 규제적 이념 : ‘초월론적 가상’으로서 이를테면 ‘역사의 목적’과도 같은 것. 사회주의는 환상적인 거대서사일 뿐이라고 비판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비판하는 이념은 사실 ‘구성적 이념’이고, ‘규제적 이념’과는 다른 것. 규제적 이념은 결코 달성되지 않기 때문에, 끊임 없는 현상에 대한 비판으로서 계속 존재.


2. 프루동의 구상

․ 19세기 사회주의자의 시도는 혁명에서 잃어버린 ‘평등’과 ‘우애’의 가능성을 되찾는 것. 그러나 프루동은 ‘사회주의를 ’자유‘에 기초해 세우려고 함.

․ 프루동은 분배적 정의에 반대하고 ‘교환적 정의’를 내세움. 즉 부의 격차를 낳지 않는 교환시스템 즉 자유의 상호성 실현 중시. 자코뱅주의 혁명에 반대하고 국가에 의하지 않은, 자기통치에 의한 질서 추구.

․ 또한 ‘자유’를 ‘우애’보다 강조. 우애에 기반하여 사회를 바꾸려는 자는 거의 틀림없이 국가로 향함. (국가사회주의나 나치스의 경우) 오히려 자유와 경쟁을 긍정. ⇒ 생산자협동조합(노동자이면서 경영자인 주체의 탄생), 대체화폐 ․ 신용화폐(화폐의 왕권 폐기) ⇒ 국가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로부터 자립한 네트워크 공간의 형성.


3. 경시된 국가

․ 마르크스와 프루동의 대립을 정치혁명인가? 경제혁명인가? 하는 점에서 찾는 것은 옳지 않다. 마르크스가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은 라살의 ‘국가 사회주의’임. 라살은 독일사민당 「고타강령」(1875년)에서 국가에 의해 생산자협동조합을 육성한다는 계획을 주장.


4. 어소시에이션이즘을 위하여

․ 루소는 국가를 그 내부 즉 성원(국민)에서 보면서, 국가의 내부에서 왕정을 무너뜨리면 국가의 초월성이 사라진다고 믿음. 프루동은 루소가 당연하게 간주한 집권적 국가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

․ 파리코뮌이 가능했던 것은 1871년 프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해 프랑스의 국가주권자가 실추되었기 때문. 그러나 파리가 전승국 프러시아에 의해 지지된 프랑스 신정부의 지배 하에 속하는 것은 자명함. 국가적 지배가 존속되는 속에서 터진 파리코뮌은 2개월로 끝나고, 그 내부에서는 바깥의 적으로부터 방위하기 위해 집권화를 강요하는 ‘다수파’가 지배적. 러시아 혁명도 그런 국가 방위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함.

․ 마르크스는 프루동을 따라 국가를 시민사회의 자기소외태로 인식. 봉건 군주제하에서 주권은 외부에 대해 존재했을 뿐이지만, 절대왕정 해체 이후 사람들은 주권이 먼저 외부에 대하여 있다는 것을 잊어버림.

․ ‘화폐의 왕권 폐기’라는 프루동의 주장 또한 화폐가 한 나라 바깥에서 통용되는 초월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것. 그의 협동조합론도 산업자본이 발달하지 못한 프랑스의 매뉴팩처 단계의 직인적 노동자만을 염두에 둔 것.

․ 국가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칸트가 간파한대로, 국가들을 ‘위로부터’ 억압하는 국제연합을 만들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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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책세상) 발췌독

마취술은 수술의 기술에 종속되는 하위 기술이므로 그 목적과 수단의 모든 구체적인 면에서 상위의 기술인 수술의 기술에 따라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획득의 기술이 가정생활에 종속되는 하위 기술이라면 물자를 조달하는 행위는 어디까지나 가족 성원들의 행복한 삶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한도 내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만약 마취사가 안전하고 성공적인 수술이라는 상위의 목적을 망각한 채 제 흥에 겨워 "마취술의 한계에 도전한다"면서 극단을 달리면 그야말로 큰일날 것이다. 마찬가지로 획득의 기술도 가정의 행복이라는 상위의 목적을 무시한 채 "돈벌이의 한계에 도전한다"고 굴어서는 안 된다. 혹시라도 두 기술을 동일한 것으로 보고 "더 많은 부의 획득"을 목적으로 가정생활을 관리한다면, 가정의 행복은 사라지고 가정인지 공장인지 알수 없을 정도로 가족 모두가 혹사당하게 될 것이다. 요컨대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은 경제 행위에서의 목적 합리성이 독립되어 따로 노는 것을 피하고 철저하게 가치 합리성의 차원에 복무하도록 묶어두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95쪽)

 

 

 

앞에서 우리는 인간의 활동에서 목적의 추구는 무한하지만 수단의 양은 그 목적에 의해 제한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를 보았다. 또한 정말 제대로 사는 법을 아는 인간이라면 마땅히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폴리스의 운영기술 politikon 과 가정관리 기술을 상위의 기술로 삼고, 거기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는 획득의 기술은 그 하위의 기술로 종속시킨다고 하는 그의 주장도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솔론에 반대하여 인간이 필요로 하는 물자의 양에는 어떤 자연적인 한계가 있음이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수술을 위해 마취를 하는 경우 마취약이 무한정 필요하지는 않다. 무한정 마취약을 가지려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의 목적은 분명 수술이 아니라 자살이거나 환각 상태일 것이다. 행복한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물품, 예를 들어 무기의 양은 결코 무한정이 아니다. 만약 무한정의 무기를 가지려는 자가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삶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을 목적으로 삼는 무기 장사꾼이거나 다른 무엇일 것이다.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처럼 "모든 사물에는 본말本末이 있고 매사에는 시종始終이 있다." 재화를 조달하기 전에 자기가 그것을 무슨 용도로 쓰려고 하는지, 그것을 쓰는 것이 자신의 행복한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정확히 알아야만 무엇이 얼마만큼 필요한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은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돈부터 벌고 보자는 식으로 시작하면 그야말로 본말과 시종이 바뀌고 목적과 수단이 전도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삶 자체가 돈을 버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97-8쪽)

 

 

 

아리스토텔레스는 마찬가지로 위와 같은 분석을 상품에 적용하고 있다. 어떤 상품이든 생긴 모습인 형성을 보자. 예외 없이 모두 그 물건이 목표로 하는 이런저런 용도에 부응하도록 생겨 있다. 구두의 생김새에는 신기 편하도록 한다는 것 외의 다른 어떤 목적도 드러나 있지 않다. 따라서 이 상품의 일차적인 용도는 그것을 사용하여 발에 신는 것, 즉 사용가치에 있다. 그런데 똑같은 구두를 사용하더라도 목적이 전혀 다른 방법이 있다. 그것을 팔아 다른 물건을 얻거나 돈을 버는 것이 그것이다. 이것도 분명히 그 구두를 쓰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 목적은 신발의 구체적인 형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점에서 보기 좋으라고 만들어놓은 고려 청자를 요강 따위로 쓰는 것과 마찬가지 행위가 된다. 따라서 상품을 교환하여 돈이나 다른 물건을 얻는다는 용법인 교환가치는 사물의 일차적인 용도라고는 할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상품 교환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불만과 염려가 녹아 있다. 교역의 목적이 단지 필요한 물건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교환행위도 각각의 물건들이 자기들을 '생긴 대로'사용해줄 바른 임자를 찾아가는 과정일 뿐이니 자연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궁극적인 목적이 순전히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교환에 들어가는 상품은 원래의 생김과는 전혀 다른 목적에 복무하게 된다. 그렇게 부자연스럽게 덧씌워진 '돈벌이'라는 목적은 궁극적을 상품의 형상에 영향을 미친다. 쉽게 말해서 팔리기만 한다면 품질이든 뭐든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109쪽)

 

 

 

알렉산더 대왕은 언젠가 당대 최고의 요리사들을 거느릴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은 이미 스승 아리스토텔레스가 평생 동안 이용할수 있는 요리사를 갖춰주었다고 말하며 거절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달리기와 다른 운동으로 땀을 낸 후 몸을 씻어 입맛을 돋운다. 그러면 이 세상 어떤 음식도 산해진미가 된다." 이렇게 수면, 운동, 건강의 조화 속에서 '잘 먹는다는 것'을 추구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방법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자들은 맛잇는 임식을 찾아 오늘은 바닷가재, 내일은 캐비어, 함 돈을 펑펑 쓰면서 살게 마련이다. 비록 자기들은 훌륭한 삶을 산다고 만족스렁누 표정을 짓겠지만 따지고 보면 못 배운 게 지인 불쌍한 자들인 셈이다. 반면 알렉산더 대왕처럼 '행복한 삶'에 대해 지혜를 가진 자들이라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얼마든지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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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7,11장 정리

7장. 말하기의 의무



말하기와 권력의 결합 속에서 매우 명료한 동시에 매우 심오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즉 국가를 형성한 사회에서는 말하기가 권력이 지닌 권리인 데 반해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거꾸로 말하기는 권력의 의무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인디언 사회는 추장에게 그가 추장이기 때문에 말하기의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추장이 되고자 하는 자에게 말을 지배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요구한다. 추장에게 말하기는 강제적 의무이고 부족은 추장의 말을 듣고 싶어한다. 침묵하는 추장은 더 이상 추장이 아니다.

(192쪽)



어떤 의미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추장은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지만 전혀 아무런 것도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의 요점은 이미 몇 번이고 반복된 전통적인 생활 규범에 대한 칭송이다. “우리 조상들은 그분들다운 생활 방식으로 행복하게 잘살았지. 그분들의 전례를 따르면 우리도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거야.” 추장의 이야기의 요지는 결국 이것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이야기가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추장의 말하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추장이 진정 어떤 것도 말하지 않기 위해 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권력의 소재지로 보이는 추장에게서 발화되는 공허한 이야기는 원시사회의 어떠한 필요 때문에 나타나게 된 것일까? 추장의 이야기가 공허한 것은 그것이 진정으로 권력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추장은 권력으로부터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말하기로부터 분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은 권력의 말, 권위의 말, 명령의 말이 될 수 없다. 명령은 정말로 추장이 내릴 수 없는 것이고 추장의 말은 그처럼 충만한 말이 될 수 없다. 자기 의무를 망각하고 명령을 시도한 추장은 복종의 거부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추장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지니고 있지 못한 권력을 남용한 추장만이 아니라 고작 권력의 남용이나 꿈꿀 정도로 미친 추장, 즉 추장답게 행동해보려 하는 추장도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다. 원시사회는 추장이 아니라 사회 그 자체가 권력의 진정한 소재지이기 때문에 분리된 권력을 거부하는 장이다.

(194쪽)

 

 

 

 

 

 


11장.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① 원시사회는 국가없는 사회 : 이것이 보통 원시사회가 완전한 사회가 갖추어야 할 요소를 갖추지 못했다는 ‘결여’의 증거로 이해됨. ⇒ 역사는 단선적으로 진보하며 모든 사회는 야만 상태로부터 문명 상태로 나아간다는 자민족 중심주의. (ex: "정치적으로 통합돼 있는 모든 사회는 과거에는 야만 상태였다.“(레이날)) 그러나 국가의 문명을 모든 사회의 필연적인 도착 지점으로 상정하는 것은 정당한가? 그렇다면 아직도 원시인들을 야만 상태에 놓여 있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② 국가 없는 사회, 무문자 사회, 시장 없는 사회, 역사 없는 사회는 진화의 前단계다? : 원시사회가 잉여를 생산하지 않는 것은 겨우 생존할 수 있을 정도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급급하여 잉여를 생산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가정.

⇒⇒ 원시사회도 공업사회와 비슷한 정도로 인간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 있는 능력 보유. 즉, 모든 인간 집단은 자신이 차지하고 있는 환경에 대해 필요한 최소한의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음. 한 사회가 얼마나 기술을 잘 갖추고 있는가는 그 사회가 주어진 환경에서 사회의 필요를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함.


③ 원시사회가 생계경제라고 할 때, 그것이 오직 그 사회의 존속만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과 그 사회는 그 사회의 구성원에게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을 제공하기 위해 항상 생산력의 총체를 동원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 (+“야만인은 게으르다”)

⇒⇒ but, 실제로 인디언들은 거의 일을 하지 않았지만, 굶어죽지 않았음. 여러 인디언 부족들의 생계경제는 모든 시간을 식량을 얻는 데 투여하는 고통스러운 것과는 다름. 남아메리카 농경민 투피-과라니족의 경우 인구의 절반인 남자들은 사실상 4년마다 2달만 일할 정도. 생계경제는 비참함과 거리가 멀다.


④ 원시사회에서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 더 많이 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간이 자기의 필요 이상으로 노동하는 것은 언제나 강제에 의해서이다. 그런데 그러한 강제가 원시사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원시사회가 생계경제라는 것은 그 사회의 결함이 아니라, 불필요한 과잉에 대한 거부이자 필요의 충족과 조화시켜 생산 활동을 전개하고자 하는 의지를 의미함.


⑤ 원시사회에서 인간은 스스로의 활동의 주인이자 그 활동에 의한 생산물의 유통의 주인. 오직 자신만을 위해서 생산하던 원시인이 교환도 호혜성도 없이 다른 사람을 위해 생산할 때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짐. 생산 활동이 다른 이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루어지고 교환의 질서가 부채의 공포로 무너질 때 우리는 노동에 대해 말할 수 있음.


⑥ 역사는 상호 절대로 환원될 수 없는 두 가지 유형의 사회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하나는 원시사회 또는 국가 없는 사회 다른 하나는 국가를 가진 사회. 각 사회들 사이에 환원 불가능한 불연속적인 선을 긋는 것은 바로 국가기구가 존재하는가의 여부.


⑦ 신석기 시대의 단절이 사회 체계의 기능 변화를 가져왔는가? 그렇지 않다. 신석기 혁명이 가져온 것 중에서 이동 생활에서 정착 생활로의 이행은 안정적인 인구 집중화를 통해 도시와 국가 형성을 가능케 했다는 면에서 가장 중요하게 평가 됨. 그러나 수렵, 어로, 채집이 반드시 이동 생활 방식을 가져오는 것은 아님. 농경생활을 하지 않으면서도 정주 생활을 하는 사례가 다수 존재. 즉, 생태학적으로 농업에 적합하지만 농경 생활을 하지 않는 사회가 있다면 그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 그들이 농경 생활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

⇒⇒ 콜럼버스 이후 기술혁명(馬과 화기의 획득)의 결과 농업을 버리고 전적으로 사냥에 종사하는 것을 택한 정착 농경민의 사례 발견. 이들의 농업 포기는 인구 분산이나 이전의 사회조직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음.

⇒⇒ 원시사회들에 관한 한, 맑스가 말한 경제적 하부구조의 변화가 정치적 상부구조에 반영되는 상황은 나타나지 않음. 인디언 원시사회는 오히려 상이한 하부구조에 동일한 상부구조를 지니고 있음.


⑧ 국가가 지배-피지배관계의 반영, 지배계급이 폭력적 권력 독점의 결과라면 국가는 대체 왜 필요한가? 그것은 이미 다른 장에서 충족된 기능을 수행하는 쓸모없는 기관일 뿐인가? 국가가 사회구조의 반영일 뿐이라는 관점에 기초한 이런 질문은 국가 출현의 문제를 지체시킬 뿐이다. 원시사회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왜 나타나는지를 자문해야 함. 모든 문명인들도 원래는 원시인들이었다고 한다면 무엇이 국가를 탄생시켰나?

⇒⇒ 이 기원의 문제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겠지만, 반대로 그것이 출현하지 않는 조건을 해명하는 것은 가능. 부족사회에는 왕이 없고 단지 국가의 추장이 아닌 추장이 있음. 추장은 명령을 내리는 자가 아니며 부족민들은 복종해야 할 어떤 의무도 갖고 있지 않음. 추장의 임무는 말을 독점하여 개인, 가족, 동족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분쟁을 해결하는 것. 그러나 추장의 말은 법적 효력을 지니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설득이 통하지 않으면 분쟁은 폭력을 통해 해결되고, 그러면 사람들이 그에게 기대하는 것을 수행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어 위신을 지닐 수 없음.


⑨ 군사행동의 준비, 지휘는 추장이 최소한의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 그러나 일단 행동이 끝나면 전투의 결과가 어떻든지 간에 전쟁의 추장은 권력을 지니지 못한 추장으로 되돌아가고 어떤 경우에도 승리함으로써 생긴 위신이 권위로 전화되지 않는다. 부족에게 있어서 추장이란 부족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적절한 도구에 불과하기 때문에 추장이 과거에 거둔 승리는 쉽게 잊혀짐. 추장이 영속적으로 획득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잊혀지기 전에 자신의 명성과 위신을 사람들에게 다시 상기시키기 위해서는 새로 전쟁을 치를 기회를 만들어야 함.

 ⇒⇒ 그러나 권력의 진정한 장소로서의 사회는 권력을 특정인에게 넘기는 것을 거부.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전쟁을 하도록 부추기는 추장은 부족으로부터 버림받음.


⑩ 사회의 통제를 벗어난 유동적인 영역으로서 ‘인구동태’ : 어떤 사회가 원시사회이기 위해서는 그 인구가 적어야 함. 부족 세계의 원자화는 지역 집단을 통합하는 사회-정치적 집합체가 구성되는 것을 막는 효과적 수단. 그러나 투피-과라니족은 상대적으로 인구밀도 높음. 여기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추장의 권력 획득 추구 경향이 드러남. 이는 추장이 국왕으로 격상되는 상황에 까지 이르는데, 유럽인들의 도래로 이것이 돌연 중단. 하지만 국가의 출현을 저지한 것은 유럽의 도래가 아니라 카라이를 중심으로 한 원시사회 내부의 자각.


⑪ 카라이들은 수천 명의 인디언을 이끌고 신들의 고향을 찾아 광적인 여행을 함. 이들은 권력의 생성이 국가 없는 사회인 투피-과라니를 불행과 사악함으로 내몰고 있다고 판단. 한편에는 추장들이 다른 한편에는 그들에게 대항하는 예언자들이 있는 것이 15세기 말 투피-과라니 사회의 본질적인 모습.

 ⇒⇒ 말하기를 유일한 무기로 지닌 예언자들이 인디언들을 동원하여 종교적 이동에 참가시켰다는 것은 그들이 추장의 프로그램을 일거에 실현했다는 것. 예언자들의 이야기 속에 아마도 권력의 이야기가 배태되어 있고, 사람들의 욕구를 대변하는 선도자의 고양된 모습 속에 전제군주의 모습이 은밀히 숨겨져 있는 것일 수도. (폭력의 반대편에 말하기가 있다는 생각을 수정해야 함.)

 ⇒⇒ 그럼에도 투피-과라니족의 시도는 통일화의 거부와 하나인 국가를 떨쳐버리려는 노력을 보여줌. 역사를 가진 사람들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 역사 없는 사람들의 역사는 국가에 대항하여 싸우는 투쟁의 역사라고 정리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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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클라스트르,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1,2장 정리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피에르 클라스트르 저(이학사), 요약 정리




1장. 코페르니쿠스와 야만인


사실상 권력은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원시 문화에서도) 폭력과 완전히 분리되어 위계질서와 무관하게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사회는 고대적 사회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정치적이다. 비록 그 정치적이라는 것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고, 그 의미는 곧바로 해독되지 않으며, “무력한impuissant" 권력이라는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지금까지의 논의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1) 여러 사회들을 권력이 있는 사회와 권력이 없는 사회라는 두 범주로 분류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민족지 자료를 충실하게 인정했을 때) 정치권력은 보편적이고 사회적인 것(이것이 혈연에 의해 규정되든 사회 계급에 의해 규정되든 간에)에 내재한다고 본다. 그리고 그것은 강제적 권력과 비강제적 권력이라는 두 가지 기본적인 양식으로 나누어져 있다.

2) 강제로서의 정치권력(즉 명령-복종 관계)은 진정한 권력의 유일한 모델이 아니며 단지 하나의 특수한 사례, 예컨대 서구 문화(물론 이것만이 유일한 사례는 아니지만)의 정치권력이 구체적으로 실현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 권력 양식만이 준거 틀로서 여타의 다른 성격을 지닌 양식을 설명하는 원리가 되어야 할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3) 심지어 정치제도가 없는 사회(예를 들어 추장이 없는 사회)에서도, 그런 사회에서조차도 정치적인 것은 존재하며 권력의 문제가 제기된다. 이 문제는 불가능한 권력 부재의 이유를 설명하고 싶어하도록 유도하는 기만의 의미에서가 아니라, 반대로, 아마도 은밀하게 그 부재 속에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제기되는 것이다. 정치권력은 인간 본성, 즉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이 점에서 니체의 생각은 틀렸다) 인간의 사회생활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 것이다. 폭력 없는 정치는 상정할 수 있지만 정치 없는 사회는 생각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권력 없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권위는 사회적 유대를 창출해냄으로써 나타난다”는 드 주브넬의 명제를 받아들이는 동시에 이를 비판하는 라피에르의 견해에 찬성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더 이상 유치하게(이것이 진정 유치함의 문제일까?) 자민족 중심주의자가 될 수 없다.

이상의 지적은 라피에르가 자신의 책 제4부에서 제시한 “정치권력은 사회 혁신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정치권력은 사회 혁신의 규모가 클수록, 속도가 빠를수록,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가 넓을수록 더 발달한다”는 주장에 잘 나타나 있다. 수많은 예시들로 뒷받침되는 이 논증은 엄밀하고 설득력을 지니고 있어서 그의 분석들과 결과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한 가지 단서를 달아야한다. 그가 거론하고 있는 정치권력, 즉 사회 혁신을 통해 만들어지는 정치권력은 우리가 강제적이라고 부르는 권력일 따름이다. 결국 라피에르의 이론은 명령-복종 관계가 발견되는 사회들에만 적용되고 그렇지 않은 사회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디언 사회에서는 정치권력이 사회 혁신으로부터 생겨난다고 할 수 없다. 다른 말로 하자면 사회 혁신은 강제적 정치권력의 기초일지는 몰라도 비강제적 권력의 기초는 분명히 아니다. 오직 강제적인 권력만이 있을 뿐이라고(이것은 불가능하다) 단정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라피에르의 이론은 사회 혁신이 없는 곳에는 정치권력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의 이론은 특정한 사회 유형, 특수한 정치권력의 양식에만 적용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론은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준다. 즉 강제 혹은 폭력으로서의 정치권력은 사회 내부에 혁신, 변화 그리고 역사성의 동인을 갖추고 있는 역사적인 사회들의 표지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비강제적 정치권력을 지닌 사회는 역사 없는 사회이고 강제적 정치권력을 지닌 사회는 역사적인 사회라는 새로운 기준에 따라 다양한 사회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배열할 수 있다. 이러한 배열은 역사 없는 사회들을 권력 없는 사회로 취급하는 권력에 대한 현재의 사고와는 매우 다르다.

(29-32쪽)




라피에르는 “맑스주의의 진리는 사회적 힘들 사이의 투쟁 없이 정치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본 점에 있다.”고 적고 있다. 이것은 의심할 바 없이 옳지만 사회적 힘들이 투쟁하고 있는 사회들에만 적용될 수 있다. 사회 투쟁 없이는 폭력으로서의 권력(그리고 그 궁극적 형태인 중앙집권적인 국가)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투쟁 없는 “원시공산제”가 지배하는 사회들에서는 어떠한가? 맑스주의는 비非역사에서 역사로의 이행, 비非강제서 폭력으로의 이행을 설명할 수 있는가?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맑스주의는 실제로 사회와 역사에 대한 보편 이론, 즉 인류학이 될 것이다.

(33쪽)





2장. 교환과 권력: 인디언 추장제의 철학



①민족학 이론에서 원시사회의 정치권력에 대한 관점

- 대부분의 원시사회가 어떤 정치조직도 지니지 못한 아나키적 단계라는 관점.

- 아나키 상태를 벗어나 인간 집단에게 유일한 존재 양태로서 정치제도를 만들어 냈는데, 이 경우 정치제도의 ‘과잉’으로서 절대권력의 길로 접었다는 관점.

⇒ 비서구 사회가 운명적으로 정치적 실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 서구적 관점의 한계. (남아메리카 대다수 인디언 사회들이 갖는 아나키적인 분리 경향은 잉카의 전체주의적 제국과 대비된다고 하는 관점 등)


②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을 지니지 못한 권력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추장이 권위를 지니고 있지 않다면 추장은 무엇으로 정의될 수 있는가? ⇒ 이러한 “실체”없는 제도를 존속시키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물어야만 함.

- 명목상의 추장이 가진 세 가지 특징 : 추장은 평화의 중재자 / 추장은 자기 재화에 대해 집착 안 함 / 추장은 말을 잘 해야 함.

- 대부분의 부족들이 전시 외에는 추장을 두지 않았음. 즉 추장의 책무는 집단 내부의 평화와 조화를 유지하는 것.

- 추장은 물건에 집착하지 않아야 하며, 이는 추장에게 의무 이상의 것.

- 인디언들은 추장의 말에 높은 가치를 부여함. 말솜씨는 정치권력의 조건이자 수단.


③ 남아메리카에서의 보조적 특징 : 거의 모든 사회가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나, 그것을 추장의 배타적 특권으로 인정. 실제 자연 성비에 따라 모든 남성이 한 사람 이상의 여성과 결혼해서 일부다처제가 보편화되는 것은 불가능. 그것이 가능한 경우는 카스트, 노예제 관행, 전쟁과 같은 요소가 개입했을 때.


④ 위의 총 네 가지 특징 중 첫 번째 것과 나머지 세 가지는 명확히 구별됨. 후자들은 사회구조와 정치제제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증여와 대증 증여의 집합을 규정. (추장이 예외적인 수의 아내를 거느릴 수 있는 권리를 지니는 대신 집단은 추장에게 재산에 대해 연연하지 말 것과 말솜씨를 요구) 추장의 중재적 기능은 반대로 엄밀한 의미에서의 정치적 행위와는 다른 영역에서 발휘됨. 추장의 역할은 여론에 의해 영향 받음.


⑤ 추장은 경제적 재화와 언어기호를 대가로 집단으로부터 여성을 받는 것처럼 보인다. 추장의 권위는 대부분 그의 관대함으로부터 생기는데, 인디언들의 요구는 종종 추장의 직접적인 능력을 넘어서게 된다. 그 때 추장은 대부분의 자기 부족원들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데 전력을 다해야만 한다. 추장의 권위는 약한 만큼 그의 사회적 지위는 부러움을 사지 않는다. 엄청난 특권을 지닌 추장권이 집행에는 무력한 이유는 무엇인가?


⑥ 정치적 영역의 중심에 있는 소통의 세 가지 차원의 위상

- 여성(집단→추장) : 추장은 집단에 대해 자기가 받은 것과 똑같은 수의 여성을 돌려줄 능력이 없다. (추장은 부계제로 상속) 이것은 교환이 아니라 집단이 지도자에게 주는 순수하고 대가 없는 증여.

- 재화(추장→집단) : 남아메리카의 인디언 사회들 중 지도자에게 경제적 증여를 하는 사회는 드물고, 추장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카사바를 경작하고 사냥을 함.

- 언어 : 언어에 대한 지배권은 추장이 가짐. 트루마이족 추장의 최측근 두 사람은 몇몇 특권을 누림에도 불구하고 추장처럼 말할 수 없음. why? 그들 자신이 말하는 행위가 추장과 그 말 모두를 더럽힌다고 느끼기 때문.

⇒⇒ 집단의 여성은 추장의 재화 및 메시지와 교환되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고유한 회로를 따라 움직임. 각각의 과정은 교환가치를 가지지 않으며, 호혜적 움직임을 통해 사회의 구조 그 자체를 세우는 여러 요소들에 대하여 권력은 특권적 관계를 지닌다.


⑦ 추장은 왜 무력한가? : 정치적 기능이 효과적으로 전개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형태로든 집단 안에 내재되어 있어야만 하지만, 인디언 사회에서는 그것이 집단으로부터 배제되고 심지어 집단을 배제하기까지 한다. 사회의 외부로 정치적 기능을 추방하는 것은 그것을 무력한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수단.


⑧ 권력의 무기력함은 권력이 전체 체계의 “주변적” 위치에 놓여 있다는 사실과 직접적으로 연결됨. 그리고 이 위치 자체는 여성, 재화 그리고 말의 교환이라는 결정적 순환에 권력이 도입하는 단절로부터 생김. 그러나 이 단절의 우연성을 부각시켜 해석하는 방식은 남아메리카 대륙 지역의 대부분의 부족이 절대 진정한 정치적 권위를 지닐 수 없었다는 견해(모종의 오리엔탈리즘?)에 빠질 수밖에 없다.

└→ 세 가지(여성, 재화, 말)의 순환과 권력의 단절이 우연적이라는 관점의 부정, 즉 그것에 필연성을 가정하는 것은 새로운 사회학적 지향성을 형성. 인디언 문화의 이 “결정”은 환상으로부터 생긴 비합리적 성과가 아니라 하나의 내재적 합리성이 존재하고 있음.


⑨ 권력은 본질적으로 강제력이고, 정치 기능의 통일을 향한 활동은 사회구조라는 기초 위에서 그리고 사회구조에 합치하도록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없고 사회에 적대적인 피안으로부터 사회에 대항하여 행사됨. 따라서 이들 사회는 권력의 초월성이 집단에 치명적인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외재적이고 스스로 정당성을 창출하는 권위라는 원리가 문화 자체에 대한 도전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낸, 정치적으로 매우 유능한 사회였던 것. 그들은 스스로 정치적 권위의 설립자가 되었고, 권력이 출현하면 그 즉시 억제하는 부정성을 견지.


⑩ 자연재해등의 상황에서 주민들은 추장에게 전적으로 의지하는 듯 하지만, 여기에는 추장에 대한 집단의 협박이 숨겨져 있음. 즉 추장에게 기대한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마을이나 무리의 사람들은 쉽게 추장을 버리고 추장의 의무에 보다 충실한 지도자를 택하겠다는 것.


⑪ 인디언 문화는 자신들을 현혹시키는 권력을 거부하기 위해 고뇌하는 문화이다. 거기에서는 풍족한 추장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역설적인 성격을 띤 권력이 그 무력함으로 인해 숭배된다는 것은 문화의 스스로에 대한 고뇌와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자 하는 꿈을 표현하는 것이다. 신화의 이마고imago이자 부족에 대한 은유, 이것이 인디언 추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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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래, <전태일 평전> 중에서

나와 마주보고 삽질을 하던 그 배가 사장배 이상으로 앞으로 쳐지고 키는 1.7m나 될 사람이 어디서 얻어쓴 건지 기름에 쩔은 운전수 모자를 쓰고 바지는 군복바지에 흰 고무신을 신었네. 런닝샤쓰는 구멍이 벌집처럼 뚫린 것을 입고 오른손엔 목장갑을 끼었는데 손가락은 다섯 개가 다 나오고 손바닥 부분만 장갑구실을 하는 것일세.

얼굴은 일을 할 때나 쉴 때나 꼭 마도로스가 지평선을 바라보는 그런 표정일세. 그저 무의미하게 사물을 판단하지 않고 사는 사람 같았네. 삽질을 하나 점심을 먹으나 시종 무표정일세. 만약에 그 기름에 쩔은 운전수 모자를 벗겨버린다면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바보가 되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 같네. 그만큼 그 모자는 그 사람을, 그 돌부처 같은,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얼굴을 하고 잇는 그 사람 전체를 육체의 맨 꼭대기인 머리 위에 서서 감독하면서 그를 속세의 사람과 같이 만들어버리고 있었네. 지금 현재 삽질을 하고 있으니 말일세

사실 그 사람이 삽질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세.

그 때에 절은 모자가 하고 있는 걸세.

얼마나 위로해야 할 나의 전체의 일부냐!

얼마나 불쌍한 현실의 패자(敗者)냐!

얼마나 몸서리치는 사회의 한 색깔이냐!

그렇다! 저주받아야 할 불합리한 현실이 쓰다 버린 쪽박이다! 쪽박을 쓰기 시작했으면 끝까지 부서지지 않게 잘 쓰든지 아니면 아예 쓰지를 말든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그저 무자비하게 사회는 자기 하나를 위해 이 어질고 착한 반항하지 못하는, 마도로스 모자를 쓴 한 인간을, 아니 저희들의 전체의 일부를 메마른 길바닥 위에다 아무렇게나 내던져버렸다. (18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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