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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가격 및 이윤] 요약

임금, 가격 및 이윤



I. 생산과 임금


▶ 웨스톤의 논거 : 1) 국민적 생산물의 총량은 수확자가 말하는 대로 고정된 것 불변의 량, 또는 불변의 크기라는 것.  2) 실질 임금, 즉 그것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의 양에 의하여 측정되는 임금의 총액은 고정된 총액․불변의 크기라는 것이다.


위와 같은 주장은 명백한 오류. 국민 생산물의 총량 또는 그 크기는 부단히 변한다. 인구수의 변동은 차치하더라도 그것은 자본의 축적과 노동생산력의 부단한 변동으로 인하여 가변의 크기로 될 수밖에 없다.

웨스톤은 일정한 상황 하에서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사실, 그러나 임금 총액은 본성으로 보아 고정된 크기 이므로 당연히 반작용이 그에 뒤따라 일어나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른 한편 그는 또 자본가가 임금 인하를 강제로 실시할 수 있으며 실제로 항상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경우에도 당연히 반작용이 뒤따를 것이다. 그리하여 임금 인하의 시도를 반대하거나, 이미 실시된 임금 인하를 반대하는 노동자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다. 따라서 임금 인상을 달성하려는 그들의 행동, 역시 정당한 것이다.

만일 웨스톤씨가 이 결론을 부정한다면 이 결론을 맺게 하는 전제도 포기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는 임금 총액이 불변량이라고 주장해선 안되고, 오히려 임금은 인상시킬 수 없으며 또 인상시켜서도 안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하하는 것이 자본에 필요하다면 그것은 언제든지 인하할 수 있으며 또 인하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해야 한다.

예를들어 미국이 영국보다 높은 임금률을 가지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 임금율을 차이를 미국과 영국 자본가들의 의지의 차이로서 설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면 왜 미국과 영국 자본가의 의지가 다른가? 하느님이 나라에 따라서 다른 의지를 적용하셔서?

물론 자본가의 의지는 되도록 많이 획득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과업은 그의 여하를 논의하는데 있지 않고 그의 힘과 이 힘의 한계 그리고 이 한계의 성격을 규명하는 데 있다.



II. 생산, 임금, 이윤


웨스톤의 논의는 다음으로 귀착된다. 만일 노동계급이 자본가계급으로 하여금 화폐 임금의 형태로 4실링 대신에 5실링을 자기에게 지불하게 한다면 자본가는 상품의 형태로 노동자에게 5실링의 가치 대신에 4실링의 가치를 반환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임금 총액이 고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총액은 왜 4실링의 가치를 가진 상품으로 고정되어 있는가? 왜 3실링이나 2실링 또는 어떤 다른 총액의 가치를 가진 상품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은가? 만일 임금 총액의 한계가 자본가의 의지나, 노동자의 의지에도 의존하지 않는 어떤 경제 법칙에 의하여 결정된다면 웨스톤씨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 법칙을 설명하고 논증했어야 했을 것이다.

웨스톤은 만일 일정한 수의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이정량의 국이 대벚에 있을 때 이 양은 숟가락의 폭을 더 넓게 했다고 해서 더 많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로마의 평민들이 로마의 귀족에 반대하여 파업하였을 때, 귀족인 아그리파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귀족의 배(腹)가, 국가라는 신체의 사지인 평민을 양육하는 것이라고 말한 예를 떠오르게 했다. 웨스톤씨는 노동자들이 식사하는 대접 안에는 국민적 노동의 전체 생산물이 들어 있고 이 대접에서 노동자들이 더 많이 떠내지 못하는 것은 대접의 용적이 적거나 그 속에 담겨 있는 내용물이 빈약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들의 숟가락이 작기 때문이라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임금률의 전반적 인상은 생활 필수품에 대한 수요 증대를 야기하고 따라서 그 시장 가격의 등귀를 야기한다. 이러한 생활필수품들을 생산하는 자본가들에게 있어서는 그들이 지분하는 임금 인상은 그들의 상품에 대한 시장 가격의 등귀에 의하여 보상된다. 그러나 생활 필수품을 생산하지 않는 다른 자본가들은 어떻게 되는가? 그들은 임금의 전반적 등귀로 야기된 이윤율의 저하를 자기 상품의 각겨 등귀로서 보상받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상품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수입은 감소할 것이고 그런 까닭에 전반적으로 사치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 그들 상품의 가격도 떨어질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산업부분에서의 이윤율은 임금율의 전반적 상승에 단순히 비례하여 하락할 것이다.

임금률의 전반적인 등귀는 시장 가격을 일시적으로 교란시킨 후 이윤율의 일반적 하락을 야기시키나 상품 가격에 대해서는 아무런 장기적인 변동도 초래하지 않는다.


웨스톤은 생활 필수품에 대한 거대한 수요 증가와 그 결과로 일어날 무서운 물가 등귀를 좀 생각해보라고 외쳤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미국의 농산물 가격은영국보다 낮고, 또 미국에서 자본과 노동간의 이반적인 관계가 영국과 동일하고, 연 생산물은 미국이 영국보다 훨씬 적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농업 노동자의 평균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영국 농업 노동자 평균 임금의 2배 이상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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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 <유토피스틱스> 3장 요약

 

■ 명실상부한 합리적 세계, 또는 낙원의 회복은 가능한가?



우리가 그 결과가 불확실한 길고 어려운 이행과정을 겪는 중이라면, 우리 앞에는 두 개의 커다란 질문이 놓여 있다. 우리는 실제로 어떤 종류의 세계를 원하는가? 그리고 어떤 수단 혹은 경로를 통할 때 거기 도달할 가능성이 가장 클까? 나는 이에 대해 유토피스틱스 즉 역사적 대안에 대해 진지하게 평가하는 동시에 가능한 대안적인 역사적 체제들의 실질적 합리성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수행한다는 관점에서, 그리고 확실성의 종언(다시 말해 진보의 필연성이 아닌 가능성)의 관점에서 문제를 던지고자 한다.


1. 근대 세계체제 내의 역사적 사회주의


역사적 사회주의에 적용되는 주된 죄목은 다음 세 가지이다. ①국가 및 당 권력의 자의적 사용 또는 공포정치 ②노멘클라투라(Nomenklatura)에 베풀어진 온갖 특권 ③국가의 개입으로부터 기인하는 광범위한 경제적 비효율성. 그러나 이러한 특성은 이들 당의 휘하에 있지 않았던 체제의 경우에도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렇다면 실제로 자신의 원만한 작동을 위하여 이러한 종류의 정권을 필요로 했던 것은 바로 전체로서의 체제 그 자체 아닐까?

물론 혹자는 모든 국가체제가 이와 같지는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들도 세계체제의 매우 좁은 한 구석(일부 부유한 지역)에서만 찾아볼 수 있을 뿐이다. 여기에는 매우 커다란 중간계층이 거주하고 있으며, 전지구의 파이 가운데 자신들의 몫에 대해 이들 집단이 상대적인 만족감을 느끼고, 이들을 보호해주는 ‘법치’가 제도화된 점을 꼽을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한번도 자율적인 전체였던 적이 없으며, 언제나 국가간체제의 작용에 의해 제한을 받아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틀 안에서 움직였을 분만 아니라 대안적 역사체제의 활동을 뜻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2.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체제를 위하여


모든 사람에게 삶의 질을 극대화시켜주는 데 우선권을 주면서, 동시에 집단적인 폭력수단들을 제한하고 통제하여, 모든 사람이 대체로 그리고 평등하게 신변의 안전을 느끼고 타인들의 생존이나 평등권을 위협함이 없이 가장 폭넓은 범위의 개인적인 선택권을 누릴 수 있는 구조를 고안해내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이는 기만적이게도 민주적 체제라 불려온 수정되고 변형되고 은폐된 전제정치 대신에, 자유주의의 이상을 평등주의적 체제 혹은 이론 그대로의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것만으로 민주적이고 평등주의적 체제라는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할 것이다. (어쩌구 저쩌구~~~)


3. 끊임없는 자본축적의 우선성의 극복을 위한 제언


일반적으로 금전적 보상은 질 높은 노동을 위한 유인책이라고 주장된다. 그러나 질 높은 공예품에 대해 장인에게 보상을 주는 것과 회사를 위해 특단의 이익을 올린 데 대해 경영자에게 보상을 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일을 더 잘하게 되는 일차적 자극이, 상대적으로 조금 더 늘어나는 물질적 보상보다는 오히려 명예와 자신의 노동시간에 대한 통제력의 증대 등의 결합에서 오는 대학교수를 비롯한 여러 종류의 전문직의 뚜렷한 예가 있다.

효율성은 바람직한 현상이지만, 이는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자본의 축적을 증가시키는 데 따르는 보상은 주어지지 않고 다만 실질적인 필요를 충족시키고 분배를 확대하는 데 대해서만 보상을 받는 경우라고 해서, 그 주체가 덜 효율적으로 일할 것이라는 예상은 전적으로 타당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오늘날 대기업가들이 소도시의 건축가나 정비공장 기술자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큰 조직은 작은 조직보다 효율적인가? 비영리기관들이 영리기관에 비해 항상 능률면에서 떨어지는가? 이와 같은 문제에서도 확실한 증거는 없다. 따라서 대안적 체제의 가능한 기초로서 내가 제안하는 첫 번째 구조적 요소는 체제 내 생산의 기초양식으로서 탈집중화된 비영리 단위들을 설립하는 일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가진 독점적으로 통제되는 세계시장이 아니라 진정한 시장, 즉 번잡한 도로의 신호등과 흡사한 종류의 규제를 갖춘 시장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4. 인종․성․민족의 평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능력주의(meritocracy)는 민주화의 압력을 대변하는 것도 사실이고, 동시에 현체제에서는 손에 쥔 팻장이 (인종․성․민족이라는 기준에 의해) 부당하게 조작되었다는 말도 맞다. 이에 우리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개인간의 능력차를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공평한 사회적 ‘자리’의 배분에 대한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1)

우리는 계급없는 사회를 맞이하게 될까? 양극화의 종식이 모든 사회적 편차를 종식시키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의문스럽지만, 인간적 필요에 관한 부분을 모두 비영리기구가 제공하고 그 비용을 집단적으로 부담하도록 하여 상품화의 외부에 놓는 것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노멘클라투라의 형성을 막을 수 있을까? 교육과 의료 및 평생에 걸친 최소한의 임금에 대한 접근이 오로지 공직을 통해서만 보장받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리고 이윤추구적 경제구조를 위한 판로가 없다면, 노멘클라투라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여기에는 물론 보수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민주적 정치기구가 필요할 것이다.

생태계 보존에 있어서도 우리는 모든 생산조직으로 하여금 그들의 생산활동이 생태계 자원을 유지시키는데 필요한 비용을 내부화하도록 요구해야만 한다. 특정한 생산적 활동이 생태계에 미치는 결과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들이 존재할 것이다. 이는 궁극적으로 정치적 선택으로 귀결될 것이다. 근원적인 쟁점은 사회적 비용의 측정 평가를 둘러싼 것이며, 문제는 어떻게 그러한 결정이 진정으로 집단적인 것이 되도록 하느냐 하는 점이다. 우리가 결정의 장을 보통사람들의 참여와 통제로부터 분리시키지 않으면서도 세계적인 수준에서 이를 가장 잘 제도화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이 점에서 한 가지 우리 편인 것은 인간의 창조성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서 필연적인 지노라는 개념을 슬쩍 끌어넣고 싶지는 않은데, 왜냐하면 창조성이라는 것이 반드시 그리고 항상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수 있을지에 대한 정치적 문제에 이르게 된다.


5. 디 람뻬두자 원칙 -- 변화를 통한 불변의 유지전략


이는 죽느냐 사느냐의 차원에서 진행되는 투쟁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다음 500년간의 역사적 체제의 기초를 놓는 일에 대하여 논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로 살펴야 할 점은 현재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 것이며 실제로 헌재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이다. 그들은 현재 구조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 특권층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는 체제의 위기를 의식했을 때 일어난다. 즉 그들이 위기의식을 실제로 느끼고, 그들의 활동과정에 이러한 예상을 완전히 통합시킬 때 말이다. 그 시점에서 그들이 아무것도 변화히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자 (아니면 그렇게 하려는 듯이 보이고자) ‘디 람뻬두자 원칙’2)(di Lampedusa principle)을 도입하려 할 가능성이 쾌 크다. 첫 번째 문제는 변화를 고안하는 일이다. 두 번째는 자기 진영의 대부분을 속이는 일이요, 세 번째는 적들을 속이는 일이다.

반평등주의적 결과를, 그것도 많은 경우 바로 같은 계층에게, 적어도 처음 몇 백년 동안 보장해준 결정적 성과를 빼놓으면 거의 모든 면에서 봉건체제와는 다른 것이 자본주의체제인 것이다. 앞으로 특권층은 현재 불만을 가진 자들의 어법을 많이 끌어들여 자본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 했던 것과 같은 행위를 할 것이다. 그것은 환경이라든가 다문화주의 혹은 여성의 권리라는 명목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운동 자체가 흡수를 거부하는 경우에도 수사법은 흡수 가능하다. 그런데 여기서 세 가지 문제가 나타난다.3) 첫째는 세계적인 차원의 집단 전체에는 이득이 되는 일이 특권층 내의 하위집단들에게는 전혀 좋은 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손해를 보는 하위집단들은 물론 동조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그리하여 그 조치의 정치적 생존가능성을 뒤흔들어놓을 것이다. 둘째는 특권층 가운데 일부가 생각해 낸 ‘디 람뻬두자’ 전략이 있다고 할 때, 특권층의 다른 일부는 현재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해 이를 정치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전략의 옹호자들은 모든 것을 낱낱이 까발려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디 람뻬두자 저략의 목적 자체를 짓밟는 것이 된다. 이는 세 번째 문제로 직결된다. ‘디 람뻬두자’ 전략의 핵심 요소는 실제 전략에 대해서는 결코 너무 공개적으로 선포하지 않으면서 표면적 전략만을 고수하는 것이다. 즉 자신들 쪽에 인력을 동원하기에는 충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대편에게 맹렬한 반대의 증거나 동기를 제공하지는 않을 만큼의 설명만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 반대편에서, 억압받는 사람들의 행동은 어떠할 것인가? 그들의 내부는 특권층보다 이질적이며 무정형적이기 때문에 더욱 예측하기 힘들다. 나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어떤 강령이 아니라 단지 강령에 대한 토론이 포함해야 할 몇가지 요소들, 즉 실질적으로 더욱 합리적인 역사적 체제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 그리고 거기에 도달하기 위해서 어떻게 이행의 시기를 헤쳐나갈 것인가 하는 점들을 제시했다.


6. 새로운 질서의 성격은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달렸다.


체제의 마지막 시기 즉 이행기는 예측 불가능하지만 또한 특히나 개인과 집단의 참여에 좌우되는데, 이를 나는 자유의지 요소의 증대라 부른 바 있다. 우리는 당면한 구조적 위기의 성격과 나아가 21세기를 위한 우리의 역사적 선택을 이해할 수 있도록, 지식의 틀을 재구축해야 한다. 일단 우리가 선택의 여지들에 대해 이해하고 난 후, 우리는 승리하리라는 아무런 보장 없이도 투쟁에 참가할 태세가 되어야 한다. 이는 긴요하다. 왜냐하면 환상은 오직 환멸을 낳을 뿐이며, 그에 따라 탈정치화를 낳기 때문이다.

현존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의 끊임없는 축적과정에 구조적인 한계가 존재하며, 이러한 한계들이 체제의 작동을 막는 제동장치로서 현재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내가 작동 메커니즘의 점근선이라 부른 이러한 구조적 한계들은 겪어내기에 불쾌하며 그 궤적을 결코 예측할 수 없는 구조적인 혼돈의 상황을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혼돈으로부터 약 50년간에 걸쳐 새로운 질서가 떠오를 것이며, 이 새로운 질서는 그 사이 모두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형성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결과가 더 나아질지 더 나빠질지를 예측하지도 않으며 또 할 수도 없다는 의미에서 나의 분석은 낙관적인 것도 비관적인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우리 모두에게 훨씬 더 이로운 종류의 구조와, 그러한 방향으로 우리를 움직여줄 종류의 전략에 대한 논의를 고무하려 노력한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다. 그러므로 동아프리카에서 쓰는 말대로 하람비(harambee)!4)







 

1) ex) 100명에게 시험을 치게 해서 50명에게 자리를 나눠준다고 했을 때, 상위 10명에게는 일단 자리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위 10명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시킬 수 있다. 그러면 가운데 80명은? 사실 이 80명이 그야말로 ‘중간’의 실력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그 내부에서도 차이가 있겠지만, 이들은 대개 100명 중에 평균적 능력을 갖춘 이들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나머지 40개의 자리는 80명의 추첨을 통해서 배정하는 것은 어떨까? 물론 하나의 가정일 뿐이다. (월러스틴)

 

2) 『살쾡이』(1958)의 작가인 이탈리아의 소설가 주제뻬 디 람뻬두자에서 따온 것으로, 19세기 중엽 씨칠리아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에서 한 귀족이 다른 귀적에게 “만사를 전과 같이 유지하려면 모든 것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3) 책에는 두 가지라 말하지만, 첫 번째 문제가 두 개로 나뉘기 때문에 실제로는 세 가지.

 

4) 1950~60년대 케냐 민족운동의 구호로서, “힘을 모아 해보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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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 <유토피스틱스> 2장 요약

 

■ 어려운 이행기, 지상의 생지옥?



1. 거대이윤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자본주의는 자본의 끊임없는 축적을 허용하며 긍정하는 체제이다. 하지만 거대 이윤을 내는 일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닌데, 왜냐면 경쟁자들은 가격과 그에 따른 이윤폭을 낮추기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을 결정하는 ‘손’인 가격과 비용은 안 보이는 것도 아니지만, 완전히 보이는 것도 아니며, 페르낭 브로델이 자본주의의 ‘불투명한 지역’이라 부르는 어렴풋한 중간세계에 자리잡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시장에 불가피하게 개입하는 국가와 관련된다. 전통적으로 자본주의 이론가들은 애덤 스미스를 따라 국가의 시장 ‘개입’을 개탄해왔다. 그러나 나는 무제한적 자유방임주의가 자본주의의 대들보라는 주장은 속임수일 뿐이라고 말해도 무방하다고 믿는다.

자본주의 생산자들은 임금지출액과 세금부담액을 줄이는 데 많은 힘을 쏟는다. 우리는 이를 딜레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임금지출액이 거의 제로인 경우, 물론 이윤의 즉각적인 폭은 치솟을 것은 분명하지만, 유효수요에 미칠 중기적 영향은 참혹할 것이다. 마찬가지의 경우가 세금부담액에도 해당된다. 세금은 생산자들이 필요로 하는 봉사에 대한 대가이며, 여기에는 특정한 생산자들이 시장을 부분적으로 독점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국가의 노력이 포함된다. 따라서 지나치게 낮은 세율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세금부담액과 임금지출액이 각기 늘어날 때마다 이윤의 폭은 잠식된다. 실제로 이것이야말로 자본가들 사이에서 성공의 시험대이며, 가장 잽싸고 정치적인 연줄이 가장 좋은 사람이 이기는 경기이다.


2. 생산자 부담의 증대와 생태계의 위기


임금과 봉급의 형태로 개별 피고용자들에게 사회적으로 규정된 재생산 비용보다 더 많이 이전되는 잉여가치의 일부는 작업장과 정치적인 장에서 이루어지는 계급투쟁의 결과이다. 국지적인 노동자집단이 작업장이나 정치적 영역에서, 혹은 좀더 흔히는 양쪽 모두에서 조직화됨으로써,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생산자가 실질임금의 상승을 거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이를 받아들이는 데 드는 비용보다 더 높게 만들 수도 있다. 물론 임금지출액의 상승은 또한 유효수요의 상승이며 따라서 어느 집단의 생산자들에게는 이득이지만, 상승된 임금을 지불하는 집단에게는 반드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한 상승이 일정한 집단의 생산자들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그런데도 이들이 그곳의 정치적 장에서는 이를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없을 때, 그들은 자기네 생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노동자들의 임금이 역사적으로 낮은 곳으로 재배치함으로써 해결책을 찾고자 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약한 노동자집단은 화폐화가 덜 된 농촌지대를 벗어나서 도시의 생산지대로 처음 옮겨온 사람들이다. 이렇게 정치적 약점을 지녔던 어떤 노동자집단도 그런 약점들을 30-50년 내에  극복했고, 오늘날에는 훨씬 더 짧은 기간 안에 그렇게 되리라 장담할 수 있다. 즉 생산의 재배치라는 것은 그것에 따른 이득이 다분히 일시적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이제 지구에서 재배치가 가능한 지대가 존재하는 비율을 가리키는 곡선은 점차 점근선에 도달해가고 있다. 세계의 탈농촌화가 가속화되면서 노동자들의 교섭력은 증대하고 있다.

점근선은 세금부담액에서도 나타난다. 노동자뿐만 아니라 자본가까지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국가가 더 많은 지출을 하기를 바라왔는데, 만약 국가가 더 많은 지출을 하려면 더 많은 세금을 걷어야 한다. 국가로 하여금 더 많이 지출하되 동시에 더 적게 과세하라는 모순적 압력이 작동하는 것이다.

세 번째 점근선은 생존조건의 고갈이라는 곡선이다. 점점 더 많은 발전과 그에 따른 더 많은 파괴가 점근선에 다다르게 만든다. 이렇게 된 이유는 파괴에 의해 이득을 보는 생산자들이 대부분 그러한 파괴를 생산비용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로 비용의 절감으로서 기록해왔기 때문이다. 신고전경제학에서는 이를 비용의 외부화(externalization of costs)라고 부른다. 국가는 점차로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한 재정지출을 늘리라는 요구에 직면해 있고, 이는 생산자에 대한 이윤압박과 기업의 재정위기를 초래할 것이다.


3. 신자유주의는 성공할 것인가?


현재의 상황에서 자본가들마저도 강한 국가를 요구한다. 강한 국가가 없다면 상대적인 독점이란 있을 수 없으며, 자본가들은 경쟁적 시장의 부정적인 면들을 겪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런데 국가는 왜 약해졌는가에 대해서 많은 이들이 초국가적인 기업체들이 제 진정으로 전지구적이 되어서 국가 규제를 피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전적으로 오류다.

우리는 주변에서 온통 반국가주의적 목소리들을 듣는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반국가주의적 목소리들은 세계 노동인구 그 자체로부터 나오고 잇는데, 이들은 모두 서방세계의 조절된 ‘사회 경제’ 모델이건, 이제 신용을 잃은 쏘비에뜨 모델이건, 혹은 제3세계의 ‘개발주의적’ 모델이건 간에 자유주의 국가들의 개혁주의적 과제에 대한 환멸의 결과이다.

신자유주의에 덧붙여 이윤압박에 대응할 수 있는 두 번째 계획은 마피아 원칙의 확대이다. 여기서 마피아란, 법적 제약을 어기고 탈세를 하거나 보호비용을 갈취함으로써 상당한 이익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 또 이를 위하여 사적인 물리력이나 엄청난 뇌물, 국가 공식과정의 부패를 동원할 태세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약한 국가들의 관료와 정치가는 많은 경우, 점점 더 약해지고 대중적 정당성을 상실하게 되면서, 국가기구 외부의 마피아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곤 해왔다. 몇몇 경우에는 그 두 집단을 구분하는 것이 유용하지도 않고 무의미할는지도 모른다. 이는 점점 더 국가의 정당성을 박탈하는 결과가 된다.


4. 국가의 쇠퇴와 국가외적 자기방어 증가의 악순환


권력의 바깥에 있는 ‘보통사람’들은 국가의 행동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효과적으로 봉사해줄 것이라는 가능성에 대해 환상을 버리면서 국가에 대하여 적대적으로 돌아서게 되고, 그 결과 자신들의 요구에 응할 수 있는 국가의 능력을 약화시킨다. 이는 결국 보통사람들이 국가의 결정들을 바꾸는 대신에 피호관계나 국가외적인 자기방어, 혹은 이 두 가지의 복합물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임을 뜻한다. 이는 거의 500년간 보통사람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보호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피호관계나 국가외적인 자기방어의 역할이 줄어왔다는 근대 세계체제의 장기적 추세가 역전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1)

국가 정당성 하락의 가장 크고 즉각적인 결과는 두려움, 즉 범죄와 인종갈등과 관련된 것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범죄가 빈발한다고 생각되는 지역을 피하게 되며, 또한 국가에 징벌적 구조를 증가시키도록 압력을 넣는다. 이는 정당성의 관점에서건 재정적 자원의 관점에서건 궁극적으로 체제에 과부하를 가져온다.

경찰력이라는 개념 자체가 형성된 19세기 초엽에는 개인적 치안과 자경단을 만들어냈던 공포스러운 환경을 끝장내겠다는 생각이 강했다. 이 개념은 세계체제 전역으로 확산되어,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25년 동안 최고치의 효율성에 도달했다. 이제 그 추세가 눈에 띄게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범죄의 확산에 대해 국가의 대처능력이 명백히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사람들은 커다란 초조감을 드러낸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범죄율 증가에 따라 경찰력은 점점 더 강력하고 무절제한 힘으로 대응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미연방수사국(FBI)은 한때는 갱단을 소탕하는 영웅으로 우상화되고, 공산주의의 위협에 맞서는 없어서는 안 될 수호자로 간주되어 왔지만 최근 들어 그 자신의 무법성과 무능력으로 욕을 먹는 조직이 되었으며, 이는 우파 쪽에서 주로 제기되기 십상이었다.


5. 근대 세계체제의 창조물로서의 인종갈등


최근 레바논, 보스니아,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르완다, 등에서 일어난 종교적, 언어적 공동체에 기반한 전쟁에 대한 통상적인 분석은 이들이 원시적인 분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는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전혀 설명해주지 않는다.

‘인종적’ 정체성은 어디까지나 근대 국가구조의 틀 안에서 주장되는 정체성인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정치적  행동의 양식이며, 기존 정치구조가 최소 수준의 공정한 경기도 보장해줄 수 없는 것으로 탈정당화된 바로 그때, 그리고 다른 분할선들, 다시 말해 좀더 납득이 갈 수도 있는 이데올로기적인 정치적 분할선들이 정치적으로 가당찮아 보이게 된 바로 그 때 더욱 격렬해진다. 인종분규의 증가는 국가 정당성 상실의 가장 큰 지표이다.

19세기 초부터 인류가 경험한 민족주의는 스스로 근대주의적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프랑스나 러시아 혁명의 전통에 호소했다. 오늘날 인종정화의 지지자들은 바로 이 전통을 거부하며 행동한다. 상대적으로 문명화되었다고 주장하는 부유한 나라들에서 이러한 종류의 절망적인 인종분규가 출현하는 것 또한 목격할 수 있다.


6. 세계체제의 해체를 가져올 몇가지 형태의 분출


앞으로 다가올 콘드라티예프 A국면은 틀림없이 양극화의 격차를 더욱 벌려놓을 것이다. 이에 따라 세 가지 분출 형태가 나타날 것이다. 하나는 적어도 지난 2세기 동안 세계 안정성의 중요한 대들보였던 필연적 진보의 이데올로기가 정당성을 잃은 것이다. 우리는 세계의 비중심 지역에서 자본축적의 근본 원리를 전면 부정하는 강력한 운동들을 보게 될 것인데, 이는 기존 맑스주의의 거부보다 훨씬 더 강력한 것이다. 우리가 마구잡이로 ‘근본주의적’이라고 부르는 운동의 다수가 이러한 태도를 반영하고 있으며, 종종 종교적인 색채를 띤다. 여기에는 유대교, 기독교, 힌두교, 불교 기타 등등의 다양한 변종들이 존재하는데, 이는 현존 세계체제에 내재한 양극화를 극복할 능력이 자신들에게 없다는 자각으로 인해 자신들이 세운 국가구조나 고전적인 반체제운동들에 대해 느끼는 대중의 환멸에서 나온다. 이 운동들은 아마 그 자체로서는 근본적인 변화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을 넘어서는 (전지구적인 이윤압박이나 개혁주의적 자유주의의 대한 전지구적인 환멸과 같은) 요소들의 맥락에서 보면, 전체 구조에 심각한 파탄을 초래하게 된다.

그보다 더 큰 해체의 힘은 세계 군비의 민주화이다. 이제 핵의 확산은 막을 수 없는 일이 되었다. 게다가 일부 무기는 국가가 아닌 집단들의 손에 이미 들어가 있을 지도 (혹은 곧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옴진리교는 비국가집단이 화학무기를 통해 끼칠 수 있는 해악을 보여준 바 있다. 이에 따라 비중심지대에서 강대국들에 군사적으로 도전하는 싸담 후세인같은 이들이 등장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미국은 그를 물리치는데 매우 힘든 정치적 동원을 했는데, 앞으로 그런 동원이 또 다시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도전은 가난한 나라로부터 부자 나라로의 개인적인 이민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중심지대는 얼마간의 이민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지만 오려는 사람을 모두 받아들이고자 하지는 않는다. 경기하강국면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그리하여 그들은 장벽을 세우지만, 시간이 갈수록 장벽의 효과는 희미해진다. 이에 따라 범유럽권국가는 점점 덜 백인적이게 된다. 이에 따라 그들은 이민자들에게서 시민권을 박탈한다. 그런데 이민자 집단이 일정 비율 이상에 도달하면 국내 분규의 조건이 갖춰지게 된다. 그리고 그야말로 모든 개별 국가들이 나름대로 분쟁의 불씨를 안고 있을 것이기에, 어떠한 충돌이든 촉발되기만 하면 마치 번지는 산불처럼 쉽게 국경을 넘을수 있을 것이다.


7. 위기에 처한 체제와 자유의지 요소의 부상


체젲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구조적 결정력은 개인과 집단의 자유의지를 능가한다. 그러나 위기와 이행의 시기에는 자유의지의 요소가 중심적이 된다. 2050년의 세계는 우리가 만드는 대로 될 것이다. 이는 우리의 주체성과 우리의 헌신 그리고 우리의 도덕적  판단에 전적인 권한을 부여하게 된다. 이는 또한 이 시기가 끔찍한 정치투쟁의 시기가 될 것이라는 점을 의미하는데, 이른바 정상적인 시기에 비하여 훨씬 더 많은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1) ‘봉건제적 정치양식의 부활’ 가능성에 대한 암시라고 보여짐. (요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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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러스틴, <유토피스틱스> 1장 요약

 

■ 꿈들의 실패, 또는 낙원의 상실?



1. 유토피스틱스 -- 가능한 역사적 대안의 탐구


유토피아는 종교적인 기능이 있으며, 때로는 정치적인 동원을 위해 활용되기도 한다. 또 그것은 환상을 길러내며, 환멸을 낳는다. 내가 대체 용어로 고안해 낸 유토피스틱스라는 단어의 취지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것은 역사적 대안들에 대한 진지한 평가이며, 가능한 대안적 역사체제의 실질적인 합리성에 대한 우리의 판단 행위이다. 이는 인간의 사회적 체제들과, 이 체제들이 지닌 가능성의 한계, 그리고 인간의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는 영역에 대한 냉철하고 합리적이며 현실주의적인 평가이다.

유토피스틱스는 우리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하는가 --다시 말해 수단이라 불리는 부차적이고 부수적인 목표가 아니라 우리의 전반적인 목표-- 에 대해서 과학과 도덕 그리고 정치학으로부터 우리가 배우는 바를 조화시키는 일이다. 수단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은 역사적 체제가 정상적인 삶을 누릴 때 지속되는 문제들의 일부이다. 내가 변혁적 시공간(TimeSpace)이라 부르는 바로 이러한 순간들에 이르러서야 유토피스틱스는 그저 타당한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최대 관심사가 되는 것이다.

우리의 집단적 지식의 타당성과, 특히 이 지식으로부터 우리의 역사적 체제들에 대해 이끌어낼 수 있는 결론들의 타당성은 무엇이 실질적 합리성을 구성하는가에 관한 투쟁에서 중심 쟁점이 된다. 따라서 유토피스틱스는 지식의 구조에 대해서, 그리고 사회적 세계의 작동방식에 관해 실제로 우리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에 대해서 면밀하게 재검토하는 작업을 포함한다.


2. 근대세계의 혁명은 왜 환멸만을 낳았는가?


인간이 정치적 혁명의 꿈을 가져온 이래 언제나 환멸을 겪어온 듯 하다. 프랑스 혁명과 러시아 혁명이 그 좋은 예이다. 보수주의 사상가들은 이것이 사회공학의 결과로서 필연적으로 벌어지게 마련인 사태일 뿐이라고 한다.

근대세계의 혁명적 격변들의 대부분은 피억압 대중의 자발적 봉기라기보다는 (적어도 초기에는) 특정 집단이 국가질서의 붕괴 순간에 기회를 장악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대중들의 지지는 사후적인 것이었다. 보수주의가 대중에게 강요하는 인내심은 결코 폭넓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하층집단들은 이를 그저 감내해 왔을 뿐이다. 하층집단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혁명에 지지를 보낸다.

진정한 혁명적 변화를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 논란이 많지만,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사실은 기본적 변혁은 국가 수준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근대 세계체계를 구성하는 국가들에서 혁명은 결코 존재한 적이 없으며, 혁명이라는 말이 그 근저에 놓인 사회구조나 혁명을 겪었다는 국가의 작동양식을 뒤바꾸는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라면, 혁명은 있을 수도 없었다.

국가간체제의 제약 내에서 작동하는 이른바 주권국가들의 창출은 자본주의 세계경제 창출의 요체였으며, 그 구조화에서 필수적인 요소였다. 국가는 결코 자율적인 실체였던 적이 없으며 세계체제의 주요한 제도적 특성에 불과하다. 생산양식을 가졌다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전체로서의 세계체제였다. 이러한 체제 안에서 국가는 체제의 제도이며, 따라서 그 특정한 형태에 관계없이 이러한 자본주의적 추진력의 우선성에 어떤 방식으로건 부응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혁명이라는 용어가 이전에는 봉건적이었던 국가가 자본주의적으로 되었다거나, 이전에 자본주의적이었던 국가가 사회주의적으로 되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이는 현재 적용 가능한 의미를 갖지 못하며 현실의 기만적 묘사일 뿐이다.

사회주의 국가도 이러한 세계체제의 일부였는데, 이런 주장에 대한 주요한 반박 중 하나는 바로 현실 사회주의 국가가 순수하지 못했고 제대로 사회주의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혁명가들은 충분히 혁명적이었다. 그들은 개인으로서 그리고 체제로서 자신들이 세계체제의 구조에 의해 특정한 방식으로 그리고 특정한 매개변수 내에서 움직이도록 제약받고 있으며, 이를 무시할 경우 세계체제 내에서 중요한 행위자가 될 모든 능력을 상실하게 되리라는 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시기의 이르고 늦음은 있을지언정 자신들의 의도를 현실에 맞춰 굽히게 된다.

프랑스와 러시아 등 대부분의 혁명들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정상적이고 지속적인 삶 가운데서 일어났다. 일부 사람들이 보여준 혁명에 대한 열광과 또 다른 사람들이 보여준 엄청난 적대감은 그 체제가 작동하는 메커니즘의 일부였다. 열광이 누적된다는 사실이 한 가지 메커니즘이며, 열광이 환멸에 자리를 내주었다는 사실이 또 하나의 메커니즘이다. 혁명은 결코 그 옹호자들이 바란 방식이나, 그 반대자들이 두려워한 방식대로 작동한 적이 없다. 그렇다고 혁명이 있으나마나 한 것이었다는 말은 아니다. 사실상 그러한 격변의 거듭된 패턴은 체제의 어떠한 장기적 추세를 수립하는 중대한 요소였으며, 그 장기적 추세들의 영향은 오늘날 1945년 이후에 와서야 그리고 1989년 이후에 더욱더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3. 프랑스혁명 이후 -- 민중의 열말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누군가가 이들 나라에서 혁명 20년 전의 어느 한 순간과 일반적으로 혁명이 종결되었다고 생각되는 시점으로부터 20년 후의 어느한 순간을 비교한다면, 형편은 비슷하되 이른바 혁명을 겪지 않은 나라들에서 발견되는 것보다 그 변화가 과연 클지는 의문이다. 그러나 세계체제 전체를 본다면 결과는 분명히 다르다. 이들 두 혁명의 결과로서 세게체제의 지구문화(geo culture)에서는 커다란 변화들을 추적할 수 있으며, 이는 세계체제 전체의 장기적 추세에 반영되는 변화인 것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정당성을 획득하게 된 개념은 세 가지가 있다. ①정치적인 변화가 예외적이며 본질적으로 부당하다기보다는 항상적이며 정상적이라는 개념. ②주권이 군주나 귀족집단체가 아닌 인민에게 있다는 것. ③국가 안에 거주하는 인민이 민족을 구성하며 그들은 그 민족 내지 국민공동체의 시민이라는 점. 이에 대해 프랑스혁명에 대한 거부로서 보수주의 이념이 등장했고, 프랑스 혁명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지만 기본개념들은 승인하는 자유주의가 등장했다.

보수주의자들은 법제화를 통한 변화가 사회질서에 끼칠 수 있는 손상에 주목하면서, 전통적 기구들과 상징적 지도자들의 권위를 강화하는 데 희망을 걸었다. 반면 자유주의자들은 민중이 요구하는 이론적 정상성, 민중주권, 시민권을 허용하되 이들 원칙에 따라 일어날지도 모르는 변화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그들은 통제된 변화를 원했다.


4. 1848년 혁명 -- 지구문화로서의 자유주의의 확립


1848년 혁명은 좌파 이념이 중도파 자유주의로 간주되던 것과 결별하여 우파 보수주의와 중도파인 자유주의 모두에 대립하는 제3의 이념으로서 출현한 순간을 이른다. 이를 일반적으로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이 혁명은 매우 빨리 불타올랐으며, 그만큼이나 빨리 소진되었다. 그럼에도 당국자들은 이 때문에 크게 겁먹었고, 이 두려움은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세력이 함께 기성의 질서를 수호하는데 협력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848년 실패는 좌파에 정치적 현실주의라는 각성을 강요했는데, 이는 주권국가에서 권력의 획득과 국가사회의 변혁을 목적으로 하게끔 했다. 이러한 전략은 장기적으로 볼 때 전문가들에 의하여 관리되는 합리적인 변화라는 자유주의의 전략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거의 어디서나 보수주의, 자유주의, 사회주의라는 3대 이념이 정치적으로 경합하게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중도파인 자유주의가 세계적인 이념이 되었는데, 이는 보수주의와 사회주의가 결국 관리된 개혁을 기초로 하는 자유주의적 주제의 변형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한다. 이로서 대중의 압력이 정당화된 상황에서 이를 억제할 방법에 관해 한 조를 이루는 세가지 이념이 등장하자, 한 세기 넘게 모든 사회적 행동이 그 안에서만 일어나도록 할 매개변수가 수립되었다. 그 결과로 참정권과 복지국가가 등장했다. 결국 자유주의적 양보들은 더욱 근본적인 변화들에 대한 압력을 낮추게 되었다.


5. 민족주의․인종주의․성차별주의의 대두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야누스의 얼굴을 하고 있다. 한편으로 그것은 억압자에 대한 피억압자의 저항이지만, 그 반대이기도 하다. 민족주의에 이러한 특성을 부여한 것은 바로 민족주의와 시민권의 연계이다. 무엇을 포함시킨다는 것은 또한 무엇을 제외시킨다는 뜻이다. 시민권이 한 일은 배제가 공개적인 계급장벽이 아니고 민족적인, 혹은 숨겨진 계급적 장벽에 의해 이루어지도록 바꿔놓는 것이다.

백인종의, 혹은 아리안족의 우월성에 대한 노골적인 이론화인 인종주의는 19세기에 북부와 서부 유럽에서, 그리고 유럽의 정착자들에 의해 지배되는 다른 지역의 국가들에서 흥성하였다. 자유주의적 정치체에 소속된다는 것은 강대국 집단의 공통 시민권이라 할 일종의 특급시민권을 수반하는 것으로서, 현재는 강대국에 거주하고 있더라도 인종적으로 세계의 나머지 부분에 기원을 둔 사람들이나, 백인들이 정착한 국가의 토착민을 포함한 세계의 나머지사람들이 거기서 배제되었음을 뜻했다.

성차별주의는 주부(housewife)의 개념을 창조하고 신성화하는 것을 필요로 했다. '단독임금 가정'의 남성 생계담당자와 주부는 한 짝이 되는 위치에 자리매김 되었다. 이는 다음의 세 가지 효과를 낳았다. ①얼마만큼의 잉여가치가 노동계급에 실제로 재배당되고 있는지를 흐리게 했다. 단독임금의 남성 임노동자의 늘어난 임금은 노동시장에서 여성과 어린이 경쟁자가 배제됨으로서 얻어진 결과일 뿐이다. ②커다란 집단이 배제된 현실에서 편입의 가치는 올라갔다. 백인 여성들은 비백인 세계에 간단히 추가되었고, 남성 노동계급의 지위는 덜 모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③시민권의 부대조건으로 군복무라는 것이 강조되었다.


6. 러시아 혁명 -- 민중적 열망의 비유럽세계로의 확산


러시아혁명은 볼셰비끼들에 의한 계획된 봉기의 결과라기보다는, 혹독한 군사적 패배에 더하여 주민 사이의 기아가 확산됨으로써 러시아의 정치질서가 완전히 붕괴되었을 때, 볼셰비끼가 상대적으로 더 잘 조직화되어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었던 사실의 결과였다. 또한 볼셰비끼는 러시아혁명 완수를 위해서는 독일혁명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독일혁명은 일어나지 않았고, 그 결과는 스탈린주의, 그리고 91년 소련의 붕괴다.

러시아혁명은 범유럽의 강대국들에게는 노동계급을 무마하기 위해 자유주의가 나눠주는 꾸러미에 담아야 할 분담금을 상당히 증액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비유럽세계의 경우에는 이보다 효과가 더 크다. 러시아혁명 이후 민족주의의 세균은 유럽의 경계 바깥으로까지 확산되어갔다. 이는 비유럽 국가가 유럽의 통제로부터 해방되어 산업화를 이루고 군사력을 획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프랑스혁명이 범유럽세계의 위험한 계급들에게 희망과 기대, 그리고 더욱 커진 열망을 불어넣었다면, 러시아혁명은 이를 비유럽세계의 위험한 계급들에게 불어넣은 것이다. 비유럽세계의 민족해방운동은 자유주의 이념이 전지구적으로 적용될 수밖에 없으며 그들의 양보에는 전지구적인 내용이 담겨야만 한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7. 1968년 혁명 -- 자유주의의 퇴출과 구좌파에 대한 환멸


1848년 세계혁명의 변이는 세계체제의 지구문화의 토대로서 자유주의가 수립되는 것으로 이어졌다면, 1968년 세계혁명은 바로 이 역할로부터 자유주의를 퇴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들은 바로 지구문화에서 지닌 자유주의의 지배적 역할 자체를 과녁으로 삼았으며, 갖은 수단으로 자유주의를 이 위치에서 끌어내리고자 했다.

68이후 세계는 지정으로 삼분법적인 이념상의 분열상태가 되었다. ①보수주의. 가부장적 전통주의와 극단적 반복지주의를 강화했다. ②자유주의. 이 이념의 대표주자는 이제 사민주의 정당으로 넘어갔는데, 이들은 전문가에 의해 관리되는 개혁이라는 벤섬과 밀의 전통을 공개적으로 수용했고, 여기에 적당히 ‘사회적인’ 경제를 가미하는 정도였다. ③급진주의. 마오주의 분파들이 등장했다 희미해지고, 묵시론적 변혁을 추구하는 세력과 개혁주의적 세력으로 양분되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이제 대중들이 전통적인 반체제운동들(이른바 구좌파)을 외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의 본질적인 요소는 환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환멸은 이들 정당이  했던 역사적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는 의식에 다름아니었다. 이는 특정한 정부팀의 업무수행에 대한 일시적인 실망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런 대중적 감정은 구소련의 붕괴에서 정점에 도달했다.


8. 국가에 대한 희망의 상실 -- 역사적 이행기의 시작


이러한 희망 상실은 반국가주의(antistatism)의 확산으로 귀결되었다. 이는 한편으로 국가구조의 전반적인 정당성 상실이자, 도덕적 연대와 실질적 자기보호를 위한 비국가 기구에 의존하는 방향으로 돌아섬을 의미했다. 부활한 보수주의 운동은 복지국가의 장치들을 폐기하는데 이러한 정서를 이용했다. 이렇게 만연한 반국가주의는 (국가간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자유주의 승리가 아님은 물론이다. 이른바 전지구화의 이데올로기 찬양이란 우리의 역사적 체제가 죽어가면서 부르는 마지막 노래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이상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현재에 대해 참을성있다고 해서, 그 사실이 곧바로 그 사람들이 지금보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자신들의 열망을 버렸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욕망은 그 어느때보다도 강하며, 이 사실이 희망과 믿음의 상실을 더더욱 절망하게 만든다. 이는 우리가 역사적 이행기에 돌입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해준다. 이는 또한 역사적 이행이 고난의시기, 그리고 이행이 계속되는 동안 내내 지속될 암흑의시기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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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르원틴, <DNA 독트린> (궁리)

그러나 다윈 자신은 생존을 위한 투쟁에 대한 생각의 원천이 무엇인지 의식하고 있었다. 그는 자연선책에 의한 진화의 개념이라는 착상을 18세기 말의 경제학자인 토마스 맬서스의 유명한 저서 <인구론>을 읽으면서 얻었다고 말했다. 이 저서는 과거 영국에서 시행되던 빈민구제법(Poor Law)에 반대하는 내용이었다. 맬서스는 그 법이 지나치게 관대하다고 생각했고, 빈민들이 아이를 낳을 수 없도록 좀더 엄격하게 통재해서 사회적 불안을 일으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자연선택을 기초로 한 다윈의 이론은 전체적으로 스코틀랜드 경제학자들에 의해 수립된 초기 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 이론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다윈은 매일같이 신문을 읽으면서 주식투자로 생계를 꾸렸기 때문에 경제학적인 적자생존에 대해 얼마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다윈이 한 일은 19세기 '정치' 경제학을 받아들여서 그것을 '자연이라는' 경제의 모든 것을 포괄하도록 확장시킨 것이었다. 나아가 그는 진화의 성선택 이론을 발전시켰느데, 여기에서 작용하는 주요한 힘은 수컷을 선택하는 암컷들에게 좀더 매력적으로 보이기 위해 애쓰는 수컷들 사이의 경쟁이다. (25-26쪽)

 

 

 

서로 다른 인종들은 공격성이나 창조성, 그리고 음악성에서 유전적 차이를 갖는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문화 전체가 문화적 고물(古物)의 작은 부분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되었다. 일부 사회생물학자들은 그것을 '문화유전자(culturgens)'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 의하면 문화는 미학적 선호, 짝짓기 선호, 노동과 여가의 선호와 같은 파편과 조각을 그러모은 푸대 자루인 셈이다. 그 푸대를 쏟아놓으면 당신 앞에 문화가 펼쳐질 것이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위계 체계가 완성된다.

유전자는 개인을 만들고 개인은 특정한 선호와 행위를 나타내고, 이러한 선호와 행위의 집적이 문화를 만든다. 따라서 결국 유전자가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분자 유전학자들이 우리에게 인간의 DNA 배열을 찾아내는 데 들어가는 많은 돈을 내놓으라고 채근하는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의 모든 유전자를 구성하는 분자들의 배열을 알아내면 인간의 본질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33-34쪽)

 

 

 

우리는 우리 유전자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결정되지는 않는다 .발생은 부모로부터 유전받은 물질에 --유전자, 그리고 정자와 난자-- 의존할 뿐 아니라 발생하는 개체에 영향을 주는 특정한 온도, 습도, 영양분, 냄새, 시각, 소리(우리가 교육이라고 부르는 것을 포함해서) 등에도 의존한다. 설령 내가 한 유기체 내의 모든 유전자의 완전한 분자적 세부사항을 남김없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 유기체가 어떤 모습이 될지 예측할 수 없다. 물론 사자와 새끼양의 차이는 거의 전적으로 그들의 유전자의 차이에서 기인한다. 그러나 같은 종(種) 내의 개체 사이에서 나타나는 편차는 유전자와 발생환경 사이에서 일어나는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고유한 결과이다. 게다가, 매우 기이하게도, 설령 내가 발생하는 유기체의 유전자와 그 발생환경의 완전한 배열을 남김엇이 알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그 유기체의 특성을 모두 예측할 수 없다.

거기에는 또 하나의 요인이 작동하고 있다.  가령 우리가 초파리 날개 아래쪽에 나 있는 털의 숫자를 센다고 하자. 그리고 왼쪽 날개와 오른쪽 날개에 나 있는 털의 숫자가 다르나든 사실을 발견했다고 하자. 어떤 파리는 왼쪽에 털이 더 많이 났고, 어떤 파리는 오른쪽에 더 많이 나 있고 평균적인 차이는 없다. 그렇다면거기에는 계속 변동하는 비대칭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러나 초파리 개체는 몸의 왼쪽이나 오른쪽이나 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발생하는 초파리와 초파리가 발생하는 장소의 지극히 작은 크기로 미루어볼 때 초파리의 왼편과 오른편의 습도, 산소, 오도는 동일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왼족과 오른쪽의 차이는 유전적인 것도 환경적 차이에 의한 것도 아니며, 발생이 진행되는 동안 세포의 성장과 분화에서 나타난 임의적인 변이, 즉 발생 잡음(developmetal noise)에 의한 것이다.

이처럼 발생에 개입되는 우연이라는 요소가 변이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실제로 초파리의 날개털의 경우 유전적, 환경적 변이만큼이나 많은 발생 잡음에 의한 변이가 있다. 사람의 경우에는 개인 사이에서 얼마나 많은 차이가 배아(胚芽) 시기와 유아 시절의 신경세포의 성장 과정에서 나타난 임의적인 차이에 기인하는지 알지 못한다. (...)   (54-56쪽)

 

 

 

현대의 과학적 의학이 이익을 가져단준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분명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에 비해 훨씬 오래 산다. 1800년대에 북아메리카 지역에서 태어난 백인 아동의 평균 기대 수명은 45세에 불과했지만 오늘날에는 75세로 늘어났다. 그러나 그 이유가 현대 의학이 성인과 환자들의 수명을 연장시켜 주었기 때문은 아니다. 평균 기대 수명의 변화를 일으킨 가장 큰 요인은 유아 사망률의 급격한 감소이다.

20세기 이전, 특히 19세기 전반기와 중반기까지 신생아가 첫 돌이 되기 저에 죽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1860년대에 미국의 유아 사망률은 무려 13퍼센트나 되었다 .따라서 이처럼 높은 유아 사망률로 인해 인구 전체의 평균 수명이 크게 낮아진 것이다. 19세기 중엽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의 묘비는 그들 중 괄목할 정도로 많은 숫자가 아주 오래 살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과학적 의학은 이미 성년에 도달한 사람들의 수명을 늘리는 데에는 거의 기여하지 못한다. 지난 50년 동안 이미 60세가 된 사람들의 기대 수명은 고작 몇 개월이 늘어났을 뿐이다.  (79-80쪽)

 

 

 

실제로 개인들의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 배열은 정상적인 개인과 다른 정상적인 개인 사이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있다. 왜냐하면 특정 단백질이 그 기능에 아무런 손상도 가져오지 않으면서 다양한 아미노산 구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그리고 가령 3천 개의 뉴클레오티드로 이루어진 평균적인 유전자 하나에서 보통의 성인 두 사람이 약 20개의 다른 뉴클레오티드를 갖는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의 뉴클레오티드 배열을 위한 카탈로그를 만들기 위해서 누구의 게놈을 이용해야 하는 것인가?

나아가 모든 정상인들은 한쪽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속에 많은 슛자의 결함을 가진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다. 이 결함 유전자들은 다른 쪽 부모에게서 받은 정상적인 유전자에 의해 가려져서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염기서열이 해석된 DNA의 모든 부분들은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결함을 가진 특정 숫자의 유전자들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결함이 결국 카탈로그에 포함되는 셈이다. 질병을 가진 사람의 DNA와 정상적인 DNA 염기서열을 비교했을 대, 두 DNA 사이에 여러 가지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 중 어느 것이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인지 판단할 수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DNA 사이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차이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정산인과 질병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상당히 큰 집단을 조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더욱이 문제의 질병이 복수의 유전적 원인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마다 그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이 다른 경우에는 그런 방법으로도 효과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설령 그런 원인들이 유전자 변화의 결과라 할지라도 말이다.  (92-94쪽)

 

 

 

그러나 불행하게도 살아있는 유기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DNA보다 훨씬 많은 것이 필요하다. 언젠가 나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분자유전학자 중 한 사람이 과학학술회의의 개막 연설에서 만약 자신이 충분한 용량의 컴퓨터와 어떤 생물의 완전한 DNA 염기서열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생물을 계산(compute)할 수 있다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기에서 '계산한다'는 말의 의미는 그 생물의 해부학, 생리학, 그리고 행동을 완전히 기술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틀린 것이다. 그 생물조차도 자신의 DNA를 통해 스스로를 계산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동안 특정 시기의 유기체는 내부적인 힘과 외부적인 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과 결정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발생적인 역사의 고유한 결과이다. 여기에서 외부적인 힘들 자체도 -- 흔히 '환경'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들 -- 부분적으로는 그 생물이 자신의 존재 조건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수행하는 활동의 결과이다. 생물은 자신이 그 속에서 발생하는 세계를 발견하지 않는다. 그들이 그 세계를 만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부적 힘들도 자율적인 것이 아니며, 외부에 상응한다. 세포 내부의 화학적 기구들 중 일부는 외부 조건들이 그것을 필요로 할 때에만 만들어진다.  (...)

어떤 파리는 왼쪽에 털이 많고, 다른 파리는 오른쪽에 더 많다. 게다가 파리 몸체의 양편에서 나타나는 변이는 파리 개체들 사이의 평균적인 변이보다도 더 크다. 그러나 파리의 몸 양쪽은 모두 동일한 유전자를 가지며, 동일한 환경에서 발생 과정을 거쳤다. 몸 양쪽의 변이는 임의적인 세포 운동의 결과이며, 이른바 '발생잡음(developmental noise)'이라 불리는 발생 과정에서 세포 속에서 일어나는 우연한 분자적 사건들의 산물이다. 일란성 쌍둥이의 지문이 서로 다르고, 모든 사람들의 왼손과 오른손의 지문이 다른 까닭도 이러한 발생 잡음에 의해 설명된다. 발생중인 생물과 마찬가지로 실내 온도에 민감하고 내부 회로에 잡음의 여지가 있는 컴퓨터가 모든 것을 계산할 수 있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113-115쪽)

 

 

 

DNA 메시지로부터 인과적 정보를 어더내기가 어려운 깊은 이유는 동일한 '단어(word)'들이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지며, 주어진 문맥에서도 복수의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그것은 복잡한 언어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영어에서 어떤 단어도 'do'처럼 행위를 강력하게 함축하는 말은 없을 것이다. 가령 "지금 당장 해!(Do it Now!)"와 같은 경우가 그런 예이다. 그러나 "나는 모른다(I do not know)"의 사례처럼 대부분의 문맥에서 'do'는 조동사로서 기능할 뿐 그 자체로서는 아무른 의미도 갖지 않는다. 조동사 'do'는 스스로는 아무런 의미도 갖지 않지만 문장의 배열에서 일정한 자리를 지키고 간격을 띄워주는 어간 요소로서 언어적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의문의 여지가 없다. 만약 이런 기능이 없었다면 'do'는 원래 영국 중부에서 기원한 16세기 일반적인 영어 용법 속으로 스며들어가서 도처에서 "나는 알지 않는다(I know not)"와  같은 고어체를 대체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유전자 메시지 속에 들어있는 요소들은 스스로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조동사와 같은 기능을 할 수도 있다. 유전부호의 염기서열 GTAAGT는 때로는 세포에 의해 단백질 속에 아미노산 발린(valine)과 세린(serine)을 삽입시키라는 명령으로 읽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세포기구가 그 부분을 잘라 메시지를 편집하라는 장소라는 신호를 뜻하기도 하며, 때로는 조동사 'do'처럼 단순한 사이띄개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세포가 가능한 여러가지 해석 중에서 어떤 쪽을 선택하는지 알지 못한다. 이따금씩 사람의 건가을 위해 인간게놈의 염기서열을 밝히는 프로젝트가 중요하다는 주장이 생물학적 성서의 해석학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기 위한 교묘한 광고전략이 아닌지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120-121쪽)

 

 

 

최근 이른바 '은밀한 우생학(back-door eugenics)'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기 이루어지면서, 개인들에게 강요된 선택으로 인한 뜻밖의 결과로 우생학이 새롭게 등장하게 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 하는 것은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가 나타나거나 특정 정부가 소수민족이나 특정 집단을 미래 세대의 대열에서 배제시키려는 정책을 수립하는 것과 같은 실현 불가능한 사태가 아니라 사람들이 자신들이 원하는 아이들의 류를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아무도 명시적으로 우생학적 지침을 제시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미래 세대를 선별(select)하게 되는 사태에 대한 것이다. 이 새로운 우생학은 복수(複數)의 자발적인 결정에 의한 결과이며, 표면적으로는 어떤 외부적인 강제나 정책도 개입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132쪽 주석)

 

 

 

DNA에 대한 지식의 집중은 결정론적 이데올로기를 형성하는 정도를 넘어 도로시 넬킨과 로렌스 탄크레디가 '생물정보의 사회적 권력'이라고 부른 보다 직접적인 실천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결과를 야기시키고 있다. 자신들의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장미빛 환상을 부채질하고 있는 지식인들은 이러한 지식이 힘일하고 말하지만, 오히려 지식은 그 지식을 가진 자, 그리고 그 지식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에게만 권력을 부여할 뿐이라는 것이 진실에 가깝다. (...)

한 여성이 자신의 태아가 낭포성 섬유증에 걸릴 확률이 50퍼센트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대, 또는 남편이 간절히 아들을 원하는데 태아가 딸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대, 그녀가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 이전보다 더 많은 힘을 얻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 지식 때문에 그녀가 국가나 남편과 맺고 있는 관계가 행사하는 제약의 볌위 내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도록 강요받을 뿐이다. 그녀의 남편은 낙태를 허용할 것인가, 또는 요구할 것인가? 국가는 낙태 비용을 대 줄 것인가? 그녀의 의사는 낙태 수술을 시술할 것인가?  (138-1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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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독] <에코페미니즘>(반다나시바 & 마리아 미스)

예전에는 산모 그리고 산모와 아기 간의 유기적 통일성에 있던 초점이 이제는 의사가 통제하는 '태아라는 결과물'에 맞추어진다. 여성은 자궁은 활동력 없는 용기로 환원되었고 여성의 무지와 더불어 여성의 수동성이라는 관념도 조작되었다. 태아와 여성 간의 직접적인 유기적 결속은 여성을 훌륭한 어머니로 교육시킬 전문지식을 독점적으로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남성과 기계에 의해 매개되는 지식으로 대체된다.  (42-43쪽)

 

 

노동이 비노동으로 정의될 때, 가치는 무가치로, 권리는 무권리로, 그리고 침략은 개량으로 정의된다. '개량된 종자'와 '개량된 태아'는 사실상 '점령된' 종자와 태아이다. 사회적 노동을 자연상태로 규정하는 것이 이 '개량'의 본질적 요소이다. 이것은 다음의 세 가지를 동시에 획득한다. 1)그들이 착취하는 생상물의 원소유자의 공헌은 모두 버정하며, 그들의 활동을 수동적이라 치부함으로써 이미 사용되고 개바된 자원을 '사용되지 않고' '개발되지 않은' '버려진' 자원으로 변모시킨다. 2)착취를 '개발'과 '개량'으로 해석함으로써 '개량'했다는 주장에 근거하여 절도를 소유권으로 바꾼다. 3)그리고 거듭 말하지만 이전의 사회적 노동을 자연으로 정의하고 따라서 아무런 권리도 부여하지 않음으로써 민중들의 관습적, 집단적 용익권을 '해적행위'와 '절도'로 바꾼다.

아메리카 땅을 원주민들에게서 뺏는 것에 대해 토머스 모어 경이 적용한 논리에 따르며, "누구라도 쓸모없이 비어 있는 땅을 취할" 때 그 몰수는 정당화된다ㅏ. 1889년 로우즈벨트(Theodore Roosevelt)는 "정착민과 개척자는 그들 편에서 보면 기본적으로 저당성을 갖는다. 그들이 없었던들 이 거대한 대륙은 오로지 지저분한 야만인들을 위한 사냥금지구역밖에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49쪽)

 

 

 

"배의 맛을 알려면 그것을 변화시켜야 한다. 즉 입에 넣고 씹어봐야 한다." (마오쩌뚱, 1968)

 

 

 

최근의 생식기술과 유전공학은 지금까지 인간 개체, 한 사람 한 사람을 폭력적인 침략으로부터 지켜주고 한갓 연구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주던 최후의 경계까지도 무너뜨렸다. 이것은 특히 생식기술의 주된 연구대상인 여성들의 경우에 더욱 그러하다. 주체와 대상, 인간과 비(非)인간을 가르는 선을 어디에 그을 것이냐는 질문은 과학 내부에서는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과학적 패러다임은 과학적인 충동에는 한계가 없으며 추상적 지식에의 탐구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리라는 신조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연구과정 안에서는 어떠한 도덕적 간섭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과학자들은 스스로 윤리적인 질문에 답변할 수 없다. 하지만 과학자들 도한 보통의 시민이요 남편, 아버지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실험실에서 하는 작업에 관한 윤리적인 질문들과 갈수록 더 많이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그들은 대개 이 문제를 과학적인 방법에 따라, 즉 허용된 것과 허용되지 않은 것을 가르는 선을 어딘가에 새로인 그음으로써 해결한다. 이는 곧 무엇이 주체디고 무엇이 객체인가에 대하여 무엇이 인간이고 무엇이 비인간인가에 대하여 그리고 무엇이 허용된 것이고 무엇이 허용되지 않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그들이 새로운 정의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방법의 한 예가 새로운 생명윤리학자들이 태아연구라는 까다로운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태아연구는 도덕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태아연구를 금지할 것을 요구한다. 영국에서는 워녹위원회와 자원검열국이 이 문제에서 빠져나올 방법을 발견했다. 그들은 임신한지 2주 후 생명의 시작으로 보았다. 2주 이전에는 태아가 아니라 전-태아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전-태아 시기에는 연구가 가능해진다. 명백히, 그저 어떻게 정의를 내리는가의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럭저럭 하는 사이에 이 정의는 생식기술을 규제하려는 여러 나라에서 받아들여졌다. 과학자들과 의료재단의 관점에서 본다면 사태는 명백하다. 즉 생식기술, 특히 IVF공학이 성공하려면 더 많은 태아연구가 필요한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모나시 대학의 생명윤리학자 헬가 쿠제와 피터 싱어는 정의를 내리는 능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다. 그들에게 2주 된 태아는 단지 '양상추'(lettuce)일 뿐이다. 그들은 호모 싸피엔스 종과 인간 개체 사이에 구별을 짓거나 선을 긋는다. (...)

쿠제와 싱어에게 2주된 태아는 "고려할 필요가 잇는 주체"가 아니며, 다라서 연구가 허용될 뿐만 아니라 남아도는 태아는 폐기하거나 인공적으로 낙태시킬 수도 있다. 그들은 경계선을 인간개체에 더 가깝게 설정하여 태아가 고통을 느낄수 있는 시기, 즉 중추신경계가 발달할 이후의 시기를 자신들의 정의로서 택하고자 했다. 그들은 이 시기가 18~20주경이 될 것이라 본다 .그리하여 그들은 제한시간을 워녹위원회와 오스트레일리아의 월러위원회가 설정한  현재 14일보다 한참 더 늦추어 잡을 것을 주장한다. 그들은 태아란 여성의 일부이며 여성과의 공생관걔를 떠나서는 살 수 없다는 점은 어디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최초의 분리는 여성과 태아의 분리이다.

생명윤리학자들에게 유전공학 및 생식기술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문제는 다만 정의(定義)의 문제에 불과하다. 과학자들은 주로 정의내리는 행위를 통해 폭력을 행사한다. 그것은 직접적인 폭력에서 겉보기에는 깨끗하고 순수해 보이는 구조적 폭력으로 변모했다. 인간과 비인간을 가르는 이러한 정의의 힘이야말로 바로 나찌수용소에 갇힌 사람들 특히 정신장애자들을 상대로 연구를 행한 과학자들이 도덕적 제약을 무시할 수 있게 한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 사람들은 대상으로 기본연구를 행한 과하갖들은 정신장애자들이 비인간이거나 인간 이하라는 정의를 받아들인 것이다. 누가 인간이고 누가 비인간으로 정의되느냐는 것은 권력의 문제이므로 쿠제와 싱어가 내린 인간의 정의(이성적, 자기인식적, 자율적임)는 권력의 조작에 전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여성 역시 오랫동안 이성적이며 자기인식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 간주되지 않았음을 떠올리게 된다. (67-69쪽)

 

 

 

 

착취를 바탕으로 하는 세계체제에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평등한 것이다." (91쪽)

 

 

 

경영자, 기술관료층이 최근 들어 자주 사용하는 언어는 여성을 아동의 수동적인 '환경'으로 묘사하거나 '인구폭발'의 주범인 '폭탄'으로 묘사한다. 이 두 경우에서 자녀의 생명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여성의 생명은 어린이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통제되어야 할 대상이 된다.

어머니의 자궁은 아이의 '환경'이라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자궁이라는 상대적으로 보호받는 환경에서조차 태아는 완전히 보호받지 못한다. 아기의 건강상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잇는 어머니의 건강이 '태아환경 내의 한 요소'로 환원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아기 관계를 해체 하는 비슷한 관점이 작업장의 환경위험에 대처하는 해결책으로 제시된다. '태아보호 정책'은 임신한 (혹은 임신을 원하는) 여성을 위험지역에서 내보냄으로써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보호'한다는 것으로, 고용주들은 위험한 생산에서 초점을 옮길 수단으로 이를 활용한다.

극단적인 경우, 여서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고 식탁에 올릴 음식을 얻기 위해 불임수술에 동의하기도 한다. 더 전형적인 사례에는 여성들의 생리주기를 감독하거나 고용하기 전에 유산을 하게 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린 넬슨이 말한 대로 "'오염을 가정하고' 작업장 재배치와 산부인과적 처치를 받기란 너무 쉬운 일이지만, 이것들은 병 자체가 아니라 증상에 대한 대응일 뿐"인 것이다. (114-115쪽)

 

 

 

 

독일에서 열린 유전공학에 대한 공개토론회에서 유전공학 분야의 한 선도적인 연구자는 이렇게 말햇다. "나는 그러한 한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특정 기술이 위험한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개발하고 응용해보아야죠. 그런 다음에야 민주적인 원칙에 따라 이 기술을 사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관해 공적인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국 원자력의 어ㅟ험을 알기 위해서는 원자폭탄을 만들어서 폭파시켜봐야 한다는 얘기이다. 유전공학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펼 수 있다. 많은 과학자들의 '가치로부터 자유로운' 연구가 도덕적인 고려나 사람들의 우려와 정서, 특히 정치가들의 자금규제로 인해 방해받고 있으니, 윤리와 도덕은 연구가 완료된 후 그것을 응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생겨날 때나 되어서야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는 거이다. 실제로 윤리위원회는 그후에느 생겨난다. 하지만 최종결정을 내리는 것은 정치가들이다. 다른 한편 이들은 오염허용치 등의 어려운 윤리적 결정을 내려야 할 경우 과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사실상 과학자나 정치가는 특정 기술에 투자할 돈이; 있고 이윤을 위해 그것을 개발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의존하고 있다. (122쪽)

 

 

 

 

오리싸의 해안지대에서는 발리아빨(Balliapal) 부족이 7만명의 부족민을 그들의 비옥한 고향당에서 몰아낼, 국립 로켓시험지구 설정에 저항하고 있다. 반대자들은 되풀이해서 그들과 땅의 유대가 시험지구에 대한 저항의 근거라고 밝히고 있다. "땅과 바다는 우리 것이다. 목숨은 내줄 수 있어도 신성한 어머니 대지는 내줄 수 없다." 그들은 보상금 제안도 거절했는데, 보상금으로 발리아빨 농민들을 수세대애 걸쳐 보살피고 먹여살린 땅과의 깨어진 유대를 보상할수는 없기 때문이다. 오리야(Oriya)의 시인 브라즈나트 라이(Brajnath Rai)가 쓴 대로이다.

 

수마일이나 펼쳐진

코코아와 캐슈 농장.

헤아릴 수 없이 풍성한

비틀 덩굴이

갈색 모래카펫 위에

녹색의 예술적인 무늬를 그렸다.

고구마, 땅콩

머스크 멜론 덩굴이

당신의 먼지 낀 땅을

변치 않는 녹색으로 장식했다.

이것들은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번창한 삶에 대한  기운찬 희망을 주었다.

읠하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삶의 영원한 희망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오늘, 갑자기

권력에 미친 사냥꾼의 탐욕스러운 눈이

당신의 녹색 몸을 발견하고는

조각조각내고

신선한 붉은 피를 맘껏 마셔버렸다.

저주받은 사냥꾼은

내키는 대로

당신의 가슴을 겨냥하여

불타는 미사일을 발사했다.

 

(133-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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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다키지, <게공선> 중에서

얼마 전에 읽은 소설 <게공선>에서 인상깊은 구절이 있어서 고대로 옮겨온다.

 

이 소설은 20세기 초 제국주의 침략에 앞장서고 있던 일본의

대표적인 프롤레타리아 문학인데, 최근 경제위기 상황에서 다시금 일본 국민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번역된 책의 표지에도 이것을 의도한 듯한 느낌이 드는

문구가 실려있다.

 

"88만원 세대, 비정규직, 양극화, 워킹 푸어(Working Poor)... 혹시 이 현상이 게공선 아닌가요?"

 

정작 나는 게공선과 이런 최근의 현상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다는 건지 잘 이해는 안되었지만, (게공선은 게를 잡아 배안에서 바로 통조림으로 가공하는 공장형 배인데, 거기에서 벌어지는 노동탄압은 가히 강제수용소 수준이어서 대량의 산업예비군을 양산하면서 팽창하는 지금의 신자유주의적 상황에 직접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좀 무리이지 않나 싶다.) 어쨌든 이 부분은 언어와 얼굴 생김새가 달라도 노동자는 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있는 힘껏 보여주는 구절이라 생각한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쓰코호가 제자리로 돌아온 지 사흘째 되었을 때, 갑자기(!) 행방불명됐던 똑딱선의 어어업노동자들이, 아주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들은 선장실에서 '똥통'으로 돌아오자, 순식간에 모든 사람들한테 소용돌이처럼 둘러싸였다. 그들은 '거대한 폭풍우' 때문에, 마침내 버티지 못하고 똑딱선을 조종할 수 없게 되었다. 목덜미를 붙잡힌 아이보다 더 제정신이 아니었다. 가장 멀리 나와 있었고, 거기에 바람은 정반대 방향이었다. 다들 이제 죽었다고 ㅅ애각했다. 어업노동자는 언제라도 '편안하게' 죽음을 각오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런 경우는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이튿날 아침, 그 똑딱선은 반쯤 물에 잠긴 채 파도에 밀려서 캄차카 해안가에 닿았다. 그리고 모두는 근처의 러시아인에게 구조됐다. 그 러시아인의 가족은 다 합쳐서 네 식구였다. 여자가 있거나, 아이들이 있는 '집'이라는 것에 목말라 있던 그들에게 , 저기근ㄴ 뭐라고 말할 수 없는 매력적인 곳이었다. 친절한 사람들은 여러 가지로 보살펴주었다. 하지만 처음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다거나, 머리와 눈 색깔이 다른 외국인이라는 사실에 어쩐지 불안했다.

그러나 자기들하고 별다르지 않은, 똑같은 인간임을 금세 알 수 있었다.

난파당한 사실이 알려지자, 마을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그곳은 일본 어촌과는 많은것이 달랐다.

그들은 거기서 이틀간 머물면서 몸을 치료하고 돌아왔다. '돌아오고 싶지 않았다.' 누가 이런 지옥에 돌아가고 싶겠어! 그런데, 그들의 이야기는 이쯤해서 끝나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다른 데 감춰져 있었다.

돌아오는 날이었다. 그들이 난롯가에서 옷가지를 챙기며 이야기하고 있을 때, 러시아인 네다섯명이 들어왔다. 그중엔 중국인도 한 사람 섞여 있었다. 커다란 얼굴에 붉고 짧은 수염이 많이 난, 등이 조금 구부정한 러시아 남자는 갑자기 뭐라 큰 소리로 손짓을 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똑딱선의 최고참 어업노동자가 자신들을 러시아어를 모른다는 사실을알리기 위해 그눈앞에서 손을흔들어 보였다. 러시안이 한마디 하자, 그 입가를 보고 있던 중국인은 일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듣는 사람의 머리가 오히려 엉망진창이 되버린 듯한, 어순이 뒤바뀐 일본어였다. 말과 말은 술주정뱅이처럼 뿔불이 흩어지며 비틀거렸다.

"당신들, 돈 정말 가지고 있지 않아."

"그렇다."

"당신들, 가난한 사람."

"그렇다."

"그러니까, 당신들, 노동자. 알아?"

"응."

러시아인이 웃으면서, 그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그리곤 때때로 멈춰 서서 그들을 보았다.

"부자들, 당신들을 이거 한다. (목을 조르는 시늉을 했다.) 부자들 점점 커진다. (배가 불러오는 흉내.) 당신들 무슨 짓을 해도 안 돼, 가난한 사람이 된다. 알아? 일본이라는 나라, 안 돼. 일하는 사람, 이거 (얼굴을 찡그리며, 아픈 사람 같은 표정.) 일하지 않는 사람, 이거. 에헴, 에헴. (뽐내면서 걷는 걸음을 보인다.)"

그 말은 젊은 노동자들에겐 재미있었다. 그들은 '그렇다, 그렇다!'고 맞장구치면서 웃었다.

"일하는 사람, 이거. 일하지 않는 사람, 이거. (앞서 했던 동작을 되풀이한다.) 그런거 안 돼. 일하는 사람, 이거. (이번에는 거꾸로, 가슴을 펴고 뽐내는 못을 보인다.) 일하지 않는 사람, 이거. (늙다리 거지 같은 흉내.) 이거 좋아. 알아? 러시아라나는 나라는, 이런 나라. 일하는 사람들만이. 일하는 사람들만이, 이거. (뽐낸다.) 러시아, 일하지 않는 사람 없다. 교활한 사람 없다. 사람 목 조르는 사람 없다. 알아? 러시아 조금도 무섭지 않은나라. 전부, 전부 거짓말만 하고 다닌다."

그들은 막연하게, 이것이 '무서운' 빨갱이물'이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것이 '빨갱이물'이라면 너무 '당연한' 것이라는 기분이 한편으로 들었다. 더군다나 무엇보다도 그 말에 줄곧 이끌려 들어갔다.

"알아, 정말. 알아!"

러시아인 두세 명이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중국인은 그 말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말더듬이처럼 일본말을 하나, 하나 주워가며 말했다.

"일하지 않고, 돈 버는 사람이 있다. 노동자, 언제나 이거. (목이 졸리는 시늉.) 이거, 안 돼! 노동자, 당신들, 한 사람, 두 사람, 세 사람.... 백명, 천명, 오만 명, 십만명, 모두, 모두, 이거 (아이들의 손에 손을 잡는 시늉을 한다.) 강해진다. 괜찮아. (팔을 두드리며) 안 진다, 누구에게도. 알아?"

"응, 응!"

"일하지 않는 사람, 도망간다. (일제히 도망하는 시늉) 괜찮아, 정말. 일하는 사람, 노동자, 뽐낸다. (당당하게 걷는 걸음을 보인다.) 노동자, 제일 위대하다. 노동자 없으면. 모두, 빵 없다. 모두 죽는다. 알아?"

"응, 응!"

"일본, 아직, 아직 안 돼. 일하는 사람, 이거. (허리를 구부리며 움츠리는 모습을 보인다.) 일하지 않는 사람, 이거. (으스대며, 상대를 때려눕히는 시늉.) 그거, 전부 안 돼! 일하는 사람, 이거. (얼굴 모습 무섭게 바뀌며, 덤벼드는 시늉. 상대를 넘어 뜨려 짓밟는 흉내.) 일하지 않는 사람, 이거. (도망가는 시늉) 일본, 일하는 사람만, 좋은 나라. 노동자의 나라! 알아!"

"응, 응, 알아!"

러시아인은 괴성을 지르며, 춤을 출 때 처럼 발을 굴렀다.

"일본, 일하는 사람, 한다. (일어서서 칼을 들이대는 시늉.) 기쁘다. 러시아, 모두들 기쁘다. 만세. 당신들 배로 돌아간다. 당신들의 배, 일하지 않는 사람, 이거. (뽐낸다) 당신들, 노동자, 이거 한다! (권투를 흉내 내는 모습, 그리고 손에 손을 잡고, 다시 덤벼드는 시늉) 괜찮아. 이긴다! 알아?"

"알아!"

어느 틈에 흥분한 젊은 어업노동자는, 갑자기 중국인의 손을 잡았다.

"할 거야, 꼭 할 거야!"

최고참 어업노동자는, 이것이 '빨갱이물'이라곳 ㅐㅇ각했다. 너무나 무서운 일을 시킨다. 이걸로, 이런 식으로, 러시아가 일본을 감쪽같이 속인다고 생각했다.

러시아인들은 이야기가 끝나자, 무슨 소리를 지르며, 그들의 손을 힘껏 쥐고 흔들었다. 부둥켜 안고 뻣뻣한 털로 덮인 얼굴을 비벼대기도 했다. 당황한 일본인은, 목을 뒤로 빼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모두는 '똥통'의 입구에 가끔씩 눈길을 부며, 그 이야기를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재촉했다. 그들ㅇ, 지금까지 보고 온 러시아인에 대해 많은 것을 말했다. 그 어느 것도, 흡수지에 빨려드는 것처럼, 모두의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어이, 이제 그만해,"

최고참은, 다들 이상하게 진지한 얼굴로 그 이야기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열심히 떠들고 있는 젊은 어업노동자의 어깨를 쿡쿡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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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독] 이반 일리히 - 병원이 병을 만든다

현대의 의료가 민중의 건강에 가하는 위협은, 교통량과 그 강도가 민중의 기동성에 가하는 위협, 교육과 미디어가 민중의 배움에 가하는 위협, 도시화가 민중의 자기 집을 짓는 능력에 가하는 위협과 유사하다. 어떠한 경우에도 주요한 제도적 노력은 반생산적인 것으로 전환된다. 교통에 있어서 시간을 소비하는 가속화, 시끄럽고 혼란스러운 커뮤니케이션,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높은 수준의 기술적 능력을 몸에 익히도록 하여 전체적으로는 무능력한 전문가 바보가 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교육, 이 모든 것들은 의료에 의한 병원병의 생산과 지극히 닮은 현상들이다. 각각의 경우에 주요 제도적 분야는 그것을 만들고 기술적으로수단화하기 위한 특정한 목적으로부터 사회의 방향을 돌려놓고 있다. (17쪽)

 

 

 

 

보르네오에 역설적인 질병통제의 좋은 예가 있다. 말라리아 제압을 위하여 촌에서 사용된 살충제가 바퀴벌레에 축적되어 대부분의 바퀴벌레가 저항성을 갖게 되었다. 이 바퀴벌레를 도마뱀붙이가 잡아먹고 혼수상태에 빠져 고양이의 먹이가 되었다. 그 결과 고양이는 죽고 쥐들이 불어났다. 그리고 쥐들이 페스트를 전염시켰다. 그래서 군대는 고양이를 낙하산으로 정글의 마을에 투하해야 했다. (30쪽)

 

 

 

 

의사에 의해 가해지는 고통과 질병은 언제나 의료 행위의 한 부분이었다. 전문가의 무감각, 태만, 완전한 무능력 등은 낡은 형태의 이료 과오이다. 의사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에게 그 기술을 행사하는 기능인에서 과학적 법칙을 다양한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전문가로 변모함에 따라, 의료 과오는 의사 개인의이름에 오점을 남기지도 않고, 거의 존중받다시피 하는 일이 되었다. 옛날에는 신뢰의 남용과 도덕적 결함이었던 것이, 현재에는 장치나 수술자의 우연적 사고라고 합리화되고 말았다. 복잡하게 기술화된 병원에서 태만은 '우연한 인간적 오류' 또는 '시스템의 고장'으로 미화되고, 무감각은 '과학적인 냉정함'으로 호도되며, 무능은 '전문적 장치의 부족'으로 합리화되고 있다. 진단과 치료의 비인간화는 의료 과오를 윤리적 문제에서 단순한 기술적 문제로 변모시켜 왔다. (39-40쪽)

 

 

 

 

나는 스스로 강해져 가는 이 제도적인 부정적 피드백의 고리를 고전 그리스어의 동의어에 따라 '의료의 네메시스(nemesis)'로 부르고자 한다. 그리스인은 자연의 힘 중에서 신들을 보았다. 그들에게 네메시스는, 신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특별히 지키고 있는 특권을 침략한 사람들을 습격하는 신들의 복수이다. 네메시스는 인간이기보다는 영웅이고자 하는 인간의 비인간적인 시도에 대하여 반드시 가해지는 벌이다. 수많은 그리스어의 추상명사와 같이 네메시스는 신의 형상을 취하고 있다.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는 '교만', 곧 신의 속성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뻔뻔스러움에 대한 대자연의 반응을 상징한다. 현대의 위생상의  교만함이 새로운 의료 네메시스의 병상(病狀) 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44쪽)

 

 

 

근원적 독점은 하나의 단체, 또는 정부에 의한 독점 이상으로 뿌리 깊은 것이 된다. 그것은 수많은 형태를 갖는다. 교통 수단으로 붐비는 도시가 건설되면, 인간의 다리에 대한 평가는 낮아진다. 학교가 학습을 점유하게 되면 독학자의 가치는 낮아진다. 위기의 상태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병원이 맡게 되면 병원은 사회에 새로운 죽음의 형식을 강요한다. 독점은 보통 시장을 매점하나 근원적 독점은 사람들이 스스로 행위하고 스스로 만드는 능력을 빼앗아 버린다. 상업상의 독점은 상품의 유통을 제한한다. 그리고 독점이 집요하게 되는 만큼, 비시장적인 사용가치는 마비된다. 근원적 독점은 나아가 자유와 독립을 침범한다. 그것은 환경의 형태를 바꾸고, 사람들에게 스스로 싸우는 힘을 주었던 환경의 여러 특징을 '전유하는' 것에 의해, 사회 전체에 사용가치를 상품으로 바꿔치기 할 것을 강요한다. 집약적 교육의 결과 독학자는 고용되지 않고, 집약적 농업은 자작 농부를 파괴하며 ,경찰의 배치는 지역 사회의 자기 통제를 좀먹는다. 의료의 유해한 확대도 마찬가지 결과를 가져온다 .곧 상호치료, 자기 투약을 경범죄나 때로는 중죄로까지 만들어 버린다. 임상적 병원병이 위기적인 강도에 도달하여 그 사업 자체의 몰락에 의해서만 역전될 수 있을 때 의학적으로 불치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병원병은 전문가의 지배를 없애는 정치적 행동에 의해서만 역전될 수 있다. (51-52쪽)

 

 

 

 

의료화된 사회에서는 의사의 영향력이 지갑이나 약상자만이 아니라 사람들을 구분하는 분류에까지 미친다. 의료 관료는 사람들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곧 자동차 운전이 가능한 자, 일을 하여서는 안 되는 자, 감금되어야 하는 자, 군인이 될 수 있는 자, 국경을 넘어도 되는 자, 요리해도 되는자, 매춘해도 되는 자, 미국 부통령에 출마할 수 없는 자, 사망자, 범죄를 범할 가능성이 있는 자, 범죄를 범할 경향이 있는 자 등이다. 1766년 11월 5일,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는 명령을 내려, 궁정의 의사들에게 건전한, 곧 '정확한' 증언을 보장하도록 하기 위하여 피의자가 고문에 이길 수 있는가 어떤가를 증명할 것을 요청했다. 이것은 명령에 의해 의학적 증명서를 설정한 최초의 법이었다. 그 후 형식을 충족시킨 보고서를 작성하고 진술서에 서명하는 것이 점점 다수의 의사로부터 시간을 뺏게 되었다. (86-87쪽)

 

 

 

 

일정한 제한은 있으나 유효한 의학적 치료의 엄밀한 한계는 오랫동안 질병으로 인정되어온 상태--류머티즘, 맹장염, 심장마비, 퇴행성질환--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더욱 최근에 의학적 치료에 대한 수요를 창출시킨 상태에 적용되고 있다. 예컨대 노년은 불안한 특권, 또는 비참한 종말이라고는 생각되었지만 결코 질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의사의 지시 하에 놓여직 ㅔ되고 말았다. 노인 치료에 대한 요구는 증가되고 있으나 그것은 생존하는 노인이 더욱 많다는 이유에서보다는, 노년은 치료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인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91쪽)

 

 

 

전문가의 서비스에 의존하는 노인이 증가함에 따라, 노인을 위한 특별한 시설에 가두어지는 노인의 수도 증가된다. 반면 이웃 사람은 짐이 되는 사람들에게 더욱 냉담하게 된다. 이러한 시설은 노인 처리를 위한 현대적 전략으로 생각되고, 노인은 다른 사회에 의한 것보다는 공명정대하게, 덜 지독한 형식으로 수용된다. 입소 후 1년간의 사망률은 본래의 환경에 머물고 있던 사람들의 사망률에 비하여 훨씬 높다. 가정으로부터 단절됨에 따라 다수의 중병이 나타나고 사망률도 오른다. 자신의 수명을 단축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시설 입소를 희망하는 노인도 있다. 의존하는 것은 언제나 가혹한 것이고, 노인에게 있어서는 특히 그러하다. 젊은 시절의 특권이나 빈곤도 현대에는 노년기에 정점에 도달한다. 엄청난 부자와 확실한 독립성을 가진 인간만이 의료화되지 않은 자기 인생의 끝을 선택할 수 있다. 곧 빈민은 의료화에 굴종하지 않을 수 없고, 그들이 사는 사회가 풍부하게 되면 될수록 의료화는 극단 또는 보편적인 것이 된다. 노년을 전문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상태로 변모시킴에 따라, 노인은 세금으로 지탱되는 특권과 관련된 어떤 차원에서 자신이 수탈되고 있음을 통절히 느끼는 소수자의 역할을 맡게 된다. 때로는 비참하고 무시에 의해 크게 낙담하는 노인으로부터 가장 슬픈 소비자 그룹에 속할 자격이 있는 구성원으로 변모하는 것까지, 결코 충분한 것을 획득할 수 있도록 계획되고 있지는 않다. (94쪽)

 

 

 

위기의 의식화(그것은 병적인 사회에 일반적으로 보이는 특징이나)는 의료 담당자에게 세 가지를 부여한다. 그것은 보통으로는 군인만이 요구할 수 있는 자격을 의료 담당자에게 부여한다. 위기라고 하는 압력 밑에서, 지휘관이라고 믿어지는 전문가는 쉽게 정의와 예의범절이라고 하는 일반적 규범으로부터 면제된다. 죽음을 통제하는 역할을 부여받은 자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전상자를 치료하는 우선 순위를 선택할 수 있는 지휘자로, 그의 살인은 정책적으로 은폐되고 만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모든 행위가 위기의 분위기 속에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매혹적인 변경을 형성하였기 때문에, 의료 기업에 의해 요구되는 시간의 폭과 지역 사회의 공간은, 종교적 또는 군사적 시공간과 마찬가지로 성스러운 것이 된다. 임종 관리의 의료화는 단지 불길한 꿈을 의식화하고 지겨운 노력에 대한 전문적 면허 확대하는 것만은 아니다. 곧 임종의 치료가 확대되는 것은 의사로 하여금 그가 요구하는 수단의 기술적 유효성을 증명할 필요를 없애버린다.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하는 그의 힘에는 어떤 제한도 없다. 마지막으로 환자의 죽음은 의사를 잠재적 통제와 비판의 피안에 방치한다. 환자의 마지막 시선과 '죽어 가는 자'의 일생의 전망 중에는 희망이란 없고 단지 의사의 마지막 기대가 있을 뿐이다. '위기'를 향한 어떠한 시설의 방향이라도, 거대한 일상적 무효를 정당화한다. (110-111쪽)

 

 

 

 

 

의료 처치가 '흑마술'이 되는 것은, 그것이 환자에게 스스로 치유하는 힘을 부여하는 대신에, 병자를 불구자로 만들어 자시에게 가해지는  치료를 훔쳐보는 자로 신비화시키는 때이다. 의료 처치가 '병든 종교'로 변하는 것은, 그것이 병자의 모든 기대를 과학과 그 기능에 집중시키고, 병자가 자신의 곤경에 관한 시적 해석을 구하거나, 고통을 당해본 사람--고인이든, 이웃사람이든--중에 존경할 만한 모범을 발견하는 것을 잊게 하는 의식으로서 나타날 대이다. 의료 처치는 그것이 고통 받는 사람에 대한 사회적 관용을 증가시키는 동기와 훈련을  사회에 부여가힉 보다는, 환자를 전문적인 환경 속에 격리시키고 말았을 때에 '도덕적 퇴폐'에 의해 질병을 증가시킨다. 생의학의 이름 아래 생겨난 마술적 파괴, 종교적 상해, 그리고 도덕적 퇴폐는 사회적 병원병을 만들어 내는 결정적인 장치이다. 그것은 죽음의 의료화와 혼합되고 있다. (126-127쪽)

 

 

 

 

전통문화와 기술 문명은 정반대의 가정에서 출발한다. 모든 전통 문화에서 정신요법과 신앙 체계 그리고 고통을 참기 위해 필요로 하는 약은 일상생활 속의 행동에 포함되고, 현실은 냉엄하고 죽음은 회피될 수 없다고 하는 확신을 반영하고 있다. 20세기의 디스토피아, 반 유토피아에서 내부 및 외부의 고통스런 현실을 인내할 필요성은 사회 경제 시스템의 실패로 해석되고, 고통으 비정상적인 개입에 의해 처리되어야 할 긴급한 우발적 사건으로 다루어진다. (148쪽)

 

 

 

 

치유하는 자의 에토스는 종교, 민간 전승, 진통제의 용이한 이용이 일반인을 훈련했기 때문에 빚어진 것과 마찬가지의 위엄을 갖춘 실패에 대한 수용력을 의사에게도 부여했다. 현대 의료의 종사자들은 다른 위치에 놓여 있다. 곧 그의 제 1의 방향 설정은 치료이지 치유가 아니다. 그는 인내하는 인간에게 있어서 고통이 환기하는 의문 부호를 인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통을 한 건의 서류 속에 모을 수 있는 불평의 목록 속에 떨어뜨리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그는 고통의 메커니즘을 알고 있음을 과시하고, 그리하여 환자의 동정으로의 초대를 뿌리치고 만다. (1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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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독] 타인의 고통 (수전 손택)

뉴스가 소위 '전 세계'라는어법으로 말하는 세계는 -- 어느 라디오 네트워크는 한 시간에도 수차례씩 이렇게 읊조린다. "우리에게 22분만 할애하십시오. 우리가 당신에게 전 세계를 보여드리겠습니다" -- (전 세계는커녕) 지리적으로나 관심 여부로나 아주 국한된 장소일 뿐이며, 뭔가 알아야 할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도 매우 짧고 굵게만 방송되는 것이 고작일 뿐이다. 저 멀리 어딘가에서 벌어진 전쟁들 중에서도 고작 몇 개만이 추려내질 뿐이니, 그처럼 선택된 전쟁들 속에서 [대중매체가] 모아놓은 고통을 의식한다고 한들 그것은 억지 의식일 뿐이다. 게다가 카메라에 찍힌 형태인 한, 그 의식은 금방 불타올랐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된 뒤, 곧장 우리의 생각에서 사라져갈 것이다. (복잡한 사유, 문헌, 어휘에 기대기 때문에 비교적 소수의 독자들에게만 주어지는) 글로 씌여진 이야기와 대조적으로, 사진은 단 하나의 언어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며 잠재적으로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41p)

 

 

 

 

텔레비전 카메라가 매일같이 보여준 최초의 전쟁, 즉 미국이 개시한 베트남전쟁 상시에는 머나먼 곳을 상세히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장치를 통해서 죽음과파괴의 모습이 가정의 코앞에까지 찾아들어 왔다. 그때 이래로, 발생할 때마다 곧바로 필름에 담겨지게 된 각종 전투와 대량 학살은 정기적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올 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작은 화면으로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곳곳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극적인 사건들에 노출된 시청자들이 어떤 분쟁을 중요하다고 의식하도록 만들려면, 이제는 그 분쟁을 다룬 단편적인 필름들을 일상적으로 확산시키고 또 확산시켜야 될 지경에 이르렀다. 오늘날, 전쟁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이미지들이 가져다 주는 충격을 통해서 전쟁을 이해한다. (43p)

 

 

 

 

[사진이] 실제적인 사회 문제를 손쉽게 추적 할 수 있다는 자유주의적 합의가 새롭게 대세를 이루게 되자, 사진작가들의 생계와 독립성이라는 쟁점이 전면에 부각됐다. 그 결과, 카파와 그의 친구들 몇 명(칭과 앙리 카르티에-브레송도 이들 중 하나였다)은 1947년 파리에서 일종의 조합인 <매그넘 포토 에이전시>(이하 매그넘)를 설립했다. (곧 가장 영향력 있고 명망 높은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의 조합이 된) 매그넘이 직접적으로 표방했던 취지는 매우 현실적인 것이었다. 사진 잡지들이 할당해준 일을 위해서 위험을 감수한 채 자유 계약으로 일하는 사진작가들을 대변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취지였다. 이에 덧붙여, 종전 직후에 새롭게 창설된 각종 국제 조직이나 동업 조합의 창립 선언문들과 마찬가지로 도덕적이었던 매그넘의 선언문은 윤리적인 부담이 가중되고 예전보다 확대된 포토저널리즘자각들의 사명을 명쾌하게 밝혀 놓았다. 전쟁의 시게에서든 평화의 시기에서든, 광신적 애국주의의 편견에서 벗어난 채 공정한 목격자의 한 명으로서 자신들이 활동하던 시대를 기록할 것. (59p)

 

 

 

 

 

초창기 전쟁 사진들 중 걸작이라고 칭송 받은 사진들이 대부분 연출된 것이었다거나 피사체에 손을 댄 흔적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암실이 딸린 마차를 타고 세바스토폴 근처의 첩첩이 층이 진 계곡에 도착했던 팬턴은 삼각대를 고정한 뒤 똑같은 위치에서 두 차례 촬영을 개시했다. 훗날 팬턴이 "죽음의 그림자로 뒤덮인 계곡"(그렇지만 제목과는 달리, 이곳은 영국의 경기병단이 숙명의 돌격을 감행한 바로 그곳이 아니었다)이라는 제목을 붙이게 되는 저 유명한 사진의 첫 번째 판본에는 길가 왼쪽에 포탄들이 첩첩이 쌓여 있었다. 그렇지만 두 번째 사진(오늘날 늘 복제되는 사진)을 찍기 전에, 펜턴은 포탄들을 길가에 이리저리 흩어놓았다. 실제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던 활양한 장소를 찍은 사진, 즉 피사체에 손을 댄 흔적이 더 많은 베아토의시칸다바그 궁전 사진은 전쟁의 무서움을 최초로 묘사한 사진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궁전이 공격을 당한 것은 1857년 11월이었다. 승승장구한 영국군과 영국에 충성을 바쳣던 일군의 인도인 부대가 이 궁전의 모든 방을 샅샅이 뒤져, 그때까지 생존해 있던 1천8백 명의 세포이 반란자들을 총검으로 굴복시키고 난 바로 직후였다. 이제 죄수가 된 이들의 주검은 궁전 안마당에 던져졌으며, 독수리들과 들개들이 뒷일을 처리했다. 1858년 3월이나 4월경 이곳의 사진을 찍었던 베아토는 사진 뒤쪽에 나외 있는 궁전 기둥에 몇몇 인도인들을 세워두고, 궁전 안마당에 인간의 뼈를 이리저리 뿌려둔 뒤, 폐허가 된 이것에서 마치 주검들이 수습되지 않았다는 듯이 짜 맞춰 놓았다. (84-5pp)

 

 

 

 

 

희생자들, 슬픔에 빠진 친지들, 뉴스를 소비하는 사람들 -- 이들은 모두 자기들 나름대로 전쟁과 어느 정도 덜어져 있거나 근접해 있다. 전쟁을 가장 솔직하게 재현해 놓은 것, 어떤 재앙으로 부상을입은 신체를 가장 솔직하게 재현해 놓은 것은 우리에게 지극히 낯선 존재들, 그래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의 모습이다. 피사체가 우리에게 더욱 더 친숙할수록, 사진작가는 훨씬 더 신중해지는 법이다. (98p)

 

 

 

 

 

1991년의 걸프 전쟁 당시 미국의 정부 관료들이 촉진했던 것은 테크노 전쟁의 이미지였다. 죽어 가는 병사들의 머리 위로 미사일들과 포탄들이 날아가며 그려낸 섬광의 흔적으로 가득 찬 하늘,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적보다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이미지였다. 미국의 텔레비전 시청자들을 NBC가 획득한 영상, 즉 미국의 이런 군사적 우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수 있는지 보여준 영상을 볼 수 없었다(그 때 당시 이 텔레비전 네트워크는 방영을 거부했다). 전쟁 막바지인 2월 27일, 호송선을 타거나 걸어서 쿠웨이트를 빠져나와 북쪽으로 도망치던 중 이라크의 바스라와 연결되어 있는 도로에서 네이팜탄, 방사능 무기(열화우라늄탄), 집속탄 같은 각종 폭발물의 융단 폭격을 받게 된 이라크 징집병들 수천 명의운명, 미국의 어느 정부관료가 '칠면조 사격'이라고 묘사한 바 있던 저 악랄한 살육의 장면을. 게다가 2001년 말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수행한 대부분의 작전도 보도 사진작가들의 접근이 금지됐다.

 

전쟁이 점점 더 적을 추적하는 정밀한 광학 장치들로 수행되는 행위가 되어갈수록, 전선에서 비군사적인 목적으로 카메라를 사용할수 있는 조건도 점점 더 엄격해졌다. 사진 없는 전쟁, 즉 1930년 에른스트 윙거가 관찰했듯이 저 뛰어난 전쟁의 미학을 갖추지 않은 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 카메라와 총, 그러니까 피사체를 '쏘는' 카메라와 인간을 쏘는 총을 동일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위거는 이렇게 썼다. "위대한 역사적 사건을 매우 꼼꼼히 보존하려는 행위와 자신이 지닌 무기로 적들의 위치를 정확히 몇 초, 몇 미터 단위까지 추적해 그들을 섬멸하려는 행위는 모두 똑같은 사고방식에서 수행된다." (102-104pp)

 

 

 

 

 

사진 배경이 되는 장소가 될수 있는 한 멀리 떨어져 있고 이국적이면 이국적일수록, 우리는 죽은 자들이나 죽어 가는 자들의 정면 모습을 훨씬 더 완전하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신식민지화된 아프리카는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는 일반 대중들의 의식 속에 (그곳의 육감적인 음악을 제외한다면) 주로 깜짝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있는 희생자들의 모습이 담긴 일련의 잊지 못할 사진들로 존재한다. (... ...) 이런 사진들이 보여주는 광경에는 이중의 메시지가 있다. 이 사진들은 잔악하고 부당한 고통, 반드시 치유해야만 할 고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런 고통은 다름 아닌 바로 그런 곳에서 발생하는 일이라고 믿게 만든다. 곳곳에 존재하는 이런 사진들, 이처럼 끔찍하기 짝이 없는 사진들은 이 세상의 미개한 곳과 뒤떨어진 곳(간단히 말해서 가난한 나라들)에서야 이런 비극이 빚어진다는 믿음을 조장할 수밖에 없다.

(... ...)

대중에게 공개된 사진들 가운데 심하게 손상된 육체가 담긴 사진들은 흔히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사진들이다. 저널리즘의 이런 관행은 이국적인(다시 말해서 식민지의) 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1백여 년 묵은 관행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16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인들, 그리고 머나먼 아시아 국가에 살던 외래인들은 런던, 파리, 그밖에 유럽 수도들에서 개최된 인종 전시회에서 마치 동물원의 동물처럼 대중에게 공개되곤 했다. (109-112pp)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전시회와 책들을 뒤덮고 있는 그의 기교, 즉 독실한 신자 가족의 일원인 척하는 그의 스타일은 그가 찍은 사진들에 오히려 해가 됐다. 살가도의 사진들은 특히 그가생생하게 묘사해 놓은 비참함이 대중들에게 공개되는 상업적인 맥락 때문에도 심술궂은 대접을 받았다. 그렇지만 정작 문제는 그의 사진이 어떻게 어디에서 전시되는가에 있는 것이 아닐, 사진 자체에 있다.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사진들의 초점, 모든 것을 그들의 무능함으로 환원하는 그 초점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의 사진들에 달려 있는 설명에 그가 찍은 무력한 사람들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아무리 의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피사체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인물 사진은 이와 정반대 형태의 사진을 무절제하게 탐닉하도록 만들어 왔던 유명인 숭배 풍종의 공범이 되어버린다. 간단히 말해서, 오직 유명인들만 그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나머지 사람들을 그들의 직업, 인종, 곤경을 상징하는 일종의 본보기로 환원하는 셈이되는 것이다. 39개국에서 이주민들의 못브을 직은 살가도의 사진은 이런 단일한 방향 아래에서, 그 이주민들이 겪고 있는상이한 고난과 그 고난을 불러온 상이한 원인을 한데 뭉그러뜨려 버린다. (120-122pp)

 

 

 

 

 

 

1890년대와 1930년대 사이에 미국의 소도시들에서 린치를 당한 흑인 희생자의 사진들이 좋은 사례이다. 이 사진들은 지난 2000년 뉴욕의 한 미술관에서 그것을 본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충격적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계시 같은 경험을 던져줬다. 린치 장면을 담은 이 사진들은 인간의 사악함과 비인간성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이 사진들을 보고 난다면 우리는 인종주의가 악을 어느 정도까지 풀어헤쳐 놓았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악이 저지른 범죄의 한가운데에는 이런 범죄를 사진으로 찍은 것 같은 파렴치함이 존재한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일종의 기념품으로 간직하기 위해서 이 사진들을 찍었으며, 그 중 몇 장을 우편 엽서로 만들기도 했다. 상당수 사진들에는 이 장면을 보면서 히죽 웃고 있는 구경꾼들의 모습이 찍혀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규칙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선량한 사람들이 틀림없을 테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곤죽이 되도록 두들겨 맞은 뒤 벌거벗긴 채로 나무에 목매달려 까맣게 타버린 린치의 희생자들을 배경으로 삼아 카메라 쪽으로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이 전시됨으로써 우리도 이들과 똑같은 구경꾼이 되어버린 셈이다.

(... ...)

전시회가 끝난 직후 [성역 없이]라는 제목으로 이 전시회에 전시됐던 사진들이 책으로 묶여 나오면서 위와 같은 질문들이 제기됐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듯 소름끼치는 사진을 전시할 필요가 있었는가 반문하며, 이런 전쇠가 흑인 희생자들의 이미지를 둘러싼 대중들의 관음증적 욕구를 부추기고 영속화하지 않을까, 혹은 사람들을 이런 의미지에 무뎌지게 만들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렇지만 이 사진들을 "꼼꼼히 검토해 볼" 의무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더 나아가서는 이런 사진을 보게된 시련을 달게 받을 때에야, 이와 같은 잔악 행위를 그저 '야만인들'의 행위라고 이해하기보다는 인종주의 같은 일종의 신념 체계, 즉 어떤 인종을 열등하다고 규정해 그 인종을 고문하고 살인해도 상관없다고 여기는 신념 체계가 반영된 행위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 ...)

만약 미국인들이라면, 원자폭탄의 화염에 타버린 희생자들이나 미국이 일으킨 베트남 전쟁 중 네이팜탄에 맞아 육체가 갈가리 찢긴 민간인 희생자들의 사진을 보려고 출타하는 행위를 병적인 행위라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은 린치를 당한 흑인들의 사진을 보는 행위는 의무라고 생각한다.  (138-142pp)

 

 

 

 

 

 

매혹적인 육체가 외부의 공격을 받는 광경을 보여주는 모든 이미지들은 어느 정도 포르노그라피이다. 그렇지만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담은 이미지들도 매력적일 수 있다. 고속도레엇 발생한 끔찍하기 이럴 데 없는 자동차 충돌 현장 옆을 지나칠 때 운전자들이 차의 속도를 늦추는 이유가 단지 호기심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대부분 운전자들은 뭔가 소름끼칠 만큼 섬뜩한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런 바람을 '병적'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이 표현이 뭔가 보기 드문 일탈 행위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끔찍한 광경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런 현상은 영원히 계속될 내적인 고문의 원천이라고 할 만하다. (144-145pp) 

 

 

 

 

 

어떤 이미지들을 통해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에 상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텔레비전 화면에서 클로즈업되어 보여지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특권을 부당하게 향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련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 준다. 비록 우리가 권력과 맺고 있는 실제 관계를 또 한번 신비화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 (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154p)

현실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은 깜짝 놀랄 만큼 지역성을 띠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 세계의 부유한 곳, 그것도 뉴스가 오락으로 뒤바뀌어 버린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극소수 교육받은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습관을 보편화하고 있는 셈이다. (...) 모든 사람들을 일종의 구경꾼으로 보는 것이 바로 이들의 방식이다. (...) 마찬가지로 전쟁, 엄청난 불의, 테러리즘 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는 뉴스 소비자들의 사고방식에 근거해 타인의 고통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일반화하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자신들이 텔레비전 상에서 보는 것들에 전혀 단련되어 있지 못한 텔레비전 시청자들도 수십억이 넘는다.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 선심을 베푸는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162-163pp)

 

 

 

 

 

 

포위되어 있을 당시의 사라예보에서는 폭격의 와중이나 저격수의 총탄이 빗발치는 와중에서도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을 호통치는 사라예보 주민들의 고함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은 목에 두른 장비 때문에 쉽게 눈에 띄었다. "시체들 사진을 찍으려고 포탄이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요?"

(... ...)

희생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재현되는 데에 관심을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뭔가 유일무이한 것으로 보여지기를 원한다. 1994년 초, 포위 상태에 놓여 있던 사라예보에서 일 년 이상 거주해 왔던 영국의 포토저널리즘 작가 폴 로우는 절반 이상이 파괴되어 버린 어느 미술관을 빌려 자신이 찍어 왔던 사진들을 전시했다. 그 당시까지도 파괴되어 가고 있던 자신들의 도시를 찍은 새로운 사진을 간절히 보고싶어 했던 사라예보 주민들은 소말리아의 사진들이 포함된 데에 적잖이 언짢아했다. 로우는 소말리아의 사진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전문 사진작가이며, 그저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느 두 개의 작품을 전시했을 따름이었던 것이다. 사라예보 주민들로서도 언짢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타인들의 고통과 나란히 보여준다는 것은, 사라예보가 겪은 수난을 그저 [잔악행위의] 또 다른 사례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양자의 고통을 비교하는 것 (어느 지옥이 더 나쁜가?)이었다. (164-166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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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 <코드 훔치기> 중에서...

이 책은 아버지가 고물상에 팔려고 여기저기서 주어온 신문지, 중고생 참고서 더미 속에서 발견한 것. 왠지 사회과학책 처럼 생겼길래 일단 챙겨 놨는데, 나름 소득이 있었다. 사실 난 고종석이라는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 아예 모르고 있었는데,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는 완전 이 사람을 박노자, 진중권, 유시민과 동급의 '논객'으로 쳐 주더라. 사상적으로야 뭐 나랑 크게 겹치는 부분은 없는 것 같긴 하지만, 다음 문장은 쫌 와 닿는다. 그간 내가 생각해 오던 '정치의 스포츠화'라는 명제와도 상통하는 듯. ㅋㅋㅋㅋ

 

 

그리고 기타 등등 여러 구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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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권력의 중요한 거처는 언론 매체 특히 텔레비전이라고 할수 있다. '매개학(Mediologie)'이라는 학문의 창시자인 레지스 드브레(Regis Debray)는 <유혹하는 국가>에서 기술 혀겸ㅇ이 권력의 성격을 변화시키는  과정을 더듬는다. 드브레는 기술과 권력을 짝지으면서 역사를 세 시기로 나눈다. 첫째는 '언어권'의 시대 도는 구전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다. 그 다음은 인쇄술의 보급과 함께 시작된 '문자권'의 시대다. 마지막은 사진술의 등장과 함께 시작돼 텔레비전과 인공위성의 등장 이후 전성기를 맞고 있는 '비디오권'의 시대다.

언어권의 시대는 마술사-주권자의 시대, 선지자의 시대다. 곧 신권(神權)의 시대다. 근세 초기에 인쇄술이 보급되면서 신권과 '말씀'의 자리는 이성이 물려 받았고, 설교의 공간은 공교육이 차지했다. 문자권의 시대는 인쇄술의 도움을 받아 정치적 논쟁을 유행시키고 공교육을 보편화했다. 그런데 이제 세계는 이 문자권과 본질적으로 다른 비디오권으로 진입했다. 문자권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이 본질적으로 상징의 수준에서 이뤄졌다. 태양 문양을 간직한 루이 14세의 문장(紋章)은 권력의 존재를 표상했지만, 권력이 그 표상 안에 있지는 않았다. 반면, 사진의 등장 이후에, 특히 텔레비전의 등장 이후에, 사람들은 살과 뼈를 지닌 진짜 대통령을 현실 속에서 보게 되었다.

옛날에는 정치 담당자들이 소문이나 출판물들의 느린 리듬에 실린 상징들을 통해 국민과 의사를 주고 받았다. 그 상징들은 전통적 교통, 통신의 속도에 실려있었기 때문에, 정치가들은 자신들의 정책을 다듬고 설명할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감각적 이미지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즉각 시청자에게 도달해서 여론에 영향을 주고, 우리들은 여론조사를 통해 그 여론의 동향을 항시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정치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오늘날의 대중은 펄펄 살아있는 이미지를원하고, 그 이미지들에 감동 받기를 원한다. 브라운관은 장르 사이의 구별을 지워버렸다. 대중은 스포츠든 문화든 버리어티든 정치든 리얼리티쇼든 가장 인상적이고 자극적인 이미지를 향해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댄다. 그래서 정치는 살아남기 위해 하나의 문화 상품이 되었다. 정치인들은 정책결정과 수행이라는 본업을 제쳐놓은 채, 시시각각 미디어에 볼거리를 공급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시청률 경쟁이 미디어의 논리라면, 미디어에 대한 경쟁이 정치의 논리가 돼버린 샘이다. 장기적인 방향 감각을 가지고 어떤 것이 정치적으로 중요한 가치인가를 숙고하는 정치인은 사라지고, 정치 마케팅 논리의 노예가 돼 카메라 앞에 서는 데 골몰하는 정치적 유령들만 남았다. (92-3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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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 체제 이래 민주화 운동 시기에 운동 단체들은 흔히 서울의 명동 성당이나 종로 5가의 기독교 회관에서 집회를 열거나 농성을 벌였다. 종교의 위엄이 배어 있는 곳이어서 공권력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공권력이 명동 성당이나 기독교 회관에 들어가길 망설인 것은 꼭 그 곳이 거룩한 곳이어서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 작용하고 있는 종교의 실질적 힘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제 6 공화국 이래 민주화가 진척되면서도 종교 시설은 노조나 운동 단체들의 피난처가 되었다. 1993년의 지하철 노조 파업 때 노조 지도자들은 기독교 회관에서 농성을 벌였고, 1995년의 한국 통신 노동쟁의 때 노조 지도자들은 명동 성당과 조계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바로 그 1995년의 한국통신 노동쟁의 때 경찰이 명동 성당과 조계사에 들어가 노조 지도자들을 연행하자,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여러 종교 지도자들은 공권력의 '성소' 침입을 강력히 비난했다. 신자들과 일반 시민들도 입을 모아 '성소'가 짓밟혔다는 점을 개탄했다.

그러나 찬찬히 생각해 보면 이런 비판은 근거가 약한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판의 각도가 잘못된 것이다. 만약에 노조나 운동 단체의 집회나 농성이 정당한 것이라면, 그 집회나 농성이 어디서 열리든 공권력에 의한 강제 해산이나 연행은 부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집회가 부당한 것이라면, 그것이 종교 시설에서 열렸다고 하더라도 공권력의 투입은 정당한 것이다. 말하자면 법의 집행은 일반적이 되어야지, 예외를 남겨서는 안 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리 가운데 하나인 세속주의다. 종교 단체의 관련 건물이라고 해서 치외법권을 누릴 수는 없다.

물론 공권력의 집회 해산이 합법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을 구정한 법 자체가 악법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은 그 법의 개폐를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지, 종교단체 관련 건물을 치외 법권 지역으로 남겨 두는 일이 아니다. 요컨대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성스러움을 이유로 법의 적용을 면제받는 공간이 있어서는 안 된다. 한국통신 노동쟁의 당시 공권력이 정작 비판 받았어야 할 점은 초기의 준법 투쟁 당시부터 검찰이 개입하기 시작했다는 점일 것이다.

마태와 마가와 누가가가 자신들이 각자 쓴 복음서에서 전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예수는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야 하느냐 아니면 그래서는 안되느냐를 묻는 바리새인들에게 세금으로 내는 돈에 새겨진 초상이 누구의 것이냐고 물었다. 그 초상이 황제의 것이라고 바리새인들이 대답하자 예수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바치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 바치라"고 말했다. 물론 신약의 복음서들이 묘사하고 있는 이 장면은 미묘한 맥락을 지니고 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에게 그 질문을 한 것은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다. 예수가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면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이민족의 유태인 지배를 당연시한다고 비판할 참이었고, 예수가 그 질문에 부정적으로 답하면 바리새인들은 로마 사람들에게 예수를 위험한 선동가로 고발할 참이었다. 이런 악의적 질문에 예수는 멋들어지게 반격을 한 것이고, 그래서 예수의 이 대답이 담고 있는 참뜻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연구자들 사이에 견해가 갈린다. 그러나 예수의 이 발언이 일차적으로 뜻하는 것이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것은 확실하다. 기독교의 창시자가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세속주의를 지지한 것이다.

명동 성당에 공권력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은 이런 세속주의에 대한 부정이다. 이 곳이 민주화의 성소로 추앙받던 특별한 시기에 그런 예외가 있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그것이 법의 일반성을 부정하는 데까지 나가서는 안 된다. (109-111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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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이 이 책(<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을 쓴지 30년 쯤 지난 뒤, 제레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1994)에서 노동자가 이상한 방식으로 노동의 고역과 착취에서 해방되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 18세기에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결정적으로 거든 것이 기계였듯이, 미래 세계애서 그 착취를 사라지게 할 것도 기계다. 그러나 노동자가 착취에서 해방된 세상, 리프킨이 그리는 그 '노동해방'의 세상은 고래의 혁명가나 반역자들이 꿈꾸어 왔던 평등한 세상이 아니다.

<노동의 종말>은그 책 한 장(章)의 제목대로 '노동자 계급을 위한 진혼곡'이다. 리프킨이 그 책에서 우울하게 전망하고 있는 것은 노동자 없는 세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동화를 핵심으로 진행된 제3차 산업혁명에 따라, 로봇화된 컴퓨터 시스템이 궁극적으로는 지금의 노동자들을 대치하리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 지능 기계는 이미 제조업 분야의 블루 칼라 노동자들에게서 많은 일자리를 빼앗았고, 그것은 점차 서비스 분야의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을 위협하고 있다. 실상 새로운 컴퓨터 기술을 적용하기 위한 작업장의 리엔지니어링으로부터 가장 커다란 타격을 입은 계층은 중간 관리자들이다. 전통적인 조직 위계에서 위아래의 작업 흐름을 조정해왔던 중간관리자들의 역할을 컴퓨터가 무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능 기계는 의료나 법률 상담 같은 전문 분야나 심지어 예술창작에까지 파고들고 있다. 노동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데, 생산성은 점점 높아진다. 그것은 인사 관리를 짜증스러워하면서도 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경영자에게는 꿈같은 세상이다. 노동자가 줄어든다는 말은 정확한 표현이 아닐지도 모른다. 노동자 계급은 그들의 역사가 목격해본 적이없는 기괴한 방식의 세대 교체를 겪고 있다.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자리를 물려받을 그 신세대 노동자는 플러그가 끼워진 종족, 리프킨이 '실리콘 칼라'라고 부르는 기계 노동자다. 이 실리콘칼라 노동자는 하루 스물네시간계속 노동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고, 배고픔이나 피곤을 느끼지도 않는다. 불평도 하지 않고 노동조합도 만들지 않는다. 이런 세대 교체에 따라 가장 중요한 생산 요소로서의 인간의 역할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데모크라시(인민의 지배)를 대치하고 있는 듯이 보이는 이 테크노크라시(기술의 지배)는 리프킨이 보기에 기술 유토피아가 아니라 기술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최초의 목화따는 기계가 미국 남부의 흑인들을 농장 겨제의 착취로부터 '해방'시켰을 때, 일자리를 잃은 이들은 북부 도시의 산업 프롤레타리아로 변신해 제조업 분야로 흡수될 수 있었다. 그러나 제 1차 산업에서 서비스 부문까지 생산 활동의 전 영역을 감당하고 있는 실리콘 칼라 노동자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21세기의 노동력은 어디로도 흡수되지 않는다. 이 노동자들이 재교육을 통해서 다가올 세계의 엘리트 직업 집단인 물리학자, 컴퓨터 과학자, 분자생물학자, 경영컨설턴트 등으로 거듭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리프킨이 '새로운 세계인'이라고 부르는 이 미래의 엘리트들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시간은 넘쳐나고 일은 없다. 이제 노동자들은 더이상 착취당하지 않는다. 그들으 쓸모없는 존재로서 무시당할 뿐이다. 중산층이 와해되고 실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테러를 비롯한 폭력범죄가 기승을 부릴 것이고 그에 따라 세상은 점점 더 살기 위험한 곳으로 변할 것이다. 외국인 혐오증이 파시즘의 토양을 만들 수도 있다.

이 우울한 세상을 헤쳐나가기 위해서 리프킨이 제시하는 방도는 두 가지다. 첫째는 기술진보의 열매를 공정히 나누기 위해 생산성의 향상을 노동시간의 단축과 임금의 지속적인 인상으로 연결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시장부문에서 축출된 사람들에게 자원봉사나 공도체  서비스를 포함한 제3부문의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서 정부가 노력하는 것이다. 유럽에서 흔히 '사회적 경제'라고 부르는 이 제3부문은 비영리적 공동체 활동을 뜻한다. 공공 부문도 시장 부문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제3부문이라고 불리는 이 영역은 일본에서는 흔히 공익법인이나 사회복ㅈ법인이라고 불리는 자선단체나 사회복지 조직들의 활동으로 이뤄지고, 요새 유행어로는 NGO활동의 일부를 포함한다. 리프킨은 이 제3부문이의 활성화가 노동의 종말 이후의 세계를 파국에서 구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자원봉사에 대해서는 정부가 세금 공제의 형태로 그림자 임금을 제공하고, 공동체 서비스(비영리 조직에서의 일)에 대해서는 복지 지출의 대안으로서 사회적 임금을 제공하라고 제안하고 있다. 제3부문은 리프킨이 보기에 '포스트-시장시대'의 실업자들을 흡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감과 연대의 식을 함양함으로써 공동체의붕괴를 막을 수 있다. 그러니까 제3부문은 사회를 결속시키는 박애의 산실이 될 수 있다. (150-154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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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예감했고 슘페터가 '혁신'이라는 개념을 통해 명료하게 이론화했듯, 모든 생산체계는 결국 과학기술의 진보에 기댄다. 그리고 그 과학기술의 진보가 이뤄지는 것은 늘 시행착오를 통한 배움에 의해서다. 시행착오를 통한 배움은 말을 바꾸면 실패를 통한 배움이다. 그런데 살로몽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온 산업사회에서 그 시행착오를 통한 배움, 실패를 통한 배움은 '파국을 통한 배움'의 형태를 띠게 됐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제어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그래서다. (1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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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문화의 주체로서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20세기 초에 사회주의 정권들이 들어선 뒤부터다. 진보의 열정으로 무장한 이 새로운 정권 담당자들은 문화에서 선전/선동의 힘, 새로운 인간형을 창출할 수 있는 거푸집의 역할을 발견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과 함께 문화는 역사상 거의 처음으로 적극적인 '정책'의 대상이 되었고, 당과 정부에 설치된 문화 부서들은 흔히 선전/공보 부서를 겸하고 있었다. (...)

퓌마롤리는 프랑스를 '문화 국가'로 만든 가장 큰 책임을 드골 정권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와 미테랑 정권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자크 랑에게 돌린다. 앙드레 말로가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취임하기 전까지는, 프랑스 국가는 정치적, 사회적 사업을 지도하는데에 만족하고 예술 창작자들과 예술 애호가들을 내버려두었다. 그러나 말로 이후로, 특히 자크 랑 이후로, 국가는 진정한 '문화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틀어쥐고 그것을 자기 선전이나 대중의 여가 조직의 도구로 사용해 왔다. 그 결과 문화는 일종의 국교(國敎)가 되었다. [문화 국가]의 부제가 '한 근대적 종교에 대한 에세이'인 것은 시사적이다. (...)

저자에 따르면 문화 국가의 기원이 되는 이데올로기들은 1870년대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가톨릭 교회에 맞서 수행한 문화 투쟁, 20세기 들어 좌파 지식인들을 매료한 마르크스주의 예술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비시 정부하에서 민족의 문화적 중흥을 외쳤던 '청년 프랑스'운동, 문화를 프랑스 민족의 '세포조직'으로 만들어버린 말로의 메시아적 꿈 같은 것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일종의 '문화당' 안에서 화해하고 혼합돼, 권력을 틀어쥐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앙드레 말로는 1959년에 모든 프랑스인들에게 문화를 배급하고 전세계에 프랑스 문화를 선양하는 국무위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 경건한 바람의 면사포 안에는 불길한 현실이 숨겨져 있었다. 프랑스의 예술과 문학은 무엇이 '문화적'이고 무엇이 '비-문화적'인지를 결정할 권한을 부여받은 한 줌의 문화 관료들에게 차압되었다. 이 경향은 자크 랑이 문화부를 맡았던 시절에 더 심회되었다. 퓌마롤리에 따르면, 이 시절의 프랑스는 파리의 문화적 성직자(곧 자크 랑)가 자신의 초현대적인 광기로 전체주의 국가에나 얼루릴 법한 전시 문화 행정을 전국토에서 수행하는 것을 목격했다. 퓌마롤리는 여기서 랑 시절의 프랑스에서 건축된 수많은 대형 건조물들과 끊임없이 조직된 떠들썩한 문화 축제들을 지적하고 있다. (...)

'문화 권력'은 무대에 신경을 쓴다. 그래서 프랑스라는 '스펙터클 공화국'에서 유명해지고 싶은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서임(敍任) 장소로 삼는다. 당연히, 텔레비전은 신성함의 아우라를 부여받았다. 이 상설쇼의 가장 큰 패배자는 책과 대학이다. 책들은 이 '문화의 슈퍼마켓' 안에 진열된 수많은 무화 상품들 가운데 가장 눈에 안 띄는 곳에 처박혀 있다. 예전엔 진정한 앎에 접근하는 통로였던 대학은 이제 '문화 관광'을 위한 공간들로 대치되고 있다. 이 공간 안에서 국가는 '모두를 위한 문화'의 신도들로 변한 시민들을 즐겁게 해주면, 할인판매와 자기 자랑에 열중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문화 국가'의 가장 걱정스러운 대목이라고 퓌마롤리는 말한다. 즉 문화 국가는 '집단적 여가활동의 정치 경제학'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이렇게 프랑스의 문화는 여가활동이나 취미생활로 변했고, 프랑스의 문화 공간은 일종의 라스베가스로 변했다.

 

(213-216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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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창세기에 따르면 신(神)은 빛을 만든 지 닷새째 되는 날과 엿새째 되는 날에 사람을 포함한 온 갖 생명체들을 창조했다. 오늘날 성성의 이 부분을 곧이곧대로 믿는 과학자는 거의 없다. 그들은 찰스 단위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지난 세기 중반까지는 인간이 생명의 창조에 간섭할 수 있다고 믿었던 과학자들도 거의 없었다. 그것을 '신'이라고 부르든 자연의 질서라고 부르든, 생명은 특히 인간의 생명은, 어떤 무제약적 존재의 소관이었다. 그것은 사람이 넘볼 수도 없고 넘보아서도 안 되는 거룩한 영역이었다. 인간이 그 성역 안으로 불경스러운 첫걸음을 내딛은 것은 1953년이다. 이 해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생명복제의 신비를 간직한 세포 내 디옥시리보핵산(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밝혀냈다. (...)

인체게놈 사업은 우선 의학의 중요한 기능을 치료에서 예측으로 바꾸어놓을 것이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생물학적 운명을 높은 확률로 미리 알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체게놈 사업은 인류의 지성사를 관통한 선청성 대 후천성(nature versus nurture)논쟁에서 전자의 손을 들어주며 생물학적 결정론, 곧 유전자 결정론을 널리 유포시킬 것이다.

 

(299-300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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