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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예수전> 발췌 - 3

25 그리고 여러분이 기도하려고 서 있을 때에 어떤 사람과 등진 일이 있으면 용서하시오. 그래야만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도 여러분에게 여러분의 잘못을 용서하실 것입니다.


예수에 관한 가장 흔한 오해 가운데 하나는 예수가 무조건적인 용서를 설파했다는 것이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갖다 대라’는 그의 말(마태 5:39)은 불의와 폭력에 대한 무기력한 순응을 강요하는 데 활용되어 온 가장 유명한 경구다. 그러나 오늘 좀 더 섬세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예수의 이 경구가 오히려 저항의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아챈다. 사람은 대개 오른손잡이다. 오른손은 ‘바른손’이며 고대사회에선 더욱 그랬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뺨을 때린다는 건 오른손으로 상대의 왼빰을 때리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는 “오른뺨을 때리면”이라고 했다. 손바닥이 아니라 손등으로 때렸다는 말이다. 손등으로 뺨을 때리는 행위는 당시 유다 사회에서 하찮은 상대를 모욕할 때 사용되곤 했다. 그렇게 모욕당한 사람에게 예수는 ‘왼뺨도 갖다 대라’고 말한다. ‘나는 너와 다름없는 존엄한 인간이다. 자, 다시 제대로 때려라’하고 조용히 외치라는 것이다. 무조건적으로 용서하고 순응하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단호하게 저항하라, 불복종을 선언하라는 것이다.


결국 이 유명한 경구는 사람 취급 못 받는 사람들, 매일처럼 무시당하고 모욕당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예수의 가슴 아픈 위로다. 예수는 그들 앞에서 애끊으며 입술을 깨물며 말한다. “여러분이 당장 여러분의 현실을 뒤집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여러분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부자와 권력자들의 편이 아니라 여러분의 편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주인은 바로 여러분입니다. 믿음을 가지세요. 부디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고 자존심을 잃지 마세요.”


불의한 사회 현실 속에서 분노와 용서는 늘 균형을 잃곤 한다. 현실에 분노하고 싸우는 사람들은 대개 용서를 모른다. 그래서 많은 경우 증오와 보복의 악순환으로 빠져 들어간다. 한편 용서를 말하는 사람들은 분노할 줄 모른다. 그들의 분노 없는 용서, 진실과 정의를 가리지 않는 무작정한 용서는 불의 한 현실을 덮고 그 현실에서 영화를 누리는 세력에게 봉사하게 된다. 그러나 예수에게 분노와 용서는 늘 병행한다. 성전 뜰에서 그의 생애 중 가장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 예수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용서를 말한다. 두 가지 모습은 얼핏 개연성이 없어 보이나 모두 예수의 모습이다. 예수는 분명히 분노하여 진실과 정의를 가리지만, 끝내 용서함으로써 증오와 보복의 고리를 끊어 낸다.


우리는 흔히 “죄는 미워하되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말의 순서를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되 죄는 분명히 미워하라.’ 우리는 끝내 용서하되, 먼저 분명히 분노해야 한다. 진정 분노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 용서할 줄도 모르며, 진정 용서할 줄 모르는 사람은 진정 분노할 줄 모른다. 분노와 용서는 실은 하나다.


(187-1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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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축제 때마다 그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죄수 하나를 놓아주었다. 7 마침, 폭동 중에 살인을 한 폭도들과 함께 바라빠라는 사람이 구속되어 있었다. 8 이윽고 군중이 빌라도에게 올라가서 그가 자기들에게 해 온 관례대로 해 주기를 청하기 시작하였다. 9 그러자 빌라도는 그들에게 대답하여 “내가 유다인들의 왕을 여러분에게 놓아주기를 바라오?” 했다. 10 대제관들이 시기하여 그분을 넘겨주었음을 그는 알아차렸던 것이다. 11 그러나 대제관들은 군중을 선동하여 차라리 바라빠를 자기들에게 놓아 달라고 청하게 하였다. 12 그러자 빌라도는 다시 대답하여 “그러면 [여러분이 말하는] 유다인들의 왕을 내가 어떻게 하기를 [바랍니까?]”하고 그들에게 말했다. 13 그러니 그들은 다시 소리 질렀다. “그를 십자가형에 처하시오.” 14 그러자 빌라도는 그들에게 말했다. “그가 무슨 나쁜짓을 했단 말입니까?” 그러니 그들은 더욱 소리 질렀다. “그를 십자가형에 처하시오.”


예수가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들은 (11:9~10) 왜 고작 나흘 만에 “죽여라!”라고 외치는 걸까? 학자들은 대개 군중들의 생각이 달라져서라고, 혹은 예수를 죽이려는 세력의 사주와 선동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수를 죽이려는 세력에 의한 사주와 선동이 있었던 건 분명하다. 그러나 군중들의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군중이 달랐다고 할 수 있다.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과 “죽여라!”를 외치는 군중은 실은 다른 군중인 것이다. “호산나”를 외치던 군중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던 순례객들, 즉 성전 지배세력의 착취와 억압에 시달리던 갈릴래아 인민을 중심으로 한 사람들이고, 지금 “죽여라”라고 외치는 군중은 예루살렘 사람들, 즉 성전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이다. 예루살렘의 평소 인구가 5만 명가량인데 성전에서 상근하는 사람이 1만 7,000명에 달했으니 예루살렘 사람들은 모조리 성전에서 일하거나 성전 덕에 먹고사는 사람들인 셈이다. 성전의 적은 예루살렘 사람들의 적이었다. 안 그래도 ‘갈릴래아 놈들의 괴수’예수를 마땅치 않아 하던 그들은 지난 며칠 동안 예수의 행태 덕분에 분노가 폭발했다. 그들은 예수가 성전 이방인의 뜰에서 장사꾼들을 내쫓으며 “강도들의 소굴”이라 고함칠 때 당장이라도 그를 죽이고 싶었다. “호산나!”는 그렇게 이해관계의 이동을 통해 “죽여라”로 변한 것이다.


유년 주일학교에서 ‘강도’라 가르치는 바라빠는 “폭도 중에 살인을 한 폭도들”가운데 한 사람, 즉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무장 항쟁을 벌이던 조직의 성원이었다. 군중들은 “차라리 바라빠를 풀어 달라”고 외친다. “차라리”. 그들은 바라빠도 죽이고 싶지만 둘 중 한 사람만 죽일 수 있다면 바라빠를 풀어 주고서라도 예수를 죽이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반하여 폭동과 살인(다른 입장에서 볼 때 정치적 테러리즘, 혹은 의거이기도 한)까지 한 사람을 석방해서라도 예수를 죽이려 하는 걸 보면 당시 예루살렘 사회가 예수에게 가진 적대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혹은 예수에게서 얼마나 강력한 위협과 공포를 느꼈는지 잘 알 수 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예수는 정치적인 혁명가가 아니었다.’는 상투적인 견해에 대해 묵상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정치적 혁명성이 ‘주장’되는 게 아니라 지배체제에 의해 ‘증명’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겉보기엔 제아무리 혁명적이라 해도 지배체제가 별 다른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건 더 이상 혁명적인 게 아니다. 학술적, 문화적 차원에 머무는 혁명 이론 따위가 그렇다. 반대로 겉보기엔 그다지 혁명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데 지배체제가 어떤 과격하고 급진적인 혁명운동보다 더 위협을 느끼고 적대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혁명적인 것이다. 예수는 비폭력주의자였고 국가권력을 접수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건 다 안다. 그런데 왜 지배체제는 폭력을 사용하고 국가권력 접수를 목표로 싸운 바라빠보다 예수에게서 더 큰 위협을 느끼는가? 예수의 정치성에 대해 말하려면 먼저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총독 빌라도가 예수를 죽이기를 꺼리는 모습은 빌라도에 대한 다른 역사적 기록들과는 거리가 있다. 요세푸스를 비롯한 유력한 역사가들은 빌라도를 매우 냉혹하고 영악한 인물로 기록한다. 빌라도는 예수가 죽고 7년 후 해임되어 송환되는데 그 주요한 이유도 소요 사태를 지나치게 잔인하게 진압했기 때문이었다. 빌라도에 대한 호의적인 묘사는 「마르코복음」집필 당시 기독교인들이 처한 사회적 상황에서 비롯한 것이다. 로마에 의해 탄압받고 있던 그들은 자신들의 그리스도가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처형된 사람이라는 사실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예수가 정치적 반역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며 로마 총독도 예수를 죽이고 싶어 죽인 게 아니라 유다 지배세력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음을 강조하면서, 그들의 종교가 로마와 적대적이지 않음을 애써 주장한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분명 사실과 다르지만 그들의 신앙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역사 속에서 실제로 살아 숨 쉰 예수보다 ‘죽음으로서 내 죄를 대속한 그리스도’ 예수, 즉 신학과 교리 속에 갇힌 예수를 선택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246-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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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부활이 사실인가를 둘러싼 논쟁은 끝이 없다. 기독교도들은 ‘부활이 없엇다면 기독교도 없었다’며 굳세게 예수의 부활을 주장한다. 반면 부활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불신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은 역사 속에 실재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예수가 부활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가장 극적인일은 예수가 잡히자 뿔뿔이 흩어졌던 제자들이 어느 순간 “예수가 부활했다!”를 외치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를 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달라진 모습 사이에 예수의 부활 사건이 있다.


문제는 예수의 부활이 사실인가가 아니라 부활이 무엇인가다. 예수의 부활을 둘러싼 모든 주장과 논란은 예수의 부활이 육체의 부활, 즉 예수의 죽은 세포들이 재생한 사건이라는 전제를 갖는다. 그러나 부활이 단지 죽은 육체가 되살아난 것이라면 부활은 ‘영원한 생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살아난 육체는 즉시 노화를 시작하고 어쩌면 그날 다시 죽을 수도 있다. 죽은 육체가 사흘 만에 살아났다는 건 단지 육체가 사흘 동안 노화를 멈추었다는 의미일 뿐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이적이지만, 그런 이적이 우리의 존경이나 신앙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예수는 이미 제자들 앞에서 충분히 이야기한 바 있다. 사람은 대개 육체를 사용하는 시간을 목숨이 유지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 유한함은 우리를 겸허하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집착에 빠지게 한다. 금방이라도 인생이 지나가 버릴까 아쉬워, 혹은 반대로 인생이 영원하기라도 한 것처럼, 집착하는 것이다. 예수는 그렇지 않다고, 육체의 목숨은 진정한 목숨이 아니라고, 육체의 목숨에 연연하면 진정한 목숨을 영원히 잃고 만다고 말한다.


제자들은 예수의 죽은 몸이 살아난 광경을 본 것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다라면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이미 살아 있는 예수를 떠났었다. 그들은 예수가 말한 ‘진정한 목숨’의 의미를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가 죽지 않았다고, 영원히 살아 있다고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목숨이란, 살아 있다는 것이란 지정 무엇인가? 육체의 젊음과 아름다움은 그것이 찬미되는 순간에도 이미 늙고 있다. 엄청난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누구보다 힘차게 살아 있는 듯 보이나, 그들은 둘러싼 모든 인간적 호의와 관계들은 대개 그들이 가진 돈과 권력을 향한 것이다. 그들이 살아 있는 게 아니라 돈과 권력이 그들의 시체를 쓰고 살아 있는 것이다 . 스무 살짜리 노인도 있고 여든이 넘은 청년도 있다. 몸은 살아 있되 목숨은 죽은 사람도 있고, 몸은 죽은 지 오래이나 목숨은 생생히 살아 있는 사람도 있다. 목숨이 소중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세상에 없지만 지정한 목숨이 무엇인지를 진지하게 묵상하는 사람은 참 드물다. 그래서 육체의 목숨에 집착하느라, 그 목숨이 지속하는 시간 동안의 안락과 이런저런 부질없는 욕망의 충족에 매달리느라 정작 그 시간조차 허비하고 마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우리는 예수의 제자들이 그랬듯, 내 삶 속에서 예수가 부활하게 함으로써 영원한 목숨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은 오랜 종교적 수련이나 특별한 구도 행위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바로 이 순간에 선택할 수 있는 일이다. 남보다 많이 가진 것을 자랑스러워하던 사람이 이 순간 그런 삶을 부끄럽게 여기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다면 예수가 그 안에서 부활한 것이다. 권력을 얻은 후에 낮고 약한 사람들 편에 서겠다던 사람이 이 순간 스스로 권력을 잃어 낮고 약한 사람들을 섬기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면 예수가 그 안에서 부활한 것이다. ‘옳다는 건 알지만 현실이’,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좀더 경제적 안정을 얻고 나서’라고 되뇌며 제 삶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던 사람이 이 순간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으로 새처럼 훌쩍 날아오른다면 예수가 그 안에서 부활한 것이다.


(261-2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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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예수전> 발췌 - 2

20 그리고 그분은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 와서 그분 일행은 빵을 먹을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21 그런데 그분의 친척들이 듣고서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그분이 정신 나갔다고 말햇던 것이다. 22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사들은 말하기를 “그는 베엘제불에 사로잡혀 있다”고 했고, 또한 “그는 귀신 두목의 힘을 빌려 귀신들을 쫓아낸다”고도 했다. 23 그러자 그분은 그들을 불러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습니까? 24 나라가 서로 갈라지면 그 나라는 지탱할 수 없습니다. 25 또 집안이 서로 갈라지면 그 집안은 지탱할 수 없습니다. 26 이와 같이 사탄도 서로 들고 일어나서 갈라지면 지탱할 수 없고 끝장이 납니다. 27 실상 먼저 힘센 사람을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힘센 사람의 집에 들어가서 그의 세간들을 털 수 없습니다. 묶어 놓아야 그의 집을 털게 될 것입니다. 28 진실히 나는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사람의 아들들은 죄뿐 아니라 독성도, 어떤 독성의 말이라도 모두 용서받을 것입니다. 29 그러나 성령에 대해서 독성의 말을 하는 사람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30 “그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혀 있다”고 그들이 말했기 때문이다. 31 그리고 그분의 어머니와 그분의 형제들이 왔다. 그런데 밖에 서서 그분을 부르러 누군가를 그분에게 보냈다. 32 그리고 그분 주위에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그들이 그분께 “보시오, 당신의 어머니와 당신 형제들[과 당신 자매들]이 밖에서 찾습니다”했다. 33 그러자 그분은 답변하여 “누가 내 어머니며 내 형제들입니까?”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4 그러고서는 당신 주위에 둥글게 앉아 있는 이들을 둘러보시면서 말씀하셨다. “보시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을! 35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그런 사람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입니다.”


율법학자들의 비난에 예수는 매우 민감하게, 그들을 불러서까지 대응한다. 예수는 매우 중요한, 한 치의 타협 없이 분명히 해 두어야 할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예수는 ‘신성모독을 해도 용서받을수 있지만 성령을 모독하면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한다. 예수는 결국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신앙은 ‘하느님을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종교 행위’가 아니라 성령의 활동, 즉 ‘하느님이 진행하는 역사에 인간이 참여하는 행위’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신앙은 인간이 만든 종교체제와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의 성실과 충성이 아니라, 지금 여기 현실 속에서 하느님이 벌이고 있는 역사, 즉 하느님 나라 운동에의 참여인 것이다.


교회와 교리의 테두리 안에 있지 않아도, 심지어 교회와 교리에 부정적인 견해를 가진다 해도 하느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면 진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지만, 교회와 교리의 테두리 안에서 제아무리 성실하고 충성스럽다 해도 하느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면 진정한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는 혹은 다른 종교를 가진 어떤 사람이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그 어떤 사람보다 하느님 보시기에 참신앙을 가진 사람일 수 있으며, 기독교가 전래되기 전에 죽어 하느님이 뭔지 예수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제3세계의 수많은 인민들 가운데에도 하느님 보시기에 참신앙을 가진 사람이 허다한 것이다.


보수 교회에선 이런 사실을 엄격하게 부인하는 것을 마치 하느님을 타협 엇이 섬기는 일인 것처럼 말하지만, 그런 태도는 실은 하느님을 자신들의 교회 체제에 가두어 놓으려는 말도 안 되는 수작일 뿐이다. 우리가 한낱 인간적으로 존경하는 사람이 있어 그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할 때도, 혹시라도 내 생각이 그의 본디 생각에 못 미칠까 걱정하며, 그런 걱정을 함께 전하는 법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느님의 생각을 전하면서 그리 오만하고 권위에 찬 태도를 가질 수 있겠는가? 하느님을 섬긴다는 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려 힘닿는 데까지 노력하면서도 미처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태도이지, 앙상한 교리와 신학을 내세워 자신이 하느님의 권한을 완전히 위임받은 양 구는 태도가 아니다.


예수의 소문을 들은 가족들은 ‘정신이 나간’ 예수를 붙들러 나선다. 가족들의 행동은 예수가 서른 살이 다 되어 가족을 떠나 요한에게 서례를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까지 전혀 특별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드러낸다. 만일 예수가 어릴적부터 신의 아들이라는 표징을 보였다면, 하다못해 위대한 예언자의 징후라도 보였다면 그가 공적 활동을 시작했을 때 가족들은 그저 ‘올 게 왔구나’ 했을 것이다.


아들이 집을 떠나 ‘미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어머니의 심경은 어땠을까? 어릴 적부터 노동으로 식구들의 생계를 맡아 온 착한 맏아들에 대한 연민, 다른 가족들마저 미쳤다고 말하지만, 또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제 속으로 낳고 기른 어머이기에 직감할 수 있는 아들의 진지하고 존귀한 신념, 그리고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그러나 필시 아들에게 닥쳐올 위험과 고난 등에 대한 생각으로 어머니는 번민한다. 그런데 정작 예수는 어머니의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어머니를 부인한다.


예수는 마치 출가한 승려처럼 세속의 인연을 ‘초월’하려는 걸까? 이어지는 예수의 말을 곰곰이 살펴보면 예수는 오히려 세속의 인연을 ‘확장’하는 것이다. 흔히 고대인들은 오늘 개인주의에 물든 우리보다 훨씬 덜 이기적이었던 걸로 여겨진다. 물론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지만 그들에겐 집단화한 이기심이 우리보다 훨씬 더 강하게 존재했다.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던 그들에게 가족이란 한 사람의 정체성과 사회적 위상을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어떤 사람인가보다는 누구의 자식인가 어느 가문 출신인가가 훨씬더 중요했다. 가족의 이해관계는 전적으로 나의 이해관계였고 단일한 이해관계로 뭉친 가족은 다른 가족이나 사회에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집단화한 이기심이 하느님 나라 운동에, 모든 인민들이 하나로 연대하는 일에 큰 벽이 되었다. 예수는 그 벽을 자신부터 깨트리는 것이다. 예수는 제 어머니와 형제를 부인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와 형제의 의미를 해체하여 하느님 나라 운동을 기준으로 다시 세우며 동시에 무한하게 확장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그런 사람”은 물론 바리사이인들이 말하듯 하느님의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참여하는 사람, 즉 하느님 나라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이다. 예수는 가족의 의미를 다시 세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어도 하느님 나라 운동에 함께하는 사람은 가족이지만, 나를 낳은 어머니, 나와 피를 나눈 형제라 해도 그 듯을 같이 하지 않는다면 남과 다를 바 없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베풀러 온 줄로 여기지 마시오. 평화가 아니라 칼을 던지러 왔습니다. 사실 나는, (자식 된) 사람과 제 아버지, 딸과 제 어머니, 며느리와 제 시어머니를 가르러 왔습니다. 제집 식구들이 제 원수들이 될 것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게 마땅하지 않습니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내게 마땅하지 않습니다.” (마태 10:34~37)


(66-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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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리사이들과 예루살렘에서 온 율사 몇 사람이 그분께 몰려왔다. 2 그런데 그분의 제자 몇 사람이 부정한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바리사이들과 모든 유다인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지켜, 한 움큼 물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먹지 않는다. 4 그리고 시장에서 (돌아오면 몸을) 씻지 않고서는 먹지 않는다. 그 밖에도 지켜야 할 전통이 많이 있으니, 잔과 옹자배기와 놋그릇[과 침대]를 씻는 것이다. 5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은 그 분께 “왜 당신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다라서 걷지 않고 더러운 손으로 빵을 먹습니까?”라고 물었다. 6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사야는 여러분 같은 위선자들을 두고 잘도 예언했으니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섬기지만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도다. 7 헛되이 나를 공경하나니 인간의 계명을 교리로 가르치기 때문이로다.’ 8 여러분은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인간의 전통을 지키고 있습니다.” 9 그러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의 전통을 고수하려고 하느님의 계명을 잘도 저버립니다. 10 모세는 말하기를 ‘너의 아버지와 너의 어머니를 공경하라’ 또한 ‘아버지나 어머니를 욕하는 자는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11 그런데 여러분은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코르반이라 하면, 즉 제게서 공양 받으실 것은 예물입니다 하면 그만이다’ 하면서 12 여러분은 그가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아무것도 더 해 드리지 못하게 합니다. 13 여러분이 전하는 여러분의 전통에 의해서 여러분은 하느님의 말씀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이런 짓들을 많이 합니다.”


예수는 바리사이인들과 “위선자”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는 격정적인 논쟁을 벌인다. 복음서를 읽다 보면 예수의 바리사이인들에 대한 분노가 워낙 불거지다 보니, 마치 예수가 사두가이파나 헤로데 괴뢰 세력보다 바리사이인들을 ‘더 나쁜 놈들’이라 여겼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실제로 그렇진 않다. 사두가이인들이나 헤로데 괴뢰 세력이 바리사이인들보다 사회적으로 훨씬 더 나쁜 사람들인 건 말할 것도 없다. 게다가 예수는 그 자신이 ‘선생’(랍비)이라 불리기도 하는, 바리사이인들과 매우 가까운 사회적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비판이 반드시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을 대상을 h하는 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가장 악한 세력은 그 악함이 이미 일반화되어, 뒤집어 말하면 그들에 대한 인민들의 적대감이나 반감 또한 일반화되어 있어서, 그들을 비판하는 일은 그런 일반화한 적대감이나 반감을 한 번 더 되새기는 일에 머물기 쉽다. 너무나 지당한 일은 하나 마나 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사회적 비판은 그 사회에서 가장 악한 세력이 아니라 ‘그 사회의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주요한 세력’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 세력은 두 가지 요건을 갖는다. 가장 악한 세력과 갈등하거나 짐짓 적대적인 모습을 보임으로써 인민들에게 존경심과 설득력을 가질 것, 그러나 그 갈등과 적대의 수준은 지배체제 자체를 뒤흔들 만큼 심각하지 않을 것. 그 두 가지 요건의 절묘한 좌화가 바로 사회 변화를 가로막는 것이다.


바리사이인들이 바로 그들이었다. 인민들은 사두가이인들과 헤로데 괴뢰 세력을 혐오했지만 이스라엘의 현실과 미래를 고뇌하며 실천하는 바리사이인들을 존경했다. 그러나 바리사이인들은 젤롯당처럼 목숨을 걸고 싸울 만큼 열정적이지 않았고, 성정 지배세력과 완전히 절연하고 광야에서 금욕적 공동체 생활을 하던 에세네파처럼 순수하지 않았다. 적당한 여정과 적당한 순수함으로 무장한 그들은 삶의 안정과 사회적 존경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었다. 그들은 어지간한 사회 개혁의 실천으로, 지배세력의 폭압이 혁명의 불길로 번지는 걸 차단하고 인민들의 변혁 의지를 중화하는 체제의 안전판이었다. 예수는 놀라운 통찰로 그들의 정체를 꿰뚫어 본다.


2,000년 전 이스라엘에 살던 바리사이인들의 정체를 파악하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바리사이인들을 파악하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예수 당시 바리사이인들이 자신들이 비난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듯, 오늘 바리사이인들은 자신들이 바리사이인인 줄 모른다. 오늘 바리사이인들은 2,000년 전 바리사이인들을 매우 진지한 얼굴로 욕하는 것이다. 우리는 2,000년 전 바리사이인들의 모습을 찬찬히 살핌으로써 오늘의 바리사이인들을 파악해 볼 수 있다.


그들은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이며, 안정된, 그러나 거부감이 들 만큼은 아닌 경제력을 가진 사람들이며, 상당한 사회의식을 가진 ‘양심적인 시민들’이다. 그들은 탐욕스럽고 불의한 지배세력과 짐짓 긴장과 갈등을 벌이며, 늘 먹고사는 일에 매달려야만 하는 대다수 인민들과는 달리 시민으로서 양식을 충분히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언제나 현실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스스로 그런 변화를 위한 노력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 노력은 대개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 현실의 외피를 덜 추악하게 만드는 일에 머문다. 그들은 오히려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를 좇는 모든 노력들을 ‘비현실적’이라고 냉소한다. 그들은 ‘NGO', '시민운동’, ‘개혁운동’, 그리고 ‘실현 가능한 진보’, ‘최소한의 상식의 회복’ 따위 간판과 표어를 걸고 활동한다. 인민들은 탐욕스럽고 불의한 지배세력을 혐오하지만 양식과 윤리로 무장한 그들을 신뢰하고 존경한다. 그래서 그들, 오늘의 바리사이인들은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력과 설득력을 가지며, ‘진정한 변화를 막기 위한 변화’라는 그들 본연의 임무를 지속하게 된다.


(115-1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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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분은 성전으로 들어가셔서 성전에서 사고파는 사람들을 쫓아내기 시작하시며 환전상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다. 16 그리고 누구든 성전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17 또한 가르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집은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지 않으냐? 그런데 너희는 그것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구나.” 18 마침 대제관들과 율사들이 듣고서는 어떻게 그분을 없애 버릴까 하고 궁리했다. 사실 그들은 그분을 두려워했던 것이다. 군중이 모두 그분의 가르침을 매우 놀라워했기 때문이다. 19 또 저물게 되자 그분 일행은 성 밖으로 나갔다.


‘성전 정화’ 사건이라 불리는 이 에피소드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행적 가운데 가장 소란스러운 것이다. 순례자들은 성전에 제물로 양을 바치거나 형편이 덜한 사람은 비둘기를 바쳤는데 반드시 성전에서 인정한 ‘정결한 것’이어야 했다. 성전의 뜰에는 ‘정결한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로 넘쳤는데 그 양과 비둘기 가격은 여느 양이나 비둘기보다 수십 배나 비쌌다. 성전에 바칠 돈 역시 로마 화폐가 아닌 잘 사용하지 않는 이스라엘 화폐로 바꾸어야 했는데 성전 뜰의 환전상들은 말도 안 되는 수수료를 받았다. 물론 그 장사꾼들과 환전상들은 성전과 결탁해 있었고, 그 막대한 수익의 대부분은 대제관을 비롯한 성전의 고위층에로 흘러 들어갔다.


사실 성전이 그런 상태에 있다는 걸 인민들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인민들은 성전에 순응했다. 묵묵히 수십 배의 돈을 치로 양과 비둘기를 사고 돈을 바꾸어 제관에게 바쳤다. 타락했지만 ‘그래도 성전인데, 그래도 하느님이 거하시는 곳인데’ 하는 순진한 생각에서였다. 성전이나 제관들에게 대항하는 건 마치 하느님에게 대항하는 것처럼 느껴져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예수가 성전의 문제들을 대화와 비판으로 풀지 않고 ‘난동’을 부린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예수가 성전 지배세력의 비리나 부정들을 고치고 개혁함으로써 성전을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굳이 그런 ‘난동’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말은 성전에 대한 비판을 넘어 그에 대한 ‘부인’이다. 예수는 그 성전이 ‘문제 있는 성전’이 아니라 ‘성전이 아니’라고 선언한다. 그 선언은 성전 지배세력을 향한 공격이자 성전 체제의 권위에 눌려 침묵하는 인민들을 일깨우는 퍼포먼스였다.


예수의 태도는 우선 오늘날의 교회(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스스로를 ‘성전’이라 부르기도 한다)에 우리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지 깨우침을 준다. 그 교회들이 이미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가장한 상점 혹은 기업이라면, 그것은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부인의 대상일 뿐이다. 예수가 ‘그래도 성전인데’하며 침묵하던 사람들 앞에서 “강도들의 소굴”이라 외쳤듯이 우리는 ‘그래도 교회인데’하며 침묵하는 사람들 앞에서 “강도들의 소굴”이라 외쳐야 한다.


그러나 예수 당시의 성전이 단지 종교적 의미를 넘어 지배체제의 핵심이었다는 사실에서, 예수의 태도를 전 사회적 영역으로 확대해 보아야만 한다. 예수는 억압의 사회체제가 피억압자들의 비굴과 무기력에 힘입어 유지된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앞서 말했듯 인민들은 성전의 실상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저것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니다”, “하느님은 저곳에 거하시지 않는다”고 말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엔 예의 순진함 외에 ‘세상이 다 그런 거지’하는 비굴과 무기력이 들어 있었다.


우리는 대개 어떤 불의한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힘이 전적으로 그 체제의 지배세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하곤 한다. 이를테면 1970년대 한국의 군사 파시즘 체제를 유지하는 힘은 전적으로 박정희 패거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인민은 다만 그 포악한 체제의 일방적 희생자로 묘사된다. ‘박정희 군사 파시즘에 신음하던 인민들.’ 그러나 그 시절 대개의 인민들은 ‘신음’하지 않았다. 오히려 ‘세상이 다 그런 거지’, ‘사람이 하는 일인데 완벽할 수야 있나’하며 제 식구들 챙기며 오순도순 살았을 뿐이다. 불의한 사회체제를 유지하는 더 근본적인 힘은 바로 인민들의 비굴과 무기력이다. 사실 제 아무리 포악하고 강한 사회체제라고 해도 대다수 인민들이 한꺼번에 거부 의사를 표시하면 당장이라도 맥없이 무너지게 되어 있다.  예수는 수많은 인민들 앞에서 그들의 비굴과 무기력을 일깨우는 것이다. 결국 예수의 ‘난동’은 침묵하는 억압의 체제에 균열을 일으키는 장엄한 퍼포먼스였다. 지배자들은 그 퍼포먼스를 통해 하느님의 권위로 은폐된 그들의 썩은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그리고 인민들은 ‘인민들의 순진함’으로 가려진 제 비굴과 무기력을 비로소 되새기며 인간적 위엄을 회복할 채비를 할 수 있었다.


(178-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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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예수전> 발췌 - 1

40 그리고 나병환자 한 사람이 예수께 와서 [무릎을 꿇고] 간청하며 “선생님은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였다. 41 그러니 예수께서는 측은히 여기시고 당신 손을 펴 그를 만지시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시오” 하였다. 42 그러자 즉시 그에게서 나병이 물러가고 그는 깨끗하게 되었다. 43 그리고 그에게 호통치시며 즉시 그를 쫓아내셨다. 44 그러시며 그에게 말씀하셨다. “어느 누구에게나 아무것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하시오. 가서 제관에게 당신을 보이고, 당신이 깨끗해진 것에 대해서 모세가 명한 제물들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시오.”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많이 선포하고 또한 그 일을 선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도시로 들어가실 수 없었고 바깥 외딴 곳에 계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왔다.


“측은히 여기시고”는 그리스어 ‘스플랑크니조마이’를 옮긴 것인데 ‘창자, 내장’을 뜻하는 ‘스플랑크논’의 동사형이다. 한국어에는 기막히게도 같은 말이 있다. ‘애끊다’는 말이다. ‘애’는 바로 ‘창자, 내장’을 뜻하고, ‘애끊다’는 말은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질 듯하다’는 말이다. 고통받는 사람 앞에서 측은한 마음이 드는 건 정상적인 인간성을 가진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애끊지는 않는다. 우리가 애끊는 순간은 낯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제 아이나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대면할 때다.


그런데 예수는 난생처음 만난 나병환자에게 애끊는다. 바로 이것이 예수라는 사람의 속내이며 행동의 원천이다. 예수의 모든 행동은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끊는 마음’에서 시작한다. 그의 분노 역시 애끊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끊는 마음이 자연스레 그들의 고통을 낳는 사람들과 사회체제에 대한 강렬한 분노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따르거나 예수에게서 배우는 일 역시 ‘모든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애끊는 마음’을 갖는 일에서 출발한다.


‘스플랑크니조마이’는 「마르코복음」에 세 번 나온다. “그러니 예수께서는 측은히 여기시고 당신 손을 펴 그를 만지시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시오’ 하였다.”(1:41) “그래서 그분은 (배에서) 내리면서 큰 군중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6:34) “군중이 측은합니다. 그들이 벌써 사흘 동안이나 내 곁에 있는데 먹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8:2)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병자는 누구보다 도움과 보호를 받아야 할 사람이지 자신의 어떤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예수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병자는 죄가 있어서 하느님의 벌을 받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만성 질병 환자일수록 하느님께 용서받기 어려운 큰 죄를 지은 사람으로 여겨진 건 물론이다. 그런 사고방식 속에서 만성 질병일 뿐 아니라 외관마저 흉하게 일그러지는 ‘나병’(오늘의 한센병을 포함하여 좀더 넓은 범위의 만성 피부병을 뜻한다) 환자는 공동체에서 완전히 버림받았다. 나병환자는 사람들이 다가오면 “불결! 불결!” 하고 소리 질러야 했으며, 마을에는 들어갈 수도 없었다.

병자는 병으로 인한 고통에 보태어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인간적․사회적 고통을 받아야 했다. ‘개인’이라는 개념이 없던, 모든 사람이 가족이나 지역 같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만 제 존재와 삶의 가치를 확인하던 사회에서 공동체로부터 버림받는다는 건 죽음과 같았다. 요즘도 신유나 안수니 해서 기독교의 테두리 안에서 병을 고치는 행위들이 있지만 예수의 치유와는 차원이 다르다. 예수가 병자를 고치는 일은 단지 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이 아니라 그의 잃어버린 인권을 회복시키고 죽음 같던 삶을 회복시키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병자 본인에게 병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온 우주가 다시 열리는 벅찬 순간인 것이다.


애끊어 어쩔 줄 모르던 예수는 나병이 나은 사람에게 ‘제관에게 가서 정해진 절차를 거치라’고 말한다. 나병 환자가 다시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려면 예루살렘 성전의 제관에게 가서 병이 다 나았음을 인정받은 의례를 거치도록 되어 있었다. 예수는 기쁜 얼굴로 그에게 말하는 것이다. ‘자 이제 누구도 당신을 함부로 대할 수 없습니다. 가슴을 펴고 세상으로 걸어 나가세요. 하느님은 당신 편입니다.’


(37-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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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그리고 그분은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모두 그분께 왔고 그분은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리고 지나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그에게 “나를 따르시오” 하셨다. 그러자 그는 일어나 그분을 따랐다. 15 그리고 그분은 그의 집에서 식사하시게 되었다. 그런데 많은 세관원들과 죄인들이 예수와 그 제자들과 함께 자리 잡았다. 그들은 (수가) 많았으며, 그분을 따라왔던 것이다. 16 그런데 바리사이파 율사들은 그분이 죄인들과 세관원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저 사람이 세관원들과 죄인들과 어울려 먹다니?” 했다. 17 예수께서는 (이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의사는 건장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앓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왔습니다.


예수가 세리(세관원)를 제자로 삼은 건 파격적인 사건이다. 그들은 하느님과 이스라엘을 배신한 죄인이었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유일하게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걸 더할 수 없는 모욕으로 여겼다. 게다가 세금은 관리가 직접 징수하는 게 아니라 입찰을 통해 민간인 징수 대행업자에게 맡겼다. 징수 대행업자는 입찰시 적어낸 금액을 선납한 다음 세금을 징수했다. 세금을 얼마나 많이 거두어들이는가에 따라 징수 대행업자의 수입이 결정되었으므로 징수업자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금을 거두어들였다. 내는 것 자체가 모욕인 세금이 징수 과정의 공정함마저 없었으니 인민들의 반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세리는 그 징수 대행업자 밑에서 일하는 말단 징수인이다. 그러나 그들은 가장 앞에서 인민들과 접촉했으므로 로마에 대한 적대감을 한 몸에 안아야 했다. 예수가 레위를 제자로 고른 건 그가 제자로 삼을 만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굳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세리를 제자로 부를 필요는 없다. 그런 행동은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공격할 빌미를 제공하는 일이며 예수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고 결국 예수의 활동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는 보란 듯이 그렇게 한다.


예수의 행동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세리는 대단한 세속적 야망이나 기득권을 구하기 위해 로마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먹고 살기 위해 그 짓을 하는 사람이다. 만일 다른 품위 있는 일을 해서 비슷한 벌이를 할 수 있다면 세리 노릇을 지속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정작 비난받아야 할 그들의 배후보다 더 심한 비난과 경멸을 받아야 했다. 경건한 사람들에게서 죄인 취급 받는 사람들조차 그들을 경멸했다. 예수는 대놓고 세리를 제자로 삼음으로써 그 위선과 허위를 까발리고 환기한다.


오늘날 ‘바리사이인’은 기독교나 성서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서조차 ‘위선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바리사이파, 즉 바리사이인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오히려 이스라엘 사회를 통틀어 가장 양식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스라엘 사회는 오랜 외세 침략으로 그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었다. 헬라 문화의 유행은 상류층에 만연해서 예루살렘 성전이 헬라식 운동경기 구경을 위해 제의 시간을 바꿀 정도였다. 성전 지배세력이자 귀족계급인 사두가이파는 로마와 야합하면서 온갖 영화를 누렸다. 대제관의 임명권도 이미 로마가 갖고 있었다.


바리사이이인들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전통이 완전히 결딴나려는 그런 상황 속에서 분연히 일어난 사람들이다. ‘바리사이’라는 말은 ‘분리하다’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그들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파괴하는 모든 이방 문화로부터 이스라엘을 분리시켜 그 정체성을 회복하려는 사람들이었다. 바리사이인들은 사두가이인들이 장학한 예루살렘 성전이 아닌 지역의 회당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인민들은 로마와 야합하고 타락한 사두가이인들을 존경하지 않았지만 바리사이인들은 존경했다. 바리사이인들은 오늘 윤리적이며 정의감에 넘치는 시민운동가들과 같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바리사이인들이 위기에 빠진 이스라엘 사회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하느님이 주신 율법, 즉 토라를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바리사이인들은 토라를 분석해서 일상생활의 모든 세세한 부분에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정리했다. 바리사이인들의 율법주의는 그 자체론 나무랄 데가 없었다.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의무요 자부인 것이다. 그러나 대다수 인민들에게 율법주의는 재앙이었다. 그 세세한 율법을 다 지키다가는 굶어 죽기 십상이었던 것이다. 훌륭한 바리사이인들 덕에 인민들은 ‘죄 없는 죄인’이 되었다. 그리고 인민들은 그런 현실을 체념했다. 그들 역시 ‘율법을 지켜야만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생각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바로 그 ‘죄의식의 체제’에 주목한다. 예수는 그 체제를 깨트리기 위해 기존의 생각을 뒤집는다. “의사는 건장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앓는 사람들에게 필요합니다. 나는 의인들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부르러 왔습니다.” 예수는 오로지 율법을 잘 지키는 의로운 사람들에게만 하느님의 사랑이 닿는다고 생각하던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뒤집는다. 예수는 하느님의 관심이 율법을 잘 지키는 경건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먹고 살기 위해선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들에게 있음을 선포한다. 그들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이고 기존의 모든 가치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재정리되어야 한다.


(...)


사람은 아무하고나 밥을 먹지 않는다. 식사 약속엔 엄격한 사회적 맥락에 들어 있다. 식사에 초대하는 건 그 사람을 내 사회적 관계와 질서 속에 들이는 일이다. 이를테면 한 아버지가 마땅치 않아하던 아들의 여자 친구를 식사에 초대했다며 그건 단지 함께 끼니를 해결하자는 게 아니라 둘의 교제를 허락한다는 의미가 된다. 하물며 고대사회 특히 이스라엘 사회에서 식탁 교제는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에 속했다. 누구와 먹는가, 어느 자리에 앉는가 따위는 곧 사람의 신분과 명예를 표현했다. 그래서 점잖은 사람들은 절대 죄인들과 식사하지 않았다. 그들과 식사하는 건 자신을 더럽혀 하느님께 죄를 짓는 일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세리나 죄인들과 기꺼이, 아니 보란 듯이 어울려 식사를 했다. 고상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이스라엘 민족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담소할 때 예수는 죄인들과 어울려 유쾌하고 떠들썩한 식사를 했다. 예수는 식탁 교제의 법칙을 해체함으로써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다시 한 번 선언한다. ‘하느님은 고상하고 훌륭하다 칭송받는 사람들만 가까이 하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천대받고 멸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분이다. 하느님은 자신의 명령이라 주장되는 율법에 의해 삶이 옥죄어진 사람들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분이다.


양식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의 식탁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만큼 천박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죄인 취급을 받는 사람들은 예수의 식탁에서 비로소 인권을 가진 한 인간이 되었다. 예수의 식탁에서 기존의 가치관과 위계는 모조리 전복되었다. 말하자면 예수의 식탁은 ‘선취된’ 하느님 나라의 풍경이었다.


(45-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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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그리고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과 함께 호수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로부터 큰 무리가 따랐다. 8 또한 유다와 예루살렘과 이두매아, 요르단 강 건너편, 그리고 띠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큰 무리가 그분이 하신 모든 일을 전해듣고 그분께 왔다. 9 그러자 군중이 당신을 밀어붙일까봐 당신을 위해 작은 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당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0 사실 그분이 많은 이들을 낫게 하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을 만지려고 그분에게 밀려들었던 것이다. 11 또한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자 그분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러자 그분은 당신을 밝히지 말라고 그들을 몹시 꾸짖으셨다.


예수는 마지막 며칠을 제외한 공생애 기간 내내 갈릴래아 시골 마을로만 돈다. 예수의 고향인 나자렛에서 고작 6킬로미터 떨어진 세포리스는 원형경기장까지 잇는 번성한 그리스식 도시였지만 예수가 그곳에서 활동한 흔적은 없다. 예수의 활동 방식은 사회운동의 일반적인 속성을 거스른다. 모름지기 운동이란 그 이념이나 목적을 막론하고 더 많은 사회적 영향력을 갖기 위해 되도록 크고 번성한 지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가려는 속성이 있다. 그러나 예수의 독특한 활동 방식은 이른바 사회운동의 성장에 대한 우리의 생각에 깨우침을 준다.


운동이란 기존의 사회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지만, 운동이 갖는 숙명적인 모순은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또한 기존의 사회체제와 그 사고방식에 이미 깊이 물들어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운동하는 사람들도 운동의 외형적 성장, 즉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세상에 널리 알려지며 조직이 커지는 것을 운동의 성장과 등치시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운동이 사회적 영향력을 가지려면 그런 외형적 성장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운동의 외형적 성장은 두 가지 위험을 수반한다. 하나는 외형적 성장과 운동의 정체성의 훼손이 비례하는 경향이다. 또 하나는 운동의 외형적 성장은 기존의 사회체제에 포섭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국 운동의 껍데기는 커졌지만 정작 운동의 알맹이는 어느새 사라져 버린, 비대한 운동 조직이 사회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운동 조직 스스로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예수는 우리에게 운동의 진정한 성장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예수는 애당초 운동의 외형적 성장엔 아무런 관심이 없다. 예수는 오로지 제 운동, 즉 ‘하느님 나라 운동’의 본대 목적과 내용에만 집중한다. 예수는 시종일관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 즉 고통 받는 인민들을 찾아다니며 하느님의 위로와 초대를 전하는 일에만 집중한다. 예수가 갈릴래아 시골 마을로만 돈 것은 무엇보다 그들이 그곳에 많이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흐트러짐 없는 활동은 결국 그 공간적 제약을 뛰어넘어 팔레스타인 전역, 예루살렘을 비롯한 유다 지역뿐 아니라 요르단 강 건너편 이방 지역에서까지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


지금 여기에서 고통 받는 사람과 죄인들이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이라는 예수의 말은 혁명에 대한 우리의 편협한 이해에 의해 자칫 오해될 수가 있다. 예수의 말은 고통받는 사람과 죄인들이 지배계급이  리던 부와 권력을 빼앗아 새로운 지배계급이 된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가 말하는 하느님 나라는 모든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그 본래 모습을 회복하는 세상이다. 지배와 피지배가 없는,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서로를 존중하는, 이기심이 아니라 우애에 의해 운영되는 세상이다. 그것은 당연히 다른 사람의 수고와 고통 덕에 안락을 누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인권을 회복하는 일을 기초로 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회복이 세상의 회복이며, 그들이 하느님 나라를 향한 도정에서 주인공인 것이다.


더러운 악령들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라고 소리 질렀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시점상의 혼란’을 줄 수 있다. 「마르코복음」은 AD 70년경, 기독교의 교리나 신학의 기초가 만들어진 후 쓰였다. 「마르코복음」은 이미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보는 시각에서 쓰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가 활동했던 당시에 예수는 전혀 그런 사람으로 여기지지 않았다. 예수는 기껏해야 랍비 혹은 세례자 요한의 뒤를 잇는 예언자로 여겨졌을 뿐이다.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전제하고 복음서를 읽는 건 예수의 절절한 삶을, 다시 말해서 복음서를 읽는 이유나 가치를 내팽개치는 일이다. 복음서는 ‘한 평범한 시골 c jd년이 어떻게 하느님의 아들로 여겨지게 되었는가’를 증언한 책이지 ‘하느님 아들의 인간 흉내 쇼’를 적은 책이 아니다.


아주 오랫동안 기독교 교회는 그 ‘시점상의 혼란’을 방기하거나 오히려 부추겨 왔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신도들이 복음서를 읽으며 의문이나 토론 과정을 거쳐 예수에 대해 이해해하는 쪽보다는 무작정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믿게 하는 쪽이 신도들의 교회에 대한 복종심을 관리하기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60-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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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새의 선물> 발췌

삶이란 장난기와 악의로 차 있다. 기쁨을 준 다음에는 그것을 받고 기뻐하는 모습에 장난기가 발동해서 그 기쁨을 도로 뺏어갈지도 모르고 또 기쁨을 준 만큼의 슬픔을 주려고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너무 기쁨을 내색해도 안 된다. 그 기쁨에 완전히 취하는 것도 삶의 악의를 자극하는 것이 된다. 허석과 만날 일이 기쁘면 기쁠수록 내색을 하지 말자. 그리고 한편으로는 누구의 삶에서든 기쁨과 슬픔은 거의 같은 양으로 채워지는 것이므로 이처럼 기쁜 일이 있다는 것은 이만큼의 슬픈 일이 있다는 뜻임을 상기하자. 삶이란 언제나 양면적이다.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이 그 사랑을 잃을 때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듯이. 그러니 상처받지 않고 평정 속에서 살아가려면 언제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긴장을 잃어서는 안 된다. 편지를 가슴에 껴안고 즐거워하거나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행복한 표정을 짓는 내 모습을 악으로운 삶에게 들키면 안 된다. (310쪽)

 

 

단 한 번의 충격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리는 거울처럼 조그만 이미지 하나가 파손되면 그것의 파문은 전체로 퍼진다. 지금까지의 모든 이미지가 일시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형렬은 지금까지 이모의 애교있고 순수하게만 보아왔던 면이 그처럼 어리석고 유치하게 보여진다는 사실에 스스로 놀랄지도 모른다. 청순한 이미지 하나를 잃음으로써 이모의 순수함은 유치함으로 전락되며 진실함은 거머리 같은 아둔함으로 이형렬을 짜증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미운 정'의 깊이까지 가지 못하고 '고운 정'에서 끝나버린 숱한 풋사랑의 파국이기도 하다. (315쪽)

 

 

그제서야 나는 삶의 경고를 깨달았다.

경악한 나는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남자 쪽으로 마구 달려가보았다. 그렇다. 가까이 가서 보니 더욱 모든 것이 명백했다. 그날 하모니카를 불던 사람도 바로 이 사람이었다. 허석이 아니었다. 하모니카와 염소의 실루엣은 허석의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낯선 남자의 것이었다. 내 사랑이 이 이미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나는 마땅히 허석이 아닌 이 더러운 낯빛의 구부정한 아저씨를 사랑했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 거였다.

멍하니 서 있는 내게 하모니카 아저씨가 말했다.

"너 하모니카 소리 좋아하는 모양이구나. 몇 살이니? 귀엽게 생겨쑥나. 이리 가까이 와봐, 아저씨한테. 자, 어서."

제방길 옆에 문둥이가 산다느니 폐병환자가 산다느니 하는 말이 헛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뒤도 안 보고 도망을 쳐야 했다. 집에 가까이 와서야 나는 내가 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삶에게 조롱당한 것이 분해서만은 아니었다.

우는 나를 보면서 나는 아직 내게 사랑에 대한 환상이 남아 았었음을 알았으며 내 몸속에 물기로 남아 있는 그 환상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짜내어 배설시켜 버리기 위해서 울 수 있는 한 실컷 울었다.

죽은 이선생님이 이런 얘길 했었다.

숲속에 마른 열매 하나가 툭 떨어졌다. 나무 밑에 있던 여우가 그 소리에 깜짝 놀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멀리서 호랑이가 그 여우를 보았다. 꾀보 여우가 저렇게 다급하게 뛸 때는 분명 굉장한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호랑이도 뛰기 시작했다. 호랑이의 뛰는 모습을 숲속 동물들이 보았다. 산중호걸인 호랑이기 저렇게 도망을 칠 정도면 굉장한 천재지변이거나 외계인의 출현이다. 그래서 숲속의 모든 동물이 다 뛰었다. 온 숲이 뒤집혀졌고 숲은 그 숲이 생긴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삶도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3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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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봉, 서경식 <만남> 중에서

김상봉 : (...) 사실 6.10의 아들인 노무현을 보자면 절망감을 안 느낄 수가 없지요. 5.18부터 6.10으로, 그리고 그 이후 세대를 이어온 민주화운동의 흐름이 현실 권력의 최고 지위에 부상했음을 알려주는 표상이 바로 노무현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절망적인 사례를 들자면 한이 없어요. 그런 걸 보고 역사라는 것이 늘 이렇게 배신당하는 거구나 한탄할 필요도 없고요. 왜냐면 원래 그런 것은 그저 끝없는 바다 위에 흩어지는 포말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또 싹이 올라오고 태풍이 다가오고 있거든요. 우리 역사에서는 씨알들이 때가 되면 지각을 뚫고 올라왔습니다. 지도부는 더러 변절하고 더러 도망가고 했습니다만, 밑에서는 뿌리를 내리고 올라오고 있었던 거지요.

 

서경식 : 제가 가장 알고 싶은 것이 그것인데요. 그런 자신감과 낙관의 원천 말이에요.

 

김상봉 : 무작정 낙관하는 건 아닙니다. 변절자들을 보고 염려하는 일은 우리의 몫이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은 그 변절자들이 마른 풀입처럼 날아간 자리 밑에서 뿌리를 보는 것, 그 씨알들이 대지에 움터 올라왔을 때 우리가 줄 수 있는 물이 있는가 하는 것이에요. 제가 늘 말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때에 응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잘하는가 못하는가, 변절했는가 아닌가'를 따지는 것은 방관자들의 관심입니다.

때가 되면 묻는다니까요. 땅 밑에서부터 올라와 '우리가 여기까지 올라왔으니까 누군가가 여기에 물을 다오, 우리의 요구에 응답해다오'라고요. 그때 누가 응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진짜 문제지요. 그것을 느끼고 있어야죠. 지금 표면을 보고 저놈들이 잘한다 못한다 하며 기대하고 실망하는 것은 모두 타자적 시선일 뿐이에요. 그것이 제가 씨알들과 우리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었던 거예요. 때가 되면 이들이 치고 올라와서 선생님을 부른다니까요. 응답해달라고

역사의 결실을 제 주머니에 집어넣고 멋대로 향유하고 잇는 자들이 누구이고 또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따지는 것은 부차적입니다. 에피소드에 지나지 않아요. 역사의 수레바퀴 주변에 떨어진 콩고물을 주워 먹고 사는 자들이야 언제나 있기 마련이니까요. 역사를 끌어왔던 것은 밑으로부터의 부름이었어요. 지금은 가만히 있으니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런 게 아닙니다. 겨자씨처럼 밑에서 올라오는 씨알의 부름에 따로 목숨을 걸고 응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엄숙하고 두려운 문제임에 틀림없습니다.

 

 

(18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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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좋다> 발췌독 (가와이 하야오, 나카자와 신이치 공저)

(16-21쪽에서 발췌)

 

 

크리스트교에 대한 위화감

 

나카자와 : 저는 [성서]는 무척 좋아합니다. 예수에 대해서도,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인 갈릴리 시대의 예수는 매우 좋아합니다. 그 당시 예수는 거의 '불교'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사상을 아름다운 말로 표현했지요. 하지만 십자가는 실어합니다. 물론 예수도 싫어했겠지만요. 대중의 어리석은 기대에 휩쓸리고 만 예수가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중은 그 모습이 보고 싶어서 기대에 부응해 일을 추진하려 했을 뿐이지요. 그러나 그 체험은 트라우마가 되어 침잠하고 말았죠. 그리고 거기서 종교가 발생한 셈입니다. 저는 외상성 신경증에서 발생하는 종교는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갈릴리 호반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을 때의 예수는 참으로 감동적입니다. 그 감동은 붓다가 설법할 때의 광경을 방불케 하죠. 붓다는 평범한 사람으로서 평범하게 죽어갔지요. 배탈이 나서 죽었으니,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셈이지만 붓다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듭니다.

 

가와이 : 나도 그런 점을 좋아해요.

 

나카자와 : 불교의 어떤 점에 관심이 있었는가 하면, 선생님께서 조금 전에 '풍토'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역시 그것과 관계가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전에도 선생님께 말씀드렸을지 모르지만 저는 처음에 원숭이학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원숭이학자가 원숭이들에 둘러싸여 있는 사진에서 묘한 감동을 느낀 적이 있었지요. 인간과 동물 사이에 거의 거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둘의 관계가 대칭적으로 느껴지기도 했지요. 붓다가 깨달음을 얻을 때도 설법을 할 때도 반드시 동물들이 붓다 주의로 모여들지 않습니까?

 

가와이 : 네 그렇지요.

 

나카자와 : 열반에 들었을 때도 제자들보다 더 많은 수의 동물들이 찾아와서 슬퍼하죠. 불교 주위에서는 항상 이런 대칭 관계가 전면에 나옵니다. 인간과 동물이 대칭적이라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동화적 혹은 신화적인 광경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역사적으로 종교는 인간과 신 사이에 어떻게 하면 엄청난 비대칭의 관계를 형성할 것인지에 전력을 쏟아왔는데, 오로지 불교만이 대규모의 종교이면서도 대칭적 관계를 중시해왔죠. 물론 유대교나 이슬람교, 크리스트교도 신 앞에서의 인간의 평등을 말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신과 인간 사이의 엄청난 비대칭을 전제로 한 평등인 셈입니다.

 

가와이 : 절대적이죠.

 

나카자와 : 예수가 받은 십자가형의 의미도 이 절대적인 비대칭을 전제로 하고 있죠. 유대교에서는 신과 인간 사이의 비대칭이 거의 절대적이어서, 명령을 받을 뿐 상호간에 사랑의 교류 같은 것이 발생할 여지가 전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크리스트교에서는 예수가 스스로 희생함으로써, 사랑의 유동流動이 일어날 수 있는 회로를 만들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가와이 : 그렇군요.

 

 

일신교가 형성하는 인간과 신의 비대칭적 관계

 

(...)

 

나카자와 : (...) 그것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종교가 고대국가의 동반자로 탄생해서 국가의 개념에 필요한 엄청난 비대칭을 가장 중요시해왔던 셈인데, 그런 종교의 역사를초월해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진정한 의미에서 종교가 국가를 초월하는 것이 종교의 미래 과제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대칭성의 문제에 직면하게 되겠지요.

 

가와이 : 그렇지요.

 

나카자와 : 조셉 캠벨이 미래의 종교는 불교에 접근하게 될 거라고 한 말도 이 점과 관계가 있지 않을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대담을 9.11테러 직후인 지금 시작하려고 하신 걸 보면, 선생님께서는 그런 것을 이미 의식하신 게 아닌가요? 미국과 이슬람 원리주의의 관계, 그것은 압도적인 비대칭의 상태에 있다고 할 수 있죠.

 

가와이 : 그런 셈이죠.

 

나카자와 : 미국은 군사력, 정치력, 경제력에서 압도적인 힘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슬람은 매우 가난합니다. 옴짝달싹할 수 없는 이런 압도적인 비대칭 관계가 이번 테러의 원인 중 하나인 셈이죠. 이런 상황에서 크리스트교는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제물로 바치는 듯한 행동으 취할지도 모르지만, 이슬람은 그것을 부정하겠지요. 테러와 희생의 사상은 매우 비슷합니다. 둘다 비대칭을 무너뜨릴 수는 없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3-7쪽 발췌)

 

 

종교와 과학의 접점

 

(...)

 

나카자와 : (...) 저 역시 과학과 종교를 매개하는 장소에 설 수 있는 것이 불교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가능합니다. 왜 불교가 그런 역할을 할수 있는가하면, 불교는 '야생의 사고'에서 발달한 사상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과학이라고도 할수 있으니까요. '야생의 사고'와 과학은 본질적으로는 대립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아니 대립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실제로 이제까지 과학이 이룩한 성과를 전부 준비한 것이 바로 '야생의 사고'인 셈입니다. 부싯돌을 가공하는 신석기인들의 사고와, 연구실에서 최신 실험기구를 가지고 실험하는 현대 과학자의 사고는 결국은 똑같은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셈이라고 할 수 있지요. 고고학에서 밝혔듯이, 약 3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인간의 대뇌 구조는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서구의 현대과학만이 비정상적일 정도로 발달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인간이 본래 갖고 있는 과학이나 기술 능력과, 현대과학으로서 비정상적일 정도로 발달한 것 사이에는 어떤 다른 요소가 개입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바로 그 다른 요소가 그리스나 크리스트교와 관련이 잇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스=크리스트교적인 어떤 요소가 개입되지 않았다면 과학기술은 현대와 같이 급속도로 발전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인 거죠.

 

가와이 :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자주 거론되는 이야기지만, 근대과학은 유럽에서 발달했다기보다 크리스트교 문화권에서만 발생했죠. 중국의 역사와 문명을 연구한 니담이 말했듯이, 지식은 중국인들도 많이 갖고 있었죠. 하지만 지금의 기술과 연결되는 과학기술은 특별히 크리스트교 문화권에서만 발생한 셈이지요. 이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이야기해왔듯이, 크리스트교 문화권의 신은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라는 점과 깊은 관련이 있을 겁니다. 말하자면 신을 대신해서 인간이 자연에 대해 '모든 걸 내가 한다.'라는 사고가 탄생한 셈이 아닐까요?

 

나카자와 : 그렇지요. 본래 동물이나 자연은 신이었으니까요. 그러니 틀림없을 겁니다. 구석기 시대의 유적을 봐도, 곰이 신이었다는 것은 거의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아이누어로도 '카무이'는 곰이며, 인간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 즉 신과 동일한 단어로 표현되었지요. 곰이 신이었던 시대의 신은 인간을 초월한 존재로서의 신이 아니었을 겁니다.

 

가와이 : 그렇겠죠.

 

나카자와 : 숲 속에 살면서 가을에는 강에서 인간과 똑같이 연어를 잡기도 하죠. 때로는 인간에게 곰의 고기와 털가죽을 가져다주는 친절한 '할아버지' 입니다. 이 곰 안에 처음부터 깃들어 있던 '초월성의 씨앗'이 어느 틈엔간 성장하고 거대해지면서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죠. 그 씨앗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걸까요? 제 직감으로는 그 비밀은 샤머니즘 안에 있는 듯 합니다.

 

가와이 : 그건 어째서죠?

 

나카자와 : 아직 이것은 단순한 직감일 뿐입니다만, 어떤 미개사회에선 샤머니즘 과 야생의 사고는 공존하고 있습니다. 신화의 논리에 의해 세계를 이해하려는 행위와, 초월적인 영역과의 시도하는 샤머니즘은 완전한 공새관계에 있는 셈이죠. 그런데 어느 시기가 되자 갑자기 야생의 사고가 미치는 영향력이 축소도기고 샤머니즘이 확대되기에 이릅니다. 이런 변화는 아무래도 국가라는 문제하고도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그래서인지 샤머니즘에 의한 패권의 확대는 아시아의 고대국가에서 최초로 발달했지요.

 

가와이 : 그렇군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이슬람교와 샤머니즘의 관계

 

나카자와 : (...) 실제로 평소에는 상인이었던 모하메드도 그야말로 소박한 성격의 파트타임 샤먼과 같은 면을 갖고 있지요. 그렇게 소박했던 이슬람교가 고도의 종교로 성장하게 된 때는 13세기 즉 몽골제국과 격돌했던 시기입니다. 이때를 경계로 이슬람교는 소박한 종교로서의 성격에서 탈피하는데, 묘하게도 같은 시기에 전세계에서 종교사상의 혁명적인 비약이 일어나죠. 일본에서도 몽골제국과 접촉하면서 그 영향으로 가마쿠라신불교가 나타났지요.

 

가와이 : 그거 재미있는 지적이군요,

 

나카자와 : 가마쿠라신불교의 내부에서 정토진종과 같은 일신교에 가까운 종교가 탄생한 셈입니다. 그와 비슷한 현상이 전세계에서 일어났죠. 티베트 불교도 이때 비약적으로 진화했습니다. 유럽에서도 크리스트교 신학이 경이적으로 발달하죠. 그 때까지 아랍 세계의 사람들은 그리스철학을 번역하는 것만으로 만족했는데, 몽골제국과 충돌한 이후 자신들의 신학을 만들어냈던 겁니다. 놀라울 정도로 수준 높은 것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알라'가 '진여'와 거의 분간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관념의 세계로 올라간 것도 이 시기의 일이라고 이즈쓰 선생님은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몽골제국의 종교란 과연 어떤 것이었는가 하면, 국가적 규모의 거대한 샤머니즘이었지요. 실제로 몽골제국이 석권한 지역에서는 야생의 사고 낳은 결과라는 의미의 신화는 거의 전멸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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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6쪽 발췌)

 

 

불교는 어떻게 해서 탄생했나?

 

(...)

 

나카자와 : 불교가 어떻게 탄생했는가에 대한 일본이늬 연구 중에서는 미야자카 유쇼 선생님의 [불교의 기원]이 매우 선구적인 의미를 갖고 있지요. 불교는 마가다 왕국이라는 고대 제국의 외곽에서 탄생하여 제국을 안에서부터 부정하는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위의 책에 따르면, 붓다가 최초로 만든 불교 교단 '상가Samgha'는 본래 붓다의 출신 부족 즉 사카족의 거주지인 히말라야 산록지대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어왔던, 수장을 중심으로 하는 부족의 성격을 띤 원原국가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거기에다가 절대로 거대한 죽가는 이루지 않는 공동체의 원리를 복원하려 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 미야자카 선생님의 생각이죠. 불교를 제국 안에서 제국을 부정하는 사회 원리를 만들고자 하는 운동으로 생각한 거죠.

 

가와이 : 과연 미야자카 선생님답군요.

 

나카자와 : 붓다는 "나 이전에 일곱 명의 붓다가 있었다."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작은 부족국가의 전통 속에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지혜있는 사카족 사람들이 자기 이전에도 일곱 명이나 있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자신은 전혀 새로운 설법을 한 것이 아니라 그런 붓다들 중의 하나라는 겁니다.

붓다라는 인물이 그런 사상을 갖고 갠지스 강가로 갔더니 거기에는 마가다 왕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이 있었습니다. 이 국가를 통해 그는 제국이라는 것이 지혜를 해체하고 여러 모로 균형을 깨뜨리고 있는 현실을 보았지요. 제국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여러 종류의 철학도 배웠습니다. 그런데 그런 인도철학 가운데 그 어느 것을 봐도 모두 어떤 식으로든 제국원리와 공범 관계에 있다는 걸 발견했지요. 따라서 해체되어가는 지혜를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이 철학은 아니라는 사실을 붓다는 깨달았지요. 철학은 단지 세계를 해석하고 있을 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해석의 철학을 부정하고 그것들을 전부 초월한 실천의 형태를 만들고자 했지요. 법(法, Dharma)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 상가의 사회 원리도 그런 도전에서 탄생한 것입니다.

 

가와이 : 제국주의와 전혀 관련이 없는 종교죠.

 

나카자와 : 제국의 내부에 존재하고 젝국도 붓다의 가르침을 비호했지만, 제국의 원리를 안에서부터 해체해간 셈입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탈구축脫構築의 원리에 의한 '종교가 아닌 종교', '지혜로서의 비종교'가 만들어진 거라고 할 수 있죠. 붓다는 그런 식으로 종교 아닌 종교를 만들고자 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아까 선생님께서 과학기술의 세계 안에서 살고 있으면서 과학기술과는 다른 지혜를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것은 불교가 아닐까?'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바로 그런 것을 붓다가 하고자 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가와이 : 그건 어떤 의미죠?

 

나카자와 : 사카라는 작은 왕국은 얼마 후에 마가다 왕국에 의해 멸망당하죠. 작은 부족왕국은 전부 멸망하고 맙니다. 그런 미래를 붓다는 전부 예견하고 있었지요 .실제로 눈앞에서 사카왕국은 정복당한 셈이지만, 그는 그럼으로 해서 야생의 지혜를 가진 부족국가의 사상을 사장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제국의 세력이 확대해가는 세계 속에서 지혜의 지속을 실현하고자 했지요.

이제 현대에 있어서 불교는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붓다와 똑같은 삶이나 전략을 다시 한 번 실현하고자 한다면, 불교는 일신교적이며 초국가적인 거대제국이 막강한 세력을 휘두르고 글로벌 스탠더드가 세계를 정복해가는 이 세계 안에서, 그런 것은 인간 정신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라는 걸 이해하고 그 속에서 지혜가 생명력을 갖도록 하는 방법으로서 거듭나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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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8쪽에서 발췌)

 

 

화폐와 신은 닮은 꼴

 

가와이 : 어떤 유럽 사람에게 제가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당신들은 솔직히 단 한번으로 끝난 부활을 진심으로 믿지는 않지요? 지금 우리가 흉내 내고 있는 개인주의나 온갖 물질적인 것이 크리스트교를 배경으로 해서 성립한 것이라고 할 수 잇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도 믿지 않는다면, 당신이 믿는 건 뭔가요?" 그랬더니 그가 "돈입니다."라고 진지하게 대답하더군요. 그럴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돈은 안심입명의 경지에 이르게 하지는 못합니다.

 

나카자와 : 그 말씀을 들으니 화폐는 신과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가와이 : 그렇지요. 돈만큼 보편적인 것이 없을 겁니다. 어쩌면 지금 지구 전체에 군림하고 있는 주체는 돈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나카자와 : 그냥 돈이 아니라 돈 '님' 이죠.

 

가와이 : 게다가 이 정도로 달러가 유통된다는 것은 곧 달러가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다는 걸 의미하지요. 돈은 가장 신뢰할 수 있으며 강력한 힘을 가진 것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하지만 머지 않아 모두가 깨닫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 상태로는 안심입명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죠.

 

나카자와 : 신과 돈의 유사점을 든다면, 둘 다 영원을 말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신은 영원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은 변화하고 소멸해가지만 신은 영원하죠. 인간이 왜 화폐를 만들어냈을가요? 가치를 가진 것이 파괴도고 풍화되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가와이 : 그렇군요.

 

나카자와 : 그래서 그것을 금화로 만들었던 겁니다. 금화는 잘 변하지 않으니까요. 그런 금화의 가치를 갖고 다니면 일단 발생한 가치는 소멸되지 않으며 축적도 운반도 가능하다는 생각에서 화폐를 만든 거죠. 신과 화폐 둘 다 부패하지 않으며, 소멸되지 않고, 해체되지 않느다는 조건을 갖추고 있죠. 결국 크리스트교의 신이라는 것은 이처럼 영원한 신이며, 그런 생각을 저속하게 표현한 형태가 바로 화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와이 : 그것이 저속하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죠.

 

나카자와 : 화폐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리스의 미다스왕은 "화폐(황금)은 대지를 죽일 것이다."라고 하며 화를 냈다고 합니다.

 

가와이 : 옳은 말입니다. 화폐는 대지를 죽이지요.

 

나카자와 : 대지가 죽은 후에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거의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것, 보존 가능한 것, 운반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크리스트교의 신과 화폐가 무척 닮았다고 할 수 있지요. 그에 비해서 불교는 '모든 것은 소멸한다.'라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영원 자체에 대해 말하기는 하지만, 그런 것은 이 세계에는 없다고 하죠. 그것은 열반(니르바나), 번뇌가 없는 상태, 즉 '죽음'이므로 이승에서의 행복에 집착하는 사람은 가고 싶어하지 않는 곳이지요.

 

가와이 : 그렇죠.

 

 나카자와 : 이 세계 안으로 영원을 끌어들이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가와이 : 불가능하죠.

 

나카자와 : 그런데 크리스트교는 영원을 끌어들인 셈입니다.

 

가와이 : 불교식으로 표현하면, 그것은 착각에 불과하죠.

 

나카자와 : 착각이지요. 하지만 그 결과 유럽에서는 수학이 발달할 수 있었죠. '무한' 이라는 생각을 발달시킨 것은 크리스트교가 발달한 서구입니다. 그 이전에는 무한은, 이 세계에는 들어오지 않는 것으로 혹은 이 세계로는 끌어들일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지요. 그런데 이 세계에 화폐라는 것이 만들어지면서 그야말로 아인한 형태로 무한이라는 것이 들어오고 말았죠. 돈은 점점 늘려갈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곧 행복양의 증대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생겨나죠. 따라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요즘 같은 세상에는 화폐나 금이 곧 신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 되었습니다. 다만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는 않는 신이지만요.

 

가와이 : 그렇지요. 우릭 말하는 것과 같은 의미의 안심은 가져다주지 않죠.

 

나카자와 :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인간의 마음에 안심을 가져다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그런 생명체가 주위의 세계와 다른 아주 작은 부분을 만들어놓고, 거기서 어떻게든 지속해보라고 하는 것이 생명이라고 하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해서 탄생한, 우주 속의 외딴 섬과도 같은 자신이라는 존재에 집착하는 한, 생명은 행복해질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의학에서는 어떤 식인가요? 일단 태어난 개체를 어떻게든 연명해가기 위해 외부의 악영향을 배제하지요. 또 내부에 암세포와 같은 형태로 이상즉식이 시작되면 어떤 수로든 그것을 제거해서, 태어난 개체를 가능한 한 오랜 시간 지키려고 애쓰지요. 그러고는 그것이 행복이라고 선언합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그야말로 화폐에 대한 사고 와 똑같다고 할 수 있지 않나요?

 

가와이 : '즉정 가능한 것을 어떻게든 가능한 한 많이, 가능한 한 오래'라는 식으로 생각하니까요.

 

나카자와 : 마음속에 불교가 자리잡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것은 아무래도 행복이 아닌 것 같군.' 하고 생각하게 되지요. 그런 점에 대해 철학자나 종교가들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가와이 : 옳은 말이에요. 나도 그런 걸 생각해야 한다는 의무를 느껴 여러 모로 시도는 해보고 있지만, 상당히 어렵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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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환에 대하여

옛사람들은 땅에서 뺏어 먹은 만큼 양분을 땅에 되돌려주는 순환농법을 계속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인분과 축분이 단지 처치 곤란한 쓰레기가 됨으로써 심각한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어있을 뿐이다. 화학비료와 농약을 써서는 토질의 악화 내지는 쇠약화는 필연적이다. 땅으로 되돌려주어야 할 인간의 배설물이 지금은 그야말로 똥 취급만 당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 서양식 근대산업문명의 논리가 관철된 결과이다. 밀란 쿤데라는 우리나라에서도 꽤 인기있는 서양 작가인데, 그는 어디선가 “하느님이 전지전능하다면 인간으로 하여금 똥을 누게 하는 성가신 일을 하게 했을 리는 없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말이다. 서양 근대 지식인의 한계라고 할 수밖에 없다. 순환의 개념이 없기 때문에 그런 근본적으로 무지한 발언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똥을 눈다는 것이야말로 사실은 하느님이 완벽하다는 것을 뜻하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똥이 없다면 세상이 성립할 수 없다. 그것은 인간에게 질병이 있다는 게 도리어 자연 질서의 완벽함을 표시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인간사회에는 약자도 있고 장애인도 있기 때문에 사람이 사람을 돌보고 보살피는 일이 필요하고, 그런 관계의 체험을 통해서 인간의 삶에 깊이가 형성되고, 우리의 인간성이 풍부해지는 것이다. 비극과 희극이 발생하고, 시와 철학과 예술이 존재할 수 있는 것도 다 이 때문이다.

 

- 김종철, "경제성장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녹색평론> 109호 中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인디언'이라고 불리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머스코기 족의 주술사는 생명의 순환 과정 전체를 '교환'이라는 말로 부른다. 거기서 사냥이란 인간이 동물을 먹는 것이지만, 인간은 다시 땅으로 돌아가 식물이 먹게 되고, 그 식물을 다시 동물이 먹는 '영원한 순환'의 한 고리다. 그들은 사냥을 하기 전에 사냥감인 동물들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친구들이여, 우리는 살기 위해 너희들을 무척  필요로 한다. .... 시간이 지나면 우리들이 이 '지구 어머니' 속으로 들어가서 무언가를 자라게 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 동물들도 그것을 먹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그것은 하나의 순환이며 교환이다. 그렇게 해서 모든 생명이 연결된다." (베어 하트, <인생과 자연을 바라보는 인디언의 지혜>, 34쪽)

 

- 이진경, <자본을 넘어선 자본>, 4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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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정리 4 (<2008 글로벌 금융위기>, 최혁 저)

■열리는 판도라의 상자



1. CDS의 전성시대


○ 신용위험과 CDS(Credit default swap; 채권에 대한 보험)

 ┖→ 채권이 부도가 났을 대 누가 대신 갚아주기로 약속한다면 채권을 보유하는 데 따르는 위험을 줄일 수 있음. 채권 발행자가 모노라인에게 보증을 받는 것도 이 때문. 그런데 채권을 ‘매입’한 사람도 보험을 살 수 있는데, 그것이 CDS.

 ┖→ CDS를 매입한 기관은 주기적으로 프리미엄을 내야하며, CDS를 매도한 기관은 프리미엄을 받는 대신에 채권이 부도가 나서 손실을 보게 되면 손실액을 보전해 줌. CDS프리미엄은 채권을 발행한 회사의 위험 수위를 판단하는 기준.

○ CDS를 살 수밖에 없는 이유

 ┖→ CDS의 특이점 : 매입자가 해당 채권을 갖고 있지 않아도 CDS계약을 맺을 수 있음. (화재보험은 집을 가지고 있어야 맺을 수 있음.) 즉 부도가 나면 돈을 주는 것이니, CDS는 채권으로부터 부도위험만을 따로 떼서 거래하는 것. 채권을 보유하지 않는 투자자에게는 ‘신용위험에 대한 투자’라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

 ┖→ CDS와 BIS비율 : 바젤협약에 따라 자기자본비율(BIS)을 8%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규정은 BIS비율의 분모인 자산을 측정할 때 자산을 단순히 합하는 것이 아니라, 자산의 종류에 따라 ‘위험가중치(risk weight)'를 곱해서 합한 값으로 자산을 측정. OECD국가가 발행한 채권은 가중치가 0%, OECD 은행들이 발행한 채권은 20%, 회사채나 OECD 비회원국의 국채와 은행채는 모두 100% 가중치. 그런데 CDS가 생기면서 채권의 위험가중치를 CDS 매도기관의 위험가중치로 변경하는 것이 가능해짐. 즉 OECD은행의 CDS를 사면 회사채의 위험가중치는 100%가 아니라 20%가 됨.

○ 규제의 사각지대 : CDS는 증권이 아니기 때문에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의 권한 밖에 있었고, 보험과 유사하지만 일반적인 보험의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보험업에 적용되는 것도 아님.

○ CDS와 시스템 위험

 ┖→ 금융위기의 여파로 CDO채권에 대한 CDS발행 금융기관의 신용등급이 떨어진다면 CDS 매수기관의 BIS비율이 악화됨. 이에 BIS비율을 맞추기 위해 ①CDO채권을 매도하거나 ②신용등급이 더 높은 기관에게서 CDS를 구매해야 함. ① 때문에 CDO채권의 가격 하락. ② 때문에 CDS프리미엄 상승.

 ┖→ 게다가 채권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CDS를 사고 팔 수 있으므로 특정채권에 대한 CDS들의 기초자산금액을 모두 합하면 실제 채권의 액면가보다 훨씬 커질 수 있음. 10억달러짜리 채권에 대해 CDS를 다섯 은행이 발행했다면 기초자산금액은 50억 달러. 이 채권이 부도가 나면 CDS 매도자들이 물어주어야 할 금액을 모두 합하면 50억 달러가 되는 셈. 신용위기의 연쇄반응이 나타났을 때, 파장은 엄청남.



2.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국유화


○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위기 : 이들은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모기지 채권을 발행하여 빌린 자금으로 미국 은행이나 모기지 대출업체로부터 모기지 대출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미국 주택시장을 유지시켜 옴. 그러나 베어스턴스 몰락 이후 미국과 유럽의 주택가격 하락과 그로 인한 파급 효과로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주가가 급락함. 급박한 위기 상황에서 폴슨 재무장관은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긴급구제금융조치 발표.

○ 네이키드 공매도 규제 : 공매도를 이용한 투기꾼들 때문에 주가가 떨어진다는 주장이 금융기관으로부터 제기됨. 여기에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위기를 목도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7월 15일 깁급명령권을 발동해 네이키드 공매도(주식을 빌리지도 않고 먼저 매도를 하는 행위)에 한해 규제를 가함.

○ 재국유화 : 공매도 규제의 효과는 얼마 가지 못하고 다시 주가가 폭락.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파산한다면 전 세계 부동산 시장의 초토화가 예상되는 상황. 실제 정부는 두 회사보다 규모가 작은 사기업인 베어스턴스도 구제한 상황이기에 두 회사는 구제금융을 기대하게 됨. 08년 9월 7일, 미국 정부는 두 회사를 다시 국유화하고 1,000억 달러씩의 긴급 유동성자금 투입과 기존 주주에 대한 배당을 모두 중지시킴.



3. 투자은행들과 AIG의 몰락


○ 9월 21일 모건 스탠리와 골드만삭스가 투자은행의 길을 포기하고 은행지주회사로 전환.

○ 투자은행의 문제점 : 지나치게 높은 부채비율을 갖는 재무상태. 자산에서 자본의 비중이 낮아 자산가치 하락에 대한 버퍼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미약함. 실제 미국 금융기관에서 자본에 대한 자산비율은 골드만삭스가 26으로 가장 낮은 수준. 나머지는 대부분 30이 넘음. 이는 곧 자산가치가 3.3%만 하락하면 자본이 완전히 잠식된다는 것. 평소에는 아니지만 금융위기 시기에 자산가치 3.3% 하락은 아주 쉽게 일어남.

○ AIG의 위기

 ┖→ AIG는 높은 신용등급을 바탕으로 모기지 채권에 대한 CDS발행으로 높은 수익을 올리던 회사. CDS발행자는 만약의 경우에 대비한 담보로 충분한 현금을 갖고 있어야 하지만 AIG는 신용등급이 최상위 였기 때문에 많은 자금을 담보로 갖고 있을 필요가 없었음.

 ┖→ 그런데 금융위기 국면에서는 CDO 등 모기지 채권들이 한꺼번에 부도가 날 수 있음. 현금보유가 적다면 지급불능 상태가 될 것이고, 신용평가기관들은 AIG의 신용등급을 내릴 수밖에 없음. 실제 대부분의 신용평가기관들이 AIG의 신용등급을 두 단계 또는 세 단계 내려버림.

 ┖→ 정부의 고민 : 130개국에 걸쳐 7천4백만 명의 고객을 갖고 있는 AIG가 파산할 경우 미칠 파장을 염려한 정부는 결국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고려와 맞물려 구제금융을 택함. AIG가 미국연방준비은행으로부터 2년만기의 대출형태로 850억 달러 규모의 자금지원을 받고, 그 대신 미국 정부가 AIG 주식 80%를 소유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 것. 사실상 국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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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정리 3 (<2008 글로벌 금융위기>, 최혁 저)

■서브프라임 위기



1. 무너지는 모기지시장


○ 금리 시대의 마감 : 04년 6월까지 1년간 물가상승률은 약 3%. 기준금리가 1%였으므로 실질이자율은 -2%. 이자까지 주면서 돈을 빌려주는 상황. 이후 FRB는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씩 17차례 상승시켜 06년 6월 말에는 5.25%까지 올림.

○ 어느 모기지 업체의 몰락

 ┖→ 기준금리 인상으로 인해 모기지 이자율도 상승. 특히 서브프라임 모기지 이자율이 급격히 상승.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상당수가 변동이자율로 대출을 받았기 때문.

 ┖→ 이자율 상승에 따라 모기지 연체율이 늘어나면서 MBS채권을 매입한 투자자들에게 흘러가야 하는 현금흐름이 줄기 시작. MBS 가치 하락. 06년 5월 4일 중소규모의 메리트파이낸셜이 최초로 파산보호신청.

○ 모래위에 쌓은 성

 ┖→ 06년 초부터 미국 주택 가격 상승세의 중단. 그러나 FRB는 기준금리를 계속 올렸고, 모기지 대출시장도 여전히 활발한 상태.

 ┖→ 모기지 대출회사는 주택구입자에게 모기지 대출을 해주고 이렇게 대출한 모기지의 풀(pool)을 도매로 투자은행에게 매각하는 것이 주요 영업 방식. 모기지 대출회사가 주택 구입자들로부터 30년간 이자를 받고 매년 받는 이자가 5억 달러라고 했을 때 4억을 투자은행에게 넘겨주면 1억은 모기지 대출회사의 수입. 이들은 앞으로 매년 들어올 1억 달러의 현금흐름을 현재가치로 계산하고 모기지를 매각한 시점에서 이 현재가치를 모기지 매각이익으로 회계처리함. 미래에 발생할 현금흐름을 모두 모아서 현재의 이익으로 계산하는 방식.

 ┖→ 투자은행은 MBS를 만들어 투자자들에게 판매를 하는데, 모기지의 부실화로 투자자들이 이자를 지급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모기지 풀을 모기지 대출회사가 다시 사가는 계약을 하게 됨. 06년에 모기지 연체와 부도가 증가하면서 이는 실제 상황이 됨. 그런데 이때 모기지 연체와 부도가 증가하였으므로 되산 모기지 풀의 가치는 처음 투자은행에게 매각했을 시점의 가치보다 떨어졌음. 그러나 모기지 대출회사들 중에는 이런 손실을 장부 기록에 누락하여 가치를 부풀리는 경우가 많음.

 ┖→ 대출자의 신용상황에 대한 조사 없이 모기지 판매에만 몰두.

○ 뉴센추리파이낸셜의 파산

 ┖→ 07년 2월 7일 손실장부 조작 문제로 증권거래위원회의 조사를 받음. 서브프라임 모기지시장의 붕괴를 우려하는 버냉키 FRB의장의 우려 제기됨.

 ┖→ 신용평가회사들은 MBS채권의 신용등급을 하락시키기를 꺼려함. 신용등급 하락은 채권가격 하락을 불러오고 이는 채권발행회사들이 다른 신용평가회사를 찾아가 고객을 잃을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

 ┖→ 뉴센추리파이낸셜은 모기지 풀에서 충분한 수익이 나지 않을 때에는 이를 되사간다는 계약을 이행할 수 없을 정도로 파산보호신청을 냄. (07년 4월 2일)



2. 신뢰의 위기


○ 베어스턴스의 묘책

 ┖→ 07년 5월 9일, 에버퀘스트파이낸셜이 베어스턴스를 발행기관으로 하여 1억 달러의 IPO(비상장회사가 주식을 일반에게 팔아 증권거래소에 상장하는 것)추진. IPO이후에는 그 회사의 주식이 증권거래소에거 거래됨.

 ┖→ 에버퀘스트는 조세피난처인 케이만제도에 설립된 페이퍼회사. 여기서 에버스턴스가 운영하고 있던 헤지펀드로부터 2/3의 CDO를 매입. CDO발행시 채권의 일부를 발행자가 갖는데 이는 대개 우선순위가 가장 낮은 위험한 트랜치를 갖게 됨.(지분 트랜치) ⇒⇒ 베어스턴스의 헤지펀드가 갖고 있던 CDO를 에버퀘스트에게 넘겨 이를 일반투자자에게 팔아 부실자산을 털기 위한 묘책.

○ 레버리지의 함정

 ┖→ 공매도(short-sale) : 남에게 금융상품을 즉시 빌려 매도하는 거래.

연간 20% 수익률이 확실한 투자기회가 있다고 가정. 그런데 10%의 이자를 주기로 하고 9억원을 빌려 자기 돈까지 더해 모두 10억원을 투자한다. 1년 후에는 12억원이 됨. 빌린돈에 대한 원금과 이자를 지급(9억 9천만원)하고 나면 2억 1천만원이 남음. 자기 돈만 따지만 1억 1천만원, 즉 110%의 이익을 본 셈. 공매도는 이러한 레버리지 효과(leverage effect)를 노린 것.

그런데 수익률이 반대로 -20%라면? 총투자금액 10억원이 나중엔 8억원이 됨. 자기 돈 1억은 이미 날린 것이고 빌린 돈에서도 1억 9천만원의 자기 돈을 보태야 원금과 이자 9억 9천만원을 갚을 수 있음. 자기 원금에 대해서 -190%만큼 손해를 본 것.

⇒⇒ 공매도에 의한 투자손실로 베어스턴스의 헤지펀드들의 부실화 초래 ⇒⇒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 특히 CDO 시장이 냉각됨.


○ 번지는 신용위기

 ┖→ 알트에이(Alt-A) 모기지 대출 전문회사에도 연체금이 쌓이기 시작. 07년 7월 31일, 독일 중소기업은행 IKB가 미국 모기지 대출 관련 금융상품 투자로 인해 손실 발생 사실을 밝히면서 위기가 유럽으로 퍼져나갔다는 사실이 공론화됨. 이 은행은 결국 주식의 91%를 겨우 1억 5천 유로를 받고 론스타에 매각하면서 부실을 처리.

 ┖→ 프랑스 최대은행인 BNP 파리바의 자금인출 중단 사태 : 이 은행은 펀드 투자자금의 3분의 1이상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에 투자하였고, 07년 8월 9일 전 2주간 20%의 손실을 봄. 인출중단 이유는 ‘유동성의 완전한 증발’로 인해 순자산가치(NAV, net asset value) 계산을 중단했기 때문.

○ 첫 번째 국제공조

 ┖→ 유럽은행들의 유동성 위기 : 유럽시장에 신용경색이 오면서 새 ABCP를 팔기 어려워지고, ‘돌려 막기’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됨. 독일 IKB는 ABCP가 자산의 25%sk 되어 위기가 발생한 경우.

ABCP(Asset-backed commercial paper; 자산담보부어음)

ABS의 일종. 그러나 ABS가 장기채권형태로 발행되어 만기가 긴 데 비하여, ABCP는 만기가 수개월 정도로 짧음. ABS는 동일한 자산의 풀에 대하여 시니어, 주니어처럼 우선쉬이가 다른 트랜치를 뽑아내지만, ABCP는 우선순위가 없음. ABS는 만기가 되면 채권을 상환하고 특수목적회사를 청산하지만, ABCP의 경우에는 특수목적회사가 같은 일을 반복하여 새 ABCP를 만듦. 새 ABCP를 발행하여 만기가 돌아오는 ABCP를 갚은 일을 반복하는 것이니, 소위 ‘돌려막기’를 하는 셈.

 ┖→ 오버나이트론 이자율 상승 : 자금 여유가 있는 금융기관이 다른 금융기관에게 이자를 받고 하루 동안 돈을 빌려주는 초단기 대출을 말하는데, 신용경색 국면에서 이것의 이자율이 상승함.

 ┖→ 이에 07년 8월 9일과 10일, 유럽중앙은행은 각각 950억, 610억 유로를 오버나이트론시장에 공급. 미국은 240억 달러, 일본은 1조 엔 공급. 금융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첫 번째 국제공조. 다른 나라의 금융기관들도 주택담보대출을 가지고 MBS, CDO를 만들었기 때문에 신용경색이 자국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 우려가 있었기 때문에 공동대처는 필연적. 그러나 오버나이트론 이자율의 변동성은 다시 급격해짐.

 ┖→ 인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기준금리를 올려오던 FRB가 다시 금리를 인하하였으나, 금융위기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

○ 멈추지 않는 악순환

공정가치회계(Fair value accounting)

기업들이 보유하고 있는 금융자산들의 가치를 현재의 시장가격으로 계산하는 회계처리. 즉 시가평가(market-to-market).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모기지 채권들의 가치가 하락했을 때 원래 매입한 가격이 얼마인지에 관계없이 현재시점의 가치로 평가. 기업의 재무상태를 고정하게 나타내기 위한 목적.

 ┖→ 공정가치회계에 따르면, 금융자산의 가격이 하락한 만큼 은행의 자본이 줄어들게 됨. 부채를 떠받쳐 줄 자본이 줄게 되어 은행의 건전성 악화. (자기자본비율(BIS비율)이 떨어짐. 국제결제은행 규정상 자기자본비율을 8%로 유지해야 함.) 

 ┖→ BIS비율은 위험 자산을 많이 보유할수록 그 비율이 악화되는 방식으로 계산됨.

 

 

 

○ 골드만삭스의 미소

 ┖→ 06년 말 골드만삭스의 모기지사업이 손해를 보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CFO 비니아르는 자사 보유 자산들의 위험을 검토한 뒤, 모기지 관련 채권들을 상당부분 매각하고 남은 채권들에는 손실을 보상해주는 보험을 사야 한다고 주장. 블란크파인 회장은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행함. 당시 다른 투자은행들은 모기지채권에 대한 투자에 열성을 보였기에 매각은 순조로움. 이후 서브프라임 위기로 인한 직격탄을 피해갈 수 있었음.



3. 베어스턴스의 위기


○ 피투성이 은행들 : 대부분의 금융기관들이 08년 4/4분기에도 엄청난 평가손실 발생. 자구책의 일환으로 인권감축 단행(베어스턴스, 리먼브러더스). 씨티그룹은 중동의 아부다비  국부펀드에 전환사채1) 발행.

○ 모노라인의 위기 : 대표적인 모노라인 회사인 Ambac과 MBIA의 주가가 각각 52%와 31% 폭락하면서 신용등급이 한 단계 하락. 이에 따라 이들이 보증하고 있는 채권들의 신용등급도 하락. 이들 모노라인이 ABS나 CDO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들이 발행한 채권들도 보증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파장.

○ 베어스턴스의 몰락

 ┖→ 07년 7월 베어스턴스가 운용하는 헤지펀드 두 개가 파산하면서 CDO시장 급냉각. 케인 회장이 CEO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유동성위기에 대한 우려가 번짐.

 ┖→ 08년 3월 11일, FRB가 MBS의 유동성을 높이기 위해 2,000억 달러 규모의 자금 유입 정책 발표. 이제 사람들은 미국 정부가 MBS채권을 직접 매입할 것이라 생각하게 됨. 이는 국민 세금으로 부실한 은행을 살리는 것으로, 은행들의 도덕적 해이를 초래함.

 ┖→ 그러나 이 조치는 베어스턴스를 살리기 위한 조치라는 인식에 쐐기를 박으면서 오히려 투자자들에게 유동성 위기를 확인시킴. 베어스턴스의 단기자금이 갑자기 빠져나감. 이에 폴슨 재무장관의 중재 하에 베어스턴스는 JP모건체이스에 인수됨.

○ 대마불사(Too big to fail; 大馬不死) : 미국정부가 금융기관의 손실을 보전해 주는 정책을 쓰는 것을 보고, 이들은 무조건 덩치를 키워야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됨. 실제 자동차 회사 GM과 포드는 엄청난 영업손실을 보고 있었지만 정부의 구제조치만을 믿고 자산규모를 줄이지 않음. 결국 이들은 미국 의회에 250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을 ‘당당히’ 요청.



 


 

1) 다른 채권과 마찬가지로 미리 정해 놓은 이자율에 따라 소유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데, 채권소유자가 원할 경우에는 주식으로 전환가능. 회사의 주가가 크게 뛸 경우에는 주식으로 전환하여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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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 정리 2 (<2008 글로벌 금융위기>, 최혁 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전주곡



1. 서브프라임의 요람


1)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탄생

- 대공황이 진행 중이던 1930년대 당시, 은행들은 자금 부족을 이유로 모기지 대출을 늘리지 않아 주택을 소유하지 못한 이들이 늘어남.

- 은행들의 모기지 대출 인센티브 부족 :  자산(대출금)과 부채(예금, 채권)의 만기가 일치하지 않는 문제. 은행의 자금조달 여건이 나빠져 자금 순환이 되지 않는 신용경색 발생.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을 수 없게 된 기업은 도산위기에 빠짐.

- 공황상황에서 은행들은 대출자산의 만기가 부채에 비해 과도하게 길어지기 때문에 모기지 대출과 같은 초장기대출을 할 인센티브가 없음.

- 루즈벨트의 해결책 : 패니매의 설립

 ┖→ 모기지 시장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목적.

 ┖→ 정부보증을 받은 모기지들을 금융기관들로부터 매입하여 은행에 자금을 공급.

- 패니매의 문제점 : 국민세금으로 은행 장사를 시켜준다는 비난, 관료주의, 베트남전에 따른 재정압박 ⇒ 패니매의 주식회사화. 그러나 여전히 정부후원(GSE; government-sponsored enterprise)하에 있음.

- 패니매의 독점화를 막기 위해 또 다른 GSE인 프래디맥 설립.


2) 1980년대의 규제완화

- 모기지 대출 이자율 상한선의 모순 : 신용도가 낮은 저소득층은 이자와 원금을 제대로 갚지 않을 확률이 높아 은행은 이를 높은 이자율로 상쇄시키려 함. 그러나 이자율을 제한하면 금융기관들은 저소득층에게 모기지 대출을 할 인센티브가 없어짐.

- 예금기관 규제 철폐 및 통화 통제법(1980) : 모기지 이자율 규제 철폐. 주택을 담보로 하기만 하면 은행이 모기지 대출을 할 수 있게 함.

- 대안 모기지 거래 동등법(1982) : 주택담보대출에 변동이자율 적용. 처음 몇 년 동안은 원금을 한 푼도 상환하지 않고 이자만 내는 방식도 가능하게 됨.

- 조세개혁법(1986) : 모기지 대출금 지급이자에 대해서 소득공제 적용.

⇒⇒ 금융기관 간 경쟁 심화로 모기지 이자율이 신용카드 대출금 등의 이자율보다 낮아짐. ⇒⇒ 이미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도 모기지 대출을 받아 그 돈으로 기존 신용대출금을 갚는 것을 택함. ⇒⇒ 모기지 시장의 과잉 활성화


3) 저축은행의 위기

- 1980년대 초반의 이자율 상승 → 저축은행이 이미 낮은 고정이자율로 대출한 모기지 채권의 가치 급락

- 만기가 짧은 예금들은 높은 이자를 찾아 이동

  ⇒⇒ 모기지 대출 비중이 큰 저축은행은 수익성 악화. ⇒⇒ 뱅크런 발생.

- 미국 정부는 은행의 자기자본에 대한 규제 완화를 통해 해결하려 함(저축은행의 자본금이 충분한 것처럼 보이도록 회계제도를 전환). 또한 예금보험한도를 4만달러에서 10만달러로 늘림(뱅크런 가능성 축소). ⇒ 저축은행 건전성 악화


4) 금융 연금술

- 지니매 : 패니매와 프레디맥과 같은 정부가 보증해 주는 MBS채권 발행 기관을 제외하고는 시장에서 자기 채권의 신용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전문적인 보증기관에 수수료를 내고 MBS안정성에 대한 보증을 받는데, 지니매가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 자산 유동화에 기여


 

▷ MBS를 만드는 과정 ◁

 



2. 날아오르는 서브프라임


1) 대통령의 꿈

-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발행하는 채권들은 최악의 경우 정부가 대신 갚아줄 것으로 모든 사람이 믿었기 때문에 사실상 위험이 없었음. (신용등급이 정부와 동일한 AAA) 게다가 낮은 이자로 얻은 자금을 가지고 더 비싼 이자를 주는 모기지 자산을 은행으로부터 사들임으로써 손쉽게 이자율 차익을 실현함. 모기지 사업으로 벌어들인 이득을 상당부분 정치권에 대한 로비활동에 쏟아 부음.

- 클린턴 행정부는 저소득층에 대한 주택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의 일환으로, 패니매와 프레디맥이 서브프라임 모기지 MBS를 매입할 수 있도록 허용. 그러나 서브프라임에 대한 위험 요인 때문에 시장은 확대되지 않음.

- 반면 전문 모기지 회사들은 서브프라임 대출을 늘리기 시작. (90년대 중반 주택가격 상승의 영향) 월가 투자자들의 서브프라임 MBS 구입이 서브프라임 확대에 기여.

- 97년 자산의 양도차익에 대한 세율 인하 등에 힘입어 거주목적을 넘어선 투자목적의 주택구입의 인센티브가 생김. ⇒ 미국발 ‘부동산 불패신화’


2) 모노라인과 신용평가회사

- 서브프라임 MBS의 이점 :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자체가 위험이 크기 때문에 프라임 모기지 대출보다 높은 이자를 받음. 여기에 수수료를 받고 전문적으로 채권을 보증해주는 모노라인(monoline)의 보증에 의해 같은 위험의 다른 금융상품보다 훨씬 큰 이자를 받을 수 있게 됨.

- 모노라인은 원래 주정부를 포함하여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한 채권들을 보증하는 것이 주 업무. 그 때문에 원래 최상위 신용등급(triple-A)을 갖고 있었고, 서브프라임 채권 보증을 한 이후에도 좋은 신용등급 유지. 그러나 모노라인이 보증하고 있는 채권이 모두 지급불능상태가 된다면 갚아야 할 금액이 3조 달러 이상이 되고, 모노라인의 총자본금은 이것의 1/150에 불과.

- 신용평가회사의 등장 : 파생금융상품이 복잡하게 발전하면서 그 위험을 판단하는 것도 어려워짐. 그래서 신용평가회사들에게 수수료를 지불하고 자기가 발행한 채권에 대한 신용평가를 맡김. 그러나 신용평가회사는 채권 발생자로부터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이들과 유착관계가 형성됨. 특히 발행회사들은 더 높은 신용등급을 줄 수 있는 신용평가회사를 골라 평가를 맡기는 ‘등급쇼핑’을 하기도 함.

- 일부 서브프라임 업자들은 고객이 모기지를 꼬박꼬박 갚아 나가도 이를 국가 신용기관에 의도적으로 알리 지 않음. 이들이 신용도가 높아져 이자율이 낮아지는 것을 방해하기 위한 것. 이러한 행위는 형사 및 민사 소송의 대상이 됨.


3) 새천년의 우울한 시작

- 유럽의 불경기, 닷컴버블 붕괴, 9.11 테러, 엔론 회계부정 스캔들로 인해 미국 경제의 불경기 심화.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경기활성화를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

- 한때 6.5%까지 올라갔던 기준금리를 부시 취임 직전부터 내리기 시작하여 2001년 12월 1.75%까지 내림. 2003년 6월에는 1%까지 내림. 이에 힘입어 모기지 대출도 증가. 신용평가기관의 대출기준심사 기준도 완화됨.

- 패니매와 프레디맥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MBS로 시장을 확대. 2002년에 패니매는 씨티그룹에 이어 미국 제2위의 금융기관으로 자리매김 함.

- 2004년엔 대형 투자은행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시장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됨.


※ 낮은 금리와 금융공학의 발달이 주택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킴. 주택가격이 상승하고 이는 주택에 대한 수요를 더욱 크게 만드는 순환구조가 형성. 이 과정에서 각 경제부문의 도덕적 해이가 가세하여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급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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