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자의 일기-1

from 단순한 삶!!! 2010/12/03 10:54


 

 

 

 

 

 

해고자의 일기 ❶ 분노와 울음 그리고 인간

 

〈인사발령 사항을 알려드립니다.

수자원․환경연구본부 본부지원팀

1급행정원 곽장영

인사관리규정 제32조(징계)에 따라 파면을 명함

2010. 07. 13자

원장. 끝. 〉

 

인생 50을 넘게 살면서 받은 훈장 가운데 가장 살벌한 훈장이다. 살벌하다기 보다는 한 인간에 대한 ‘사형선고’다.

겨우 1주일을 지났으니까 이 사형선고에 따라서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직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사형선고를 받았고, 이미 죽었다. 내가 아무리 살아 있다고 떠들어 본들 결국은 그들의 선고대로 죽고 말 것이다.

 

노동자에게 해고는 사형이다. 한 노동자가 사형을 선고받을 만한 중대한 죄를 지었는지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사형을 선고하는 그들은 무슨 힘을 어떻게 누구로부터 받았는지도 궁금하다. 무슨 생각으로 한 인간에게, 한 노동자에게 사형을 선고했는지도 그들에게 물어보고 싶다. 그들이 누군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과 다른 점이 있었는지도 물어보고 싶다. 아니 그들이 인간의 감정을,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사람인지도도 물어보고 싶다.

 

어쨌든 그렇게 사형을 선고받은 건 사람이고, 인간이고, 가정이 있는 가장이며, 노동자이기도 하다. 인간이기에, 사람이기에 분노할 줄도 알고, 흐느껴 울 줄도 안다. 알기 때문에 분노하거나 우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사람이기 때문에 분노하고 싶지 않아도, 울고 싶지 않아도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분노와 울음을 멈출 수가 없다.

 

 

나도 사람이고, 인간이기에 이렇게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고, 또 눈물 흐르지 않는 피울음이 솟구쳐올라 온다. 그 분노와 피울음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고등학교 2학년으로 생각된다. 엄청난 세월이 흘렀지만, 잊혀지지 않는 이 인간의 치졸한 기억력에도 서글픔을 느끼지만, 큰 분노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게 정상이라 생각한다.

등록금을 제 날자에 맞춰서 내지 않는다고 선생은 종례 시간마다 이름을 부르면서 언제 낼 거냐고 다그쳤다. 물론 집에 가서는 아버지께 등록금 독촉을 받고 있노라고 말씀은 드렸다. 그렇지만 도대체 돈 가지고 있으면서 자식 학비를 늦게 내고픈 부모가 어디 있으랴....

어느날 학급회의 시간에 나는 발언권을 얻어서 말했다.

“선생님은 등록금 독촉을 좀 덜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 말은 바로 누군가의 고자질에 의해서 선생에게로 전달되었고, 나는 선생으로부터 무자비한 구타를 당했다. 그리고 선생은 아버지를 학교로 오라고 했다.

“아버지는 안 그래도 제 등록금을 버느라고 바쁘신데, 어찌 학교로 오라 가라 하라는 겁니까?”

다시 인사불성이 될 만큼 맞았다.

결국 아버지는 학교에 선생을 만나러 갔고, 말씀을 하지 않으셨지만 봉투를 건냈다는 것을 뒤늦게야 나도 알았다.

 

그리고 그즈음부터 상당기간 동안 나는 종례 시간이 끝나면 학교 후문으로부터 내려가는 산길에서 머리통만한 돌덩이 하나 들고 선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한 번도 선생은 혼자서 그 산길을 내려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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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03 10:54 2010/12/03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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