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자의 일기-4

from 단순한 삶!!! 2010/12/03 11:01

 

 

해고자의 일기 ❹ 성(姓)은 해요, 이름은 고자라..

 

1. 얼마 전 술자리에서 갑자기 옆에 있던 한 친구가 불렀다.

“어이, 해 동지, 내 술 한잔 받으시오!”

“뭐라구요?”

“해 동지라구..”

“멀쩡한 곽 동지는 어디다 버려두고?”

“해고자 니까 이제 성이 해씨가 된 거요...하하하... 자, 해 동지 한잔 받으시오!”

“........ 아,,, 고맙소, 부르기 어려운 곽씨 보다, 해씨가 좋은 거 같은데..ㅎㅎ”

“성이 해씨가 된 거 좋아할 일은 아닐 거요, 이름이 고자가 되었으니..ㅋㅋ... 요즘 형수님 살 냄새는 맡아 보고 계시우?”

“으잉??? 그러니까 그게.....”

“그 보라구요. 해고자의 이름인 고자는 괜히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구요...”

 

2.술자리에서 농담이 섞인 대꾸였다고는 하지만, 그 친구와의 대화를 가만 생각해 보니까, 나도 언제 아내와 ‘밤일’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다.

아내는 지난 해 10월 말에 배가 아프다고 병원에 입원해서 진단을 받아 보니까 대장 벽에 커다란 혹이 생겨서 수술을 받았고, 그러고 퇴원해서는 약만 먹으면서 제대로 운신도 못하고 있다 보니까 아픈 병이 빨리 완치되기를 바랄 뿐이지 ‘엉뚱한(?)’ 생각은 들지도 않았다.

활발하게 일도 하고, 언제나 바쁜 아내였는데, 병원에 누워 있고, 퇴원해서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병으로 아프고 오래 쉬다 보니까 회사에도 미안하다면서 다니던 회사도 그만 두고 있는 걸 보니까, 사람은 건강해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런 마당에 남편은 아내가 병원에 입원해서 수술 받고 난리를 치는 즈음에, 지난 해 11월에 수자원환경연구본부로 발령이 나고, 그 발령은 안동실험장으로 보내기 위해서였고, 본부장의 인사권이라는 미명아래 12월에는 안동으로 쫓겨나고 말았고..... 부당하게 안동으로 쫓겨 났다는 생각이 남편의 머리 속에 꽉 차있고, 그로 인한 분노가 점점 커져갔다.

그 때부터 일요일이나 월요일이면 차를 몰거나 버스를 타고 안동으로 내려가고, 금요일 밤 12시가 넘어서 겨우 집으로 돌아와서는 주말 이틀간 파김치로 늘어져 있다가 사라지는 남편.

수술 후에 불안한 몸 상태로 혼자서 수술한 아랫배를 한 손으로 떠 받치면서 엉거주춤하게 걸어 다니면서 집안 일을 하는 아내.

이런 남편과 아내 사이에 무슨 살 냄새가 있을 것이며, 무슨 다른 생각이 떠 오를 것인가.

안동만 왔다 갔다 한 건 그렇다 치지만, 그 와중에 이제는 남편이 해고까지 되었으니 아내는 남편에게 무슨 애정이 있을 것이며, 남편은 또 무슨 변명이라도 할 게 있을 것인가...

 

3.무더웠던 여름날도 다 지나가고,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떴더니 갑자기 아랫도리에서 신호가 왔다. ‘아 아직 죽지는 않은 거구나’ 반가운 마음에 아내에게 백 만년 만에 구애를 시도했다.

결과는.......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며칠 전 먼저 해고자의 길을 걸었던 한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꼭 비뇨기과에 가봐라! 정신과에 가서 정신상태도 치료하고, 복직을 위한 투쟁도 열심히 하고 중요하지만... 그보다도 고자 신세 면하는게 가장 중요한 거 아니겠냐?”

뚜렷하게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곽장영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0/12/03 11:01 2010/12/03 11:01
Tag //

Trackback Address >> https://blog.jinbo.net/sanori/trackback/1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