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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 '엄마'를 보다 (5) 2005/03/03
* 이 글은 알엠님의 [시사회 초대] 에 관련된 글입니다. 

가족에 관한 얘기는 사실 부담스럽다. 내 가족을 비롯하여 주위의 어느 가족을 들여다 봐도 얼추 행복한 가족은 없어 보인다. 겉으로 들여다 보기에 돈의 부족함이 없고, 그저 웃는 모습만 보인다 할지라도 속으로 한 발짝만 들여다 놓으면 우울(?)하거나 답답한 모습이거나 가족 상호간의 지난한 투쟁사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즘 나는 가족 얘기는 크게 관심을 두고 싶지 않은 화두이기도 하다. 사실 가족이란 게 거의 ‘본능’에 가까운 세계로 이루어져 있고, 그래서 어떠한 잣대로 재단한다 하더라도 움직이지 못하는 본능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특히 노동자를 착취해서 돈을 버는 자본가들도 가족을 ‘사랑’하고, 딸 같은 어린 여성을 성폭행하거나 성매매 하는 사람들도 자기네 가족은 엄청나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본능적인 가족사랑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가족으로 만들어야 할 것인지가 문제일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나는 내 가족, 내 자식, 내 부모를 향한 ‘무한한 사랑’(?)은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본이 가족이라니까 그 기본이 바뀐다면 사회도 바뀌지 않을까?

 

다큐멘터리는 텔레비전에서 하는 ‘인간극장’을 가끔 본 적이 있다. 보통 5부작으로 일주일 내내 하는데 그걸 맨 날 챙겨볼 수 없으니까 어쩌다 보는데, 눈물이 나올 때가 많다. 인간극장도 주된 내용은 가족 이야기가 많았다.

‘엄마’도 평범한 가족 얘기였다. 아니다, 이시대의 가족으로서는 평범하지 않은 가족 이야기였다. 아내를 애들을 폭행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아 있는 가족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아 왔을까는 짐작이 간다. 그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 남았고, 밝은 가족들의 모습이 오히려 보기 좋다.


엄마의 얘기가 좀 부족했다. 제목이 ‘엄마’ 였고,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엄마라고 했는데, 그동안 엄마의 삶에 대한 얘기는 너무 적었다. 어린 6남매를 키우는 과정에서의 어려운 얘기라든지, 또 왜 그렇게 자식들에게 무관심으로, 매몰찬 모습으로 일관했는지, 이런 얘기들이 좀 더 많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반면에 셋째 언니의 얘기는 너무 많았다. 물론 이즈음 ‘자기찾기’에 열중하는 여성상에 적절한 캐릭터였다고는 생각하고, 또 지금의 삶이 엄마로부터 영향을 받은 게 크다고는 하더라도 엄마에 비해서는 너무 얘기가 많았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애인이 생겼는데, 그로 인해 엄마는 술을 끊었으며, 생활이 달라졌는데, 그 부분도 엄마의 표현이 좀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6남매 8남매를 키우는 엄마는 대체적으로 자식들에게 다정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 딸들은 왜 그 시절에 엄마는 우리에게 그토록 다정스런 말 한마디, 따뜻한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았느냐고 투정을 부리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도 4남 2녀의 6남매를 겨우겨우 키우셨는데, 아직까지도 아버지가 옆에 계시면 자식들은 슬금슬금 피해서 도망가고, 엄마한테는 ‘누구네 엄마는 안 그랬는데, 왜 엄마는 우리한테 그렇게 말 한마디 따듯하게 해주지 않았느냐? 계란 한개 쪄주지 않았느냐?’고 투덜거리는 게 일이다.

영화에서 엄마의 말처럼 ‘정도 받아 봐야 줄줄도 아는데, 받지 않으니 줄줄도 모른다’ 이런 대사가 나오는데, 나는 이 말을 백번 천번 공감하고 동의한다. 우리 엄마도, 나도, 우리 형제들도 정말 ‘무정한’인간들이기 때문에...

부모자식간에 정주고 받는다든지, 서로 챙겨주고 하는 것도 최근의 일이라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평범하지 않은 가족상황으로부터, 그리고 그런 가족을 책임지고 있는 엄마의 영향권에서 만들어진 가족 분위기와 정서와 생활..... 이런 것들이 아직도 ‘엄마’의 딸들에게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배어 있는 분위기와 자신의 생각(그게 본인은 지겹도록 싫다 하더라도)이 알게 모르게 끈질기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같이 상영했던 ‘봄이 오면’은 90대 할머니 두분의 잔잔한 자매사랑 이야기였다. 이 영화도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 보게 했다.


영화 마치고, 맥주라도 한잔 마시며 ‘알엠’님께 남은 얘기라도 들어볼까 했는데, 센터에서 같이 오신 분들과 함께 들어가셔야 한다고 해서 아쉬웠다. 서울까지 나가서 공짜영화 보게 되어서 알엠님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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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03 12:51 2005/03/03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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