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틀동안 신나게 놀고 들어와서는 잠시 앉았는데, 애들이 들어오고 애들이 엄마한테 뭘 해 달라고 한 모양인데, 아내가 뭐라고 한다.

"동희아빠! 쌈장 산에 갈때 가져 갔어요?"

"응.... 배추쌈 조금 남았길래 가져가서 싸먹었는데...."

그리고는 애들한테,

"얘들아, 쌈장이 없어서 오리고기 못구워 주겠다."

고 하더니,

 

갑자기 말의 높낮이가 달라져서는 화살이 산오리에게 날아왔다.

"회사서 야유회 간다더니 집에 있는 쌈장은 왜 가져 가요?"

"그래? 그럼 나가서 하나 사 올게."

"이 밤에 사긴 뭘 사러가? 됐어요 됐어 "(완전히 빈정거린다.)

"내가 사 온다니까..."

"왜 집에 있는 쌈장을 가져가서 애들 고기도 못 구워주게 만드는 거야?"

나도 갑자기 머리위로 피가 솟는 걸 느꼈다.

그래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사다 준다잖아. 그놈의 쌈장 조금 남은거 먹었다고 도대체 몇번이나 똑 같은 잔소리를 하는 거야?"

 

그리고 나와서는 가게에 가서 쌈장을 한통 사다 줬다.

그랬더니 아내와 두 아들이 오리고기를 구워서는 열심히 먹고 있었다.

나는 열이 받는 와중에도 아내나 애새끼들이나

"여보, 당신도 고기 안먹어요?"라고 물어보거나

"아빠, 고기 드세요"라고 최소한 예의상으로라도 물어볼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먹으라고 하더라도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서 '됐다'고 할 참이었는데,

아무말 없이 세 모자가 열심히 잘도 먹고 끝냈다.

 

하루가 지나서 아내에게 물었다.

"아무리 맘에 안들지만, 고기 좀 먹어 보라고 말도 못하나?"

"당신 잠자는 거 같아서 말안했지..."

 

 



2.

낮엔 2년동안 먼지쌓인 자전거 기름칠하고 손보기, 평화바람 매장 정리하는데 가서 일손 도와주기, 목욕하기, 그리고 집에 와서 여름옷과 겨울옷 바꿔서 정리하기... 이렇게 하고 저녁 먹고 나니 아내가

"아이구 애들 옷을 다려야 하는구나..." 하길래,

"내가 다려줄게..."  했더니,

아내는 마루 한쪽에 다리미와 다릴 옷들을 쌓아 두었다.

 

아무생각 없이 텔레비전 소리나 들으면서 애들 옷을 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빨랫줄에 걸려 있는 애들 셔츠를 세개나 더 가지고 와서 다리고 있는데,

자기방에 있던 애들이 나와서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한다.

이순신을 봐야 한데나...

혼자서 옷을 다릴 때는 몰랐는데,

애새끼들이 나와서 옷다리는 아빠를 앞에 두고 드러눕거나 기대앉아서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으니 괜히 속이 뒤집힌다.

 

동희에게

"야, 너 앞으로 네 옷은 네가 다려 입어라!"

"............" 

아예 무시한다.

 

동명이에게

"동명아, 너 앞으로 옷 네가 다려 입어라, 짜샤, 아빠가 너만할테 다 다려 입었어."

"내가 다리면 주름이 안없어져."

"그런게 어딧냐 임마."

"저번에 옷 다려 봤는데 안되더라니까..."

"티셔츠나 다리고 있었나 보지... 하튼 다려 입어라!"

"싫어..."

 

동희가 들어가고 그 자리에 아내가 왔다.

"앞으로 애들 옷 자기가 다려 입으라고 해."

"..............."

똑 같이 말 같지 않은 말을 했다는 듯이 대꾸도 없다.

그러고도 한참을 더 다려서 애들 셔츠 5장, 바지 2장, 내 셔츠 한장. 이렇게 8장을 다리고 나니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네.

 

언제부터 옷을 다려 입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중학교 1학년때 교복바지 다리다가 잠간 다른데 신경쓰느라 옷을 태워먹은 기억이 생생하다. 그 태워먹은 바지를 기워서 그대로 입고 다녀야 했는데, 그 쪽팔림이라니....

그런데, 이새끼들은 중학생이 되어도, 고등학생이 되어도 아예 엄두도 내지 않는다.

그건 왜일까? 엄마가 시키지 않아서다.

아빠가 시키기라도 하면, 엄마는 당연히 난리가 나겠지.....애들한테 그런 거 시킨다..

애새끼들이 무슨 왕자냐? 귀공자냐?

 

그러면서 아내는 언제나 할일이 많고, 애들 때문에 바쁘다고 항상 입으로는 투덜거린다.

입으로는 그런데, 사실은 그런걸 해 주고 싶고, 그래서 애들은 더욱 버릇도 나빠지고 자립심도 없어지고 한다. 애들은 엄마가 망가뜨리고 있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4/24 23:12 2005/04/24 23:12
Tag //

* 이 글은 산오리님의 [무기력증....]   가문비 님의 과학의 날에 반가운 선물 하나 덧글 관련된 글입니다.

산기평 어용노조가 만들어진게 1년은 더 된듯 한데, 뒤져보니 지난해 9월에 일어난 일이네. 겨우 6개월쯤 지났는데 이렇게 멀고 아득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4월 21일....

회사일로 전화기 붙잡고 있는데, 휴대폰이 울렷다.

받았는데, 조한육지부장이 뭐라고 한다. 내가 전화하겠다고 하고선 끊으려 하는데, 산기평 어쩌구 하는 소리가 들려서 뭐라고했는지 물었더니,

"오늘 재판이 열렸는데, 산기평 지부가 이겼다"고 한다.

어용노조를 인정해준 강남구청의 설립신고 교부가 무효라는 판결이 났단다.

전화통화를 마치고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했더니, 사람들이 다 좋아서 난리가 난 거다.

건자재 지부에서 중앙위원회가 있다면서 산기평의 지부장과 김태진, 김준동지도 그쪽으로 가고 있단다.

 

송주의동지와 점심약속을 하고선 회사일로 산기평으로 갔다. 한 식당에 모인 산기평 조합원들은 너무나 좋아하고 있었다. 대구에서 천안에서 과천에서 달려와 함께 모인 조합원들을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저녁에 축하뒷풀이가 있다는데 가지는 못했지만, 산기평에서 싸웠던 온갖 것들이 함께 떠올랐다.

해고된 동지들은 복직되고, 원장 연임도 막았고, 어용노조는 무효라는 판결도 받았고...

 

그래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은 많고 또 높을 것이다. 이놈의 나라에서는 도대체 올바른 것들이 살아 남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동안 끈질기게, 살아 남아서 투쟁해 온 안형수 지부장, 배성환 사무국장, 그리고 김태진, 김준, 송주의 동지를 비롯한 조합원 동지들, 그들이 없었다면 이 싸움은 너무나 일찍 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들에게 감사와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내 둔한 기억에라도 이 날 쯤은 남겨둬야 하겠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4/24 22:39 2005/04/24 22:39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