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진보네님의 [트랙-팩 10:민주노총임시대의원대회, 사회적교섭안] 에 관련된 글입니다.

정확히 민주노총의 임시대의원대회와 관련된 핵심사항은 아니지만,

언제나 언론에 열받는 동지들이 많아서 산오리도 단순하게 생각해 봤다.

 

1. 자본주의가 유지되어 있는 상태에서 좋든 싫든 우리는 상품을 사서 먹고, 쓰고 해야 한다. 이렇게 사서 쓰는 상품들 가운데 마음에 안드는 '불량'이 있다면 당연히 바꿔 달라 하거나, 아예 반품하고 돈을 되돌려 받거나, 에이에스를 받거나 뭐 이렇게 한다. 그런데, 그렇게 안되는게 있는데, 산오리는 교육과 공무원이라고 생각해 왔다.

 



이거 바꿔달라거나 물어 달라거나 에이에스해 달라고 아무리 지랄 떨어도 소용없었다. 오히려 거꾸로 돈 내고 물건사는 학부모들한테 큰소리치면서 법에도 없는 돈이나 선물 더 내놓으라 하고, 자신들의 고객인 학생들을 두드려 패기도 한다. 이건 정말로 자본주의의 원칙에 , 저들이 입만열면 떠들어대는 '시장경제의 원칙'에 안맞는다.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이 존나 힘들게 일해서 세금 만들어 주고, 먹여 살려 주는데, 국민들 알기를 개좇만큼도 여기지 않는다. 이 공무원도 에이에스 받거나 바꿔달라고 해도 소용없다. 반품은 더더욱 안되지....

 

산오리가 몰라서 그렇지 이거 말고도 더많이 있겠지만, 이 두개의 '불량식품'은 산오리의 머리에 오래도록 불량으로 남아있다.

 

2. 기아자동차 노조가 직원 채용과 관련하여 돈을 받아 먹었고, 민주노총이 대의원대회를 열었는데, 그기서 약간의 난장판이 있었다고 언론에서 난리를 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언론의 난리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오락가락하고, 함께 기절하고, 함께 쓰러지고 있다.

그런데, 그 언론들이 어제 오늘 그래 왔던게 아니고, 언제나 일관된 기조를 가지고 민주노총을 씹어 왔고 못잡아 먹어서 안달해 왔다. 그래서 좃선일보니 조중동이니 해 가면서 그 신문들 보지 말자고 운동(?)까지 해 오지 않았던가?

 

산오리도 민주노총에 관심이 많고, 기아자동차 노조간부들이 채용을 미끼로 돈 받아 먹었다는 소리를 들었을때 화가 많이 났다. 민주노총 대의원 대회의 난장판도 다음날 어느 블로그를 보고서 알았는데, 좀 짜증이 났다. 짜증과 더불어 언젠가 겪어야 할 일이 이제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테레비든 신문이든 뉴스든 논설이든 보지 않으니 더이상 열받을 일이 없다. 그리고 그 문제들은 우리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이니까 민주노총부터 시작해서 다시 논의해 보고,  또 연맹, 단위노조에까지 함께 반성할 일은 반성하고, 또 다른 방식이 있으면 시도해 보면 된다. 누구나 들먹거리기 좋아하는 '현장'과 '현장의 정서'도 새로 찾아 보고 그걸 반영해 가면 된다.

 

3. 그래서 어차피 우리들 편 아닌 언론, 그 불량 식품에 너무 목메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거 핑계 대고 빨리 절망하고, 더 많이 열받아서 우리한테 좋은게 뭐 있으랴.. 제대로 된 내용도 아닌 왜곡과 엉터리와 철저한 '노동자 죽이기'라는 썩은 재료와 조미료가 범벅이 된 불량식품을 왜 맨날 돈 내고 사 먹으면서, 설사났다고 아우성인지 정말 모르겠다.

 

4. 트랙백을 건 어느 분도 한겨레를 끊었다고 했는데, 한겨레 뿐만 아니라, 모든 신문과 텔레비전을 끊어 버리자. '저들의' 뉴스를 끊고 나니까 정말 마음이 이렇게 편안할 수 가 없다. 그리고 항상 뭔가에 눌려 있고, 불안한 마음도 사라진다.  그게 불량식품이니까 당연히 나한테 영양을 주는 것도 없다. 인터넷도 발달하고, 신문 만드는 기술도 발달해 있어서 민주노총도 유기농으로 재배한 식품을 만들 수 있다. 또 우리 편에 있는 다른 단체들도 있다. 실제로 이들이 식품을 만들어서 공짜(?)로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유기농으로 재배한 재료로 만든 식품은 쳐다보지도 않고, 불량식품을 돈을 주고 사 먹으면서 배아프다. 곧 죽을 거 같다고 아우성을 치고 있는게 너무 답답하다.

 

제발 불량 '언론' 모조리 끊어버리자!  

테레비전 뉴스와 신문 끊는 순간 우리는 '인간다운 삶'에 첫발을 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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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4 17:42 2005/02/04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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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행인님의 [폭력의 기억은 핏속에 남는다]쭌모님의 [집단체벌.. 그 기억..] 에 관련된 글입니다.

세상이 어떤지 잘 몰랐던 국민학교 시절을 제외하고 나면 중고등학교 선생들 가운데서는 선생이라 이름 붙일 만한 선생들을 몇 사람 만나지 못했다. 신생 사립학교이기도 했겠지만, 도시라는 곳이 벌써부터 빈부가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었고, 선생들은 어떻게 해서든 학부모의 돈을 뺏어서 배를 채워야 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시골 국민학교에서의 선생님들은 촌놈들보다 사정이 나았었는지, 애들이나 학부모를 많이 괴롭히지는 않았다.

물론 선생 김봉두 같은 선생도 있었겠지만, 다행이 나는 초등학교 시절에는 그런 선생님은 만나지 못했다.

 



 

 

선생은 조회와 종례 시간에 등록금 빨리 내라는 독촉을  계속했고,

때로는 반장을 통해서 학급회의 시간에도 등륵금 독촉이 이어졌다.

애들이 6명이나 되는데 아버지 혼자 근근히 노동자로 살면서 등록금 제때 제때 내기가 어찌 쉬웠으랴...

 

나는 아마도 학급회의 시간에 그런 얘기를 했던 거 같다.

 

"등록금 독촉 그만 했으면 좋겠다. 누구는 안내고 싶어서 못내는 거냐?"

 

그 얘기는 누군가의 입을 통해 당장 선생의 귀로 전해졌고, 

나는 교무실로 불려 갔다.

 

"너 그런말 한 적 있냐?"

"예..."

"싸가지 없이 학생이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

"너희 아버지 학교 오시라 그래라"

"왜요?"

"그걸 몰라서 묻냐?  너같은 놈은 부모님께 얘기해서 그 삐뚤어진 성격 좀 고치라고 해야겠다."

"선생님! 아버지가 힘들게 일해서 저 학교 보내주시는데, 또 학교까지 오라 가라 합니까? 그건 못하겠어요?"

"뭐????? 이새끼가!!!  다시 얘기해봐!"

"그러니까,.... 돈벌어 등록금 내주시는 것만 해도 힘든데, 학교까지 오시라고 말 못한다구요..."

 

그리고는 존나게, 정말 존나게 얻어 터졌다. 정확하게 어느 정도 얻어 터졌는지 기억은 없다. 이선생은 원래 수업시간에는 자를 세로로 세워서  손등의 손가락 마디를 때리거나 얼굴에도 아주 짜증스럽게 찌르거나 따귀를 때리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그 당시 별명도 '쥐꼬리'였다. 얼마나 쫀쫀하고, 치사했으면 쥐새끼도 못되고 쥐꼬리였을까?

 

그리고 할수 없이 집에 가서 아버지께 말씀드렸다.

하루이틀 사이에 아버지는 학교로 가셨고, 봉투를 건넸다고 내게 말씀하셨다.

"너무 신경쓰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 뭐 이정도로 말씀하시면서....

 

도저히 열받아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얼마 동안을 고민하다가 나는 그 당한 모욕과 굴욕을 참을 수가 없었고, 돈도 없는 아버지를 불러서 봉투까지 받았다는 선생이 저게 선생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내가 처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저런 건 선생도 아니다고 외치면서...

 

그래서 학교수업이 끝나고 나면 학교 뒷길에서 숨어서 커다란 돌멩이 하나 감춰놓고 선생이 내려오기를 기다렸다.

내려 오면 그 큰 돌로 머리통을 내리치겠다고 생각했다.(학교가 정문과 후문이 있었는데. 후문쪽은 산길에 포장도 안된 길이 한참 이어져서 나무 숲에 숨어 있으면 지나가도 모를 정도 였다.)

 

그런데, 내가 살려고 그랬는지, 선생이 살려고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이 선생이 한번도 혼자 내려오는 적이 없었다.

어떤 때는 다른 선생과 얘기하면서 내려오거나, 어떤때는 혼자 내려 와도 앞뒤로 다른 학생들이 있었다.

혹시 혼자 내려왔는데도 너무 무섭거나 소심해서 막상 돌을 내려치지 못했는지도모르겠다. 정확한 기억은 없다.

 

한 일주일을 그렇게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때문에 그걸 포기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겨우 오늘날까지 살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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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2/03 23:01 2005/02/0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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