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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04/27

Beatles의 정규 discgraphy

 

http://www.youtube.com/watch?v=N2LkjhnAg1E&search=beatles

[MV] Beatles - Movie med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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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ease Please Me | Beatles Album 2004/10/12 17:20

발매일  1963년 3월 22일 (Mono ONLY)
               1963년 4월 26일 (Stereo version)
               1987년 2월 26일 (CD release)
               Total time  31:59

영국 앨범 챠트   챠트진입일 
               1963년 4월 6일
               1963년 5월 11일부터 30주연속 1위 기록 (70주 동안 차트에 머무름)
               CD버전은 1987년 3월 7일 32위을 기록하며 4주간 차트에 머물렀다.

판매량
   발매이후 6개월만에 25만장의 판매고를 올렸고, 이후 영국에서 50만장, 전 세계적으로 2백만장이 팔렸다. 
   
자켓 디자인
Beatles 첫 광고용 사진이기도 한 이 사진은 London 맨체스터 구에 있는 E.M.I. House 계단에서 촬영했다.
도안한 인물은 Angus McBean 으로 Beatles편집앨범 '62년-66년','67년-70년'도 그가 도안했다.
 
Mono/Stereo 버전의 차이
Stereo 버전에서는 "Please Please Me"를 부를때 John이 마지막 절 단어를 잘못 말하고는 마지막 합창에 낄낄 웃어버리고 만다. 이게 모노 버전에서는 들리지 않는다.
 
에피소드
조지 마틴은 앨범의 제목을 "Off The Beatle Track" 라고 하자고 제안했지만 채택되지 못했다. 조지 마틴은 그 제목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는데, 이후 63년 7월 22일 미국에서 발매된 앨범에 'Meet The Beatles'로 쓰여졌다. 이때 발매된 앨범에는 'Please Please Me' 와 'Ask Me Why'가 빠졌었다가 1964년 1월 27일에 다시 발매되었을 때 포함되었다. 대신 " Love Me Do "와 " P.S. I Love You " 는 제외됐다.원래 Song writing credits는 McCartney-Lennon으로 되어 있었지만, Parlophone사가 이것을 Lennon-McCartney으로 바꾸어 발매했다.
 
앨범소개
Beatles의 공식 Debut앨범인 이 Please Please Me는 Beatles신화의 또 한명의 주역 George Martin의 프로듀스로 초기 Rock'n Roll과 Beatles의 개성이 잘 어우러진 14곡을 담고 등장했다. 등장 이후 약 10일이 지난 1963년 4월 6일 영국차트 10위로 등장, 5월 4일부터 30주간 1위에 랭크되는 등 64 주간 차트 100위권에 머무는 신기록을 세웠고 당시 데뷔 앨범으로는 최다 판매고를 기록하던 Elvis Presley의 'Jailhouse Rock'의 판매량을 2 만장 초과하는 25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영국을 비롯한 전 유럽 지역에 Beatles선풍을 몰고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된다.
With The Beatles | Beatles Album 2004/10/12 17:20

영국앨범차트   1963년 11월 30일
1963 년 12월 7일부터 21주간 1위 (51주간 차트에 머무름)
CD버전은 1987년 3월 7일부터 2주간 차트에 머무름(40위까지 도달.)
1997년 3월 22일부터 1주간(72위)

 
판매량
    발매되기 2주전에 이미 27만장의 선주문이 들어왔고, 1주전에는 50만장으로 되었다. 발매되기이 전인 18일에 이미 Silver disc가 되었던 것이다. 64년 2월 중순에 영국에서 이미 88만5천장이 팔렸고, 1964년말에는 영국에서 최초로 백만장을 달성했다. (사실은, 6년전에 발매된 미국의 사운드트랙"South Pacific"이 1963년 11월에 밀리언셀러에 올라, 영국에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라고 할 수는 없지만,그래도 비틀즈는 2년도 채 안되서 그 업적을 달성한 것이다.)
 
 엘범  
   이 앨범의 미국버전인 "Meet The Beatles"는 이상하게도 5개의 트랙이 누락되었지만 5백만장이 팔렸다.총 6백5십만장이 팔린 셈이다.챠트에서 이 L.P.는 "Please Please Me"를 1위 자리에서 밀어내고, 21주간 1위의 자리를차지  한 후, 51주간 차트에 머무렀다. 앨범의 형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모조리 순위를 매겼던 영국 챠트의 초창기시기였던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L.P.가 영국 싱글차트에서 11위에 올랐다는 건 대단한 일이다.
 

 자켓 디자인
    Beatles의 많은 레코드 쟈켓중 1,2위를 다투는 걸작 쟈켓이다. Robert Freeman이 촬영했다.
    Epstein은 이 사진을 무척 좋아해서 자택의 벽에 걸어 두었었다고 한다.
 

 Mono/Stereo 버전의 차이
    "Money" 스테레오 버전에는 걸출한 기타연주로 시작되지만, 모노 버전에는 실리지 않았다.
                 모노와 스테레오 버전의 피아노 인트로도 틀리고, 전체적으로 사용된 기기도 틀리다.
 

  에피소드
    First Album [Please Please Me]에서 선곡되지 않은 [Hold Me Tight]이 다시 레코딩되어
    이 앨범에 수록되었다.
 

 앨범소개

많은 공연 애창곡들이 두면 가득히 담겨져 있다.. 비틀즈는 그들의 첫 번째 앨범 PLEASE PLEASE ME를 1963년의 가장 잘팔린 앨범으로 만든 성공적 방식으로 여기에도 되풀이 하고 있다. 다시한번 그들은 그들 자신의 오리 지날 작품 8곡과 함께 그들이 가장 흠모했던 미국의 R&B 아티스트들의 레퍼토리를 각기 뽑아내어 다수 여기에 담고 있다. 
 

A Hard's Night | Beatles Album 2004/10/12 17:17

발매일   1964년 7월 10일
                1987년 2월 26일 (CD)

녹음일   영화 촬영중의 1965년 2월중순 - 6월 중순 (Total time   29:45)

영국앨범차트   진입일  1964년 7월 18일
                                       1964년 7월 25일부터 21주간 1위에 랭크
                                       1971년 2월 16일부터 1주간 (No.30)
                                       1987년 3월 7일부터 4주간 (CD release,eached no.30)

 
■ 판매상황
영국에서 선주문 25만장이었고 발매 첫주에 25만장이 팔리고 1위에 올랐다. 그해 말에는 60만장이 팔렸고,영국에서 80만장이 팔렸다. 미국버전의 앨범은 좀 다른데,  미국에서는 George Martin 이 영화의 몇몇곡을 추가해서 앨범을 판매했고, "Something New"라는 이름으로 명명했다. 이 두 앨범은 미국에서 300만장이 판매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A Hard Day's Night" 는 4백만장이 팔렸을 것으로 추산된다.
 
자켓 디자인
    Robert Freeman이 촬영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Mono/Stereo 버전의 차이
"A Hard Day's Night"  스테레오 버전은 모노버전보다 몇초가 길다.
"I Should Have Known Better"  스테레오 버전은 하모니카인트로에서 얼마간의 갭이 있지만 모노버전은 없다. 스테레오 버전은 마지막절에 네 번을 하지만, 모노 버전은 세번이다.
"If I Fell"  스테레오 버전은 오프닝에 솔로 보컬이 double-track이지만 모노는 아니다.
"Tell Me Why"  스테레오 버전은 오프닝에 솔로 보컬이 double-track이지만 모노는 아니다.
 
MEMO
1964년 8월 첫주에 비틀즈에게 있어서는 최초이자 유일하게 앨범과 싱글곡이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No 1에 오르게된다.
또한 이 앨범은 전곡이 Lennon과 McCartney가 함께 작곡한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앨범소개
비틀즈는 활동 기간중 "A HARD DAY'S NIGHT"를 비롯해서 "HELP", "MAGICAL MISTERY TOUR"."YELLOW SUBMARINE" 등 몇 편의 영화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이들의 첫번째 영화였던 "A HARD DAY'S NIGHT"는 최고의 비틀즈 영화로 꼽히고 있고 특히 사운드트랙 앨범의 수록곡들은 모두 황금같은 비틀즈의 명곡들로 꾸며져 있기 때문에 비틀즈 팬들에게 더욱 사랑받고 있는 앨범이다
 
Beatles For Sale | Beatles Album 2004/10/13 13:14

발매일   1964년 12월 4일
                 1987년 2월 26일(CD) Total time   33:25


영국 앨범 챠트 챠트진입일

              1964년 12월 12일
                  1964년 12월 19일부터 7주간 1위
                  1965년 2월 27일부터 1주간 1위
                  1965년 5월 1일부터 3주간 1위 기록(총 46주간 차트에 머무름)

                  1987년 3월 7일 발매된 CD버전이 45위에 오르며 2주간 챠트진입해 머물렀고,
                  1997년 3월 22일부터 72위를 기록하며 1주간 머물렀다.


발매상황
이 앨범이 발매되기 한달전부터 무려 50만장이상의 선주문이 들어왔고, 곧 75만장으로 불어났다. 
이는 선례가 없는 사상 초유의 수치였다.
곧바로 이 앨범은 역시나 자신들의 앨범인 "A Hard Day's Night"를 밀어내고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바로 다음달에 Rolling Stones에게 1위 자리를 내어줬다가 다시 그 다음달에 1위로 복귀한다. 한 싱글챠트에서도 28위를 기록했다. 28위라고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당시에는 앨범에 실린 노래의 양이 중요한게 아니라 단지 단위 노래의 copy가 얼마나 팔렸나만으로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후 영국에서만 1백만장의 판매고를 올리게 된다.
한편 같은 앨범이 미국에서 "Beatles' 65"로 발매되었는데, 왠일인지 트랙의 순서뿐만 아니라 제외된 곡도 었다.
그래도 영국에서 발매된 그 앨범과 함께 30만장이 판매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4백만장이 판매된 것으로 추산한다. 실제로 다음 미국 앨범인 "Beatles VI"에서, 제외되었던 6곡을 포함했기 때문에 이 앨범의 판매 량까지 합산해야 할 것이다.
이로써 100만장이 더해져서 총 5백만장이 팔린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자켓 디자인
앨범커버 사진은 1964년 가을에 Robert Freeman이 촬영했다. 장소는 Royal Albert Hall근처의 London의Hyde Park뒤쪽을 선택했다. 순회공연과 그밖에 팬들(Beatlemania)와 함께 하며 피로에 지친듯한 모습을 찍은 것이 더욱 팬들에게 어필한 것으로 보인다.
속지 또한 Freeman의 사진들이었다. 워싱턴 D.C 콜롯세움에서 Beatles의 2월 11일 공연사진이 왼쪽에, 오른쪽에는 A Hard Day's Night촬영중에 런던의 Twickenham 영화 촬영소들의 로비에 벽의 앞에서 있는 모습이다.
 


Mono/Stereo 버전의 차이
    "No Reply" mix한 것이 차이를 보인다.
    "Words Of Love"  스테레오버전이 모노버전보다 약9초정도가 짧다.
 


에피소드
레코딩 당초 전작 앨범에 이어 Ringo가 노래할 곡이 없었다. 거기에  John이  함부르크시절에 레파토리였었던  [Honey Don't]를 Ringo에게 부르게 하였으나 그는 가사를 잘 암기하지 못해 레코딩이 늦어져 레코딩 최종일에 겨우 완성되었다.    
믿기 힘들겠지만, 스튜디오의 녹음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에도 L.P에서의 3트랙은 단 1 take만에 녹음된 것이다. 기록에 의하면 1964년 8월 14일에 비틀즈는 앨범에 수록할 다른 곡을 5 take까지 녹음 했던 것으로 전해지는데,  수록되지 못했고 이후에도 역시나 remix되지도 못했다. 그 곡이 바로 "Leave My Kitten Alone"이다.
 

앨범소개

오리지널 8곡, 커버 6곡으로 구성, 초기 비틀즈의 성장을 여실히 나타내는 이 앨범의 매력은 보컬을 강조시키며 4인 (McCartney, Lennon, Harrison, Ringo)을 가장 가깝게 느끼도록 한 것이다.

HELP | Beatles Album 2004/10/12 17:21
 
발매일   1965년 8월 6일
                1987년 4월 30일(CD)

녹음일   영화 촬영중의 1965년 2월중순 - 6월 중순 (Total time   33:22)

영국앨범차트   진입일 : 1965년 8월 14일
                                        1965년 8월 14일부터 9주간 1위에 랭크(챠트에 37주간동안 랭크)
                                        1971년 7월 24일부터 2주간 (reached no.33)
                                        1987년 5월 9일부터 2주간 (CD release, reached no.61)


 
■ 판매상황   

영국에서 선주문 25만장이었고 발매 첫주에 27만장이 팔렸다. 총 100만장이 팔렸고, 전세계적으로 250만장 팔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매후 곧장 "The Sound Of Music" 가 차지하고 있던 1위자리를 빼앗았지만 두달후 다시 1위를 내어주게 되었다.
 

자켓 디자인
    Robert Freeman이 촬영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Mono/Stereo 버전의 차이
    "Help!" 둘다 같은 반주를 갖고 있지만, 보컬에서 차이를 보인다.
 

에피소드
이 앨범의 레코딩중 Paul의 Beatles 탈퇴설이 있었다. 그 이유는 [Yesterday]의  레코딩에 John, George,Ringo가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Rubber Soul | Beatles Album 2004/10/12 17:22

영국앨범차트   챠트진입일 : 11th December 1965년 12월 11일(42주간)
    1987년 5월 9일부터 4주간 (CD release, reached no.60)
    1998년 4월 25일부터 1주간 (No.62)

 
 판매량
    이 앨범은 50만장의 선주문이 있었고 영국에서 75만장 가량이 판매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3백만장 정도로추산되고 미국에서 발매된 앨범에는, 추후의 버전에서는 수록되었지만, 전곡이 수록되지 않고, 영국의"Help!"앨범에서 2곡을 수록했다.
 

 자켓 디자인
    커버에는 비틀즈의 이름이 인쇄되지 않았고, 사진은 Robert Freeman이 촬영했다.
 

 Mono/Stereo 버전의 차이
"What Goes On"  모노버전에서는 마지막 기타연주의 기타코드 부분이 빠져있다. 스테레오버전에는 모두 실렸다.
 

  MEMO   
    Rubber Soul이라는 타이틀은 Anthology 2의 첫번째 디스크에 수록된 I'm Down을 들어보면 연주가 끝난 후 폴이 Plastic Soul이라고 외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이건 "진짜 소울(흑인음악)이 아니다, 인공적으로 만든 흑인음악이다"는 의미인데, 반년 뒤에 플라스틱을 러버로 바꿔서 앨범의 타이틀로 쓴 것이다.
1965년 11월 4일의 이 앨범 세션동안에 비틀즈는 인스트루멘털곡인 "12-Bar Original"을 녹음했다.
이때쯤에는 EMI 스튜디오를 마음대로 쓸수 있었으므로 여유를 가지고 제작하였다.  Beatles의 라이벌 그룹인 비치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은 [이 앨범을 들고 평가가치가 높은 훌륭한 작품들이 꽉짜여있어 충격을 받았다. 이제부터 나도 싱글이 아닌 앨범을 사용해서 무엇인가를 표현하겠다] 라고 말했다.  보컬을 강조하고,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앨범소개

Beatles의 음악적 진보와 음악에 있어서 새로운 영역을 확보하게 해준 앨범으로 초기의 낭만적 순수성을 대변하는 작품이다. 조형적 멜로디를 통한 매혹적인 작곡 그리고 변화기에 찾아든 날카로운 의식등이 어우러져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예술적 이중주이다."(66년 1월, 워싱턴포스트지). 
Revolver | Beatles Album 2004/10/12 17:23
 

영국 발매일 : 1966년8월 5일


레코딩       : 1966년 4월 - 6월까지 10주동안 전례없이 오랫동안 녹음.


Poducer    : George Martin


Engineer   : Geoffrey Emerick


참가 Staff
                        이니루 왓구왓드 (인도인 뮤지션 : Tabra : A - 4)
                        Geoge Martin : (Back Chorus : A - 6, Piano : B - 1)
                        Mal Evans (Sound Effect : A - 6)
                        Nile Aspinal (Back Chorus : A - 6)
                        Patti Harrison (Geoge의 처. Back Chorus : A - 6)


히트상황
 영국의 Album Chart에서는 66년 8월 13일 첫등장. 10월 8일까지9주간 연속 1위를 독점. 통합 20주간 랭크됨.


에피소드
 [Revolver]란  Album Title은 Paul이 일본공연시숙소인 Hilton Hotel 에서 경비의 권총을 보고 생각해낸 것이다. 그외에 생각한  Album Title은 [Pendulum]-Paul, [Aftermath]-Ringo와 [Magical Circle] [Four Side To The circle] [Beatles On Safari] [After Geography][Abracadabra]등이다.

 

쟈켓 스토리
    66년도 그래미에서 쟈켓 디자인상 수상. 커버디자인은 비틀즈의 친구인 Klaus Voormann으로  세션 베이시스트이다. 뒷면은 의 Promotin Album 을 촬영하기 위해  EMI Studio에 모였을때 사진가인 Robert Whitaker가 찍은 것이다. 4인이 쓰고있는 안경은 65년 8월 미국공연때 구입한것이다.

 

MEMO
    [Rubber Soul]의 성공으로 자신을 깊이 생각한 Beatles는 본격적인 Studio Musician 으로 활동하기로 결정했다. [Rubber Soul]로 시험한  실험적 Sound를 발전시켜 Pop Music을 예술적 경지로 이끌었다. "이 앨범에는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진귀한 Sound가 있다. 지금까지 시험해보지 못한 것으로 연주를 흉내 내려고 해도 절대로 흉내 낼 수가 없다." 라고 Paul이 말하였다. 지금까지 Rock의 범주를 뛰어 넘어 혁명적인 새로운 Sound를 만들었으며 노래의 재재 범위를 정치풍속, 철학적 명상 등으로 확대하였다.

 

SOUND
     [Rubber Soul]의 연장선상의 앨범으로  이 두장을 듣고 비교해보면 [Rubber Soul]이  따뜻한 느낌을 내포한 것에 비하여 이 [Revolover]는 아주 차거운 느낌을 준다.

 

앨범소개

록역사상 가장 혁명적/실험적인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 Beatles Album 2004/10/12 17:24

영국 발매일  :  1967년 6월 1일

레코딩        :  1966년 12月하순 - 1967년 4月상순까지 4개월간.  700시간 걸려 녹음.

레코딩 Staff
    Producer :  George Martin
    Engineer : Geoffery Emerick
                     (이 Album의 Engineering으로 1967년도 Gramy상에서 Best Engineer부분 최우수 상 수상)

참가 Staff
    George Martin (Piano A-4, B-3. Hamond Organ A-7. Hamonium B-6)
    Mal Evans     (Hamonica A-7. Piano B-6)
    Neil Aspinal  (Beatles의 Load Manager : Hamonica A-7)
    Paul Backmaster (영국의 명 Arranger : 챔발로 B-6)
    Sound Ingoprededo (영국의 Top group : sax B-4)

히트상황
    발매후  3개월간 전세계적으로 250만장이상 팔림. 1975년 8월말 현재 1100만장 돌파. Beatles Album중 [Abbey Road] 와 비슷한 기록. 영국에서 예약은 25만장.  Album Chart에서 1967년 6월 3일에 첫 등장하여  1위에 랭크. 10월 28일까지  22주간 연속 1위. 통산 43주간 랭크.[New Musical Express]지의 Single Chart까지 등장하여 전대미문의 쾌거를 기록. 미국 Album chart에서는 통산 149주간 랭크.  1967년 6월 24일에 8위로 첫 등장하여 다음주에는 1위. 10월 7일까지  15주간 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6월 15일에 RIAA공식 Gold Disk 획득.
 
에피소드
    이 Album이 발매되었을때 New York Phil의 상임지휘자인 Leonard Bernstein은 극찬의 말을 했다.  "Beatles의 Sound는 Bach의 Fuga에 필적하는 美를 가졌다. 여러가지 의미로 볼때  그들은 금세기 최고의 작곡가이다. 금세기의 슈베르트나 헨델이라고 할수 있다." Beatles는 이  Album에 많은  Sound Mixing을 사용하였다. 최고의 걸작인 의 끝에 수록된 Sound는 18track으로 녹음하였다.  17track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인간의 귀에 이 소리는 마치 개소리처럼 들린다.
 
쟈켓 스토리
    1967년도 Gramy상에서 Best Album상 수상.  Beatles 최고걸작 쟈켓. 배경에 인물사진을 배치. 초기의 Beatles모습을 인형으로 배치하여 새로운 Beatles 탄생을 환영. 즉, 지난 모습을 손수 매장하고 새  Beatles를 선언. 언제나 Beatles의  모든  아이디어의 장본인인  Paul의 생각으로 유명인의 합성사진을 선택,  Beatles멤버 4명이 좋아하는 인물을 선정하였다.
 
MEMO
    새 앨범제작에 있어  자신감을 가지고 만든 완벽한  Total Album.  Paul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20세기 들어 출현한 대중음악 가운데 최고의 찬사를 받음과 동시에 아직까지도 살아 숨쉬는 전설로 이어지는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에서 보여준 과도기적 실험성을 거쳐 대중음악의 한계에 도전한 Beatles의 극대화된 역량이 최고의 정점에 달해 음악으로 승화된 앨범이다.
 당시의 표현을 빌자면 "대중음악의 승리" 바로 그것이다. 숨김없는 사회고찰, 날카로운 현실비판, 인생에 대한 예리한 분석, 온화하게 전개되는 유우머속의 냉소, 그리고 허무가 깃들여진 미래의 영상등을 그려내고 있는 수록곡 들이 모두 하나의 개념과 줄거리로 이어지는 콘셉트(Concept) 형식을 밟고 있다.
특히 콘셉트 형식은 이 앨범이 자랑하는 핵심적 특징을 당시는 물론 오늘날까지도 그 놀라운 창의성에 경이를 느끼게 한다. 한편, 진보적 논리를 바탕으로 한 녹음기술의 전환기적 변혁을 가져왔고, 윤기있게 채색된 작곡법과 연주기법 등으로 Beatles의 놀라운 천재성을 다시 한번 입증시켰고, 이 앨범 이후로 대학에 대중음악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과가 설립되어 대중음악에 예술적 의미를 부여하는 동기를 마련하는 등 이 앨범이 가져다준 사회적, 문화적, 교육적, 음악적 충격파는 실로 엄청났다.
Magical Mystery Tour | Beatles Album 2004/10/12 17:25

영국 발매일  :  1967년 12월 8일 (E.P 판)
 
레코딩 일시  :  A면은 동명영화의 촬영과 병행하여 1967.8.하순 - 10月.상순까지 녹음.
                           B면은 1966.12.상순 - 1967.10.중순까지 연속적으로 녹음하였다.
레코딩 Staff
               Producer  :  George Martin
               Engineer  :  Geoffery Emerick
 
참가 Staff
               Mal Evans      (탬버린 : B-2)
               George Martin  (피아노 : B-5)
               Mick Jagger (Rolling Stones의 lead Vocalist : Back Chorus : B-5)
               Keith Richards (Rollinf Stones의 Guitarlist : Back Chorus : B-5)
               Erick Clapton  (Back Chorus : B-5)
               Keith Moon     (The Who의 Drummer : Back Chorus : B-5)
               Graham Nash    (Back Chorus : B-5)
               Gary rees  (Oga Brothers의 member : Back Chorus : B-5)
               Patti Harrison (Back Chorus : B-5)
               Jane Asyer     (Paul의 애인 B-5)
               Marian Faithful (Back Chorus : B-5)
 
발매상황
영국 Single Chart에 1967.12.16.에 17위로 첫 등장하여 다음해 1968.1.13.에  1위에 올라 통산 10주간 랭크됨. 미국 Album Chart에는 1967.12.23에 157위에 첫등장하여 다음해 1968.1.16 - 2.24.까지 8주간 연속 1위, 통산 82주간 랭크되었다. 1967.12.15, RIAA 공인 Gold Disk 수상
   
에피소드                                                           
영국에서는 Sound Track 곡만 있는 E.P로 발매되었는데 레코딩 종료시 6곡을 더 수록했다. 발매 문제로 Album을 만들기에는 너무 곡이 적어  1장의  EP로 수록할수 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싱글판 3매를 한 Set로 발매했으나 여러 생각끝에 2장의 EP Set로 만들었다.
A면은 Sound Track곡, B면은 Single 히트곡을 수록하여 Album을 만듬. 미국에서는  영국 Sound Track판의  결점인 레코드를 일일이 뒤져 듣던것을 보완해  Sound Track곡만을 들을 수 있게 한쪽면에  수록했다. 반대편은  여기까지 mono로 들었으나, stereo로 수록했다. Capitol Record의 나쁜 상술이었다. EMI Record 에서는 오랫동안의 발매 요청으로 1976.10월에야 겨우 발매되었다
                                                        
MEMO
TV용 영화 [Magical Mystery Tour]의 Original Sound Track 판으로 음악적으로는 전작 Album인 [Sgt.- ]의 연장선상에 위치한다.< I Am The Walrus >, < Blue Jay Way >, < Flying >등, electric 기술을 구사한 두터운 Sound를 가진 작품이 많다. Psychedelic Animatism적 성격이 강한 영화 Sound Track이다.  전작보다 더 도약적이고 보다 Comic하게 만들었다. 시적인 면에서는 환상적이고 허속적인 , , 서정성이  뛰어난 은 걸작이다.
 
The Beatles(The White Album) | Beatles Album 2004/10/12 17:27

발매일   1968년 11월 20일
                1979년 1월 16일 (White Vinyl)
                1987년 8월 24일 (CD)
                1998년 11월 23일 (CD Special Edition)

영국앨범차트   진입일
                7th December 1968
                1968년 12월 7일부터 7주간 1위
                1969년 2월 1일부터 1주간 1위 (총 22주간 차트에 머무름)
                CD버전은 1987년 9월 5일부터 2주간 차트에 머무는데 최고 18위를 기록했다.
    
 
영국 발매일 : 1968년 11월 22일
           레코딩 : 인도에서 귀국후 68.5월하순에서 10월하순까지 4개월 반 동안 녹음.
 
 레코딩 스탭
    Poducer  : George Martin
    Engineer : 1) Jeff Emeric
                       2) Cris Thomas (Bad Finger, Roxy Music, Sex Pistols의 Poducer로 유명함)
                       3) Ken Scortt (Super Tramp의 Producer)
 
참가 Staff   1) Mal Evans (탬버린 A-2, 트럼펫 C-6)
                      2) Jackie Lomax (영국출신의 Vocalist, 손박자 A-2)
                      3) John (Paul과 함께 손박자 A-2)
                      4) Cris Thomas (Mellotron A-6, Harpsicord B-4)
                      5) Ono Yoko (John의 아내, Back Chorus A-6, C-1)
                      6) Eric Clapton (lead Guital A-7
                      7) Patti Harrison (Back Chorus C-1)
                      8) Georgy Martin (Electric Piano D-3, Harmonium D-4)
 
Hit 상황
   1) 영국 Album Chart에 1968年 11月30日에 3위로 첫등장하여 다음주에 1위에 올라  1969. 2. 15.까지 10주간 1위 독점.통산 21주간 랭크됨.
   2) 미국에는 12月14日 11위에 첫 등장하여 12月28日에서 이듬해 2月1日까지 또 2月15日  3月1日까지 모두 9주 간 1위. 통산 114주간 랭크. 68年 12月6日  RIAA공인 Gold Disk 수상
 
에피소드
    이 Album의 레코딩 Session으로 된 작품은 George의 [Not Guilty]( 79년 솔로앨범에 수록), Paul의  [Jubilee](Junk의 원곡), John의 [On the road to Marakesh] 등이다.
 
자켓 스토리
    자켓에 "The Beatles" 라는 문자를 나타낸것 외에는 어떤 인쇄도 없어 "White Album"으로 불리운다. Beatles 자켓 중 가장 간단하다. 전작의 자켓에서도 볼수없는 의외성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이 Album에는 레코드 번호외에 세계에서 하나 밖에 없는 고유번호가 찍혀있다.
 
 MEMO
    1) 이 Album은 [Sgt. -]까지의 의도적 시도에서 탈피했음을 보여준다. Concept 형식이 없다. Sound는 심벌이 더욱 풍부하여 음악 박람회적 앨범이다. 독특한 [Back  In The USSR],  칼립소풍의  [Ob-Ra-Di Ob-Ra-Da], Blues풍의 [Yer Blues][Happiness is] 바로크 풍의 [Black Bird][Mother Nature's Son] Contry풍의 [Rocky Raccon] [Don't Pass Me By], Music콩쿨의 [Revolution 9] 등 그들 4인의 개성이 발휘된 작품들이다.
    2) Sound 면에서는 [Back In The -]는 Beach Boys의 Chuck Bessy, [Yer Blues]에는 Blood Shade Blues,[Why Don't We -]에는 Rolling Stones화 했다.
    3) 시적인  면에서는  [Back In The -][The Continuing -][Honey Pie]에서는 미국적이고 [Glass Onion] 에서는 Beatles 자신, [Black Bird] [Piggies]에서는 인간적이고 [Sexy Sadie]에서는 마하리쉬 요기를 [Cry Baby Cry]에서는 영국황실을, [Revolution 1]에서는 폭력혁명 세력을 보여주었다.
 
 Sound
    이 Album에서는 Paul과 John 자신이 Produce를 하기 시작했다. 그 중 유명한 Hit 곡도 여러곡 탄생되었다. Member외에  여러 Session Man이 참가했다.  [Revolution 1] 의 Piano는 Nicky Hopkins, [While My -]의  기타는  George 대신 Eric Clapton이 연주하였다.  이 Album을 듣고 있으면 그들 4인이 각자 하고 싶었던 말을 확실히 알수있다.
    이  Album에는 특히 Paul의 곡이 많다.  [While My -] 는 George가, [Yer Blues]는 John이 각각 독점했다.  [Black Bird]는 cord를 사용않고 6도로치는 Count line과 Melody가 합해져  매우 아름답다. [Revolution]은  Contry적인 Melody line이다. Acoustic guital 소리가 매우 명쾌하다. Contry라고 말한것도 미국에는 없는 Sound이다.
    Scotland적이고 영국적인 Sound라고 느껴진다. 이 Album에서 느낀 특징은 생음악이 많다는 것이다. 시기적으로 생각해보아도  [Sgt. -]까지의 계산으로 볼때 옛 Sound와는 반대이다. Album의 Play는 어느것을 보아도 4인이 부르는 느낌이다. George Martin의 영향이 크다고 할수있다. [Revolver], [Sgt. -]등과 비교해 볼때 그들 자신의 Musician으로서의 음악성이 돋보였다. 즉 앞의 두 작품보다 음악가로서 모습이다.

 
THE BEATLES (White Album)

비틀즈의 섬광이 극치에 달한 명반 
Yellow Submarine | Beatles Album 2004/10/12 17:25

영국 발매일 : 1969년 1월 17일 발매

미국 발매일 : 1969년 1월 13일 발매
 
레코딩 일시 : 67년 6월 중순경 - 68년 2월까지
                         London Abbey Road Studio에서 녹음.
 
Poducer  : George Martin
 
■ 발매 상황  : 미국에서는  69년  2월에  Chart에 처음 등장하여 24주간 통산랭크되었으나 1위는 하지 못하고  2위 까지 올랐었다. 영국에서는 겨우  4위까지 올랐을 뿐이다. 이것은 Beatles의 Original Album중 가장 부진한 기록이다.
 
George의 곡 Only a Northern Song은 그가 단시간 내에 쓴곡으로 Beatles작품에 대한 자조적은 비판을 담고 있으며 나아가 그 내부에는 그들의 사심, 세력 이해관계등이 깔려있다고 한다.
 
이 앨범은 Beatles 멤버들이 Apple사의 설립과 사업구상으로 바쁘고 또 각자 단독적인 활동이 시작될 무렵에 녹음된것으로  그들이  별 애착을 가진것이 아니었기에  가장 저조한  평가를 받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Brian Epstein 에  의해  계약된 Project로써  United Artists에 3번째 Beatles 영화를 만들 의무가 있었기에  그들은 별로 내키지 않는 가운데 만화영화의 음악을 담당했다. Yellow Submarine은 66년 발표된  L.P.에서,[All You Need Is Love]는 67년 발표된 L.P. 에서 각각 발췌한 것으로 Beatles의 신곡은 4곡뿐이다.
 
Let It Be | Beatles Album 2004/10/12 17:27

영국 발매일  :  1970년 5월 8일 발매

미국 발매일  :  1970년 5월 18일 발매

레코딩        :  동명 영화의 촬영과 병행하여 1969.1월  2월 상순까지 녹음.

레코딩 Staff
                           Producer     :  George Martin, Phil Spector
                           Engineer     :  Gly Johns

참가 Staff
    Billy Preston (미국출신의 흑인 키보드 연주자) : 전기피아노 ( A-2.4.5.6 , B-1.2.5 )
    George Martin : 오르간 ( A-3 )
 
발매 상황
    Beatles 해산설의 화제와 더불어 미국에서는 예약으로만 370만매가 팔려 사상 최고기록을 수립하였다.  미국 Album Chart에는 1970.5.30.  104위로 처음 등장하여 6.13  7.4  4주연속 1위를 차지하였다.  통산 55주간 랭크. 70.5.26. RIAA 공인 Gold Disk 수상.  영국 Album Chart에는 1970.5.23. 3위로 처음 등장. 6.6  7.25  8주간 1위 자리를 지킴. 통산 25주간 랭크.
 
에피소드
    [THE BEATLES]에 이은 새로운 Album 제작 시작무렵 전자 음향기술을 피하여 자신들의 악기만을 사용한 Simple 한 Sound의  Album을 만들기를 원한  John이  다른 3인에게 [정직한 앨범]을 만들것을 제안, 그의 의도대로 마치 리허설 하는 것을 녹음해 놓은 듯한,  Documentary touch의 Live 형식의 Album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Twickenham film studio가 황량하고 형편없어 Apple Studio로 옮겨 녹음을 끝냈다.  원래 Album title은 [Get Back] 이었으나 중도에 발표를 연기했다가 일년 반후에 재편집하여 [LET IT BE]로 title을 바꾸어 발표 하였다. 거의 30시간에 달하는 양의  Raw Tape을 하나의 Tape에 편집하여 Live  Recording 당시를 생생하고 박력있게 전한 Phil Spector의 Produce능력이 돋보인다.
 
MEMO 
    중기이후 써왔던 Dubbing 등의 Studio음향기술을 배제한 Simple한 Rock 색체의 사운드제작을 위해 노력하였다.  내용적으로 folk Rock 풍의 [Two of us], Blues style의[Dig a Pony][For you Blue], 민속풍의 [Maggie Mae] Gospel 풍의  [Let it be],   Rock Number  [Get back], Ballad 풍의 [The long and winding road], [Across the  Universe], 1950년대 소년시절 John 과 Paul의 공동작품인 Old Rock [One after 909]등 다채로운 작품으로 구성되었다.
 
1969년 녹음당시 Original recording Producer는 George Martin 이었으나 1970년 4월경 Phil Spector의 Remixing,  overdubbing에 의하여 앨범이 완성되었다.[Let it be]는 Original Single과  Phil Spector에 의해  재편집  된 곡이 후반부 코러스부분 one play차이로 single이 3분50초, 앨범수록 Let it be가 4분01초로 차이가 있다. [The long and winding - ]의 경우 코러스,  Harp, Strings 등이 가미되어  재편집되었는데  Paul은 그것에 대해 매우 불만스러운 의사를 표시하기도 했었다.

[Across the Universe]는 68년 녹음되어 세계야생동물보호 기금에 헌정한 것이나 1970년 3월 재편집당시 Back  Vocal, 새소리등이 삽입되었다. [I me mine] 은  Abbey Road Studio에서 녹음, [I'e got a - ] [One after 909] [Dig a Pony]는 Apple studio의 옥상에서 녹음한것을 재편집한 것이며 나머지곡들은  Apple studio 에서 녹음된 것이다.
 
Abbey Road | Beatles Album 2004/10/12 17:26

앨범 발매일
        영국 발매일 : 1969년  9월 26일
        미국 발매일 : 1969년 10월  1일

레코딩 일시   : 1969년 7월    8월에 걸쳐 녹음
 
레코딩 Staff
        Poducer      : George Martin
        Engineer     : Jeff Emeric , Phil McDonald , Alan Parsons
 
■ 발매 상황
매니저 Allen Klein의 능숙한 선전활동과 미국에서부터 번진 Paul의 사망설과 관련, 발매 초기부터 폭발적인 판매량을 기록하였다.  첫해 판매량만해도 500만장이며 이것은 [Sgt. -] 보다 200만장이나 많은 기록이다.   전세계적으로  75년까지 1300만장이 팔려 Beatles Album 중 최다판매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 Album Chart에  1969.10.4.에 첫등장하여 1위에 랭크. 1970.2.14.까지 19주간 1위 독점. 통산 35주간 랭크되었다. 미국에서는 1969.10.18.에 178위에 첫등장하여 11.1-12.20, 다음해 1.3-1.10. 통산 11주간 1위에 랭크.  통산랭크 주간은 87주이다.  1969.10.27. RIAA공인 Gold Record 선정.
 
에피소드
      이 앨범의 레코딩 세션으로 녹음된 작품은 John의 작품으로
     [Four Nights In Moscow],[When I Come To Town]이 있다.
 
자켓 스토리
  Paul의 사망설의 한가지 원인이 된 자켓사진이 유명하다. 횡단보도를 걷고있는 Beatles 멤버들을  Paul의 장례식행렬의 목사(John),장의사(Ringo),묘지의 인부(작업복차림의 George)로 보았음.  Paul이 맨발인것은 그가 죽은 사람임을 상징하는 것이며  Paul이  담배를 오른손에 쥐고있는 점도 지적되었다. 노상에 주차하고 있는 Volkswagen(Beetles)의 번호판 [IF28] 은 Paul의 나이 28세를 나타낸것이라는 소문이 떠돌았음.
 
MEMO
이 Album의 레코딩시기는 [Let it be] 레코딩시기 (69.1-2) 보다 늦다. 그러나 여러가지 문제로 인하여  [Let it be]가 70년 5월에 발표되어 final Album이 되었으나,[Abbey Road]가 실질적인 Beatles의 최후 작품인 것이다.
[White Album]이후 4인의 개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또하나의 Album으로 보고있다. 완성도가 높은 치밀한 구성, 아름다운 조화가 있는 반면 강한 개성의 경합이 돋보이는 걸작 Album이다. 서로가 지친 상태에서 그들의 왕국이 서서히 붕괴됨을 느끼며 만들어낸 Beatles 최후의 역작으로 하나의 작은 기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Side 1'은 종전형식대로 단독곡들이 수록되어있고 'Side 2' 는 전체적으로 메들리형식을 취하고 있다.  사운드 면에서는 신서사이저를 많이 도입했으며, 랩소디적인면, Musical 성격의 곡도 있고  Rock and Roll, Prograssive pop 등 다양한 면을 나타내고 있다.
 
ABBEY ROAD
 
섬세한 감성과 지성이 융화되어 완벽한 음악성이 빛나는 Beatles 최후의 거작 는 가장 Beatles다운 앨범이며 오늘날 "Pop 음악의  교과서"라고까지 인식되어지는 작품이다. 다시 한번 발휘된 그들 특유의 변화무쌍한 작곡법돠 연주 기법 등이 윤기있게 다듬어져 있어 전체적인 음악적 구조가 치밀한 논리적 전개로 채색되어 있어 듣는이를 전율의 도가니로 인도하고 있다.
이  앨범의 특징은 이후의 철학적, 사회적 주제의식에서 어느정도  벗어난, Beatles가 오로지 순수하게 음악에의 열정만을 가지고 만든 지극히 예술적인 앨범이라는 것이다.  Beatles의 수많은 걸작 중 회고의  판매고를 기록하고 있으며 가장 윤기있는 앨범이라는  평과 함께 "음악적인 측면에서 를 능가할 작품은  없다."(미국, Rolling Stone지, 1978년)라는 견해가 일반적인 통념처럼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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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 21세기에도 계속된다. 쭈욱~~~

http://www.youtube.com/watch?v=uPsRA6H0wZM&search=beatles

[MV] the beatles - free as a bird /real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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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 Real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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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tles - Hey Bull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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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youtube.com/watch?v=7QsjUrBv1dw&search=beatles

 

[MV] The Beatles - Come Together [Rare Promo vids CD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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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tles 1962-1966(The Red Album) | Beatles Album 2004/10/15 00:08
http://blog.naver.com/ajc0101/60006630678
 
 side1
 1. Love Me Do   
 2. Please Please Me  
 3. From Me To You
 4. She Loves You
 5. I Want To Hold Your Hand
 6. All My Loving
 7. Can't Buy Me Love
 
 Side 2          
 1. A Hard Day's Night
 2. And I Love Her
 3. Eight Days A Week
 4. I Feel Fine
 5. Ticket To Ride
 6. Yesterday
                              
 Side 3
 1. James Bond Theme (US only)
 2. Help!
 3.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
 4. We Can Work It Out
 5. Day Tripper
 6. Drive My Car
 7.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

 Side 4
 1. Nowhere Man
 2. Michelle
 3. In My Life
 4. Girl
 5. Paperback Writer
 6. Eleanor Rigby
 7. Yellow Submarine
The Beatles 1967-1970(The Blue Album) | Beatles Album 2004/10/15 00:08
http://blog.naver.com/ajc0101/60006630666
 
 Side 1
 1. Strawberry Fields
 2. Penny Lane
 3.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4.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
 5.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6. A Day In The Life
 7. All You Need Is Love
 
 Side 2
 1. I Am The Walrus
 2. Hello Goodbye
 3. The Fool On The Hill
 4. Magical Mystery Tour
 5. Lady Madonna
 6. Hey Jude
 7. Revolution
 
 Side 3
 1. Back In The U.S.S.R.
 2.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3. Ob-La-Di, Ob-La-Da
 4. Get Back
 5. Don't Let Me Down
 6. The Ballad Of John and Yoko
 7. Old Brown Shoe
 
 Side 4
 1. Here Comes The Sun
 2. Come Together
 3. Something
 4. Octopus's Garden
 5. Let It Be
 6. Across The Universe
 7. The Long And Winding Road
Live At The B.B.C | Beatles Album 2004/10/15 00:06
http://blog.naver.com/ajc0101/60006630633

제목 그대로 영국의 BBC 방송국과 APPLE 레코드사 GEORGE MARTIN의 허가와 지원하에, 수록 편집은 직접 조지 마틴이 맡아 한 이 앨범은  크리스마스를 위한 선물로 나오게 된 기념음반이다. 사실 이런 공식적인 협조하의 라이브는 처음 발매되는 셈인데 BBC 방송 출연시의 라이브라 관중의 수음없는 방송국 특유의 사운드를 접할 수 있다. 두장의 CD상에는 모두 69개의 트랙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BEATLES GREETINGS', JUST A RUMOUR', '1822'등은 그들의 대화 또는 BBC의 DJ인 BRIAN MATTHEW, ALAN FREEMAN등과의 인터뷰를 담은것에 제목을 붙인 것이다. 따라서 130분간 총 56곡의 노래가 선보이는데 약 30여곡은 전혀 스튜디오 앨범에는 수록되지 않았던 곡들로, 비틀즈가 1963년 이전 리버플과 함부르크 클럽 라이브시 연주했던 ROCK'N ROLL의 고전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존과 폴의 희귀곡인 I'LL BE ON MY WAY'는 원래 BILLY J. KRAMER에게 줬던 곡으로 그의 데뷔 싱글 DO YOU WANT TO KNOW A SECRET' B면에 수록됐던 곡이다.
사실 이 앨범은 요즘 팬들에게는 별로 흥미를 끌지 못할 요소가 많다. 사운드도 MONO인데다 주로 그야말로 옛날 노래 위주이고 로큰롤에 로커빌리 일색 인데다가 그 흔한 YESTERDAY'나 HEY JUDE'는 커녕 I WANT TO HOLD YOUR HAND'정도도 없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것이 바로 귀중한 역사이다. 비틀즈의 팬이라면 입이 벌어질 귀중한 선곡이자 대화가 들어있는 필구매의 소중한 선물일 것이다. ELVIS PRESLEY의 첫 싱글 THAT'S ALL RIGHT MAMA'를 비롯해 I GOT A WOMAN', 'FORGOT TO REMEMBER TO FORGOT'은 엘비스의 곡이고, 역시 로큰롤의 대부 척 베리의 곡은 'TOO MUCH MONKEY BUSINESS', 'CAROL', ROLL OVER VEETHOVEN', 'SWEET LITTLE SIXTEEN'이 연주됐으며 그밖에 CARL PARKINS의 HONEY DON'T', COASTERS의 YOUNG BLOOD', MARMALADE의 SOME OTHER GUY', MARY HOPKIN의 THE HONEYMOON SONG', 그리고 비틀즈가 초창기에 좋아했거나 영향받았던 곡들과 그들의 로큰롤 레퍼토리가 연주되는 귀중한 방송 실황, 초기의 HOLLIES, HERMANS HERMITS, BUDDY HOLLY등의 음악과도 비견되는 초기의 비틀즈 사운드가 있다.

 

Anthology 1 | Beatles Album 2004/10/15 00:05
http://blog.naver.com/ajc0101/60006630609
 
무명시절부터 비틀매니어 시절까지의 시기를 해부한 비틀즈의 역사 제1탄!
Quarry Men 시절에 제작한 최초의 싱글 That'll Be The Day/In Spite Of All The Danger... Tony Sheridan의 백밴드로 제작한 My Bonnie, Ain't She Sweet...
Decca사와의 오디션에서 연주한 Three Cool Cats, The Shiek Of Araby, Like Dreamers Do, Hello Little Girl... EMI사와 오디션 트랙 Love Me Do, Besame Mucho...
프로듀서 Martin의 강력한 권유로 어쩔 수 없이 녹음한 How Do You Do It...
John의 유명한 멘트로 아직까지 팬들의 기억속에 남아있는 Royal Command Performance 공연...
The Morecambe And Wise Show...
그리고 보너스로 수록된 John의 미완성곡, Free As A Bird... 신화의 탄생과정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자료들로 가득한 앨범!

 

Anthology 2 | Beatles Album 2004/10/15 00:05
http://blog.naver.com/ajc0101/60006630601
 
Fab Four의 창의성이 절정에 다르고 있던 Help! 시절부터 Magical Mystery Tour 시절까지를 다룬 Anthology 2탄! 명곡 Yesterday의 탄생과정... 앨범 Rubber Soul, Revolver의 녹음세션, Sgt. Pepper 세션, Strawberry Fields Forever의 어쿠스틱 버젼, Magical Mystery Tour, 그리고 John의 Real Love... 이 앨범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말 그대로 Magical Mystery Tour!
 
Anthology 3 | Beatles Album 2004/10/15 00:04
http://blog.naver.com/ajc0101/60006630590

약간의 눈발이 흩날리던 69년 1월 30일 낮 12시 무렵, 영국 런던 중심가 새빌로 거리의 한 건물 옥상에 4명의 젊은이가 나타났다. 뒤이어 귀에 익은 목소리와 연주가 흘러나왔고, 때마침 점심시간을 맞은 인근 직장여성들이 이들을 보기 위해 한꺼번에 몰려나와 삽시간에 인산인해가 됐다. 도심에서 소음을 내고 교통을 방해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의해 40분만에 제지됐던 이 소동이 그 유명한 비틀즈의 '루프톱 세션'(옥상연주)이다. 

이 광경은 비틀즈가 출연한 마지막 영화 "Let It Be"에 그대로 삽입됐다. 이는 네명의 멤버가 벌인 마지막 연주가 됐고, 지금도 당시의 현장을 둘러보는 관광상품이 개발돼 있을 정도로 팝 음악의 역사에 남은 명연중의 하나다. 

 The Beatles Anthology 3 편에서는 비틀즈의 마지막 곡 <겟 백>을 옥상연주의 실황 그대로 들을 수 있다. 이 곡은 경찰이 출동하자 불안을 느낀 폴 맥카트니가 마지막 부분을 애드립으로 처리했고,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의 앰프가 아주 짧은시간 고장을 일으키는 바람에 완벽하게 연주되지는 못했다. 귀가 예민한 사람이면 이를 알아차릴 수 있는데, 정규 앨범에 수록돼 있는 곡과 비교해 들으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The Beatles Anthology 3」편에는 <겟 백>을 포함, 68년부터 1970년사이 '화이트 앨범'이란 별칭으로 더 널리 알려진 「The Beatles」「Abbey Road」「Let It Be」를 발표하던 후기 비틀즈의 녹음중 50곡이 더블 CD에 담겨있다. 

 수록곡 중에는 지금까지 미공개 상태로 남아있던 곡들이 몇곡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특히 화이트 앨범에 수록하기 위해 녹음했다가 다른 곡들에 밀려 빠지게 된 연주시간 6분의 <화츠 더 뉴 메어리 제인>은 존 레논의 낭랑한 목소리가 갖가지 음향효과와 어우러져 상당히 아방가르드적인 느낌을 준다. 이밖에 <렛 잇 비>와 <컴 투게더>의 최초 녹음(퍼스트 테이프), 존 레논과 폴 맥카트니의 대화가 삽입된 <헤이 주드>, 에릭 클랩튼의 도움없이 조지 해리슨만의 리드 기타로 녹음한 <화일 마이 기타 젠틀리 윕스> 등 이미 발표된 것과는 다른 버젼들이 수록되었다. 

95년 11월부터 잇따라 발표된 「The Beatles Anthology」 시리즈는 지금은 전설이 된 비틀즈의 궤적을 연대기 형식으로 정리한 것으로 이번 3편이 완결편 이다. 특히 1,2편에서는 존 레논이 생전에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 둔 노래에 나머지 멤버들이 반주를 입힌 <프리 애즈 어 버드>와 <리얼 러브>가 25년만의 신곡으로 발표돼 화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The Beatles Anthology」 시리즈의 지금까지의 판매량은 모두 1천 3백만장에 이르고, 덩달아 기존 음반도 6백만장이 추가로 판매된 것으로 집계돼 세대를 뛰어넘는 달러 메이커로서 비틀즈의 명성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Free As A Bird 
  *Speech : John Lennon
*That'll Be The Day
*In Spite Of All The Danger 
  *Speech : Paul McCartney
*Hallelujah, I Love Her So
*You'll Be Mine
*Cayenne 
  *Speech : Paul McCartney
*My Bonnie
*Ain't She Sweet
*Cry For A Shadow 
  *Speech : John Lennon 
  *Speech : Brian Epstein
*Searchin'
*Three Cool Cats
*The Sheik Of Araby
*Like DreamersDo
*Hello Little Girl 
  *Speech : Brian Epstein

*Besame Mucho
*Love Me Do
*How Do You Do It
*Please Please Me
*One After 909 (Sequence)
*One After 909
*Lend Me Your Comb
*I'll Get You 
  *Speech : John Lennon
*I Saw Her Standing There
*From Me To You
*Money (That's What I Want)
*You Really Got A Hold On Me
*I Saw Her Standing There
*She Loves You
*Till There Was You
*Twist And Shout
*This Boy
*I Want To Hold Your Hand
*Scene from "The Morecambe and Wise Show" *Moonlight Bay
*Can't Buy Me Love
*All My Loving
*You Can't Do That
*And I Love Her
*A Hard Day's Night
*I Wanna Be Your Man
*Long Tall Sally
*Boys
*Shout
*I'll Be Back (Take 2)
*I'll Be Back (Take 3)
*You Know What To Do
*No Reply (Demo)
*Mr. Moonlight
*Leave My Kitten Alone
*No Reply
*Eight Days A Week (Sequence)
*Eight Days A Week (Complete)
*Kansas City/Hey-Hey-Hey-Hey
*Yes It Is
*I'm Down
*You've Got To Hide Your Love Away
*If You've Got Trouble
*That Means A Lot
*Yesterday
*It's Only Love
*I Feel Fine
*Ticket To Ride
*Yesterday
*Help!
*Everybody's Trying To Be My Baby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
*I'm Looking Through You
*12-Bar Original Tomorrow Never Knows
*Got To Get You Into My Life
*And Your Bird Can Sing
*Taxman
*Eleanor Rigby (Strings Only)
*I'm Only Sleeping (Rehearsal)
*I'm Only Sleeping (Take 1)
*Rock And Roll Music
*She's A Woman
*Strawberry Fields Forever (Demo Sequence)

*Strawberry Fields Forever (Take 1)
*Strawberry Fields Forever (Take 7 & Edit Piece)

*Penny Lane
*A Day In The Life
*Good Morning Good Morning
*Only A Northern Song
*Being For The Benefit Of Mr. Kite! (Takes 1 and 2)
*Being For The Benefit Of Mr. Kite! (Take 7)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Within You Without You (Instrumental)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Reprise)
*You Know My Name (Look Up The Number)
*I Am The Walrus
*The Fool On The Hill (Demo)
*Your Mother Should Know
*The Fool On The Hill (Take 4)
*Hello, Goodbye
*Lady Madonna
*Across The Universe
*Happiness Is A Warm Gun (Lennon/McCartney)
*Helter Skelter ( Lennon/McCartney )
*Mean Mr. Mustard ( Lennon/McCartney )
*Polythene Pam( Lennon/McCartney )
*Glass Onion ( Lennon/McCartney )
*Junk (McCartney)
*Piggies (Harrison)
*Honey Pie(Lennon/McCartney)Don't Pass Me By ( Starkey )
*Ob-La-Di, Ob-La-Da (Lennon/McCartney)
*Good Night (Lennon/McCartney)
*Cry Baby Cry (Lennon/McCartney)
*Blackbird (Lennon/McCartney)
*Sexy Sadie (Lennon/McCartney)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Harrison )
*Hey Jude (Lennon/McCartney)
*Not Guilty (Harrison )
*Mother Nature's Son (Lennon/McCartney)
*Glass Onion (Lennon/McCartney)
*Rocky Raccoon (Lennon/McCartney)
*What's The New Mary Jane (Lennon/McCartney)
*Step Inside Love/Los Paranoias (Lennon/McCartney/Harrison/Starkey )
*I'm So Tired(Lennon/McCartney)
*I Will(Lennon/McCartney)
*Why Don't We Do It In The Road (Lennon/McCartney)
*Julia(Lennon/McCartney)
*I've Got A Feeling(Lennon/McCartney)
*She Came In Through The Bathroom Window(Lennon/McCartney)
*Dig A Pony(Lennon/McCartney)
*Two Of Us (Lennon/McCartney)
*For You Blue(Harrison )Teddy Boy (McCartney)
*Rip It Up/Shake, Rattle And Roll/Blue Suede Shoes(Blackwell/Marascalco/Calhoun/Perkins)
*The Long And Winding Road (Lennon/McCartney)
*Oh! Darling(Harrison)
*All Things Must Pass (Roberts/Katz/Clayton )
*Mailman, Bring Me No More Blues (Lennon/McCartney)
*Get Back (HaLennon/McCartney )
*Old Brown Shoe (Harrison)
*Octopus's Garden (Starkey )
*Maxwell's Silver Hammer (Lennon/McCartney)
*Something (Harrison)
*Come Together (Lennon/McCartney)
*Come And Get It (McCartney)
*Ain't She Sweet (Ager/Yellen )
*Because (Lennon/McCartney)
*Let It Be (Lennon/McCartney)
*I Me Mine (Harrison)
*The End (Lennon/McCartney)
 
 
 
The Beatles 1 | Beatles Album 2004/10/13 10:18
http://blog.naver.com/ajc0101/60006584981

비틀즈는 약 8년간 활동하면서 빌보드 앨범 차트에 14장의 앨범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싱글은 'I Wanna Hold Your Hand'부터 'The Long And Winding Road'에 이르기까지 무려 20곡이나 1위에올려놓았다.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비틀즈의 베스트 앨범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나왔다. 그 중에서 유명한 것이 붉은 색 재킷에 [1962-1966]이라 명명된 초기 베스트를 모은 더블 앨범과 푸른 재킷에 [1967-1970]이라 는 타이틀이 붙은 후기 베스트를 모은 더블 앨범이 그것이다. 전자는 빌보드 차트 3위를 기록했고, 후자는 1위를 기록해 비틀즈의 위용을 새삼 떨쳤다.

 

이 비틀즈 [1]은 아마도 비틀즈 베스트 앨범의 백미 중의 백미일 것이다. 사실 많은 아티스트들의 베스트 앨범이 있어왔지만 비틀즈의 이번 앨범과 같은 베스트 앨범을만든 적은 없었다.

앞서 말했듯이 머라이어 캐리가 차트 1위곡 위주로 베스트 앨범을 꾸미긴 했지만 그것은 비틀즈의 이 앨범에 비하면 함량 미달이 아닐 수 없다. 세상 그 어떤 뮤지션이 이렇게 강력한 베스트 앨범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비틀즈의 넘버 원 싱글은 미국에서 20곡이지만 UK 차트와 합치면 27곡이 넘는다. 수록곡은 1964년 5월에 미국에서 1위를 차지했던 'Love Me Do'로 시작해서 1970년 6월에 마지막으로 1위를 차지했던 'The Long And Winding Road'로 끝난다.

 

이 베스트 앨범은 CD의 한계 시간이 80분에 가까운 79분 12초의 러닝 타임을 가지고 있다. 이 시간에는 27곡 밖에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다른 넘버 원 곡인 'Please Please Me'와 같은 싱글은 실리지도 못했다.

 

그래서 이 앨범은 그냥 때가 되어 나온 그저 그런 베스트 앨범이라기보다는 아직도 비틀즈를 넘어서는 밴드가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자료인 셈이다. 그리고 새로 시작한 밀레니엄에도 당분간 이런 기록을 만들 수 있는 뮤지션이 있으랴 하는 의미심장한 거만함(?)까지 느껴지는 앨범인 것이다. 알찬 앨범이라는 말을 가끔 쓰지만 이것은 그 정도를 넘어선 꽉 찬 완벽한 앨범인 것이다.

 

Love Me Do

From Me To You

She Loves You

I Want To Hold Your Hand

Cant Buy Me Love

A Hard Days Night

I Feel Fine

Eight Days A Week

Ticket To Ride

Help

Yesterday

Day Tripper

We Can Work It Out

Paperback Writer

Yellow Submarine

Eleanor Rigby

Penny Lane

All You Need Is Love

Hello, Good-Bye

Lady Madonna

Hey Jude

Get Back

The Ballard Of John & Yoko

Something

Come Together

Let It Be

The Long And Winding Road

 

 

 

The Capitol Albums Vol.1 (Box)  




가수/연주자별 커뮤니티
음반사: Capitol
기획사: EMI
가수: Beatles
제조국가: EU
발매일: 2004-11-16
판매가격: 68,500원
마일리지: 685원
시디갯수: 4 CD
상품코드: ◎B2486

 

 

 

 

자켓사진 - 음악창고
Beatles, The / White Album - 30th Anniversary Limited Edition

제작사 : EMI
발행일 : 1998
장르 : Rock / Metal
형태 : 2 CD
제조국가 : EU
수입품
 
    
Wish List
LP 자켓 디자인의 4명 맴버 사진 포함된 CD

Yello Submarine - Songtrack | Beatles Album 2004/10/13 09:18
http://blog.naver.com/ajc0101/60006583637

1999년 8월 30일, 비틀즈의 고향인 영국 리버풀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새로운 YELLOW SUBMARINE 앨범 발매에 앞서 행해진 '노란 잠수함의 날(Yellow Submarine Day)'의 행사는 40여개국에서 몰려든 15만 명의 팬들과 각종 매체의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루었으며, 행사장의 무대는 물론 모든 클럽과 레스토랑 등에서는 수많은 밴드들이 비틀즈의 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행사의 클라이맥스는 새롭게 리믹스된 영화 '노란 잠수함'의 상영이었다.


비틀즈의 멤버 네 명이 희화되어 카메오로 등장하기도 한 이 애니메이션은 비틀즈가 관여한 모든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통틀어 가장 높은 예술적 평가를 받았음은 물론, 환각적인 내용과 혁신적인 스타일로 인해 당시 정점을 이루고 있던 사이키델릭 문화의 멋진 산물로서 기록되었던 작품이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라 할 만한 이 작품의 대담한 스타일은 이후 우리에게도 친숙한 이나 등 기존 만화의 틀을 깨는 성인 대상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1968년 7월 런던에서 개봉된 이래 법적인 문제로 공개되지 않았던 영화가 정확히 31년만에 새 옷을 입고 빛을 보게 되었다는 사실은 수많은 비틀 마니아들과 애니메이션 팬들을 들뜨게 하기에 충분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가장 즐거운 소식은 역시 새로운 앨범 YELLOW SUBMARINE SONGTRACK의 발매라 할 수 있다.


세 장의 ANTHOLOGY 시리즈로 비틀즈의 숨겨진 음악에 목말라 하던 팬들의 갈증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처럼 보였지만 한 가지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이들이 가질 수밖에 없는 당연한 바람이요 또 불만이기도 했다. 다른 많은 슈퍼 그룹/아티스트들의 앨범들이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쳐 더 나은, 풍성한 음질로 팬들을 즐겁게 하고 있는데 왜 유독 비틀즈의 작품들만 CD가 대중화되기도 전인 10여년 전에 발매된 이래 진보가 없는 걸까?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새로운 라이너노트와 여러 사진들을 포함한 만족할만한 부클릿으로 재발매되고 THE BEATLES(WHITE ALBUM)가 발매 30주년 기념으로 오리지널 LP 재킷 모양으로 등장했지만 그 사운드에 기술적인 손질이 가해진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상황에서 'SONGTRACK'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발매되는 앨범이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의 타이틀만을 보면 비틀즈의 중반기 히트곡 모음집 정도로 여겨지지만, 이 앨범이 ANTHOLOGY나 다른 형태의 편집 앨범들과 차별되는 가장 큰 이유는 영화에 사용된 모든 곡들이 포함되었다는 사실 외에, 바로 첨단의 디지털 음향 기술이 동원된 최초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디지털 리마스터링 과정을 거친 CD들과는 달리 이 앨범은 마스터 테이프의 미세한 잡음의 제거와 음량의 조정이라는 기본 작업은 물론 보컬과 연주, 스트링 섹션 등의 트랙을 모두 스테레오로 분리함으로써 어떤 리마스터 앨범들보다 나은 음질을 담고 있다. 예컨대 이 앨범에 수록된 비틀즈의 작품 이상의 완벽한 사운드는 나올 수 없다는 뜻이 된다.


물론 이러한 작업들은 영화의 재개봉을 위한 극장용 프린트와 차세대 영상 매체인 DVD(Digital Video Disc)를 위해 새롭게 손질하고 복원하며 필수적으로 거쳐야 했던 과정이기도 하다.


1969년에 발매된 YELLOW SUBMARINE에는 비틀즈의 곡이 (LP A면에만)이전의 앨범들에 수록되었던 2곡을 포함하여 단 6곡만이 수록되어 있으며 나머지는 그들의 프로듀서인 조지 마틴(George Martin)이 작곡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이루어진 스코어 7곡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는 애초에 레코드사의 상업적인 의도하에 기획된 것이었고,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이 앨범을 비틀즈의 정규 앨범으로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또한사실이다.


Pepperland나 Sea of time과 같은, 조지 마틴의 재능과 역량이 돋보이는 작품들이 인정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여하튼 새로이 발매된 앨범에는 Yellow submarine과 All together now, All you need is love 등 오리지널 앨범에 수록된 6곡을 비롯하여 Eleanor Rigby,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When I'm sixty four, Nowhere man, Love you to 등 RUBBER SOUL('65)과 REVOLVER('66),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67), MAGICAL MYSTERY TOUR('67)에 수록되었던 곡들이 고루 담겨져 있다.


중기 비틀즈를 거론하는 데 빠질 수 없는 15곡을 최상의 음질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비틀즈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일 것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에는 한 가지가 더해진다. 이 앨범의 발매를 필두로 비틀즈의 다른 모든 앨범들의 리마스터링을 기대할 수 있다는 즐거움 말이다.

 

Yellow Submarine       
Hey Bulldog       
Eleanor Rigby       
Love You To       
All Together Now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       
Think For Yourself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       
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       
Baby You´re A Rich Man       
Only A Northern Song       
All You Need Is Love       
When I´m Sixty Four       
Nowhere Man       
It´s All Too Much

Let It Be...Naked | Beatles Album 2004/10/12 16:02
http://blog.naver.com/ajc0101/60006566000
 
'모든 것을 다 이루고 다 해보고 나면 순수로 돌아간다!'는 말이 있듯이 30곡이나 들어간 옴니버스형의 대작 "The Beatles(White Album)"을 내놓은 1968년 말 비틀스는 초기의 밴드시절을 재현하는 풋풋한 성격의 앨범을 만들고자 했다. 게다가 그들은 1966년 8월 이후 전혀 공연을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콘서트 실황과 관련된 생생한 앨범을 원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 기획은 밴드 리허설을 그대로 담아 TV 프로로 방영하고 동시에 사운드트랙 앨범을 선보이는 형식의 병행 프로젝트로 발전되었다.
하지만 트위큰햄 필름 스튜디오에서의 작업은 순탄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여러 곡(이 중에는 훗날 "Abbey Road" 앨범과 멤버들의 솔로 앨범에 수록된 곡들도 있었다)을 낭송하는 수준의 리허설이 진행됐지만 런던의 추운 날씨와 멤버들의 의견차 등 여러 장애요인으로 인해 애초의 의도가 실현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조지 해리슨이 먼저 불만을 제기하며 이 세션에서 이탈했다.
비틀스는 트위큰햄 스튜디오를 떠나 막 완공된 애플 스튜디오 지하로 돌아와 애초 생각한 대로 테이프루핑, 오버더빙, 프로듀싱 기술 등이 전혀 없는 '무가공' 앨범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일체의 포장 없이 라이브 실황과 그 과정을 그대로 담는, 이른바 백 투 베이직(back to basics) 앨범이 목표였다. 그들은 '날 것'(raw thing)을 원했다. 존 레논은 노골적으로 프로듀서 조지 마틴(George Martin)의 배제를 천명했다("이번 앨범의 경우는 당신의 프로덕션, 보이스 더빙, 그리고 어떤 편집도 원하지 않아!"). 방향도 처음 기획했던 TV 프로젝트에서 '피처 필름'으로 돌렸다. 이때까지 그 영화와 앨범의 가제는 'Get Back'이었다.
중도에 키보드 연주자 빌리 프레스턴(Billy Preston)이 게스트 뮤지션으로 가세하면서 세션은 활기를 띠었고 명 엔지니어 글린 존스가 중심에 서서 세션 데모를 제작했다. 와중인 69년 1월, 기획한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이룬, 애플 옥상에서의 라이브 연주가 있었다. 비틀스 멤버들은 옥상에서 라이브로 할 수 없었던 몇몇 곡들, 예를 들면 'Let It Be' 'The Long And Winding Road' 'Across The Universe' 등의 녹음을 해서 일단 앨범 콘텐츠는 거의 완성을 보았다. 영화작업은 그런대로 잘 진행되었다.
글린 존스는 우리가 알고 있는 앨범의 레퍼토리에 'Rocker' 'Save The Last Dance For Me' 'Teddy boy'가 포함된 트랙 리스트의 테이프를 제출했다. 비틀스는 만족하지 않았음은 물론 진행 중인 'Get Back' 작업을 일단 접고 대신 전혀 다른 새 앨범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그것이 "Abbey Road"였다. 따라서 기획시점으로 보면 "Abbey Road"가 비틀스의 마지막 앨범이 된다.
"Abbey Road"가 69년 9월에 발표되고 해를 넘겨 글린 존스는 다시 'Get Back' 앨범을 정리해 비틀스에 제출했지만 이번에도 반응은 시큰둥했다. 70년 3월, 그 앨범을 다시 프로듀스한다는 차원에서 명망 높은 프로듀서 필 스펙터(Phil Spector)가 초청되었다. 공개를 앞둔 영화에 동반된 앨범이 요구되었기 때문이었다.
필 스펙터는 문제의 3곡 'The Long And Winding Road' 'Across The Universe' 'Let It Be'를 오케스트레이션과 코러스 더빙을 통해 웅장한 버전으로 리믹스했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하프, 트럼펫, 트롬본 연주자와 코러스 싱어들이 대거 동원되었다.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는 그 결과에 만족하긴 했지만 그것은 애초 날 것을 만들고자 했던 기획과는 거리가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70년 4월 비틀스의 충격적인 해산소식이 발표되었고 다음달 8일 16개월의 산전수전을 겪은 끝에 사실상 그룹 최후 작품이 된 앨범이 마침내 공개되었다. 앨범 타이틀도 어느덧 'Get back'에서 'Let It Be'로 바뀌었다. 5일 뒤 영화시사회가 뉴욕에서 개최되었지만 뿔뿔이 흩어진 비틀스 멤버는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차트에서는 앨범의 타이틀곡이자 폴이 주도한 곡 'Let It Be'와 비틀스로부터의 독립에 이를 악문 존의 솔로 싱글 'Instant Karma' 간의 인기경쟁이 불을 뿜었다. 70년 5월, 앨범의 두 번째 싱글이자 비틀스의 마지막 싱글이 된 'The Long And Winding Road/ For You Blue'가 발표되었고 그와 함께 비틀스의 이름은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비틀스의 역사적인 "Let It Be" 앨범이 나온 지 32년이 흐른 2002년 2월 폴 매카트니와 당시 영화작업을 지휘한 마이클 린제이 호그(Michael Linsay-Hogg)는 우연히 비행기에 동승하여 둘 모두 결코 잊을 수 없는 "Let It Be"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두 사람은 과거를 회상하면서 엄청난 산고(産苦)를 겪으면서 불가피하게 결과가 변형되었던 그 문제의 앨범을 '원래대로 되돌리자'는데 합의했다. 즉 68년 12월과 69년 1월 비틀스가 꿈꾸었던 '백 투 배이직'의 의도를 회복시키자는 것이었다.
엔지니어 알란 로즈, 폴 힉스, 가이 매세이 세 사람은 애플 스튜디오에 보관된 그 프로젝트의 33개 릴 테이프를 찾아내 18개월 간 원형복구 작업에 매달렸다. 먼저 필 스펙터에 의해 덧입혀진 오케스트레이션, 코러스 그리고 갖가지 효과를 걷어냈고 (그래서 앨범 타이틀이 벗겨낸다는 의미의 'Naked'이다), 그리고 난 뒤 거기에 현대의 디지털 기술을 가했다.
애초 기획의 포인트였던 순수성을 탈환(?)하는 동시에 지금의 음반수요자들도 (옛 것을 듣는다는 수고 없이) 만족스럽게 들을 수 있는 '명징한' 사운드를 위해서였다. 그것은 '과거의 오리지널리티'와 '현대적 음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번 새 앨범은 우리가 알고 있는 "Let It Be" 앨범과는 형식과 질에 있어서 커다란 차이를 보인다. 달라진 것은 다음과 같다.

 

'The Long And Winding Road'는 "Let It Be" 앨범에 수록된 버전과는 전혀 다른 초기 테이크를 담았다. 비틀스가 초기 기획단계에서 원했던 완벽한 '날 것'인 셈이다.


'Let It Be'와 'Across The Universe'는 필 스펙터에 의해 덧입혀진 오케스트레이션과 코러스를 걷어내 오리지널 상태를 구현했다. 


수록곡도 달라 원 앨범의 'Dig It'과 전통 민요를 그들 식으로 처리해낸 곡 'Maggie Mae'를 빼고, 대신 거기에 미국 판 앨범 "Hey Jude"에는 수록했으나 캐피틀 앨범에는 없는 곡 'Don't Let Me Down'를 넣었다. 그러나 이 곡 또한 오리지널과는 다르다.


오리지널 앨범에 수록된 몇몇 곡 앞에 삽입된 리허설 라이브 멘트를 모두 뺐다. 대신 그들 의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 리허설과 '메이킹' 과정은 'Fly On The Wall'이란 제목으로 별도의 23분짜리 CD 한 장으로 엮어 과거의 것보다 훨씬 생생하고 자세하며 그간 알려지지 않은 내용의 단편을 소개하고 있다.


수록곡의 순서도 바뀌었다. 원 앨범은 'Two Of Us'로 시작해서 'Get Back'으로 끝을 맺는다. 그것은 동반된 영화에 나오는 노래들을 순서로 엮은 것이었으나 이번 앨범은 69년 기획 이후 녹음한 순서대로 재편집했다. 당연히 앨범의 포문을 여는 곡은 당시 작업 타이틀이었던 'Get Back'이며 마침표를 찍는 곡은 'Let It Be'이다.

 

이번 앨범은 결코 향수와 복고 정서에 의존한 재발매나 통상적인 리마스트링 앨범이 아니다. 변이가 어쩔 수 없었던 70년 앨범이 남긴 아쉬움의 앙금을 뒤늦게라도 지우고 '기획초기'의 의중을 되찾기 위한 앨범이다. 진정한 "Let It Be" 기획 정신의 회복이다.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는 이를 통해 이미 세상에 없는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을 향해 '그때 우리가 정말로 꿈꾸었던 것'을 바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대중에게 선사하기 이전에 '비틀 동지' 존과 조지 두 사람의 영전 앞에 놓는 늦깎이 선물이라고 할까.
앨범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흩어졌던 네 사람이 비로소 다시 처음 만난 시절로 돌아가 못다 이룬 우정을 완성하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폴 매카트니의 감회. "비틀스의 진정성은 '위대한 작은 밴드'였다는데 있다. 그것이 "Let It Be" 테이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며 또한 중요한 것이다!" 그가 표현하고 있는 '위대한 작은 밴드'란 말할 것도 없이 50년대 말 어린 시절, 오로지 음악으로 즐거웠고 그것에만 매진하며 쌓았던 우정의 결집체를 가리킨다. 친구 둘을 먼저 보낸 그와 링고는 그리하여 이번 앨범에 비틀스 캐리어의 마지막 정리라는 의미도 이입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앨범은 순수하면서 또한 숭고하다.
비틀스 팬들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축복의 선물이다. 비틀스 앨범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비틀스의 최후 실체를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마치 69년 1월의 그들 리허설에 자신도 직접 참여해 참관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해산 후 33년 세월의 벽이 절로 허물어지며 멋진 4인(Fab Four)이 우리 곁에 아직도 있는, 아니 우리한테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살아있는 전설이요, 전설의 용트림이다. 오리지널 음악의 회복이 아니라, 오리지널 비틀스의 재림이다. 비틀스는 결코 죽지 않는다.

 

Get Back

Dig A Pony

For You Blue

The Long And Winding Road

Two Of Us

I've Got A Feeling

One After 909

Don't Let Me Down

I Me Mine

Across The Universe

Let It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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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끼라 2

 

 

 



일본영화 전성기를 대표하는 거장 가운데 하나인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 1910~1998)는 내셔널 시네마의 경계를 넘어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최초의 아시아 감독으로 꼽히는 인물입니다. 그는 일본 내 저널리스트들에 의해 일본영화의 천황(天皇)이라 일컬어졌으며, 지인들과 감독들로부터는 영화의 스승(映畵の先生)이라 불리기도 했던 영화계의 진정한 거인이었습니다. 구로사와의 열렬한 팬 가운데 하나였던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는 구로사와가 전 세계의 영화감독들에게 미친 심원한 영향은 그 누구의 것과도 비교될 수 없다고까지 말한 바 있습니다. 일본의 전통적인 미의식과 예술형식, 서구적인 예술적 교양과 영화문법, 그리고 세계관으로서의 휴머니즘이 조화된 구로사와의 영화들은 실제로 많은 후배 감독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여전히 보는 이들을 강력하게 영화적 스펙터클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이에 서울시네마테크는 구로사와의 대표작 15편을 엄선해 상영함으로써 그의 영화적 세계를 조망할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구로사와 아키라는 1951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라쇼몽>으로 황금사자상을 수상함으로써 일본영화 혹은 동양영화를 세계에 처음으로 널리 알렸고,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와 더불어 1950년대 일본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감독이기도 하다. 4남3녀 중 막내로 태어난 구로사와 아키라는 중학교 졸업 후 화가를 지망하여 18세 때 니카전(二科展)에서 입선하고, 프롤레타리아 미술동맹에 참여하여 전람회에 출품하기도 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중인 1943년 도호(東寶) 영화사에서 <스가타 산시로>로 감독으로서 데뷔하게 된다. 이 영화는 유도시합장면 등 액션영화로서의 재미와 한 미숙한 젊은이가 정신적으로 성장한다는 주제를 동시에 갖추고 있는데, 이 두 가지는 후에 구로사와 영화의 핵심으로 자리 잡는다.

1948년 <주정뱅이 천사>를 통해 황금기의 구로사와 영화에 없어선 안 될 존재인 배우 미후네 도시로를 발굴해 낸 그는, 이윽고 일본중세를 배경으로 한 <라쇼몽>을 발표, 1951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함과 동시에 세계적인 영화작가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그는 <이키루>, <칠인의 사무라이>, <거미집의 성>, <요짐보> 등 세계영화사에 길이 남을 주옥같은 명작들을 발표하여, 오락성과 예술성을 함께 갖춘 구로사와 특유의 영화미학을 완성해 간다.

그러나, 그는 1967년부터 3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준비하고 있던 미국 20세기 폭스사의 작품 <도라! 도라! 도라!>의 촬영 도중 해임 당하고 만다. 이후 그는 <도데스카덴>으로 재기를 시도하지만 흥행에선 실패한다. 그리고 1971년에 구로사와는 자택의 목욕탕에서 자살을 기도하지만 미수로 그치고 만다. 이후 구로사와 작품의 엄청난 제작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일본영화계의 상황에 의해 그는 좀처럼 영화제작에 착수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를 사랑하는 세계영화인들의 도움으로 구로사와 아키라는 다시 메가폰을 잡아 <카게무샤>, <란> 등 거장에 걸맞은 웅장한 시대극을 만들어 다시금 주목을 끌게 된다.

한편 제작비를 마련하지 못해 구로사와를 노심초사하게 만들었던 <꿈>은 조지 루카스, 프란시스 코폴라, 스티븐 스필버그 등의 도움에 힘입어 미국의 워너브러더스가 제작을 맡았고, 1990년 구로사와는 일본 영화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는다. 1991년에는 리처드 기어 주연의 <8월의 광시곡>, 1993년에는 유작이 된 <마다다요>를 발표하는 등 나이를 초월해 정열적으로 활동하던 구로사와 아키라는 1998년 9월 6일 너무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세계 영화인들의 안타까움은 더욱 크지 않을 수 없었다.




01 <스가타 산시로 姿三四郞 Sugata Sanshiro>
1943 / 82min / 일본 / b&w

출연 : 코치 덴지로. 후지타 스스무. 도로로키 유키코.츠키카타 류노스케
강하고 고집 센 젊은이인 산시로는 수련을 위해 도시의 유도도장에 입문한다. 그곳에 묵던 첫날 밤, 그는 유도 사범인 야노가 수련하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의 제자가 되기를 간청한다. 산시로는 유도기술을 익혀가면서 완벽한 기술뿐만 아니라 자연의 법칙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정신 수양도 아울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곧 그는 도장의 늙은 사범으로부터 인정을 받게 되고 그의 딸인 사요의 마음을 얻게 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감독 데뷔작. 자신이 행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을 배워 가는 인물을 다룬다는 점에서 구로사와적인 주인공이 이미 등장한다.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급속한 리듬의 편집, 극적인 앵글과 조명 효과 같은 시각적 테크닉에 이미 구로사와가 꽤 정통해 있음을 알려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02 <주정뱅이 천사 醉いどれ天使 Drunken Angel>
1983 / 98min / 일본 / b&w

출연 : 시무라 다카시. 미후네 도시로. 야마모토 레이사부로. 고구레 미치요
전후의 일본. 한차례의 세력다툼이 있은 후 두목이 된 젊은 야쿠자가 알콜 중독자인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다. 의사는 그 젊은이에게 결핵이라는 진단을 내리고 치료할 것을 권하며 곧 두 사람 사이에는 묘한 우정이 싹트게 된다. 하지만 얼마 후 감옥에서 출소한 이전의 두목이 자신의 자리를 되찾으려 하면서 그 젊은 야쿠자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리얼리즘적인 범죄영화라고 할 수 있는 <주정뱅이 천사>는 구로사와 스스로 자신의 첫 번째 영화라고 부른 작품이다. 그는 “이 영화에서 마침내 나는 내 자신이 되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일본의 평론가들은 당대의 희망과 공포를 완벽하게 요약했다면서 이 영화를 <전화의 저편>이나 <자전거 도둑>에 비유하기도 했다.

03 <들개 野良犬  Stray Dog>
1949 / 122min / 일본 / b&w

출연 : 미후네 도시로. 시무라 다카시. 아와지 게이코. 미요시 에이코
젊은 형사인 무라카미는 버스에서 소매치기를 당해 권총을 잃어버린다. 분노와 수치심으로 가득 찬 그는 미친 듯이 권총을 찾아 헤매지만 찾을 길이 없다. 곧 그는 나이 많고 노련한 동료형사인 사토의 도움을 받아 범인을 찾아 나선다. 줄스 다신의 <네이키드 시티>를 방불케 할 만큼 범죄 수사 과정을 꼼꼼하게 따라가는 형사 스릴러 영화. 구로사와의 초기 걸작이라고 할 이 영화에서 구로사와는 주인공 무라카미의 발걸을 따라가면서 패전 뒤 혼돈 상태에 빠진 일본 사회를 관찰하는가 하면 선악의 판단에 대한 도덕적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04 <이키루 生きる Living>
1952 / 143min / 일본 / b&w

출연 : 시무라 다카시. 히모리 시니치. 다나카 하루오. 치아키 미노루
공무원인 와타나베 칸지는 어느 날 자신이 간암에 걸렸으며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그는 대단히 규칙적인 삶을 살아왔고 한번도 원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에게는 두 명의 자식이 있지만 그들은 이미 그에게서 한참 멀어져 있다. 남겨진 시간은 길어야 1년. 무엇을 할 것인가? 지금까지의 삶에 회의를 느낀 그는 자신의 삶이 가치 있었다는 증거가 될 만한 뭔가를 하기로 결심하게 되며 결국 와타나베는 버려진 땅을 공원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실존적 휴머니즘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 죽음을 앞둔 사람이 느끼는 절망감과 더불어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의 숭고함을 빼어나게 묘사하고 있는 이 영화는 구로사와가 만든 영화들 가운데 가장 감동적인 작품으로 꼽을만하다. 와타나베가 죽기 전의 이야기를 다룬 전반부와 그의 장례식을 다룬 후반부 사이의 구성적 조응 관계도 눈여겨볼 만하다.

05 <7인의 사무라이 七人の侍 The Seven Samurai>
1954 / 207min / 일본 / b&w

출연 : 시무라 다카시. 미후네 도시로. 아나바 요시오. 이야구치 세이지
명실상부한 구로사와의 최고 걸작으로, 영화란 움직임으로 구성되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작품. 해마다 산적들에게 곡식을 빼앗겨온 산촌 주민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산적과 싸워줄 사무라이를 찾아 나선다. 마침내 집결한 일곱 명의 사무라이들은 산적들과 맞서기 위해 치밀한 전투 준비에 돌입한다. 존 스터지스의 <황야의 7인>을 비롯하여 수많은 리메이크작을 양산한 이 영화는 구로사와가 헐리우드에 끼친 절대적 영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례이기도 하다. 특히 빗속에서 펼쳐지는 마지막 결투 시퀀스는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꼽힌다.

06 <거미집의 성 蜘蛛巢城 The Throne of Blood>
1957 / 110min / 일본 / b&w

출연 : 미후네 도시로. 야마다 이스주. 시무라 다카시. 구보 아키라
구로사와가 전성기 시절에 내놓은 또 하나의 걸작으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원작으로 한 장중한 서사에 구로사와의 뛰어난 연출력이 유감 없이 발휘된 작품. 전쟁에서 이기고 성으로 돌아가던 와시즈는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마녀를 만난다. 마녀로부터 새 영주가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들은 와시즈는 갈등에 휩싸이다 결국 영주를 죽이고 권력을 차지한다. 『맥베스』와 일본 전통 연극양식인 노(能)의 절묘한 융합이 빛나는 이 영화는 모름지기 영화 역사상 셰익스피어를 각색한 최고의 영화들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07 <숨은 요새의 세 악인 隱し砦の三惡人 The Hidden Fortress>
1958 / 139min / 일본 / b&w

출연 : 미후네 도시로. 우에하라 미사. 치아키 미노루. 후지와라 카마타리
전쟁포로에서 탈출한 두 농부가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우연히 황금을 발견한다. 그 황금은 비밀 요새에 은신중인 유키 공주와 마카베 장군이 왕국의 재건을 위해 숨겨둔 것. 이제 유키 공주와 마카베 장군은 두 농부와 함께 황금을 짊어진 채 적진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대장정에 나선다. 구로사와 특유의 호쾌한 액션과 유머 감각이 빛나는 작품으로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영화 감독으로서 구로사와의 탁월한 능력을 확인시켜주는 영화. 조지 루카스의 <스타워즈>의 모태가 된 것으로도 특히 유명하다.

08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惡ぃ奴ほどよく眠る The Bad sleep well>
1960 / 151min / 일본 / b&w

출연 : 미후네 도시로. 모리 마사유키. 가가와 쿄코. 미하시 다츠야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구로사와의 비판이 가장 강력하게 표출된 영화 중 하나. 대기업 회장의 딸과 회장 비서의 성대한 결혼식장에 의문의 케이크가 배달된다. 그 케이크는 몇 년전 그 기업의 뇌물 스캔들을 잠재우기 위해 강제적으로 투신자살했던 어느 간부의 아들, 바로 그 결혼식의 신랑이 복수의 서막을 알리기 위해 보낸 것. 절대 권력의 제도와 투쟁하는 한 개인의 고독한 면모를 그린 이 영화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은 영웅의 비극적 최후를 장엄하게 고하고 있다.

09 <요짐보 用心棒 Yojimbo>
1961 / 110min / 일본 / b&w

출연 : 미후네 도시로. 나카다이 다츠야. 츠가사 요코. 야마다 이스주
때는 도쿠가와 막부의 힘이 쇠해가던 1860년대. 딱히 충성을 바칠 데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자기가 가진 지혜와 칼로 생존해 가는 한 사무라이가 어느 작은 마을에 당도한다. 그는 이 마을이 두 대립적인 집단 사이의 싸움으로 얼룩진 황폐한 무법의 장소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무라이로서 자신의 대단한 칼 솜씨를 과시한 그는 서로 자신을 호위병으로 채용하려는 두 집단을 교묘하게 오가며 이들을 물리칠 기회를 엿본다. 외양은 사무라이가 등장하는 시대극 영화이지만 그 너머로는 하드 보일드 영웅이 주인공인 웨스턴의 세계가 배경이라는 점이 드러나기에 흥미로운 영화다. 후에 셀지오 레오네의 스파게티 웨스턴 <황양의 무법자>로 ‘도용’되기도 했다.

10 <쓰바키 산주로 椿三十郞 Tsubaki Sanjuro>
1962 / 96min / 일본 / b&w

출연 : 미후네 도시로. 나카다이 나츠야. 고바야시 게이주. 가야마 유조
늦은 밤 일군의 젊은이들이 외딴 집에 모여 그들의 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부패를 일소하기로 결의한다. 하지만 곧 그들은 그곳에 또 한 명의 낯선 사람이 자신들의 얘기를 엿듣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는 산주로라는 이름의 떠돌이 사무라이로 그 젊은이들이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다며 비웃는다. 그리고는 이 슬기롭지는 않지만 정의로운 젊은이들과 뜻을 같이 하기로 한다. <요짐보>의 자매편과도 같은 영화로 스피디한 스토리 전개와 넘치는 활력, 직설적인 유머가 돋보이는 일급 엔터테인먼트 영화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산주로와 그 라이벌인 무로토 사이의, 정적과 순간적 액션이 교차하는 마지막 대결 장면은 여전히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11 <천국과 지옥 天國と地獄 High and Low>
1963 / 143min / 일본 / b&w

출연 : 미후네 도시로. 나카다이 다츠야. 가가와 교코. 미하시 다츠야
신발제조회사의 중역인 곤도는 회사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회사에 투자한 상태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아들이 납치됐으며 범인이 엄청난 몸값을 요구하고 있다는 통보를 받고 회사냐 아들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하지만 곧 납치된 것은 그의 아들이 아니라 그의 운전사의 아들이란 사실이 밝혀지면서 곤도는 또 다른 고민에 빠지게 된다. 구로사와가 현대극 스릴러에서도 대단한 연출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한 걸작. 전반부는 도덕적 갈등에 대한 폐쇄공간의 드라마이고 후반부는 유괴범을 체포하려는 경찰의 노력을 담은 경찰 스릴러인데, 이 어느 정도 구별되는 두 부분 모두에서 구로사와는 출주한 테크닉을 구사해낸다.

12 <붉은 수염 赤ひげ Red Beard>
1965 / 185min / 일본 / b&w

출연 : 미후네 도시로. 가야마 유조. 야마자키 츠토무. 단 레이코
의학공부를 막 마친 야스모토는 한 시골 마을의 공공 진료소에 수련의로 가게 된다. 야스모토는 매우 교만한 젊은이로 귀족들을 상대하는 내과의가 되고자 한다. 하지만 그 전에 그는 니이데가 소장으로 있는 진료소에서 3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을 의무적으로 보내야 한다. 처음에는 이타심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가 없고 자만심으로 가득차 있던 야스모토는 ‘붉은 수염’으로 불리는 진정한 의료인 니이데의 가치에 점차 동화해가면서 의사다운 의사로, 그리고 인간다운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액션에 기초하지 않은 교훈적인 시대극 영화로 구로사와는 여기서 공공의 이익에의 전념과 이기심이란 가치를 대비하면서 적대적인 사회적 환경에 처했을 때 인간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묻는다.

13 <란 亂 Ran>
1985 / 160min / 일본 / b&w

출연 : 나카다이 다츠야. 테라오 아키라. 네즈 진파치. 류 다이스케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일본 시대극으로 옮긴 작품. 한 늙은 영주가 세 아들에게 영토를 나눠주기로 결심한다. 큰 아들과 둘째 아들은 그 얘기를 듣고 매우 기뻐하지만 막내는 그의 형들이 서로 싸우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70대의 구로사와가 만든 <란>은 그 스스로 자신의 남아 있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고 말한 그런 영화이다. 여기서 구로사와는 우선 스크린 위에 장대한 비주얼을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들였고 그 결과 표현주의적 작품에 가깝다고 할 만큼 시각적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영화를 만들어냈다. 다른 한편으로 <란>은 하늘에서 인간의 어리석음과 그 조건을 내려다보려는 야심찬 시도를 행한 영화로도 유명하다.

14 <꿈 夢 Dreams>
1990 / 119min / 일본 / b&w  

출연 : 테라오 아키라. 바이쇼 미츠코. 네기시 도시에. 마틴 스콜세지
구로사와가 꾸었다고 하는 꿈들을 그린 영화. 총 여덟 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거의 형식적인 제의를 벌이고 있다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양식미에 집착하고 있는 아름다운 영화로, 그런 만큼 스크린에 눈과 귀를 집중하는 이들을 만족시킨다고 할만하다.  
여우비 한 소년이 맑은 날에 비가 오면 밖에 나가지 말라는 얘기를 듣는다. 그런 날은 여우들이 결혼을 하기 때문에 그 행렬을 보는 사람은 나쁜 일을 당하기 때문이다/ 복숭아 과수원 한 소년이 무심한 사람들에게 의해 베어진 복숭아나무의 신령들을 만난다/ 눈보라 일단의 등산객들이 신령들의 도움으로 눈보라에서 구조된다/ 터널 한 남자가 자신이 죽인 군인들의 유령과 마주친다/ 까마귀 한 미술전공 학생이 빈센트 반 고호를 만나서 그의 그림 세계로 들어간다.

15 <마다다요 まあだだよ Madadayo>
1993 / 134min / 일본 / b&w

출연 : 마츠무라 다츠오. 카가와 교코. 이가와 히사시. 도코로 조지
구로사와가 83세의 나이에 완성한 그의 마지막 작품. 우치다 햣켄(1889-1971)이란 작가에 대한 이 영화는 그가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교직을 떠나던 1943년 봄부터 그의 70세 생일이 있던 1962년에 이르기까지 20년에 걸친 주인공의 삶의 궤적을 따라간다. 그렇듯 영화는 구로사와의 많은 다른 영화들과는 달리 역동적인 내러티브 구조를 축조하기보다는 햣켄의 일상적인 삶을 묘사하는 에세이처럼 만들어져있다. 그런 식의 이야기 안에 구로사와는 죽음에 굴복하지 않는 우아한 인간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담아냈다.

레티온(retiion)

음악과 영화로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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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의 기원 Kurosawa Akira?

일본 놈들 짜증나는거야 그거대로 짜증나는거고(이전 고이즈미 글에게 밝혔듯이 일본 항구적 국민성이 아니라 역사적 상황 맥락이다. 일본놈들은 비굴하고 잔인해 이 말과 조선놈들은 단결이 안돼 이 말을 나는 동전의 양면이라 생각한다) 예술은 영원한거다. 예술에는 국경 엄따. 예술에는 민족 읎다. 인류 모두의 유산이다.

 

구로사와 아끼라... 일본 영화의 신! 위대한 인물이다. 아시아 최초로 상받았다는 라쇼몽! 아마도 내가 본 가장 긴장감 뛰어난 영화이리라. 누가 리메이크를 하고 구로사와 감독이 환생을 해도 과연 그 긴장감, 엄청난 심리 묘사를 다시 재현할 수 있을까?

 

7인의 사무라이... 재미는 있는데 너무 헐리우드 영화같았다. 기모노 입혀놓고 그렇게 찍었다는 것은 놀라운 점이다. 스타워즈 무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다만 에피소드 1의 리암니슨은 이 영화를 수백번도 더 봤단다(얼마전 본 영화 중에 황산벌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최고의 활국 전쟁영화였었다. 코리아 영화여! 영/원/하/라).

 

숨겨진 요새의 세 악인도 좋은 영화다. 당찬 공주 레이야외 옆에서 보좌하는 세 악인 제다이, C3PO, R2D2 캐릭터가 루카스 스타워즈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되었다는데 세 사람이 그리 악인도 아닐 뿐더러 직접 관련 함수 매치가 되는지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감독의 최고 영화를 '살다'로 치겠다. 말기 암 죽음을 앞둔 공무원... 인간 실존에 대해 다룰 뿐만 아니라 고질적인 복지부동의 일본 사회도 터치하는 등 두마리 토끼를 다 완벽하게 아우르고 있다.

 

요짐보나 주정뱅이 천사는 별로 재밌는 것 모르겠다. 지금도 집에 못보고 놔둔 영화가 많이 있다. 정말 보고 싶은 것은 유괴범 이야기로 60년대 일본의 고도경제 성장 속에서 생겨난 첨예한 계급 대립과 인간성 말살을 담아낸 [천국과 지옥]이다. 집에 영상은 있는데 자막이 없다. 누가 자막 좀 보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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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rosawa Akira


 1910년 3월 23일 동경 시나가와에서 태어났다. 도수샤 서양화반에서 그림을 배웠고, 1020년에는 이과전 (二科展)에 입선하였으며, 일본 프롤레타리아 미술동맹에 가입했다. 영화변사로 일하던 형의 영향을 많이 받아 어린시절부터 영화를 보며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등 러시아 문학에 심취했고, 문학, 미술,영화,정치,철학등을 공부했다.


PCL사(이후 토부 영화사와 합병)의 조감독 모집에 응모해 입사한다.


1942년까지 시나리오에 전념하며 야마모토 카지로 감독을 비롯해 여러 작품의 조감독으로 일했다. 구로사와의 데뷰작은 <스카타 산지로>. 2차대전 중 군국주의 정부의 엄격한 관할 아래, 메이지 유신때를 배경으로 젊은 청년 스가타 산지로가 유도에 입문하여 고수가 되어가면서 유도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어른이 되어가는 이야기를 각색 , 연출하여 흥행에 성공을 거두고 일약 유명해졋다. 그러나 이 작품의 성공으로 만들어진 속편은 구로사와에게 다시는 속편을 만들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게 할 정도로 실패하였다.

 

 미 군정기에 들어서 구로사와는 193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운동권 학생과 그를 사랑하는 한 강인한 여학생을 주인공으로 한 서구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주의에 빠지는 <나의 청춘에 후회는 없다>를 만들었다. 한공장 노동자와 그의 약혼녀의 어느 일요일 데이트를 통해 전후 일본인의 황폐함과 고통속에서도 힘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 <멋진 일용일>. 구로사와 최초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계열의 <주정뱅이 천사>. 형사를 주인공으로 한 비슷한 계열의 영화 <들개>. 옐로우 저널리즘을 비판한<추문>등이 구로사와가 <라쇼몽>을 만들기 전에 만들었던 10편의 작품들 중에 속한다.  구로사와의 폐르소나로 불리우는 도시로 미후네는<주정뱅이 천사>부터 60년대 중반까지 거의 모든 구로사와 영화에 출연한다.

 


무성영화의 영상적 전통과 소비에트 영화의 다이나미즘,헐리우드 영화의 황금기를 교묘하게 합쳐놓은 스타일 위에 영웅에 대한 이상주의를 담아내는 구로사와의 영화들은 50년대 초에 절정을 이룬다. 한 무사의 죽음을 놓고 아내와 무당과 나무꾼과 도적이 서로 다른 진실을 주장하는 혼란스런 이야기를 통해 도덕적 가치와 진실, 주관적 진실과 리얼리티에 대해 질문을 던진 <라쇼몽>은 구로사와에게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안겨주었고,서방세계에 일본영화가 최초로 얻어낸 국제영화계에서의 그랑프리였다.


죽음을 앞둔 한 공무원의 죽기 저의 모습과 그가 죽은 후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이 그를회상하며 나누는 태화를 통해 근대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을 담은 <산다>,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16세기를 배경으로 마을을 산적들로부터 지키기 위해 고용된 일곱명의 무사들의 이야기 <7인의 사무라이>가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특히 <7인의 사무라이>는 일본에서 일본영화사상 베스트 10앙케이트에서 지난 20년 내내 베스트 원의 영화로 추천되고 있다. 이 영화는 존 스터지스에 의해 <황야의 7 형제>로 웨스턴으로 각색되어 다시 리메이크 되기도 했다. 50년대 후반의 작품들로는 세익스피어의 [맥베드]를 각색해 일본 노 드라마적인 무대와 연기 형식을 빌어 영화화한 [거미집의 성],막심 고리키의 희곡을 각색한 [밑바닥],구로사와의 첫 와이드 스크린 영화이자 루카스에 의해 [스타워즈]의 인물구성에 모델로 삼아진 <숨은요새의 세 악인> 등이 있다.

구로사와는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와 함께 50년대 일본영화의 황금기를 이루었다.


60년대를 시작하는 <악인이 더 편히 잔다>는 59년에 설립된 구로사와 프로덕션의 첫번째 작품으로,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밝혀내고 복수하려는 아들을 주인공으로 미스테리 형식을 택해 만든 영화이다.


사무라이 활극영화<요짐보>는 전세계적으로 성공하였으며, 셀지오 레오네는 이 영화를 무단 각색하여 < 황야의 무법자>를 마들어 스파게티 웨스턴 붐을 일으켰으며, 그후 96년 월터 힐은 하드 보일드 영화 [라스트맨 스탠딩]으로 각색하였다.


[쓰바키 산주로]는 구로사와식의 엔터테인먼트 활극영화이다.


60년댜 ㄱ로사와 영화의 정점을 보여주는 두편의 영화는 [천국과 지옥]과 [붉은수염]이다. 유괴범 이야기로 60년대 일본의 고도경제 성장 속에서 생겨난 첨예한 계급의ㅜ대립과 인간성 말살을 담아낸 [천국과 지옥], 그리고 서양의 의술을 배운 젊은 의사가 시골마을의 전통 의술을 사용하는 명의를 만나면서 휴머니즘과 일본 근대화의 문제를 동시에 제시하는 3시간에 걸친 [붉은 수염]이 구로사와 프로덕션에서 만들어진 영화들이다.


그러나 67년부터 폭스사와 진행했던 2차대전 당시 일본의 미국 진주만 습격을 소재로 한 [도라 도라 도라]의 기획이 무산되면서 구로사와의 슬럼프가 시작된다. 구로사와는 자신의첫 칼라 영화이며 빈민가 사람들을 그린 <도데스 카덴>의 흥행 실패와 구로사와 프로덕션의 운영문제 등이 겹쳐 71년에는 급기야 자살을 시도한다. 그후 구로사와는 주로 외국 자본으로 영화를 제작하게 되었다. 5년만에 소련의 지원으로 만든 [데르수 우잘라]는 소련에서 로케하여 만든 구로사와의 첫번째 70미리 영화이다.

 

그후 다시 제작비 문제로 침묵에 들어간 구로사와를 다시 은둔으로부터 불러낸 것으 스스로 '영화의 제자'를 자처하는 스필버그와 코폴라, 루카스였다. . 그들의 주선으로 20새기 폭스의 자본을 받아<카게무샤>를 만들었다. 장대한 스펙터클  시대극 <카게무샤>에서는 영주와 닮은 도둑이 영주가 전쟁 중에 죽자, 그 대역을 하는 과정을 통해 정체성의 문제가 그려진다. 흥행기록을 갱신하였으며, 깐느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한 <카게무샤>의 상업적 비평적 성공으로 노년의 구로사와에게는 다시 한번 영화 인생을 꽃피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을 16세기 내란 시기를 배경으로 각색하여 70미리 화면 위에 현란한 색으로 담아낸 <난>을 만들고 난 구로사와는 90년에 어린 시절의 꿈을 8개의 에피소드에 담은 비주얼 에세이 <꿈>을 소니 사의 지원으로 하이테크 비젼으로 작업하면서 첨단 미학과 테크놀로지를 실험했다. 20년 만에 다시 일본의 자본으로 만든 <8월의 광시곡>에서 일본인의 시각으로 원폭 투하의 악몽을 그린 그는 이어 일본의 유명한 수필가 우치다 하켄의 삶을 영화화한 <마마다요>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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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통절한 반성과 사과'? (yna.co.kr 펌 & 수정)

일본 놈들은 지들이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배운 적이 없으니 알 수가 없다.

 

자본주의의 최고 발현 형태 제국주의 군국주의 나쁜거야 세상이 다 아는 일이고

문제는 이에 대해 제대로 단죄했어야 하는데 그냥 넘어간 것이다. 그 책임은 미국이다. 더 정확히는 맥아더이다.

 

맥아더가 소련 남하 대공기지 만든다고 일본의 전범/한국의 친일파 모조리 반공으로 옷갈아 입히고 다 살려 놓았다. 독일의 전후 처리 뉘른베르크 재판도 사실 역시 부실하다. 성노예 피해는 재판 대상이 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도쿄 재판이 독일 수준 정도만 했더라도 지금처럼 전범 후예들이 설래바리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도쿄 재판에서 도죠 히데끼 수상이 다 독박썼으며 처벌받은 놈도 몇명 안된다(예컨대 731 마루타 부대장 이시히 시로는 연구 기록 전부 미국에 넘기고 미국에서 말년 아주 편하게 살았다).

 

진짜 목을 쳐야 했던 것은 일왕이었는데 하늘에서 인간 수준으로 격하되는 상징적 정도에서 봉합되었다. 맥아더가 상징적으로 일왕의 목을 쳤어야 했다는 당시 역사의 가정은 지금도 아쉬운 부분이다. 좌우간 그러고 넘어가니 지들이 잘나서 넘어간줄 아는 것이다. 여전히 설래바리다. 이후 한국 전쟁등을 거치면서 일본 재건의 정신은 군국주의였다. 회사를 내몸처럼... 나 개인보다 사회를, 국가를...

 

이런 부정의가 세상에 없다. 다행히 일본은 세대가 바뀌고 나니 그런 성장 동력을 잃었다. 일본의 젊은 세대는 왜 일해야 하는지 모른다. 결코 선진국이 아닌 경제대국/소비왕국에서 소비하기 위해 열심히 원조교제해댄다. 내 장담하건대 일본의 10년 불황은 앞으로 10년 더 갈꺼다. 고이즈미의 삽질은 세대 단절적이다. 그리고 그 자체가 cosmopolitan 인류사적 보편성이 없으니 애새끼들 더 이상 동원?이 안되는거다.

 

일본이 자유당-민주당 보수대연합으로 아무 활력없는 잿빛 사회로 그렇게 사그러져갈 때 우리 코리아는 엄청난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민자당 보수?대연합을 극복해냈다. 앞으로 향후 10년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맥아더 군사체제 하에서 일본과 한국의 행태는 동전의 양면이다. 일본의 과거사 청산은 한국의 과거사 청산과 동전의 양면이며 둘은 병행해 같이 가야한다. 일본 교과서만 문제삼고 코리아는 자학사관 그냥 넘어가자는 조중동 플레이 보면 돌아버릴 것 같다(자학사관이라는 일본 어휘를 그대로 쓰는 것 부터 문제다. 본질이 같으니 그렇게 쓰겠지만).

 

다행히 한국에서는 과거사 청산 목소리가 나온다. 일본은 그게 없다. 거세된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이 망고 땡인 것은 아니다. 역시 문제는 열우당이다. 이 새끼들이 입법 의지가 과연 있는지 맨날 박끄네 탓이나 하면서 오늘까지 왔다. 다음 대선 전까지는 해결을 쫑보겠지만 열우당 또한 이 문제를 정쟁화시키는 것은 마찬가지다. 휴~~

 

그건 그렇고 최근 일본이 평화헌법 9조를 고쳐서 군국주의 무장화를 시도하려 한다. 사실 이는 플리바게닝이었다. 일왕의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에 지금 평화헌법을 받은 것이다. 그럼 이새끼들이 헌법을 개헌하겠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당근 일왕의 목을 이제라도 받아야 한다. 일본 놈들아, 빨리 개헌해라. 그럼 우리는 너네 왕의 목을 취하겠다. 그런 방향으로 공론화 되리라 믿는다.

 

 

 

 

고이즈미, '통절한 반성과 사과' 표명(종합)

亞ㆍ阿 정상회담 연설..무라야마 담화 인용


    (도쿄=연합뉴스) 신지홍 특파원 =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22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개막된 아시아ㆍ아프리카 정상회의 연설에서 과거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지배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사과'를 표명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날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의 심정'을 표명했던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의 담화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제국주의 침략의 과거사를 사과했다.

    일본 총리가 해외에서 과거사에 '반성'을 표명한 것은 지난 1991년 5월  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 전 총리가 싱가포르 방문시 일제침략에 대해 포괄적인 유감을  밝힌 이래 처음이다.

    교도통신은 2차대전 종전(패전) 60년을 맞아 발표된 이날 고이즈미 총리의 연설은 향후 일본의 대(對) 아시아ㆍ아프리카 외교의 지침이 될 것이라며, 특히 '사과와 반성'을 밝힌 것은 중국과 한국에서 고조된 '대일(對日)비판'을 누그러뜨리고  중ㆍ일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전략에서라고 지적했다.

    연설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에 의한 식민지지배와 침략으로  많은  국가들, 특히 아시아인들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며 "경제대국은 돼도 군사대국은 되지않는, 모든 문제를 무력에 의하지않고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겠다"고 말했다.

    또 일본 정부가 1955년 아시아ㆍ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밝혔던 입장을 상기시키며 "평화국가로서 국가발전에 노력하는 결의를 표명했으며 그런 방침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다"고 말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아시아ㆍ아프리가 역내 국가와 협력강화를 목표로  정부개발원조(ODA)를 적극 지원하겠다면서 "국민총소득(GNI) 대비 0.7%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지속 노력하겠으며 역내 방재ㆍ재해 대책에도 앞으로 5년간 25억 달러 이상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특히 아프리카용 ODA의 경우 무상협력자금을 중심으로 향후 3년간 2배로 늘리는 한편 아시아의 젊은이를 아프리카에 파견하는 '아시아청년 해외협력대'의 설립을 제안했다.

    고이즈미 총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야심과 관련 "오늘날 현실을 반영한 조직으로 개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오는 9월까지 개혁안 결정에 협력한다"며 적극 나설 방침을 분명히했고, 중동평화 추진을 명목으로 한 팔레스타인 지원활동에도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고이즈미 총리는 당초 이날 연설에서 아시아ㆍ아프리카에 대한 지원약속을 전면에 내걸 예정이었으나 한국과 중국의 반일감정이 크게  악화됨에 따라 과거사 인식에 역점을 두는 것으로 바꿨다고 전했다.

    한편 일본의 민간국제 교류단체 '피스보트(Peace Boat)' 회원  100여명은  이날 도쿄에서 집회를 열어 "중국의 반일시위는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정부의 책임"이라며 정부 대처를 비판한 뒤 '교과서의 검정합격 철회' 등 구호를 외치며  2㎞가량 거리시위를 벌였다.

    http://blog.yonhapnews.co.kr/shin17
    shin@yna.co.kr
(끝)
2005/04/22 16:19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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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재산권의 날에 부쳐(수정)

나는 웬만하면 CD, DVD 다 산다. 물론 다운받는 것도 있다ㅠ.ㅠ 그러나 가급적이면 구매하려 한다.

 

솔직히 다운 받아도 법적으로 문제는 안된다. 예컨대 누군가 DVD를 샀다고 치자. 그 산 사람도 내용에 대한 소유권 있다. 이 DVD를 리핑한다. 산사람 자유다. 이를 Kazaa같은 공유 프로그램을 통해 아는 지인에게 보여주려 했다. 이 정도도 사회상규를 벗어나지 않아 오케이다. unauthorized 불법 카피 사용이 아니란 말이다. 문제는 이를 불특정 다수가 공유할 수 있는 상태로 해놨을 때부터이다. 미필적 고의의 고의범이 문제가 되고 과실 여부도 문제가 된다.

 

미 연방 대법원에서는 고의 과실 따지지 않고 뉴텔라 Kazaa 같은 순수 p2p에 대해서는 면책해 주었다. 그러나 napster같이 중앙 서버에 기록 리스트 남는 p2p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다(숀패닝 ㅠ.ㅠ). 냅스터보다 훨씬 진일보한 우리의 소리바다 프로그램도 그래서 우리 검찰이 불기소하지 않았던가!(물론 우리 법률 및 법관이 꼭 미국을 따라야 할 필요,의무는 없다). 좌우간 그래서리 나는 공유 다운 받아도 죄의식이 없다. 문제는 이것이 문화상품이라는데 있다.

 

대중문화든 고상한 문화든 문화유산은 어떻게든 존중받아야 한다. 아티스트 창작에 대해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억지로 돈주고 사는 이유다. 법적인 이유가 아니라 도덕적인 이유다. 우리 공정거래법에서도 문화 상품의 특수성, 아티스트의 창작력을 인정하여 최저 가격제가 인정된다.

 

나는 주위에서 자기 소유권에 대해서는 침범하면 막 지랄하면서 다른 사람 창작에 대해  아무 죄책감없이 침범하고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인간들 보면 참 슬프다. 일단 이런 인간들은 유체물 소유권 침범에 대해 빵한쪼각이라도 훔쳐도 촟대 하나라도 훔쳐도 한 20년 빵에 가서 썪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간들이다. 정말 레 미져러블하다. 아직도 18세기 소유권 절대 시대를 생각하면서 산다. 그러나 소유권은 기본권 형성적 법률 유보다. 소유권은 천부인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된다.

 

이런 인간들처럼 나도 불일치는 있다. 나는 법적 의무없다고 생각하는데 일부러 발품을 판다. 이런 인간들은 법적 의무 있다고 생각하면서 무임승차한다. 이 양아들을 어떻할꼬?! 인간 개조 앞으로 10년 본다. 초딩 학교에서 잘 가르쳐야 하는데...

 

ps 중간에 뿌까 옆에서 찍은 딸네미 너무 이뿌다

 

 

 

'미안하다 엉망이다'...지적재산권의 날
[아이뉴스24 2005-04-24 11:56]

<아이뉴스24>

문화부가 야심차게 준비했던 지적재산권의 날 행사는 아쉬움 이상 실망감을 남기고 마무리됐다.

지난해까지 회의실에서 감사패를 주고 받는 정도의 소규모 기념식을 치렀던 문화부.

문화부측은 "올해는 시민들 특히 청소년들이 저작권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장을 마련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지만, 행사에 참석한 청소년들은 이 날 행사를 스타들의 공연을 보기위한 자리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듯 했다.

23일 오전 10시 부스 설치를 시작으로 진행된 지적재산권의 날 행사 풍경을 시간별로 정리해본다.

◆ 오전 11시, 정크아트보고 '멋지다' 저작권의미 설명 부족

부스가 설치되고 1시간 쯤 지난 시각, 날씨 좋은 토요일 시청 앞 광장을 찾은 시민들이 하나 둘 눈에 띄었다.

시민들의 눈길을 먼저 사로잡은 것은 불법복제물로 만든 정크아트 조형물 '생각하는 사람'. 760409, 780311, 781229이라는 이름으로 나란히 자리잡은 작품의 설치목적은 익히 아는 예술작품을 '불법 복제'해 이래선 안된다는 점을 알리는 데 있었다.

그러나 작품 앞에는 설치물의 의의를 설명해주는 관계자도, 작품 제작의도를 설명한 안내문 하나도 없었다. 주최측이 준비한 작품 설명은 고작 가로 세로 30cm정도의 팻말 하나.

'멋진 사진 배경'이었던 조형물에 맘을 뺏긴 시민들의 시선을 붙들기에 팻말은 너무 미약한 존재였다.

그나마 희석된 행사의 의의를 찾을 수 있었던 곳은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 설치한 국내 창작 캐릭터, 애니메이션 전시 부스.

부스에는 마시마로, 마린블루스, 둘리, 뿌까 등 국내 창작애니메이션 주인공들과 게임 메이플스토리, 포트리스 등의 캐릭터가 전시돼 인기를 끌었다.


엄마손잡고 부스를 둘러보던 어린이들은 "우와 뽀롱뽀롱 뽀로로!"다 "뿌까다!" 탄성을 질렀다. 부스 밖에 전시된 캐릭터도 인기만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캐릭터를 끌어안고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두 아이와 함께 행사장을 찾은 주부 홍은영(32)씨는 "애들이 EBS에서 방송되는 뽀로로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몰라요. 저게 우리나라에서 만든거라면서요? 놀이방 보내면 하루에 한 편씩은 꼭 만화를 보는데, 내용도 건전하고 우리꺼라 저도 보라고 권해요"라며 흐뭇해했다.

그는 "투니버스 채널 등에서는 성인들이 봐야 할 것 같은 일본 만화가 많이 소개되는데 '하얀마음 백구'나 '뽀로로'처럼 감정도 순화시켜주고 친숙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국산 애니메이션을 좀 더 여러 채널에서 자주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이 곳에도 남겨지는 아쉬움은 있었다.

진흥원이 준비한 전시장 내에서는 PDP를 통해 국내 창작 애니메이션을 계속 보여주었지만, 화면도 작고 관객들이 앉아서 시청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긴 사랑'을 받는데는 실패했다.

의자 몇개를 놔두고 따가운 햋빛을 피해 국산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는 '작은 시사회'를 겸했다면 어땠을까. 문화강국 프랑스의 안방까지 침투한 국내 캐릭터들의 활약상을 소개해주는 적극적인 홍보 작업도 아쉬웠다.

진흥원 부스 옆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이 준비한 게임 전시 공간에도 청소년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부스내에서 소규모로 진행된 게임대회도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X-BOX 콘솔 게임을 할 수 있도록 준비된 전시장 내에선 '한국판', '일본판' 이라는 내장 게임CD의 종류만 안내됐을 뿐 저작권 침해의 심각성을 알리는 적극적인 작업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불법게임을 근절해야 한다는 리플렛이 쌓여있었지만, 아이들은 게임에 빠져 눈길한 번 주지 않는 듯 했다.

◆ 오후2시, 관객보다 스탭이 더 많았던 게임대회시청 청사를 중심으로 진흥원과 게임산업개발원의 부스 정 반대에 설치된 '킹덤 온더 파이어(KUF, 커프)' 콘솔게임 무대에는 적막이 감돌았다.


이날 게임대회에는 지난해 온게임넷 커프-TC리그 우승자 조재혁 선수와 준우승자 안정인 선수, 전 헤일로 국가대표 최윤호 선수 등 꽤 이름난 선수들이 여럿 참가해 토너먼트 형식으로 진행됐지만, 관객들의 마음을 얻는데는 실패했다.

가장 큰 패인은 넓은 광장 이 쪽과 저 쪽으로 나뉘어 행사가 진행됐다는 점.

지적재산권의 날 행사 자체의 홍보가 잘 되지 않은 데다 그나마 광장을 찾은 시민들이 반대편 부스에서 사진찍고 게임하는 데 정신을 쏟는 바람에 본 행사의 큰 줄기 중 하나였던 게임대회는 '썰렁이'로 전락해 버렸다.

게임 대회를 준비한 관계자는 "행사 일정이 너무 촉박하게 잡혔고, 당초 카트라이더 게임을 준비하려다 얘기가 잘 되지 않아 게임 종목을 바꾼 점 등이 악재였다"고 말했다. 한창 뜨고 있는 카트라이더 게임을 준비하려고 했지만 예산, 일정, 인터넷 시설 설비 등 모든게 여의치 않았던 듯.

결국 촉박한 일정에 맞춰 준비된 게임대회는 '그들만의 잔치'가 돼버린 셈이다.

◆ 오후 6시, 연예인 공연 이상 의미 없어... 진행관계자들 시민에 무례지적재산권의 날 기념행사 무대에 시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오후 6시를 앞둔 시간부터였다.

기념식 행사에 가수 쥬얼리와 신화의 공연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 행사장은 어느새 풍선을 들고 좋아하는 스타의 공연을 보러온 청소년들로 가득찼다. 게임대회 시작때와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었다.

6시 10분 경, 지적재산권 홍보대사로 선정된 스타들이 하나, 둘 무대에 오르자 객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언니 너무 예뻐요", "오빠!" 청소년들은 열광했다.

그러나 그 뿐. 객석에서 만난 김지훈(14) 군에게 오늘 행사가 왜 진행되는지 아느냐고 물었다. 지훈군은 "몰라요. 쥬얼리 누나 예뻐요"라는 답을 돌려줬다. 지훈군의 친구들도 마찬가지.

홍보대사로 임명된 스타들은 "내가 즐겁자고 남의 재산권을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설파했지만, 이 날 청소년들의 머리속에 새겨진 단어는 지적재산권이 아닌 쥬얼리, 신화였다.

당연한 결과였다.

행사장 어디서도 이 날 행사의 취지를 설명하는 안내문 하나 볼 수 없었다. 기념식에서 낭독된 선언문 내용이 궁금하다고 묻자 진행 관계자들은 "없다"고 잘라말하며 "누구냐, 왜 그러냐, 어디서 왔냐, 저어기 가서 물어보라"는 성의없는 대답을 들려줬다.

어깨띠를 두르고 쭈뼛쭈뼛하게나마 행사취지문을 전하는 문화부 관계자들을 볼 수 있으려니 했던 기자의 생각은 '서툰 기대'였다.

이 날 기념식이 아쉬움 넘어 실망을 주었던 더 큰 이유는 행사 진행자들의 부족한 준비와 무례한 태도.

시민들은 알맹이 없는 행사에 참여해 공연도 편히 보지 못했다. 준비된 의자가 적었기 때문이다. 문화부는 "지난해까지와는 달리 지적재산권의 중요성에 대한 대 국민 홍보에 심혈을 기울이겠다"고 장담했었다.

잘 알려진 문화계 인사, 캐릭터, 연예인을 홍보대사로 선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손님 맞을 준비를 제대로 했어야 맞다. 그러나 의자가 모자라 서 있는 시민들이 전체 관객의 1/3 가량을 차지했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비어있는 자리에 앉은 시민들을 '쫓아내던' 진행자들의 위협적인 모습.

몇몇 시민들이 VIP석이라는 명찰을 달고 비어있는 앞 줄 의자에 앉자 행사 진행 관계자가 득달같이 달려와 "뒤로 가라"고 엄포를 놓았다.

"아무도 앉지 않는데 씨..." 투덜거리며 쫓겨나는 시민들의 불쾌함을 목도했다. 보안과 경비를 이유삼아 시민들에게 얌전히 있으라고 주문하는 그들의 모습은 다분히 위협적이고 무례했다. 안전요원이 존중하고 추구하는 안전의 범위에 무대 아래 시민들은 없었다는 얘기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 왜 하는 행사인지 물음표를 지울 수 없었다.


착찹한 마음으로 행사를 지켜보던 기자 역시 문화부 관계자 인터뷰 도중 '끌려나가는' 어이없는 상황을 경험했다. 신분을 밝혔음에도 도대체 누구냐, 어디서왔냐고 재차 묻던 그들은 행사 종료 시점을 앞두고 다시 프레스 카드를 받아오라고 주문했다. 보도자료라는 초청장을 받고 달려간 자리. 눈에 보이는 꽤 공신력 있는 초청장을 받고 간 기자도 가방끈을 붙잡혀 끌려나왔던 그 곳에서 증명할 수 없는 초대를 받은 시민들에 대한 예의는 실종된지 오래였다.

시민들과 함께하겠다던 지적재산권의 날 행사. 과연 시민들은 이 날 행사에서 과연 무엇을 느끼고 돌아갔을까.

지적재산권에 대한 각성대신 스타의 잔상와 불쾌함이 남았던 23일 문화부의 지적재산권 기념식은 아무리 너그러운 기준을 적용해도 '엉망'이었다.

/박연미기자 chang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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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글]미야자끼 하야오의 77년작 미래소년 코난을 보고

일본의 현대사에 대해서는 내 개인적으로도 별도의 학습 및 이해가 필요할 듯

 

 

제목 미야자끼 하야오의 77년작 미래소년 코난을 보고
등록자 정유석() 등록일 2004/08/18 조회 26
설명

미야자끼 하야오의 77년작 미래소년 코난을 보고


 

주지하는 바대로 미래소년 코난의 원작자인 미야자끼 하야오는 60년대 적군파 전공투 운동때 도꾜대를 점거했던 인물이다. 기실 미야자끼 하야오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감각의 제국'으로 유명한 오시마 나기사 감독도 그랬고 세대는 다르나 거장 구로사와 아끼라 감독은 젊은 시절 프롤레타리아트 예술인 동맹 소속이었다.


 

60년대 말 군경과 야꾸자의 백색 테러에 의해 도쿄대 방화를 끝으로 일본 좌파가 싹쓸이된 후 당시 일본 운동권들이 대거 잠적한 거처는 에니메이션과 B급 뽀르노 회사이다. 일본의 모든 에니메이션, B급 뽀르노 회사에는 모두 운동권들이 최소 한두명씩 잠적해있다. 70년대 자유당과 민주당의 자민당 보수 대연합 이후 특히 더했다(90년 코리아의 민자당 3당합당의 벤치마킹 모델이다. 앞뒤로 글자만 바꿔서).


 

자민당 합당 이후 보수 일색의 죽은 잿빛 일본 사회에서 유일하게 에너지가, 엽기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회 영역은 에니메이션계와 B급 뽀르노 업계 뿐이다(예컨대 니어바나(nirvana)의 세계에 한층 몰입한 여배우?의 환희의 얼굴을 과도하게 클로즈업하는 일본 뽀르노를 연상해 보라). 실패한 혁명 이상으로 인해 일본 에니메이션의 한축인 그 철학은 미래 디스토피아로 가득하다(실상 물질만능주의 근대 일본에 있어서 철학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영역은 에니메이션계가 유일하다).


 

그나마 미야자끼 하야오의 작품들은 비교적 밝으며 희망의 끈을 놓치지 않는다. 바로 이 70년대 작품인 미래소년 코난이 바로 그렇다.


 

어릴 적 코난의 가공할만한 발가락 파워에 낄낄거리며 볼 때는 몰랐었는데 이제 커서 보니 미래소년 코난의 장은 미야자끼 하야오 감독의 좌절된 혁명 이상향을 보상하는 놀이터였다. 말그대로 에니메이션을 통해(망까가 아님) 좌절된 현실과 다른 세계를 창조해낸 것이었다.

인더스트리아는 타도해야 할 내지 스스로 사멸할 기존 일본 시스템이었으며 반면에 하이바나섬, 홀로남은섬은 사회적 공동 생산, 사회적 공동 배분의 이상향이었다.


 

인더스트리아는 핵전쟁의 전후 폐허에서 재건된다. 그러나 그러한 역사의 교훈에도 불구하고 래프카 국장으로 대표되는 인더스트리아 즉 산업화 세력은 반성할 줄 모른다. 외부의 공격이 있기 전에 먼저 선제 공격할 수 없는 인더스트리아 방위 규정 즉 오늘날 일본 평화 헌법 9조는 한낱 종이쪼가리로 무시된다

(오또모 가쓰히로 감독의 '아끼라'도 그렇지만 일본의 핵전쟁에 대한 피해 의식은 마치 프로이트의 남근 거세 콤플렉스를 연상케한다. 사실 그렇게 볼 여지도 있다. 45년 소련 참전 이후 아시아에서, 유럽에서 파죽지세로 밀고 내려갈 때 일본의 패전은 기정사실이었다. 미국의 히로시마, 나가사끼 little boy 실험은 말 그대로 성능 실험이었다. 아주 불필요한......  비인간적인 일본에 대한 응징과는 별개로 미국의 오버액션의 비인간성 또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래프카들의 대척점에 서는 코난은 일본 사회에서 출현해야할 신인류이다. 코난과 포비, 그리고 라나의 캐릭터는 모두 어린 아이들로 설정되었지만 어떤 면에서 그들의 액션은 성인의 그것이며 결국 미래소년 코난은 성인물이다. 그들은 때묻지 않은 성인들로서 신인류이다.


 

하이바나 섬은 미야자끼 하야오 감독이 꿈꾸던 사회주의-공산주의 이상향으로써

하야오는 어부 아저씨 말씀을 빌어 어부는 그 많은 고기들을 자기 혼자 먹기위해 잡는 것이 아니며 어부가 고기만 잡더라도 다른 사람이 만든 빵을 먹고 옷을 입을 수 있다라고 자신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이상향을 축약하여 설명한다. 이것은 유적 존재로서 사회 구성체 구성원들의 사회적 생산과 사회적 분배, 능력만큼 일하고 일한만큼 가져가는 사회를 말한다. 실제로 하이바나 섬은 라나, 코난, 포비같은 어린애들까지 사회적 노동을 한다.


 

그러나 흑백이 칼같이 나뉘는 것은 아니다. 말그대로 인더스트리아를 통해 하야오 감독은 좌든 우든 산업화 근대화 그 자체를 거부하는 측면도 있다. 하야오 감독 외에도 이러한 전면적 부정적 디스토피아 그 자체는 일본 에니메이션 도처에서 나타난다. 에니메이션계와 뽀르노 산업계로 은둔한 그들 무리는 결국 좌절한 패배자에 불과하며 스스로 자기부정적인 단절의 측면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연속 선상의 멘트도 복합적으로 있다. 더 이상 물고기와 돼지를 사냥하는게 아니라 사육하는 코난과 포비를 보며 라나는 속으로 많이 발전했다라고 한다. 발전/개발 바로 근대화의 산물아니던가? 합리주의=도구적 이성주의=근대주의(주체와타자의분리)=오리엔탈리즘=개발주의=자연파괴=자본주의=제국주의=세계화=MBA=조지부시=마쵸이즘=...).


 

하야오의 아름다운 공동체 하이바나 섬도 자본주의 생산관계를 극복한 극도의 발전된 생산력 토대의 사회주의-공산주의 상이라기보다는 쁘띠 부르조아지 소생산자들 연합체같은 성격을 띤다(한폭의 파스텔톤 풍경화와도 같은 하이바나 섬 전경을 보라! 사실 과학적 사회주의를 말하는 자들에게도 전원 목가적 낭만주의 이상은 늘 병존한다. 하다못해 베를린 대학에서 법학 박사를 취득할 당시 보수주의적 지도 교수를 둔 칼 맑스 그 자신에게도!).


 

다만 자연과 환경에 대한 미야자끼 하야오 감독의 혜안 그 자체는 시대를 앞서 탁월하다 못해 예언자적이다. 60-70년대 아무리 일본 산업화가 가속화하였다고 하지만 자연과의 조화에 관한 본격적 이슈화는 1990년대 이후 얘기다. 그 이전까지 자연은 exploit 즉 개발/착취의 대상이었다(성경에도 그렇게 쓰여있다. 자연을 만들고 맨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들었으니 마음껏 exploit하라! 오늘날 기독교 신자들이 하느님이 자연을 후세를 위해 보존하라고 하셨다던데 성경 어느 구절에 근거한건지 모르겠다. 명문화된 성경 구절도 후세가 자의적으로 수정할 수 있을 정도면 왜 아담과하와 에덴동산 창조론 신화는 그토록 병적으로 고수하려고 집착하는지 모르겠다. 단군신화 비슷한 신화로 탄력적으로 해석하면 될 것을...). 물론 동양에서 인간과 자연의 공조는 역사적인 전제이기는 하나 하야오 감독은 이를 산업화 시대에서도 관철하고 있으며 이는 향후 '센과 치이로의 모험','월령공주' 등에서도 일관되게 관통되는 주제이다.


 

오히려 80년대 인간 소외의 거대 억압적인 동구권과 구소련의 몰락, 그리고 체르노빌 사고 등 사회주의 현실상을 보고 나중에 하야오가 어떤 얼굴을 했을지 궁금하다. 지금은 생각과 신념이 바뀌었을까? 그러나 현실 일본사회도 매한가지이다. 아무런 활력이나 희망도 없이 온통 보수 일색의 침체된 물질 만능사회에서 오직 자본주의적 극단적 소비를 위해 여학생 원조교제가 사회문제의 전면으로 등장하는 사회상 또한 하이바나 섬과 멀기는 마찬가지다(선진국으로 갈수록 성이 개방화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런데 성이 개방화된다고 해서 학생들이 돈독에 올라 아자씨들을 상대로 성을 사고 파는 것은 별개 문제다. 그런 나라는 선진국?중에서 일본 밖에 없다. 요즘 코리아가 조금 흉내내는 듯 하다. 입시지옥 속에서 학벌 서열주의 차별과 탈락 및 배제를 어린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공통점을 갖는 두나라다).


 

무슨 그나마 개혁적인 정권이라고 들어서서 매년 총리라는 작자가 신사 참배나 하고 곧 평화헌법 9조도 폐지하려는 이런 현실은 아직 채 멸망하지 않은 인더스트리아의 복사판이나 마찬가지다(이는 궁극적으로 독일의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과 비교시 맥아더 군정 하에서 도쿄재판등 역사 청산 날림으로 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justice가 없는 사회에 무슨 미래나 비젼이 있겠나?! 그때 전범들 제대로 청산 못했더니 지금까지도 기미가요 부르며 다시 전쟁 함 더 하자는 설래바리가 욱일승천하는 것이다.

한-일 양국 간에 축구 경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역사 청산은커녕 아직도 우리 사회에 어떻게 일본 시스템을 카피할 수 있을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수도 도꾜의 인구가 3천만명이 넘어버려 국토의 균형적 이용은 물건너 가버렸고 부동산 거품 공화국 코리아보다 3-4배의 건설족 부동산 거품으로 인해 10년째 장기 불황의 거품을 탈출하지 못하는, 그 바람에 허울좋은 대기업 명함파고 우리나라 고시원같은 닭장 집에서, 더 심하면 교외에서 출퇴근 왕복 3시간이 넘는 곳에서 거주하며(우리나라 양평쯤?) 교통이라도 끊기면 회사 앞 캡슐방이라는 반평 이하의 또다른 닭장에서 잠을 청하는 바로 그 일본 말이다. 월드컵-탄핵 국면에서 우리 국민들이 보여준 역동성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물질만능의 정신은 죽은 원조교제 황국신민을 그렇게 재생산하고 싶은가! 10년의 장기 복합 불황을 카피하고자 하는게 아니라면 일본은 우리의 추구 모델로써는 이미 파산했다).

 

사족이지만 마치 하야오 본인과 그 동지를 표현한 듯한 지하 레지스탕스를 비롯하여 26편의 장편을 통해 일본내 많은 계급-계층 상이 다양하게 묘사된다. 유독 야꾸자 상을 추출하기가 쉽지가 않다. 전세계 어디에 가더라도 협객을 자처하는 우익 정치 깡패들은 있으나 유독 60년대 좌익 척결을 통해 사회 주류 세력으로 부활, 인정받은 일본 우익 정치깡패, 백색 테러리스트 상이 간과되는 것이 의아스럽다. 바로 미야자끼 하야오 자신을 에니메이션계로 추방하여 오늘날 그를 있게한 원동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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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글]국민 연금에 대한 몇가지 오해

 

 

 

 

제목 국민 연금에 대한 몇가지 오해
등록자 정유석(팀) 등록일 2004/08/28 조회 28
설명

1. 들어가는 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시적으로 보이는 복지 시스템은 4대 보험이다. 즉, 산재보험, 고용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

여기서 국민연금을 폐지하자고 한다. 아직도 많은 어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수도물로 배채우는 이 바바리안 사회에서 국민연금이라는 복지국가 한축을 없애자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건지 모르겠다. 그래서 그러면 미래를 어떻게 살래 하고 물어보면 잘살아야쥐, 내 스스로 알아서 노후 책임지겠다고 한다.

필자는 국민연금 외에도 주위 친구들 권유로 프루덴샬, AIG, PCA등 3개 이상의 사보험에 퍼부으면서도 국민연금 지지자인데 그 사람들은 그런 대책도 없이 그러는데 답답하다. 조3모4에 통탄하다.

설사 그런 사보험에 가입하는 등 대책이 있더라도 국민연금에 비하면 요율도 훨씬 높을 뿐더러 나중에 혜택은 국민연금보다 훨씬 낮다.

이런 공짜를 왜 없애자고 하는지...ㅠ.ㅠ

 

이하에 국민연금에 대한 몇가지 오해를 생각나는대로 적어본다(주source는 딴지일보다. 명랑빠꿀사회를 지향하는 딴지일보, 남로당, 민주노동당 등 복지사회를 지향하는 무리들은 모두 국민연금 유지 찬성이다. 참고로 남로당은 딴지일보 산하 남녀상열지사...당이다. 색안경끼고 보지 마시기를...)

 

 

2. 국민연금에 대한 오해

 

1) 연금 고갈

 

일단 사전 지식부터....

연금은 적립 방식과 부과 방식이 있다. 적립 방식은 내가 낸 돈으로 받는다. 부과 방식은 젊은 세대 돈을 걷어 실버 세대를 부양하는 방식이다.

대게 운영은 적립방식에서 고갈 즉시 부과방식으로 전환한다.

 

2043년 고갈/파산한다고 걱정이 많다. 그럴 일 없다. 2043년 고갈될 수는 있다. 그러나 고갈이 =이꼬르 파산은 아니다, 위 설명대로 시스템을 전환하니까.

선진국 연금은 대부분 시행 6개월 내지 1년 내에 고갈되도록 설계된다. 고갈시 부과방식이 전환된다.

적립 운영이 가장 긴 연금이 캐나다 연금으로 5년이었다고 한다. 코리아는 2043년이다. 즉 코리아 시스템은 노후복지를 위한게 아니라 50년 가까이 정부 돈 노리하기 위해 설계된 것이다(5공 군벌 때).

오히려 하루 빨리 고갈되도록 시스템을 바뀌야 한다(군인 연금의 경우 고갈된 것이 1972년이다. 그러나 전두환 노태우 말고 연금 떼였다는 퇴역군인 있나?).

 

출산율도 낮아지고 나중에 얘들도 줄어든다는데 어떻하냐고 한다. 그럼 블란서등 선진국은 출산율 높아서 유지되나?

선진복지국가는 고생산성 고부가가치 사회로의 연속적 발전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그런 희망마저 없다면 이 사회에서 왜 사나? 당장 내일 나라 망할꺼 생각하면 다리 하나도 놓을 수 없다.

그리고 어떻게 2043년까지 기다리나? 연금재정 고려할꺼 없이 하루라도 빨리 받지...

 

 

2) 강제 가입

 

국민연금? 그래 좋다. 그러나 나는 빼달라 이런 의견이 있다. 즉 임의가입으로... 복지기제의 기본 원리상 불가능하다.

건강보험의 경우 모든 사람이 강제 가입하기에 현재 보험료율이 낮은 것이며 의료행위를 받고도 그 돈만 내는 것이다.

월급의 3%만 내고 고용보험법상 생활비조로 실업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도 모든 사람이 가입하기에 가능한 것이다.

이는 모든 보험 기금의 기본 원리로 국민연금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나라 복지 시스템도 다 그렇다. 복지국가 지향을 포기하기 전에는 방법이 없다.

 

 

3) 낼 돈이 없다.

 

위의 강제 가입과 연관된 내용으로 지금 당장 낼 돈이 없으니 난 빼달라는 말이 있다. 그나마 우리 고정적 월급쟁이들은 해당없는 얘기이지만 일반적으로 일리있는 말이다.

정책적으로 한시적 유예 등은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안내고 뻐팅기는 체납자들 중 60-70%가 서초,강남,송파 벨트에 사는 사람들임을 지적한다.

 

 

4) 수급권 제한

 

최초 어떤 이가 인터넷에 터트렸을 때 그 사례가 있다. 남편이 죽어도 부인이 현직에서 소득있으면 국민연금 안나온다. 여기에 모두들 분노했다.

 

돈이 안나오는게 당연한거다. 원래 복지 시스템은 돈 붇는대로 나오는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나오는거다.

예컨대 건강보험, 아무리 돈 부어도 내가 한번도 안 아프다가 갑자기 객사하면 환급 안하고 그냥 소멸 국가 귀속이다.

국민연금도 같은 원리이다. 꼭 필요한 사람에게 나온다. 내가 직업이 있어 생계가 유지되는 한 안나오며 소득없는 노인들에게 돌아간다.

 

 

5) 요율 상승

 

옛날에는 낮은 요율 소정 금액만 내고 소득 50% 이상의 연금을 받았는데

요즘 납부요율이 소득 50%에 육박 상향 조정되고 반면에 받을 연금이 소득 50% 수준으로 하향접근하는 것을 문제 삼는 이들이 있다.

 

이는 최초 제도 설계 자체부터 군벌들이 선심성 차원에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개정은 그 그 요율의 현실화 과정이다.

서구라파 선진국의 경우 세금 뿐만 아니라 연금도 소득 60-70% 뜯어간다는 것 잘 알 것이다.

따로 노후보장 은행 저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 납부율을 올려야 할 것이다. 그리고 상기 내용을 재론하지만 지금 상승하는 요율 및 커버리지도 그 어떤 노후보장 사보험 예컨대 프루덴샬, AIG, PCA 등에 비하면 훨씬 좋다.

 

눈앞의 몇 푼 뜯기는거에 흥분해 노후 대책을 저버리자는 것은 전형적인 조3모4이다. 우리나라든 딴나라 어디든간에 자신의 노후를 확정적으로 자신있게 보장할 수 있는 사람들(즉 태어날 때 입에 은스푼 물고 나오는)은 그 사회에서 선택된 몇 명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이 그렇게 싫으면 프루덴샬, AIG, PCA 등 빨리 빵빵하게 가입해야 한다. 그리고 프루덴샬, AIG, PCA 등에 가입하는니 차라리 국민연금 계속 하는게 낫다. 혜택이 그 어떤 사보험보다도 크니까(사보험은 자본의 논리에 의해 운영되고, 연금은 복지의 원리에 의해 운영된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처럼 은행 이자율이 제로로 수렴하여 수수료 따로 내고 은행에 돈 맡기는 시대가 도래할 지경이다. 선진화 경향 노정에서 당연하다. 예컨대 국민연금요율 상승도 당연한 대세이며 세율 상승도 당연하다. 집없는 사람들을 위한 영구임대주택 증축 경향도 당연한 것이다. 이러한 대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이 걷어간 돈들이 제 용도에 잘 쓰여지는지 감시하는 것 뿐이다).

 

 

6) 사회적 형평성

 

요율에서 소득 재산에 따른 차등성 및 분배 효과가 없다는 점을 지적하는 의견이 있다.

일단 국민연금이라는 제도 자체가 부의 재분배가 아닌 노후복지를 1차 목표로 하기에 부차적인 문제일 뿐더러(선진국 설계도 그렇다) 장기적으로 연금에서 세금으로 전환하면 되겠다. 폐지까지 주장하기에는 부차적 문제다.

 

 

 

3. 국민 연금과 퇴직 연금과의 관계

 

조만간 퇴직 연금이 도입될 것 같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다. 사회단체, 노조 등의 수년간 요구를 이제 수용한 것 뿐이다.

사람들 중 퇴직금 충당 외에 퇴직연금을 따로 또 떼이는 것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퇴직금과 퇴직연금은 선택 사항이다. 즉 한큐에 받을래? 나눠받을래?

다만 퇴직 연금과 국민 연금의 중복되는 측면은 어떻게든 보강되어야겠다(행시 패스 보건복지부 사무관들이 이 정도도 커버 못하는 사람들은 아니다).

 

 

 

4. 시마이하는 글

 

사실 내 글은 복지 국가 지향성을 당연한 전제로 쓴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 중에 주위에 장애인 아파트, 영구임대 주택만 들어와도 내 집값 떨어진다고 데모하는 나라에서 무슨 놈의 복지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솔직히 가난은 임금님도 못고치는 팔자라고 그렇게 치부하고 더 나아가 복지가 근로 의욕을 떨어뜨린다고 초치는 사람들 앞에서는 나도 할 말이 없다.

엄밀히 말해 이 사람들은 무슨 태풍 수해로 내 집이 떠내려가도 국가에 "노무혀니, 우리 동네를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해달라" 요구할 자격도 없는 사람들이고 다른 사람 수재의연금도 내고 받으면 안되는 사람들이다. 왜? 숙명이자 팔자니까!

 

그러나 자기에게 좋은 것은 내탓이고 나쁜 것은 나라 탓하고 요구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이기적 인간 가정에 근거하면 퍽이나 합리적 인간으로 이또한 당연한건지 모르겠다.

다만 논리 일관성 측면에서는 좀 쪽팔릴꺼다. 물론 눈앞의 이익에 혈안이 되어 그런거 물불 안가릴 수도 있고...

 

일관성 얘기가 나오니 만약 국민연금이 폐지된다면 그 다음 목표는 고용보험 폐지가 목표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즉 나는 죽어도 해고, 정리해고 안당할 자신있는데 왜 가입을 강제하냐고?

그다음에 건강보험 폐지, 나는 아플 일이 없는 타고난 건강 체질인데 왜 가입을 강제하느냐? 이런 식으로 4대 복지기제가 일관된 논리로 폐지된다. 맨앞에 하나만밀리면. 그리고 도미노로 점점 완벽한 벌거숭이 바바리안 사회로 간다. 사고 발생시 제도가 아니라 그때그때 기분에 맞춰 십시일반 수재의연금에 의지해 유지되는 아무 원칙도 기준도 없는 사회로!

 

불란서의 경우 이제는 가정에서 암 환자가 발생하면 사회당이 집권하든 기독교민주당가 집권하든 좌우파에 상관없이 국가가 빽업들어오는 시스템이란다. 이게다 고율의 세금으로 유지되는 것으로 코리아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제도가 된다.ㅠ.ㅠ

(반면 미국의 의료 체계는 철저히 개인 자력 중심이다. 미국 의사 협회는 의료 보험 도입등 사회주의 의료 시스템 도입을 봉쇄하겠다고 천명한 바 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의료 시스템에 관한 한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후진적이며 그 쪽 의사들 시각으로 봤을 때 서유럽과 한국은 빨갱이 국가인 셈이다.

그 막대한 국부에 비해 빈약한 복지 지출로 인해 유럽의 식자들이 미국을 야만의 나라라고 깔보는 경향이 있는데 일견 타당한 시각이라 하겠다)

 

 

좌우지간에 이런 식으로 연금이 잘못 알려져 있는 것은 언론 탓이 크다. 기본적으로 언론이라는 것은 analystic한게 아니라 descriptive하다. 즉 궁극적으로 언론 기자들은 월급쟁이들이지 전문가나 학자가 아니다. 그 두루뭉실한 기사들도 맨날 보건복지부 사무관이 오늘은 뭔 얘기할라나 입만 쳐다보고 기다려서 나오는 것이다. 야근하고 술먹는라 따로 공부할 시간도 없는 무식한 월급쟁이들이다. 게다가 나아가 언론사 사주가 anti-복지시스템 성향을 가진 인물이라면 아는 사실마저도 왜곡한다. 현재 코리아 같은 소유-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시스템에서는

 

개인적으로 해법은 국민연금 폐지가 아니라 국민연금 관리공단을 폐지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국세청에 통합시켜 실효성있게 빵구난거 다 걷어내야 한다고 믿는다. 국민연금은 선진사회를 지향하는 그 과정에서 대세다. 당장 부담될지 몰라도 나중에 그 혜택이 너무도 크다.

 

사회 현상과 본질은 분리되어 있다. 그 간격을 메꾸는 것이 철학과 과학이다. 현상과 본질이 일치/동일하다면 철학과 과학은 필요가 없다. 조3모4 1희1비 부화뇌동할게 아니라 좀 장기적으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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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글]이해할 수 없는 대기업 긴축 경영

전 직장에서 써놓은 글인데 접근을 안막았더군. 다행이다. 지금도 기조는 비슷하다. 한달 단 5만원, 10만원이라도 적립식 펀딩에 가입하자. 부동산도 막혔으니 돈벌 길은 그 길 밖에 없다.

 

 

 

 

제목 [경제]이해할 수 없는 대기업 긴축 경영
등록자 정유석(경리팀) 등록일 2004/12/03 조회 25
설명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들이 긴축 경영에 나선단다.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11월3일 한겨레 신문 경제 섹션이 인용한 동원증권 표를 보면 올해 순이익 1조원 이상인 회사가 작년 6개사에서 금년 10개사로 급증했다. 매출이 아니라 순이익 말이다.

http://www.hani.co.kr/section-004100000/2004/11/004100000200411032040186.html

 


 

토탈로 봐도 머니투데이 9월13일자 기사처럼 대기업들이 보유한 기업보유현금은 190조로 사상 최대이다.

http://blog.naver.com/encon/140005793349

 


 

이는 당연히 사상 최대 수출 흑자폭에 기인한 바 크다.

한국은 비록 수출 증가'세'(즉 증가폭)는 둔화 경향이기는 하나 수출 '증가' 그 자체는 여전히 단군이래 최대 기록이며 반면에 수입국인 미국은 그로 인해 레이건 시대와 같이 재정적자/무역적자 쌍둥이 적자에서 시달리고 있기에 요즘처럼 변동환율제하 원화 평가절상/달러화절하는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한 수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아래 한국은행의 표 상의 사상 최대의 외환보유고 현황이다.

http://www.hani.co.kr/section-004000000/2004/12/004000000200412021819292.html



 

이러한 경향은 결코 현 정부가 경제 정책 운영을 잘해서 나온 결과가 아님을 확인한다.

우리 경제가 '싸잡아 무조건 몽조리' 불황이 아님임 또한 확인한다.

 

현재의 경제 상황은 '무조건 나라 경제 망한다'가 아니라 '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 경향으로identify함이 옳다. 수출 위주 대기업/ 내수 위주 중소기업 양극화를 말하는 것이다. 내수 활성화를 위해서는 유효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 필수인데요즘 이미 중심 우클라드가 된 아무런 구매력도 없는 비정규직 고용 양산이 내수 진작 유효 수요 창출에 무슨 도움이 될지 현 정부 정책에 대해 정말 회의적이다.

 

비정규직 개인들에게는 '성장없는 고용'이겠지만 국가적으로는 '고용없는 성장' 시스템 하에서 구조조정터널을 통과하고 남은 근로자들이 더 적은 인원에 더 많은 이익을 위하여 야근에, 특근에 얼마나 고생했겠는지 짐작이 간다.

 

매경 11월25일자 기사대로 대기업들의 연말 돈잔치는 그들의 노고에 대한 당연한 보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대기업 초긴축 경영은 금년까지만 돈잔치하고 내년부터 허리띠 졸라맨다는 소린지 무슨 얘기인지 여전히 이해가 안간다.

http://blog.naver.com/sm9763.do?Redirect=Log&logNo=60007912931



 

PS 수출 호황의 현대.기아 등 자동차 산업도 그렇다. 예전과 같은 M/S를 유지한다고 가정할 때 과거에는 제살깎아먹기 출혈 경쟁이었지만 지금은 제값받고 판다. 그쪽 동네도 순이익은 엄청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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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최초로 읽은 글... 제대로 된 최초의 글? by 임진모

90년대 중반에 처음으로 접한 존레논 관련 아티클입니다.
임진모씨가 지은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 중의 내용으로 그 책은 이사가다가 잃어버린 것 같은데 인터넷에서 같은 내용의 글을 찾았습니다. 올려봅니다.
존레논에 관한 저의 고정 관념을 많이 바꿔준 글이었습니다.

존레논의 위대함이 그의 정치적 사상적 스탠스가 좌파적이다 민중적이다 하는데 있는 것은 물론 아니겠구요(사상적으로 더 뛰어난 이론가 활동가들도 많으니까), 제 개인적으로는 매시기 처한 상황 속에서 진지하고도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간 존의 진정성에 있다고 봅니다.

비록 굴곡은 있을지라도 존은 적어도 그때그때마다의 시점에서 언행과 행동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늘 반추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노동계급에서 태어나 오로지 돈을 벌기위해 자아를 숨기고 몹탑 헤어를 하고 대중 입맛에 맞게 무대에 서야한다는데 대해 늘 괴로워했으며, 나중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돈을 번데 대해(a lucky man who made a grade) 죄의식을 늘 가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괴리를 해결하고 극복하려는 열정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60년대 후반이후 존의 자아 각성에 대해 사람들은 왜 귀여운 우리 존이 점점 또라이가 되어가나, 다 저 일본 원숭이(except for me and my monkey) 때문이다 하면서 존이 비틀즈 구성원이 아닌 원초적이고 반항적인 인간 존레논 자체을 찾아가고 회복하는 것에 대해 탐탁해하지 않고 매도하였습니다(구조주의 식으로 표현하자면 주체는 타자의 호명appellation에 의해 규정됩니다.).

이에 존은 타인들이 원하는대로 적당히 더벅머리 존으로 타협했으면 향후 편하게 살 수 있었고 부 또한 보장받았겠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존은 일생동안 줄곧 자기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닥뜨렸으며, 행동하고 실천했으며, 자신을 둘러싼 편견, 허위의식에 저항했습니다(그렇지 않았으면 이민국과 그렇게 장기간의 지루한 법정 투쟁을 애당초 하지도 않았겠지요. 요꼬는 아이를 세번이나 유산하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존의 음악 그 자체가 바로 그의 삶의 궤적이자 전기이기도 합니다.
Revolution
Ballad of John n Yoko
Come together
Give peace a chance
Power to the people
Working class here
God
I don’t want to be a soldier
Imagine
Sometimes in NY 수록곡들
그리고 거의 집회이자 커뮤니케이션의 장인 공연들(RATM을 방불케 하는)…

텍스트로써 존의 앨범과 노래들에 매시기 그가 당면한 고민과 갈등, 관심사가 투영되고 있습니다. 이는단지 선언에 그치는 것이 결코 아니며, 예컨대 액티비스트로서 절정에 달한 앨범 some times in NY가 시장에 발매되었을 때에 그는 또한 오프라인에서, 현장에서 현실과 몸으로 맞부딛치고 있었습니다(cold turkey와 mother를 부를 때도 안에서는 절규하고 있었습니다).

그리 길지 않은 생애에 그토록 변화무쌍하게 그러나 치열하게 살아간 인간이 바로 존레논이었습니다. 때때로 결과적으로 좌충우돌하였더라도 그 과정은 너무도 성실하고 진지한 것이었습니다(사실 결과적으로도 일정정도 politically correct하였기에 그의 죽음이 일종의 순교로 후대에 의해 추앙받는 것이겠지요…).


그밖에 90년대 중반 제가 읽은 존레논 책 중에 레이 코널리 저, 임진모 전찬일 번역의 ‘존레논’(대륙-현재 절판?)이라는 책이 있는데 원저작자가 보수적 스탠스를 취해서인지 솔로 시절 존의 음악 및 활동에 대한 평가는 다소 빈약하고 야박한 편입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읽은 책으로 임진모씨 본인이 직접 쓴 [존 레논 : 이매진, 세상으로 만든 노래] 새길 출판사가 있는데(현재 역시 절판?) 이 책은 비틀즈 시기도 구체화하여 포함하고 있지만 존레논 개인의 삶과 음악을 연속적으로 점증적으로 잘 서술한 것 같습니다(어떻게 보면 ‘팝 리얼리즘, 팝 아티스트’상의 아티클이 이 책의 서곡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기타 한번 치룰 때마다 구설수에 오르고 욕을 사서 먹던 온갖 인터뷰들도(우리 카페에 올라와 있는) 존을 이해하는 좋은 방편이라고 생각하며…

지금은 시중에 레논에 관해 어떤 책들이 나와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존레논 개인이 60-70년대 시대정신을 온몸으로 안고 산 사람이기에 다리품 팔고 서점에 가서 직접 책 좀 보시고 인간 존레논, 그의 음악, 그리고 60-70년대 시대에 대해 접하고 이해할 기회가 있기를 바랍니다.


Ps.

1. 임진모씨가 쓴 책 중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 100?’ 아직도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 같습니다. 같은 스탠스로 쓰여졌으며 이중에 비틀즈의 5대 명반이 모두 들어가 있습니다.

2. 글 중간에 로널드 레이건에 관한 내용은 흥미롭습니다. 68년 우드스탁 롹페스티발 3장짜리 LP앨범을 들어보면 한 가수가 '우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아주 좆같은 놈인데 그놈 이름이 로널드 레이건이다'라는 취지로 말합니다. 청중들이야 당연히 '레이건! 펵유우우……'하고.
80년대 대처리즘과 함께 레이거노믹스로 신보수주의 불을 지피고 베트콩을 싹쓸이하는 람보2의 시대를 창출해냈으며, 전체(全) 머리(頭)가 환(煥)한 코리아 대통령을 등두드려주던 바로 그 대통령... 지금은 미국의 위대한 대통령 큰 바위 얼굴에 추가한다나 뭐란다나 하면서 알츠하이머병으로 벽에다 똥칠하고 있는 바로 그 레이건 전대통령입니다. 당시 대통령할 때 부통령은 애비 부쉬, 지금은 아들네미 부쉬

3. 다섯장짜리 레논 앤쏠로지 시디 부크렛에 실린 시사만화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닉슨 행정부가 존을 도청하고 린치?가하고 장난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낙선 운동했으나 끝내 닉슨이 재선되자 존은 엄청난 정신적 공황에 빠지게 됩니다(잃어버린 주간). 그러나 결국 닉슨은 워터게이트 도청건으로 사임하게 됩니다.

4. 65년‘지금 비틀즈가 예수보다 더 유명하다’라는 발언으로 그 사단을 치룬 존이 불과 10년도 안돼서 God을 도마 위에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일련의 액션을 통해 사람들이 존과 요꼬를 거의 내놓은 자식 취급하고 제껴놓아서 운신의 폭이 넓어진 것도 있겠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60년대말 미국의 히피 운동과 유럽의 68(파리)혁명을 거치면서 온갖 금기가 극복되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다만 ‘노동계급의 영웅’가사 중에서 나오는 fucking은 그시대 동급 최초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종교와 섹스와 TV로 중독시키지. 그런데 당신은 자신이 현명하고 계급이 없으며 자유롭다고 여기는 거야’라는 본질을 바라보는 냉철한 지성은 놀랍습니다. 일단 영국만 보자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아무리 복지 시스템이 잘되어있어도 축구나 밴드로 뜨지않으면 리버풀에서 벗어날 수 없답니다.

5. 예수 발언 얘기를 꺼낸 김에…
모린 클리브와의 인터뷰에서 레논은 다음과 같은 취지로 말했습니다. “현대 사회는 미디어의 사회다. 매스 미디어 발달로 이제 비틀즈가 그리스도보다 유명(popular)해질 지경까지 왔다”. 이러한 일정정도 세태를 꼬집는 발언이 미국으로 건너가 극우 기독교 근본주의자, Ku Klux Klan(aka WHITE ANGEL)에 의해 말 앞뒷머리 싹 자르고 비틀즈의 자만감 표현으로 왜곡되었습니다. 또한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비틀즈가 예수보다 더 위대하다(greater)라고 말한 식으로 왜곡되었습니다. 저는 이 척박한 색깔나라 코리아에서나 이러는줄 알았는데 미국에서도 그럽디다. 한심하기는 매한가지입니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말 앞뒷머리 다 자르고 단어 어구만 말꼬리 잡고 늘어지는 인간이 제일 짜증납니다.

6. 인간들이 요꼬를 except for me n my MONKEY 못생긴 원숭이 취급하는데에는 저변에 오리엔탈리즘이 깔려있다고 봅니다. 요꼬가 백인 여자였으면 반응이 어땠을까 상상해봅니다. 요즘 비틀즈 책 많이 쓰시는 한선생님 글에도 보면 그 풍부한 fact에도 웬지 이런 시각이 은연 중에 비치는 것 같은데(비틀즈 컬렉션을 보고) 물론 강요된 것일 것이며 우리 동양인들끼리는 정신 바짝 차리고 서로 존중하고 자긍심을 가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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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씨 저도 '대륙'출판사에서 나온 그 책 가지고 있습니다. 그 출판사 사장님이 친히^^ 선물로 주신.... 요꼬에 대한 생각이 저와 비슷하시군요. 헌터 데이비스의 책 'The Beatles'를 보면 존과 요꼬가 처음 만날 당시를 쓴 부분이 있는데요, 저자는 그 만남이 필연적일 수 밖에 없다는 식으로 표현하고 있더군요. [2005/01/17]
루씨 위에 언급하셨듯이 '죄의식'을 가진채 대중에 영합하는 노래들을 계속 써야했던 당시, 존은 새로운 세계, 새롭게 자신을 표현해야할 뭔가를 열망하고 있었고 바로 그때 일반인들 눈에는(사실은 그 속에 나도 포함^^) 쬐끄맣고 못생기고 이상한 짓을 하는 못생긴 동양 여자가 짠~ 나타나서 존의 영혼을 흔들어 놓은거겠죠. [2005/01/17]
루씨 사람들이 그녀를 '존을 꼬여낸 구미호'정도로 생각하는건 자유지만, 어쨋든 한사람의 영혼을 그렇게 흔들어 놓을수 있다는건 멋진일 아니겠어요? 그녀가 백인이었다면 그렇게 '원숭이'까지 가진 않았겠죠. [200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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